- 십자가는 악의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해결책이다.
저자는 이 책의 주제는 오늘날 이 세상과 우리 자신 속에 존재하는 악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기독교적으로 이해하고 비평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가 성경을 구약과 신약을 연계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자면, 예수님이 40일 금식 후에 받은 시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받았던 시험과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받았던 시험을 재연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 톰 라이트가 신학자로 복음서를 ‘속죄 신학’으로만 보기보다는 어떻게 세상의 악이 최고조에 달했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데 유의하면서 다시 읽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 시대부터 예수님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장기적인 계획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되었고,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한 후 폭력적으로 죽임을 당했는가에 대한 기록으로 인식이 되어야만 악의 대한 우리의 태도가 분명해 지고 속죄 신학도 풍부해진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의 악에 대한 태도가 너무 미숙하다.
첫째로, 악이 우리를 정면으로 공격해 오지 않으면 악을 무시하려 한다. 서구 정치인들은 알 카에다가 요주의 세력이라는 것을 완벽할 정도로 알고도 아무도 그 문제를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려 하지 않다가 마침내 2001년 9.11뉴욕의 쌍둥이 빌딩의 테러를 당하게 되었다. 선로의 결함을 수 개월 전에 발견하고도 끔찍한 열차 사고가 날 때까지 방치해 두는 것과 같다.
둘째로, 악이 정면으로 등장하면 깜짝 놀란다는 점이다. 마치 죽음이라는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당하면 새삼 충격을 받고 당황하게 된다는 점이다.
셋째로, 결과적으로 우리는 미숙하고 위험한 방식으로 악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저 반사적으로 욕설을 퍼붓기 시작한다. 순진하게도 이제는 선한 사람들(미국인과 이스라엘)이 악한 사람들(특히 아랍 사람)을 응징할 권리가 생겼다고 선언한다.
악과 선을 가르는 경계선은 나를 통과해 지나간다.
어떤 무리는 선하고 어떤 무리는 악하다고 선과 악을 나누어서는 결코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선과 악을 나누는 경계선은 우리 각 사람 모두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우리 속에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드로는 반석이란 이름을 얻었지만 즉시 ‘사탄’이란 꾸지람을 들었고, 도마는 불평과 의심을 하였으며, 야고보와 요한은 하늘나라에서 좋은 자리 얻으려고 다른 제자들과 말다툼을 벌였다. 인간의 악이 다양한 형태를 지닌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악을 무시하는 것도 답이 될 수는 없다.
입법이나 철학적 논쟁을 통해 악을 제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을 물리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키지만 고성능 폭약 역시 악을 제거할 수 없다.
하나님의 정의는 구원하고,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정의는 단순히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한 일을 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격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비난하였다. 하나님의 나라의 거룩함과 악이 분리되어 있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은 악인이 구속과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또 구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는 구원하고, 치유하고, 회복하는 정의이다. 왜냐하면, 정의를 결정하시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아직도 창조의 본래 계획을 완성해 나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욥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창조주 시며 세상의 주님이시다.’라는 점을 분명하게 선언하는 신학적 확신을 주장한 글이다. 또한, 욥기 전체는 겟세마네의 고통스러운 장면을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악에 대하여 무엇을 하시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셨고, 무엇을 행하고 계시며, 무엇을 행하실 것인지를 설명해 주려고 쓰였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과 인류와 피조세계의 문제와 같은 엄청나게 큰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에서는 성경의 작은 부분만을 읽고 끝나고 있다는 점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요셉은 팔려간 곳에서 이전에 몰랐던 겸손과 하나님의 기이한 섭리를 배우게 되었다. 요셉의 형제들이 두려워 떨 때, 요셉은 “당신들이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라고 고백하다. 인간의 악의조차도 하나님께서는 기이한 목적을 이루시는 데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책임과 주체됨을 무너뜨리지 않으시면서, 악을 심판하고 징벌하시며, 악의 한계를 설정하시며, 새로운 은혜의 순간들과 새 창조를 이루게 하신다.
악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님이 죽음과 부활로 성취하신 것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인 세상에서 모든 악을 제거하고 정의롭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새 세계를 세우는 일의 모델이 되었다.
우리는 하늘나라를 상상하면서 살아야 한다. 물론 그 세계는 현재의 세계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고, 새로운 가능성과, 새로운 치유와 새로운 성장과, 새로운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계일 것이다. 그곳은 죽음이 없는 세계이다. 죽음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이 부패하고 소멸하는 것을 말한다. 죽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대한 모독이며, 사악한 사탄의 최후 무기이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죽음 자체도 정복될 것이다.
우리의 모든 현재의 삶은 미래의 삶을 미리 맛보며, 성령 안에서 탄식하면서 마지막 선물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치유와 질서를 지금 이 세상에 가져오기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과거의 노예에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지 말고, 출애굽 한 사람들처럼 살아야 한다. 정의를 실현하고,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며, 악을 견제하며 살아야 한다. 공동체가 함께 악의 실체를 파악하고 올바르게 다루도록 노력해 나가야 한다. 세상에 악이 정말로 존재함을 인정하고 그 악을 정복해 나가야 한다.
용서 없이는 미래도 없다.
신약성경 전체를 통해 예수님의 생애는 한결같이 악과의 대결이 일어난 곳이요, 예수님의 부활로 악은 이미 정복된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근거로 용서를 베풀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를 거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행한 악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으신다. 탕자의 형이 잔치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잔칫상은 차려질 것이다.
서로 용서하라는 것은 우리가 미래에 받기로 약속된 세계를 현재 삶에서 실현하라는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고 해도 저 자신을 용서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우리를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용서의 의미를 배우면 배울수록 심오한 신학적 진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며 고통 받는 세상 한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잔은 나의 피로 맺은 새로운 언약이며, 나의 피는 너희와 많은 사람의 죄 용서를 위해 흘린 것이니라.
저자가 성경을 구약과 신약을 연계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자면, 예수님이 40일 금식 후에 받은 시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받았던 시험과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받았던 시험을 재연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 톰 라이트가 신학자로 복음서를 ‘속죄 신학’으로만 보기보다는 어떻게 세상의 악이 최고조에 달했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데 유의하면서 다시 읽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 시대부터 예수님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장기적인 계획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되었고,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한 후 폭력적으로 죽임을 당했는가에 대한 기록으로 인식이 되어야만 악의 대한 우리의 태도가 분명해 지고 속죄 신학도 풍부해진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의 악에 대한 태도가 너무 미숙하다.
첫째로, 악이 우리를 정면으로 공격해 오지 않으면 악을 무시하려 한다. 서구 정치인들은 알 카에다가 요주의 세력이라는 것을 완벽할 정도로 알고도 아무도 그 문제를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려 하지 않다가 마침내 2001년 9.11뉴욕의 쌍둥이 빌딩의 테러를 당하게 되었다. 선로의 결함을 수 개월 전에 발견하고도 끔찍한 열차 사고가 날 때까지 방치해 두는 것과 같다.
둘째로, 악이 정면으로 등장하면 깜짝 놀란다는 점이다. 마치 죽음이라는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당하면 새삼 충격을 받고 당황하게 된다는 점이다.
셋째로, 결과적으로 우리는 미숙하고 위험한 방식으로 악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저 반사적으로 욕설을 퍼붓기 시작한다. 순진하게도 이제는 선한 사람들(미국인과 이스라엘)이 악한 사람들(특히 아랍 사람)을 응징할 권리가 생겼다고 선언한다.
악과 선을 가르는 경계선은 나를 통과해 지나간다.
어떤 무리는 선하고 어떤 무리는 악하다고 선과 악을 나누어서는 결코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선과 악을 나누는 경계선은 우리 각 사람 모두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우리 속에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드로는 반석이란 이름을 얻었지만 즉시 ‘사탄’이란 꾸지람을 들었고, 도마는 불평과 의심을 하였으며, 야고보와 요한은 하늘나라에서 좋은 자리 얻으려고 다른 제자들과 말다툼을 벌였다. 인간의 악이 다양한 형태를 지닌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악을 무시하는 것도 답이 될 수는 없다.
입법이나 철학적 논쟁을 통해 악을 제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을 물리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키지만 고성능 폭약 역시 악을 제거할 수 없다.
하나님의 정의는 구원하고,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정의는 단순히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한 일을 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격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비난하였다. 하나님의 나라의 거룩함과 악이 분리되어 있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은 악인이 구속과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또 구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는 구원하고, 치유하고, 회복하는 정의이다. 왜냐하면, 정의를 결정하시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아직도 창조의 본래 계획을 완성해 나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욥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창조주 시며 세상의 주님이시다.’라는 점을 분명하게 선언하는 신학적 확신을 주장한 글이다. 또한, 욥기 전체는 겟세마네의 고통스러운 장면을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악에 대하여 무엇을 하시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셨고, 무엇을 행하고 계시며, 무엇을 행하실 것인지를 설명해 주려고 쓰였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과 인류와 피조세계의 문제와 같은 엄청나게 큰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에서는 성경의 작은 부분만을 읽고 끝나고 있다는 점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요셉은 팔려간 곳에서 이전에 몰랐던 겸손과 하나님의 기이한 섭리를 배우게 되었다. 요셉의 형제들이 두려워 떨 때, 요셉은 “당신들이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라고 고백하다. 인간의 악의조차도 하나님께서는 기이한 목적을 이루시는 데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책임과 주체됨을 무너뜨리지 않으시면서, 악을 심판하고 징벌하시며, 악의 한계를 설정하시며, 새로운 은혜의 순간들과 새 창조를 이루게 하신다.
악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님이 죽음과 부활로 성취하신 것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인 세상에서 모든 악을 제거하고 정의롭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새 세계를 세우는 일의 모델이 되었다.
우리는 하늘나라를 상상하면서 살아야 한다. 물론 그 세계는 현재의 세계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고, 새로운 가능성과, 새로운 치유와 새로운 성장과, 새로운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계일 것이다. 그곳은 죽음이 없는 세계이다. 죽음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이 부패하고 소멸하는 것을 말한다. 죽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대한 모독이며, 사악한 사탄의 최후 무기이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죽음 자체도 정복될 것이다.
우리의 모든 현재의 삶은 미래의 삶을 미리 맛보며, 성령 안에서 탄식하면서 마지막 선물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치유와 질서를 지금 이 세상에 가져오기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과거의 노예에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지 말고, 출애굽 한 사람들처럼 살아야 한다. 정의를 실현하고,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며, 악을 견제하며 살아야 한다. 공동체가 함께 악의 실체를 파악하고 올바르게 다루도록 노력해 나가야 한다. 세상에 악이 정말로 존재함을 인정하고 그 악을 정복해 나가야 한다.
용서 없이는 미래도 없다.
신약성경 전체를 통해 예수님의 생애는 한결같이 악과의 대결이 일어난 곳이요, 예수님의 부활로 악은 이미 정복된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근거로 용서를 베풀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를 거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행한 악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으신다. 탕자의 형이 잔치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잔칫상은 차려질 것이다.
서로 용서하라는 것은 우리가 미래에 받기로 약속된 세계를 현재 삶에서 실현하라는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고 해도 저 자신을 용서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우리를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용서의 의미를 배우면 배울수록 심오한 신학적 진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며 고통 받는 세상 한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잔은 나의 피로 맺은 새로운 언약이며, 나의 피는 너희와 많은 사람의 죄 용서를 위해 흘린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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