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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훈련 어떻게 할 것인가?

  • 유해룡
  • 입력 2009.02.24 0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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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성훈련이란 영혼의 운동
  Ⅰ. 영성훈련의 의미
 
 기독교 영성이란 두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비움과 채움의 훈련(emptiness and fullness)이 역동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이 둘이 잘 조화를 이룰 때 영성형성이(Spiritual formation) 잘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 영성훈련의 그 초점은 시대를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치관을 각 개인에게 인격화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인격화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그 시대의 장애물을 극복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유인이 되며, 그 부르심에 자유롭게 순종할 수 있게 된다. 기독교 영성훈련의 그 대상과 목적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바뀌어질 수 없으나 그 방법에 관한한 시대와 장소와 생활패션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다.

  21세기에 있어서 영성훈련 방안
 
1) 개인주의화 되어 가는 현상을 잘 포착하라. 지금까지는 개인보다는 집단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이 우리 사회 특히 우리 교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따라서 전체주의적인 신앙교육(설교, 성경공부 등)이 개인의 영성형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쳐왔다. 그러나 그 역할이 감소되어 갈 것이다.
 
개인을 소중히 여기는 영성훈련이 선행되어야만 공동체가 살아날 것이다. 개인을 소중히 여기는 방식의 영성훈련은 목회자 중심의 목회 사역으로는 역부족이다. 적극적인 은사개발을 통하여 평신도의 역할을 신장시켜야 한다. 성장보다는 성숙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기능중심적인 교회형성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백화점적 교회보다는 편의점적 교회형성 가능성)
 
2)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자연회귀적이고 단순화의 삶을 희구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도시문화의 극대화 복잡하게 얽히고 좁혀진 구조화된 세계로부터 탈출을 염원한다. 비대화보다는 실용적이고 편의주의적인 생활패턴을 추구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 어느때보다 자신의 내면의 세계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가지며, 내면훈련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내면세계를 이해하며 내면 세계의 성장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지도해 줄 수 있는 '영성지도'를 개발해야 한다.
 
3) 개인훈련을 위한 공동체적인 삶을 개발해야 한다.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과의 개별적인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의 공동체도 중요하다. 미래사회는 점점 더 상대적 가치관에 익숙해져 가기 때문에 윤리적인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편의와 쾌락에 그 가치의 초점이 맞추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가 공동체적인 삶을 통한 섬김과 희생과 윤리적인 삶의 모델을 보여주어야 한다. 개인훈련과 공동체적인 훈련이 겸한 체제를 의미한다.
 
4) 다원주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 건전하면서 경험적인 영성을 개발해야 한다. 혼합주의적인 위험 때문에 교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가르침에만 매어 달리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건전한 교리를 무시하고 역동적이고 체험적인 신앙만을 강조하는 경향을 조심해야 한다. 만약 성서의 가르침이 분명하지 않은 체험적인 영성훈련을 강조한다면 혼합종교에 빠지기 쉽다. 그 훈련으로 성서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명상이나 관상기도의 회복이 필요하다.

  Ⅱ. 영성훈련과 기도
 
    1. 영성훈련의 지향점
 
  자유인이 되는 것. 하나님을 향한 열린 마음을 확보하여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마음을 조성하고 그의 뜻을 자유롭게 식별하여 적절하게 응답하는 삶을 형성하려 한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체험이 요구된다. 하나님의 체험에는 초월적인 것과 내재적인 것이 있다. 초월적인 경험이란 믿음에 의한 인지요, 수용적이다. 내재적인 체험이란 감성적인 체험이요, 임재의 체험이다.

    2. 영성훈련의 기본적인 틀
 
 가. 영적각성(Spritual awakening)
 
 조명의 단계 ⇒ 영성생활의 출발점이다.
 
오랜 잠으로부터 깨어나는 순간이다. 새로운 의미를 찾아서 눈이 열려지게 된다. 감각적인 가치로부터 보다 고상하고 영원하고 진리적인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비로소 신앙적인 회심이 시작된다. 눅19장에서의 삭개오의 물질관에 대한 변화, 마19장에서의 부자청년의 변화의 시도등이 바로 내적 각성을 보여준 예들이다. 각성의 길은 영혼의 문을 계속 열어놓고 기회를 찾는 것이다.
 
나. 영성훈련(Spiritual exercises)
 
정화의 단계 ⇒ 비움의 훈련에 해당한다. 육체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 적당한 운동을 통하여 불필요한 지방을 몸에 제거하여 몸의 기능을 원활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영성훈련이란 영혼의 운동이다.
 
우리의 영혼이 불적합한 집착에 매어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 적합하게 순종할 수 없다. 이 집착으로부터 벗어남으로부터 영혼의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유롭게 응답하도록 준비하는 것이 영성훈련이다. 지속적인 자아성찰과 금욕적인 수련을 덕성을 쌓아간다. (빌3:7-14)
 
다. 영성형성
 
완덕의 단계 ⇒ 채움의 훈련에 해당한다. 우리는 자신을 비운다 할지라도 채움이 없으면 언제든지 본래의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것이 인간이다. (마12:43-45)
그렇기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를 권고한다(엡4:13). 말씀에 대한 지속적인 묵상훈련을 통하여 완덕을 성취하게 된다.

    3. 하나님 경험과 자아성찰
 
가. 자아로부터의 하나님에로의 영적 여행
 
하나님의 만남은 자아의 만남과 일치한다. 성서는 우리의 존재의 바탕이 곧 하나님이라고 말한다(창 1:27). 역동적인 의미에서도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고 교제하시는 분이다(고전 3:16 ; 6:19). 자아에 대한 인식없이 결코 하나님 체험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영성가들은 자아로의 내적으로 내림운동은 하나님을 향한 상승운동과 같은 의미라고 믿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 과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자아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경험에 이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고백록> 5권 2장 2: "오 주님 내가 당신을 찾고 있을 때 나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당신은 내 앞에 바로 계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으로부터 떠나 있었으므로 나 자신을 찾을 수 없었으니 하물며 당신을 어떻게 찾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 <고백록> 6권 1장 "어릴 때부터 나의 희망"되신 하나님, 그 동안 당신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나는 어둠 속에서 미끄러운 길을 걸어 다니며 나 자신 밖에서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 마음의 하나님을 찾지 못했습니다. 내가 바다의 깊은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어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 <고백록> 10권 27장 38 "그렇게도 오래 되셨지만 동시에 그렇게도 새로운 "아름다움"이 되시는 당신을 나는 너무 늦게야 사랑하였습니다. 당신이 내 안에 계셨건만 나는 나밖에 나와서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당신이 나와 함께 계셨건만 나는 당신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 피조물들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이 나를 당신에게서 멀리 떠나게 한 것입니다."
 
  * 깰뱅의 <기독교 강요> 1권 1장 1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 이 두 지식은 여러 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먼저이며, 어느 쪽의 지식이 다른 쪽의 지식을 산출해 내는가를 알아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은, 우리를 일깨워서 하나님을 찾게 된다. 뿐만아니라, 마치 손으로 끄는 것처럼 우리를 인도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나. 자아성찰
 
우리의 내면세계는 언제나 흔들리고 혼란되어 있다. 잘못된 습관과 편견으로 인해서 마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늘 흔들리는 호수와 같기도 하고, 오염물질로 탁해진 호수와 같기도 하다. 흔들리도 탁해진 호수의 내면세계를 바라볼 수 없듯이, 일상적인 우리의 마음도 그와 같아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는 우리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침묵을 통해서 흔들리고 탁해진 마음을 가라앉힘으로서 내면세계를 성찰해 볼 수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 나와 사물과의 관계, 나와 너와의 관계,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현황을 직시할 수 있다. 침묵의 의미는 늘 소란스럽고 분주한 자아 내면을 훈련시키는 의미가 있고 침묵은 내면 세계 귀를 기울이려는 또 다른 조처이다. 또한 침묵은 하나님과의 만남(대화)를 위한 환경조성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침묵은 대화를 멈추는 것이 아니고, 대화의 상대를 바꾸려는 훈련이다.

  (1) 자아와 자아와의 관계 성찰
 
자아와 사회적 자아와의 관계성찰 우리는 가면을 쓴 僞自我와 하나님 앞에서의 眞自我 사이에서 번민하며 사는 존재이다. 사회적으로 주어진 지위나 역할등이 진자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위선자가 되고, 죄를 범하게 된다. 그 부분을 냉철하게 관찰하여 진자아와 조화를 이룬 사회적 자아(목사, 선생, 과장 등)을 실현해 가야 할 것이다. 내가 누구냐는 질문이 계속되어져 한다. 어거스틴의 [고백록] 을 참고하라.

  (2)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 성찰
 
이웃을 향한 인격적인 만남의 삶을 성찰하라. 나의 존재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정의되어진다. 우리의 삶의 여정 속에서 수단으로서의 너가 아니라 목적으로서 너와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성찰하라. 너는 나와 너로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나, 하나님과 너라는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를 참고하라.

  (3) 자아와 사물과의 관계 성찰
 
물질관에 대한 성찰이다. 물질을 소유개념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세속적인 것이요, 위탁의 개념을 생각한다면 물질 생활 자체 역시 거룩한 것이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물질자체보다는 물질을 움직이는 이의 섭리를 생각하도록 힘쓰라. 마태복음의 부자청년은 물질의 소유개념이 그의 영적인 삶을 실패케 하였다(마 19:16-22). 에릭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참고하라.

  (4) 자아와 하나님과의 관계 성찰
 
하나님에 대한 습관적인 이미지를 발견하라. 그것이 매우 편협적이고 불건전한 것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하나님과 관계상태를 보여주는 예이다. 자기의 관심도에 따라서 선호하는 이미지에 집착할 때 그 이미지 자체가 우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이미지를 진단함으로서 보다 건전하고, 풍요롭고, 다양성있는 이미지를 개발하도록 하라.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의 예 암탉 (마 23:37), 어미 (사 49: 15; 66: 10-13). 아빌라의 테레사의 [영혼의 성]을 참고하라. 

  

유해룡교수는 서강대, 장신대학원, 미국 포담대학에서 영성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장신대학원 영성학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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