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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신학의 방향과 전망

  • 이형기
  • 입력 2009.03.08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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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큐메니칼 관점에서....신학의 패러다임도 계속 이동
     
들어가는 말
 
오늘날 우리는 사회와 문화와 학문의 세분화를 거듭하고 있는 모더니즘의 유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파들의 세분화, 종합대학의 교과과정과 신학대학의 교과과정의 세분화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는 그와 같은 세분화와 다양성과 다원화 속에서, “통전성에 대한 갈망”(hunger for wholeness)을 느끼고 있다.
 
특히, 우리는 교회들의 다양성 속에서의 코이노니아와 통일성을 갈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학교의 교과과정에 있어서도 그와 같은 것을 갈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이 제시하려고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신학이야 말로 그와 같은 것을 담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필자는 세계 제1차 대전을 계기로 일어난 신학의 패러다임 이동을 주장한 다음에, 새로운 신학의 내용으로서, 1) 신학의 종말론적 오리엔테이션, 2) 복음, 삼위일체론, 하나님 나라,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 3)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학, 4) 내러티브 신학을 논한 다음에 새로운 제안으로서 샬롬의 생명공동체로서 하나님 나라를 제시하려고 하는 바, 이 하나님 나라야 말로 세분화와 다양성과 다원화를 인정하면서도 ‘통전성’ 혹은 생명의 공동체성을 약속하는 것으로 보려고 한다.
 
그렇기때문에 새로운 신학은 그것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샬롬의 생명공동체의 미리 맛봄과 징표와 도구인 교회와 세상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그것의 코이노니아와 통일성과 온전성(wholeness)을 찾아야 할 것이다. 
 
1.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에 있어서 패러다임 이동
 
토마스 쿤은 '과학적 혁명들의 구조'에 대한 “추이”(1969)에서 패러다임을 정의하기를, “특정 공동체들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신념들, 가치들, 기술들 등의 총체성”이라 하였다. 이처럼 자연과학에서 사용하는 “패러다임” 개념을 한스 큉은 “해석, 설명, 이해의 모델”로, 토랜스는 “인식의 틀”로, 반 후이스틴은 “전거의 틀”로, 그리고 히베르트(Hiebert)는 “신념체계”로 각각 이해하면서 이 개념을 인문사회과학과 신학에 적용하였다. 그런 즉, 이와 같은 인문사회과학과 신학에 적용된 “패러다임” 개념에 따라서 우리는 신학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패러다임 이동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신학과 교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패러다임 이동들이 있어 왔다. 한스 큉은 “초기 그리스도교적 묵시적 패러다임→교부들의 헬레니스틱 패러다임→중세 로마가톨릭 패러다임→종교개혁적 패러다임→개신교 정통주의 패러다임→모던 계몽주의 패러다임→현대 패러다임(변증법적 신학+실존적인 신학+해석학적인 신학+정치신학+해방신학+여성신학+흑인신학+제3세계 신학)”과 같은 신학의 패러다임 이동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한스 큉은 이와 같은 패러디임 이동들이 반듯이 단절만도 아니요 연속성만도 아니라고 본다. 그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우리는 신학과 교회의 역사의 변증법적인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항상 발생과 소멸, 지식과 인식에 있어서 진전, 하나의 망각,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상대화하는 부정, 하나의 보전하는 긍정, 그리고 지속적인 초월을 포함하고 있다. 
 
복음, 기독론, 삼위일체론, 교회론 등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의 역사를 볼 때, 신약성서, 고대교부들의 시대, 중세교회 시기, 종교개혁 시기, 개신교 정통주의 시기, 모더니즘 시기, 그리고 오늘날 20세기에 걸쳐서 그와 같은 주제들이 이해와 해석의 패러디임 이동을 보이면서도 큉이 언급한 대로 “하나의 변증법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연과학의 경우엔, 뉴톤의 세계관으로부터 아인슈타인의 세계관으로의 패러디임 이동이 분명하고 전자의 해석의 틀은 더 이상 과학계에서 타당성이 없으나, 신학과 교회의 역사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사도들의 복음이해와 루터와 칼빈으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의 복음이해와 칼 바르트의 복음이해는 패러다임 이동을 보이면서도, 복음의 기본적인 정체성이 항상 전승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 역시 고대(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시기와 중세 시기와 종교개혁 시기와 근대 시기와 20세기에 이르기 까지 패러다임 이동을 보이면서도, 기본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신앙이 계속해서 전승되고 있음이 발견된다.
 
기독론과 교회론도 그러하며, 종말론에 관하여는 “초기 묵시적 패러다임”과 “중세 로마가톨릭 패러다임” 사이에 패러다임 이동이 있고, 상당한 정도로 단절이 있어 보이지만, 중세기의 요아킴과 개혁파 프란시스칸 승단을 통하여 승계되고 있고, 오늘날엔 몰트만 등에 의하여 전승 발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모더니즘의 신학으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의 신학으로 패러다임 이동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 18-19세기 복음주의 각성운동의 신학과 복음전도의 신학, 18-19세기 계몽주의전통과 자유주의 전통을 배경으로 하는 서구 자유주의 신학이 서양교회사에서 발견되는 모더니즘 신학이다. 따라서 18-19세기 복음주의 부흥운동과 17세기 개혁전통주의를 잇는 미국의 복음주의 부흥운동의 신학과 17세기 개혁정통주의를 잇는 미국의 구프린스턴 신학 역시 모더니즘의 신학일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우리 한국의 개신교는 상당한 정도로 이상과 같은 모더니즘 신학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베스트와 케르너는 서양의 정신사 일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가 이미 1870년부터 사용(토인비)되었고, 결정적으로는 세계 제1차 대전 이후에 여러 분야에서 급격히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베스트와 케르너가 다분히 가치판단을 유보한 채, “포스트모더니즘”의 용어사용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데, 일단 세계 제1차 대전 이후부터 그것이 점점 더 많이 사용되어 왔다는 것을 인정한바, 우리는 모더니즘으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오는 시기를 확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그 결정적인 전환은 세계 제1차 대전(1914-1919)과 볼셰비키 혁명(1917)이다. 한스 큉은 세계 제1차 대전을 계기로 포스트모던 시대가 동터 올랐고, 그것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발전해 나갔다고 본다. 
  
이 시기를 우리 문화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세계 제1차 대전을 전환점으로 하여 그 이후 시기를 포스트모더니즘의 동터 오름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그것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사회-문화적 현상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지만, 그것의 뿌리는 훨씬 더 깊고, 수십 년의 준비기간을 지니고 있다.
 
한스 큉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에서는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1921)을 비롯한 개신교의 신정통주의 신학이 모더니즘에 대한 대응신학의 시작으로 본다. 데이비드 보쉬 역시 큉과 입장을 같이 한다. 보쉬는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자연과학자들이 이미 자연과학 영역 내에서 모더니즘을 극복하였고, 이어서 인문사회과학 쪽에서도 이와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움트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보쉬는 제1, 2차 세계대전(1914-1918, 1939-1945)이 옛 패러다임을 깨고 새 패러다임을 가져오기 시작한 시기로 본다. 그리고 신학에 있어서는 칼 바르트가 모더니즘의 소산인 자유주의신학에 대응하여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하였으며, 역사철학에 있어는 슈팽글러(Oswald Spengler)와 조로킨(Ptirim Sorokin)이 옛 패러다임의 몰락과 새 패러다임의 등장을 예고한 것으로 본다.
 
여기에 더하여 필자는 1920년을 계기로 세계교회의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사회참여(Life and Work) 및 선교(World Missionary Conference)에 나타난 신학 역시 패러다임 이동(paradigm shift)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세계 제1, 2차 대전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의 태동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등장시켰고, 그것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본격화되었으며, 1980년에 획기적으로 발전했고(베스트와 케르너), 1989-1990년 이래의 지구화(globalizaton)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힘차게 흐르고 있다. 시장경제의 세계화 혹은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그리고 정보화 사회의 세계화라고 하는 모더니즘의 유산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시대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해당한다. (계속)
 
 
이형기(Ph.D)교수는 서울대 종교학과, 장신대학원, 하버드 대학, 드류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현재는  장로회신학대학 명예교수이며 NCCK신앙과 직제위원회 위원장이기도하다. 예장통합교단의 21세기 신앙고백을 기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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