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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미국장로교의 연합과정

  • 이형기
  • 입력 2009.04.06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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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장로교단도 미장로교단의 일치와 연합 본 받아야
미장로교단의 연합과정
 
19세기 말 남북전쟁 이래로 4분 5열 된 미국의 장로교회는 1937년부터 연합을 위해서 애쓰기 시작하여 1950년대에 오면 보다 본격적인 연합을 추진한다. 북미에 있는 미국장로교(The Presbyterian Church in U.S.A)는 1958년 북미 연합장로교(The United Presbyterian Church of North America)와 합류하여 미국 연합장로교(The United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UPCUSA)가 되었다.
 
이와 같은 통합과정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미 1944년에서 1950년까지 북미 연합장로교가 개혁 장로교(The Reformed Church in America)와도 통합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북미의 미국장로교(PCUSA)와 남 장로교(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와의 일치협상에도 참여하였다. 남 장로교와 북미의 미국장로교와 북미의 연합장로교는 개혁 장로교 연합회(The Associate Reformed Presbyterian Church)와 각각 통합을 위한 협상을 벌였으나, 열매를 거둘 수가 없었다.
 
1954년에서 1955년까지 남 장로교의 노회들은 일치반대 투표를 했으나, 이미 지적한대로 북미의 장로교(PCUSA)와 북미의 연합장로교(UPC)는 통합을 위한 대화를 계속 추진하여, 1958년엔 미국연합장로교(UPCUSA)로 통합되었다. 1961년에 남 장로교는 개혁장로교(RCA)와의 통합협상을 다시 시작하여, 1969년엔 남 장로교의 노회들의 경우는 통합에 찬성하는 투표가 우세하였고, 개혁 장로교는 통합반대 투표를 했다.
 
그 후, 미국연합장로교와 남 장로교는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재통합을 추진하여, 1970년대 들어와서는 좀 더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1982년 양 교단의 정기총회에서 재통합 계획안을 놓고 각각 가결투표를 했다.
 
그리하여 미국의 장로교는 1983년 6월 10일 조지아 주 아틀란타 총회에서 122년간의 분열을 접고, 미국 연합장로교(UPCUSA)와 남 장로교(PCUS)가 “미국장로교”(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PCUSA)로 통합되었다.
 
이상에서 논한 미국장로교의 재통합 과정은 상당부분 정치적인 차원에서 이루진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로버트 H. 불롴은 그의 논고의 부제(副題)를 “정치적인 차원”이라고 제한하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미국 장로교의 재통합 과정에서 신학 외적인 요인들도 중요시해야 한다.
 
다원화 목회, 1960년대의 교회의 사회참여, 공동 예배모범 특위의 활동, 선교에 초점을 맞춘 교단의 구조조정 특위 활동, 교육 프로그램, 통합 노회들, 평화를 위한 프로그램,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협조, 1981년의 재통합 안 등은 미국장로교의 재통합을 실제로 가능케 했던 신학 외적인 요인들이다. 사실상 교회일치를 위한 신학 작업의 구체적인 표현인 “간결한 신앙 진술”(A Brief Statement of Faith")는 재통합이 이룩된(1983) 이후 1990년에 나왔다. 
 
신학적인 재통합과정: 특히 성경관:
 
대체로 미국의 북쪽에 있는 장로 교단들이 남 장로교단보다 신학적으로 진보적이었고, 개혁 장로교는 가장 보수적이었다. 이 글은 미국의 장로 교단들이 신학적인 보수 대 진보의 싸움으로 오랫동안 통합을 이룩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재통합의 신학적인 요인, 특히 성경관을 둘러싼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1729년 미국의 장로교 목사들이 목사 안수를 받거나, 노회에 가입할 경우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서명을 해야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이 신앙 고백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었고, 이 신앙고백의 신앙 항목들 가운데 본질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1700년대와 1800년대에 장로교 내의 신학 논쟁으로 장로교 신학의 정체성이 문제 된 후, 1892년엔 미국의 장로교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더욱 보수 지향적으로 해석하였고, 장로교 정치체제를 더욱 경직화시켰다. 바로 이때부터 성경관이 더욱 경직화되었고, 17세기 정통 개혁신학이 더욱 강조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1920년대 말과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장로교(북쪽의 그것이든, 남쪽의 그것이든지)는 칼 바르트 등 신정통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신학적인 보수 대 진보의 갈등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1926년과 1927년에 북쪽에 있는 미국장로교(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의 경우, 총회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본질적 신앙 항목들(essential articles)을 단언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권한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보고서를 채택하였다. 
 
북쪽은 위의 결의에 이어, 1948년 “기독교 신앙과 삶”(Christian Faith and Life) 등 주일학교 교과내용에 있어서 신정통주의 신학을 수용하였고, “1967년도 미국 연합장로교의 신앙고백”에 의하여 교단 신학의 방향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1920년대 말과 1930년대의 신학적인 기상 변화는 남 장로교에서도 일어났다.
 
1940년대의 “남쪽의 장로교인들”(The Presbyterians in the South)이라는 주간지, 1963년의 “해석”(Interpretation)이라고 하는 성경 신학 잡지, 1962년 신학적인 변화에 부응하여 남 장로교 총회가 내놓은 “간략한 신앙 진술”(A Brief Statement of Belief) 및 1976년 “신앙 고백 집”(The Book of Confessions)에 포함시킬 것을 제안하였으나 가결될 수 없었던 “신앙 선언”(A Declaration of Faith)은 북쪽 장로교에 상응하는 신학적인 기후의 변화를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북․남 미국 장로교의 신학적인 변화과정은 미국장로교 내에 신학적인 다원화의 과정을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1983년 재통합 이후 미국장로교 제200차 총회는 “그리스도는 나뉘었는가? 장로교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신학적인 다원주의를 위한 특별 연구 위원회의 보고서”에서 미국장로교 안에서의 신학적인 다원주의를 공식화한 셈이다. 또한 재조직된 미국장로교 안에 “신학과 예배 위원회”(Theology and Worship Ministry Unit)가 생겼는데, 이 기구 산하에 “다원주의” 분과가 있게 되었다.
 
위 보고서는 성경내용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제시함으로써 미국장로교 내에서의 신학의 통일성과 다양성도 아울러 암시하고 있다. 다음의 인용을 읽어보자.
 
장로교인들은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유일하고 권위 있는 증언’이요, 신앙과 행위에 대한 오류 없는 유일한 길잡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성경내용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이다. 성경은 증언들과 표지판들의 모음이기 때문이다.
 
   .... 성경의 여러 책들을 통일시키고, 이것들을 경전으로 묶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에서 절정에 달하는 하나님의 인류와의 이야기에 대한 일관성 있는 증언이다.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영감 시켰던 동일한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과 삶을 지배하시고, 선포된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관여하신다.
 
즉, 본 신앙 진술은 우리 믿는 자와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 하나님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절정에 도달하는 은혜의 언약을 논한 다음, 성령을 언급하는 맥락에서 “성경“과 ”설교된 말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관“이, 말씀을 통해서 성령 역사로 일어나는 칭의론 직후에 나타나고, 이 성경에 대한 언급에 이어서 세례와 성만찬, 그리고 교회의 사회참여로 나가고 있는 것은, 복음을 성령 역사로 수용하여 세례와 성만찬에 참여하면서, 사회참여에 동참하는 믿는 사람이라야 성경을 그의 신앙과 삶의 표준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이상과 같은 “간결한 신앙 진술”에 나타난 성경관은 성경 안에 있는 “여러 진리들”(a set of truths)이 아니라 신학 화 이전의 “하나님의 구원행위” 혹은 “복음”을 성경의 통일성으로 본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경의 중심 메시지에 의한 통일성과 성경의 여러 메시지들에 의한 다양성, 그리고 장로교단 내의 신학적인 통일성과 다양성을 찾아, 인정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간결한 신앙진술”과 "신앙고백집"(The Book of Confessions)의 관계: 위의 “간결한 신앙진술“은 {신앙고백 집}에 포함되었다. 여기에 포함된 이유는 본 ”간결한 신앙진술“을, 그 동안 미국장로교가 귀하게 여긴 9개의 개혁신학 전통의 신앙 고백들로부터 고립시키거나 절대화시킨 것이 아니라 개혁신앙의 고백 사(史) 속에 자리 매김 시키려 의도하였기 때문이다.
 
이 9개의 신앙 고배들을 열거하면, 니케아 신조와 사도신경과 같은 고대 에큐메니칼 신조, 스코트랜드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2 스위스 신앙고백,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 웨스트민스터 소 요리문답과 대 요리문답, 바르멘 신학성명, 그리고 1967년도 미국 연합장로교의 신앙고백이다.
 
놀라운 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과 바르멘 신학성명 혹은 1967년도 신앙고백이 상호 충돌하는 부분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신앙고백 집"에 실었다고 하는 점이다. 이는 오늘날 미국장로교가 성경과 신학의 다양성 차원에서 이 둘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복음을 성경과 신학의 통일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신앙 고백 집"은 "예배 모범 집"과 함께 미국장로교의 헌법의 내용을 구축하고 있다.
 
 
 
 
 
기사입력: 2009/02/12 [00:04]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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