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방교회와 동방정교회는 달라
목차
1. 시작하는 글
2. 정교회 용어 설명
3. 정교회 분포 지역
4. 정교회 역사
5. 정교회 선교 특징
(1)구원의 완성으로서의 선교
(2)국가-정치적 성격이 강한 선교
(3)시각적 아름다움을 활용하는 선교
(4)토착언어를 존중하는 선교
(5)교회전승을 강조하는 선교
(6)고난을 많이 경험한 선교
(7)협의회적 사귐을 강조하는 선교
6. 나가는 글
1. 시작하는 글
세계 그리스도교 세계의 삼대 지류는 로마카톨릭교회, 정교회, 종교개혁교회이다. 이 중에서 정교회는 한국기독교인들에게 거의 알져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미국선교사들의 영향과 북한공산주의와 대립 중인 한반도의 상황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1991년 구소련의 붕괴이후 러시아와 동유럽에 존재하는 정교회에 대한 한국교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본고에서는 먼저 정교회란 어떤 교회인지 개략적으로 소개하고, 정교회의 역사와 선교역사를 스케치 한 다음, 정교회의 선교 특징들을 로마카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선교와 비교하면서 기술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2. 정교회 용어 설명
‘정교회’라는 용어는 ‘정통(Orthodox)교회’의 약어이다. 정통과 비정통의 구분 기준은 325년부터 787년까지 7회에 걸쳐 열린 고대 에큐메니컬공의회의 결정사항을 오리지널 그대로 수용하고 지켜오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구분한다. 정교회의 시각에서 보자면, 로마카톨릭교회는 정통교회가 아니다. 장로교회도 정통교회가 아니다.
정교회는 동방정교회라고도 불리우고, 희랍정교회라고도 불리운다. 동방정교회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탈리아 로마를 중심으로 주로 동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방교회와 동방정교회는 다르다. 정통을 뜻하는 ‘정(正)’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칼세돈 공의회로부터 정죄를 받은 단성론자들(곱틱교회), 에베소 공의회로부터 정죄받은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는 동방교회라고 불리운다. 희랍정교회라고 부르는 이유는 미사, 교리, 예전의 언어가 희랍어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정교회의 부분집합으로 러시아정교회, 그리스정교회, 핀란드 정교회, 한국정교회, 등이 존재한다.
3. 정교회 분포 지역
정교회가 주로 분포하는 지역은 4군데이다. 첫째,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중동지역이다. 10세기 이전에 고대 총대주교구청들이 있던 지역들이다. 지금은 이슬람의 지배 밑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둘째, 러시아와 동유럽지역이다. 9세기에 슬라브족에게 선교가 시작됨으로 생겨난 정교회지역인데,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이 시작된 이래 70년 동안 고난을 당하다가 1991년 이후 다시 부활하고 있다. 셋째는 디아스포라 정교회지역이다. 1917년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나자 수많은 정교회 신자들이 이민을 갔다.
프랑스, 캐나다, 미국, 영국으로 이민을 가서 정교회를 세웠다. 지금 이들은 이중문화를 경험하면서 정교회를 비정교회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넷째, 신생정교회 지역이다. 1960년대 그리스에서 얀눌라스토스(Anastasios Yannoulatos)를 중심으로 정교회 청년 선교운동이 일어났는데, 많은 정교회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잠비아 우간다 탄자니아 등지로 나가서 선교하여 정교회를 세웠다.
19세기 말에 러시아정교회 선교사들이 한국, 일본 등지에 나와서 세운 정교회가 점차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통계 자료표에 따라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세계적으로 정교회의 신자 수는 3-4억 명으로 추정한다.
4. 정교회 역사
정교회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정교회 역사를 말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세갈래 흐름을 따라서 정리한다. 첫째는 비잔틴정교회의 역사(330-1452)이다. 이때는 정교회가 동로마제국이라고도 불리우는 비잔틴제국의 국가교회였다. 따라서 정교회의 선교는 자연스럽게 국가-정치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 선교는 주로 제국의 변방에 있는 소수민족들을 문명화시키는 수단이자, 제국의 영토와 문화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수단으로서 간주되었다. 그러나 1453년 오스만터키에 의하여 제국이 무너진 이후 터어키, 그리스, 불가리아, 모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은 이슬람의 지배를 받다가 1829년 그리스가 독립을 하여 발칸반도 지역을 중심으로 정교회 회복운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둘째는 러시아정교회의 역사(988-1917, 1991-)이다. 9세기에 끼릴과 메소디우스 형제에 의하여 슬라브족(모라비아, 불가리아)에게 정교회가 전파되었다. 988년 키예프공국의 왕 블라지미르가 국가정치의 수단으로 정교회를 채택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신봉하도록 명령함으로 정교회가 러시아국민들 사이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15세기에 비잔틴제국이 무너질 때, 러시아는 정치, 경제, 군사, 종교적으로 크게 부흥하였다. 조직적으로 대항할만한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던 광대한 땅 시베리아를 정복하여 제국의 영토를 확장함과 동시에 정교회의 영역을 확장하였다.
1860년도에는 청나라로부터 연해주를 얻었고, 1870년대에는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까지 지배하였다. 영토확장과 더불어 러시아정교회 선교사들도 신성종무원의 계획에 따라 변방지역에 파송되어 변방 소수민족들(알타이족, 축치족, 만네츠족, 에스키모인, 고려인, 알뤼트인, 인디언, 등)을 선교하였다. 그러나 1917년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그에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러시아정교회 선교는 모래성 같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후 70년 동안 수많은 고난을 당하면서 지하종교로서 생존한 정교회는 1991년 구소련이 무너지면서 다시 부활하고 있다.
셋째는 그리스정교회의 역사(1829-)이다. 그리스는 원래 비잔틴제국 안에 있었다. 그런데 1453년 오스만터키에 의하여 비잔틴제국이 멸망당하자, 그리스는 350여 년 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며 거세당한 남자처럼 겨우 생존하였다. 그러다가 19세기 초에 그리스 독립운동이 일어나면서 정교회 부활의 움직임이 되살아났고, 1829년 급기야 독립을 쟁취하면서 정교회가 그리스의 국교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20세기 중반에는 얀눌라스토스라고 하는 선교신학자를 중심으로 선교동원운동이 크게 일어나서 정교회를 아프리카에 전파하는 일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으며, 동시에 비정교회 세계에 정교회의 역사와 교리와 선교를 설명하는 일에 열심을 보이고 있다. 그리스정교회의 선교는 국가적으로 고난을 당한 가운데 이루어진 선교였기 때문에 비(非)국가-정치적 선교의 성격이 강하다.
5. 정교회 선교 특징
이렇게 약 1500년 동안 세 갈래의 교회역사와 선교역사의 흐름을 지닌 정교회의 선교를 종합하여 그 특징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 7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구원의 완성으로서의 선교 :
정교회의 선교사역의 동기와 목표는 신화론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론은 정교회 구원론을 대변하는 용어이다. 신화론(神化論-Deification), 즉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다. 벧후 1장 4절(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려하심이라)을 주요 근거로 삼는다. 정교회가 볼 때,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는 구원의 과정 중에 첫 단계에 불과하다. 믿음으로 용서받고 의롭다함을 받은 다음, 계속하여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위하여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살아야 하는데, 그 모델은 참 사람이자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정교회의 구원론은 개혁교회의 칭의론과 성화론이 합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구원론으로 인하여 정교회의 신자는 자기인격완성을 삶의 중요한 목표로 삼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기 위하여 수도원에 들어가는 신자들이 많았다. 정교회지역에서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조시마 장로(스타르쉬)와 같이 도시 외곽 한적에 곳에 나가서 수도원생활을 하며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자기완성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는 성인들의 전설들이 많은 이유도 알고 보면, 이러한 정교회의 구원론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가 선교로 이어진다.
초대교회에서 ‘선교사’ 하면, 여러 도시와 마을을 찾아가는 바울과 그의 제자들의 모습을 연상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다른 형태의 선교사가 등장하였다. 수도사들의 모습이었다. 이들은 동방교회와 동방정교회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이들은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군데 머물면서 그리스도를 위한 제자들을 끌어 모으는 형태였다. 수도사들은 산 위의 등경과 같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하였다.
등경 밑으로 모인 사람들은 수도사들의 메시지를 듣고 변화되었다. 이것을 수동적인 선교(passive missions)라고 부른다. 사로프의 세라핌이 이런 말을 하였다. “내적인 평화를 먼저 얻으라. 그리하면 너의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실 이렇게 수동적인 방식의 선교(사람들에게 다가가기 보다는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감으로 거룩함을 얻으려는 결사적인 노력의 모습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방식)는 4세기 수도원의 일반적인 모습이었고, 정교회 선교역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수정적인 선교(passive missions)란 사람들이 한 곳에 머물면서 기도생 활과 단순하고 거룩한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일과 하나님과 깊은 영적 인 교제를 가짐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거룩한 삶, 그 리스도에게 집중하는 삶, 성령 충만한 삶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뿐만 아니라, 수도사들의 거룩한 삶을 지켜본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 며, 거룩한 삶을 만들어 내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신뢰하게 만든다. 이러한 선교 철학과 선교실천은 정교회 세계에서 보편적인 일이다.(Veronis 1983:54)
수도사들의 자기구원 완성의 실천으로서 선교사역은 19세기 러시아에서 강력하게 일어난 헤즈키즘(Hesychasm, 정교회 경건주의 운동) 가운데 잘 나타났다. 러시아에서 헤즈키즘운동은 아토스산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러시아 장로(Старщий) 페이시 벨리쵸프스키(Феись Величовский, 1722-1794 )가 헤즈키즘의 신앙적 실천 지혜를 담고 있는 <필로칼리아>라고 하는 책을 러시아어로 번역 소개하면서 시작되었다.
페이씨는 루마니아 님네츠(Nimnets) 수도원의 수도원장이 되어, 그곳을 500명 이상의 형제들이 모이는 영적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의 제자들이 여러 곳을 다니며 헤즈키즘 운동을 러시아에 확산시켰다. 1822년 모스크바에서 이 책이 재판되었다. 이제 평신도들도 사이에서 “예수기도”를 따라서 마음의 기도를 실천하는 운동이 생겼다. 결과 l8l0년에 러시아에서 수도원이 452개였던 것이, 19l4년에는 1,025개가 되었다.
이 수도원 운동으로 수많은 영적인 스승들(Старщ)이 생겨났다. 이들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러시아정교회 신자들은 개인의 기도생활과 신화(deification)를 통한 자기구원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밖을 주시하고 세상에 봉사하는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것이 평신도들 사이에서 선교부흥을 일으켰다. 신앙의 가르침이 내면화되면, 그 다음 자연히 외면화되며 확장한다는 원리가 작용한 것이다.
19세기에 헤즈키즘의 강한 영향으로 알래스카의 선교사 헤르만(1756-1837)과 중앙아시아 알타이 지역의 사도 마카리우스 글루하레프(1792-1847)가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다. 이들의 선교사역은 사도바울의 사도적 선교사역과 9세기 끼릴과 메쏘디우스의 비잔틴 선교사역을 계승하는 사역이었다. 동시에, 알래스카, 캄차카 주교직을 역임하다가 1870년 러시아정교회 선교회 초대의장이 된 대주교(Metropolit) 인노켄티 베니아미노프(Иннокентий Вениаминов, 1797-1878)를 통하여 19세기 러시아정교회 선교운동은 조직적으로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러시아 선교역사에 있어서 헤즈키즘 운동을 따르는 경건한 수도사들 덕분에 러시아제국의 오지에 선교사들이 들어가서 사도적 소명감에 따른 발자취들을 남길 수 있었다.
헤즈키스트들의 행동은 '하나님을 닮아감'(Deification)으로 이해되는 정교회의 구원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어떻게 하든지 자기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금욕을 통한 자기 비움과 겸손과 순종을 실천하기 위하여 가능한 제국의 변방 오지에 가서 고난과 외로움을 인내하며 그리스도의 말씀과 교회의 지시에 순종하는 것을 생의 행복으로 여겼다. 19세기 러시아정교회 선교 역사상 위대한 발자취들은 대부분 헤즈키스트들의 선교사역이다.
(2). 국가-정치적 성격이 강한 선교:
비잔틴정교회와 러시아정교회의 선교는 황제의 정치성향과 국가-정치적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 개혁교회의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당시 정교회 신자들은 국가와 교회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협력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콘스탄틴 이후 기독교 제국의 황제는 교회의 수장이며 보호자였다. 따라서 교회의 주요한 일에 황제가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고, 행정적으로 도와주는 일은 황제의 의무라고 여겨졌으며, 황제를 위하여 기도하고, 제국의 평안과 확장을 위하여 협력하는 일은 교회의 의무라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세계관과 사고방식이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역사적인 경험들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선교하는 일에도 황제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원과 간섭을 하였다.
정교회 선교의 원형(Archy Type)은 끼릴과 메쏘디우스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9세기 중엽에 모라비아, 불가리아 지역에 살던 슬라브족을 선교하였는데, 그들의 선교는 당시 비잔틴제국의 황제 미하일 3세의 요청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황제는 제국 변방에 있는 이교도 민족들을 기독교화 함으로 비잔틴제국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제국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발판으로 선교를 생각하였다. 황제는 가장 신임할 수 있고 탁월한 신앙적 인격과 실력을 갖춘 끼릴과 메쏘디우스에게 부탁하여 슬라브족을 선교하게 하였다.
정교회의 선교에 황제가 깊이 개입하고 지원하는 전통은 러시아정교회에 이어졌다. 15세기 러시아는 동진을 시작하여 19세기에는 극동지역 뿐만 아니라 알래스카까지 정복하게 되는데, 영토의 확장과 더불어 이민족들이 러시아국민으로 합병되었다. 이로 인하여 러시아제국의 국가적인 정체성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중앙정부는 소수변방민족들의 러시아화(Russianization)를 위하여 정교회선교사들을 적극 활용하였다. 이때 1860년부터 1925년까지 연해주 우수리스크, 블라디보스톡 등지에 살던 한국인들이 러시아정교회의 선교를 받아 세례를 받고 러시아국민으로 입적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였다.
정교회의 국가-정치적인 선교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국가-정치적인 선교로 인하여 중동과 중앙아시아로부터 올라오는 모슬렘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광대한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의 원주민들을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기독교화해 나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단점도 있었다. 복음의 순수성을 왜곡하였고, 황제의 변덕과 욕심에 선교가 희생물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선교사들의 자발성이 떨어지고, 짧은 기간에 수적인 공로를 세우기 위하여 경쟁하다 보니 명목상 기독교인들이 대량 양산되는 경우도 있었다.
선교의 주요 대행자(The major agent of missions) 측면에서 세교파를 비교해보면, 정교회의 선교는 국가 황제가 선교 대행자 역할을 맡은 경우가 많았고, 개신교는 선교회(Missionary Society)가 선교사역의 책임적 기관으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반해 로마카톨릭교회는 주교가 선교의 주된 책임자 역할을 맡아왔다.
카톨릭신학대학교 선교학 교수인 김웅태 신부에 의하면, 로마카톨릭교회에서 선교란 교회의 선교이며, 교회에 의한 선교이며, 교회를 위한 선교라고 정의한다. 교회가 선교의 알파와 오메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로마카톨릭교회의 선교 개념은 국왕이 선교에 깊이 개입하는 동방정교회의 전통이나, 선교회가 선교를 주도해온 개신교의 전통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문제는 로마카톨릭교회의 교회론이다. 로마카톨릭교회의 교회론은 7성례전을 중심으로 한 성령론과 베드로수위성에 의하여 특징 지워진다. 로마카톨릭교회는 “교회란 베드로가 있는 그곳에 교회가 있다”라고 정의한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고 성례전이 적법하게 시행되는 그곳에 교회가 있다”고 교회를 정의한다. 로마카톨릭교회가 말하는 “베드로가 있는 그 곳”이란, 수제자 베드로의 계승자라고 하는 로마교황과 로마교황의 위임을 받은 주교들, 그리고 주교들의 위임을 받은 사제들이 사역하는 곳을 의미한다. 사제가 사역하지 않는 곳을 기도처, 혹은 공소라고 한다.
그러면 교회의, 교회를 위한, 교회에 의한 교회의 선교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교회의(Of the Church)..."라는 표현은 소속 개념, 주인 개념이다. 마태복음 22장 21절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했듯이, 선교는 세상의 것이 아닌, 교회의 것이라는 개념이다. 사실, 교회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며, 깨우칠 수 있겠는가?
국가나 회사는 이런 사명감, 책임감을 가지지 않는다. 오직 교회가 선교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본래적으로 가지고 추진한다. 선교는 교회의 것이며, 교회가 추진하며, 교회가 책임을 진다. 둘째, 교회를 위한 선교란 교회의 확장, 교회생활의 확장을 위한 활동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선교는 교회를 위한 것(For the Church)이라고 표현한다. 교회를 위한 선교활동에는 다음 네 가지가 포함된다. ①복음을 설교하는 일, ②교리 교육제도를 정착시키는 일, ③지교회가 성장발전하여 토착민 주교를 세우는 일, ④교황을 중심으로 한 교회일치를 강화하는 일이다.
셋째, 교회에 의한 선교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교회공동체 전체에 의한 선교라는 의미이고, 나머지는 주교에 의하여 관리되는 선교를 의미한다. 먼저 교회공동체에 의한 선교란, 특별한 선교사나 성직자만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구성원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선교를 의미한다. 교회공동체에 의한 선교는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 즉, 전례적 영역(교구 관리와 교구 확장). 사도적 영역(다른 카톨릭 조직들과 연합 활동), 세속적 영역(전문적, 사회적, 문화적 조직체 속에서 활동)이다.
그리고 주교(Bishop)에 의하여 관리되는 선교란, 주교의 책임과 지원과 후원 그리고 관리 하에서 이루어지는 선교를 말한다. 로마카톨릭교회 안에서 주교는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들이다. 주교는 교회와 교회적 삶의 확장을 위한 사명과 책임을 지닌 성직자이다. 그리고 주교들의 대표자는 로마교황이다. 그러므로 로마교황은 로마카톨릭교회의 모든 선교 사업에 있어서 중심적 역할을 한다. 그는 선교를 통해 선포하는 진리의 으뜸가는 수호자이며, 선교를 통해 제공하는 7성례를 위한 관할권의 증여자이며, 선교를 통해 설립하려고 노력하는 교계 제도의 최상의 머리이시다. 그는 또한 교회의 선교적 영성을 위해 궁극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는 분이시기도 하다.
로마카톨릭교회의 선교 개념 정의가 이러하기 때문에, 로마카톨릭교회의 선교 개념과 강조점은 교황에 따라서 변화해 왔다. 최근 로마카톨릭교회의 선교의 기본 방향과 지침과 주요 관심영역은 1965년 교황청에서 발표한 'Ad Gentes'(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령, 교회의 선교활동)라는 문서와 1975년에 교황청이 발표한 'Evangelii Nuntiandi'(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선교)라는 문서에 체계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3). 시각적 아름다움을 활용하는 선교 :
개혁교회는 주로 말씀을 통하여 선교하려고 한다. 그러나 정교회는 교회당 건축물의 아름다움, 예전의 아름다움, 이콘을 가지고 선교한다. 시각적인 방편들을 선교에 많이 활용하는 것이다.
정교회는 교회당을 궁전처럼 돔(Dome) 양식으로 짓는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주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잔틴황제의 궁전처럼 교회당을 궁전처럼 짓는 것이다. 비잔틴교회당의 백미는 6세기에 건축된 소피아대성당이다. 지금도 이스탄불에 남아있는 소피아대성당은 1400여 년 전에 건축된 예배당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기가 맥힌 훌륭한 건축물이다. 러시아의 블라지미르 왕이 정교회를 국가종교로 채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정교회의 웅장함, 아름다움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교회 선교는 하나님을 아름다우신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되며, 하나님의 집을 아름답게 건축하고, 예배를 아름답게 웅장하게 드림으로서 이교도들에게 하나님을 전파하는 방법을 사용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러시아정교회 선교사 스테판을 언급할 수 있다. 페름의 스테판(Stephen of Perm, 1340-1396)은 러시아가 몽골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우랄산맥에 위치한 페름지역에 들어가서 죽을 때까지 주리안 민족을 대상으로 18년간 선교했다. 그는 주리안 민족으로부터 목자, 보호자, 성인, 사도라고 불리운다. 그가 주리안인들을 개종시키는데 사용된 대부분의 선교방식과 능력은 예전과 교회당 건축으로부터 나왔다.
스테판은 우스트-빔(Ust-Vim)이라고 하는 주리안족의 핵심 도시에 첫 번째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그 당시로서는 최신식 건물이었는데 이것이 주리안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스테판은 교회당을 아름다운 이콘과 장식물로 꾸몄다. 이런 시각적인 효과가 정교회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역사적으로 러시아가 정교회를 받아들일 때, 앞에서 언급했듯이 블라지미르 왕이 비잔틴정교회의 예전과 교회당의 아름다움에 매력을 느껴 선택했다. 스테판이 태어나기 약 350년 전에 러시아제국의 전신이었던 키예프 공국의 블라지미르 왕이 자신의 제국과 백성들을 위하여 종교를 선택하는 일을 앞에 두고 많은 고민을 하였다. 여러 나라 종교들을 관찰하고 돌아온 특사들이 유대교, 로마카톨릭교, 모슬렘에 대하여 보고하였지만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런데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소피아 대성당에서 정교회 예배의식을 보고 돌아온 특사들이 이렇게 보고하는 것을 듣고서 크게 감동을 받았다.
“우리는 (소피아 대성당의 예배의식에 참여하고 있을 때) 천상에 있는 것인지 지상 에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였습니다. 그 어떤 곳에서도 그렇게 장엄하고 아름다운 건물과 예전은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본 것을 왕에게 자세히 묘사할 수 없어서 유감입니다. 단지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이 그곳 사람들 가운 데 함께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들의 예배는 그 어떤 종교 예식을 능가 하는 예배였습니다.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지식을 갖고 있던 스테판은 주리안 민족 가운데서 그러한 영광을 작은 규모나마 모방하기를 원했다. 사실 세례 받지 않은 수많은 주리안인들이 이 새 예배당을 보기 위하여 구경을 왔고, 예배당에 관하여 질문을 하였다. 선교사 스테판은 아직 이 사람들이 기도하기 위하여 예배당에 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예쁜 신부를 구경하는 마음으로 교회당에 온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구경을 한 원주민들은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은 위대하시다”는 고백을 하면서 떠났다. 아름답게 건축된 예배당을 구경하기 위하여 다가온 원주민들에게 스테판은 복음을 전할 기회를 더 많이 가지게 되었고,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었다.
정교회 선교역사에서 스테판과 같이 아름다운 성전건축과 천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내부 장식과 장엄한 예전을 통하여 하나님을 전하는 선교방법론은 정교회 선교의 주요 방법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4). 토착언어를 존중하는 선교 :
정교회의 선교 특징 중에 중요한 부분은 선교 초기부터 선교현지언어를 존중하고 배우고 예배드리는데 사용해왔다는 사실이다. 복음은 현지어로 선포되어야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데에도 현지어가 사용되어야 한다고 정교회 선교사들은 생각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오순절 사건에 대한 정교회의 독특한 견해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님이 인류심판으로서 바벨탑에서 인류의 언어를 혼잡케 하신 것처럼, 오순절에 방언의 기적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표시라는 것이다. 혼잡하게 되고 흩어진 여러 민족들을 구속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뜻이 오순절 방언사건으로 나타난 것으로 본다. 오순절 사건으로 각 민족의 방언들이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각 민족의 방언도 하나님을 찬미하고, 축복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정교회는 믿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성서해석에서 선교현지어 적극수용정책이 나온 것이다.
이러한 신학에 기초하여 정교회 선교의 모델로 간주되는 끼릴과 메쏘디우스는 9세기 중엽 슬라브족이 사는 선교지로 떠나기 전에, 끼릴이 슬라브어 문자를 고안하여 성경을 슬라브어로 번역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이것은 슬라브 민족의 정신문화사에 커다란 선물이었다. 덕분에 오늘날까지 슬라브 문자 알파벳을 끼릴 문자라고 부른다. 그들이 모라비아에 도착하여 현지인들의 언어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선교모습은 정교회 선교정책의 기본 특징을 이루는 것이 된다. 선교현지 언어에 대한 정교회의 이러한 이해와 실천은 개신교의 선교와 로마카톨릭의 선교보다 훨씬 앞선 것이었다. 토착언어에 대한 이러한 이해와 실천은 자연히 현지인 성직자를 세우는 정책으로 발전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선교현지교회의 토착화와 자립성으로 발전하였다. 정교회선교사들이 선교현지에서 토착화와 자립화를 위하여 노력을 기울일 때, 모(母)교회로부터 오해도 많았다. 또 성공적으로 선교지 교회가 자립, 자치의 수준을 갖추었다 해도 선교지의 젊은 교회(Young Churches)와 모교회(Mother Churches) 사이에 갈등이 계속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모교회와 신생교회가 협의회적 사귐을 통하여 다양성과 일치성을 균형있게 발전시켜 나왔다. 현재 정교회는 전세계에 9개의 총대주교구와 8개 자치교구로 조직화 되어있다.
(5). 교회전승을 강조하는 선교:
정교회가 말하는 선교란 정교회가 정통으로 여기는 전승을 전하는 것이다. 즉, "역사적이며 나누어지지 않은 거룩한 가톨릭/보편적 정교회의 순전하고도 거룩한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며, 성경과 거룩한 전승에 기초한 기독교 신앙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7개 고대 에큐메니컬 공의회의 결정이 무오 함을 확증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공동체의 7개 성례전의 신비들을 실천하는 것이며, 정교회의 풍요로운 영성과 헤즈키즘의 경험과 정교회 신학과 신비와 치유와 신성화(神聖化)를 전하는 것이다."
정교회의 ‘선교’ 정의를 자세히 살펴보면, “역사적이며 나누어지지 않은 거룩한 전승,” “7개 고대 에큐메니컬 공의회,” 그리고 “교회의 풍요로운 영성과 헤즈키즘의 경험,” 등과 같은 용어들이 말해주듯이, 복음의 능력과 복음의 탁월성 보다는 정교회 전승의 우수성과 탁월성에 대한 확신이 정교회 선교 활동에 근간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전승 속에는 이콘숭배(Iconophile) 결정을 담고 있는 제7차 고대 에큐메니컬 공의회를 비롯한 7개의 고대 에큐메니컬 공의회 결정문의 무오함에 대한 확신과 동방정교회의 독특한 경건을 담지하고 있는 헤즈키즘(Hesychasm)이 포함되어 있다.
로마카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 그리고 개신교의 선교를 비교해서 관찰해 보면, 표면적으로는 모두 선교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선교의 내용면에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카톨릭교회는 성경도 가르치지만 교회전승을 사실 더 중요하게 가르치며, 선교현지인들에게 로마교황에 충성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반드시 포함된다.
그래서 로마카톨릭선교사들이 선교현지에서도 오래동안 라틴어로 미사를 드려왔으며, 현지어로 기독교문서를 번역을 하더라도 번역하는 순서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성경보다는 미사경본과 전례서 그리고 교리문답서를 먼저 번역하여 가르친다. 여기에 선교내용적인 측면에서 로마카톨릭교회의 가치관이 나타나고 있다. 동방정교회는 앞에서 언급한대로 현지언어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배워서 현지 언어로 선교를 하였지만, 성경보다는 고대 에큐메니컬 공의회 7개 결정사항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데 선교의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정교회도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만, 교회생활과 선교사역의 실제에서는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보다는 정교회의 전승과 교리를 가르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한다. 종교개혁의 전통을 따르는 교회들은 선교할 때, 성경을 현지언어로 번역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근대개신교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윌리엄 캐리의 선교사역과 한국 장로교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언더우드의 선교사역이 이러한 사실을 잘 대변해준다. 하지만 개신교 선교는 내부적으로 교파와 선교단체에 따른 다양한 성경해석과 비조직성과 비연계성으로 인하여 세계선교의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6). 고난을 많이 경험한 선교 :
정교회는 서방교회와는 달리 역사적으로 신앙적인 고난을 많이 경험하였다. 7세기에 발흥한 모슬렘의 확장과 공격으로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나중에는 콘스탄티노플까지 장기간 고난을 당하였다. 모슬렘의 정교회 핍박은 제도적으로 경제적으로 장기간에 걸친 핍박이었다. 이로 인하여 정교회의 선교는 마치 거세당한 남자같이 되었다.
13세기에는 로마카톨릭교회가 주도한 십자군전쟁으로 인하여 정교회가 약 200년 동안 큰 고난을 당하였다. 오직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는 교회만을 고집하고 인정하려는 서구기독교인들의 교만과 무지와 폭력으로 인하여 정교회신자들은 로마카톨릭교회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동서방교회가 화해하고 일치를 이루는데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러시아는 19세기에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전쟁을 치루면서 로마카톨릭에 대한 반감이 더욱 강해졌고, 20세기 초에는 독일과 전쟁을 치루면서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 강해지면서 러시아인들은 정교회를 정신적 근간으로 한 러시아민족주의운동을 강화해 나갔다. 이러한 현상은 러시아 민족사적인 면에서는 이해가 되지만, 복음선교의 보편성의 관점에서 볼 때, 정교회 선교의 세계 지평선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즉 러시아정교회의 선교는 러시아 영토 안에서는 힘을 가지지만, 영토의 경계선 밖에 있는 다른 민족과 다른 나라로 확산되어 나가는 일에는 방해물이 되었다. 그리고 1917년에 일어난 볼세비키 공산주의 혁명 이후 러시아와 동유럽에 존재하던 정교회는 군사적이고 공격적인 무신론자들에 의하여 대대적인 핍박을 받다가 1991년 이후 자유를 얻어 다시 부활하고 있다.
남다른 역사적 전통과 고난 속에서 생존해 온 정교회는 서방교회와는 다른 성격과 분위기를 지니게 되었다. 고난을 많이 당한 유기체는 일반적으로 자기방어적 본능이 강하게 작용하며 보수적이며 대화와 협력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정교회의 고난과 아픔에 공감하며 이해하려는 자세를 먼저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1991년 이후 다시 소생하려는 정교회를 격려하고 지원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간을 가진 이후 정교회의 은사를 찾아내어 개발하도록 도와주고, 서로 대화하며 협력하여 세계복음화에 좋은 동반자로서 설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7). 협의회적 사귐을 강조하는 선교:
정교회는 1054년 대분열을 경험하기 이전까지 5개 총대주교들의 협의회적 사귐(concilliar fellowship)을 통한 교회와 교리와 선교정책의 일치를 이룬 역사를 성경과 같이 소중히 여긴다. 1054년 로마총대주교구가 분리독립을 선언한 이후에도 정교회는 나머지 4개의 총대주교가 계속하여 협회의적 사귐을 가져왔고, 교회와 교리와 선교정책의 일치를 추구하며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
정교회의 협의회적 사귐의 실천 밑에는 삼위일체 신학이 있다. 즉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삼위이면서 사랑의 순환 안에서 하나를 이루듯이, 이 땅의 교회들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의 양식을 본받아 일치를 이루어 나가야 하는데, 그것이 곧 협의회적 사귐이라고 정교회는 말한다.
로마카톨릭 교회는 교황을 꼭지점으로 교회와 직제의 단일성을 고집해 왔다. 그러나 동방 정교회는 처음부터 각 교회들의 협의회적 사귐을 통하여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교회의 사명과 과제를 성취해 나온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으로 인하여 동방정교회는 누구 보다도 삼위일체론적 관점에서 현대 세계교회일치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 중에 뚜렷한 공헌 3가지를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1919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미국 윌슨 대통령이 국제연맹을 구성하자는 제안을 언급하며, 그에 맞먹는 국제적인 교회연맹(League of Churches)을 구성하자고 세계 여러 교회에 제안하였다. 파시스트들이 국제적으로 연맹을 만들어 전쟁을 일으키고, 그에 대응하기 위하여 세속 국가들이 국제적인 연맹을 만들어 연합과 협력을 도모하는 상황을 보면서, 세계 기독교회가 기독교적인 사랑을 가지고 더 열심히 주도적으로 연합하며 협력하는 일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는데, 이것이 이후 WCC를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두 번째는 WCC 헌장을 기독론적 고백에서 삼위일체론적으로 바꾸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1948년 암스테르담 WCC의 교리헌장의 첫 문장은 “세계교회협의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공동체이다” 라고 되어 있었는데, 1961년 뉴델리 WCC는 동방정교회의 제안(삼위일체 하나님)과 성공회의 제안(성서의 가르침을 따라서)을 받아들여 다음과 같이 보완하였다. 즉, “세계교회협의회는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고백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한 분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함께 부름받은 사명을 공동으로 완수하려는 교회들의 공동체이다”라고 바꾸었다.
세 번째는 협의회적 사귐의 전통을 세계교회 일치의 모델로서 제시하고 있으며, WCC에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예로 스페인 살라망카(Salamanca)에서 모인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서는 ‘세계 교회의 하나됨의 개념과 하나됨의 모델’에 관하여 신중하게 토론한 결과, ‘협의회적 교제’를 가시화 시켜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 “협의회적 교제”의 신학적인 뿌리는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 속에서 발견되며, 역사적인 뿌리는 정교회의 전통(325-787년) 가운데서 발견되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 이러한 동방정교회의 “협의회적 친교와 사귐”의 전통과 경험을 현대 에큐메니칼적 시각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세례와 성찬식을 협의회적 사귐의 기초로 삼으며, 일치의 모델로서 협의회적 사귐을 제시하는 동시에 세계교회일치 운동의 방향이 에큐메니칼적 사귐에서 협의회적 사귐으로(from Ecumenical Fellowship to Conciliar Fellowship)되어야 한다는 정교회의 주장이 더욱 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하나님의 삼위일체성 그리고 세례식과 성찬식을 협의회적 사귐의 기초로 삼고, 지역교회들과 다른 교파 교회들과의 사귐을 통하여 형성해 나가야 할 목표로서 협의회적 사귐을 제시해 온 동방정교회의 제안은 신앙, 삶, 그리고 증거적 차원에서의 코이노니아를 통한 교회일치를 추구하는 WCC 회원교회들과 우리 개혁교회의 일치운동을 위하여서도 계속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6. 나가는 글:
기독교 세계의 3대 지류를 형성하고 있는 로마카톨릭교회와 정교회와 종교개혁교회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배한다. 하지만 예배 분위기를 가지고 말하자면, 강조점이 차이가 발견된다.
로마카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예배 가운데 예수의 수난을 재현하는데 탁월성을 보여준다. 로마카톨릭의 십자가에는 아직도 고난당하는 예수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있으며, 예배를 미사(Mass)라고 표현하는데, 그 의미는 희생(Sacrifice)이며, 성당 중앙에는 예수의 대속적 희생을 재현하는 제단(Altar)이 있다.
동방정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탁월한 이해와 묘사를 가지고 있다. 정교회 성당의 외형적 모습과 내부 장식은 죽음 너머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세계를 재현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정교회 성당은 천상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로마카톨릭의 전통을 지닌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의 문학작품은 인간의 비극과 실존적인 고난을 묘사하는데 탁월성을 보여준 반면에, 정교회세계에서 나온 문학작품들은 부활의 세계를 묘사하는 탁월성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부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가진 정교회의 문화적 토양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교회지역이 어느 기독교지역보다 고난을 많이 당하면서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와 같이 예수의 부활에 대한 깊은 신앙과 예배와 뿌리깊은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종교개혁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교훈에 대하여 깊은 관심과 탁월한 해석과 실천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종교개혁 교회당 중앙에는 설교단(Pulpit)이 위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칼빈과 루터와 쯔빙글리의 후예들 가운데서는 성경책을 깊이 연구하여 탁월한 주석서를 출판한 이들이 많으며, 예배 시간에 성경을 기초로 한 해석과 교육의 시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종교개혁의 물결이 퍼져나가는 곳에 탁월한 성경 주석가들이 생겨나고, 교회와 더불어 학교가 많이 세워지고 근대교육과 과학이 크게 발전하게 된 이유도 짐작컨대 예수의 교훈과 가르침에 강조점을 두는 종교개혁 전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경배하지만, 교파에 따라서 교리적인 강조점이 다르고, 같은 예수의 복음을 전하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고, 선교를 수행함에 있어서 책임적인 기관(agent of missions)이 다른 로마카톨릭교회(주교)와 동방정교회(황제)와 개신교회(선교회), 이러한 세 갈래의 전통은 지구화 시대 통전적인 선교를 위하여 요긴한 요소들이다. 세 교파의 차이점을 강조하기 보다는 공통점을 먼저 확인하고, 세 교파의 전통과 장점들을 효과적으로 통합하면 복음을 보다 통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지구화시대의 선교적 도전들(지구환경 보존, 이슬람의 공격, 무신론적 세속주의 가치관의 확산 방지, 생명운동, 등)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응답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주요 참고서적:
Stamoolis, James J. 1986
Eastern Orthodox Mission Theology Today. Maryknoll, NY: Orbis.
Veronis, Alexander 1983
"Orthodox Concepts of Evangelism and Mission."
Greek Orthodox Theological Review 27(2)44-57.
Ware, timothy (Kallistos) 1963
The Orthodox Church. New York: Penguin Books.
남정우, 동방정교회(개혁교회와 에큐메니컬 시각에서 본), 쿰란출판사, 1997.
남정우, 동방정교회 이야기, 쿰란출판사, 2003.
남정우, 동방정교회 선교역사 연구, 한국학술정보(주), 2007.
남정우, 동방정교회 서교사들, 한국학술정보(주), 2007.
남정우목사는 러시아에서 선교사역을 했고, 장신대학에서 선교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임마누엘 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이 글은 명성교회 사랑방 선교회에서 발표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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