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목사자립형목회, 학원목회는 성공, 그러나 측근목회에 실패
후임자목회에 가장 실패한 사람은 충현교회 김창인목사,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 광성교회 김창인 목사일 것이다. 가장 성공한 사람은 사랑의 교회 옥한음 목사이다. 옥한음목사는 조기은퇴까지 해서, 후임자목회에 좋은 사례를 보여주기도 했다. 더군다나 부자세습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뭇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고있다.
충현교회 김창인목사는 아들과 대립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까지 벌어졌고 광성교회 김창인목사는 교회문제가 사회문제까지 비화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그러나 김창인목사의 성공적인 목회가 잊혀져서는 안될 것이다.
부목사 자립형목회
교계에서 부목사자립형목회에 가장 성공한 사람 중의 하나는 광성교회 김창인 목사이다. 광성교회출신 부목사들은 어디를 가나 성공적인 목회를 수행했다. 거룩한 빛 일산광성교회는 대표적인 교회이다. 이는 명성교회 김삼환목사나 곽선희 목사도 하지 못한 것들이다.
전국에 광성교회이름을 표방하면서 중진급 이상되는 교회는 상당히 많다. 대부분의 교회가 잘 성장했고, 현재도 성장하는 목회를 구사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김창인목사의 배려를 받았기 때문이다. 수지, 파주, 덕소, 일산 등 심지어는 미국에 까지 광성교회가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부목사들이 사역을 마치고 교회를 떠날 때, 자립교회로 부임하지 않는 목사들에 대해서는 교회를 세워주어 자립하게 하는 그의 목회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도들이 임직할 때 교회에 후원하는 헌금은 대부분이 부목사들이 개척해 나갈 때 후원으로 지급되었다.
현재 예장통합 총회는 개척교회목사라 할지라도 적어도 150만원 이상은 지급되도록 하고 있다. 노회에서 십시일반으로 개척교회를 도와주고는 있지만, 상가나 지하교회에서 개척하는 목사들은 좀처럼 교회부흥이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교인수가 상대적으로 감소하는데다가, 사람들은 아파트를 비롯 최고의 문화생활을 구가하기 때문에 시설이 열악한 교회에 가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서 교회성장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김창인목사는 20여년전부터 부목사들이 독립해 나갈 때, 부목사들의 자립을 위해서 상당한 정도의 재정을 지원했다. 그래서 광성교회 출신 목회자들의 교회는 대부분이 건실하게 성장해 자립을 하게 되었다. 김창인목사는 교회성장학을 배운 일이 없어도 앞서서 몸으로 실천했던 것이다.
학원목회
김창인목사의 학원목회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문제시 되고 있는 부산장신은 한 때 학내문제로 인해 폐교일보직전이었다. 김창인목사는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약 25억이라는 재정을 투자해서 부산장신을 건실한 신학대학으로 키웠다. 영신여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청산여자전수고등학교를 인수해서 강북의 최고의 여고로 성장시켰다. 주위의 아파트값이 올랐을 정도이다.
가족목회와 개인목회
하나님은 김창인목사에게 가족목회의 복도 주었다. 그의 아들은 서울대를 나오고 장신대학원, 예일대를 거쳐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학위 공부를 하고 있고, 사위도 연세대와 미국대학에서 공부했고 교장으로서 그의 교육목회에 일조를 했고, 딸도 대학교수, 고등학교 교사로서 일을 하여 성공적인 가족목회를 하였다.
혈혈단신 이북에서 넘어왔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달리 강해 성공적인 가족목회를 이루었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것이 마이너스로 작용되기도 하였다. 이외에 개인목회도 성공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대학총장, 교단의 총회장, CBS이사장, 1만명이상의 대형교회 담임목사라는 직분을 맡아 최고의 명성을 구가했다.
설교목회
김창인목사는 후임자목회는 실패했지만 부목사자립형목회와 학원목회, 가족목회및 개인목회는 타의 추종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성공한 사례를 갖고 있었다. 이외에 그의 삼대지 설교도 성공적인 설교기법이었다. 당시는 복음의 불모지 시대이며 교육이 낮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렵고 장황하고 긴 설교로는 신도들을 설득하기 어려웠다.
70-80년 대는 부흥회의 바람이 몰아칠 때라 부흥회식 설교내지는 쉬운 3대지 설교가 교인들을 설득시키기가 좋았다. 3대지 설교의 주창자는 김창인목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창인목사의 설교는 짧지만, 핵심이 있고, 체험적이며, 성경적이었다. 흔히 말하기를 은혜가 넘쳤다.
이와같이 김창인목사는 후임목회는 실패했지만, 부목사자립형목회, 학원목회, 3대지설교목회는 타의 추종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성공했다. 그러나 김창인목사는 측근목회에 실패했다.
측근목회
이성곤목사
이성곤목사의 후임자목회는 측근목회의 실패에서 기인한다. 특히 측근목회는 적을 너무 많이 양산해 냈다. 담임목사가 되기 전에 이성곤목사는 항시 측근으로서 김창인목사 옆에서 맴돌았다. 김목사는 다른 사람을 염두해 둘 여지가 없을 정도였다. 그는 3년동안 기도해서 계시받은 사람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이다. 결국 이성곤목사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적이 되었다. 또한 김목사는 측근장로목회에서도 실패했다.
그린벨트 구리땅 사건
광성교회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측근 장로들의 말만 듣고 그린벨트인 구리 토평땅을 사들인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로 인해 김목사는 고발당하기도 했다.
영신여고
이외에 영신여고목회도 마찬가지이다. 영신여고가 강북에서 최고의 여고로 부상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관련한 사람들에 대해 객관적인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최측근들을 배치하였기 때문에 끊임없이 문제가 되어왔다. 김목사앞에서 댄스를 추는 사람이 가장 진실한 자신의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북한선교건
그의 앞에서 댄스를 추면 학위부정을 한 사람까지도 영신여고 이사로 선정되었다. 진실과 비진실은 김목사앞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김창인목사는 진실과 신뢰를 측근을 통해서 찾을려고 하였다. 측근들이 아부와 아첨을 해도 진실, 정직, 신뢰로 보였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데도 말이다. 최근에는 측근들의 잘못된 조언과 추천으로 인해 천문학적인 변호사비가 탕진되었고, 결과는 법원에서 1년 징역을 선고받았다. 즉 북한에 선교를 하고도 징역선고를 받은 것이다.
유목사연임사건
이는 지난번 유희정목사의 연임사건때도 마찬가지이다. 김목사는 측근들의 괴소문을 진실로 확신하고 대리당회장을 수용하여 유목사의 연임에 영향을 행사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광성교회는 10억이라는 엄청난 재정을 낭비하게 되었고, 김목사의 권위는 많이 실추되었고, 심지어는 그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나게 되었다. 결국 수직적 리더십은 측근목회라는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주었다. 위의 5가지 사건은 측근들을 잘못둠으로써 발생한 사건이다.
김창인목사는 측근들의 말과 소문을 진리로 착각하고 있었다. 측근들의 말을 너무나도 의존하였고 자기 옆에 있으면 자기사람이라는 확신이 컸기 때문에 비측근들의 얘기를 귀담아 들으려고하지 않았다. 결국 오늘날 모두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상, 우리는 김창인목사가 성공한 목회도 한 반면 실패한 목회도 있음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김창인목사가 후임자, 광성교회, 영신여고, 개인재판 등을 통해 볼 때 측근목회에 실패했지만, 김창인목사 자신이 이기적인 목회보다는 이타적인 목회를 했고, 물질적인 목회보다는 영적인 목회를 한 면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이타적인 목회라함은 자기 것을 챙기기 보다는 부목사자립형목회에 중점을 두었고, 영적인 목회라함은 학원목회를 통한 집단 전도, 삼대지 설교, 엄격한 윤리적인 삶을 염두해 둔 것이다.
하나님은 김목사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았다
김창인목사에게 좋은 조언을 줄만한 측근만 몇 명있었더라도 김창인목사는 측근목회에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고, 오늘의 이러한 사태를 불러오지 않았을 것이다. 측근에 바른 말을 해줄 수 있는 인재가 없었던 것이 결국 많은 판단착오와 적을 만들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는 김창인목사가 측근목회에 실패했더라도 그의 성공적인 학원목회를 통해서 많은 학생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부목사자립형목회를 통해 교회가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불신자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또한 그의 삼대지설교를 통해서 신앙이 성숙되어 권사, 장로, 목사가 되어 사역을 잘 하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때에 따라서 그도 인간이기 때문에 측근을 의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을 이해해야 한다. 측근목회에 실패한 것은 하나님은 김창인목사에게 모든 것을 주려고 하지 않았고 때에 따라서 측근들의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완벽한 성공목회는 없었다. 이는 조용기, 곽선희목사에게서도 잘 나타난다.
이제 광성교회는 새로운 목사를 맞이할 것이다. 새목사가 오면서 교회내 김창인목사의 입지는 점점 약화되고, 영신여고의 영향력도 미진해지고, 따라서 그의 측근들도 세가 더불어 약해질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광성교회도 변해야하기 때문이다. 원로목사의 입지가 약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김목사의 플러스 목회 생각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목사가 오늘의 광성교회를 일으켰고, 부목사를 비롯한 교수들까지 많은 후진들을 양성했으며, 고등학교와 대학에 투자를 하여 정상적인 교육기관이 되게했고, 627사태이후 교회가 어려울 때 교회를 안정시키는 데 일조를 했고, 3대지설교로서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도 처에 자립형광성교회가 잘 세워지게 한 성공적인 목회를 한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곽선희목사, 조용기 목사를 비롯, 앞서간 목회자들의 실패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성공목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들이다. 조용기목사의 치유목회, 곽선희목사의 설교목회, 김창인목사의 부목사자립형목회는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성공목회를 거울삼아 성공한 부분은 받아들이고, 실패한 부분들은 극복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무조건 도매급으로 모든 것을 매도하는 모습은 버려야 할 것이다.
광성교회 김창인 목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윤리적으로 엄격하고, 물질적 목회보다 영적인 목회를 선호했고, 이기적인 목회보다 이타적인 목회에 중점을 두었으며, 당시에 가장 쉬운 설교로 신도들을 설득해서 대형교회를 만들었고, 학원목회를 시도해 집단적인 전도가 가능하게 했고, 부목사들은 모두 자립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제 광성교인들은 김창인목사의 마이너스목회보다 플러스목회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의 독선적인 리더십과 측근목회의 실패가 있다고 해서, 그의 성공목회가 잊혀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의 부목사자립형목회는 김창인목사만이 할 수있는 목회였다.
충현교회 김창인목사는 아들과 대립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까지 벌어졌고 광성교회 김창인목사는 교회문제가 사회문제까지 비화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그러나 김창인목사의 성공적인 목회가 잊혀져서는 안될 것이다.
부목사 자립형목회
교계에서 부목사자립형목회에 가장 성공한 사람 중의 하나는 광성교회 김창인 목사이다. 광성교회출신 부목사들은 어디를 가나 성공적인 목회를 수행했다. 거룩한 빛 일산광성교회는 대표적인 교회이다. 이는 명성교회 김삼환목사나 곽선희 목사도 하지 못한 것들이다.
전국에 광성교회이름을 표방하면서 중진급 이상되는 교회는 상당히 많다. 대부분의 교회가 잘 성장했고, 현재도 성장하는 목회를 구사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김창인목사의 배려를 받았기 때문이다. 수지, 파주, 덕소, 일산 등 심지어는 미국에 까지 광성교회가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부목사들이 사역을 마치고 교회를 떠날 때, 자립교회로 부임하지 않는 목사들에 대해서는 교회를 세워주어 자립하게 하는 그의 목회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도들이 임직할 때 교회에 후원하는 헌금은 대부분이 부목사들이 개척해 나갈 때 후원으로 지급되었다.
현재 예장통합 총회는 개척교회목사라 할지라도 적어도 150만원 이상은 지급되도록 하고 있다. 노회에서 십시일반으로 개척교회를 도와주고는 있지만, 상가나 지하교회에서 개척하는 목사들은 좀처럼 교회부흥이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교인수가 상대적으로 감소하는데다가, 사람들은 아파트를 비롯 최고의 문화생활을 구가하기 때문에 시설이 열악한 교회에 가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서 교회성장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김창인목사는 20여년전부터 부목사들이 독립해 나갈 때, 부목사들의 자립을 위해서 상당한 정도의 재정을 지원했다. 그래서 광성교회 출신 목회자들의 교회는 대부분이 건실하게 성장해 자립을 하게 되었다. 김창인목사는 교회성장학을 배운 일이 없어도 앞서서 몸으로 실천했던 것이다.
학원목회
김창인목사의 학원목회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문제시 되고 있는 부산장신은 한 때 학내문제로 인해 폐교일보직전이었다. 김창인목사는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약 25억이라는 재정을 투자해서 부산장신을 건실한 신학대학으로 키웠다. 영신여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청산여자전수고등학교를 인수해서 강북의 최고의 여고로 성장시켰다. 주위의 아파트값이 올랐을 정도이다.
가족목회와 개인목회
하나님은 김창인목사에게 가족목회의 복도 주었다. 그의 아들은 서울대를 나오고 장신대학원, 예일대를 거쳐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학위 공부를 하고 있고, 사위도 연세대와 미국대학에서 공부했고 교장으로서 그의 교육목회에 일조를 했고, 딸도 대학교수, 고등학교 교사로서 일을 하여 성공적인 가족목회를 하였다.
혈혈단신 이북에서 넘어왔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달리 강해 성공적인 가족목회를 이루었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것이 마이너스로 작용되기도 하였다. 이외에 개인목회도 성공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대학총장, 교단의 총회장, CBS이사장, 1만명이상의 대형교회 담임목사라는 직분을 맡아 최고의 명성을 구가했다.
설교목회
김창인목사는 후임자목회는 실패했지만 부목사자립형목회와 학원목회, 가족목회및 개인목회는 타의 추종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성공한 사례를 갖고 있었다. 이외에 그의 삼대지 설교도 성공적인 설교기법이었다. 당시는 복음의 불모지 시대이며 교육이 낮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렵고 장황하고 긴 설교로는 신도들을 설득하기 어려웠다.
70-80년 대는 부흥회의 바람이 몰아칠 때라 부흥회식 설교내지는 쉬운 3대지 설교가 교인들을 설득시키기가 좋았다. 3대지 설교의 주창자는 김창인목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창인목사의 설교는 짧지만, 핵심이 있고, 체험적이며, 성경적이었다. 흔히 말하기를 은혜가 넘쳤다.
이와같이 김창인목사는 후임목회는 실패했지만, 부목사자립형목회, 학원목회, 3대지설교목회는 타의 추종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성공했다. 그러나 김창인목사는 측근목회에 실패했다.
측근목회
이성곤목사
이성곤목사의 후임자목회는 측근목회의 실패에서 기인한다. 특히 측근목회는 적을 너무 많이 양산해 냈다. 담임목사가 되기 전에 이성곤목사는 항시 측근으로서 김창인목사 옆에서 맴돌았다. 김목사는 다른 사람을 염두해 둘 여지가 없을 정도였다. 그는 3년동안 기도해서 계시받은 사람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이다. 결국 이성곤목사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적이 되었다. 또한 김목사는 측근장로목회에서도 실패했다.
그린벨트 구리땅 사건
광성교회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측근 장로들의 말만 듣고 그린벨트인 구리 토평땅을 사들인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로 인해 김목사는 고발당하기도 했다.
영신여고
이외에 영신여고목회도 마찬가지이다. 영신여고가 강북에서 최고의 여고로 부상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관련한 사람들에 대해 객관적인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최측근들을 배치하였기 때문에 끊임없이 문제가 되어왔다. 김목사앞에서 댄스를 추는 사람이 가장 진실한 자신의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북한선교건
그의 앞에서 댄스를 추면 학위부정을 한 사람까지도 영신여고 이사로 선정되었다. 진실과 비진실은 김목사앞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김창인목사는 진실과 신뢰를 측근을 통해서 찾을려고 하였다. 측근들이 아부와 아첨을 해도 진실, 정직, 신뢰로 보였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데도 말이다. 최근에는 측근들의 잘못된 조언과 추천으로 인해 천문학적인 변호사비가 탕진되었고, 결과는 법원에서 1년 징역을 선고받았다. 즉 북한에 선교를 하고도 징역선고를 받은 것이다.
유목사연임사건
이는 지난번 유희정목사의 연임사건때도 마찬가지이다. 김목사는 측근들의 괴소문을 진실로 확신하고 대리당회장을 수용하여 유목사의 연임에 영향을 행사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광성교회는 10억이라는 엄청난 재정을 낭비하게 되었고, 김목사의 권위는 많이 실추되었고, 심지어는 그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나게 되었다. 결국 수직적 리더십은 측근목회라는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주었다. 위의 5가지 사건은 측근들을 잘못둠으로써 발생한 사건이다.
김창인목사는 측근들의 말과 소문을 진리로 착각하고 있었다. 측근들의 말을 너무나도 의존하였고 자기 옆에 있으면 자기사람이라는 확신이 컸기 때문에 비측근들의 얘기를 귀담아 들으려고하지 않았다. 결국 오늘날 모두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상, 우리는 김창인목사가 성공한 목회도 한 반면 실패한 목회도 있음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김창인목사가 후임자, 광성교회, 영신여고, 개인재판 등을 통해 볼 때 측근목회에 실패했지만, 김창인목사 자신이 이기적인 목회보다는 이타적인 목회를 했고, 물질적인 목회보다는 영적인 목회를 한 면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이타적인 목회라함은 자기 것을 챙기기 보다는 부목사자립형목회에 중점을 두었고, 영적인 목회라함은 학원목회를 통한 집단 전도, 삼대지 설교, 엄격한 윤리적인 삶을 염두해 둔 것이다.
하나님은 김목사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았다
김창인목사에게 좋은 조언을 줄만한 측근만 몇 명있었더라도 김창인목사는 측근목회에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고, 오늘의 이러한 사태를 불러오지 않았을 것이다. 측근에 바른 말을 해줄 수 있는 인재가 없었던 것이 결국 많은 판단착오와 적을 만들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는 김창인목사가 측근목회에 실패했더라도 그의 성공적인 학원목회를 통해서 많은 학생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부목사자립형목회를 통해 교회가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불신자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또한 그의 삼대지설교를 통해서 신앙이 성숙되어 권사, 장로, 목사가 되어 사역을 잘 하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때에 따라서 그도 인간이기 때문에 측근을 의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을 이해해야 한다. 측근목회에 실패한 것은 하나님은 김창인목사에게 모든 것을 주려고 하지 않았고 때에 따라서 측근들의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완벽한 성공목회는 없었다. 이는 조용기, 곽선희목사에게서도 잘 나타난다.
이제 광성교회는 새로운 목사를 맞이할 것이다. 새목사가 오면서 교회내 김창인목사의 입지는 점점 약화되고, 영신여고의 영향력도 미진해지고, 따라서 그의 측근들도 세가 더불어 약해질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광성교회도 변해야하기 때문이다. 원로목사의 입지가 약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김목사의 플러스 목회 생각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목사가 오늘의 광성교회를 일으켰고, 부목사를 비롯한 교수들까지 많은 후진들을 양성했으며, 고등학교와 대학에 투자를 하여 정상적인 교육기관이 되게했고, 627사태이후 교회가 어려울 때 교회를 안정시키는 데 일조를 했고, 3대지설교로서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도 처에 자립형광성교회가 잘 세워지게 한 성공적인 목회를 한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곽선희목사, 조용기 목사를 비롯, 앞서간 목회자들의 실패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성공목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들이다. 조용기목사의 치유목회, 곽선희목사의 설교목회, 김창인목사의 부목사자립형목회는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성공목회를 거울삼아 성공한 부분은 받아들이고, 실패한 부분들은 극복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무조건 도매급으로 모든 것을 매도하는 모습은 버려야 할 것이다.
광성교회 김창인 목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윤리적으로 엄격하고, 물질적 목회보다 영적인 목회를 선호했고, 이기적인 목회보다 이타적인 목회에 중점을 두었으며, 당시에 가장 쉬운 설교로 신도들을 설득해서 대형교회를 만들었고, 학원목회를 시도해 집단적인 전도가 가능하게 했고, 부목사들은 모두 자립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제 광성교인들은 김창인목사의 마이너스목회보다 플러스목회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의 독선적인 리더십과 측근목회의 실패가 있다고 해서, 그의 성공목회가 잊혀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의 부목사자립형목회는 김창인목사만이 할 수있는 목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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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광성교회가 주일예배에 참석했을때 사건이 막 터졌을때였습니다 예배를 방해하고 설교하시는 목사님을 향해 사탄 마귀라며 큰 소리고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는 걸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판단은 오직 하니님만이 판단 하시지만은 결국 인간의 욕심이 가져다 준 결과이며 하나님만을 믿는 진실한 성직자라면 이런 문제는 없을것이라 봅니다. 한국 교회 특히 큰 교회일수록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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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목사 자립형교회도 신도들의 귀중한 헌금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것이 마치 김목사 자신이 한 것인 양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측근 목회 등 김목사가 실패한 목회의 원인도 그것이 아닌가합니다.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 이제 모든 것 내려놓으시고 그동안 당신을 존경했던 신도들에게 정말 좋은 귀감을 보여야할 때입니다.
거국적인 대화합이라는 숙제겠지요. 교육관에서 예배드리는 성도나 본당에서 예배드리는 통합측 교인들이 정말 하나 될 수 있도록 남은 생을 노력해야겠지요.
꼭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