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의 사명을 다한 자가 결국 하늘을 차지하게 될 것
인생은 연기처럼 재만 남기고 사라지는 모닥불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황당한 일은 함께 동고동락 해왔던 존재가 갑자기 없어지는 것입니다. 가는 곳도, 머무는 곳도 알지 못한 채 단지 자그마한 족적과 정만 남긴 채, 간데 온데 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유행가 가사가 있습니다. 인생은 연기처럼 재만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어느날 서로 붙박이를 하고 있는 남편도 아내도 부모님도, 자녀들도 사랑하는 친구들도 온 데 간 데 없이 연기처럼 사라질 때가 올 것입니다. 황당하고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맞이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상황에 있습니다. 단지 시간이 지연될 뿐입니다.
어디로 가는 곳을 분명히 알기만 한다면 그래도 좀 들 답답할 텐데, 가는 목적지도 없이, 가야할 방향도 알지 못한 채, 쓸쓸하게 영원한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스런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의 배우자가, 여러분의 친구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은 슬픈 일이고, 끔찍한 일이고 황당한 일입니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이런 황당한 일이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국가에서 일어났습니다. 첫 번 째 황당함은 죄인들과 가난한 사람들, 세리와 창기, 어부들의 친구였던 한 나사렛 청년이 십자가에 달려 사라진 사건입니다. 그 날 하늘도 진동하고 땅도 진동을 했습니다.
제 6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9시까지 계속 하며(눅24:44), 성소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마27:52).
두 번째는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 것도 잠시 뿐, 40일 만에 다시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사건입니다. 그는 원래의 육체의 몸이 아니라 신령한 몸으로 부활되어 신령한 세계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의 신령한 몸은 문이 잠겨있는 제자들이 모인 방에도 갑자기 나타나서 "평안이 있으라" 하고 사라지시기도 하고, 때로는 같이 동행하는 제자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또한 의심하는 제자에게는 손가락을 보이고 옆구리에 손을 내어 넣어 보라고도 얘기를 하여 실제로 못자국과 창자국이 있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고기 잡으러 떠난 베드로에게 다시 나타나서 배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씩 묻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40일 동안 다니시면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했던 것 처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생시에 살았던 사람 처럼 똑같이 행동을 합니다.
그가 고난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을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1:3)
병고친 얘기만 없고 가르치시기도 하고 제자도 세우시기도 하고 음식도 잡수시고, 고기를 잡게도 하시기도 하고 전과 다름없이 많은 일을 행하십니다. 아마 제자들은 신이나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짐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를 부인하지 않겠다. 이제는 예수를 떠나지 않겠다”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어느날 하루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모으십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들 이제 내 말을 잘 들어라, 이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로 받을 것이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것이다.
요약해보면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증인이 될 것이다 입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예수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는 그 제자들이 보는데서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스스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올리워가는 것입니다. 수동적입니다. 누군가가 끌어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죽는 것은 때로 능동적일 수도 있지만,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전적으로 수동적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갈릴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기록합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 지시하신 산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때까지 너희와 항상 있으리라 (마28:19-20)
마태복음은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입니다. 마가복음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입니다. 이것도 갈릴리에서 한 말입니다. 그래서 갈릴리는 예수께서 마지막 부탁하고 분부한 말씀이 서려있는 곳입니다.
결국 부활하셔서 승천하실 때까지 갈릴리에서 말씀하신 예수의 말씀을 종합하면 증인이 되라, 제자삼아라, 복음을 전파하라입니다. 교회의 사명과 기독교인의 사명은 예수의 증인이 되고 세상 사람들을 제자삼으며 복음을 온 천하 민민에게 전파하는데 있습니다.
분규, 갈등, 대립, 부조리가 발생한 교회들은 예수의 증인이 되지를 못하고 제자도 삼지 못하고, 복음은 커녕 기득권만 전파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너무 지나치게 소유물에 집작하면 복음이 전파될 수 없습니다. 예수의 증인이 아니라 지지하는 특정 목사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천하만민에게 망신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의 기독교입니다. 예수의 증인대신 특정목사의 증인되고, 제자대신 특정인 지지자들을 양산하고, 복음대신 기득권을 전파하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지탄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미 기독교의 도덕성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예수께서는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마치시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리워가십니다. 구약에도 승천한 사람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에녹이고, 하나는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올라간 엘리야가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우상화하기 위해 마리아의 승천설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머니 마리아를 천상의 모후(母后)로서 그 영예를 더하기 위해서 그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하늘로 맞아들였다는 전승에서 비롯된 신앙입니다. 그리하여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도 합니다. 4~5세기부터 민간에서 이 신앙이 전해져오다가 1950년 교황 피우스(비오) 12세가 정식 교의로 선포하였다. 또한 미술 분야에서는 이를 소재로 한 도상(圖像)을 가키는데, 비잔틴 시대나 중세 초기부터 이런 작품들이 보입니다.
마리아의 어머니 승천은 근거가 없는 전설에 불과한 것이고 성경에서는 그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이슬람에서는 마호메트 승천설까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승천과는 사뭇다릅니다. 예수님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 상태에서의 승천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명에 의한 자기 사업을 마친 명예로우신 승천인 것입니다.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들
예수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되어 이 땅에서 500인 이상에게 나타나 자기 몸을 보이신 증거가 있으며 성령을 선물로 줄 것 까지 예상을 하시고 올라가신 예비된 승천인 것입니다. 승천하셔서 구름이 가리워 보이지 않게 되자 예수부활시 무덤에서 지키던 천사들이 나타나서 그것을 밑에서 보고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가운데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늘만 바로보지 말로 나가서 증인되라
예수는 성령의 오심의 약속을 하시고 천사들은 재림의 약속을 합니다. 승천과 재림 중간사이에 성령이 임합니다. 천사들은 예수의 얘기를 들엇습니다. 이제 조금있으면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니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지말고 나가서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승천 사건은 부활과 재림의 중간, 재림의 약속을 읽을 수 있습니다. 승천이 있기에 부활 재림은 현실성과 역사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승천이 없었더라면 부활하신 주님의 존재가 한낱 환상적 존재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는 말은 기독교를 명상적으로 이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흰옷 입고 손을 쳐드는 따위의 허망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할 일은 손 놓은 채 정적인 경건으로 명상이니 하며 기다리는 식의 대망사상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승천부터 재림할 때의 기간을 인케림이라고합니다. 이 기간은 사명기간, 교회기간, 성령기간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약속을 받아 성령충만함을 입어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세상에 나가서 제자를 삼고 증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마냥 하늘만 바라볼 것이 아닙니다. 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땅끝까지 증인되는 땅의 일을 하는 것은 하늘을 차지하기 위한 것
땅을 바라보라는 것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땅의 생명을 구하고, 하나님이 부여하신 땅에서의 소명을 다하고, 하늘을 차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땅이나 건물에 관심을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하늘은 멀기만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땅에 있는 목적은 하늘의 소명을 다하고, 결국 하늘을 차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만 얻을 수 있는 위로부터 온 특별한 복입니다. 하늘나라의 복은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땅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빈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 특별히 주어지는 선물인 것 입니다. 하늘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소유에 관심을 갖지 않고, 빈마음을 갖고 소명의 실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황당한 일은 함께 동고동락 해왔던 존재가 갑자기 없어지는 것입니다. 가는 곳도, 머무는 곳도 알지 못한 채 단지 자그마한 족적과 정만 남긴 채, 간데 온데 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유행가 가사가 있습니다. 인생은 연기처럼 재만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어느날 서로 붙박이를 하고 있는 남편도 아내도 부모님도, 자녀들도 사랑하는 친구들도 온 데 간 데 없이 연기처럼 사라질 때가 올 것입니다. 황당하고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맞이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상황에 있습니다. 단지 시간이 지연될 뿐입니다.
어디로 가는 곳을 분명히 알기만 한다면 그래도 좀 들 답답할 텐데, 가는 목적지도 없이, 가야할 방향도 알지 못한 채, 쓸쓸하게 영원한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스런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의 배우자가, 여러분의 친구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은 슬픈 일이고, 끔찍한 일이고 황당한 일입니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이런 황당한 일이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국가에서 일어났습니다. 첫 번 째 황당함은 죄인들과 가난한 사람들, 세리와 창기, 어부들의 친구였던 한 나사렛 청년이 십자가에 달려 사라진 사건입니다. 그 날 하늘도 진동하고 땅도 진동을 했습니다.
제 6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9시까지 계속 하며(눅24:44), 성소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마27:52).
두 번째는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 것도 잠시 뿐, 40일 만에 다시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사건입니다. 그는 원래의 육체의 몸이 아니라 신령한 몸으로 부활되어 신령한 세계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의 신령한 몸은 문이 잠겨있는 제자들이 모인 방에도 갑자기 나타나서 "평안이 있으라" 하고 사라지시기도 하고, 때로는 같이 동행하는 제자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또한 의심하는 제자에게는 손가락을 보이고 옆구리에 손을 내어 넣어 보라고도 얘기를 하여 실제로 못자국과 창자국이 있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고기 잡으러 떠난 베드로에게 다시 나타나서 배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씩 묻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40일 동안 다니시면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했던 것 처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생시에 살았던 사람 처럼 똑같이 행동을 합니다.
그가 고난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을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1:3)
병고친 얘기만 없고 가르치시기도 하고 제자도 세우시기도 하고 음식도 잡수시고, 고기를 잡게도 하시기도 하고 전과 다름없이 많은 일을 행하십니다. 아마 제자들은 신이나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짐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를 부인하지 않겠다. 이제는 예수를 떠나지 않겠다”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어느날 하루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모으십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들 이제 내 말을 잘 들어라, 이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로 받을 것이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것이다.
요약해보면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증인이 될 것이다 입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예수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는 그 제자들이 보는데서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스스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올리워가는 것입니다. 수동적입니다. 누군가가 끌어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죽는 것은 때로 능동적일 수도 있지만,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전적으로 수동적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갈릴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기록합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 지시하신 산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때까지 너희와 항상 있으리라 (마28:19-20)
마태복음은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입니다. 마가복음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입니다. 이것도 갈릴리에서 한 말입니다. 그래서 갈릴리는 예수께서 마지막 부탁하고 분부한 말씀이 서려있는 곳입니다.
결국 부활하셔서 승천하실 때까지 갈릴리에서 말씀하신 예수의 말씀을 종합하면 증인이 되라, 제자삼아라, 복음을 전파하라입니다. 교회의 사명과 기독교인의 사명은 예수의 증인이 되고 세상 사람들을 제자삼으며 복음을 온 천하 민민에게 전파하는데 있습니다.
분규, 갈등, 대립, 부조리가 발생한 교회들은 예수의 증인이 되지를 못하고 제자도 삼지 못하고, 복음은 커녕 기득권만 전파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너무 지나치게 소유물에 집작하면 복음이 전파될 수 없습니다. 예수의 증인이 아니라 지지하는 특정 목사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천하만민에게 망신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의 기독교입니다. 예수의 증인대신 특정목사의 증인되고, 제자대신 특정인 지지자들을 양산하고, 복음대신 기득권을 전파하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지탄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미 기독교의 도덕성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예수께서는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마치시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리워가십니다. 구약에도 승천한 사람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에녹이고, 하나는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올라간 엘리야가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우상화하기 위해 마리아의 승천설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머니 마리아를 천상의 모후(母后)로서 그 영예를 더하기 위해서 그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하늘로 맞아들였다는 전승에서 비롯된 신앙입니다. 그리하여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도 합니다. 4~5세기부터 민간에서 이 신앙이 전해져오다가 1950년 교황 피우스(비오) 12세가 정식 교의로 선포하였다. 또한 미술 분야에서는 이를 소재로 한 도상(圖像)을 가키는데, 비잔틴 시대나 중세 초기부터 이런 작품들이 보입니다.
마리아의 어머니 승천은 근거가 없는 전설에 불과한 것이고 성경에서는 그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이슬람에서는 마호메트 승천설까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승천과는 사뭇다릅니다. 예수님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 상태에서의 승천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명에 의한 자기 사업을 마친 명예로우신 승천인 것입니다.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들
예수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되어 이 땅에서 500인 이상에게 나타나 자기 몸을 보이신 증거가 있으며 성령을 선물로 줄 것 까지 예상을 하시고 올라가신 예비된 승천인 것입니다. 승천하셔서 구름이 가리워 보이지 않게 되자 예수부활시 무덤에서 지키던 천사들이 나타나서 그것을 밑에서 보고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가운데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늘만 바로보지 말로 나가서 증인되라
예수는 성령의 오심의 약속을 하시고 천사들은 재림의 약속을 합니다. 승천과 재림 중간사이에 성령이 임합니다. 천사들은 예수의 얘기를 들엇습니다. 이제 조금있으면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니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지말고 나가서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승천 사건은 부활과 재림의 중간, 재림의 약속을 읽을 수 있습니다. 승천이 있기에 부활 재림은 현실성과 역사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승천이 없었더라면 부활하신 주님의 존재가 한낱 환상적 존재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는 말은 기독교를 명상적으로 이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흰옷 입고 손을 쳐드는 따위의 허망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할 일은 손 놓은 채 정적인 경건으로 명상이니 하며 기다리는 식의 대망사상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승천부터 재림할 때의 기간을 인케림이라고합니다. 이 기간은 사명기간, 교회기간, 성령기간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약속을 받아 성령충만함을 입어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세상에 나가서 제자를 삼고 증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마냥 하늘만 바라볼 것이 아닙니다. 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땅끝까지 증인되는 땅의 일을 하는 것은 하늘을 차지하기 위한 것
땅을 바라보라는 것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땅의 생명을 구하고, 하나님이 부여하신 땅에서의 소명을 다하고, 하늘을 차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땅이나 건물에 관심을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하늘은 멀기만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땅에 있는 목적은 하늘의 소명을 다하고, 결국 하늘을 차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만 얻을 수 있는 위로부터 온 특별한 복입니다. 하늘나라의 복은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땅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빈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 특별히 주어지는 선물인 것 입니다. 하늘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소유에 관심을 갖지 않고, 빈마음을 갖고 소명의 실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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