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시적인 빛-참빛-영원한 빛
몇년 전 뉴욕의 펜티곤이 파괴되는 테러사건이 터졌을 때 미국의회는 즉각적으로 군사행동을 승인했습니다. 부시는 미군인들을 향해서 "이제 여러분들은 미국을 위한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유명했던 장군 중에 팻튼 장군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탱크부대를 이끌고서 2차대전에서 많은 활약을 했던 장군입니다. 그 팻튼 장군의 생애를 그린 영화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의 처음 장면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이제 곧 전투에 참여하게 될 많은 군인들이 초조한 모습으로 연병장에 엄숙하게 서 있고, 그들 앞에 놓여있는 높은 단상위로 팻튼장군이 등장합니다. 단위에 올라선 팻튼 장군은 그 군인들에게 힘있는 어조로 천천히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제군들은 세계사에 기록될 중요한 싸움터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 싸움터에서 여러분들 중의 어떤 자는 생명을 잃게 될 것이고 어떤 병사는 팔을 잃거나 다리에 부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병사들은 전쟁에 승리한 다음에 자랑스럽게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여러분들이 할아버지가 되어서,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여러분들의 손자와 함께 있을 때 그 손자가 이런 질문을 해 올 것입니다. “그 전쟁 때 할아버지는 어디서 무얼 하셨나요?”
"여러분들은 그런 질문에 대하여 어떤 대답을 할 것인 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아무런 준비가 없어도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손자들의 질문에 거짓을 꾸며서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군인다운 군인은 용감한 군인이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군인입니다. 군인의 빛은 비로서 국가를 위하여 희생할 때 비쳐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군사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어 희생할 때 빛나는 법입니다.
우리는 조금 있으면 60살이 되고 70이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손자들에게 교회의 역사를 얘기해 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초기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역사에 대하여 세세하게 얘기할 날이 올 것입니다.
눈 내리는 겨울날, 바닷바람이 세차게 몰아칠 때, 여러분들의 어느덧 장성한 손자가 교회의 얘기를 듣고 이런 질문을 해올는지 모릅니다. “그 때 할아버지는 교회에서 무엇을 하였나요?” 여러분들은 그 때 손자 앞에서 정직한 대답을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손자를 앉혀놓고 거짓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미래의 떳떳함을 위해서 역사적 의식을 갖고 빛된 생활을 하기 위해 오늘도 이 순간을 의미 있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빛의 창조
하나님은 세상의 역사를 빛을 창조하심으로 시작하셨습니다. 공허하고 혼돈된 어둠의 땅에 하나님은 한줄기 빛으로 세상의 질서를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카오스에서 헬라어로 빛을 뜻하는 ‘포스’를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한 것이 질서란 뜻의 ‘코스모스’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빛은 어둠을 밝히어 새로운 세상을 전개해주고 있습니다. 이 빛이 없이는 생명체들은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며칠동안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삼풍백화점에 묻혔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빛이 없기에 살 소망이 없었다고, 어둠이 그렇게 두려운 줄 몰랐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세상의 모든 만물들이 살아갈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가시적인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빛만 가지고서는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빛을 맛보면서 살아야
때로는 우리가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 때는 하나님의 빛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빛을 창조했을 뿐이니라 자기 백성이 어렵고 위기에 닥칠 때는 직접 빛으로 임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계약을 맺을 때 하나님은 빛으로 임해서 동물가운데로 가시기도 했습니다. 또한 모세한테는 빛으로 가시 떨기에 임했습니다. 그분은 빛으로 사막에서 불기둥으로 임해서 백성들의 갈 길을 제시해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빛은 갈멜산상에 불로 임해서 이단의 무리와 싸워이기게끔 하는 진리의 파숫군의 역할을 합니다. 이 빛은 다니엘의 불속에 임해서 생명을 건져줍니다. 그리고 이 빛은 신약에 와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로 가기 위해 다메섹 선상을 걸어가는 한 젊은이에게 임해서 주의 사도로 개종을 시킵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행9:3) 그리고 이 빛은 오순절 다락방에 불의 혀 같이 임해서 120 문도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게 합니다. 그리고 이 빛은 베드로의 옥중에 임해서 베드로의 손에서 쇠사슬을 벗기고 옥문을 열어 줍니다.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쇠사슬이 베드로의 손에서 벗어진지라”(행12:7). 또 이 빛은 바울과 실라의 옥중에 임해서 지진이 나게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문제 투성이인 우리에게도 빛을 비춰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되고” 라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한번 하늘의 비침을 받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엘리야처럼 이교도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요, 베드로 처럼 문제의 쇠사슬이 벗어지는 것이요, 바울처럼 한 인간이 개종되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혼미한 우리의 갈 길을 바로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빛되신 하나님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빛입니다. 시편기자는 “주께서 옷을 입은 것 같이 빛을 입으셨다”(시104:2)고 기록합니다. 이사야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9:1)고 말하여 분명히 빛된 하나님이 임하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태는 이 말씀을 4:16절에서 인용하고 이 빛을 예수님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17절에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서 전파하여 가라사대..............라고 기록합니다.
이러한 것은 요한복음에 이르러서야 빛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완전히 인정합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빛이 하늘에만 있다가 세상에 내려왔습니다. 요한은 이에 대해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치는 빛이 있었나니“ 라고 적고 있습니다.
태초에는 하나님이 세상에 “빛이 있으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부터 2000년전에 제 2의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에 “참 빛이 있으라”. 이 빛은 창세기의 빛과는 다른 것입니다. 창세기의 빛은 피조물이지만 요한복음에서의 빛은 완전한 빛이요, 생명의 빛이요, 참빛이요, 빛의 근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태양을 볼 것이 아니라 먼저 참빛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참빛이 세상에 왔기에 가난한 자에게는 부요함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억눌린 자에게 해방을 주고 , 눈먼 자에게는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내며, 흑암에 처한 자에게 광명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빛은 교인들에게 임해야
이 빛은 우리개인에게도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된 자신을 믿는 사람보고 ‘빛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빛을 사람앞에 비추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 16).
이것은 이적의 빛이 아니요 행함의 빛, 윤리의 빛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귀신을 내쫏으라, 물위로 걸어가라, 예언을 행하라, 갈멜산의 엘리야처럼 불을 내려라” 고 말하지 않고 “남 앞에 착한 행실을 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 중에서 매일 남의 허물뜯고 이간시키고, 질투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십자군 전쟁을 하여 수많은 생명을 빼앗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바울 역시 예수님과 같은 입장입니다. 예수님의 빛이 비치면 우리도 똑같이 빛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이러한 빛이 비친 사람에게 있어서는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말합니다.
오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신비한 기적이나 예언, 신유를 일으킬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든 자에게는 덕이 있고 사방으로 존경함을 받으며, 늘 사랑으로 감싸고 나이가 어린 자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장유유서의 질서를 지키고 항시 겸손한 맘으로 윗사람을 잘 섬기고 친구에게는 관포지교의 우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교회에게 임해야
요사이는 기독교가 개독교라는 말을 듣고 있을 정도로 세상에서 신성한 종교의 권위가 떨어진 상태입니다. 사람들은 기독교(그리스도교)대신 기득교라고 표현을 할정도로 교회가 재산이 생기다보니 기득권에 안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분규교회는 모두 기득권의 싸움입니다.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교회 헌금에 중점을 두고, 직분에 포커스를 두고, 목사가 성직자임을 망각하고 물질이나 재산에 탐을 내고, 교회분규로 인해 법정투쟁, 용역비등으로 엄청난 하나님의 헌금을 날리기도 합니다. 교회에 용역들을 고용하여 폭력으로 상대편 교인들을 제압하기도 합니다. 이는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지옥나라의 모습입니다.
이는 교회에 빛대신 어둠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모습들은 교회의 윤리, 도덕, 행함의 빛에는 관심이 없고, 자체의 기득권찾기에 안주하고, 세상사람들이 뭐라든 관심없이 세속적인 법정에 송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미 성령이 떠난 교회들입니다.
천주교나 불교는 세상법정에 송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유독 기독교만 송사가 심합니다. 이제 카오스상태에 포스가 임해서 코스모스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임을 주장하고, 성령이 임하는 곳을 주장하려거든 모든 기득권과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빛은 중력장이 강한 쪽으로 구부러진다
아인쉬타인은 일반상대성원리에서 빛은 강한 힘이 있는 쪽으로 구부러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강력한 중력장이 있는 쪽으로 구브러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오는 별빛은 실제로는 지구쪽으로 구부려져있기에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위치와 원래의 위치는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가진 빛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하늘과 땅이라는 평행선상에서 걸어가고 있지만 빛된 그리스도인은 어느덧 나도 모르게 강력한 하나님의 힘이 미치는 쪽으로 인생행로가 구부러져서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빛은 강한 힘이 있는 쪽으로 구부러지기 마련입니다. 그 구부러진 곡선을 타고 가다가 힘이 없어 쓰러지거나 내 기운이 다하여 더 이상 갈 수 없을 때는 주님이 업고 갑니다.
모래판위의 발자국 시를 잘아시죠. 처음에는 발자국이 넷이었습니다. 하나는 내 발자국, 다른 하나는 주님 발자국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늘 함께 하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 발자국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에게 묻습니다. “주님 왜 나와 함께 걷지 않았습니까? ” 그 주님이 말씀합니다 “네가 힘이 없어 쓰러졌을 때 내가 대신 업고 갔단다” 우리가 하늘을 향해서 가다가 기운이 없고 힘이 없어 쓰러지면 주님이 대신 업고
갑니다.
영원한 중력장, 새하늘과 새 땅
태초에 하나님이 혼돈되고 공허한 땅에 "빛이 있으라" 하셨습니다. 2000년 전에는 하나님이 어두운 세상에 “참빛이 있으라” 고 하셨습니다. 이 참빛 되신 주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빛이 창조되어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의 어두운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빛이 창조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로운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서 새사람이 만들어집니다. 바울의 말대로 “너희가 새 사람을 입으라”. 교회도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이전투구는 어둠이 임한 교회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든 다음에는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주었던 것처럼 반드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빛을 창조하시고 새사람을 만든다음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거주처로 주십니다.
아직까지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하지못하고 새사람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되지 못한 사람과 교회에게는 죄송하지만 새 땅은 예비되어있지 않습니다. 그의 인생행로는 하나님이 계신 쪽으로 구부러지지 않고 하늘과 땅을 평행선으로 하여 어딘지도 모르게 계속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된 사람(교회)에 한해서는 새 예루살렘 도성에 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한 편의 강도는 좋은 예입니다. 그에게 갑자기 그리스도의 빛이 마음속에 창조됩니다. 그래서 새사람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영원한 빛이 지배하는 낙원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곳은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인 빛에 의해서 비쳐지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빛 자체에 의해서 비쳐지는 어둠과 고통과 질병이 없는 곳입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치심이라(계21:23)
빛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빛에 의하여 비췸을 받고 영원히 사는 사람들입니다. 불행하게도 일부 사람들의 기득권과 욕심으로 인해 교회가 세상에서 빛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인들 개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빛을 받은 교인과 교회는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할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언젠가 영원한 빛의 나라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유명했던 장군 중에 팻튼 장군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탱크부대를 이끌고서 2차대전에서 많은 활약을 했던 장군입니다. 그 팻튼 장군의 생애를 그린 영화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의 처음 장면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이제 곧 전투에 참여하게 될 많은 군인들이 초조한 모습으로 연병장에 엄숙하게 서 있고, 그들 앞에 놓여있는 높은 단상위로 팻튼장군이 등장합니다. 단위에 올라선 팻튼 장군은 그 군인들에게 힘있는 어조로 천천히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제군들은 세계사에 기록될 중요한 싸움터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 싸움터에서 여러분들 중의 어떤 자는 생명을 잃게 될 것이고 어떤 병사는 팔을 잃거나 다리에 부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병사들은 전쟁에 승리한 다음에 자랑스럽게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여러분들이 할아버지가 되어서,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여러분들의 손자와 함께 있을 때 그 손자가 이런 질문을 해 올 것입니다. “그 전쟁 때 할아버지는 어디서 무얼 하셨나요?”
"여러분들은 그런 질문에 대하여 어떤 대답을 할 것인 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아무런 준비가 없어도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손자들의 질문에 거짓을 꾸며서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군인다운 군인은 용감한 군인이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군인입니다. 군인의 빛은 비로서 국가를 위하여 희생할 때 비쳐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군사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어 희생할 때 빛나는 법입니다.
우리는 조금 있으면 60살이 되고 70이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손자들에게 교회의 역사를 얘기해 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초기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역사에 대하여 세세하게 얘기할 날이 올 것입니다.
눈 내리는 겨울날, 바닷바람이 세차게 몰아칠 때, 여러분들의 어느덧 장성한 손자가 교회의 얘기를 듣고 이런 질문을 해올는지 모릅니다. “그 때 할아버지는 교회에서 무엇을 하였나요?” 여러분들은 그 때 손자 앞에서 정직한 대답을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손자를 앉혀놓고 거짓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미래의 떳떳함을 위해서 역사적 의식을 갖고 빛된 생활을 하기 위해 오늘도 이 순간을 의미 있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빛의 창조
하나님은 세상의 역사를 빛을 창조하심으로 시작하셨습니다. 공허하고 혼돈된 어둠의 땅에 하나님은 한줄기 빛으로 세상의 질서를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카오스에서 헬라어로 빛을 뜻하는 ‘포스’를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한 것이 질서란 뜻의 ‘코스모스’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빛은 어둠을 밝히어 새로운 세상을 전개해주고 있습니다. 이 빛이 없이는 생명체들은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며칠동안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삼풍백화점에 묻혔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빛이 없기에 살 소망이 없었다고, 어둠이 그렇게 두려운 줄 몰랐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세상의 모든 만물들이 살아갈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가시적인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빛만 가지고서는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빛을 맛보면서 살아야
때로는 우리가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 때는 하나님의 빛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빛을 창조했을 뿐이니라 자기 백성이 어렵고 위기에 닥칠 때는 직접 빛으로 임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계약을 맺을 때 하나님은 빛으로 임해서 동물가운데로 가시기도 했습니다. 또한 모세한테는 빛으로 가시 떨기에 임했습니다. 그분은 빛으로 사막에서 불기둥으로 임해서 백성들의 갈 길을 제시해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빛은 갈멜산상에 불로 임해서 이단의 무리와 싸워이기게끔 하는 진리의 파숫군의 역할을 합니다. 이 빛은 다니엘의 불속에 임해서 생명을 건져줍니다. 그리고 이 빛은 신약에 와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로 가기 위해 다메섹 선상을 걸어가는 한 젊은이에게 임해서 주의 사도로 개종을 시킵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행9:3) 그리고 이 빛은 오순절 다락방에 불의 혀 같이 임해서 120 문도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게 합니다. 그리고 이 빛은 베드로의 옥중에 임해서 베드로의 손에서 쇠사슬을 벗기고 옥문을 열어 줍니다.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쇠사슬이 베드로의 손에서 벗어진지라”(행12:7). 또 이 빛은 바울과 실라의 옥중에 임해서 지진이 나게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문제 투성이인 우리에게도 빛을 비춰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되고” 라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한번 하늘의 비침을 받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엘리야처럼 이교도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요, 베드로 처럼 문제의 쇠사슬이 벗어지는 것이요, 바울처럼 한 인간이 개종되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혼미한 우리의 갈 길을 바로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빛되신 하나님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빛입니다. 시편기자는 “주께서 옷을 입은 것 같이 빛을 입으셨다”(시104:2)고 기록합니다. 이사야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9:1)고 말하여 분명히 빛된 하나님이 임하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태는 이 말씀을 4:16절에서 인용하고 이 빛을 예수님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17절에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서 전파하여 가라사대..............라고 기록합니다.
이러한 것은 요한복음에 이르러서야 빛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완전히 인정합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빛이 하늘에만 있다가 세상에 내려왔습니다. 요한은 이에 대해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치는 빛이 있었나니“ 라고 적고 있습니다.
태초에는 하나님이 세상에 “빛이 있으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부터 2000년전에 제 2의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에 “참 빛이 있으라”. 이 빛은 창세기의 빛과는 다른 것입니다. 창세기의 빛은 피조물이지만 요한복음에서의 빛은 완전한 빛이요, 생명의 빛이요, 참빛이요, 빛의 근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태양을 볼 것이 아니라 먼저 참빛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참빛이 세상에 왔기에 가난한 자에게는 부요함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억눌린 자에게 해방을 주고 , 눈먼 자에게는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내며, 흑암에 처한 자에게 광명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빛은 교인들에게 임해야
이 빛은 우리개인에게도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된 자신을 믿는 사람보고 ‘빛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빛을 사람앞에 비추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 16).
이것은 이적의 빛이 아니요 행함의 빛, 윤리의 빛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귀신을 내쫏으라, 물위로 걸어가라, 예언을 행하라, 갈멜산의 엘리야처럼 불을 내려라” 고 말하지 않고 “남 앞에 착한 행실을 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 중에서 매일 남의 허물뜯고 이간시키고, 질투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십자군 전쟁을 하여 수많은 생명을 빼앗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바울 역시 예수님과 같은 입장입니다. 예수님의 빛이 비치면 우리도 똑같이 빛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이러한 빛이 비친 사람에게 있어서는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말합니다.
오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신비한 기적이나 예언, 신유를 일으킬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든 자에게는 덕이 있고 사방으로 존경함을 받으며, 늘 사랑으로 감싸고 나이가 어린 자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장유유서의 질서를 지키고 항시 겸손한 맘으로 윗사람을 잘 섬기고 친구에게는 관포지교의 우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교회에게 임해야
요사이는 기독교가 개독교라는 말을 듣고 있을 정도로 세상에서 신성한 종교의 권위가 떨어진 상태입니다. 사람들은 기독교(그리스도교)대신 기득교라고 표현을 할정도로 교회가 재산이 생기다보니 기득권에 안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분규교회는 모두 기득권의 싸움입니다.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교회 헌금에 중점을 두고, 직분에 포커스를 두고, 목사가 성직자임을 망각하고 물질이나 재산에 탐을 내고, 교회분규로 인해 법정투쟁, 용역비등으로 엄청난 하나님의 헌금을 날리기도 합니다. 교회에 용역들을 고용하여 폭력으로 상대편 교인들을 제압하기도 합니다. 이는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지옥나라의 모습입니다.
이는 교회에 빛대신 어둠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모습들은 교회의 윤리, 도덕, 행함의 빛에는 관심이 없고, 자체의 기득권찾기에 안주하고, 세상사람들이 뭐라든 관심없이 세속적인 법정에 송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미 성령이 떠난 교회들입니다.
천주교나 불교는 세상법정에 송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유독 기독교만 송사가 심합니다. 이제 카오스상태에 포스가 임해서 코스모스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임을 주장하고, 성령이 임하는 곳을 주장하려거든 모든 기득권과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빛은 중력장이 강한 쪽으로 구부러진다
아인쉬타인은 일반상대성원리에서 빛은 강한 힘이 있는 쪽으로 구부러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강력한 중력장이 있는 쪽으로 구브러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오는 별빛은 실제로는 지구쪽으로 구부려져있기에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위치와 원래의 위치는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가진 빛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하늘과 땅이라는 평행선상에서 걸어가고 있지만 빛된 그리스도인은 어느덧 나도 모르게 강력한 하나님의 힘이 미치는 쪽으로 인생행로가 구부러져서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빛은 강한 힘이 있는 쪽으로 구부러지기 마련입니다. 그 구부러진 곡선을 타고 가다가 힘이 없어 쓰러지거나 내 기운이 다하여 더 이상 갈 수 없을 때는 주님이 업고 갑니다.
모래판위의 발자국 시를 잘아시죠. 처음에는 발자국이 넷이었습니다. 하나는 내 발자국, 다른 하나는 주님 발자국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늘 함께 하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 발자국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에게 묻습니다. “주님 왜 나와 함께 걷지 않았습니까? ” 그 주님이 말씀합니다 “네가 힘이 없어 쓰러졌을 때 내가 대신 업고 갔단다” 우리가 하늘을 향해서 가다가 기운이 없고 힘이 없어 쓰러지면 주님이 대신 업고
갑니다.
영원한 중력장, 새하늘과 새 땅
태초에 하나님이 혼돈되고 공허한 땅에 "빛이 있으라" 하셨습니다. 2000년 전에는 하나님이 어두운 세상에 “참빛이 있으라” 고 하셨습니다. 이 참빛 되신 주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빛이 창조되어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의 어두운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빛이 창조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로운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서 새사람이 만들어집니다. 바울의 말대로 “너희가 새 사람을 입으라”. 교회도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이전투구는 어둠이 임한 교회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든 다음에는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주었던 것처럼 반드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빛을 창조하시고 새사람을 만든다음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거주처로 주십니다.
아직까지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하지못하고 새사람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되지 못한 사람과 교회에게는 죄송하지만 새 땅은 예비되어있지 않습니다. 그의 인생행로는 하나님이 계신 쪽으로 구부러지지 않고 하늘과 땅을 평행선으로 하여 어딘지도 모르게 계속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된 사람(교회)에 한해서는 새 예루살렘 도성에 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한 편의 강도는 좋은 예입니다. 그에게 갑자기 그리스도의 빛이 마음속에 창조됩니다. 그래서 새사람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영원한 빛이 지배하는 낙원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곳은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인 빛에 의해서 비쳐지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빛 자체에 의해서 비쳐지는 어둠과 고통과 질병이 없는 곳입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치심이라(계21:23)
빛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빛에 의하여 비췸을 받고 영원히 사는 사람들입니다. 불행하게도 일부 사람들의 기득권과 욕심으로 인해 교회가 세상에서 빛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인들 개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빛을 받은 교인과 교회는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할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언젠가 영원한 빛의 나라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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