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삶은, 창조, 계명, 심판으로 이어져
우리는 일상사를 살아가면서 때로는 우리의 이성과 상상을 초월한 행위를 경험하거나 비상식적인 사건을 체험하게 됩니다. 특히 히틀러가 유대인을 6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인 것 역시 우리의 모든 지성을 다동원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사실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요? 그것은 우리의 삶의 근간이 되어야 할 도덕과 윤리적 원칙이 실종되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어서 살아는 가지만 하나님의 계명에서 멀리 떠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멸되었기 때문에 상식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남는 것은 무질서와 비윤리 비상식적인 삶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가슴속에도 죄악의 본성을 타고 잠재의식으로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합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씨 가진 모든 열매맺는 나무를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외에 하나님은 인간이 풍족한 삶을 누리라고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다 허락하십니다.
궁극적인 복의 근원은 하나님
그래서 복의 근원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담인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만든 인간에게 이 땅에서 아무런 일 없이 장수하며 만수무강을 누리며 모든 것을 충족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하기 위하여 동산가운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보면서 옆에 있는 생명나무에 더 관심을 갖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마디 하십니다. 동산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은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계명을 어긴 인간
하나님이 인류에게 준 최초의 계명인 것입니다. 이 계명은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 준 것이지 저주를 위해서 준 것이 아닙니다. 이 계명을 지켜야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한 복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는 선악과를 따지 말고 생명나무 실과를 땄어야 했던 것입니다.
계명을 어긴 인간은 인간을 창조하자마자 하나님이 주신 말씀 땅을 정복하라, 땅에 충만하라,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의 약속에서는 점점 멀어져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와 율법, 번영은 함께 가는 것으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창조가 있는 곳에 계명이 있고 계명을 잘 지킨 댓가로서 생육과 번성이 축복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이 세가지 명사가 하나의 묶음으로서 가고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전체 이야기를 보면 창조가 있는 곳에 율법이 반드시 있고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얻고 못지키면 저주와 심판을 받는 이야기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할은 창조와 율법의 수여이고 인간의 역할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 이에 대한 결과를 부여받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의 평화는 무조건적이 아니고 조건적인 것입니다. 광야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 속에 강림하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말합니다. 두려워 말라 하나님의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게 하여 범죄치 안게 하려하심이라(출20:20)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20:24)
이처럼 율법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가 헛되게 되지 않기 위하여 인간사회와 마음에 질서를 부여하고 보다 번성된 복을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내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28:1-6)
율법의 속성은 이처럼 에덴동산을 떠나 하나님으로부터 관계가 멀어지고 죄악세상에서 무질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그마나 다시 찾게 하기 위한 귀한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창조와 바른관계를 다시 유지하게 하고 무한한 번영과 번성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항시 조건적이요 선택적인 이중성을 갖고있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죽으리라,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된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네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너의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신28:58)
이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속에서 복을 받고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의 창조와 역행하는 무질서한 삶속에서 심판과 저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간은 항시 율법의 네가티브한 면만을 선택해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 창조, 율법, 번영 대신 창조, 율법, 심판으로 도식화되어
결국 인간은 창조, 율법, 번영을 눈앞에 두고있으면서도 창조, 율법, 심판이라는 도식의 흐름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동산밖에서 쫏겨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점점 에덴동산으로부터 멀어져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그렇게도 많은 율법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새로운 삶이 창조되었으니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속에서 신앙생활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며 영원한 삶을 유지하도록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인데 인간은 결국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창조대신 무질서, 율법의 파괴, 심판이라는 굴레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한 인간은 다시 에덴동산에서 쫏겨남 같이 다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쫏겨나는 제 2의 실낙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새롭게 창조는 되었으나 가슴에 계명이 없는 민족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축복대신 심판과 파멸을 자초하게 되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알게됩니다. 계명을 상실한 민족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보면서도 간음을 행하다가 하루 아침에 2,3000명이 죽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유익 때문에 동생을 죽이기까지 하는 살인으로 연결되고 자신의 번영을 위하여 무리수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 방법은 남을 멸망시킴으로 인해 자신이 번영을 추구하게 되는 방법입니다. 에덴동산을 떠난 사람들은 늘 에덴동산의 풍요의 축복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그 축복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인데 계명을 준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번영과 성공, 충족함의 복을 얻으려 하니 인간적인 방법에 매달리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에 도달하려고 하고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사람을 경쟁상대로 보고 남을 이겨야 하고 권모술수를 써야하고 거짓을 말해야 하며 힘으로 남을 무리하게 극복하는 비성경적인 방법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게명을 지켜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방법이 아니라 율법의 준수못함을 인하여 심판에 이르게 된 백성들이 어리석게도 인위적인 힘으로 억지로 복을 추구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세계열강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땅을 정복하게 됩니다. 그것은 약소국을 총칼로 제압해서 땅을 정복하는 비열한 방법인 것입니다. 일제는 얼마나 많은 한민족의 삶을 파괴시켰습니까? 전두한 독재정권은 자신의 이기적인 번영과 축복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희생시켰습니까?
양심이 파괴된 사람은 계명을 떠난 인간
사람을 죽여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하나도 느끼지 않고 더 이상 죽이지 못해서 한스럽다고 말하는 인간도 있습니다. 감옥에 들어간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신의 죄를 수치스럽게 받아들여 깨닫는 것이 아니라 백그라운드가 없어서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계명을 떠난 인간은 양심이 점점 파괴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거듭나고 창조되었음에도 가슴속에 계명이 없기에 비기독교인 처럼 똑같이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다녀도 비상식과 비윤리적인 일들을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것처럼 착각을 하여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이 세상적인 방법으로 번영과 번성을 추구하려고합니다. 남을 기만하고 경쟁에서 승리하고 성공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합니다. 교회도 성장하고 부흥하기 위하여 남의 교인 빼오기를 하고있습니다. 분규교회는 윤리와 도덕이 모두 실종되었습니다.
땅을 정복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에 번성하기 위해 주일을 져버리고 자신의 사업체로 달려갑니다. 인색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할 헌금의 의무를 다하지 못합니다. 세상적인 일의 매력 때문에 주의 계명을 등지고 주야로 묵상하지 못합니다.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의 생각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앞서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보다는 자신의 의도가 너무 강해 주의 계명이 우리 가슴에 들어올 여지가 없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계명이 가슴 한가운데 없습니다. 외적인 에덴 동산속에 거하여 있지만 내면적인 실낙원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인은 얻음과 번영속에 있다고 착각을 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잃어버림이요, 쫏겨남이요, 심판과 저주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인이 구원의 반열인 에덴동산속에 거하면서 하나님과의 바른관계속에서 살아간다고 하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미 생명나무 실과보다는 선악과는 선택한 사람으로서 계명을 상실했고 실낙원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계명준수에 번영과 성공이 뒤따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계명을 상실한 실낙원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복락원속에서 살아간다고 착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계명을 상실한 번영은 일시적입니다. 계명없는 물질의 부와 사회적 풍요는 결국 그것이 심판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계명을 통한 번영과 번성이지 계명을 상실한 인위적인 번영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명을 지키지 않아 여러 많은 어려움을 당면하게 됩니다. 계명 없이 번영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명 없이 구원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중대한 착각입니다. 창조가 있는 곳에 반드시 계명이 있고 계명을 준수하는 곳에 반드시 번영과 성공이 있습니다. 발은 교회를 밟고있는데 마음은 세상을 밟고있습니다. 소설과 신문은 읽어도 주의 계명을 묵상하거나 읽지를 않습니다. 계명을 통하지 않은 사회적 성공과 부는 결국 자신의 영혼의 파멸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것은 창조의 법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오신 이유는 계명을 완성시키기 위해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계명을 완성시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함이니라(마5:1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율법은 실종되거나 상실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계명에 대해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옛계명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된다고 말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가 심판을 받게된다. 전에는 예물을 가져오면 받았지만 이제는 먼저 형제와 서로 사과하고 예물을 드려라.
여자를 보고 직접 간음을 하는 것이 죄였지만 이제는 마음에 음욕을 품으면 죄를 짓는 것이니라. 음행한 연고없이 아내를 버리면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버린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그도 간음한 자이니라.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왼뺨도 돌려대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것을 들었지만 이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는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 기도할 때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하게 해주겠다. 그리고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라.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다.
복있는 자는 심령이 겸손하고 가난한 자이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위하여 애통하는 자이다. 이웃을 보고 긍휼히 여기는 자이다. 그리고 성격이 온유한 자이다. 때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기도 하는 자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주님이 주신 계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새 백성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된 백성은 영적인 에덴 동산 속에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슴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인 에덴동산 가운데는 주님이 주신 이러한 선악과가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계명을 통해서 번영하고 성장해야하는 것입니다. 그 성장은 구약에서의 물질적인 번영과 번성, 외적인 땅의 정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물질은 가난해도 마음이 풍요로운 번영입니다. 물질로 정복한 땅은 없어도 내면에 하나님 나라의 땅이 넓은 것을 말합니다.
진정한 번영은 영원한 구원
외적인 성공은 못했어도 마음이 여유있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차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남이 실수를 했어도 너무 센서티브하게 반응하지 말고 그의 그런 입장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때그때 마다 반응을 해서 화를 내고 남을 짓밟아야 마음이 풀리는 것은 예수의 윤리가 아닌 것입니다. 조금 기다리다 보면 오해가 풀리게 되고 조금 참다보면 이해하게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땅에 충만한 것이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요, 땅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리라. 창조가 있는 곳에 계명이 있고 계명을 준수하는 곳에 번영과 번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번성과 번영의 마지막 꽃은 영원한 구원에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요? 그것은 우리의 삶의 근간이 되어야 할 도덕과 윤리적 원칙이 실종되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어서 살아는 가지만 하나님의 계명에서 멀리 떠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멸되었기 때문에 상식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남는 것은 무질서와 비윤리 비상식적인 삶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가슴속에도 죄악의 본성을 타고 잠재의식으로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합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씨 가진 모든 열매맺는 나무를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외에 하나님은 인간이 풍족한 삶을 누리라고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다 허락하십니다.
궁극적인 복의 근원은 하나님
그래서 복의 근원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담인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만든 인간에게 이 땅에서 아무런 일 없이 장수하며 만수무강을 누리며 모든 것을 충족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하기 위하여 동산가운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보면서 옆에 있는 생명나무에 더 관심을 갖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마디 하십니다. 동산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은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계명을 어긴 인간
하나님이 인류에게 준 최초의 계명인 것입니다. 이 계명은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 준 것이지 저주를 위해서 준 것이 아닙니다. 이 계명을 지켜야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한 복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는 선악과를 따지 말고 생명나무 실과를 땄어야 했던 것입니다.
계명을 어긴 인간은 인간을 창조하자마자 하나님이 주신 말씀 땅을 정복하라, 땅에 충만하라,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의 약속에서는 점점 멀어져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와 율법, 번영은 함께 가는 것으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창조가 있는 곳에 계명이 있고 계명을 잘 지킨 댓가로서 생육과 번성이 축복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이 세가지 명사가 하나의 묶음으로서 가고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전체 이야기를 보면 창조가 있는 곳에 율법이 반드시 있고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얻고 못지키면 저주와 심판을 받는 이야기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할은 창조와 율법의 수여이고 인간의 역할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 이에 대한 결과를 부여받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의 평화는 무조건적이 아니고 조건적인 것입니다. 광야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 속에 강림하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말합니다. 두려워 말라 하나님의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게 하여 범죄치 안게 하려하심이라(출20:20)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20:24)
이처럼 율법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가 헛되게 되지 않기 위하여 인간사회와 마음에 질서를 부여하고 보다 번성된 복을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내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28:1-6)
율법의 속성은 이처럼 에덴동산을 떠나 하나님으로부터 관계가 멀어지고 죄악세상에서 무질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그마나 다시 찾게 하기 위한 귀한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창조와 바른관계를 다시 유지하게 하고 무한한 번영과 번성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항시 조건적이요 선택적인 이중성을 갖고있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죽으리라,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된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네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너의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신28:58)
이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속에서 복을 받고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의 창조와 역행하는 무질서한 삶속에서 심판과 저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간은 항시 율법의 네가티브한 면만을 선택해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 창조, 율법, 번영 대신 창조, 율법, 심판으로 도식화되어
결국 인간은 창조, 율법, 번영을 눈앞에 두고있으면서도 창조, 율법, 심판이라는 도식의 흐름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동산밖에서 쫏겨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점점 에덴동산으로부터 멀어져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그렇게도 많은 율법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새로운 삶이 창조되었으니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속에서 신앙생활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며 영원한 삶을 유지하도록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인데 인간은 결국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창조대신 무질서, 율법의 파괴, 심판이라는 굴레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한 인간은 다시 에덴동산에서 쫏겨남 같이 다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쫏겨나는 제 2의 실낙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새롭게 창조는 되었으나 가슴에 계명이 없는 민족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축복대신 심판과 파멸을 자초하게 되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알게됩니다. 계명을 상실한 민족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보면서도 간음을 행하다가 하루 아침에 2,3000명이 죽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유익 때문에 동생을 죽이기까지 하는 살인으로 연결되고 자신의 번영을 위하여 무리수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 방법은 남을 멸망시킴으로 인해 자신이 번영을 추구하게 되는 방법입니다. 에덴동산을 떠난 사람들은 늘 에덴동산의 풍요의 축복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그 축복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인데 계명을 준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번영과 성공, 충족함의 복을 얻으려 하니 인간적인 방법에 매달리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에 도달하려고 하고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사람을 경쟁상대로 보고 남을 이겨야 하고 권모술수를 써야하고 거짓을 말해야 하며 힘으로 남을 무리하게 극복하는 비성경적인 방법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게명을 지켜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방법이 아니라 율법의 준수못함을 인하여 심판에 이르게 된 백성들이 어리석게도 인위적인 힘으로 억지로 복을 추구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세계열강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땅을 정복하게 됩니다. 그것은 약소국을 총칼로 제압해서 땅을 정복하는 비열한 방법인 것입니다. 일제는 얼마나 많은 한민족의 삶을 파괴시켰습니까? 전두한 독재정권은 자신의 이기적인 번영과 축복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희생시켰습니까?
양심이 파괴된 사람은 계명을 떠난 인간
사람을 죽여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하나도 느끼지 않고 더 이상 죽이지 못해서 한스럽다고 말하는 인간도 있습니다. 감옥에 들어간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신의 죄를 수치스럽게 받아들여 깨닫는 것이 아니라 백그라운드가 없어서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계명을 떠난 인간은 양심이 점점 파괴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거듭나고 창조되었음에도 가슴속에 계명이 없기에 비기독교인 처럼 똑같이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다녀도 비상식과 비윤리적인 일들을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것처럼 착각을 하여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이 세상적인 방법으로 번영과 번성을 추구하려고합니다. 남을 기만하고 경쟁에서 승리하고 성공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합니다. 교회도 성장하고 부흥하기 위하여 남의 교인 빼오기를 하고있습니다. 분규교회는 윤리와 도덕이 모두 실종되었습니다.
땅을 정복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에 번성하기 위해 주일을 져버리고 자신의 사업체로 달려갑니다. 인색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할 헌금의 의무를 다하지 못합니다. 세상적인 일의 매력 때문에 주의 계명을 등지고 주야로 묵상하지 못합니다.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의 생각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앞서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보다는 자신의 의도가 너무 강해 주의 계명이 우리 가슴에 들어올 여지가 없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계명이 가슴 한가운데 없습니다. 외적인 에덴 동산속에 거하여 있지만 내면적인 실낙원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인은 얻음과 번영속에 있다고 착각을 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잃어버림이요, 쫏겨남이요, 심판과 저주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인이 구원의 반열인 에덴동산속에 거하면서 하나님과의 바른관계속에서 살아간다고 하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미 생명나무 실과보다는 선악과는 선택한 사람으로서 계명을 상실했고 실낙원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계명준수에 번영과 성공이 뒤따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계명을 상실한 실낙원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복락원속에서 살아간다고 착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계명을 상실한 번영은 일시적입니다. 계명없는 물질의 부와 사회적 풍요는 결국 그것이 심판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계명을 통한 번영과 번성이지 계명을 상실한 인위적인 번영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명을 지키지 않아 여러 많은 어려움을 당면하게 됩니다. 계명 없이 번영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명 없이 구원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중대한 착각입니다. 창조가 있는 곳에 반드시 계명이 있고 계명을 준수하는 곳에 반드시 번영과 성공이 있습니다. 발은 교회를 밟고있는데 마음은 세상을 밟고있습니다. 소설과 신문은 읽어도 주의 계명을 묵상하거나 읽지를 않습니다. 계명을 통하지 않은 사회적 성공과 부는 결국 자신의 영혼의 파멸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것은 창조의 법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오신 이유는 계명을 완성시키기 위해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계명을 완성시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함이니라(마5:1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율법은 실종되거나 상실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계명에 대해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옛계명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된다고 말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가 심판을 받게된다. 전에는 예물을 가져오면 받았지만 이제는 먼저 형제와 서로 사과하고 예물을 드려라.
여자를 보고 직접 간음을 하는 것이 죄였지만 이제는 마음에 음욕을 품으면 죄를 짓는 것이니라. 음행한 연고없이 아내를 버리면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버린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그도 간음한 자이니라.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왼뺨도 돌려대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것을 들었지만 이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는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 기도할 때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하게 해주겠다. 그리고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라.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다.
복있는 자는 심령이 겸손하고 가난한 자이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위하여 애통하는 자이다. 이웃을 보고 긍휼히 여기는 자이다. 그리고 성격이 온유한 자이다. 때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기도 하는 자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주님이 주신 계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새 백성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된 백성은 영적인 에덴 동산 속에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슴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인 에덴동산 가운데는 주님이 주신 이러한 선악과가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계명을 통해서 번영하고 성장해야하는 것입니다. 그 성장은 구약에서의 물질적인 번영과 번성, 외적인 땅의 정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물질은 가난해도 마음이 풍요로운 번영입니다. 물질로 정복한 땅은 없어도 내면에 하나님 나라의 땅이 넓은 것을 말합니다.
진정한 번영은 영원한 구원
외적인 성공은 못했어도 마음이 여유있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차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남이 실수를 했어도 너무 센서티브하게 반응하지 말고 그의 그런 입장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때그때 마다 반응을 해서 화를 내고 남을 짓밟아야 마음이 풀리는 것은 예수의 윤리가 아닌 것입니다. 조금 기다리다 보면 오해가 풀리게 되고 조금 참다보면 이해하게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땅에 충만한 것이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요, 땅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리라. 창조가 있는 곳에 계명이 있고 계명을 준수하는 곳에 번영과 번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번성과 번영의 마지막 꽃은 영원한 구원에 있는 것입니다.
ⓒ 통합기독공보 & www.lawnchurch.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용인 기쁨의교회 성도들, 합신 제111회 총회 결의에 반대 성명
© 통합기독공보 용인 기쁨의교회(담임 정의호 목사) 성도들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제111회 총회의 기쁨의교회 관련 이단 규정 결의에 반대하는 성명서 ‘한국교회에 고하는 글’을 발표했다. 교회 측에 따르면 지난 9월 20일 주일 오후 본당에서 총회 결의 내용과 경위를 설명하는 자리가 열... -
조승호 GMS 신임 이사장 “모든 성도가 선교에 참여하는 시대 열겠다”
GMS 제15대 이사장 조승호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세계선교회(GMS) 제15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조승호 목사가 모든 교회와 성도가 함께 참여하는 선교 공동체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선교를 일부 사역자만의 책임으로 한정하지 않고, 청년과 전문인, 은퇴 이후의 성도들... -
[단신]기독문화선교회, 오산리기도원서 ‘신바람힐링성회’ 개최
사단법인 기독문화선교회가 오는 12월 7일부터 12일까지 경기도 파주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 대성전에서 ‘신바람힐링성회’를 개최한다. 이번 성회는 한국교회의 영적 회복과 성도들의 신앙 회복을 돕기 위한 자리로, 말씀 선포를 비롯해 찬양과 간증, 건강 강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
예장합동 서울강남노회 제102회 정기회 개최…21당회서 23당회로 확대
예장합동(총회장 정영교 목사) 서울강남노회(노회장 이길찬 목사)가 10월 19일 서울 동작구 대남교회(담임 김창원 목사)에서 제102회 정기노회를 개최했다. 이날 정기노회에는 목사 72명과 장로 12명이 참석했으며, 노회는 당회 수가 기존 21당회에서 23당회로 확대되는 등 교세 변화를 보인 가운데 각종 청원... -
전국호남협의회, 조승호 목사 GMS 이사장 취임 축하
예장합동(총회장 정영교목사) 제27회기 전국호남협의회(대표회장 조승호 목사)는 10월 15일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GMS 선교본부에서 임원회를 열고, GMS 이사장에 취임한 조승호 목사를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임원들은 조 목사의 취임을 축하하며, 차기회장 고광석 목사가 꽃다발과 임원들이 모은 ... -
GMS 2027 세계선교대회 슬로건, ‘교회여 다시 열방으로’
총회세계선교회(이사장 조승호 목사, 이하 GMS)가 2027 세계선교대회의 슬로건을 ‘교회여 다시 열방으로’로 정하고, 교회와 평신도가 함께 선교에 참여하는 대회를 만들기 위한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대회장인 조승호 GMS 이사장은 교회와 평신도 모두가 선교의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