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류측과는 다른 모습 보여주어야 ...잔류측은 희망없어
광성교회사태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필자는 미국에서 귀국한지 얼마 안돼, 시차적응 때문에 잠이 오지를 않아서 광성교회에 사태에 대해 뉴스엔조이에 글을 기고한 것이 동기가 되어, 광성교회의 사태를 관심하게 되었고, 언론쪽으로 빠지게 만들었다. 광성교회 사태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뀐 것이다. 필자는 언론에도 관심이 없었고 언론인도 아니다. 한국에서 목회를 하고자 했으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교회의 방향성을 바로 인도해 주겠다는 신념으로 글을 썼다. 감리교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필자와 이해관계가 없거나 상관없는 일들이지만 교회법정신과 방향성을 몰라서 대립을 하고 혼돈에 빠져있다고 생각을 하여 글을 올리게 되었다.
개혁의 대상은 기득권 세력들, 그들의 공통점은 사소한 약점 잡고 늘어져
최근 감리교사태를 보면서 무엇이 개혁이고, 누가 개혁대상인지를 혼돈스럽게 하고 있다. 김국도목사가 개혁의 대상인줄 알았는데 개혁의 대상은 다른 데 있었다. 김국도목사 역시 학벌에 있어서는 철저히 주변인 이었다. 광성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이성곤목사가 개혁의 대상인줄 알았는데 개혁의 대상은 교단잔류측이었다.
필자는 노무현 정권을 지지했지만, 결국 그 안에는 또 다른 부패와 기득권 세력들이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노무현대통령은 개혁을 추진하다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부패의 온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자살한 것이다. 진정 개혁세력은 어쩌면 개혁을 말하지도 않고, 개혁을 명분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개혁의 내용이 없거나 행위만을 따지는 어설픈 개혁자들은 개혁자들이 될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노조도 처음에는 교회를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남의 단점을 잡고 금품을 추구하는 부패단체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개혁의 대상은 개혁을 말하는사람들이었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설프게 개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항시 눈에 보이는 행위에만 촛점을 두고, 본질에는 관심이 없다.
광성교회 사태도 마찬가지이다. 김국도목사가 100만원 벌금형을 받았고, 이성곤목사가 경박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이들의 사소한 행위가 도덕적 명분과 정당성을 상실할만한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를 지적하는 것이 개혁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이러한 행위에 관심을 두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득권세력들이 개혁의 대상인 것이다.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외적인 사소한 행위를 갖고서 빌미를 잡고 늘어지면서 자신들은 쥐고있는 기득권을 계속 향유하려 하고 있다.
필자는 이성곤목사측이 개혁대상이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실제로 필자가 이성곤목사측반대입장에 선 것은 이성곤목사측이 용역들을 데리고 와서 폭력을 하고, 신성한 교회당에 경호원을 끌어들여 물리력으로 상대교인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교인총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성곤목사가 자신을 길러준 김창인 목사에 대해서 검찰에 고소고발을 7번씩 한 것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성곤목사가 고소고발한 것이 아니라 신도들이 한 것이다.
처음에 이성곤목사 반대측은 얻어맞고, 핍박을 당하고, 교회당을 찬탈당하며, 나름대로 도덕적 명분이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폭력을 당한 사람들에 대해서 취재를 하고, 언론에 내보내 인권침해를 막고자 했다. 미국에서 온지 얼마 안되어 인권에 대해서 민감할 때였다.
잔류측, 4,300만원 돌려주어야
그러나 잔류측의 도덕적 명분은 627사태 때, 이성곤목사측이 행한 똑같은 방법을 사용함으로, 즉 교회당을 폭력으로 점령함으로 명분을 상실하고 말았다. 양측은 용역들을 동원하는데 익숙했고, 경찰들은 교회분쟁에 속수무책이었다. 교단잔류측 역시 627사태를 맞이하면서 이성곤목사측의 금품까지 절도했다. 4,300만원의 현금을 가로채어 지금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
당시 동남노회 소속 N 목사는 장신대에 와서 4,300만원의 경로를 세세하게 기록했었다. 그는 당시 4,300만원에 관련된 H장로, K장로, K집사의 이름을 노트에 기록하기도 했다. 이 돈에 대해서 서로 나누어 가졌다는 설도 있고, 정선 카지노에 가서 수표를 현금으로 세탁했다는 말도 들렸다. 분명한 사실은 당시 N목사가 쓴 기록자들이 돈을 나누어 가진 것으로 추측이 되었다. 이들은 모두 원로목사측의 사람들이었다. 두 장로는 영신여고 이사로 되어있다. 그리고 쪽지에 4,300만원의 흐름과 이름을 거론한 N목사는 이에 대한 출처와 자금의 흐름을 밝혀야 한다. 이 말은 입으로 회자되어 광성교회전체에 퍼졌다.
K집사는 미국으로 아예 가버렸기 때문에 돈의 출처를 파악하기도 어려운 상태이다. 당시 627사태는 영신학교팀이 주축이 되어 일을 성사했다. 영신여고 교사, 운전기사, 부목사들이 적극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사태로 인해 교단잔류측은 도덕성의 명분을 완전히 상실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앉았으니 잔류측이 도덕적 정당성의 우위를 점유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남의 헌금은 돌려주어야 한다. 아니면 절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남의 헌금을 가져갔다면 아간과 같은 행위로 하나님이 결코 잔류측을 축북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후 잔류측은 천문학적인 변호사비, 용역비 등, 불투명한 재정, 10억으로 목회자 방출, 목회자의 청빙과정, 영신여고와의 관계 등 부패의 온상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특히 최근에는 원로목사와 관련한 횡령혐의 등이 추가되면서 도덕적 정당성은 더욱 힘들게 되었다. 이외에 영신여고팀과 관련한 장로들의 당회내 주도권잡기와 무분별한 원로의 지지는 교인들의 이맛살을 더욱 찌푸리게 했다. 목회자 청빙과 관련한 자기 사람심기는 광성교회의 부패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성곤목사측도 변해야
이성곤목사측 역시 변한 것이 없었다. 특히 교회당을 차지하려고 하는 소유욕은 변하지를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어떻게 해서든지 건물을 차지하거나 반으로 나누는 것이 목표이다. 잔류측은 어떻게해서든지 지키는 것이 목표이다. 건물로 인해서 양측이 범한 죄악은 기독교의 퇴락을 부채질하여 왔다. 누구도 마음을 비우지 못함으로 도덕적 정당성은 누구에게도 없다.
특히 잔류측은 4,300만원의 절도와 천문학적인 용역비와 변호사비, 원로의 주도권잡기 등으로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교회성장은 사실상 어렵다. 일단 하나님이 축복을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끼리의 잔치상만 벌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원로측은 교회성장과 발전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기득권만 관심있는 사람들이다. 기득권에 관심이 없다면 원로는 다시 컴백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광성교회 사태는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세력과 기득권을 차지하려고 하는 세력들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기득권을 쌍방이 같이 유지하기를 원할 것이다. 이성곤목사측은 교회가 나뉜 이후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으나, 그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진정 신도들의 참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다수의 교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잔류측과 무엇인가 다르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양적인 머리수자만을 강조하는데 급급했다. 적어도 교회제직회방해라든가 교회건물을 차지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말았어야 했다.
이성곤목사측에 다수의 신도들이 있는 것 고려해 보아야
필자가 보기에 양측은 도덕적 정당성이 없지만, 이성곤목사측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이성곤목사가 정말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4,000여명이나 되는 신도들이 모이겠느냐 말이다. 현재 그들은 예산이 약 60억에 해당한다. 특히 교회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 대부분이 이성곤목사측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이 이성곤목사를 선택한 것은 독선으로인한 김창인목사의 목회에 싫증을 냈기 때문이다. 또한 목사위임예배를 한 상태에서 이성곤목사를 불합리하게 내보내는데 염증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성곤목사는 당시 녹음을 하는 등, 장로들을 당회장실로 개인적으로 불러 원로목사에 대한 얘기를 하며, 커피여인, 포도주사건등으로인해 오해를 받을만한 경박한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많은 신도들이 따르는 것은 이성곤목사가 그렇게 부도덕한 사람으로서 평가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곤목사를 따르는 4,000여명의 신도들을 모두 바보 취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외되고 주변부에 있던 사람들이 이성곤목사를 중심으로 뭉쳤다. 그들은 이성곤목사로부터 희망을 보았는지도 모르고, 이성곤목사가 애매하게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이제 이성곤목사측에 있는 4,000여명의 신도들을 모두 매도해서는 안될 것이며 그들이 왜 이성곤목사를 선택하고, 그를 따랐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교단잔류측, 원로세력있는 한 새로운 목사와도 희망없어
교단잔류측은 원로목사가 계속 설교해도 신도들이 늘어나지를 않는다. 이는 교단잔류측이 목회자청빙, 비정상적인 당회의 운영, 기득권의 추구, 영신여고팀들의 교회운영 주도, 원로의 횡령 등 여전히 기득권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려하고 철저한 자기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성교회 차기청빙목사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 올 가능성이 많다.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사람들을 앉혀 놓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일부 당회원들의 기득권적 권위의식이라든가, 신도들의 맹종주의적 의식을 보았을 때 희망이 없다.
이성곤목사측이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려면 건물에 관심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4,000여명이나 되는 신도들이라면 무엇을 해도 할 수 있다. 도덕적 명분과 약자로서의 명분을 갖고, 소유욕을 떨쳐버리고 진정한 교인들의 교회만을 생각한다면 더 나은 다음단계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다수의 신도들이 이성곤 목사를 따르는 데는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건물중독증에서 헤어나와야
법적으로 패소하기 전에 미리 신앙적으로 외형적인 건물에 대한 마음을 비우고 신도들의 힘으로 새로운 교회를 세울 때 보다 의미있을 것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기 때문에 돈을 사랑하면서 예수를 믿는다고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광성교회라는 건물을 차지하려고 하는 이유는 재산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이목사측은 건물보다 훨씬 단가가 높은 진정한 건물, 교인들을 차지하고 있다.
수천억이상의 가치있는 교인들을 확보하고 있단 말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이 한 명도 아니고 4,000 여명인데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검을 추구하는 자는 검으로 망하고, 소송을 추구하는 자는 소송으로 망하듯이, 건물을 추구하는 자들은 건물로 망하게 되어 있다. 이성곰목사측은 무형의 높은 건물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유형의 건물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어리석음을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건물중독증일 것이다.
교단잔류측은 지금으로서는 부패농도가 짙어 희망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희망을 갖기에는 신도들이 너무나도 맹종적이고 개혁의 의지가 전혀 없고, 원로의 입김이 너무 강하고, 안수집사들조차 기득권세력에 편승하려고 하고 있으며, 신도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목사라면 헐뜯기 일쑤이고, 원로측은 자신들이 원하는 목사를 세우려하기 때문에 신실하고 참신한 목사가 오기 어려운 상태이다. 월급목사가 올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교회가 부패해 있으면 훌륭한 목사가 올 가능성이 적다. 훌륭한 목사라면 눈이 나쁘지 않을 텐데 이런 교회에 오겠느냐 말이다. 신도들은 좋은 목사를 알아 볼 수 있는 눈이 없고, 훌륭한 목사는 부패한 교회를 찾을리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 나물의 그 밥이 되는 목사가 결국 오게 되는 것이다. 싫으면 10억을 주어서 내보내면 된다. 그것이 광성교회의 수준이다.
그러므로 잔류측이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했을 때 이성곤목사측은 잔류측이 추구하는 소유욕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도덕적 명분과 정당성만 있다면 교회는 더 부흥할 것이고, 교단복권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소유욕만 버린다면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수의 신도들이 광성교회 건물보다 수백배의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신도들보다 돈을 사랑하는 유혹을 견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건물 재산에 관심하는 양측은 도덕적 명분에 대해서 더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 잔류측은 교회당건물을 얻었다고 해서 신도들이 더 늘어나지도 않았고, 교회재정도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이며, 기득권자들은 계속 기득권을 향유하고 있고, 이성곤목사측은 예배당이 없다고 해도 신도들이 줄지 않는다. 건물에 관심을 두었을 때, 양측은 모두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경험해야 했고, 사회인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심령이 가난하지 않기에 천국이 주어지지 않았다.
재판에서 승리하는 것이 진정 승리가 아니라 하늘나라 하나님의 법정에서 승리하는 것이 진정 승리일 것이다. 건물을 차지하라는 판결이 과연 신앙인에게 진정한 승리일 것인가? 성경에 의하면 건물에서 떠나라는 것이 진정한 축복의 선언이 아닐까? 아브라함은 떠남으로부터 복의 근원이 되었고 이삭 역시 나눠줌으로 복의 조상이 되었다.
광성교회측은 재판으로 일비일희할 것이 아니라 성경과 그리스도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총론적인 입장에서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이다. 신앙의 정체성이 흔들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가진 자는 나누어주고, 양보하고, 없는 자는 억지로 뺏으려 하지 말고, 미래를 하나님께 맡길수는 없을까? 역사적으로 볼 때 기득권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신앙인들의 삶이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청교도들이 그랬다. 그들이 버렸을 때 얻는 축복은 상상을 초월했다. 광성교회가 떠나고 포기하고 버리는 자에게 하나님이 더 축복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고난이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그래서 필자는 교회의 방향성을 바로 인도해 주겠다는 신념으로 글을 썼다. 감리교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필자와 이해관계가 없거나 상관없는 일들이지만 교회법정신과 방향성을 몰라서 대립을 하고 혼돈에 빠져있다고 생각을 하여 글을 올리게 되었다.
개혁의 대상은 기득권 세력들, 그들의 공통점은 사소한 약점 잡고 늘어져
최근 감리교사태를 보면서 무엇이 개혁이고, 누가 개혁대상인지를 혼돈스럽게 하고 있다. 김국도목사가 개혁의 대상인줄 알았는데 개혁의 대상은 다른 데 있었다. 김국도목사 역시 학벌에 있어서는 철저히 주변인 이었다. 광성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이성곤목사가 개혁의 대상인줄 알았는데 개혁의 대상은 교단잔류측이었다.
필자는 노무현 정권을 지지했지만, 결국 그 안에는 또 다른 부패와 기득권 세력들이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노무현대통령은 개혁을 추진하다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부패의 온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자살한 것이다. 진정 개혁세력은 어쩌면 개혁을 말하지도 않고, 개혁을 명분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개혁의 내용이 없거나 행위만을 따지는 어설픈 개혁자들은 개혁자들이 될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노조도 처음에는 교회를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남의 단점을 잡고 금품을 추구하는 부패단체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개혁의 대상은 개혁을 말하는사람들이었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설프게 개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항시 눈에 보이는 행위에만 촛점을 두고, 본질에는 관심이 없다.
광성교회 사태도 마찬가지이다. 김국도목사가 100만원 벌금형을 받았고, 이성곤목사가 경박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이들의 사소한 행위가 도덕적 명분과 정당성을 상실할만한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를 지적하는 것이 개혁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이러한 행위에 관심을 두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득권세력들이 개혁의 대상인 것이다.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외적인 사소한 행위를 갖고서 빌미를 잡고 늘어지면서 자신들은 쥐고있는 기득권을 계속 향유하려 하고 있다.
필자는 이성곤목사측이 개혁대상이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실제로 필자가 이성곤목사측반대입장에 선 것은 이성곤목사측이 용역들을 데리고 와서 폭력을 하고, 신성한 교회당에 경호원을 끌어들여 물리력으로 상대교인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교인총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성곤목사가 자신을 길러준 김창인 목사에 대해서 검찰에 고소고발을 7번씩 한 것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성곤목사가 고소고발한 것이 아니라 신도들이 한 것이다.
처음에 이성곤목사 반대측은 얻어맞고, 핍박을 당하고, 교회당을 찬탈당하며, 나름대로 도덕적 명분이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폭력을 당한 사람들에 대해서 취재를 하고, 언론에 내보내 인권침해를 막고자 했다. 미국에서 온지 얼마 안되어 인권에 대해서 민감할 때였다.
잔류측, 4,300만원 돌려주어야
그러나 잔류측의 도덕적 명분은 627사태 때, 이성곤목사측이 행한 똑같은 방법을 사용함으로, 즉 교회당을 폭력으로 점령함으로 명분을 상실하고 말았다. 양측은 용역들을 동원하는데 익숙했고, 경찰들은 교회분쟁에 속수무책이었다. 교단잔류측 역시 627사태를 맞이하면서 이성곤목사측의 금품까지 절도했다. 4,300만원의 현금을 가로채어 지금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
당시 동남노회 소속 N 목사는 장신대에 와서 4,300만원의 경로를 세세하게 기록했었다. 그는 당시 4,300만원에 관련된 H장로, K장로, K집사의 이름을 노트에 기록하기도 했다. 이 돈에 대해서 서로 나누어 가졌다는 설도 있고, 정선 카지노에 가서 수표를 현금으로 세탁했다는 말도 들렸다. 분명한 사실은 당시 N목사가 쓴 기록자들이 돈을 나누어 가진 것으로 추측이 되었다. 이들은 모두 원로목사측의 사람들이었다. 두 장로는 영신여고 이사로 되어있다. 그리고 쪽지에 4,300만원의 흐름과 이름을 거론한 N목사는 이에 대한 출처와 자금의 흐름을 밝혀야 한다. 이 말은 입으로 회자되어 광성교회전체에 퍼졌다.
K집사는 미국으로 아예 가버렸기 때문에 돈의 출처를 파악하기도 어려운 상태이다. 당시 627사태는 영신학교팀이 주축이 되어 일을 성사했다. 영신여고 교사, 운전기사, 부목사들이 적극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사태로 인해 교단잔류측은 도덕성의 명분을 완전히 상실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앉았으니 잔류측이 도덕적 정당성의 우위를 점유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남의 헌금은 돌려주어야 한다. 아니면 절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남의 헌금을 가져갔다면 아간과 같은 행위로 하나님이 결코 잔류측을 축북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후 잔류측은 천문학적인 변호사비, 용역비 등, 불투명한 재정, 10억으로 목회자 방출, 목회자의 청빙과정, 영신여고와의 관계 등 부패의 온상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특히 최근에는 원로목사와 관련한 횡령혐의 등이 추가되면서 도덕적 정당성은 더욱 힘들게 되었다. 이외에 영신여고팀과 관련한 장로들의 당회내 주도권잡기와 무분별한 원로의 지지는 교인들의 이맛살을 더욱 찌푸리게 했다. 목회자 청빙과 관련한 자기 사람심기는 광성교회의 부패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성곤목사측도 변해야
이성곤목사측 역시 변한 것이 없었다. 특히 교회당을 차지하려고 하는 소유욕은 변하지를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어떻게 해서든지 건물을 차지하거나 반으로 나누는 것이 목표이다. 잔류측은 어떻게해서든지 지키는 것이 목표이다. 건물로 인해서 양측이 범한 죄악은 기독교의 퇴락을 부채질하여 왔다. 누구도 마음을 비우지 못함으로 도덕적 정당성은 누구에게도 없다.
특히 잔류측은 4,300만원의 절도와 천문학적인 용역비와 변호사비, 원로의 주도권잡기 등으로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교회성장은 사실상 어렵다. 일단 하나님이 축복을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끼리의 잔치상만 벌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원로측은 교회성장과 발전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기득권만 관심있는 사람들이다. 기득권에 관심이 없다면 원로는 다시 컴백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광성교회 사태는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세력과 기득권을 차지하려고 하는 세력들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기득권을 쌍방이 같이 유지하기를 원할 것이다. 이성곤목사측은 교회가 나뉜 이후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으나, 그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진정 신도들의 참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다수의 교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잔류측과 무엇인가 다르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양적인 머리수자만을 강조하는데 급급했다. 적어도 교회제직회방해라든가 교회건물을 차지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말았어야 했다.
이성곤목사측에 다수의 신도들이 있는 것 고려해 보아야
필자가 보기에 양측은 도덕적 정당성이 없지만, 이성곤목사측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이성곤목사가 정말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4,000여명이나 되는 신도들이 모이겠느냐 말이다. 현재 그들은 예산이 약 60억에 해당한다. 특히 교회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 대부분이 이성곤목사측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이 이성곤목사를 선택한 것은 독선으로인한 김창인목사의 목회에 싫증을 냈기 때문이다. 또한 목사위임예배를 한 상태에서 이성곤목사를 불합리하게 내보내는데 염증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성곤목사는 당시 녹음을 하는 등, 장로들을 당회장실로 개인적으로 불러 원로목사에 대한 얘기를 하며, 커피여인, 포도주사건등으로인해 오해를 받을만한 경박한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많은 신도들이 따르는 것은 이성곤목사가 그렇게 부도덕한 사람으로서 평가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곤목사를 따르는 4,000여명의 신도들을 모두 바보 취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외되고 주변부에 있던 사람들이 이성곤목사를 중심으로 뭉쳤다. 그들은 이성곤목사로부터 희망을 보았는지도 모르고, 이성곤목사가 애매하게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이제 이성곤목사측에 있는 4,000여명의 신도들을 모두 매도해서는 안될 것이며 그들이 왜 이성곤목사를 선택하고, 그를 따랐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교단잔류측, 원로세력있는 한 새로운 목사와도 희망없어
교단잔류측은 원로목사가 계속 설교해도 신도들이 늘어나지를 않는다. 이는 교단잔류측이 목회자청빙, 비정상적인 당회의 운영, 기득권의 추구, 영신여고팀들의 교회운영 주도, 원로의 횡령 등 여전히 기득권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려하고 철저한 자기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성교회 차기청빙목사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 올 가능성이 많다.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사람들을 앉혀 놓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일부 당회원들의 기득권적 권위의식이라든가, 신도들의 맹종주의적 의식을 보았을 때 희망이 없다.
이성곤목사측이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려면 건물에 관심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4,000여명이나 되는 신도들이라면 무엇을 해도 할 수 있다. 도덕적 명분과 약자로서의 명분을 갖고, 소유욕을 떨쳐버리고 진정한 교인들의 교회만을 생각한다면 더 나은 다음단계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다수의 신도들이 이성곤 목사를 따르는 데는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건물중독증에서 헤어나와야
법적으로 패소하기 전에 미리 신앙적으로 외형적인 건물에 대한 마음을 비우고 신도들의 힘으로 새로운 교회를 세울 때 보다 의미있을 것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기 때문에 돈을 사랑하면서 예수를 믿는다고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광성교회라는 건물을 차지하려고 하는 이유는 재산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이목사측은 건물보다 훨씬 단가가 높은 진정한 건물, 교인들을 차지하고 있다.
수천억이상의 가치있는 교인들을 확보하고 있단 말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이 한 명도 아니고 4,000 여명인데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검을 추구하는 자는 검으로 망하고, 소송을 추구하는 자는 소송으로 망하듯이, 건물을 추구하는 자들은 건물로 망하게 되어 있다. 이성곰목사측은 무형의 높은 건물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유형의 건물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어리석음을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건물중독증일 것이다.
교단잔류측은 지금으로서는 부패농도가 짙어 희망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희망을 갖기에는 신도들이 너무나도 맹종적이고 개혁의 의지가 전혀 없고, 원로의 입김이 너무 강하고, 안수집사들조차 기득권세력에 편승하려고 하고 있으며, 신도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목사라면 헐뜯기 일쑤이고, 원로측은 자신들이 원하는 목사를 세우려하기 때문에 신실하고 참신한 목사가 오기 어려운 상태이다. 월급목사가 올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교회가 부패해 있으면 훌륭한 목사가 올 가능성이 적다. 훌륭한 목사라면 눈이 나쁘지 않을 텐데 이런 교회에 오겠느냐 말이다. 신도들은 좋은 목사를 알아 볼 수 있는 눈이 없고, 훌륭한 목사는 부패한 교회를 찾을리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 나물의 그 밥이 되는 목사가 결국 오게 되는 것이다. 싫으면 10억을 주어서 내보내면 된다. 그것이 광성교회의 수준이다.
그러므로 잔류측이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했을 때 이성곤목사측은 잔류측이 추구하는 소유욕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도덕적 명분과 정당성만 있다면 교회는 더 부흥할 것이고, 교단복권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소유욕만 버린다면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수의 신도들이 광성교회 건물보다 수백배의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신도들보다 돈을 사랑하는 유혹을 견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건물 재산에 관심하는 양측은 도덕적 명분에 대해서 더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 잔류측은 교회당건물을 얻었다고 해서 신도들이 더 늘어나지도 않았고, 교회재정도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이며, 기득권자들은 계속 기득권을 향유하고 있고, 이성곤목사측은 예배당이 없다고 해도 신도들이 줄지 않는다. 건물에 관심을 두었을 때, 양측은 모두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경험해야 했고, 사회인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심령이 가난하지 않기에 천국이 주어지지 않았다.
재판에서 승리하는 것이 진정 승리가 아니라 하늘나라 하나님의 법정에서 승리하는 것이 진정 승리일 것이다. 건물을 차지하라는 판결이 과연 신앙인에게 진정한 승리일 것인가? 성경에 의하면 건물에서 떠나라는 것이 진정한 축복의 선언이 아닐까? 아브라함은 떠남으로부터 복의 근원이 되었고 이삭 역시 나눠줌으로 복의 조상이 되었다.
광성교회측은 재판으로 일비일희할 것이 아니라 성경과 그리스도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총론적인 입장에서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이다. 신앙의 정체성이 흔들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가진 자는 나누어주고, 양보하고, 없는 자는 억지로 뺏으려 하지 말고, 미래를 하나님께 맡길수는 없을까? 역사적으로 볼 때 기득권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신앙인들의 삶이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청교도들이 그랬다. 그들이 버렸을 때 얻는 축복은 상상을 초월했다. 광성교회가 떠나고 포기하고 버리는 자에게 하나님이 더 축복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고난이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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