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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vs 절망의 신학

  • 황규학
  • 입력 2010.04.06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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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이 우리 사회에 희망을 주어야
희망의 인문학
 
희망의 인문학은 미국에서 한 인문학자가 노숙자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쳐 그들의 삶을 깨워, 그들이 스스로 서 나가는 얘기를 담고 있다. 저자 얼 쇼리스는 우연이 죄수를 면회하러 갔다가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차이를 이해하고, 빈민계층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쳐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성찰하도록 도와준다.
 
그의 강의를 듣는 많은 빈민계층과 노숙자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깨닫고 자존감을 회복하여 무기력하게 살지 않고 새로운 희망을 안고 직장을 얻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나가는 것이다. 인문학을 통해 생각하는 방법을 하게 되고, 자신의 삶의 질을 파악하게 되어 새로운 인생으로서 살아나가게 되는 것이다.
 
얼쇼리는 클레민스코스를 만들어 노숙자, 빈민, 죄수 등 최하층 빈민들에게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친다. 그들을 훈련시켜 자신을 돌아보는 밑천으로 자존감을 얻고 삶의 질을 높여 한 사회의 질을 높이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준다.
 
저자는 인문학이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무력의 포위망에서 벗어나 일상을 자율적이고 자신감 있게 새로 시작하도록 이끌어 준다고 말한다. 틀에 박힌 삶의 틀을 깨고 인간적인 삶,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인문학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희망의 인문학은 우리나라에도 소개돼,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많은 노숙자들과 빈민계층들이 새로이 일어서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처음에는 갈등과 대립도 많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갖고 제 2의 인생을 새로이 살아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서울시에서도 장려해 서울대, 경희대, 성공회대, 서울 시립대에서 강좌를 오픈하고 있다.
 
절망의 신학
 
불행한 것은 우리의 신학이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는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신학이 삼위일체, 이단논쟁, 종말론, 마리아 월경잉태론, 어설픈 성서비평, 어려운 신학자들의 신학소개 등을 논하고, 교회성장이나 축복 등 풍요와 다산의 신학을 추구할 때,  사람들은 교회를 점점 멀게만 느끼고 있다. 신학이 이 사회에 희망을 던져 주지 못하고 있다.
 
교회도 노숙자들이나 빈민층들에게 희망의 신학을 가르쳐 스스로 살아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해주기 보다는 가난한 자들에게 매주 1,000-2,000 원 정도를 줌으로 물질에 중독이 들게 하고 있다. 또한 풍요와 다산을 지나치게 요구해 기복신학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는 절망의 신학으로 인해 기독교가 점점 중심부에 자리 잡지 못하고, 주변으로 밀려가고 있다. 신학이 이 사회에 희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축복의 신학, 풍요와 다산의 신학, 성장의 신학은 기독교의 본질을 점점 흐리게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교계가 다시 일어나 희망의 신학을 할 수 있도록 해서 희망의 인문학 못지않게 근본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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