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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일목사는 진정한 빠삐용 이었다

  • 황규학
  • 입력 2010.04.1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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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는 김목사와 약속지키기 위해 명성수련원에서 기도
필자는 김재일목사와 같이 이번주 금요일 같이 가기로했던 약속을 지키기위해서 명성교회수련원에 왔다. 방을 배정받아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죄송합니다. 김재일 목사와 같이 와야 하는데 저혼자 왔습니다" 하자 눈물이 났다. 그래서 김재일 목사가 하고 싶었던 기도를 알려 달라고 했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말이다. 
 
산기슭 기도방에 가서 김재일 목사가 왔더라면 무엇을 기도했을까를 곰곰해 생객해 보았다. 김목사는 하나님께 복종과 자신은 수동적인 존재라는 것을 늘 말하곤 했다. 김목사는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도 필자에게 전화해서 "황목사, 임지를 위해 계속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하는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라고 했다.
 
김목사는 필자를 만날 때마다, 연평도에서 목회하면서 얻은 결론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전적인 수동적 존재라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육지로 가고 싶어도 풍랑이 불면 배가 출항하지 못하고, 연기가 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연평도를 방문했을 때에도 토요일 갔다가 월요일에 나올려고 했는데 월요일에 풍랑으로 인해 배가 출항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요일에 미리 하루 앞당겨 나오게 되었다.
 
김목사는 때에 따라서는 자신이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 놓곤하였다. 그래서 연평도에서 목회를 하다보니 죽음을 늘 끼고 살았기 때문에, 자신은 하나님 앞에 전적인 수동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김목사가 명성수련원에 와서 기도했더라면 김목사는 "저는 하나님앞에 수동적인 존재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제 삶을 맡기오니, 평생 하나님의 뜻만 순종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살게 하소서,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는 그러한 존재로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필자 역시 김목사의 기도를 떠올리며, "주님, 저 역시 수동적인 존재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기도했다.
 
김목사는 진정한 빠비용
 
김목사는 자신은 늘 유배지에 산다고 생각했다. 김목사가 이 곳에 왔더라면 이 곳은 유배지이기 때문에 영원한 자유로운 세상을 갈망하며, 유배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김목사는 연평도에서 낭떠러지 산을 필자에게 구경시키면서 이 곳이 빠삐용이 탈출한 감옥같다며 자신도 언젠가 연평도를 탈출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서 우리는 이 땅의 유배지를 탈출하는 진정한 빠삐용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김목사가 이번에 왔더라면 그는 진정한 빠삐용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또한 김목사는 자신의 임지를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김목사는 연평도에 1년 6개월 있으면서 주석책 66권을 거의 읽었다. 김목사는 자신이 미가서를 읽고 있다고 하면서, 참선지자들은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받는 말씀만을 받아 전한 선지자라며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펼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참예언자처럼 임지를 얻어서 목회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연평도교회에 떠나게 된 동기도 교회의 구조적인 부조리한 면을 지적했고, 당회원들과 걸끄러운 사이가 되자, 당회원들이 목사님이 무섭다고 하여, 교인들이 목사를 무서워해서는 안된다며 임지가 없어도 떠나기를 결정했던 것이다. 김목사는 여느 목사들처럼 얼굴이 부싯돌 처럼 두껍지를 못하였다. 노회나 총회에서 면직이나 교회를 떠나라고 판결을 해도 교회를 떠나지 않는 다른 목사들 처럼 '굳히기 한판'이라는 기술이 김목사에게는 없었다.     
 
또한 김목사가 기도원에 왔더라면 미가선지자 처럼 하나님 말씀에만 순종하는 외롭고 고독한 선지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김목사는 대학교때는 막시즘에 심취하여 운동을 하기도 하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노동운동을 했고, 장신대 학교이전 반대투쟁을 하기도 하였고, 신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농민운동, 유기농 농산물 보급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다시스로 간 요나, 영원한 니느웨에 안치
 
자신은 훗날 이러한 삶을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다시스로 간 요나라고 표현했다. 그는 연평도에 와서 2년 동안 하나님께 완전히 귀의한 후, 청빈한 목회자의 삶과 기독교사회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일본의 성자,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의 삶에 대한 번역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본도 여러번 드나들었다. 그래서 그는 고독한 선지자처럼 살기를 원한다고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님이 가기를 원했던 영원한 니느웨로 가버렸다.   
 
김목사는 이처럼 이념과 정신에 입각하여 소신 껏 산 사람이었고, 세상 떠나기 2년 전에 전적으로 하나님께 귀의해, 하나님께 미쳐 산 사람이었다. 그 이후 그는 주석책을 거의 다 읽었고, 매달 첫날 금식을 했고, 번역책을 통해서 청빈한 기독교공동체 만들기 운동을 펼치려고 하였다.               
 
그래서 김목사는 가가와 도요히코 같은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이외에 김목사는 평소에 필자에게 늘 아미쉬 공동체의 삶을 말하곤 하였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성서를 실천하면서, 노동을 하고 청빈한 삶을 기독교의 정신으로 하며, 원수들에 대해서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는 아미쉬공동체처럼 한국의 기독교 공동체도 이미쉬처럼 청빈한 삶과 하나님앞에 정직한 그러한 공동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필자의 임지를 위해 기도
 
필자는 꿇어엎드려 임지를 구한 김목사에게 영원한 임지를 주셨기 때문에 김목사가 하지 못한 사역을 실천하기 위해서 필자에게 임지를 줄 것을 기도했다.  또한 필자는 김목사의 가족들과 김목사가 남기고 간 번역의 출판, 이루고자 했던 이상적인 기독교 공동체의 방향성 제시 등 다양한 일들을 하고자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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