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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산기도원은 마음의 고향

  • 황규학
  • 입력 2010.09.27 20:20
  • 댓글 7
  • 글자크기설정

  • 대학문제, 민주화의 문제를 응답받은 곳
한얼산 기도원은 필자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곳으로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7년만에 돌아와서 20년만에 한얼산 기도원을 찾았을 때는 감회가 새롭기도 했다. 필자는 이 곳에서 대학의 문제, 민주화의 문제를 응답받은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군사관학교를 쳐서 떨어지고 이 곳에 와서 필자의 진로인 대학문제와 관련 하나님과 씨름을 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1987년 민주화투쟁을 하면서 한얼산기도원에서 금식기도하면서 민주화의 결과를 만끽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도 한얼산 기도원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서려있는 것이다. 특히 이천석목사의 유모섞인 구수한 설교는 지금도 귓속에 아른 거린다. 
 
이천석목사는 한국 부흥회가 무르익을 무렵 70-80년대를 풍미한 유명한 부흥강사 였다. 이목사가 출현하기 전에는 강달희 목사, 신현균목사가 한국부흥계를 주도했다. 이천석목사의 강점은 간증설교를 구수하고 쉽게 하기로 소문이 나있다. 설교시 유머가 끊이지를 않아 지루한 줄을 몰랐다. 
 
http://blog.naver.com/sys0691/20095281795 
 
 
그래서 할머니, 식자층 등 누구나 듣기 십게 설교를 했다. 그의 설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확신이 있었고 능력이 많이 나타났다. 그의 손만 닿으면 개만 아니면 방언이 터져나왔을 정도이다. 1980년도 광성교회에 이천석목사가 부흥회 왔을 때는 사람들이 인산인해였다. 당시 차범근도 간증을 하였다. 
 
이목사가 욕을 많이 한다고 하나 실제로 상소리로 욕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청자들은 얼마든지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구수한 농담섞인 얘기였다. 예를 들어 한 신도가 졸고 있으면 "저거 어제 밤에 뭐하다 왔어" 정도였다.
 


▲     © 황규학


 
이목사는 설교 도중, "천안의 삼거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어느날 기차에 탔는데 아주머니가  아이를 업고 있는데 아이의 다리가 소마아비가 걸려 흔들흔들 거리는 것을 보고, 다리가 "천안의 삼거리야"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다리를 잡고 기도했더니 소아마비가 낫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는 몰랐는데 아아의 어머니가 몇년 후 자신을 찾아와서 알았다는 것이다.
 
이목사는 중앙신학교를 졸업하고 근엄한 목사처럼 목회를 했다고 한다. 졸업하고 어느 교회에 부임을 받아 가서 거룩하고 근엄하게 목회를 했더니 100 여명 되는 신도들이 다 떠나고 부인이 혼자 남았다고  했다. 그래서 "회개하라"고 했더니 부인이 "너나 해라"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그 이후 이천석목사는 태백산 100일 기도에 들어가서 회개를 하고 새출발을 하게 된다. 이목사는 배가 고파서 근처에 있는 뱀, 개구리는 다 잡아먹었다고 한다. 거기서 은사를 받았고,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생긴대로 목회를 하라는 음성을 듣고, 자신은 뚝배기 처럼 생겼기 때문에 설교도 생긴대로 하기로 했다는 것. 생긴대로 목회를 하니 기도원과 교회도 부흥했다고 한다. 거룩함과 경건스런 모습은 자신에게 맞지 않기 때문에 집어치우고 자신의 성향에 맞는 목회를 해서 성공한 케이스 이다.
 
이목사로부터 많은 전과자들이 회개하고 새출발을 하게되었고, 목회자들도 많이 나오게 되었다.  이태희 목사, 김명수 목사, 김상철 목사, 박심목사는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들 이다. 윤은희 전도사가 며느리가 되어 훌륭하게 부흥회를 잘 인도했지만 그만 이영금 목사와 헤어지면서 서로는 다른 길로 가게 되었다.
 
이목사는 자녀들에 대해서도 자신이 화투를 좋아할 때 난 아이는 화투를 잘 치고, 신학교 갈 때 난 아이는 신앙이 좋았다고 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유모스런 설교였다. 그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이목사는 잘린 한다리에 고무다리를 붙여서 몇시간씩 부흥회를 인도하고, 부흥회가 끝나면 수천명을 일일히 안수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힘만 갖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     © 황규학


 
한얼산기도원은 찬양할 때도 신도들은 흥에 겨워했다. 찬양을 인도하는 전도사도 춤을 추면서 장중의 분위기를 압도해나갔고 북을 치는 여인은 신바람이 나서 치는 것 같았다.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이 애창곡이었다. 당시는 어떤 기도원에도 가도 한얼산기도원처럼 신나지는 않았다. 
       
필자는 서울대학을 들어간 것이외에 또다른 체험이야기를 말할 것이 있다. 필자는 대학이 제적된 이후 복학이 되지를 않아 총신대학에 다닌 적이 있었다. 87년 총신대학에 다닐 무렵, 전두환독재타도에 대해서 학생들은 심하게 데모를 했고 필자도 합류했다. 돌도 던지고 최류탄 냄새도 많이 맡았다. 현재도 필자의 배에 최류탄 파편이 많이 침투해 있다.
 
그 때 대학앞에서 데모를 하다가 화염병을 던지고 돌을 던지는 것에 대한 한계를 느꼈다. 전두한 대통령의 마음만 변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 동료신학생들에게 제의를 했다. 우리가 돌을 던져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전두환이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기도원에 가서 에스터처럼 3일 금식기도를 하자고 제안했다.
 
▲     © 황규학


 
그래서 청량리 역에서 모여 한얼산 기도원에 가기로 했다. 그러나 나온 학생은 현재 베다니 교회에서 목회를 하게된 마성호 목사뿐이었다. 그래서 마목사와 필자는 둘이서 한얼산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를 하였다. 데모하는 사람들이 최류탄 가스를 먹으면서 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원에서 금식을 하면서 기도하기로 했다. 그 때가 87년 6월 25일 경이었다.
 
우리는 기도원에서 민주화를 위한 금식기도를 하고 내려왔다. 그 이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서 노태우 전대통령이 나와서 629선언을 하면서 민주화의 신호를 알리고 전두환 독재가 사실상 종식되는 기회가 찾아왔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투쟁과 힘을 합해서 민주화를 가져다 준 것이지만, 필자의 금식기도가 합해진 것에 대해서 민주화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래서 필자에게 있어 한얼산 기도원은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곳이다. 대학문제, 민주화문제를 해결해 주신 곳이기도 하다. 또한 생전 처음 숭의 여고 출신인 예쁘장한 여학생과 조우해서 가슴이 쿵덕쿵덕 뛰는 것을 느끼기도 했던 곳이다. 얼마 전 우연히 그녀의 어머니를 처음 만나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당시 예수님을 만나고 한얼산 기도원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얼산기도원은 필자가 은사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대학과 민주화의 문제를 해결한 베델과 같은 곳이다. 헌얼산 기도원체험 이후 필자는 새벽기도 나가는 것을 거의 습관화 했다. 미국에서 교인들은 나오지 않고 미국교회는 문을 열지 않아도 집사람과 둘이서 새벽에 나가서 기도를 하곤했다.
 
▲   갈보리 장로교회   © 황규학

 
▲     © 황규학

 
교회에서 조금만 나가면 마이애미 해변가에 도달할 수 있었다.
 
▲     ©황규학

 
필자는 이 해변에서 고기를 잡곤했다.
 
▲     © 황규학

 

지난번 이천석목사가 생각나서 한얼산 기도원에 들러 집회에 참석하고 이영금 목사를 만나서 필자의 "한국교회, 상식이 운다"라는 책을 선물했더니 이영금 목사가 자신이 즐겨하는 부분이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     © 황규학


 
아직도 한얼산 기도원을 가거나 생각하면 30년 전에 이천석목사의 모습이 가물가물하다. 세월이 벌써 30년이 흘러 필자도 어느듯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어 인생을 정리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며칠전에는 안경을 벗어야만 앞에 글자가 보여 안경을 하나 맞추기도 했다. 벌써 눈이 노안이 된 것이다. 뛰는 것보다 걷는 것이 좋고, 걷는 것보다 점점 앉는 것이 편안해 진다. 점점 주님나라 가까이 갈 때가 온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계속 뛰기위해 매일 조기 축구를 한다.
 
▲     ©황규학

 
 
이제 더 열심히 뛰는 영적인 사람이 되기위해 한얼산기도원을 자주 찾아야 할 것 같다. 
 
지금쯤 천국에서 양다리로 거닐고 있는 이천석목사를 생각해 보면 거기서는 어떻게 지내실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손이 솥뚜껑 같아서 한번 안수를 하면 머리가 으서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한번 안수하면 병이 낫고, 방언이 터지는 이목사님의 능력있는 안수가 기다려 질 때가 있다.  앞으로는 더 자주 한얼산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면서 순수성을 회복하고 처음받았던 그 은혜를 간구하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고자 한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점점 일어나야만이 하나님께 사로잡힌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이천석목사의 설교가 그리워지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열정 때문이리라. 필자는 매주마다 은혜받는 설교는 기독교 방송국 아침 6시에 나오는 조용기 목사 설교이다. 조용기 목사 설교가 쉽고 은혜로우며 단순하며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천석목사는 누구보다도 살아움직이는 설교를 했기 때문에 영적으로 메말랐을 때 누구의 설교보다도 그리워지는 설교이다.    
 
 

▲     © 황규학

필자도 한 때 이천석목사처럼 훌륭한 부흥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미국장로교에 소속해 있었을 때 부흥사회원에 가입하기도 했다. 한국에 와서도 동료목사의 소개로 한국부흥단에 가입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부흥사와는 전혀 다른 방면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질적으로 훌륭한 부흥사기 되기위해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에서 성서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흥사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지금도 부흥사들처럼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건만 주어지면 전국 순회하면서 부흥사들처럼 부흥회를 인도하는 것이 꿈이다.
 
이처럼 한얼산기도원은 나의 영적인 고향이며, 낭만스런 추억과 야곱의 베델처럼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한 곳이기도 하다.  내 인생에 있어서 국가의 민주화를 위해서 금식기도를 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공교롭게도 하나님께서는 금식의 응답을 바로 보여주시어 한얼산 기도원은 민주화의 응답의 장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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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7

  • 야수교**2022-01-10 14:45:04

    영적인 훈련장인 한얼산기도원이 그리워 네이버검색을했다가 황규학님과 오만근님의 글을 읽고서 반가웠고 옛날 한얼산에서 은혜받았던기억이 나서 몇자 적어봅니다.
    40여년전(1981년)에 처음갔었고 그후로도 기도가하고싶울때마다 여러번갔었는데 이천석목사님은 한번도 못뵙고 며느님이신 은희전도사님 설교만들었었지만 은혜많이 받았었습니다 추억이생각나서 몇년전에 함갔더니 조용하고 규모도 많이 작아졌더군요 안타까웠습니다.한국교회에 한얼산기도원같은 영적으로 살아있는 기도원이 많아지고,그때같은 영적인 부흥시대가 다시왔으면하고 바래봅니다.

  • 안디바2011-06-25 13:38:46

    이영금과 윤은희가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으며 왜 이혼을 하게 되었는지 자세한 내막은 숨기면서 마치 일상적인 이혼인 것처럼 저들의 이혼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듯한 기자의 양심과 신앙에 문제가 있습니다.
    한얼산 기도원이 마음의 고향이라면 고향 원장의 숨겨진 사생활도 공개하는 것이 부패한 교회를 고발하는 기자로써 바른 태도가 아닌지요?
    말과 행동이 일치한 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 장신대생2011-06-14 14:20:25

    신문기사가 아니라 한 편의 수필이나 자서전을 읽은 가슴 뭉클함이 느껴지네요^^

    한얼산 기도원을 갈 때마다 저도 가슴이 뜨거워지곤 합니다.

    보기만 해도 왠지 모를 복음의 순수함이 전달되는 것 같아요.

    기자님의 훌륭한 부흥회에 참석할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 은사주**2011-06-14 01:27:31

    은사주의가 왜 성서적이 아닌가요? 그럼 예수님께서 병고치시고 귀신

  • sarah2010-12-13 16:49:42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지난시간 한얼산 기도원에서 지냈던 일들이 생각나네요. 약 25년전 입니다.
    겨울에 방에다 넣을 연탄의 밑불을 가지고 가다가 얼음판 위에서 넘어져 응급실로 갔던 일.... 그때 도와주셨던 김수환전도사님 지금은 어떻게 변하셨을까요....어디에선가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하고 계시기를 기도합니다. 고맙습니다.....

  • 개혁사상2010-09-30 17:44:22

    은사주의는 성경적이라 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오만근2010-09-29 18:57:01

    나도 이천석 목사님에 대한 추억이 있다.
    1967년 9월 경 육군을 만기전역후 대학 복학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는 중에 친구 어머니의 소개로 당시 용두동에 있는 한옥집 성복교회 이천석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으러 갔다. 전과 또는 편입을 하여 의과계통으로 진로를 바꾸어 보려는 생각을 말하고 기도를 부탁하자 한참을 기도하신 이 목사님은 법학으로 전과하여 이 사회에서 정의롭게 쓰임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도저히 말도 안되는 기도 응답이라 그냥 듣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그 이후 하던 공학을 전공하여 사회에 진출한 이후 또 업종을 바꾸어 사는 중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종종 이 목사님의 말씀이 귀에 쟁쟁거렸다. 그러던 중 교회의 문제로 법적 공방이 일일어나 그 다툼의 중심에서 많은 시련을 당했으나 최후로 법적인 승리를 하고 잃었던 교회를 되찾는 쾌거를 이룬 그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도 받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만 40년만의 응답이었다. 그 때 하라는 법학으로 편입 또는 전학을 했었더라면 판검사를 하게 되는"팔짜"(?)가 되지 않았을까 ?
    위 필자의 기사를 읽으며 신묘막측하신 하나님의 약속! 이천석 목사님의 예언의 능력을 새삼 느낀다.
    저 천국에서 내려다 보시며 "야! 이눔아! 너 내 말 안듣더니 고생하는구나" 하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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