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형택, 김지철, 정삼지목사는 영적 주변, 현실적 중심인
연못에 돌을 하나 던지면 중심을 시작으로 동심원은 주변으로 점점 크게 원을 그리면서 번져나간다. 어디를 가든지 중심이 있으면 주변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든지 미국을 가게 되면 한국에서는 큰소리 치는 중심인인 우리가 공항부터 철두철미하게 조사를 당하여 불이익과 차별을 당하는 주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사이는 지문검색까지 해야 하는 인권차별까지 당하고 있다.
필자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내 자신이 주변인이라는 의식을 처음 깨닫게 되었다. 태어나면서 줄 곧 한국에서 계속 살았기 때문에 내 자신의 위치는 항시 중심인이라고 생각했다.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중심인이라는 의식도 없었다. 북미에서 7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보니 외국 노동자들을 눈에 띄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을 보았을 때 내 자신이 중심인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외국에 있으면 학벌이나 지역, 신분, 자본의 유무에 상관없이 단지 아시아인이라는 인종적인 면 때문에 주변인으로 자동 전락하게 된다.
L.A 폭동사고와 세탁소 법정분쟁은 중심과 주변인의 시각에서 보면 답이 나온다. 중심인들은 흑인이나 아시아인들과 같은 주변인들끼리의 싸움을 부채질하거나 조장하기도 하며 처절하게 무시한다. 미국인들은 기본적인 것들을 양보하지만 이익과 관련한 것들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주변인들이 중심부에 들어오지 못하고 중심인들을 넘볼 수 없기 때문이다. 주변인들은 중심인들에게 늘 이용당하면서도 연합하여 중심에 대항할 생각이나 꿈은 전혀 꾸지도 않고 주변인들끼리 갈등하며 분쟁한다. 최근에 들어서야 한인들과 흑인들의 관계가 좋아졌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가보면 알겠지만 한인사회가 건강한 곳이 거의 없다. 한국사회가 그렇듯이 한인사회도 어디를 가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삿바싸움 투성이 이다. 캐나다에 있을 때는 캐나다 주정부가 한인회관을 건립하라고 100만불까지 후원했지만 한인회가 양측으로 분열되어 천문학적인 변호사비용을 써가면서까지 캐나다 법정에 서는 일도 있었다. 특히 한인교회는 많이 생기기도 하지만 분열도 많이 된다. 분열의 일번지는 한인교회이다.
이와 같이 주변인들은 중심부에 들어가 중심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중심사회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유대인이외에 다른 소수민족들은 중심속에 들어서지를 못한다. 중국사회는 점점 강력한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한인사회는 쉽지가 않다.
한국에 와보니, 이제는 나 자신이 인종적 중심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돈도 대출받을 수 있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있고, 비자카드도 어느 정도 신용만 쌓이면 쉽게 받을 수 있고, 어디를 가나 차별 대접이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민족들을 보면 불쌍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한인들이 북미에 있으면 늘 고민하는 것 처럼 비자 연기, 불법체류 등으로 고민을 한다. 이 땅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북미에서 한인들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경험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의 농촌 남자에게라도 결혼을 해서 한국에 정착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는 면에서 한인들은 인종적으로 중심인 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여전히 인종적, 지역적, 학벌적, 신분적, 혈연적, 정치적, 종교적 중심인과 주변인이 있다.
인종적 주변
먼저 인종적 주변인을 보자. 이 땅에 외국인 노동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한인들은 영원히 인종적 중심에 서게 된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가도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한인들은 어디를 가나 자신의 권리와 기본권 보장을 외치고 활보하고 당당하게 다닐 수 있다. 조금이라도 권리침해가 있다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중심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주 노동자들이나 소수민족들은 권리침해를 당해도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한인들처럼 조직적으로 거리로 나서기 어렵다. 이주노동자들은 주변인이라는 이유로 매를 맞고, 구치소에서도 불에 타죽는다. 현정권에서는 이들의 인권을 위하여 최대한 법적 조치를 강구했거나 강구중에 있다. 주변인들에 대한 포용정책이다.
지역적 주변
이 땅에서 호남과 연변, 북한출신은 항시 지역적 주변이다. 호남은 늘 불이익을 당하고 때로는 핍박도 받았다. 필자는 전두환 정권 당시 군생활을 청와대(대통령경호실)에서 한 적이 있는데 호남사람들은 당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가물에 콩나듯 있었지만 거의 없었다. 지역적 소외이다. 교계나 사회 각기각층에서 호남출신들은 대체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그나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있었기에 차별도가 많이 약해진 것이다. 경상도에 비해 호남지역은 모든 면들이 뒤떨어져있다. 공장하나 찾아보기 어려웠다. 김대중 정권 이후에서나 서해안 고속도로 등을 비롯하여 호남지역이 조금씩 개발이 되어 나간 것이다.
호남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이 주변이다. 서울이 사라지지 않는 한, 모든 지역은 지역적 주변으로서 머물게 되어있다. 그래서 참여정부가 지역적 편차를 줄이기 위해 수도를 천도하려고 했던 것이다. 즉 중심은 주변으로, 주변은 중심으로 향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없는 주변 대통령은 중심세력들에 의하여 관습법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참여정부는 행정수도를 천도시키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면 서울이 지역적 중심인가? 서울도 강남이외에 모든 구는 지역적 주변이다. 강남과 격차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강남구와 중량구는 세수만 해도 수십배의 차이가 난다. 중량구는 서울이지만 지역적 주변이다. 그래서 참여정권은 지역적 차이를 줄이기 위하여 종합부동산세를 국세로 하여 걷기도 했다. 실패한 정책이지만 세수가 약한 지역에 골고루 나눠줘 지역적 균형을 꾀하려 했던 것이다. 중심을 주변으로 주변을 중심으로 향하게 하려는 의도이다.
학벌적 주변
이 땅에서 국민들의 대부분은 학벌 면에서 주변인이다. 연세대, 고려대 출신인들도 학벌면에서는 주변인이다. 서울대가 사라지지 않는 한 비서울대인들은 학벌적 주변인이다. 그래서 한인들은 학벌적 콤플렉스가 평생 있는 것이다. 어디를 가나 학벌차별이며, 학벌로 인해 사람을 평가하고, 기술여하에 상관없이 학벌을 갖고 사람을 고용한다. 서울대 교수라면 무조건 믿고 거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희대의 사기극을 펼쳐도 구속시키지 않고 끝까지 포용한다.
그러므로 이 땅의 치마부대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능력 여하에 상관없이 모두 서울대에 보내려는 욕구와 야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지방대학출신과 비서울대인들은 평생 컴플렉스를 당하기 때문이다. 가짜박사가 그토록 성직자사회까지 난무한 것도, 학벌욕구는 그리스도의 은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영원한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서울대가 사라지지 않는 한 비서울대인들은 학벌 콤플렉스가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하버드나 동경대, 북경대, 케임브리지 출신보다도 서울대 출신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특히 법조인들은 서울대 반열에 서 있지 않으면 지방법원에서 일하기 일쑤이다. 단지 사법고시 합격한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학벌로 인해 중심과 주변이 나뉘는 것은 망국적인 병이다. 그래서 서울대를 없애야 하겠다는 말이 나온 것도 국민들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일 것이다. 당시 노무현 정권이 끝까지 본고사를 거부하고 평준화를 고집하는 것도 가능하면 학벌적 편차를 막기 위한 몸부림이다. 학벌적 양극화를 막고자 함이다. 중심은 주변으로, 주변은 중심으로의 전략이다.
자본적 주변
우리사회는 점점 양극화 되어가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이다. 이는 우리사회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가 침투한 곳이라면 어디나 겪는 병이다. 북유럽의 사회복지국가처럼 개인의 정직과 양심이 발전하지 않는 이상 양극화의 문제는 영원한 숙제이다. 아무리 정부의 정책이 숨통을 조이고 법률로서 규정한다한들, 약자와 사회를 위해 헌신한다는 부자들의 정신과 양심이 준비 되지 않는 이상, 양극화의 해소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정책과 법제정은 한계가 있다. 즉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심령이 변하지 않는 이상 양극화는 끊임이 생겨난다.
그나마 양극화를 억제하기 위해서 참여정부는 종부세를 실시하여 지역균형을 꾀하고, 대출억제와 금리인상을 통해서 부동산투기를 막고, 임대주택을 계속 늘려나가는 정책을 폈다. 중심인들은 더 이상 집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고 주변인들은 집을 소유하게끔 하려는 정책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건설 경기를 죽였다고 하소연은 많으나 사회는 많이 투명화되었고 불로소득으로 돈을 버는 욕망이 사라지게 했다. 불행하게도 그들의 이상은 이상으로서 끝났다.
이와 같이 당시 참여정부는 망국의 암병인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여 중심은 주변으로 주변은 중심으로 들어가기를 꾀했던 것이다. 즉 종부세와 양도소득세 등을 부과함으로 두 채 있는 집은 한 채를 처분하게 하고, 무주택 소유자는 집을 소유하게끔 하는 가능성을 갖게 하고 있다. 이는 자본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을 주변으로,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가게끔 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정치적 주변
우리사회에서 정치적 주류는 친일파와 독재정권의 잔당들이다. 이승만 독재정권부터 노태우, 김영삼 야합정권까지 친일파와 군부들이 함께 했다. 그 이외의 반열에 있는 사람들은 정치적 주변부에 속했다.노무현정권 말기 부패로 전락한 당시의 민주세력들도 원래는 정치적 주변부였다. 그들은 김대중정권을 통해 중심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중심에서 계속 머물고자 했기 때문에 부패로 얼룩진 것이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말이다. 중심은 주변으로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이건만 중심에 남기만을 원해서 주변으로 밀려나 결국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그것이 참여정부의 약점이었다. 현실적 중심을 너무 추구하다 보면 주변으로 내몰리는 법이다. 중심을 계속 유지하고자 한다면 끝까지 주변을 추구해야 한다.
종교적 주변
교계에서도 힘없고 인간적 고리가 없는 목회자들은 주로 지방이나 주변에서 맴돌고 만다. 특히 학벌이 없는 목회자나 여성들은 중심교회에 들어가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 이다. 지방신학교 출신자들은 서울에서 발을 들여놓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학벌이 있어도 인맥관계가 약한 사람들은 주변부로 맴돌 수 밖에 없다. 필자도 한국에서 5번 교회를 지원했지만 모두 설교 한번도 하지 못하고 퇴자를 맞고 말았다.
이제는 아예 지원도 하지 않는다. 필자의 대학 친구 김상득 목사이외에는 누구하나 설교도 초청하지 않는다. 현재 무임목사신분이다.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서 철저히 주변인 이다. 엊그제 만난 홍익대 교수 강전도사는 목사고시를 볼 수 있도록 추천해 줄 교회가 없어서 안절부절 했다. 그도 종교면에 있어서는 주변인이다.
대부분 시골에 있는 목사들은 서울이라는 지역적 중심을 향하여 있고, 작은 교회 목사들은 대교회목회라는 현실적 중심을 향해 있다. 서울에 있는 목회자들은 시골이라는 주변으로 내려가려고 하지 않고 있다. 목회자들이라도 대부분 지역적 중심, 학벌적 중심, 인맥적 중심, 물질적 중심을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문제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열악한 주변보다는 현실적 중심을 추구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소망교회, 광성교회, 제자교회는 현실적 중심을 추구했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지탄을 당하고 있는 교회이다.
영원한 중심인 예수와 바울
예수의 삶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중심인이면서도 한없이 주변으로 나갔다. 그의 친구들은 중심인이 아니라 세리, 창녀, 어부, 병자들이었다. 사도바울도 중심 예루살렘을 배회하지 않고 이방이라는 주변지역에 맴돌았다. 그는 땅끝 주변까기 가서 전도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후대는 예수를 인류의 가장 중심에 앉혀 좋았고, 사도바울을 신약서신의 가장 중심인물로 앉혀놓았다. 이들은 모두 주변을 추구했던 자들이다.
이처럼 진정한 중심인은 현실적 중심을 향하는 자가 아니라 빈궁한 주변으로 향하는 자이다. 소외되고 헐벗고 가난한 주변인과 주변지역으로 향하는 자이다. 가가와 도요히코나 테레사 수녀, 한비야,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처럼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현실적 주변인이었지만 우리 가슴속에서는 영원이 살아 숨을 쉬는 영적 중심인이다.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우리신앙의 중심부에 서있었다. 주변으로 가고자 했던 한경직 목사도 마찬가지이다. 개신교인의 가슴속에서 한경직목사는 중심으로 남아있는 인물이다.
바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는 철저히 중심을 버리고 주변으로 향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철두철미하게 학벌적, 지역적, 정치적, 주변이었던 그를 가장 중심에 갖다가 놓았다. 그가 끝까지 주변으로 몰려 자살했지만 500만명이 그를 참배하여 민중들의 가슴속에 중심인으로 남았던 것이다.
현실적 중심인들
최근에 이슈로 떠오른 전병욱, 최종천, 정삼지, 황형택, 김지철 목사는 대형교회 목사로서 지역적, 물질적 중심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적 중심인이다. 진정한 중심인이라면 예수나 사도바울, 테레사수녀, 이태석신부, 한경직 목사처럼 주변으로 향하는 자여야 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주변으로 나아가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주변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김지철목사는 해임당한 주변인 부목사가 대화를 요청하면 목의 넥타이를 잡아 끌어당기지 말고 친절하게 대화를 해야했다.
김홍도, 김선도, 조용기, 김창인, 곽선희, 전병욱, 최종천, 정삼지, 황형택, 김지철목사는 땅끝까지 가지 않고 예루살렘 중심에서 끊임없이 현실적 중심을 추구했던 사람들이다. 혈연적 중심, 물질적 중심, 지역적 중심, 학벌적 중심, 직분적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현실적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한, 역사와 일반 신도들의 가슴속에는 주변부에 머문다는 것이다.
대형교회 목사들이 진정한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임영수 목사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그는 현실적 중심에 머물지 않고 현실적 주변을 선택한 사람이다. 목회자들이 그리스도가 가슴 한 복판에 중심으로서 자리잡지 않고 있으니 부와 명예와 같은 현실적 중심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가슴에 중심으로서 강력하게 남아있는 사람들은 한없이 주변으로 나가는 자일 것이다. 약자를 존중하고, 청빈 검약하며, 그리스도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사도바울은 본래 유명한 이들은 내게 상관이 없다고 했다.
이런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중심인이 아닐까? 이런 진정한 중심인들은 "내주 예수 계신 곳은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찬송을 부를 것이다. 이 노래는 그리스도가 함께 한 곳이라면 그 어디나 중심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를 노래이다. 그들은 영원한 중심인 예수그리스도를 가슴 한복판에 두었기 때문에 중심으로 가나 주변으로 가나 그들이 가는 곳마다 중심이었다.
인종적, 학벌적, 지역적, 직위적, 물질적 주변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현실적 주변을 초월하여 영적인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아무리 어려운 주변적 환경이라도 늘 중심에 있다는 의식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지역적 주변은 주변이 아니며, 학벌적 주변도 주변이 될 수 없고, 물질적 주변도 주변으로 볼 수 없다.
강남노회가 총회의 결정에 반하여 돈갖고 압박을 행사하는 것은 돈을 중심으로 보려는 의식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신앙적인 자세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현실적 주변 요소들은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한 좋은 조건일 수 있다.
오늘 우리 기독교의 문제는 너무 현실적 중심으로 가려는데 문제가 있다. 진정한 중심인은 예수나 바울처럼 한없이 주변으로 가려는 자 일 것이다. 진정한 중심인은 현실적 중심과 주변에 개념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영적인 중심
진정한 중심인은 학벌적 중심, 지역적 중심, 물질적 중심, 인맥적 중심이라는 현실적 중심을 추구하지 않고 주변으로 나아가는 영적인 중심을 추구하는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슴 한복판에 중심인으로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후대가 그를 중심으로 올려놓는다. 백범김구선생도 오늘 우리 가슴에 중심인으로 남아있는 것은 그가 끝까지 주변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승만은 현실적 중심에 섰던 사람이지만 국민들의 가슴에는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상태이다.
개신교가 다시 살기 위해서는 현실적 중심을 추구하지 말고 영적인 중심을 추구해야 한다. 영적인 중심을 추구하는 자는 땅끝이 멀다하지 않고 주변으로 나아가는 자이다. 그러한 자를 하나님이 중심으로 올려놓지 않을까? 이제 대형교회 목사들은 현실적 중심을 추구하지 않고 영적인 중심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시골 교회 목회자들 역시 도회지라는 지역적 중심을 추구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는 곳이 중심지라는 것을 알고, 그룬투비목사처럼 처한 곳에서 사막을 옥토로 만드는 능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가슴한복판에 예수그리스도가 살아숨쉬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영원한 중심인으로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누구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주변인에 대해서는 상대적 중심인이고, 중심인에 대해서는 상대적 주변인일 것이다.
서울대생이 하버드대학옆에 있다면 학벌적 주변일 것이고, 강남출신이 미국뉴욕 맨하탄에 있다면 지역적 주변이고, 한국인이 미국이나 서구에 있다면 인종적 주변일 것이다. 누구나 중심이 있으면 주변도 있기 마련이다. 한인이 돈을 벌어서 백인사회에 집을 사고 거기에서 산다한들, 인종적 주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노무현은 가장 중심인 대통령이 되었다한들, 그의 학벌적 주변, 지역적 주변, 직업적 주변(인권변호사), 정치적 주변은 극복을 하지 못했다. 직위에 있어서는 중심이었지만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주변인이었다.
현실적 중심을 추구하다보변 다른 부분에 있어서 주변이 생기게 마련이다. 직위적 중심이나 물질적 중심에 있다고 하더라도 인종적, 지역적, 학벌적 주변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교회도 목회가 안정되면 학벌적 주변을 극복하기 위해서 목회자들이 돈을 주고서라도 학위를 쉽게 따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전두환은 대통령이라는 직위적 중심에 있었지만 여전히 국민들 가슴에는 대통령 전두환이 아니라 독재자, 살인마 전두환으로 남아 이미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상태이다.
김지철목사는 학자적, 목회적 주변인
김지철목사를 보자. 누가 보아도 학벌적 중심, 직위적 중심, 지역적 중심, 물질적 중심에 있지만, 학자로서 주변, 목회자로서 주변에 머물러 있다. 학자로서 저서한 권도 없기에 주변 학자이며, 목회자로서 부목사 하나 돌보지 못하고 원로목사 하나 섬기지 못하였기 때문에 목회적 주변인 이다. 남을 대접하는 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인데 이러한 일을 감당하지 못했다. 현실적 중심에 있다보면 자신이외에 남이 안보이는 것이다.
현실적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부목사라는 주변인들을 땅끝까지 밀어내는 것은 전형적인 현실중심인에 불과하다. 목회자는 약자를 우선해야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현실적 중심을 붙잡고 계속 유지하고,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한, 그는 점점 영적인 주변부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이미 세인들의 가슴에 대형교회 목사의 이미지는 가슴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그럴 경우 대형교회 목사들은 현실적 중심인이지만, 영적인 주변인에 불과한 것이다.
목회자들은 대부분이 교회가 성장하게 되면, 노회장, 총회장 등을 추구하게된다. 지위적 중심을 추구하려는 속성이 있다. 당회장은 시찰장, 시찰장은 노회장, 노회장은 총회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방신학교 교수들은 서울의 소재 신학교 교수를 추구하고 있다. 현실적 중심을 향하는 것이다.
김창인목사와 이성곤목사도 주변인
교회분쟁은 결국 교회건물이라는 현실적 중심을 추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광성교회 같은 경우 현실적 중심을 추구하기 위하여 변호사들한테 수십억씩 갖다가 주었다. 그러나 세인들의 마음에 이미 광성교회는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김창인목사가 현실적 중심을 추구할수록 점점 교인들에게는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원로목사이지만 이면으로는 노욕이 있는 목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교인들의 가슴에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곤목사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적 부동산, 다수의 교인들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게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법을 통해서도 주변으로 밀려나게 되었던 것이다.
정삼지 목사도 주변인
제자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제자교회도 겉으로는 1만명의 교회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영적 주변이다. 1만명을 성장시킨 위대한 정삼지 목사가 아니라 32억을 횡령한 교주 정삼지 목사로서 신도들의 가슴에 주변인으로서 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개신교의 문제이다. 대형화, 숫자, 물질이라는 현실적 중심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영적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정삼지 목사는 세인들에게 조롱거리 목사가 되었다. 주변목사로 밀려난 것이다.
천주교, 불교에 비해 점점 개신교는 주변종교로 전락하고 있다. 세인들은 조용기, 곽선희, 김홍도 목사 등 개신교의 어떤 대형교회 목사보다도 김수환 추기경이나 성철, 법정을 중심에 두는 이유는 그들은 영적인 중심을 위하여 현실적인 중심을 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신교가 살 길은 현실적 중심이 아니라 영적인 중심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중심인
기독교인들은 가슴에 영원한 중심 그리스도가 박혀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중심의 세계 하나님나라를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로마나 예루살렘을 중심지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새하늘 새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노회장, 총회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면류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학벌을 중심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예루살렘이나 서울을 중심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고 김재일목사처럼 연평도와 같은 땅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두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현실적 욕망을 중심에 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중심사상은 욕망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사상이다. 사회는 현실적 중심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주변부로 밀어내고, 주변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중심으로 만드는 속성이 있다. 성경은 주변으로 갈수록 중심으로 들어가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아브라함과 요셉, 다윗, 바울, 베드로가 그랬다.
그리스도인들은 진정 중심인이기 때문에 약자를 우선하고, 주변인들을 선대하며, 한없이 주변으로 가려는 자들이다. 진정한 중심인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 중심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진정한 중심인 담임목사는 부목사를 대접하고, 부목사는 담임목사를 믿고 따르며, 중심인 신도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전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땅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새예루살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현실적 중심이 아니라 영적인 중심을 추구하는 자들인 것이다.
현실을 중심으로 추구할수록 주변으로 밀려나는 개신교
교회가 현실화될수록, 대형교회 목사들이 현실적 중심을 계속 추구하려고 할 때, 세인들의 가슴에는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수, 바울, 어거스틴, 칼빈, 루터, 한경직, 김수환, 테레사 수녀 등이 인류 한가운데 중심으로 우뚝 선 것은 그들은 현실적 중심이 아니라 한없이 주변을 추구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주홍글씨의 헤스터가 중심으로 갈 때까지 그는 한없이 주변으로 향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은 지나치게 현실중심을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슴한복판에 예수가 중심으로서 자리잡지 못하니 대신 현실적 욕구로서 가슴을 채우는 것이다. 예수가 중심이 아니라 현실적 욕구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영적 중심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물질적, 정치적 중심을 추구하는 것이다. 서울 강남에서 목회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이고, 연평도에서 목회하는 것은 저주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연평도에서 목회한 김재일 목사는 영원한 중심의 세계로 가버렸다.
이처럼 중심을 추구한 사람들은 주변으로 가고, 주변을 추구한 사람들은 진정한 중심으로 가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가 아닐까? 그러므로 개신교가 살기위해서는 주변으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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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기쁨의교회 성도들, 합신 제111회 총회 결의에 반대 성명
© 통합기독공보 용인 기쁨의교회(담임 정의호 목사) 성도들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제111회 총회의 기쁨의교회 관련 이단 규정 결의에 반대하는 성명서 ‘한국교회에 고하는 글’을 발표했다. 교회 측에 따르면 지난 9월 20일 주일 오후 본당에서 총회 결의 내용과 경위를 설명하는 자리가 열... -
조승호 GMS 신임 이사장 “모든 성도가 선교에 참여하는 시대 열겠다”
GMS 제15대 이사장 조승호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세계선교회(GMS) 제15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조승호 목사가 모든 교회와 성도가 함께 참여하는 선교 공동체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선교를 일부 사역자만의 책임으로 한정하지 않고, 청년과 전문인, 은퇴 이후의 성도들... -
[단신]기독문화선교회, 오산리기도원서 ‘신바람힐링성회’ 개최
사단법인 기독문화선교회가 오는 12월 7일부터 12일까지 경기도 파주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 대성전에서 ‘신바람힐링성회’를 개최한다. 이번 성회는 한국교회의 영적 회복과 성도들의 신앙 회복을 돕기 위한 자리로, 말씀 선포를 비롯해 찬양과 간증, 건강 강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
예장합동 서울강남노회 제102회 정기회 개최…21당회서 23당회로 확대
예장합동(총회장 정영교 목사) 서울강남노회(노회장 이길찬 목사)가 10월 19일 서울 동작구 대남교회(담임 김창원 목사)에서 제102회 정기노회를 개최했다. 이날 정기노회에는 목사 72명과 장로 12명이 참석했으며, 노회는 당회 수가 기존 21당회에서 23당회로 확대되는 등 교세 변화를 보인 가운데 각종 청원... -
전국호남협의회, 조승호 목사 GMS 이사장 취임 축하
예장합동(총회장 정영교목사) 제27회기 전국호남협의회(대표회장 조승호 목사)는 10월 15일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GMS 선교본부에서 임원회를 열고, GMS 이사장에 취임한 조승호 목사를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임원들은 조 목사의 취임을 축하하며, 차기회장 고광석 목사가 꽃다발과 임원들이 모은 ... -
GMS 2027 세계선교대회 슬로건, ‘교회여 다시 열방으로’
총회세계선교회(이사장 조승호 목사, 이하 GMS)가 2027 세계선교대회의 슬로건을 ‘교회여 다시 열방으로’로 정하고, 교회와 평신도가 함께 선교에 참여하는 대회를 만들기 위한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대회장인 조승호 GMS 이사장은 교회와 평신도 모두가 선교의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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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열 총장 학위장사, 장현운 총장 총장실에서 폭행한거, 이사들 협박한것, 배현주교수 논문중복한것 박만교수 마누라와 교수시켜 함께 부부월급받는 것, 차명호 음주운전하고 벌금낸것 민경진 교수 형제 27억 부당이익얻고 세금안내려고 폐업한 것 언제 기독공보에 회개광고 할까? 죽어도 안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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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중심이고 주변이고간에 광성 교회에서는 이성곤 목사님을 중심으로 개혁 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야말로 편견 갖지마시고 중심을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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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확실하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낮은곳으로, 주변으로, 소외되는 곳으로, 사랑이 필요한 곳으로, 고아와 과부에게로 등등. 중심을 지향하는 많은 교회목사들은 제쳐두고 저라도 주변부를 확실하게 챙겨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이 찡합니다. 말씀을 쉽게 풀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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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들었던 이 재철 목사님의 설교 한 자락이 생각나네요. 사람은 그가 얼마를 살았든 그저 한 줄 평가로 사람들 머리에 남는다는 것.....
나쁜 놈, 사기꾼, 독재자, 오입자, 폭행자, 학위장사꾼, 들러리, 조종자, 하수인, 추접한 인간, 더러운 놈 혹은 참된 영성추구자, 명설교자, 울지마 톤즈, 예수 닮은 사람 등등... -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영적 중심을 잃은 지도자들입니다.
결국 교회는 영적중심을...
타 종교에 내어주는 현실이 된거 같네요.
교회에 존경받는 인물이 많아져야 하는데,
타 종교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김수환추기경, 성철스님, 이태석신부, 그외도 많을 겁니다.
이런 분들이.. 교인들 마음속에 스며드는 이유는 뭘까요.
타 종교인이지만, 존경받을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겁니다.
국내 원로목사들이라는 분들..
상다수가 자식들에게, 주변지인들에게,
그동안 쌓은 부와 명예를 세습하기에 바쁩니다.
교회는 영성이 중심인데, 돈이 중심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돈이 중심인 교회가 얼마나 유지될까요.
대형교회를 만들기위해 얼마나 노력했나요.
대형교회가 되기까지 30년이 걸린곳이 있다면,
이젠 소형교회로 변신하는데 더 적은 시간이 필요할겁니다.
대형교회가 소형교회로 변신하는 날이 점점 다가오겠죠.
물론 건물은 대형교회로 남아있겠죠. -
황규학 선생님의 통찰력은 우리나라 어느 학자를 놓고도 뒤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
여성들도 그렇지만 특히 남성들은 외국한번 나가서 인종차별이라도 좀
겪어보면 약자이해 조금은 한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