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석신부와 송창식, 자신들의 삶은 고통스러웠지만 남들을 위해 기쁨의 노래 불러
최근 극장가에서 감동영화가 있다면 아프리카 수단에서 있었던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다큐멘타리로 한 '울지마 톤즈' 이다. 2001년부터 7년 동안 남부수단에서 한셈병(나병)환자와 전쟁에 고통당한 사람들을 돌보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하고 암병으로 세상을 뜨게 된 이태석 신부의 삶은 그 자체가 감동드라마 이다. 사람들은 그를 아프리카의 슈바이처라고 불렀다.
그는 의사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신부가 되어서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난후, 그들을 위해서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7년동안 수단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살았다. '사랑해'라는 노래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 노래가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노래가 될 줄 몰랐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이태석신부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태석신부가 세상을 뜬 이후 아프리카 수단 아이들은 '사랑해'라는 노래를 한글로 불러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는 전쟁 폐허의 잿더미에 올라앉은 이들을 치료해주고, 학문, 노래와 음악을 가르쳐 주어 미래를 꿈꾸게 해주었다.
그는 암에 걸렸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톤즈 마을의 아이들과 주민을 걱정했다고 한다. 자신은 고통스런 삶을 살았지만 남에게는 희망을 주었다.
최근 제자교회나 소망교회의 사건이 언론에 회자되면서 개신교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엄청나게 끼친 것에 반해, 천주교의 이태석 신부의 삶은 천주교를 한 층 보다 신성한 종교로 만들었다. 실제 개신교는 전도활동이 거의 되지 않는 형국이다. 아프리카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는 수단에 한국인의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하나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감동적인 연예오락 프로그램은 '김원회의 놀러와'에서 기획한 세시봉 음악회이다. 추석에 두 차례, 구정에 두차레 4회 연속 방영되었다. 김원희의 놀러와가 만들어진 이후,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70년대 80년대의 아이돌인 조영남, 송창식, 김세환, 윤형주, 이장희의 삶과 노래, 우정, 추억은 10대 소녀들로 음악과 노래프로그램을 메우는 요즈음에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노래와 예능의 천재 조영남, 창조적이고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송창식, 부드러운 목소리 김세환, 고귀한 미성을 가진 윤형주, 로맨틱한 남자 이장희 등은 대중들의 가슴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필자는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송창식에게 집중하고자 한다. 그의 삶은 어려서 부터 고달펐다. 그의 엄마가 그를 버리고 떠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늘 고아처럼 외롭게 홀로 살아왔고 그에게 남은 것은 가난 뿐이었다.
조영남은 세시봉에 처음왔을 때 송창식은 남루한 모습에 거지와 같았고 늘 이가 함께 있었다고 진술했다. 윤형주와 김세환이 유복하게 자라난 것에 비해 송창식은 가난과 함께 다녔다. 윤형주 집에서 얹혀 살면서 윤형주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이 너무 과분해 윤형주의 집을 떠나 무의도에 가서 홀로 노래하면서 살았다고 했다.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서 사는 것이 더 익숙했다.
그의 노래는 대부분이 삶의 경험에서부터 우러나왔다. 그의 노래 '담뱃가게 아가씨'는 원래 '와이셔츠가게 아가씨'였다는 것이다. 와이셔츠 가게 아가씨가 얼굴이 예뻐서 그렇게 물건을 잘 팔은 것에 착안해 '와이셔츠가게 아가씨'하면 어색하니 '담뱃가게 아가씨'라고 개사를 했다는 것이다.
'맨처음 고백' 노래도 이층에서 심하게 부부싸움을 하는 것을 보고 , 싸움이 끝난 이후에 어떻게 다시 서로 말을 할 수 있을까에 착안하여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싸움을 연인의 고백으로 승화시켰다.
'왜불러'처럼 사람을 흥겹게 하는 노래도 없다. 이 노래를 불러 송창식은 가수왕에 등극하게 되었을 정도이다. 이 노래는 남진의 '님과 함께'처럼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가 쉽게 불렀던 노래이다. 그러나 '왜불러' 이면에는 송창식의 삶의 애환이 깃들여 있었다.
송창식이 출세한 이후에 어렸을 때 송창식을 버리고 간 어머니가 송창식을 찾아온 것이다. 송창식은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와 헤어진 후 서로 갈라져서 돌아가는데 어머니는 떠나가는 송창식에 대하여 이름을 불렀다. '창식아' 부르자, 송창식은 "왜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불러, 아니 안되지 들어서는 안되지....자꾸만 약해지는 나의 마음을 이대로 돌이켜서는 안되지...안들려 안들려....이제 다시는 나를 부르지도 마" 로 노래하여 어머니에 대한 원망스런 삶을 노래에 그대로 반영하기도 했다. 그 노래는 어떤 노래보다 역동적이고 경쾌했다.
그의 노래는 겉으로는 경쾌하지만 노래 깊숙한 곳에는 삶의 애환이 담겨있었다. 선운사의 노래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떨어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속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못떠나실거에요."
이 노래를 들으면 반드시 선운사 동백꽃이 있는 곳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송창식의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그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하다.
"나는 피리부는 사나이 바람 따라 가는 떠돌이 멋진 피리하나 불고서 언제나 웃고 다닌다. 갈길 멀어 우는 철부지 소녀야 나의 피리소리 들으려무나 삘리리, 삘리리 "
송창식은 피리대신 기타 하나 들고서 언제나 웃고 다녔다. 그는 이처럼 노래를 작곡하고 노래의 부름을 통해서 애환을 달랬고 절망적인 삶을 희망으로 옮겨 놓아 사람들에게 좌절대신 경쾌함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송창식은 남이 잠드는 시간에 밤새도록 곡을 만들고 새로운 음악의 장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심지어는 제일교포 3세들의 한글말공부를 위해 "가나다라"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우리는'이라는 노래는 한 신부가 영어로 개사하여 외국에 소개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우리는 빛이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수 있는우리는 아주작은 몸짓 하나라도 느낄수 있는우리는 우리는 소리없는 침묵으로도 말할수 있는우리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수 있는우리는 우리는 연인... "
송창식의 말대로 그의 삶은 낭패 그자체 였다. 그러나 아무도 송창식을 낭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은 실제로 한번도 여성을 작업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젊은이들을 위한 사랑의 노래를 경쾌하게 만들었다.
"한번 쯤 말을 걸겠지 언제쯤일까 언제쯤일까 겁먹은 얼굴로 뒤를 돌아보겠지 시간은 자꾸가는데 집에는 다가와는데 왜 이렇게 앞만 보며 남의 애를 태우는가 말한번 붙여봤으면 손한번 잡아봤으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천천히 걸었으면"
마음에 들고 데이트 한번 해보고 싶은 여인이 있었던 남성들은 이 노래가 모두 자신의 노래였을 것이다.
이태석신부는 자신의 음악기술, 의료기술을 모두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한 도구로 활용했다. 자신은 고통스러웠지만 남에게는 기쁨을 안겨주었고 소망을 주었다. 송창식은 자신의 불우한 애환의 삶을 노래로 승화시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연고전을 하면 18번으로 부르는 노래가 송창식의 고래사냥이었다. 그만큼 송창식은 젊은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의 삶은 죽을 때까지 노래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이태석신부처럼 자신은 고통스럽더라도 남을 위하여 죽을 때까지 삶의 기쁜 노래를 부르고, 송창식씨처럼 자신의 애환에 매이지 않고 애환을 신앙으로 승화시켜 어렵고 소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낭만과 위로의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이다. 험한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감리교신학대학 이정배 교수는 이태석신부와 동시대 살았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한 학생은 이태석신부의 아프리카 사람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고 전했다.
세시봉 방송이 나간 후 어떤 사람은 윤형주와 동시대 살았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이들처럼 누군가가 "당신과 동시대에 산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라고 듣는 날이 오게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아프리카 주변끝까지 간 이태석신부, 주변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노래로 승화시킨 송창식, 사람들은 그들을 주변에서 중심으로 이동시켜 놓았던 것이다. 우리들의 가슴 한가운데를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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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의사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신부가 되어서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난후, 그들을 위해서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7년동안 수단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살았다. '사랑해'라는 노래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 노래가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노래가 될 줄 몰랐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이태석신부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태석신부가 세상을 뜬 이후 아프리카 수단 아이들은 '사랑해'라는 노래를 한글로 불러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는 전쟁 폐허의 잿더미에 올라앉은 이들을 치료해주고, 학문, 노래와 음악을 가르쳐 주어 미래를 꿈꾸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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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암에 걸렸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톤즈 마을의 아이들과 주민을 걱정했다고 한다. 자신은 고통스런 삶을 살았지만 남에게는 희망을 주었다.
최근 제자교회나 소망교회의 사건이 언론에 회자되면서 개신교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엄청나게 끼친 것에 반해, 천주교의 이태석 신부의 삶은 천주교를 한 층 보다 신성한 종교로 만들었다. 실제 개신교는 전도활동이 거의 되지 않는 형국이다. 아프리카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는 수단에 한국인의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하나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감동적인 연예오락 프로그램은 '김원회의 놀러와'에서 기획한 세시봉 음악회이다. 추석에 두 차례, 구정에 두차레 4회 연속 방영되었다. 김원희의 놀러와가 만들어진 이후,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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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80년대의 아이돌인 조영남, 송창식, 김세환, 윤형주, 이장희의 삶과 노래, 우정, 추억은 10대 소녀들로 음악과 노래프로그램을 메우는 요즈음에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노래와 예능의 천재 조영남, 창조적이고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송창식, 부드러운 목소리 김세환, 고귀한 미성을 가진 윤형주, 로맨틱한 남자 이장희 등은 대중들의 가슴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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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송창식에게 집중하고자 한다. 그의 삶은 어려서 부터 고달펐다. 그의 엄마가 그를 버리고 떠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늘 고아처럼 외롭게 홀로 살아왔고 그에게 남은 것은 가난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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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은 세시봉에 처음왔을 때 송창식은 남루한 모습에 거지와 같았고 늘 이가 함께 있었다고 진술했다. 윤형주와 김세환이 유복하게 자라난 것에 비해 송창식은 가난과 함께 다녔다. 윤형주 집에서 얹혀 살면서 윤형주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이 너무 과분해 윤형주의 집을 떠나 무의도에 가서 홀로 노래하면서 살았다고 했다.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서 사는 것이 더 익숙했다.
그의 노래는 대부분이 삶의 경험에서부터 우러나왔다. 그의 노래 '담뱃가게 아가씨'는 원래 '와이셔츠가게 아가씨'였다는 것이다. 와이셔츠 가게 아가씨가 얼굴이 예뻐서 그렇게 물건을 잘 팔은 것에 착안해 '와이셔츠가게 아가씨'하면 어색하니 '담뱃가게 아가씨'라고 개사를 했다는 것이다.
'맨처음 고백' 노래도 이층에서 심하게 부부싸움을 하는 것을 보고 , 싸움이 끝난 이후에 어떻게 다시 서로 말을 할 수 있을까에 착안하여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싸움을 연인의 고백으로 승화시켰다.
'왜불러'처럼 사람을 흥겹게 하는 노래도 없다. 이 노래를 불러 송창식은 가수왕에 등극하게 되었을 정도이다. 이 노래는 남진의 '님과 함께'처럼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가 쉽게 불렀던 노래이다. 그러나 '왜불러' 이면에는 송창식의 삶의 애환이 깃들여 있었다.
송창식이 출세한 이후에 어렸을 때 송창식을 버리고 간 어머니가 송창식을 찾아온 것이다. 송창식은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와 헤어진 후 서로 갈라져서 돌아가는데 어머니는 떠나가는 송창식에 대하여 이름을 불렀다. '창식아' 부르자, 송창식은 "왜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불러, 아니 안되지 들어서는 안되지....자꾸만 약해지는 나의 마음을 이대로 돌이켜서는 안되지...안들려 안들려....이제 다시는 나를 부르지도 마" 로 노래하여 어머니에 대한 원망스런 삶을 노래에 그대로 반영하기도 했다. 그 노래는 어떤 노래보다 역동적이고 경쾌했다.
그의 노래는 겉으로는 경쾌하지만 노래 깊숙한 곳에는 삶의 애환이 담겨있었다. 선운사의 노래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떨어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속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못떠나실거에요."
이 노래를 들으면 반드시 선운사 동백꽃이 있는 곳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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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의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그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하다.
"나는 피리부는 사나이 바람 따라 가는 떠돌이 멋진 피리하나 불고서 언제나 웃고 다닌다. 갈길 멀어 우는 철부지 소녀야 나의 피리소리 들으려무나 삘리리, 삘리리 "
송창식은 피리대신 기타 하나 들고서 언제나 웃고 다녔다. 그는 이처럼 노래를 작곡하고 노래의 부름을 통해서 애환을 달랬고 절망적인 삶을 희망으로 옮겨 놓아 사람들에게 좌절대신 경쾌함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송창식은 남이 잠드는 시간에 밤새도록 곡을 만들고 새로운 음악의 장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심지어는 제일교포 3세들의 한글말공부를 위해 "가나다라"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우리는'이라는 노래는 한 신부가 영어로 개사하여 외국에 소개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우리는 빛이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수 있는우리는 아주작은 몸짓 하나라도 느낄수 있는우리는 우리는 소리없는 침묵으로도 말할수 있는우리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수 있는우리는 우리는 연인... "
송창식의 말대로 그의 삶은 낭패 그자체 였다. 그러나 아무도 송창식을 낭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은 실제로 한번도 여성을 작업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젊은이들을 위한 사랑의 노래를 경쾌하게 만들었다.
"한번 쯤 말을 걸겠지 언제쯤일까 언제쯤일까 겁먹은 얼굴로 뒤를 돌아보겠지 시간은 자꾸가는데 집에는 다가와는데 왜 이렇게 앞만 보며 남의 애를 태우는가 말한번 붙여봤으면 손한번 잡아봤으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천천히 걸었으면"
마음에 들고 데이트 한번 해보고 싶은 여인이 있었던 남성들은 이 노래가 모두 자신의 노래였을 것이다.
이태석신부는 자신의 음악기술, 의료기술을 모두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한 도구로 활용했다. 자신은 고통스러웠지만 남에게는 기쁨을 안겨주었고 소망을 주었다. 송창식은 자신의 불우한 애환의 삶을 노래로 승화시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연고전을 하면 18번으로 부르는 노래가 송창식의 고래사냥이었다. 그만큼 송창식은 젊은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의 삶은 죽을 때까지 노래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이태석신부처럼 자신은 고통스럽더라도 남을 위하여 죽을 때까지 삶의 기쁜 노래를 부르고, 송창식씨처럼 자신의 애환에 매이지 않고 애환을 신앙으로 승화시켜 어렵고 소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낭만과 위로의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이다. 험한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감리교신학대학 이정배 교수는 이태석신부와 동시대 살았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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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은 이태석신부의 아프리카 사람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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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 방송이 나간 후 어떤 사람은 윤형주와 동시대 살았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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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독교인들도 이들처럼 누군가가 "당신과 동시대에 산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라고 듣는 날이 오게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아프리카 주변끝까지 간 이태석신부, 주변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노래로 승화시킨 송창식, 사람들은 그들을 주변에서 중심으로 이동시켜 놓았던 것이다. 우리들의 가슴 한가운데를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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