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경동, 추부길, 김진홍, 김성광 목사 비판, 삭제 당해
한국인터넷 선교회는 일방적으로 김홍기씨의 허락없이 그의 글을 삭제했다. 다음은 삭제된 김홍기씨의 글들이다.
첫 번째 글
장경동, 너나 잘하세요
S#1-예수의 독설이 필요한 까닭
최근 장경동 목사의 불교계를 지목한 막말파문이 일파 만파 퍼지고 있다. 예수의 죽음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항상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일각에선 기독 장로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 것에 고무된 채, 교회는 정치력을 더욱 풍성하게 확장시켜 가기를 꿈꾸었다. 그들이 지켜봐 달라던 새 정부 등장 이후의 허니문 기간인 100일이 월등히 지난 지금.
이 나라는 지금 종교논쟁으로 뜨겁다. 서울을 제대로 하나님께 봉헌하지 못해서인가? 그 여파를 예측하기 어렵다. 불교계 언론에선 대통령의 친 기독교적 성향과 종교편향성을 비판했다. 지도상의 사찰 누락, 조계종 총무원장 검열은 작은 일에 불과하다. 목사들은 대통령을 향한 용비어천가를 주일 기도로 바치고, 반대세력을 가리켜 '사탄'이라 불렀다.
S#2-장경동 목사, 그는 누구인가?
푸근한 일상의 주제를 통해, 성경을 말하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하루에도 지방 여러 곳을 다니며 설교하는 부흥목사로 인지도가 높다. 청년들 사이에 한국교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 7위에까지 랭크 되었다니 그 인기는 말할 필요가 없다. 2만권이 넘는다는 그의 서재, 더불어 예화를 개발하는 열정도 난 높이 샀다.
그런 그가 최근 뉴욕 순복음 교회의 순회 설교 시간에 '내가 경동교(장경동교)를 만들면 안 되듯, 원불교나 통일교도 만들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이 내용 자체는 성경에 비추어 타당하다. 문제는 이 말이 우리 기독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거다. 베드로에게 교회를 세우라는 명령을 예수교를 컬트화 하라는 명령으로 해석했다면 실수한 거다. 이래서 신학 하는 교회가 필요하다.
속성 은혜 반, 속성 성경 반이 판치는 교회라 그런지 가르치는 자도 속성으로 이야기 한다. 속성 은혜에 찌들은 기독교의 내부엔 수많은 사회적•정치적 현안에 개입할 적절한 세계관도, 개개인의 소외•고독과 대면할 성숙한 철학도 결핍된 교회의 실체가 들어있다. 교회신앙이 오히려 예수와 대중의 소통에 심각한 장애물이 되어버린 현실. 은혜도 속성으로 받아야 하고, 긍정의 힘도 속성으로 받아야 속이 풀리는 소비자 중심의 교회에 더 이상 역사적 예수의 오롯한 가르침은 없다.
당시의 안식일법과 오늘날 국가보안법 모두 당대의 편집증적 광기에서 나온 것이다. 성서 속 나병환자와 창녀의 고통이 우리사회의 노숙자와 기지촌 매춘여성의 아픔으로 연결되며 로마제국, 헤롯 정권, 율법학자, 유대교회당의 모습은 오늘날 미국, 이명박 정부, 관변 지식인, 대형교회의 모습과 닮았다.
"스님들 쓸 때 없는 짓 그만하고 예수 믿어야 " 라고 주장한다. 이런 식의 사고가 지금 기독교 내부에서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회 내에서의 종교의 역할과 기독교의 화합' 운동을 깡그리 무너뜨리는 짓임을 그는 알고 있을까? KNCC를 무너뜨리기 위해 군사정권 시절 정치적으로 이용된 한기총. 이들의 주장은 유독 근본주의적 속성이 강하다. 근본주의란 말만 듣고 그저 "하나님이 우리의 근본"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면 착각이다. 이 신학은 1920년대 공산주의와의 이념적 대치상황에서 나온 미국적 신학이다. 반대파를 숙청하는 이념의 방식으로 출발한 신학이다.
장경동 목사가 칭찬하는 김홍도 목사를 비롯, 한국의 1.5 세대 목사들이 다 근본주의의 세례를 받았다. "김홍도 목사님의 기도가 있어서 한국이 잘 되었다"고 했다지. 기도가 무슨 목사 개인의 힘으로 결과가 발휘된다는 식의 사고가 어디에서 나온걸 까? 기도만큼 대화주의적인 장치가 어디에 있나? 이런 영광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전적 은혜라고 가르쳐야 하지 않나? 목사 개인에게 환원되어선 안될 문제다.
대형교회를 비롯 장경동 같은 자들의 사고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일제시대의 부역에 침묵하고, 개인의 영혼 구원만 강조한 장본인이자 그 부산물 세대다. 골방신학을 탄생시킨 이들이다. 미국 근본주의 신학의 정치적 관점을 알고 있는가? 그들은 핵전쟁을 찬양하고 사회적 불순분자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우세력이다. 성경상의 '남은자' 쉐하르가 바로 자신들이며, 이교도와 동성애자를 비롯한 사회적 아웃사이더들은 깡그리 지상에서 불로 태워 없애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다. 이들이 공화당의 골수 매파를 지향하고, 이들에게 자본을 대는 자들이다. 한국의 근본주의 방식 또한 이들과 연계된다.
어찌 보면 장경동 목사도 김홍도란 목사한테 잘 못 보이면 안되기에 이런 이야기를 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신학교에선 근본주의가 지양해야 할 신학적 방식임을 가르치긴 한다. 문제는 학교에서 배울 때와 현실에서 목회를 할 때, 그 태도가 달라진다는 거다. 장경동의 말처럼, '목사에게 잘하고' '십일조 생활 잘하고' '목사님 비방하지 말고' '오로지 순종하면' 결국 편하게 되는 주체는 목사요, 그가 전횡하는 교회다.
장경동은 스스로를 경동교로 만들면 안 된다고 자기고백을 했지만 정작 교회 내부에선 예수처럼 대접받고 싶어, 쇼맨십을 끌어들여 자신은 살짝 면죄부를 준다. 그러니 자기 모순이다. 어차피 김홍도와 같은 부류가 되었으니 비판은 애초부터 힘들고 그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노선에 발을 담글 수 밖에. 장목사는 "정교분리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말에 모든 신학생들이 찬성할까? 아니다.
그런데 비판하지 못한다. 왜 교회 자체가 공안정국이다. 교회숫자에 비해 졸업생이 많다 보니, 말 그대로 잘못 보이면 안 된다. 성도를 양육하는 것 보다 청와대 조찬 기도회가 영광스러운 자들. 정권과 결탁된 종교가 과연 그 본질적 횡보를 잘 해낼 수 있을까? 정교분리의 원칙은 다원화된 신앙의 형태를 사회적 공존을 위해 포섭해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이다.
자기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는 집단은 항상 외부로 시선을 돌린다. 내부가 모순으로 가득할 때, 이단논쟁이 나오고, 이교도 숙청으로 연결된다.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듯, 그러나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우월감으로 무장한 명품신앙을 강조하는 곳. 이것은 신앙의 선진화가 아니다. 사회적 배제를 배제로 모르는 인간들, 이들이야 말로 예수의 사랑과 그 혁명을 철저하게 전용하는 자들이다. 사회 내에 공존하는 종교 간 대화는커녕 배제를 근간으로 삼는 행동은 지양했으면 한다. 설교는 속성으로 하는 게 아니라, 숙성 되어 나오는 것임을 알길 바란다
두 번째 글 (촛불항쟁 시, 다음 메인에 떠서 10만 명 이상에게 읽혔습니다)
기독교인이 본 추부길의 사탄발언-이 정권이 사탄이다
"죄란 지배자의 언어이고 민중에 있어서는 그것이 바로 한이다"
-죽재 서남동 목사
청와대 추부길 비서관의 발언을 들었다. 이명박 정부가 과장과 거짓으로 무장한 세력에 의해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 면서 "왜곡과 과장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세력이 누구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배후세력설'을 주장했다고 한다. "사탄의 무리들이 이 땅에 판을 치지 못하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감히 부탁 드린다"며 축사를 마무리 지었다. 이 발언의 파장은 상당하다. 누리 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자 통상적인 기도문구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작가 유관석의 작품 앞에 있다가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예수의 죽음은 결국 당대의 지배자들의 자기 합리화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지배자들은 다른 이들이 아니다. 바로 당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는 종교 지도자들이다. 추부길은 지금 이 땅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을 저 십자가에 못 막아 처형했다.
죽재 서남동 목사님의 경구를 초두에 둔 것은 바로 기독인 으로서 추부길의 발언을 수정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에서 올렸다. 죄란 지배자가 피지배층에게 규정하는 용어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생존권과 하나님의 질서로 창조한 물과 공기와 같은 공공재의 존재를 믿고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일 뿐, 정작 이들의 목소리를 죄로 규정하고 사탄의 계략으로 정죄하는 쪽은 정부다. 추부길이 생각하는 죄의 개념은 어디에서 시작할까? 성서는 죄에 대해서 다양한 개념을 포함하는 단어들을 설명한다.
Sexuality(성적인 것 일체)라고도 하고 인간의 한계성이라고도 한다. 사회학적 성서해석에서는 바로 사유화 해서는 안 되는 것, 사유화 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답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란 표현에는 인간 개인이 창조된 공공재를 결코 사유화 할 수 없음을 말한다. 국가권력도 공공재다. 결코 한 개인이 독점 및 사유화 할 수 없다.
국민들이 생태 정치학을 위해 싸우고 있는 소는 초식동물이다. 광우병은 초식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데서 출발한다. 그럼 왜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가? 바로 미국적 사고의 사유화와 경쟁의 논리가 들어있다. 그만큼 빨리 자라기 때문이다. 여기엔 자본과 비열한 욕망이 들어있다. 최근 뜨거운 감자가 된 물도 공공재다. 비를 내려주시고 하천을 만드신다. 우리는 그 자연을 잠시 동안 '관리자'의 명목으로 임대할 뿐이다.
세계적인 물 회사를 키워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웃기지도 않은 작태에 기독인 으로서 통탄을 금치 못한다. 추부길 비서관이 촛불집회에 나간 우리들을 가리켜 사탄의 무리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기독인이보기에, 공공재의 민영화에 저항하는 것은 죄의 원천과 싸우겠다는 선한 기독적 양심이라고 봐야 한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한국에서의 근본주의란 1920년대 공산주의와의 대치상황에서 미국이 자생적으로 만들어낸 신학적 이념이고 이것은 한국에 수입되어 '옹호되어야 할 근원'이란 의미로 잘못 쓰여지고 있다. 바로 추부길 같은 자들은 이러한 근본주의 신학의 피해자이고 또한 가해자다. 신학적 근본과 근본주의 신학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추부길은 우리에게 죄인취급을 했다. 현정권의 실정법을 어기고 정권전복을 야기하는 죄인이라고 말했다. 죄의 뜻이 뭔지는 잘 알고 하는 소리인가? 죄를 규정하는 단어는 여러 가지다.
그 중에서 <스칸달리조>란 표현은 인간을 궁지에 몰아 넣는 현실, 즉 구조 악을 의미한다. 이 구조 악이 바로 죄다. 국민의 보건건과 생존권을 협상의 여지없는 악의 구조에 몰아넣고 힘들게 하는 것은 당신이 지지하는 정권이다. 우리에겐 지금 '정직한 먹거리'를 먹는 것이 마음의 한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는 이명박 정권이 거짓 목사들과 한패가 되어 쌓으려 하는 사회학적 구조 악과 싸우는 것이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마태복음 구절을 인용하며 "이 말씀이 지금 온 국민의 비난을 받는 대통령의 마음일 것"이라며 "이 세상 어떤 아비가 자식에게 독을 쥐어주겠느냐, 이 세상 어떤 위정자가 국민에게 악의 씨앗을 뿌리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주장대로 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이란 국가를 사유화하고 재화를 사유화하여 나누어주는 주체가 된다. 바로 성경에서의 죄의 근본, 공의 사유화를 주도한 사탄이 된다. 다시 말한다. 추부길의 논리대로 따라가면 이명박 대통령이 바로 사탄이다. 대의를 위해 잠시 권력의 자리에 올려진 위임자가 아닌,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며 우리에게 먹거리를 나누어주는 존재로 탈바꿈 한 것이다.
추부길의 발언이 웃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진정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인간이라면, 하나님의 공공재를 사유화 하려는 일체의 도전과 움직임, 바로 신 자유주의와 싸워야 한다. 내가 신 자유주의 논리에 반대하는 근저에는 이런 신학적 입장들이 공고하게 서있다.
"통상적으로 쓰는 기도문구"라고 변명했단다. 많은 기독인 들이 주일이 되면 교회에서 나라를 위해,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기도를 한다.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는 특정 기도문이 없는 자유형식이다. 통상적으로 쓰는 기도문구 어디에 '사탄 운운하는 표현이 그렇게 자유롭게 자주 등장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추부길의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일까? 궁금하다. 어제 고려대 여학생이 한승수 총리를 가리켜 "고려대를 다니고 있는 것이 지금처럼 부끄러운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나도 말하고 싶다. "지금처럼 소망교회를 다니는 것이 부끄러운 적이 없다"고 조용기와 오정현, 한홍, 곽선희, 김홍도, 너희가 말세지말의 때에 얼굴에 똥을 바르게 될 것이며 그것이 제하여지듯 너희들도 그렇게 되리라. 광우병 괴담은 사탄의 계략이라고 말한 조용기, 광우병 쇠고기 악플은 사탄의 거짓말이라고 설교한 온누리 교회의 한홍 목사까지 이 땅의 대형교회가 정치권력과 결탁한 이 정권의 비 도덕성에 크리스천들은 심대한 의문을 던지며 좌절감을 느낀다. 제발 다른 기독인들 욕 먹이지 말라. 정말 나도 지친다. 죄의 조건을 양산하고 만들어내는 이 정부의 나팔수로 살아가는 당신 같은 이들로 인해 기독의 역사가 조롱거리로 변해간다.
끊임없는 자기 합리화의 역사는 종교권력을 악용하는 자들의 논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목사들이 나치 히틀러를 찬양하는 설교를 하고 값싼 은혜를 들먹였다. 주일 때면 "이명박 장로님을 위해 기도하고 폭도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김지철 목사의 기도에 기가 질린다.
나는 히틀러를 찬양하기 보단, 그를 사탄으로 규정하고 암살단을 만들었다가 처형당한 신학자 디트리히 본 회퍼의 입장에 서련다. 유럽의 교회가 죽은 것이, 자유주의 신학 때문이라고 말하지 말라 역사적 예수를 운운하며 실존적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떠들지 마라. 사람은 자기와 동등 비교할 수 있는 다른 사람 때문에 실망하고 사람 때문에 이념을 버리고 사람 때문에 지지를 철회하거나 그 지지를 이어간다.
이 땅의 기독교가 세상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크리스천임이 부끄러운 건 바로 정치와 결탁한 종교의 강대상 아래 뻔뻔스런 미소를 짓는 거짓 목자들 때문이다. 72시간 릴레이 촛불을 들어준 모든 이들에게 여러분들의 그 낮과 밤은 거룩한 시간이었음을 선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10일 날 뵙겠습니다. 기독의 역사, 다시 쓰여야 합니다. 교만과 독선으로 가득한 이 땅의 기독교, 저 거침없이 무례한 자들의 값싼 크리스마스가 언 자리, 낮은 곳을 지향했던 예수의 말구유를 무색하게 합니다.
김진홍 목사가 예전에 쓴 글입니다. 읽으면서 배신감이 가득하게 느껴지네요. 정치목사 김진홍의 두 얼굴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명예나 이익보다 교회와 겨레를 위해 헌신하자면서 실은 사적 정치권력만을 추구하는 뉴 라이트의 수장의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세 번째 글
무례한 자 들의 크리스마스-권력을 향한 교회의 몸부림
S#1 박근혜는 닭(?)-잡아먹어야
인터넷 공간이 종교논쟁으로 시끄럽다. 진앙지는 강남교회의 김성광 목사의 발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울고 짖어대는 닭과 개는 잡아먹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박근혜가 시집을 가봤나" "쓸모 없는 훈시만 늘어놓는다" 등 원색적 비난을 한 사실이 17일 뒤늦게 밝혀졌다.
박사모와 한나라당 평 당원 모임인 한사평까지 명예훼손으로 검찰고소를 고려 중이다. 김 목사 측 반응도 발 빠르다. 오늘 크리스천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분열과 대립보다는 하나가 되어 협력해야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거시적 관점에서 자신의 발언을 살펴봐 달라고 당부했다. (사진) 김성광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S#2 정치교회-세상을 향한 권력의지를 토하다
크리스천으로서 정교분리가 되지 않은, 미분화된 사회의 측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고, 정치교회의 권력의지가 극에 달했다는 점을 느낀다. 문제발언의 주인공 김성광 목사는 조용기 목사의 처남이다. 교회성장 사를 보면 1970년-80년대에 성장한 선발 대형교회와 이후 강남을 중심으로 한 후발대형교회의 성장으로 나뉜다.
서울로 올라온 이농민을 흡수, 급성장을 이룬 선발 대형교회의 축은 순복음교회다. 당시 한국사회의 지배적 갈망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고 가난 탈출의 염원을 신앙의 언어로 포장, 도시 하층민의 희망을 담보로 '신앙장사'를 했다.
이들의 생활력은 강했고, 모든 것은 성공을 위한 도구였다. 성공주의가 대표적인 논리다.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구원>론도 영혼구원, 생활축복, 건강축복을 주장하며 사람을 끌었다. 선발대형교회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에 집착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색채를 띠게 된 것도 이때다. 한기총의 정치적 행보에서 느껴지는 추함은 바로 이러한 성장과정과 맞물려있다. 김성광 목사의 정치적 행보는 국가조찬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조용기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S#3 교회는 쿨 하지 않다-명품신앙을 찾는 이들
한국교회는 공산주의에 대한 편집증적 광기가 면면에 베어있다. 일제시대, 철저하게 골방중심의 신학을 유포하며 적극적인 저항을 하지 않았던 기독교의 속죄의식을 다른 것으로 풀려는 행동이다. 이후 기독교는 철저하게 '빨갱이' '공산주의'를 운운하며 친 정부적 성향을 띤다. 後發 대형교회로 불리는 소망교회를 위시로 한 일련의 교회지도자들의 정치적 행보도 그리 다르지 않다. 한기총이란 연합단체의 힘 아래, 얼마나 자신의 코드에 맞는(?) '대통령 만들기'에 열을 올렸는가. 중 상류 계층의 사회적 도덕적 품격을 강조하며 '명품신앙'을 주장했던 후발대형교회의 정서는 과연 무엇이 다를까? 성서를 인용해 설명해본다.
마가복음 10장엔 '부자 청년' 이야기가 나온다. 성서의 모든 계명을 다 지켰노라고,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예수는 "한 가지가 부족하다. 너의 재물을 모두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한다. 청년은 재물이 많기에 슬픈 기색을 하며 근심하며 돌아갔다는 내용이다.
소망교회의 면모와 닮아있지 않은가? 정직하고 예의 바르고, 때 되면 선교도 가고 외국어도 잘하고 악기도 하나쯤은 다루는 쿨한 아이들의 교회. 단 충분한 자산상태에 기반을 둔 계층이 누리는 여유로움이 '은혜'로 포장된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명품적 우월감으로 포장된 신앙. 그것이 바로 오늘날 MB 정권의 정신적 멘탈리티인 '선진화'의 한 단면이다. 이들의 정치참여는 바로 철저한 문화적 보수성에서 기인한다.
S#4 박근혜를 옹호함-정교분리의 사회를 꿈꾸며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표명하고 '기독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지원 활동을 펼치는 보수주의 교회들. 이들은 성경적인 삶의 실천과는 완전히 유리된 삶, 자신들의 리그만을 공고히 하려는 권력의지를 가진 바리새인과 다를 바 없다. 기독의 정치참여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형식으로 참여할지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탄절이 다가온다. 낮은 자리에 임했던 예수. 그는 시대의 정치적 부당성과 메시아 신앙을 추종하던 당대의 편집증적 광기와 싸움을 벌인 아름다운 인간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몸을 통해,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사랑의 언어를 전달했다. 그런 마음이 지금 있기는 한 것인지. 무례한 자들의 성탄절을 맞아, 다시 한번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 보길 촉구한다.
비 기독교도인 박근혜 대표를 향한, 저주 섞인 말은, 기독 전체로 그 비난이 쏟아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정치권력에 입맛을 다시는 자에게 구원의 메시지는 없다. 유대교와의 전면전을 통해, 자폐증에 걸린 패권주의 이념을 극복하고 탈 신학의 세계를 소요유 했던 예수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마지막으로 작가 송진화의 <주신 강림하사>란 작품을 올려본다. 연말이라 취기에 사로잡히기 쉬운 요즘. 목사는 주(主) 대신 주(酒)를 선택한 것 같다. 술에 취한 헛소리는 이제 그만 집어치우길.
네 번째 글
독도가 그립다-내 누이의 눈물을 생각함
민정기_우리 섬 독도 별 맞이_캔버스에 유채_225×340cm_2002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환절기라고 하기엔 구분이 점점 애매모호해지는 날씨, 폭염을 피하고 싶었던 봄의 심술이었을까? 오늘 내린 비로 대지는 더욱 떨어진 온도로 밤새 얼어붙을지도 모를 속살을 껴안고 잠들어야 할 듯 하다. 광주 민주화 항쟁이 일어난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옆집 형을 잃어버린 기억도 정말 잊혀지려나, 절규하던 옆집 어머니랑 누나의 모습도 여전히 가슴 속엔 응고된 기억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과거에 대한 매듭을 풀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미래를 향한 비전을 이야기 해서는 안 된다. 근 현대사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하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집요하게 조사하고 그 공과를 묻고 풀었던 적이 있었나. 후소사 교과서 보다 지독한 역사 교과서를 대안이라며 학교에 강요하고 일제 식민지 통치기간을 산업개발의 맹아기라고 주장하는 뉴 라이트의 천박한 수사학은 이제 정권 교체와 더불어 더욱 가속될 위험이다.
이와 더불어 일본의 횡보도 가관이다 이틀째 경제수역 침범 여부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국제사회에 독도 분쟁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갖은 정치적 로비를 벌이고 있다. 이런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권은 미래를 위한 동반자와 파트너 운운하며 독도 문제를 거론하지 말 것을 주일대사에게 명령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실용외교 운운하는 기본적 입장의 천명인데 내가 답답한 것은 이명박 정부는 국가가 일인 CEO에게 끌려가는 경제 주체 정도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의식이 없는 국가의 통치가 얼마나 수많은 국민들을 위험으로 몰아넣는지는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역사가 보여준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히틀러 같은 광기로 가득한 인간이 가장 이성적이고 철학적이라 불렸던 독일을 장악할 수 있었나 바로 종교의 부패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 수많은 해석이 있을 수 있으나 오늘은 종교적 상황을 빌어서 이 상황에 대한 작은 해석을 시도한다. 히틀러 앞에서 값싼 은혜 론을 들먹이며 정권에 빌붙었던 많은 목사들이 있었다. 지금 현재 한국의 교회가 딱 그 꼴이다. 이런 비판이 일어날 때마다 유럽교회의 몰락이 예수를 부정하고 역사성을 들먹이는 자유주의 신학의 창궐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사람들이 기독교를 가리켜 비난하는 이유가 과연 자유주의 신학이니 뭐니 하는 담론 타령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언론에서 속속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의 졸속체결과 외교적 실책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우병 괴담이 사탄의 전략"이라 거들먹거리는 조용기와 같은 쓰레기들이 이 땅에 종교 지도자란 타이틀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자들이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에게 대항한 순수한 신학자들과 목사들을 뒤에서 고발하고 부역하도록 협조한 인간들이다. 오늘 시청에서 구국 기도회가 열렸다. 웃기지도 않은 작태가 여전히 이 땅에서 일어나는 건 종교와 정치가 결탁하고 그들이 정서적 카르텔을 형성하며 세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며칠 전 참석했던 조찬 기도에서 "의인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믿는 대통령의 믿음이 클지, 혹은 가족들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정부의 실책을 근거를 들어 비판하는 이 땅의 시민들의 믿음이 클지는 이제 한국의 갈멜산, 서울에서 확연하게 보여질 듯 하다. 사탄이란 단어를 운운하는 자. 그 누구인가? 조용기와 오정현 목사는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발언 내용에 대해 참회하라.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의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더러운 얼굴에 똥칠을 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왜 유럽의 큰 교회들이 이젠 관광명소로만 세상 사람들에게 언급되는지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렇게 영향력 있던 교회들이 점차 사회적 책임과 현실을 돌보지 않고, 값싼 구원관과 기도와 기적에만 연연한 믿음만을 가르치고, 정치 논리와 권력에 무기력 해진다면 진리를 찾던 사람들은 교회로부터 돌아설 수 밖에 없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고난에 동참하여 고난을 야기하는 요소와 문제들을 고치는 구체적인 행위에 참여하는 길이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홀로 만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합일은 세상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과 다른 피조물에 대한 관심•배려와 돌봄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통전적이 된다는 것은 곧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의에서 눈을 돌려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운동에 참여하여 스스로 사랑이 되는 것이다.” (도로테 죌레 <신비와 저항> 에서)
국가는 국민에 대해서 안전의 의무를 지키고 국토를 보위할 책임을 가진다. 문제는 이런 당연한 담론 조차, 현 정부는 실용이란 미명하에 자본화 시키고 매각시켜 버린다. 일본에선 이미 중등 교과서에 독도를 자신의 땅으로 표기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행한 것은 '실용'을 위해서, '일본 부품 산업과의 긴밀한 협조관계'를 위해서 그냥 덮어두잔 다. 역사 의식은 뒤로 하고라도, 이렇게 하면 일본과의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그 믿음의 근거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주길 바란다.
현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이다. 도대체가 아직도 난 그가 주장하는 실용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결국 우리가 얻는 것이 잃는 것 보다 많아야 실용이 아닌가? 지금 하는 작태를 보아서는 실용도 아니고, 약게 노는 사업가의 기민함도 아니고 도대체가 규정할 수 없는 색깔로만 캔버스를 채우고 있다.
여론이 악화되니 한다는 소리도 가관이다. 관계기관을 통해 사실 확인을 할 것이다. So What?
왜 이것도 국제적인 기준을 따라서 결정을 할 것인가? 한 나라의 영토를 침탈하기 위해 일본이 국제사회에 어떤 활동들을 해왔는지 모르고 있나? 국제재판에 회부될 경우, 국제적 기준에 의해서 우리가 졌습니다 라고 말하고 끝낼 셈인가? 하긴 옹알거리는 농산부 장관의 말을 들어보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
참 웃긴다. 천 년을 동해에 발 담그고 산 내게 네 품으로 오라며 추파를 던지는 네가. 치마끈 풀어 헤치고 욕정의 문을 열어 주랴? 홀로 떨어져 있다고 걸핏하면 치근대며 집적거리는 네게. 저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만도 못한 주제에 괭이 갈매기의 울음보다 못한 주제에 게다 짝 끌고 뒤뚱거리며 애걸복걸 하다니...
참 웃긴다. 날 보고 네 것이라고 소리 지르는 네가. 어디 제 마누라 보고 내 마누라 라고 외치는 못난 사내 보았더냐? 그렇게 외도를 하고 싶거든 야스꾸니 신사 앞마당에 서서 달밤에 훈도시 차고 체조나 하여라. 참 웃긴다. 저 발정 난 수컷!
하는 짓이 왠만 해야 언어도 고와지는 법이다. 실용하자며, 약게 놀자며 그런데 어째 하는 짓은 항상 반푼 인지. 독도가 너무나도 외롭다. 수많은 힘들 속에 겨울 나목으로 벌거벗겨져 언제 강간당할지 모를 위험에 처한 이 땅의 외로움 섬이 나를 눈물 흘리게 한다. 내 누이가, 내 어미의 젖이 웃기지도 않은 개다 짝 끄는 놈들에게 유린될 판이건만 정부는 제발 민족의 자존 감을 세워라. 독도를 빼앗기도 나서도 구국 기도회나 할 것인가? 조용기의 영빨이 그렇게도 센가?
한번 증명해 보라. 왜 자신 없어? 오정현이도 함께 해달라고 해보든가.
김기홍은 문학작가이다
첫 번째 글
장경동, 너나 잘하세요
S#1-예수의 독설이 필요한 까닭
최근 장경동 목사의 불교계를 지목한 막말파문이 일파 만파 퍼지고 있다. 예수의 죽음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항상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일각에선 기독 장로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 것에 고무된 채, 교회는 정치력을 더욱 풍성하게 확장시켜 가기를 꿈꾸었다. 그들이 지켜봐 달라던 새 정부 등장 이후의 허니문 기간인 100일이 월등히 지난 지금.
이 나라는 지금 종교논쟁으로 뜨겁다. 서울을 제대로 하나님께 봉헌하지 못해서인가? 그 여파를 예측하기 어렵다. 불교계 언론에선 대통령의 친 기독교적 성향과 종교편향성을 비판했다. 지도상의 사찰 누락, 조계종 총무원장 검열은 작은 일에 불과하다. 목사들은 대통령을 향한 용비어천가를 주일 기도로 바치고, 반대세력을 가리켜 '사탄'이라 불렀다.
S#2-장경동 목사, 그는 누구인가?
푸근한 일상의 주제를 통해, 성경을 말하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하루에도 지방 여러 곳을 다니며 설교하는 부흥목사로 인지도가 높다. 청년들 사이에 한국교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 7위에까지 랭크 되었다니 그 인기는 말할 필요가 없다. 2만권이 넘는다는 그의 서재, 더불어 예화를 개발하는 열정도 난 높이 샀다.
그런 그가 최근 뉴욕 순복음 교회의 순회 설교 시간에 '내가 경동교(장경동교)를 만들면 안 되듯, 원불교나 통일교도 만들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이 내용 자체는 성경에 비추어 타당하다. 문제는 이 말이 우리 기독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거다. 베드로에게 교회를 세우라는 명령을 예수교를 컬트화 하라는 명령으로 해석했다면 실수한 거다. 이래서 신학 하는 교회가 필요하다.
속성 은혜 반, 속성 성경 반이 판치는 교회라 그런지 가르치는 자도 속성으로 이야기 한다. 속성 은혜에 찌들은 기독교의 내부엔 수많은 사회적•정치적 현안에 개입할 적절한 세계관도, 개개인의 소외•고독과 대면할 성숙한 철학도 결핍된 교회의 실체가 들어있다. 교회신앙이 오히려 예수와 대중의 소통에 심각한 장애물이 되어버린 현실. 은혜도 속성으로 받아야 하고, 긍정의 힘도 속성으로 받아야 속이 풀리는 소비자 중심의 교회에 더 이상 역사적 예수의 오롯한 가르침은 없다.
당시의 안식일법과 오늘날 국가보안법 모두 당대의 편집증적 광기에서 나온 것이다. 성서 속 나병환자와 창녀의 고통이 우리사회의 노숙자와 기지촌 매춘여성의 아픔으로 연결되며 로마제국, 헤롯 정권, 율법학자, 유대교회당의 모습은 오늘날 미국, 이명박 정부, 관변 지식인, 대형교회의 모습과 닮았다.
"스님들 쓸 때 없는 짓 그만하고 예수 믿어야 " 라고 주장한다. 이런 식의 사고가 지금 기독교 내부에서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회 내에서의 종교의 역할과 기독교의 화합' 운동을 깡그리 무너뜨리는 짓임을 그는 알고 있을까? KNCC를 무너뜨리기 위해 군사정권 시절 정치적으로 이용된 한기총. 이들의 주장은 유독 근본주의적 속성이 강하다. 근본주의란 말만 듣고 그저 "하나님이 우리의 근본"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면 착각이다. 이 신학은 1920년대 공산주의와의 이념적 대치상황에서 나온 미국적 신학이다. 반대파를 숙청하는 이념의 방식으로 출발한 신학이다.
장경동 목사가 칭찬하는 김홍도 목사를 비롯, 한국의 1.5 세대 목사들이 다 근본주의의 세례를 받았다. "김홍도 목사님의 기도가 있어서 한국이 잘 되었다"고 했다지. 기도가 무슨 목사 개인의 힘으로 결과가 발휘된다는 식의 사고가 어디에서 나온걸 까? 기도만큼 대화주의적인 장치가 어디에 있나? 이런 영광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전적 은혜라고 가르쳐야 하지 않나? 목사 개인에게 환원되어선 안될 문제다.
대형교회를 비롯 장경동 같은 자들의 사고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일제시대의 부역에 침묵하고, 개인의 영혼 구원만 강조한 장본인이자 그 부산물 세대다. 골방신학을 탄생시킨 이들이다. 미국 근본주의 신학의 정치적 관점을 알고 있는가? 그들은 핵전쟁을 찬양하고 사회적 불순분자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우세력이다. 성경상의 '남은자' 쉐하르가 바로 자신들이며, 이교도와 동성애자를 비롯한 사회적 아웃사이더들은 깡그리 지상에서 불로 태워 없애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다. 이들이 공화당의 골수 매파를 지향하고, 이들에게 자본을 대는 자들이다. 한국의 근본주의 방식 또한 이들과 연계된다.
어찌 보면 장경동 목사도 김홍도란 목사한테 잘 못 보이면 안되기에 이런 이야기를 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신학교에선 근본주의가 지양해야 할 신학적 방식임을 가르치긴 한다. 문제는 학교에서 배울 때와 현실에서 목회를 할 때, 그 태도가 달라진다는 거다. 장경동의 말처럼, '목사에게 잘하고' '십일조 생활 잘하고' '목사님 비방하지 말고' '오로지 순종하면' 결국 편하게 되는 주체는 목사요, 그가 전횡하는 교회다.
장경동은 스스로를 경동교로 만들면 안 된다고 자기고백을 했지만 정작 교회 내부에선 예수처럼 대접받고 싶어, 쇼맨십을 끌어들여 자신은 살짝 면죄부를 준다. 그러니 자기 모순이다. 어차피 김홍도와 같은 부류가 되었으니 비판은 애초부터 힘들고 그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노선에 발을 담글 수 밖에. 장목사는 "정교분리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말에 모든 신학생들이 찬성할까? 아니다.
그런데 비판하지 못한다. 왜 교회 자체가 공안정국이다. 교회숫자에 비해 졸업생이 많다 보니, 말 그대로 잘못 보이면 안 된다. 성도를 양육하는 것 보다 청와대 조찬 기도회가 영광스러운 자들. 정권과 결탁된 종교가 과연 그 본질적 횡보를 잘 해낼 수 있을까? 정교분리의 원칙은 다원화된 신앙의 형태를 사회적 공존을 위해 포섭해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이다.
자기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는 집단은 항상 외부로 시선을 돌린다. 내부가 모순으로 가득할 때, 이단논쟁이 나오고, 이교도 숙청으로 연결된다.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듯, 그러나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우월감으로 무장한 명품신앙을 강조하는 곳. 이것은 신앙의 선진화가 아니다. 사회적 배제를 배제로 모르는 인간들, 이들이야 말로 예수의 사랑과 그 혁명을 철저하게 전용하는 자들이다. 사회 내에 공존하는 종교 간 대화는커녕 배제를 근간으로 삼는 행동은 지양했으면 한다. 설교는 속성으로 하는 게 아니라, 숙성 되어 나오는 것임을 알길 바란다
두 번째 글 (촛불항쟁 시, 다음 메인에 떠서 10만 명 이상에게 읽혔습니다)
기독교인이 본 추부길의 사탄발언-이 정권이 사탄이다
"죄란 지배자의 언어이고 민중에 있어서는 그것이 바로 한이다"
-죽재 서남동 목사
청와대 추부길 비서관의 발언을 들었다. 이명박 정부가 과장과 거짓으로 무장한 세력에 의해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 면서 "왜곡과 과장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세력이 누구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배후세력설'을 주장했다고 한다. "사탄의 무리들이 이 땅에 판을 치지 못하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감히 부탁 드린다"며 축사를 마무리 지었다. 이 발언의 파장은 상당하다. 누리 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자 통상적인 기도문구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작가 유관석의 작품 앞에 있다가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예수의 죽음은 결국 당대의 지배자들의 자기 합리화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지배자들은 다른 이들이 아니다. 바로 당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는 종교 지도자들이다. 추부길은 지금 이 땅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을 저 십자가에 못 막아 처형했다.
죽재 서남동 목사님의 경구를 초두에 둔 것은 바로 기독인 으로서 추부길의 발언을 수정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에서 올렸다. 죄란 지배자가 피지배층에게 규정하는 용어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생존권과 하나님의 질서로 창조한 물과 공기와 같은 공공재의 존재를 믿고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일 뿐, 정작 이들의 목소리를 죄로 규정하고 사탄의 계략으로 정죄하는 쪽은 정부다. 추부길이 생각하는 죄의 개념은 어디에서 시작할까? 성서는 죄에 대해서 다양한 개념을 포함하는 단어들을 설명한다.
Sexuality(성적인 것 일체)라고도 하고 인간의 한계성이라고도 한다. 사회학적 성서해석에서는 바로 사유화 해서는 안 되는 것, 사유화 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답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란 표현에는 인간 개인이 창조된 공공재를 결코 사유화 할 수 없음을 말한다. 국가권력도 공공재다. 결코 한 개인이 독점 및 사유화 할 수 없다.
국민들이 생태 정치학을 위해 싸우고 있는 소는 초식동물이다. 광우병은 초식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데서 출발한다. 그럼 왜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가? 바로 미국적 사고의 사유화와 경쟁의 논리가 들어있다. 그만큼 빨리 자라기 때문이다. 여기엔 자본과 비열한 욕망이 들어있다. 최근 뜨거운 감자가 된 물도 공공재다. 비를 내려주시고 하천을 만드신다. 우리는 그 자연을 잠시 동안 '관리자'의 명목으로 임대할 뿐이다.
세계적인 물 회사를 키워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웃기지도 않은 작태에 기독인 으로서 통탄을 금치 못한다. 추부길 비서관이 촛불집회에 나간 우리들을 가리켜 사탄의 무리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기독인이보기에, 공공재의 민영화에 저항하는 것은 죄의 원천과 싸우겠다는 선한 기독적 양심이라고 봐야 한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한국에서의 근본주의란 1920년대 공산주의와의 대치상황에서 미국이 자생적으로 만들어낸 신학적 이념이고 이것은 한국에 수입되어 '옹호되어야 할 근원'이란 의미로 잘못 쓰여지고 있다. 바로 추부길 같은 자들은 이러한 근본주의 신학의 피해자이고 또한 가해자다. 신학적 근본과 근본주의 신학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추부길은 우리에게 죄인취급을 했다. 현정권의 실정법을 어기고 정권전복을 야기하는 죄인이라고 말했다. 죄의 뜻이 뭔지는 잘 알고 하는 소리인가? 죄를 규정하는 단어는 여러 가지다.
그 중에서 <스칸달리조>란 표현은 인간을 궁지에 몰아 넣는 현실, 즉 구조 악을 의미한다. 이 구조 악이 바로 죄다. 국민의 보건건과 생존권을 협상의 여지없는 악의 구조에 몰아넣고 힘들게 하는 것은 당신이 지지하는 정권이다. 우리에겐 지금 '정직한 먹거리'를 먹는 것이 마음의 한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는 이명박 정권이 거짓 목사들과 한패가 되어 쌓으려 하는 사회학적 구조 악과 싸우는 것이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마태복음 구절을 인용하며 "이 말씀이 지금 온 국민의 비난을 받는 대통령의 마음일 것"이라며 "이 세상 어떤 아비가 자식에게 독을 쥐어주겠느냐, 이 세상 어떤 위정자가 국민에게 악의 씨앗을 뿌리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주장대로 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이란 국가를 사유화하고 재화를 사유화하여 나누어주는 주체가 된다. 바로 성경에서의 죄의 근본, 공의 사유화를 주도한 사탄이 된다. 다시 말한다. 추부길의 논리대로 따라가면 이명박 대통령이 바로 사탄이다. 대의를 위해 잠시 권력의 자리에 올려진 위임자가 아닌,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며 우리에게 먹거리를 나누어주는 존재로 탈바꿈 한 것이다.
추부길의 발언이 웃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진정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인간이라면, 하나님의 공공재를 사유화 하려는 일체의 도전과 움직임, 바로 신 자유주의와 싸워야 한다. 내가 신 자유주의 논리에 반대하는 근저에는 이런 신학적 입장들이 공고하게 서있다.
"통상적으로 쓰는 기도문구"라고 변명했단다. 많은 기독인 들이 주일이 되면 교회에서 나라를 위해,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기도를 한다.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는 특정 기도문이 없는 자유형식이다. 통상적으로 쓰는 기도문구 어디에 '사탄 운운하는 표현이 그렇게 자유롭게 자주 등장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추부길의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일까? 궁금하다. 어제 고려대 여학생이 한승수 총리를 가리켜 "고려대를 다니고 있는 것이 지금처럼 부끄러운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나도 말하고 싶다. "지금처럼 소망교회를 다니는 것이 부끄러운 적이 없다"고 조용기와 오정현, 한홍, 곽선희, 김홍도, 너희가 말세지말의 때에 얼굴에 똥을 바르게 될 것이며 그것이 제하여지듯 너희들도 그렇게 되리라. 광우병 괴담은 사탄의 계략이라고 말한 조용기, 광우병 쇠고기 악플은 사탄의 거짓말이라고 설교한 온누리 교회의 한홍 목사까지 이 땅의 대형교회가 정치권력과 결탁한 이 정권의 비 도덕성에 크리스천들은 심대한 의문을 던지며 좌절감을 느낀다. 제발 다른 기독인들 욕 먹이지 말라. 정말 나도 지친다. 죄의 조건을 양산하고 만들어내는 이 정부의 나팔수로 살아가는 당신 같은 이들로 인해 기독의 역사가 조롱거리로 변해간다.
끊임없는 자기 합리화의 역사는 종교권력을 악용하는 자들의 논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목사들이 나치 히틀러를 찬양하는 설교를 하고 값싼 은혜를 들먹였다. 주일 때면 "이명박 장로님을 위해 기도하고 폭도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김지철 목사의 기도에 기가 질린다.
나는 히틀러를 찬양하기 보단, 그를 사탄으로 규정하고 암살단을 만들었다가 처형당한 신학자 디트리히 본 회퍼의 입장에 서련다. 유럽의 교회가 죽은 것이, 자유주의 신학 때문이라고 말하지 말라 역사적 예수를 운운하며 실존적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떠들지 마라. 사람은 자기와 동등 비교할 수 있는 다른 사람 때문에 실망하고 사람 때문에 이념을 버리고 사람 때문에 지지를 철회하거나 그 지지를 이어간다.
이 땅의 기독교가 세상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크리스천임이 부끄러운 건 바로 정치와 결탁한 종교의 강대상 아래 뻔뻔스런 미소를 짓는 거짓 목자들 때문이다. 72시간 릴레이 촛불을 들어준 모든 이들에게 여러분들의 그 낮과 밤은 거룩한 시간이었음을 선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10일 날 뵙겠습니다. 기독의 역사, 다시 쓰여야 합니다. 교만과 독선으로 가득한 이 땅의 기독교, 저 거침없이 무례한 자들의 값싼 크리스마스가 언 자리, 낮은 곳을 지향했던 예수의 말구유를 무색하게 합니다.
김진홍 목사가 예전에 쓴 글입니다. 읽으면서 배신감이 가득하게 느껴지네요. 정치목사 김진홍의 두 얼굴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명예나 이익보다 교회와 겨레를 위해 헌신하자면서 실은 사적 정치권력만을 추구하는 뉴 라이트의 수장의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세 번째 글
무례한 자 들의 크리스마스-권력을 향한 교회의 몸부림
S#1 박근혜는 닭(?)-잡아먹어야
인터넷 공간이 종교논쟁으로 시끄럽다. 진앙지는 강남교회의 김성광 목사의 발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울고 짖어대는 닭과 개는 잡아먹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박근혜가 시집을 가봤나" "쓸모 없는 훈시만 늘어놓는다" 등 원색적 비난을 한 사실이 17일 뒤늦게 밝혀졌다.
박사모와 한나라당 평 당원 모임인 한사평까지 명예훼손으로 검찰고소를 고려 중이다. 김 목사 측 반응도 발 빠르다. 오늘 크리스천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분열과 대립보다는 하나가 되어 협력해야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거시적 관점에서 자신의 발언을 살펴봐 달라고 당부했다. (사진) 김성광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S#2 정치교회-세상을 향한 권력의지를 토하다
크리스천으로서 정교분리가 되지 않은, 미분화된 사회의 측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고, 정치교회의 권력의지가 극에 달했다는 점을 느낀다. 문제발언의 주인공 김성광 목사는 조용기 목사의 처남이다. 교회성장 사를 보면 1970년-80년대에 성장한 선발 대형교회와 이후 강남을 중심으로 한 후발대형교회의 성장으로 나뉜다.
서울로 올라온 이농민을 흡수, 급성장을 이룬 선발 대형교회의 축은 순복음교회다. 당시 한국사회의 지배적 갈망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고 가난 탈출의 염원을 신앙의 언어로 포장, 도시 하층민의 희망을 담보로 '신앙장사'를 했다.
이들의 생활력은 강했고, 모든 것은 성공을 위한 도구였다. 성공주의가 대표적인 논리다.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구원>론도 영혼구원, 생활축복, 건강축복을 주장하며 사람을 끌었다. 선발대형교회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에 집착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색채를 띠게 된 것도 이때다. 한기총의 정치적 행보에서 느껴지는 추함은 바로 이러한 성장과정과 맞물려있다. 김성광 목사의 정치적 행보는 국가조찬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조용기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S#3 교회는 쿨 하지 않다-명품신앙을 찾는 이들
한국교회는 공산주의에 대한 편집증적 광기가 면면에 베어있다. 일제시대, 철저하게 골방중심의 신학을 유포하며 적극적인 저항을 하지 않았던 기독교의 속죄의식을 다른 것으로 풀려는 행동이다. 이후 기독교는 철저하게 '빨갱이' '공산주의'를 운운하며 친 정부적 성향을 띤다. 後發 대형교회로 불리는 소망교회를 위시로 한 일련의 교회지도자들의 정치적 행보도 그리 다르지 않다. 한기총이란 연합단체의 힘 아래, 얼마나 자신의 코드에 맞는(?) '대통령 만들기'에 열을 올렸는가. 중 상류 계층의 사회적 도덕적 품격을 강조하며 '명품신앙'을 주장했던 후발대형교회의 정서는 과연 무엇이 다를까? 성서를 인용해 설명해본다.
마가복음 10장엔 '부자 청년' 이야기가 나온다. 성서의 모든 계명을 다 지켰노라고,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예수는 "한 가지가 부족하다. 너의 재물을 모두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한다. 청년은 재물이 많기에 슬픈 기색을 하며 근심하며 돌아갔다는 내용이다.
소망교회의 면모와 닮아있지 않은가? 정직하고 예의 바르고, 때 되면 선교도 가고 외국어도 잘하고 악기도 하나쯤은 다루는 쿨한 아이들의 교회. 단 충분한 자산상태에 기반을 둔 계층이 누리는 여유로움이 '은혜'로 포장된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명품적 우월감으로 포장된 신앙. 그것이 바로 오늘날 MB 정권의 정신적 멘탈리티인 '선진화'의 한 단면이다. 이들의 정치참여는 바로 철저한 문화적 보수성에서 기인한다.
S#4 박근혜를 옹호함-정교분리의 사회를 꿈꾸며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표명하고 '기독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지원 활동을 펼치는 보수주의 교회들. 이들은 성경적인 삶의 실천과는 완전히 유리된 삶, 자신들의 리그만을 공고히 하려는 권력의지를 가진 바리새인과 다를 바 없다. 기독의 정치참여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형식으로 참여할지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탄절이 다가온다. 낮은 자리에 임했던 예수. 그는 시대의 정치적 부당성과 메시아 신앙을 추종하던 당대의 편집증적 광기와 싸움을 벌인 아름다운 인간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몸을 통해,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사랑의 언어를 전달했다. 그런 마음이 지금 있기는 한 것인지. 무례한 자들의 성탄절을 맞아, 다시 한번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 보길 촉구한다.
비 기독교도인 박근혜 대표를 향한, 저주 섞인 말은, 기독 전체로 그 비난이 쏟아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정치권력에 입맛을 다시는 자에게 구원의 메시지는 없다. 유대교와의 전면전을 통해, 자폐증에 걸린 패권주의 이념을 극복하고 탈 신학의 세계를 소요유 했던 예수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마지막으로 작가 송진화의 <주신 강림하사>란 작품을 올려본다. 연말이라 취기에 사로잡히기 쉬운 요즘. 목사는 주(主) 대신 주(酒)를 선택한 것 같다. 술에 취한 헛소리는 이제 그만 집어치우길.
네 번째 글
독도가 그립다-내 누이의 눈물을 생각함
민정기_우리 섬 독도 별 맞이_캔버스에 유채_225×340cm_2002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환절기라고 하기엔 구분이 점점 애매모호해지는 날씨, 폭염을 피하고 싶었던 봄의 심술이었을까? 오늘 내린 비로 대지는 더욱 떨어진 온도로 밤새 얼어붙을지도 모를 속살을 껴안고 잠들어야 할 듯 하다. 광주 민주화 항쟁이 일어난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옆집 형을 잃어버린 기억도 정말 잊혀지려나, 절규하던 옆집 어머니랑 누나의 모습도 여전히 가슴 속엔 응고된 기억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과거에 대한 매듭을 풀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미래를 향한 비전을 이야기 해서는 안 된다. 근 현대사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하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집요하게 조사하고 그 공과를 묻고 풀었던 적이 있었나. 후소사 교과서 보다 지독한 역사 교과서를 대안이라며 학교에 강요하고 일제 식민지 통치기간을 산업개발의 맹아기라고 주장하는 뉴 라이트의 천박한 수사학은 이제 정권 교체와 더불어 더욱 가속될 위험이다.
이와 더불어 일본의 횡보도 가관이다 이틀째 경제수역 침범 여부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국제사회에 독도 분쟁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갖은 정치적 로비를 벌이고 있다. 이런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권은 미래를 위한 동반자와 파트너 운운하며 독도 문제를 거론하지 말 것을 주일대사에게 명령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실용외교 운운하는 기본적 입장의 천명인데 내가 답답한 것은 이명박 정부는 국가가 일인 CEO에게 끌려가는 경제 주체 정도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의식이 없는 국가의 통치가 얼마나 수많은 국민들을 위험으로 몰아넣는지는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역사가 보여준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히틀러 같은 광기로 가득한 인간이 가장 이성적이고 철학적이라 불렸던 독일을 장악할 수 있었나 바로 종교의 부패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 수많은 해석이 있을 수 있으나 오늘은 종교적 상황을 빌어서 이 상황에 대한 작은 해석을 시도한다. 히틀러 앞에서 값싼 은혜 론을 들먹이며 정권에 빌붙었던 많은 목사들이 있었다. 지금 현재 한국의 교회가 딱 그 꼴이다. 이런 비판이 일어날 때마다 유럽교회의 몰락이 예수를 부정하고 역사성을 들먹이는 자유주의 신학의 창궐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사람들이 기독교를 가리켜 비난하는 이유가 과연 자유주의 신학이니 뭐니 하는 담론 타령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언론에서 속속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의 졸속체결과 외교적 실책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우병 괴담이 사탄의 전략"이라 거들먹거리는 조용기와 같은 쓰레기들이 이 땅에 종교 지도자란 타이틀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자들이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에게 대항한 순수한 신학자들과 목사들을 뒤에서 고발하고 부역하도록 협조한 인간들이다. 오늘 시청에서 구국 기도회가 열렸다. 웃기지도 않은 작태가 여전히 이 땅에서 일어나는 건 종교와 정치가 결탁하고 그들이 정서적 카르텔을 형성하며 세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며칠 전 참석했던 조찬 기도에서 "의인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믿는 대통령의 믿음이 클지, 혹은 가족들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정부의 실책을 근거를 들어 비판하는 이 땅의 시민들의 믿음이 클지는 이제 한국의 갈멜산, 서울에서 확연하게 보여질 듯 하다. 사탄이란 단어를 운운하는 자. 그 누구인가? 조용기와 오정현 목사는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발언 내용에 대해 참회하라.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의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더러운 얼굴에 똥칠을 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왜 유럽의 큰 교회들이 이젠 관광명소로만 세상 사람들에게 언급되는지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렇게 영향력 있던 교회들이 점차 사회적 책임과 현실을 돌보지 않고, 값싼 구원관과 기도와 기적에만 연연한 믿음만을 가르치고, 정치 논리와 권력에 무기력 해진다면 진리를 찾던 사람들은 교회로부터 돌아설 수 밖에 없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고난에 동참하여 고난을 야기하는 요소와 문제들을 고치는 구체적인 행위에 참여하는 길이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홀로 만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합일은 세상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과 다른 피조물에 대한 관심•배려와 돌봄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통전적이 된다는 것은 곧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의에서 눈을 돌려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운동에 참여하여 스스로 사랑이 되는 것이다.” (도로테 죌레 <신비와 저항> 에서)
국가는 국민에 대해서 안전의 의무를 지키고 국토를 보위할 책임을 가진다. 문제는 이런 당연한 담론 조차, 현 정부는 실용이란 미명하에 자본화 시키고 매각시켜 버린다. 일본에선 이미 중등 교과서에 독도를 자신의 땅으로 표기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행한 것은 '실용'을 위해서, '일본 부품 산업과의 긴밀한 협조관계'를 위해서 그냥 덮어두잔 다. 역사 의식은 뒤로 하고라도, 이렇게 하면 일본과의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그 믿음의 근거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주길 바란다.
현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이다. 도대체가 아직도 난 그가 주장하는 실용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결국 우리가 얻는 것이 잃는 것 보다 많아야 실용이 아닌가? 지금 하는 작태를 보아서는 실용도 아니고, 약게 노는 사업가의 기민함도 아니고 도대체가 규정할 수 없는 색깔로만 캔버스를 채우고 있다.
여론이 악화되니 한다는 소리도 가관이다. 관계기관을 통해 사실 확인을 할 것이다. So What?
왜 이것도 국제적인 기준을 따라서 결정을 할 것인가? 한 나라의 영토를 침탈하기 위해 일본이 국제사회에 어떤 활동들을 해왔는지 모르고 있나? 국제재판에 회부될 경우, 국제적 기준에 의해서 우리가 졌습니다 라고 말하고 끝낼 셈인가? 하긴 옹알거리는 농산부 장관의 말을 들어보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
참 웃긴다. 천 년을 동해에 발 담그고 산 내게 네 품으로 오라며 추파를 던지는 네가. 치마끈 풀어 헤치고 욕정의 문을 열어 주랴? 홀로 떨어져 있다고 걸핏하면 치근대며 집적거리는 네게. 저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만도 못한 주제에 괭이 갈매기의 울음보다 못한 주제에 게다 짝 끌고 뒤뚱거리며 애걸복걸 하다니...
참 웃긴다. 날 보고 네 것이라고 소리 지르는 네가. 어디 제 마누라 보고 내 마누라 라고 외치는 못난 사내 보았더냐? 그렇게 외도를 하고 싶거든 야스꾸니 신사 앞마당에 서서 달밤에 훈도시 차고 체조나 하여라. 참 웃긴다. 저 발정 난 수컷!
하는 짓이 왠만 해야 언어도 고와지는 법이다. 실용하자며, 약게 놀자며 그런데 어째 하는 짓은 항상 반푼 인지. 독도가 너무나도 외롭다. 수많은 힘들 속에 겨울 나목으로 벌거벗겨져 언제 강간당할지 모를 위험에 처한 이 땅의 외로움 섬이 나를 눈물 흘리게 한다. 내 누이가, 내 어미의 젖이 웃기지도 않은 개다 짝 끄는 놈들에게 유린될 판이건만 정부는 제발 민족의 자존 감을 세워라. 독도를 빼앗기도 나서도 구국 기도회나 할 것인가? 조용기의 영빨이 그렇게도 센가?
한번 증명해 보라. 왜 자신 없어? 오정현이도 함께 해달라고 해보든가.
김기홍은 문학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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