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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교회, 껍데기 진실과 실체적 진실

  • 황규학
  • 입력 2011.12.12 2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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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껍데기 진실에서 벗어나 알맹이 진실로 돌아가야할 때
광성교회 사건을 보노라면 껍데기 진실과 알맹이 진실(실체적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껍데기 진실을 알맹이 진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사실관계부터 얘기해보자.
 
사실관계를 보면서 미래를 예측해보자.
 
수색 성은교회는 결국 다수의 이탈측이 교회당을 차지했다. 교회당을 차지한 이유는 이탈측이 다수의 사람들이고 교인의 지위를 얻었기 때문이다. 광성교회도 소수파가 패하여 결국 주도권을 상실하게 될 것은 눈에 뻔한 일이다. 잔류측은 지속되는 편법, 불법으로 말미암아 교회당을 내주고 말 것이다. 수색성은교회 잔류측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남광현목사의 임시당회장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그 편법이 결국 잔류측이 발목을 잡히게 되는 것이다.  
 
12. 14. 일은 이성곤목사측이 결국 승소하여 교인의 지위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면 교육관측 교인들은 교육관에 있지말고 당당하게 본당에 들어가서 예장통합측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를 바란다. 당신들은 통합측 교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합측 교인으로서 정식으로 제직회와 교인총회를 열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서로 논의하기 바란다. 교단을 탈퇴하든지, 이성곤목사 대표자 선임을 위한 표결을 하든지, 남광현목사를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제 3의 목사를 인정할 것인지 교인총회를 하기 바란다. 
 
지난번에 필자는 교육관측이 다수를 이용하여 임시총회소집을 하지 못하도록 강남중앙침례교회 기사와 판결문을 잔류측에게 갖다가 주어 결국 회의를 열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것은 한계이다. 다수가 요구하면 법원은 회의소집을 안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교육관측, 본당측 교인들도 예장통합측 소속 교인들로서 당당하게 공동의회와 예배에 참여하여 예장통합측 교인으로서의 권리를 추구하기를 바란다.
 
남광현목사는 현재 편법으로 신분세탁을 통하여 광성교회 임시당회장으로 서 있다. 이는 불법이요, 편법이다. 그러기때문에 교육관측이 공동의회를 요구하여 질서정연하게 남목사에 대한 선거를 하기를 바란다. 인선은 무기명 비밀투표를 하도록 되어있다. 남목사는 편법으로 임시당회장이 될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교인들의 투표를 통하여 임시목사나 위임목사가 되어야 한다.
 
남목사는 누구보다도 교회를 회복하는데 앞장섰고, 영리하며, 성품이 유순하고, 설교도 잘하고, 논리성도 갖추었다. 그렇기 때문에 편법으로 대항할 것이 아니라 합법과 원칙으로 대항하기를 바란다. 이런 사람이라면 정식으로 투표를 통하여 담임목사가 되어야 한다.
 
장로들 역시 편법과 불법으로 남광현체제를 지지하거나 인정할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법절차를 준수해야한다. 그것이 남광현목사의 이미지에도 맞는다. 장기적으로 보면 성은교회처럼 숫자가 적은 잔류측이 결국은 쫏겨나게 될 것이다. 이유는 현재 법원이 교인다수의 손을 들어주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잔류측은 1,000여 명 정도로서만 유지될 것이다.   
 
교육관측 신도들은 교육관에 있지말고 본당에 들어가서 정정당당하게 교인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다하여 제직회와 교인총회를 통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기를 바란다. 특정인을 지나치게 염두해 두지말고, 담임목사를 새로 선출하는데 교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기를 바란다. 적어도 예장통합측 교인이라면 예장통합 헌법에 맞는 신앙생활을 해야할 것이다. 
 
교인총회, 법원에 요청할 수 있어
 
이성곤목사를 대표자로 세우기 위해서는 교인 1/3이상의 서명으로 법원에 정식으로 교인총회를 요청해서 합법적으로 절차있게 교단을 탈퇴한 이후에 교인들의 의지를 통해 대표자로 선임할 수 있다. 그것이 이성곤목사를 대표자로 선임하는 방법이다. 제자교회는 대다수의 교인 7,000-8,000 여명이 4년 징역선고가 떨어진 정삼지 목사를 여전히 담임목사로 생각하고 있다.  
 
제자교회, 여전히 다수의 교인 정삼지 목사 지지
 
교인들은 정목사와 정목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법원에 교인총회를 열어 신임투표를 하자고 한다. 정목사측 비대위들은 교회의 주인은 교인이기 때문에 교인들이 목사와 장로를 불신임할 수 있다고 말한다.
 


▲     © 황규학

 
그러나 정목사반대파들은 노회와 세상법정이 자신들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정식당회원으로서 교회의 경영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노회와 법원은 정삼지목사의 반대편에 손을 들어주었지만, 정작 다수의 교인들은 정삼지목사를 인정하려하고 있다. 신임, 불신임 투표를 하면 현재로서 반대측이 약 300여명의 소수이기 때문에 절대 불리하다. 그렇다면 반대측이 이기고도 지는 것이다. 노회에서 정삼지목사를 아웃시키고, 법정에서 정삼지목사를 구속했어도 교인들이 끝까지 정삼지목사를 지지한다면 정삼지목사는 4년 형을 마치고 나오면 다시 담임목사로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때 가봐야 안다.     
 
제자교회는 물론 중도파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정목사가 감옥에 갔어도 교인들이 신임투표를 하여 용서하고 지지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로나 목사 모두 신임투표를 하자는 입장이다. 지금으로서는 신임투표를 하면 정목사가 절대 유리하다. 감옥에 구속되었어도 판사가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 정목사측의 시각이다. 그리고자신들은 정삼지목사를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신도들, 정목사의 사실을 가치로 판단
 
정목사의 잘못은 또 다른 문제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교단에서 제명했지만 다수의 교인들이 이성곤목사를 지지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성곤목사의 일부 윤리적인 면에 대해 지지파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실제 팩트도 별로 없다. 정삼지 목사 지지파들은 정목사가 횡령을 했다고 믿지 않는다. 법원과 검사의 판결은 그다지 중요하지않다. 정목사가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고, 정목사는 평상시 선교를 많이 했기 때문에 누명을 쓰고 있다고 믿고 있다. 34억은 적어도 이들에게 횡령이 아니라 선교후원금이다. 물론 정목사 측근 일부일 것이다. 신도들은 있는 팩트를 없는 팩트로 해석했다. 그러나 광성교회는 없는 팩트를 있는 팩트로 해석했다. 
 
이성곤목사, 포도주 한장 사진으로 평생 주정뱅이로 돼
 

▲     ©뉴스엔조이

이 사진은 당시 같이 동행했던 박모목사가 서로 좋은 관계속에서 기념의 의미로서 찍은 것이다. 이성곤목사는 당시도 농담 으로 찍히면 안돼는데 말했다고 한다. 
   
이성곤목사는 술한잔마시는 사진으로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다수의 교인들이 여전히 그의 윤리성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그를 지지한다. 포도주 한잔 들이키는 것으로 술군으로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도 한방 닭을 먹을 때 인삼주가 나오면 비린내 때문에 먹고, 비행기에서도 잠이 오지않아 포도주 한잔을 먹는다. 
 
한 장의 포도주사진이 주정뱅이로 만들 수 없고 한 장의 여자아이 사진을 그의 사생아로 만들 수 없다. 원로목사에 대한 측근들의 고소를 파렴치범으로 만들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부정부패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최삼경목사는 박윤식목사는 이단이 아니라는 필자의 한줄의 글로 에클레시안을 이단옹호언론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박윤식목사, 최삼경의 허위사실로 평생 이단 낙인 찍혀
 
박윤식목사는 근거없는 한줄의 설교로 인해 평생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적에 대해 침소봉대하는 기질이 있다. 최삼경 목사는 박윤식목사가 뱀과 하와가 통간했다는 허위사실로 인해 박윤식목사를 이단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모두 껍데기 진실이었다. 대형교단의 결의가 진실이었다. 실체적 사실은 없었다. 우리는 판사들의 결정을 잘 믿는 경향이 있는데 판사들 역시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자유심증주의 원칙에 따라 증거없이 판단하여 생사람을 잡는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들의 결의만이 진실이다. 이는 모두 껍데기 진실이다. 진정한 실체는 하나님만이 아는 것이다.  
 
김국도목사, 벌금 100만원이 감독회장 발목 잡아
 
김국도목사는형 김홍도목사를 감싸려다 100만원 벌금으로 감독회장을 박탈당하고 만다. 1998년에 100만원 벌금을 받았는데 2000년도에 만들어진 법갖고서 소급하여 감독회장직을 박탈당했다. 그것도 서울 중앙지법에서 말이다. 우리나라 헌법의 정신은 소급효 금지의 원칙인데 판사들은 소급하여 그를 감독회장에서 끌어내렸다. 실체적 진실은 없고 판사들만의 결정이 진실이었다. 감리교의 문제는 실체적 진실보다 판사들의 판단을 진실로 믿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계속 판사들의 핑퐁게임으로 교단만 희생당하고 있다.   
 
김국도목사는 형을 보호하려다 말실수로 약식명령을 당하고 만다. 재판도 하지않고 포기했다. 그것이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실제로 재판에 들어가면 사안이 경미한 만큼 얼마든지 선고유예정도로는 끌어내릴 수 있었다.  
 
남광현목사만이 목사가 아니다
 
잔류측이 신앙인이라면 원로목사나 남광현목사만 목사라고 하지말고, 이성곤목사도 목사라고 볼 필요성이 있다. 이성곤목사는 괘씸죄는 있어도 남광현목사처럼 편법은 쓰지않았고, 김창인목사처럼 가족들로 하여금 영신여고를 장악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변호사없이 억울하게  재판을 받았고, 원로목사에 대한 반기로 평생 패륜아로 몰렸고,  한장의 사진으로 평생 주정뱅이로 몰렸다. 물론 남광현목사는 이성곤목사처럼 경솔하지는 않았다.
 
카섹스로 죽은 영월교회 목사, 교인들이 살려내
 
강원노회 영월교회목사는 밤에 여인을 뒤에 태우고 으슥한 곳에서 상담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카섹스범으로 몰렸다. 동영상까지 찰영되었다. 그러나 증거나 흔적은 없었다. 특별재심까지 요청된 상태이다. 그러나 그는 노회나 교회에서 5,000만원 제안 얘기도 나왔지만 거부하고, 오산리기도원에서 삼일 금식하고 한 푼도 받지 않고 떠나자, 교인들 중직자 절반이 그를 따라 나섰다. 약 100여명이상으로 알자만 빠져나갔다. 그는 여론에 죽었지만 교인들이 그를 살려냈다. 교인들은 노회의 껍데기 진실보다 실체적 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푼도 없는 목사에게 시골 교인들이 집도 얻어주고 교회도 얻어주었다. 그리고 차도 사주었다. 그가 진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그가 100만원이라도 받았다면 자신들은 그를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의 청빈과 빈마음, 태연함,  평안함이 교인들로 하여금 모든 실체적 진실을 알게했다. 
 
일부 교인들과 노회원들이 7,000만원을 들여서까지 목사를 상습적인 카섹스범으로 몰아도, 실체적 진실을 아는 교인들은 그를 믿었다. 교단을 탈퇴해도 아랑곳 하지않고 핵심교인 절반이상 그를 따라갔다. 교인들은 그를 믿었기 때문에 노회판정이 의미없었다. 그들은 글자의 판정보다 양심의 판정을 선택했던 것이다. 결국 그를 가장 반대했던 노회원이 그가 나간 교회를 차지하고 말았다. 최목사는 노회법정에서 죽었지만 교인들은 그를 따랐다. 카섹스 팩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진실은 그를 쫏아내는데 앞장섰던 노회의 목사가 그의 교회를 차지한 것이다.            
   
필자는 영월교회 목사의 잘못된 점을 취재하기 위해서 영월로 달려갔다. 현장 검증도 했다. 카섹스를 했다는 동영상도 보았다. 그러나 연기는 있었지만 숯불은 없었다.  이성곤목사도 마찬가지이다. 경주에 내려가서 어느 여인과 커피를 마신 적도 있다고 고백한 것을 신도들은 그 여인과 잔 것처럼 의심했다. 연기는 있었지만 숯불은 없었다. 
 
성적인 것은 둘이 잠을 잔 동영상이 있기 전에는 말할 수 없다. 동영상이 있더라도 그 동영상은 불법이다.
 
성추행으로 몰린 합동측 목사  
 
합동측 목사가 여자아이를 집에 데려다 주다, 성추행범으로 몰려 1년 2개월을 감옥에서 살았다. 그날 여자아이는 합동측 목사가 치마를 입고 자신의치말르 걷으면서 자신의 팬티에 손을 넣어 성기를 만졌다고 했다. 명백한 서추행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집요하게 조회한 결과 그날은 바지를 입고 있었고 학원에 있었다. 아이의 거짓말이 드러났다. 
 
아이가 교회버스에서 성추행 당한 날은 2005년 7월 27일(수요일) 저녁 6시인데 그날, 아이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고 법원도 이를 인정했으나 필자가 추적하여 컴퓨터로 조회한 결과 7월 27일은 치마가 아니라 바지를 입고 있어 아이의 말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 시간은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길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합동측목사는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 절차적 진실에 의해 희생당했다. 
 
이미 사실심이 끝난 상태에서 새로운 증거는 의미 없었다. 합동측 목사는 처음부터 어쩔 줄을 몰라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변호인도 몰랐다. 필자는 현장검증을 하고 누명을 벗겨주기 위하여 당시 성추행했다는 시간에 찍은 사진을 발견한 결과, 그 시간에 아이는(일본교포 초등학생 6학년) 학원에서 바지를 입고 공부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심을 할 때 대항했으면 풀려났는데 이미 사실심이 끝난 상태였고, 대법원은 새로운 증거를 채택하지 않았고, 법리심으로만 판단했다. 실체적 진실은 없고 절차적 진실만이 그 목사를 1년 2개월동안 옥에서 억울하게 살게 했다. 그 사모는 흐느껴 울기만 했다. 이것이 절차적 진실이다. 실체적 진실은 의미없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성곤목사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해야...여전히 4,000-5,000여명 지지
 
이제 신도들은 이성곤목사에 대해서 실체적 진실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할 때가 되었다. 과연 실체적 진실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가 술주정뱅이였고, 음란한 사람이었다면 이를 뒷받침하는 특정한 증거가 계속 나와야 했다. 원래 술주정뱅이는 계속 술을 먹을 것이고, 음란한 사람이었다면 한 두여자만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 계속 다른 여자를 건드려야 하거나 먼저 교회에서 유사한 일이 발생해야 했다.  
 
이외에 광성교인들은 S장로가 학교 여선생과 동거를 했다고 소문을 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증거도 대지못했다. 실체적 진실은 없었다. 아니면 말고식이다. 이성곤목사와 원로목사, S장로는 광성교인들의 소문에 희생양이 되었다. 물론 이성곤목사가 경호원을 교회당에 끌어들인 것은 잘못된 방법이었다. 원로목사를 고소고발한 것도 잘못된 방법이었다.  교인이 했지만 말이다. 
 
필자 역시 소문에 의해서 기사를 쓴 적이 많이 있다. 이성곤목사에 대해서 실체적 진실은 거의 없었다. 필자도 여신도와 개인적으로 커피마신 적도 있고, 음식점에서나 집에서 포도주 한 두 잔을 마신 적도 많이 있다. 군대에서 공수훈련이 끝나고 막걸리 한잔을 마신 적도 있다. 때에 따라서 분위기에 못이겨 술맛도 모른 채 하이넥스 맥주를 한 두 잔 정도를 마신 적도 있다. 술맛도 모르는 필자가 포도주나 인삼주, 맥주 한두잔을 마셨다고 해서 필자를 주정뱅이로 몰아가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신도들은 이성곤목사의 머리카락으로 유전자 검사를 해서 사생아를 시험하자고까지 했다.  이것이 광성교회 신도들의 수준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의 악은 감추었다.   

김영훈장로의 말대로 이성곤목사의 실체적 진실이나 특별한 증거는 없었다. 구체적인 증거나 사실없이 교인들은 이성곤목사를 마귀, 괴물, 전과자로 만들었다. 반대편들도 마찬가지였다 김창인원로목사를 탐욕군으로 몰았다. 그것도 실제척 진실은 없었다. 모두 소문에 의해, 심증에 의해 희생당했다.  
 
영월교회 최목사처럼 이목사도 갖은 소문과 추측에도 불구하고 실체적 진실이 없기에 최근 동영상으로 설교를 해도 교인들이 줄지를 않는다. 그를 지지하는 신도들은 이목사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의 설교는 김창인목사의 3대지 영향을 전적으로 받아서 은혜스럽고 역동성있게 잘한다. 대양교회사람들에 의하면 그는 전설이었다. 여성과 음주문제는 한 교회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양교회에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해도 여성과 음주문제로인해 시비가 일어난 적이 없다. 대양교회 교인들은 그가 야망을 갖고 더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기 위하여 떠났다고 한다.  
 
심재평 장로에 의하면 이성곤목사는 에어콘이 들어오지 않는 사택에서도 불평없이 살았고, 장사하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그렇게 친절하게 잘해서 교회성장을 가져왔다고 한다. 광성교회에 와서 원로에 대한 괘씸죄로 소문에 의해서 희생되었다. 
 



▲     ©황규학

 
만일 이성곤목사가 노회재판국의 판결대로 독주를 하고 사생아를 낳고, 경주에서 한 여인과 호텔에서 잔 파렴치 한 사람이라면 5,000여명의 교인이 여전히 그를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양교회에서 이미 말이 나왔을 것이다. 대양교회의 많은 사람들의 소리를 들어도 이성곤목사에 대한 이미지는 긍정적이었다. 그래서 광성교회의 이목사지지파들은 교단 문자의 판결은 의미없고 양심의 판결을 믿었다.
 
김창인목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성곤목사측은 그를 부패범으로 몰아갔다. S장로도 학교를 최일류로 만들었다. 얼마나 야망이 있었는지 몰라도 학교를 최고로 만드려는 야망은 충분히 있었다. 그는 남을 배려할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월급까지 털어서 학교를 돕는 물질에는 깨끗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광성교인들은 대체로 특정한 사실이나 근거없이 사람들 매도하는데 습관화되어 있었다. 자신의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었다. 이것이 광성교인들의 한계였다. 인신공격의 행태로 상대방을 매도하는데 습관화 되어 있었다. 교인들의 팩트가 없는 잘못된 소문으로 장로와 목회자는 난도질 당했다.          
 
때에 따라서 법원의 판결도 도가니영화처럼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춤을 출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광성교회 사건을 보자면 교인들이 싸우는 이유는 법원이 한번은 본당측, 다음에는 교육관측의 손을 들어준다. 법원이 싸움을 조장시키고 있다. 고등법원까지 최고의 판사들이 판결했지만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힌다. 실체적 판결이 아니기 때문이다.  
 
춤을 추는 판례
 
이미 1973년에 교단탈퇴와 교회탈퇴는 별개라는 판례가 나오지만, 2006년에는 교단탈퇴는 교회탈퇴식의 판례가 나와 이탈측이 모두 패소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교단탈퇴와 교회탈퇴는 별개이므로 이탈측 교인들의 교인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판례가 춤을 추는 것이다.  그러나 신도들은 양심이나 성경, 그리스도의 실체적 진실보다 판사들의 판결을 더욱 절대시한다. 판사들의 판결은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 절차적 진실이다. 절차를 통해서 진실에 다가가려고 하는 노력에 불과한 것이다. 
 
광성교회의 진실들
 
교인들은 하나님이라는 실체적 진실을 찾는 사람들인데 절차적 진실을 진실로 보고 살아가고있다. 그러다 보니 소문에 의해서 희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는 의미에서 광성교인들이 생각하는 실체적 진실은 거의 없었다. 소문적 진실, 매도적 진실, 편견적 진실, 심증적 진실, 증오적 진실, 법원의 진실만이 실체적 진실처럼 판을 치고있었다. 법원의 진실만 있으면 형제를 미워해도 상관없었다. 대표적 희생양이 이성곤목사와 김창인 목사이다.     
 
광우병사태
 
광우병사태만 보아도 광우병으로 숨진 사람이 미국에 아무도 없었다. 실체적 진실이 없었는데 소문적 진실, 편견적 진실, 심리적 진실에 의해 40만명이 광화문에서 시위를 했다.  광우병 제작자는 필자의 친한 대학친구이다. 조능희 P.D는 단지 국민의 건강을 위하고 경각심을 알리기 위해서 제작했다고 한다.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그러나 법원이 무죄라고해서 그의 행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익성을 추구하고 언론의 자유를 추구했기 때문에 무죄인 것이다. 
 
사실에 근거한 무죄가 아니라 가치에 근거한 무죄판단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실체에 근거한 무죄판단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판사의 사실판단이 아니라 가치판단이었다.
 
오늘날 광성교회의 문제는 하나님의 실체적 판단보다 판사의 절차적 판단을 중요진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그 절차적 판단앞에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판사를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습과화되어 있다. 불행하게도 그 하나님은 진실을 상황에 따라 뒤집는 것이다. 하나님인 것 처럼 가장하고 인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P.D 수첩은 의도는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체적 진실에는 하자가 있었다. 법원의 무죄판결은 사실성유무보다는 공익성유무라는 가치에 포커스를 두었다. 법원은 실체적 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언론의 자유, 공익성이라는 가치를 중시한 것이다. 사실을 가치로 판단한 것이다. 실체는 P.D수첩팀이 광우병으로 인해서 미국에서 죽은 사람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실체적 진실은 없고 소문적 진실, 편견적 진실에 의해서 40만명이 움직였던 것이다.   
 
광성교회도 실체는 없고 소문적 진실, 정서적 진실만 남았던 것이다. 법원은 상황과 판사, 대형로펌에 따라 진실을 바꾸고 있었다. 실체적 진실이 없기 때문이다. 법원은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법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장할 뿐이다. 진실과 실체는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교인들은 수십억씩 써가면서 판사들의 판결을 유리하게 받아내고자 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목사만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주는 판사만이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것을 그들은 실체적 진실이라고 믿고있었기 때문이다.  
 
실체적 진실은 없고 진실이라고 믿고 싶을 따름이다. 
 
그러나 진실은 없고 단지 진실이라고 믿고 싶었고, 그것을 진실이라고 부르고 싶었던 것이다. 진실은 판사도 아니고 치리회도 아니고 다수의 결의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과 의도만이 진실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선입견적 판단을 진실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실체가 없는 껍데기 진실이었다. 이 껍데기 진실을 실체나 알맹이처럼 여기고 거기에 자신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을 집어놓고 실체적 진실로 착각하게끔 만들었다.
 
광성교회는 여전히 껍데기 진실을 실체적 진실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 껍데기 진실은 소문적 진실, 감정적 진실, 편견적 진실로 사실보다는 가치가 투여된 진실이었다. 껍데기 진실이 법원의 이름으로, 검사의 이름으로, 신앙의 이름으로 사실적 진실로 둔갑을 한 것이다. 많은 목회자와 신도들, 힘없는 사람들, 예수까지 이 껍데기 진실에 희생을 당했다. 그래서 기독교의 가르침은 남을 비판하지 말고, 세상법정에 송사하지 말고, 진정한 하나님의 진실이 올때까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것이다. 
 
껍데기 진실을 실체적 진실로 생각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다. 유대인들은 율법이라는 문자의 껍데기 진실을 실체적 진실로 착각하고, 심지어는 그 진실에 대한 확신을 갖고 실체적 진실인 하나님까지 살해했던 것이다. 
 
광성교인들 역시 껍데기진실을 갖고서 사실검증이나 확인도 하지않은 채, 실체적 진실이라 생각하고, 무자비하게 목회자나 장로, 신도들, 상대편 교인들을,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살해하고 있다.   
 
껍데기 진실에 대한 지나친 확신 때문이다. 노회의 결정, 법원의 결정, 당회의 결정, 개인들의 판단 등이 실체적 진실로 오도된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덮어주고, 나누어주고, 희생하는 것만이 실체적 진실의 상징들이다. 광성교회가 살기위해서는 껍데기 진실에서 벗어나 실체적 진실로 다가가야 한다.        
 
이제 양측은 실체적 진실로 다가가려는 몸부림을 쳐야한다. 어차피 이 땅에는 실체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기독교인들이라면 세상이 주는 법원의 진실, 이성과 합리의 진실을 실체적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성경과 그리스도가 요구하는 실체의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 

죄없는 자가 이성곤목사와 감칭인목사를 돌로쳐라 

죄없는 자가 돌로 쳐라. 죄없는 자가 이성곤목사를 돌로치고, 죄없는 자가 김창인목사를 돌로쳐라. 우리에게 실체적 진실은 없지만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하여 성경의 정신에 따를 뿐이다. 
 
이성곤목사가 술주정뱅이인지, 패륜아인지, 음란꾼인지, 우리가 경험에 의해 분명한 증거를 갖고 직접 파악해 보지 못한 이상, 껍데기 진실에만 머물 것이다. 실체적 진실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의 뜻을 기다릴 뿐이다. 이 땅에는 실체적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진실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 껍데기 진실갖고서 실체적인 진실처럼 사람들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러다가 그리스도까지 죽이는 상황이 발견되는 것이다. 실체적 진실은 껍데기 진실에 의해 희생당한 것이다.      
 
진실은 교인지위를 얻은 교인들이 투표해서 당선되는 사람들이 광성교회 담임목사가 되는 것이다. 교인들 다수는 소문에 상관없이 진실한 사람에 표를 던져야 한다. 동남노회도 이제 눈치보지 말고, 특정한 근거없이 소문으로 난도질당한  이성곤목사를 풀어주어야 한다. 그에 대해 불륜과 음주, 패륜 등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없기 때문이다. 있다할지라도 용서와 사랑이라는 그리스도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이성곤목사가 담임이 되기위해서는
 
이성곤목사가 담임으로 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은 동남노회가 면직을 철회해야하고, 안된다면 법원에 교인총회 허락을 얻어 합법적으로 교단을 탈퇴해서 대표자선임을 해야하고, 남광현목사 역시 담임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제직회나 교인총회를 열어 다수 교인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무임목사의 신분세탁으로 임시당회장이 되는 것은 불법이요, 편법이다.
 
김목사사위도 소문에 의해서 어떤 근거도 없이 627 배후 또는 여교사와의 추문으로 희생당했다. 그러나 그는 사위이지만 Y여고를 최고의 학교로 만드는데 일등공신이었다. 그는 아무런 염문도 없고 깨끗하고 자신의 사비를 들여서까지 학교를 1류학교로 만든 사람이었다. 광성교회 관계자들은 특정한 근거없이 신도들의 소문에 의한 희생자였다. 
 
신도들은 자신들이 목회자로인해서 상처를 받았다고는 하나, 그들 역시 원죄근성으로 검증 안된 껍데기의 진실갖고서 장로와 목회자들을 난도질하고 매도하는데 익숙했다. 적어도 광성교회목회자들이 아무리 파렴치하고, 부패해도, 여의도순복음교회, 분당중앙교회, 삼일교회, 소망교회, 강북제일교회 만큼 부패하지 않았다. 소문만 있을 뿐이었다. 원로목사 역시 물질적으로 깨끗한 분이었다.  
 
현재 남광현목사는 당회외 일부 교인들의 지지만 받고 있고, 이성곤목사는 교육관측 신도들의 지지만 받고 있다. 대법원은 모두 교인의 지위를 인정했다. 이제 교인들이 교인총회를 요구하면 지방법원은 교인총회소집만 해주면 된다. 만일 법원이 교인총회를 소집하라고 하여 2/3이상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교단탈퇴하는데 성공하면 이성곤목사를 대표자로 선임하면 되고, 2/3이상이 안되면 통합교단의 소속이 유지되고, 남광현목사를 놓고 투표를 하면된다. 남목사가 제직회 과반수 이상의 표를 얻으면 임시담임목사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야 한다. 탈퇴에 성공하면 이성곤목사를 담임목사로 될 가능성이 높고, 성공하지 못한다면 남광현목사에 대해서 투표를 해야한다.
 
교육관측, 승소한다

12. 14일 판결이 끝나면 교육관측의 승소가 거의 100%이기 때문에 이제는 본당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려 예장통합광성교회 교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예장통합이 주도하는 예배자에 의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인총회소집을 법원에 요청하기를 바란다. 교단탈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이성곤목사를 대표자목사로 선임하고, 교단탈퇴가 불가능하게되면 남광현목사이든지, 제 3의 목사이든지를 선출해야 할 것이다. 
 
다수가 결국 승리
 
그러므로 법원에 교인총회를 소집해서 합리적으로 해 나가기를 바란다. 현재 법원은 교인의 다수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교단소수 잔류측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결국 다수에 의해 주도권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성곤목사나 김창인목사, S장로는 소문에 의해서 희생된 사람들이다.
 
이제 광성교회는 냉정을 되찾고 자신과 입장이 다르더라도 특정한 근거없이 허위사실에 의해 사람을 미워하거나 매도하지 말고, 불법과 편법에 편승하는 목사를 지지하지 말고, 제직회나 교인총회를 열어서 정상적으로 투표를 하고, 잔류측은 이성곤목사를, 교육관측은 원로목사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자세로 나가야 할 것이고, 교인들은 한걸음씩 뒤로 물러나 서로를 배려하는 입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남광현목사 역시 광성교회에 합법적으로 머물기 위해서는 교인들의 투표를 통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 출신이라면 원칙과 정도를 가야
 
서울대출신으로서 편법과 기득권에 편승하는 것보다 광야길을 걸어갈지라도 원칙과 정도를 보여주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교육관측이 결국 본당을 차지하게될 가능성이 시간이 가면서 점점 높아지고있다. 수색 성은교회를 보면 해답이 나온다. 잔류측은 너무나도 많은 기회를 놓쳤다.
 
막판에 편법적인 임시당회장청빙은 결국 소수파의 몰락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당회원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교회의 주인은 교인들이고, 소수와 다수중에 결국, 교회는 다수에 의해 이끌려 가게 되어있다. 그것이 대법원이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북제일 황형택목사측이 다수라면 이겼을 것이다. 소수이기때문에 더 버티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겨우 350여명이 불과할 뿐이다.
 
이처럼 세상법정결정에 상관없이 강북제일교회나 제자교회, 수색성은교회 등은 잔류, 이탈측 상관없이 다수파가 교회당을 결국 차지했다. 제자교회나 강북제일은 세상법정에는 소수가 이겼지만 교단법정에서 이긴 다수의 사람들이 교회당을 차지하고 있다. 광성교회 역시 결국 다수가 교회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소수파의 몰락은 편법으로 가속화, 결국 교회당 뺏길 확률 높아
 
소수파의 몰락은 이미 편법으로 시작되었고 대법원 판결에서 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소수파들은 7년의 긴시간동안 교회의 주도권을 차지할 여러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회의 전력부재로인해 모든 기회를 다 놓치고 원칙이나 기준 대신 편법을 선택했기 때문에 다수파에게 교회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은 시간문제 이다. 이성곤목사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전락적 부재를 비난으로 메울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편법의 열매는 어떤 열매보다도 쓰디 쓰다는 것을 경험으로 느낄 때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다수의 수천명의 교인들이 여전히 지지하는 이상, 팩트없는 이성곤목사에 대한 소문도 걷어내고, 검찰에서 무혐의로 판정된 이상 김창인목사에 대한 소문도 걷어내고, 전처럼 예장통합교인으로서 한데 어우러져 교인총회를 통해서 새로운 담임목사를 선출해야할 것이다.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이다.
 
실체적 진실은 하나님의 영역
 
실체적 진실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그 실체적 진실을 알때까지는 우리가 해야할 일은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합하고, 이해하고, 허물을 덮고, 손을 잡고, 서로의 아픔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특정목사를 염두해두지말고, 남의 허물을 위해 던지려했던 손에 집은 돌을 하나씩 버리면서 자신의 허물을 되돌아 볼 수 있도록 하자. 아니면 돌을 버리기 싫다면 특정목사에게 던지지 말고 자기에게 던지기를 바란다. 
 
실체적 진실이 없기에 노회, 총회의 진실을 실체적 진실로 믿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판사들의 판단을 진실로 믿었고, 교인들의 소문과 다수의지를 실체적 진실로 믿었다. 불행하게도 모두 껍데기 진실이었다. 껍데기 진실에 의해서 우리는 놀아났던 것이다.   
 
이제 특정목사를 지지하거나 법원의 판단을 진실로 생각하는 껍데기 진실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는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그 실체적 진실에 도달하는 방법은 사랑과 용서, 화해 , 배려, 희생,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일 것이다. 광성교회는 껍데기 진실에서 벗어나 알맹이 진실을 추구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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