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교회의 문제점, 공익과 사익의 대립
공익의 의미
오늘날 개신교의 이미지가 추락한 것은 공익과 사익의 혼재에서 오는 것이다. 교회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 라는 공공의 선을 이 땅에 실현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하나님나라에 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각 지교회의 공통된 목적이다.
공익은 복수이익이나 사익과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불특정 다수인의 이익 또는 사회구성원의 평균적 이익, 공공복리등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나라 입법과 판례에 있어서는 공익개념과 관련된 용어로는 ‘공익’, ‘공공복리’, ‘공공복지’, ‘공공성’ 등이 있다. 그러나 공익이라는 개념은 구체적 현실성을 띠기보다는 추상성을 띠기 때문에 학자에 따라서 다양한 정의가 있고, 대체적인 일치점은 있지만 명백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특히 실정법적인 관점에서도 현재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하나의 확정적인 공익의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법학을 포함한 사회과학계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특히 공익의 개념은 시대가 변하면서 유동성 있게 변하기 때문이다.
공익과 달리 사익은 비교적 구체적이며 대개 국민의 개인의 법률상 이익으로 나타나거나 물질적 정신적 이익으로 표현된다. 공공이익 개념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으로서 판단 기준에 대한 지역적, 시간적 및 사회적 제약을 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공익이 사실성보다도 추상성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은 공익이 수단보다는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목적자체는 사실성보다는 추성성이나 철학성을 띠기 때문에 공익의 추상성은 필요불가결하다.
기독교의 공익
하나님나라, 종말론, 십자가의 의미, 부활 등은 기독교가 추구하는 공통선으로서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카톨릭은 이러한 추상성을 최대한 현실화하기 위하여 하나님나라를 상징하는 거대한 성당과 첨탑을 만들었고, 교회천장에는 벽화를 그려 하나님나라의 추상성을 시각화하기에 안감힘을 썼다. 고딕식양식은 최대한 성당을 높이어 하늘나라에 다가가려고 했던 것이다.
벽화(아이콘)역시 성경의 실제적인 추상성을 현실화시키도록 한 것이다. 카톨릭이 구제, 복지사업을 강조하는 것도 행위구원보다도 가난한 사람의 구제와 복지를 통해서 추상화된 하나님 나라의 현실화를 추구했던 것이다. 특히 프란체스카와 베네딕트수도원은 수사들의 청빈과 검소, 노동을 통하여 하나님나라를 보여주려고 했다. 카톨릭은 추상화된 공공선인 하나님나라, 종말, 십자가고난, 부활의 삶은 건축양식과 미술, 신도들의 삶, 수사들의 행위를 통해서 보여줄려고 했던 것이다. 무조건 카톨릭에 대해서 행위구원만을 강조했다고 볼 수 없고, 그들은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천하고자 했던 종교라는 것도 인식할 줄 알는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 개신교는 하나님나라를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한국의 구한말 기독교가 발전한 것은 어둠속에 있는 한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교육의 빛, 의료의 빛, 저항의 빛, 인권의 빛을 보여주어 자유를 만끽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6. 25. 이후 한국의 개신교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었다. 기도하는 사람마다 병이 낫고, 가난한 자가 부요한 자가 되며, 절망에서 소망을 얻고, 좌절에서 기쁨을 얻었다. 그야말로 기도원이나 교회는 추상화된 기독교의 공익을 현실화시켰다. 진정한 공익은 개인들에게까지 사익을 안겨주는 것이다.
개신교, 공익실현의 실패
그러나 오늘의 개신교는 기독교의 공공선인 하나님의 나라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교회에는 기적이 사라졌고, 교회의 무질서한 개척은 교회의 거룩한 건축미를 사라지게 했고, 교회는 구제나 선교에 힘쓰기 보다는 자체 건축과 기도원부지를 확보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더군다나 교회가 자본주의화가 되어 성장만 교회의 본질로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각교회는 이권싸움에 열중이고, 그것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개신교의 입지는 점점 흔들리고 있다. 개신교의 공익은 사라지고, 사익만 남게 되었다.
공공선은 추상성으로 전락하고, 현실은 교회 이기주의로만 남게 되었다. 목사이기주의, 당회이기주의, 신도이기주의로 전락하여 한국교회는 공공선을 상실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신도들도 사회정의나 인권, 복지에 관심을 두는 것보다 개인적인 기복신앙에만 관심하고 있다. 목사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최근의 분당중앙교회, 제자교회, 강북제일교회, 소망교회, 인천 주안장로교회, 충현교회 등은 목사의 이기주의로 전락하여 교회는 공공선, 즉 공익을 상실하여,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개신교의 문제점은 사익만 남고 공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는 공익을 위하여 일하는 것처럼 가장을 하고있다. 오히려 신도들이 기복신앙을 갖기 때문에 사익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당회는 교회의 치리기관으로서 이사회처럼 공공성을 추구하기 위해 모인 대표성을 띠는 집단이다. 오늘의 문제는 공익을 추구해야할 공공성을 띤 대표자나 당회원들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분당교회나 강북제일교회, 제자교회에서 나타나듯이 공적인 목회자가 상상하기 어려운 천문학적인 사익을 추구한 것이다. 겉으로는 공기관의 대표이지만 실제적으로 교회에서 가장 탐욕스런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당회원들은 목회자들의 사익추구에 견제하지 않고 일조를 하여 사익추구공동정범이 되었다.
후임자 임명도 교인들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당회장이나 당회가 원하는 사람을 임명한다. 그러다가 항시 후임자임명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소망교회, 광성교회, 강북제일교회는 대표적인 교회이다. 공적단체원들의 사익만 남고, 공익은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항시 자신들이 당회장이나 당회라는 공적단체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하는 일은 공익이라고 생각했고, 신도들도 그것이 공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공익이 아니라 공익을 가장한 대표자의 사익이거나 다수의 사익이었다. 즉 집단 이기주의였다. 그러나 오히려 사인들의 집단인 신도들이 공익을 추구하고 있다. 신도들은 공적단체에 있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사익과 달리, 사적 단체이지만 공익을 추구하고 있다. 교회개혁을 하면서 사익을 생각하거나 추구하는 교인들의 거의 없다.
공익과 사익의 대립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공익을 추구해야 할 사람들이 사익을 추구하고, 사익을 추구해야 할 사람들이 공익을 추구하여 서로 대립하는 것이다. 목사는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와 십자가 신학을 몸으로 보여주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키는 공익을 추구해야 하는데 결국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전락했고, 당회는 이를 두둔하는데 애를 쓰고, 사인의 집단인 교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공익을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목사의 설교속에만 있는 추상성으로 전락한 하나님나라, 이신칭의, 십자가의 도, 종말론 등으로 인해 개신교의 공익은 현실과 거리가 멀게 되는 것이다. 공익은 없고 사익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목사의 사익, 당회의 사익과 교인의 공익이 충돌하는 것이다. 이는 광성교회 사태에 잘 나타난다. 후임목사선정이나 교회공금사용은 교인들의 허락을 받지않고 당회원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한국교회의 문제점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당회의 사익과 교인들의 공익의 충돌에 있다. 당회의 사익이 크고 교인들의 공익이 약하다 보니 항시 당회의 사익이 우선하게되는 것이다. 강북제일교회는 당회장과 당회의 사익에 교인들이 공익정신을 갖고 반기를 들어 사익에 젖은 사람들을 침몰시켰다. 현재로서는 교인들의 뜻을 무시하고 당회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처럼 오늘날 개신교의 문제는 사회에 교회의 공익보다 사익이 더 크게 비쳐졌기 때문에 개신교가 점점 설자리를 잃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현하는 공익을 우선하는 곳이다. 남을 구제하고, 약자를 우선하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중심보다는 주변의 자리로 가고, 교회의 가시적이거나 무리한 건축보다도 이동성전인 신도의 영적건축을 우선시 하는 곳이다. 그러나 공적인 집단의 당회장과 당회원이 공익을 추구하지 않고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교회의 문제가 발생하고, 이에 대한 반발로서 사적인 집단인 교인들이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노회나 총회도 마찬가지이다. 재판국원이나 헌법위원들이 공적인 자리에 있으면서 하나님나라 실현의 공통선과 목적이라는 공익을 추구하지 않고, 지연, 학연에 얽매어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교단이 부패하는 것이다. 사익을 추구하면 헌법위가 범법위가 되고 재판국이 개판국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무서운 적은 죄가 하나님이 만들어준 계명을 틈타서 역사하듯이, 죄가 하나님이 만들어준 공적인 집단인 당회, 노회, 총회, 헌법위원회, 재판국을 통해서 공익의 이름으로 역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된 공익이었고, 실제로는 극단적 사익이었다. 공적인 단체는 단지 사익을 추구하기위한 가장된 단체였다. 공적인 단체의 대표는 공공성을 띠고 노골적으로 사익을 추구하였다. 교회돈 마음대로 쓰기, 자기 사람 심어놓기, 자기 지연, 학연, 혈연 후임자 세우기 등은 대표적인 예이다. 당회 역시 신도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재정이나 후임자목사를 결정하는 것도 공익을 가장한 사익의 실현이다.
영미의 공익실현
영국.미국의 공익은 프랑스와 달리 지나친 국가주도적이라기 보다는 국민개개인의 사적 권리실현을 통해서 공익을 달성하고자 한다. 17세기 미국과 영국에서 법개념으로 등장한 공익은 그 철학적,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배경과 함께 현실사회를 이끌어 가는 실정제도로 나타나고 있다.
영미의 공익은 Adam Smith로부터 시작하여 Jeremy Bentham에 의해 완성된 자유방임과 개인주의 및 공리주의라 할 수 있다. 개인의 권리가 실현되면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벤담은 공동체의 이익은 각각 개인들의 이익의 합이라고 하였다. 전통적인 자유의 경제학자들은 개인이익의 추구가 적절한 법과 제도의 틀안에서 개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전반적인 사회적 이익에 봉사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영미에서 개인의 자유와 평등, 권리실현을 강조한 나머지 사익의 합은 결국 공익을 추구하는 경향쪽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영미에서 사회구성원들이 권리와 자유가 전제되지 않은 채 공익의 추구는 무의미한 것이 된다. 이러한 원리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보았을 때 공익의 인위적 추구는 자유의 권리의 침해와 억압만을 초래할 뿐이다. 신자유주의하에서는 규제완화와 최소국가의 개념이 각광을 받고, 공익을 추구한다던 국가가 사익의 포로가 된 현상이 나타나고, 오히려 국가의 간섭을 줄인 곳에 자유로운 개인활동의 조화가운데 공익이 달성된다고 보았다.
영국의 영향을 받은 미국도 개인의 자유실현과 권리보호를 목표로 하였다. 미국상황에서 국가주도적 공익은 개인의 권리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유럽처럼 국가주도덕 공익은 저항을 받게 된다.
교회에서 공익추구도 당회장이나 당회주도적이 되어서는 안되고, 신도들의 권리실현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고 이러한 신도들의 의사와 권리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당회주도적인 공익은 신도들의 저항에 부닥치게 된다. 교회재정을 사용하는 것이나 후임자 결정을 하는 것도 교인들의 권리실현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전근대국가나 독재주의 국가일수록 국가주도적 공익을 추구한다.
전근대적 교회, 당회주도적
교회에서도 당회주도적 공익을 추구하는 교회는 전근대적인 교회이거나 전제주의적 교회이다. 실제로는 공익인 것 같으나 내면에는 집단이기주와의 극단적 사익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단지 공적인 단체의 이름으로만 시행할 뿐이다. 절차적 실체는 공익이지만 실체적 실체는 사익이다. 당회장이나 당회는 공적인 형식만을 띠었을 뿐, 교인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으면 사익을 추구하는 가장된 공적인 단체에 불과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교회가 진정한 공익인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위해서라면 당회장이나 당회가 공익성을 띠어야 하고, 그 공익성은 당회가 일방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인들의 집단인 교인들의 권리와 자유를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 이제 한국개신교는 하나님나라실현이라는 공익을 가장하여 목회자나 당회의 사익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고, 진정한 공익이 되기위해서는 사회의 공공선을 초월해야하고, 교인 개개인의 권리를 통해서 실현되어야 한다.
오늘날 개신교의 이미지가 추락한 것은 공익과 사익의 혼재에서 오는 것이다. 교회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 라는 공공의 선을 이 땅에 실현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하나님나라에 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각 지교회의 공통된 목적이다.
공익은 복수이익이나 사익과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불특정 다수인의 이익 또는 사회구성원의 평균적 이익, 공공복리등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나라 입법과 판례에 있어서는 공익개념과 관련된 용어로는 ‘공익’, ‘공공복리’, ‘공공복지’, ‘공공성’ 등이 있다. 그러나 공익이라는 개념은 구체적 현실성을 띠기보다는 추상성을 띠기 때문에 학자에 따라서 다양한 정의가 있고, 대체적인 일치점은 있지만 명백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특히 실정법적인 관점에서도 현재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하나의 확정적인 공익의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법학을 포함한 사회과학계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특히 공익의 개념은 시대가 변하면서 유동성 있게 변하기 때문이다.
공익과 달리 사익은 비교적 구체적이며 대개 국민의 개인의 법률상 이익으로 나타나거나 물질적 정신적 이익으로 표현된다. 공공이익 개념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으로서 판단 기준에 대한 지역적, 시간적 및 사회적 제약을 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공익이 사실성보다도 추상성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은 공익이 수단보다는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목적자체는 사실성보다는 추성성이나 철학성을 띠기 때문에 공익의 추상성은 필요불가결하다.
기독교의 공익
하나님나라, 종말론, 십자가의 의미, 부활 등은 기독교가 추구하는 공통선으로서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카톨릭은 이러한 추상성을 최대한 현실화하기 위하여 하나님나라를 상징하는 거대한 성당과 첨탑을 만들었고, 교회천장에는 벽화를 그려 하나님나라의 추상성을 시각화하기에 안감힘을 썼다. 고딕식양식은 최대한 성당을 높이어 하늘나라에 다가가려고 했던 것이다.
벽화(아이콘)역시 성경의 실제적인 추상성을 현실화시키도록 한 것이다. 카톨릭이 구제, 복지사업을 강조하는 것도 행위구원보다도 가난한 사람의 구제와 복지를 통해서 추상화된 하나님 나라의 현실화를 추구했던 것이다. 특히 프란체스카와 베네딕트수도원은 수사들의 청빈과 검소, 노동을 통하여 하나님나라를 보여주려고 했다. 카톨릭은 추상화된 공공선인 하나님나라, 종말, 십자가고난, 부활의 삶은 건축양식과 미술, 신도들의 삶, 수사들의 행위를 통해서 보여줄려고 했던 것이다. 무조건 카톨릭에 대해서 행위구원만을 강조했다고 볼 수 없고, 그들은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천하고자 했던 종교라는 것도 인식할 줄 알는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 개신교는 하나님나라를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한국의 구한말 기독교가 발전한 것은 어둠속에 있는 한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교육의 빛, 의료의 빛, 저항의 빛, 인권의 빛을 보여주어 자유를 만끽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6. 25. 이후 한국의 개신교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었다. 기도하는 사람마다 병이 낫고, 가난한 자가 부요한 자가 되며, 절망에서 소망을 얻고, 좌절에서 기쁨을 얻었다. 그야말로 기도원이나 교회는 추상화된 기독교의 공익을 현실화시켰다. 진정한 공익은 개인들에게까지 사익을 안겨주는 것이다.
개신교, 공익실현의 실패
그러나 오늘의 개신교는 기독교의 공공선인 하나님의 나라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교회에는 기적이 사라졌고, 교회의 무질서한 개척은 교회의 거룩한 건축미를 사라지게 했고, 교회는 구제나 선교에 힘쓰기 보다는 자체 건축과 기도원부지를 확보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더군다나 교회가 자본주의화가 되어 성장만 교회의 본질로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각교회는 이권싸움에 열중이고, 그것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개신교의 입지는 점점 흔들리고 있다. 개신교의 공익은 사라지고, 사익만 남게 되었다.
공공선은 추상성으로 전락하고, 현실은 교회 이기주의로만 남게 되었다. 목사이기주의, 당회이기주의, 신도이기주의로 전락하여 한국교회는 공공선을 상실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신도들도 사회정의나 인권, 복지에 관심을 두는 것보다 개인적인 기복신앙에만 관심하고 있다. 목사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최근의 분당중앙교회, 제자교회, 강북제일교회, 소망교회, 인천 주안장로교회, 충현교회 등은 목사의 이기주의로 전락하여 교회는 공공선, 즉 공익을 상실하여,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개신교의 문제점은 사익만 남고 공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는 공익을 위하여 일하는 것처럼 가장을 하고있다. 오히려 신도들이 기복신앙을 갖기 때문에 사익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당회는 교회의 치리기관으로서 이사회처럼 공공성을 추구하기 위해 모인 대표성을 띠는 집단이다. 오늘의 문제는 공익을 추구해야할 공공성을 띤 대표자나 당회원들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분당교회나 강북제일교회, 제자교회에서 나타나듯이 공적인 목회자가 상상하기 어려운 천문학적인 사익을 추구한 것이다. 겉으로는 공기관의 대표이지만 실제적으로 교회에서 가장 탐욕스런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당회원들은 목회자들의 사익추구에 견제하지 않고 일조를 하여 사익추구공동정범이 되었다.
후임자 임명도 교인들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당회장이나 당회가 원하는 사람을 임명한다. 그러다가 항시 후임자임명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소망교회, 광성교회, 강북제일교회는 대표적인 교회이다. 공적단체원들의 사익만 남고, 공익은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항시 자신들이 당회장이나 당회라는 공적단체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하는 일은 공익이라고 생각했고, 신도들도 그것이 공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공익이 아니라 공익을 가장한 대표자의 사익이거나 다수의 사익이었다. 즉 집단 이기주의였다. 그러나 오히려 사인들의 집단인 신도들이 공익을 추구하고 있다. 신도들은 공적단체에 있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사익과 달리, 사적 단체이지만 공익을 추구하고 있다. 교회개혁을 하면서 사익을 생각하거나 추구하는 교인들의 거의 없다.
공익과 사익의 대립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공익을 추구해야 할 사람들이 사익을 추구하고, 사익을 추구해야 할 사람들이 공익을 추구하여 서로 대립하는 것이다. 목사는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와 십자가 신학을 몸으로 보여주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키는 공익을 추구해야 하는데 결국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전락했고, 당회는 이를 두둔하는데 애를 쓰고, 사인의 집단인 교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공익을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목사의 설교속에만 있는 추상성으로 전락한 하나님나라, 이신칭의, 십자가의 도, 종말론 등으로 인해 개신교의 공익은 현실과 거리가 멀게 되는 것이다. 공익은 없고 사익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목사의 사익, 당회의 사익과 교인의 공익이 충돌하는 것이다. 이는 광성교회 사태에 잘 나타난다. 후임목사선정이나 교회공금사용은 교인들의 허락을 받지않고 당회원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한국교회의 문제점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당회의 사익과 교인들의 공익의 충돌에 있다. 당회의 사익이 크고 교인들의 공익이 약하다 보니 항시 당회의 사익이 우선하게되는 것이다. 강북제일교회는 당회장과 당회의 사익에 교인들이 공익정신을 갖고 반기를 들어 사익에 젖은 사람들을 침몰시켰다. 현재로서는 교인들의 뜻을 무시하고 당회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처럼 오늘날 개신교의 문제는 사회에 교회의 공익보다 사익이 더 크게 비쳐졌기 때문에 개신교가 점점 설자리를 잃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현하는 공익을 우선하는 곳이다. 남을 구제하고, 약자를 우선하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중심보다는 주변의 자리로 가고, 교회의 가시적이거나 무리한 건축보다도 이동성전인 신도의 영적건축을 우선시 하는 곳이다. 그러나 공적인 집단의 당회장과 당회원이 공익을 추구하지 않고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교회의 문제가 발생하고, 이에 대한 반발로서 사적인 집단인 교인들이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노회나 총회도 마찬가지이다. 재판국원이나 헌법위원들이 공적인 자리에 있으면서 하나님나라 실현의 공통선과 목적이라는 공익을 추구하지 않고, 지연, 학연에 얽매어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교단이 부패하는 것이다. 사익을 추구하면 헌법위가 범법위가 되고 재판국이 개판국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무서운 적은 죄가 하나님이 만들어준 계명을 틈타서 역사하듯이, 죄가 하나님이 만들어준 공적인 집단인 당회, 노회, 총회, 헌법위원회, 재판국을 통해서 공익의 이름으로 역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된 공익이었고, 실제로는 극단적 사익이었다. 공적인 단체는 단지 사익을 추구하기위한 가장된 단체였다. 공적인 단체의 대표는 공공성을 띠고 노골적으로 사익을 추구하였다. 교회돈 마음대로 쓰기, 자기 사람 심어놓기, 자기 지연, 학연, 혈연 후임자 세우기 등은 대표적인 예이다. 당회 역시 신도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재정이나 후임자목사를 결정하는 것도 공익을 가장한 사익의 실현이다.
영미의 공익실현
영국.미국의 공익은 프랑스와 달리 지나친 국가주도적이라기 보다는 국민개개인의 사적 권리실현을 통해서 공익을 달성하고자 한다. 17세기 미국과 영국에서 법개념으로 등장한 공익은 그 철학적,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배경과 함께 현실사회를 이끌어 가는 실정제도로 나타나고 있다.
영미의 공익은 Adam Smith로부터 시작하여 Jeremy Bentham에 의해 완성된 자유방임과 개인주의 및 공리주의라 할 수 있다. 개인의 권리가 실현되면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벤담은 공동체의 이익은 각각 개인들의 이익의 합이라고 하였다. 전통적인 자유의 경제학자들은 개인이익의 추구가 적절한 법과 제도의 틀안에서 개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전반적인 사회적 이익에 봉사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영미에서 개인의 자유와 평등, 권리실현을 강조한 나머지 사익의 합은 결국 공익을 추구하는 경향쪽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영미에서 사회구성원들이 권리와 자유가 전제되지 않은 채 공익의 추구는 무의미한 것이 된다. 이러한 원리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보았을 때 공익의 인위적 추구는 자유의 권리의 침해와 억압만을 초래할 뿐이다. 신자유주의하에서는 규제완화와 최소국가의 개념이 각광을 받고, 공익을 추구한다던 국가가 사익의 포로가 된 현상이 나타나고, 오히려 국가의 간섭을 줄인 곳에 자유로운 개인활동의 조화가운데 공익이 달성된다고 보았다.
영국의 영향을 받은 미국도 개인의 자유실현과 권리보호를 목표로 하였다. 미국상황에서 국가주도적 공익은 개인의 권리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유럽처럼 국가주도덕 공익은 저항을 받게 된다.
교회에서 공익추구도 당회장이나 당회주도적이 되어서는 안되고, 신도들의 권리실현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고 이러한 신도들의 의사와 권리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당회주도적인 공익은 신도들의 저항에 부닥치게 된다. 교회재정을 사용하는 것이나 후임자 결정을 하는 것도 교인들의 권리실현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전근대국가나 독재주의 국가일수록 국가주도적 공익을 추구한다.
전근대적 교회, 당회주도적
교회에서도 당회주도적 공익을 추구하는 교회는 전근대적인 교회이거나 전제주의적 교회이다. 실제로는 공익인 것 같으나 내면에는 집단이기주와의 극단적 사익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단지 공적인 단체의 이름으로만 시행할 뿐이다. 절차적 실체는 공익이지만 실체적 실체는 사익이다. 당회장이나 당회는 공적인 형식만을 띠었을 뿐, 교인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으면 사익을 추구하는 가장된 공적인 단체에 불과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교회가 진정한 공익인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위해서라면 당회장이나 당회가 공익성을 띠어야 하고, 그 공익성은 당회가 일방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인들의 집단인 교인들의 권리와 자유를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 이제 한국개신교는 하나님나라실현이라는 공익을 가장하여 목회자나 당회의 사익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고, 진정한 공익이 되기위해서는 사회의 공공선을 초월해야하고, 교인 개개인의 권리를 통해서 실현되어야 한다.
ⓒ 통합기독공보 & www.lawnchurch.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용인 기쁨의교회 성도들, 합신 제111회 총회 결의에 반대 성명
© 통합기독공보 용인 기쁨의교회(담임 정의호 목사) 성도들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제111회 총회의 기쁨의교회 관련 이단 규정 결의에 반대하는 성명서 ‘한국교회에 고하는 글’을 발표했다. 교회 측에 따르면 지난 9월 20일 주일 오후 본당에서 총회 결의 내용과 경위를 설명하는 자리가 열... -
[단신]기독문화선교회, 오산리기도원서 ‘신바람힐링성회’ 개최
사단법인 기독문화선교회가 오는 12월 7일부터 12일까지 경기도 파주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 대성전에서 ‘신바람힐링성회’를 개최한다. 이번 성회는 한국교회의 영적 회복과 성도들의 신앙 회복을 돕기 위한 자리로, 말씀 선포를 비롯해 찬양과 간증, 건강 강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
조승호 GMS 신임 이사장 “모든 성도가 선교에 참여하는 시대 열겠다”
GMS 제15대 이사장 조승호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세계선교회(GMS) 제15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조승호 목사가 모든 교회와 성도가 함께 참여하는 선교 공동체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선교를 일부 사역자만의 책임으로 한정하지 않고, 청년과 전문인, 은퇴 이후의 성도들... -
예장합동 서울강남노회 제102회 정기회 개최…21당회서 23당회로 확대
예장합동(총회장 정영교 목사) 서울강남노회(노회장 이길찬 목사)가 10월 19일 서울 동작구 대남교회(담임 김창원 목사)에서 제102회 정기노회를 개최했다. 이날 정기노회에는 목사 72명과 장로 12명이 참석했으며, 노회는 당회 수가 기존 21당회에서 23당회로 확대되는 등 교세 변화를 보인 가운데 각종 청원... -
전국호남협의회, 조승호 목사 GMS 이사장 취임 축하
예장합동(총회장 정영교목사) 제27회기 전국호남협의회(대표회장 조승호 목사)는 10월 15일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GMS 선교본부에서 임원회를 열고, GMS 이사장에 취임한 조승호 목사를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임원들은 조 목사의 취임을 축하하며, 차기회장 고광석 목사가 꽃다발과 임원들이 모은 ... -
GMS 2027 세계선교대회 슬로건, ‘교회여 다시 열방으로’
총회세계선교회(이사장 조승호 목사, 이하 GMS)가 2027 세계선교대회의 슬로건을 ‘교회여 다시 열방으로’로 정하고, 교회와 평신도가 함께 선교에 참여하는 대회를 만들기 위한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대회장인 조승호 GMS 이사장은 교회와 평신도 모두가 선교의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