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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사법부, 무엇이 문제인가?

  • 황규학
  • 입력 2012.01.27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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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노현사건과, 부러진 화살, 도가니등 으로 사법부의 불신
요즈음 곽노현사건과, 부러진화살, 도가니등으로 사법부의 불신과 질타가 계속 줄을 잇고 있다. 소송을 해본 사람들은 경험해보아서 알겠지만, 무죄로 예측되는 사건이 유죄로 나오고, 유죄로 예측되는 상황이 무죄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는 인간의 능력의 한계이다.
 
객관적 진실을 파헤치는 인간의 선천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교회사건이나 개인사건을 보면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진실의 열쇠는 신이 아니라 판사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고시합격과 국가가 인정한 판사권한이 진실의 실체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업무량으로 인해 사실규명이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판사들의 자유심증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판사의 자유 재량으로 판결을 내리게 된다.
 
광주중앙교회, 강북제일교회, 감리교, 한기총사태와 관련한 판결문을 보면 오판 투성이이다. 종단의 헌법과 규칙제정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종단의 판단과 해석 자율권을 침해하고, 소급효금지원칙을 무시하고, 임원회의 결의와 실행위의 결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등 하여 오판투성이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몰지각한 교인들이나 교계는 수시로 소송을 일반법정으로 가져가, 하나님의 힘이 아니라 국가의 힘을 부여받아 자신의 권리를 실현하고자 한다. 권리이면에는 극도의 이기성도 도사리고 있다. 그러면서 강단에서는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한다. 몸은 국가의 정의를 부르짖고 있으면서 말이다. 
 
판사들이 선진국의 판례등을 많이 참조하고 공부해야 하는데, 일단 외국어 실력이 약하고, 판결과 판결문에 치여 공부할 시간이 많이 없다. 그러다 보니 창조적인 판결문을 쓰기 어렵고 대법원 판례에 의존하게 된다. 특히 교회사건은 오판이 많이 나온다. 물론 우리에게는 오판이 있지만 승소한 사람들이거나 판사들은 오판이 없다. 그들이 내리는 모든 판결은 실체적 진실에 입각했다고 판단하고 내리는 것이다. 악법이고 편법, 오판이고 상관없다. 선고자체가 진실이기 때문이다.
 
형사소송에 있어서 진실이란 무엇이고 판사들은 무엇에 근거해서 판단을 하는지 알아보자. 철학적으로 말하aus 결국 인식론의 문제이다.

형사소송에서는 '실체적 진실'이라는 진실개념을 추구하고 있고, 동시에 무죄추정원칙, '의심스러울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의 원칙'(in dubido, pro, reo)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판사들은 유죄추정원칙, '의심스러울 때는 검사의 이익으로'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법정에 서는 것 자체가 죄인으로 취급한다. 그래서 막말을 하는 판사가 늘어나는 것이다. 검사가 기소하면 무죄율이 0.1%도 안된다. 열명이 재판을 받으면 무죄로 판단받는 사람은 1명도 안된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무죄추정율이 2-3%는 된다. 형사소송이 목표로 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개념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개념은 없고 판사의 선고만이 있을 뿐이다.
 
진실개념에는 1) 실체적 진실개념, 2)사실적 경험적 진실개념, 3)논리적 진실개념, 4) 절차적 진실개념이 있다.   
 
첫번째, 실체적 진실개념을 보자.
 
실체적 진실은 진실의 실체론을 주장하는 것으로서 진리대응이론에 입각한 진실개념이다. 즉 진리라는 추상개념과 현실적 요소로서의 구체적인 부분이 서로 대응한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진리란 지성과 사물의 일치로 파악될 수 있다. 인간의 주관적 측면을 배제하고 객관적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원래의 객관적 진실은 존재하는데 이러한 진실은 알 수 없고 공판과정에서 사실인정절차를 통해서 선고로서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절도를 한 근거나 증거가 없어도 판사가 공판절차의 자유심증을 통해서 절도를 했다고 판단하면 절도범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재판에서 객관적 실체는 신의 영역이자 형이상학적인 이데아의 영역으로서 의미는 없어지는 것이다. 요셉과 같은 경우, 보디발 아내를 건드렸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나중에도 그의 실체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결국 그의 실체적 진실은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사실로 나타난다.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로 만들어 주는 것으로 그의 누명은 벗겨진 것으로 성서는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성서에 의하면 요셉의 무혐의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역사한다는 것이 그의 무혐의의 표시였다. 예수의 안식일에도 일한다는 혐의는 무혐의로 밝혀지지 않았다. 부활을 통해서 그의 무혐의를 대신했던 것이다. 이처럼 실체적 진실은 성서에서도 침묵을 하고 있을 정도로 밝혀지기 어렵고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사실로 대신한다. 그래서 양심적인 선고가 중요한 것이다.   

두번째, 사실적 겸험적 진실개념 이다.
 
사실적 경험적 진실개념은 객관적 진실의 실체는 밝혀지기 어렵기 때문에 진실은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근사적 접근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진실에 대한 인식은 경험적 확인과 계측에 의하여 도달하는 것이다. 현재의 실제적인 인식수준에서 오류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하는 인식이 현실의 정확한 반영이라고 볼 수 있고, 기존의 이론의 모순점에 대하여 경험적 자료를 통한 비판적 검토라는 방법을 제시한다.
 
세번째, 논리적 진실개념 이다.
 
논리적 진실개념은 일정한 언명에 내재된 논리적 일관성에 의하여 진실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정합성론에 근거한 개념으로 명제의 참이나 거짓여부는 동일한 대상에 관한 다른 언어적 명제와 일관성을 갖는지 여부에 의하여 결정될 수 있다고 파악한다. 형사소송에서는 사실인정절차에서 제시된 각 진술의 논리적 일관성과 사실인정에 활용되는 개별 증거간의 유기적 관련성을 중시한다.
 
그렇다면 형사소송에서 일관성있는 입증을 하기 어려운 비전문가인 피고는 매우 불리한 상태에 처하게된다. 단지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고 해도 일관성있고 논리성있는 진술을 하거나 입증을 하기가 어렵다. 법원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이 무학력자이거나 고졸자 이하 이다. 고학력자들은 대부분이 사회에서 안정된 기반을 갖고 있어 범죄를 할 필요가 없고 법의 심판의 두려움을 알기 때문에 범죄율이 낫다. 그들이 범죄를 하면 변호사를 사는 것이고, 무학력자들은 변호사조차도 살 돈없는 사람들이므로 거의 유죄이거나 불리한 판정을 받게 된다. 스스로 논리성있는 입증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네번째, 절차적 진실개념 이다.
 
절차적 진실개념은 하버마스의 합의설에서 찾을 수 있다. 진실이라는 것은 대화 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라는 진실의 발견과정에서 성립한다고 보는 것으로 진실개념에 관한 절차설이라고도 한다. 형사소송에서는 사실인정절차에 참여하는  각 주체의 참여기회와 의사소통기회가 충분히 보장되었는지의 여부가 매우 중요해진다. 그래서 판사들은 항시 두번 이상의 공판절차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최삼경은 한번의 소명기회도 주지않고 이단으로 정죄해버렸다. 이는 절차적 진실개념을 위배한 것이다. 절차적 진실에서 참여와 의사소통의 기회의 보장은 당위적 요소이다. 이러한 이론의 약점은 당사자들간의 의사소통을 통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진실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그 합의 저너머에 있는 것이다. 검사와 판사가 합의가 이루어진다고해서 진실이 발견되는 것인 아니라는 말이다. 법원에 가면 무죄율이 0.1%이하라는 것은 검사와 판사의 영역이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사실상 검사가 판사가 되어 기소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거의 판단하는 것이고, 검사가 기소한 것은 거의 무죄가 없고 구형량만 감소될 뿐이다. 소망교회 사건도 부목사들이 때렸다는 증거가 없다. 김지철목사의 맞았다는 사실만 검사와 판사가 합의된 것이다. 검사와 판사의 의사소통, 합의 이것이 절차적 진실이다. 판사와 변호사가 합의되면 무죄는 거의 없고 형량만 낮출 뿐이다.
 
이처럼 판사와 변호사, 판사와 검사 두 사람이 합의하면 진실은 발견되는 것이다. 이것이 절차적 진실이다. 피고와 변호사의 의견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절차적 진실을 위하는 절차과정에서 참여하는 자들에 불과하게 된다. 그것이 도가니이고 부러진 화살이다. 즉 공판절차는 있는데 진실은 사라지는 것이다. 최삼경은 이러한 기본절차도 없었다. 그래서 한기총이 가장 사악한 이단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절차적 진실의 핵심은 판사의 자유심증주의이다. 판사가 경험칙과 논리칙으로 자유재량으로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재량(discretion)이나 자유심증에는 학연이나 지연, 사시동기생, 전관예우, 서울대, 검판사장출신들이 즐비한 유력한 법무법인, 정치적 관계자도 작용한다. 그들이 나서면 융통성있게, nothing이면 원칙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객관을 표방한 주관적인 법해석에 안걸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법복을 입은 빌라도 앞에 예수도 죄인이 되고 만다. 양심과 법리를 상실한 법해석은 고무줄해석으로 탈바꿈한다. 그래서 무전유죄, 무연유죄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절차적 진실이다. 아니꼬우면 돈이 있든가 인연관계가 있으라는 말이다. 법리 외적인 요인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법현실주의 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판사의 독립성에 제한을 두어야 하고, 국민이나 국회가 사법부의 독선이나 오판을 감시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검사와 판사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모든 권력기관은 견제와 감시가 없으면 썩기 마련이다. 인간의 양심은 부패하고 썩을 수 밖에 없기 마련이고 보다 신중한 재판을 위해서 사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영미법계에서는 "형사소송에서 말하는 사실은 실체적 진실이라 할 수 없고, 궁극적 진실은 알 수 없다. 따라서 각 소송관계인의 주장을 충분히 음미하여 공정한 입장에서 판단결과로서의 진실만이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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