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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교회사에 나타난 이단판별의 역사와 향후 전망 (2)

  • 원성현
  • 입력 2012.11.03 22:28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뉴에이지혁명은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하나로 묶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적 이기심을 떠나 진정으로 행복한 세상을 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아숭배를 통해 자신에 대한 지식이 심화되면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전지구적 사회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따라서 뉴에이지 운동에는 인간의 잠재력 계발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초능력, 심령술, 두뇌개발 등의 다양한 신비주의적 성격이 그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뉴에이지운동은 초대교회의 혼합주의 영지주의(헬라철학과 밀의종교, 유대교, 기독교, 마니교 등의 결합)와 중세의 신비주의를 한 몸에 담은 현대판 혼합주의 종교인 것이다.

     또한 신과 우주가 하나이며, 한 인간의 영혼이 우주의 핵심이고, 우주의 핵심은 곧 인간의 영혼이라는 범신론이 뉴에이지운동의 출발점이다. 명상을 통한 신인합일의 경험, 각 종교의 신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다원주의 사상, 인간 존재의 가치를 그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두는 인본주의, 인간이 여러 방법을 통해 점차 신으로 진화해간다는 영적 진화론(인간이 신이 되기 위한 방법으로 환생을 규정했으며, 환생을 거듭할수록 영적으로 신에 가깝게 진화한다고 주장함), 신성을 깨닫기 위한 의식개혁 강조(초월명상, 강신술, 동양종교, 영지주의, 심령과학, 무속신앙, 투시, 점복, 최면술, 점성술, 요가, 관상, 수상, UFO에 관한 것들, 마녀숭배, 윤회설, 범신론적 학문운동, 인간의 잠재력 계발운동, 초혼 곧 영매를 통한 접신행위, 텔레파시와 정신동력 등의 사용), 영화와 음악 및 대중 영상매체와 도서 등의 대중문화를 통한 뉴에이지사상의 확산 등이 뉴에이지운동의 내용과 방법들이다.

     상술한 바대로, 신종교운동과 특히 거기에 속한 뉴에이지운동의 핵심은 정통기독교의 원죄론적 인간관을 거부하고 인간의 능력과 한계를 극도로 고조시킨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이 신으로 될 수가 있으며, 이로 인해 전 세계의 불행이 불식될 것으로 보았다. 이들의 근원은 초대교회의 영지주의와 중세 이후의 신지학에서 찾을 수 있으며, 비록 정통기독교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사상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와서 스스로 전지구적 위기의 대안이라고 자처하는 이상, 우리의 탐구의 대상이 아니 될 수가 없을 것이다. 비록 이들과의 솔리다리티와 이들에 대한 똘레랑스가 불가능한 것 같아 보여도, 그들과의 다른 차이점을 확인하고 이에 대처하려는 타자성의 철학정신, 곧 디스꾸르(Discourse)를 형성하여 상호간의 존재와 인식론적 차이를 점점 더 자세하게 확인하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곧 정통기독교가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일에 앞서, 거대한 혼합주의 종교사상인 그들로부터 정통기독교를 보호하는 적절한 수단이 될 것이다.
 
(2) 기존 종교들의 공존시대

현대의 기독교는 내부적 문제인 이단문제와 함께 외부적 해결 과제인 종교 간의 대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는 디스꾸르와 똘레랑스를 필요로 하는 상호소통적 아젠다이다. 이제 각 종교는 교리적 정통성을 보존하는 일과 더불어 타자와의 연대도 모색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곧 모든 종교들은 인류애의 보편성과 이성, 자연법과 양심 등에 근거하여 각 종교들의 공통 지향점을 모아 이 세계를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적 양극화현상(국가와 집단과 개인 단위의), 환경오염으로 인한 전지구적 생태계파괴, 엄청난 핵무기와 가공할 파괴무기로 인한 전쟁의 위협, 인종 및 종교분쟁, 인권탄압과 인종학살 등의 근원을 제거하고 평화를 정착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제 모든 종교와 분파는 대립과 투쟁이 아니라 공존해야 할 시대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 정통기독교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솔리다리티와 똘레랑스

모더니즘 시대는 동일성의 철학으로 인해 종교분쟁과 공격적인 선교 행태로 인해 끊임없는 갈등과 대립의 국면을 노출시켜왔다. 그러나 상대주의적 문화관과 다원주의적 종교관에 입각하여 전지구적 대립과 투쟁을 불식시키고자 한 타자성의 철학은 종교들의 대화를 추동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기독교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분리와 격리를 주로 해왔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이전의 관행에서 벗어나, 모든 종교와 이단에 대해서도 똘레랑스와 디스꾸르의 정신으로 솔리다리티를 추구해야만 한다. 기존의 자세로 접근한다면, 다시 기독교는 그렇게도 혐오했던 유대주의적 기독교와 그 맥을 같이 하는 게토화로 전락되고 말 것이다.



7. 나가는 말

초대교회시대는 ‘디아포라’(중요한 교리)를 근거로 이단판별을 시행했다. 성경에 근거한 정통 삼위일체 신론과 기독론이 이단판별의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단판별의 형식은 중세의 무지막지한 극악한 종교재판적 방식이 아니라 장기간의 디스꾸르를 통해 똘레랑스와 솔리다리티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종교개혁시대의 이단판별 역시 ‘디아포라’ 원칙에 입각해서 역시 그러한 방식과 일맥상통한 길을 걸었다. 특히 깔뱅의 제네바교회는 ‘꽁지스뜨와’를 통해, 면밀한 조사와 검토를 행한 후에 신중하게 이단을 판별했던 것이며, 그 목적 역시 회개를 위한 권징에 있었다.

세월이 흘러 근대교회시대에 접어들수록, 이단의 행태와 주장은 심각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고, 이는 정통기독교의 신학사상과 너무나도 이질적이어서 도저히 똘레랑스와 솔리다리티가 불가능한 정도에까지 치달았던 것이다. 심지어 포스트모던 시대인 오늘에 있어서 발생한 신종교운동과 뉴에이지운동 등은 도저히 정통기독교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에 비유될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초대교회와 중세교회의 이단판별 자세와 태도에서 엿볼 수 있는 바는, 바로 신중한 이단판별 행태, 즉 ‘아디아포라’(중요하지 않은 곁다리 교리나 사상)에 근거하지 않고 ‘디아포라’(중요한 핵심적 교리, 즉 삼위일체 신론과 정통 기독론 교리 등)에 근거하여 장기간에 걸친 디스꾸르적 이단정죄 자세를 가졌다는 점이었다.(디스꾸르는 타자와의 차이점을 확인하지만 배타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고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의미)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과연 우리 한국교회는 그러한 초대교회의 담론의 질서 전통, 그리고 중세교회의 악폐를 극복하고 초대교회의 똘레랑스와 솔리다리티 정신을 전승한 종교개혁교회의 신중한 디스꾸르적 이단판별 태도를 한 번이라도 지녔던 적이 있었는지를 묻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한국교회 내의 이단들 중에서도 역시 도저히 똘레랑스와 솔리다리티를 할 수 없는 극렬한 이단들, 예컨대 자칭 재림예수가 참칭하는 이단종파들이 존재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 옳지 못한 정치적 생태에 의해 교권 쟁탈전적 이단정죄와 감별이 있어온 것도 엄연한 현실이고 지금 현재도 그런 형태가 종종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

이제 한국의 기독교 교세가 감퇴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계속해서 정통교회에 도전하는 이단운동들이 우후죽순처럼 계속 태동하고 있으며, 기존의 기성종교들과 새로운 신흥종교들이 춘추전국시대의 백가쟁명을 방불케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나아갈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물질주의와 성공주의, 대형주의와 찰나주의, 매너리즘과 허무주의 등에 의해 이리저리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렇게 상황이 캄캄하여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거기 암흑천지 속에서 빛나는 빛은 더욱 빛나는 법이다. 우리가 형평한 신학적 시각으로 모든 종교현상에 대해 공명정대하게 대처할 수 있을 때 우리 정통기독교의 정신과 사상은 더욱 순결하고 고매하게 프로파간다 될 수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모든 악을 제어하고 선을 세상에 대해 뿌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내하면서 똘레랑스 정신으로, 우리가 노력하는 자세로 디스꾸르 정신으로, 우리가 솔리다리티와 프로파간다 정신으로 무장한다면, 그래서 지피지기 백전불패의 기상으로 타종교와 이단종파에 대한 담론의 질서를 형성한다면, 더 이상 우리의 지평과 밭은 두더쥐나 들짐승에 의해 훼손당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훼파 당한 우리의 터전이 풍성한 옥토밭으로 변개되는 그날이 반드시 오고야말 것이다. 그들과의 대화는 우리의 한계점과 단점을 부각시켜주고, 진리를 프로파간다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바로 이점이 우리가 이단판별을 하고 또한 그들과 담론의 질서를 형성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 - -
 
원성현박사는 부산장신대(당시는 무인가신학교)를 졸업하고 나이40세에 학력고사를 보고, 연세대철학과에 입학해서 사회학까지 전공하고, 연세대 역사상 4년 전과정을 A+ 만점으로 수석 졸업한다. 그 이후 연세대학원도 수석으로 입학해서 교회사로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는 불어, 독어, 라틴어, 영어에도 능통하다. 현재 부산장신대 초빙교수로 있고, 이단논쟁으로 불거진 한국교계에 무모한  이단논쟁에 대해 교회사에 나타난 이단논쟁을 전개함으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원박사는 한국이단감별사들은 중요한 것을 갖고 이단으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이단으로 판정한다고 주장한다. 이제까지 이단감별사들은 대부분이 무학자이거나 비전공자였다. 교리나 교회사 박사하나 없고, 하다못해 지방대학출신자들도 하나 없었다. 학력을 위조했거나 무인가신학교 출신들, 교육부가 인정하지 않은 학력소지자들, 전문증거나 증거없이 근본주의 신학에 토대를 둔 목사들이 언론과 저널을 통하여 무자비하게 이단을 조작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갖고서 이단을 정죄해왔다.
 
더이상 이러한 비극적이고 마녀사냥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원성현박사가 이단문제에 핵을 긋기 위하여 펜을 들었던 것이다. 자그만치 A4용지 20페이지였다. 학술자료로서까지 염두해 글을 썼다. 그만큼 많은 이단감별사들이 어설픈 잣대를 갖고 이단을 정죄했기 때문에 교회사학자로서 이단정죄에 대한 기준과 이단정죄의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단조작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원박사 이상의 논리를 전개할 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선무당들은 사라져야 한다. 사람을 잡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단조작자들은 원박사가 쓴 글 정도는 이해하고 반박을 쓸 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단조작자들은 허위와 증거날조, 전문증거를 통하여 이단을 조작해왔다. 한국교계는 더는 이단조작자들에 의해 끌려다니지 말아야 할 것이고, 더는 이단논쟁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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