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WCC 열린 마음으로 대하자

  • 강희창
  • 입력 2012.11.14 20:02
  • 댓글 1
  • 글자크기설정

  • 새로운 길을 바라보는 가능성과 기대 차원에서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I.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 사건을 말하면서 엘리 위즐은 20세기를 가장 폭력적인 시대라 했다. 유사 이래 가장 폭력적인 시대라 비난 받은 20세기의 1986년은 바로 그 사람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21세기를 예측해보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엘리 위즐은 숲 속의 방랑자 이야기를 했다.

혼자서 여행하던 방랑자가 넓은 솦 속에서 길을 잃었다. 길을 찾으려 애쓰던 방랑자는 마침내 숲 속 저편에서 다가오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방랑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하면서 노인에게 자신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자 노인은 힘겨운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나도 당신과 같은 처지라오. 숲속을 여러 날 헤매다가 이제 막 저편에서 오는 길이오. 내가 당신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저 편에도 역시 길이 없다는 것뿐이오.” 그들은 자신이 걸어온 길들은 길이 아니었다는 경험을 나누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야만 했다.

원자폭탄으로 종전(終戰)과 평화의 길을 찾으려 했던 히로시마의 길과 종교와 폭력과 인종청소라는 아우슈비츠의 길은 우리가 걸어갈 길은 아니라는 것이 20세기를 걸어온 방랑자와 노인이 전해주는 이야기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에 멸망할 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고로 소금기둥으로 변하고 말았다. 소금기둥이 된 그 마음에는 과거와 추억과 인간적인 감정들이 있었을 듯하다.  그 마음은 이미 지나온 방랑자와 노인의 길을 되새기려 했던 셈이고, 그런 길로 다시 가서는 안된다는 메시지가 소금기둥을 통하여 전해져온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길로 다시 돌아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뒤를 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의 종인 선지자들은 끊임없이 과거 이야기를 했다. 과거의 교과서 속에서  출애굽과 홍해의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향하려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에 나타난 구원의 길을 찾으려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전하셨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다. 예수님의 그 길을 거부하면서 자기 길을 고집하던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니, 길이 아닌 길들이 진리의 길을 막아서려 했던 셈이다. 십자가의 골고다에서 그 길은 다 끝난 듯했는데, 잠시 지워졌던 그 길은 사흘만에 부활의 아침에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하나님의 길로 새롭게 다시 나타났다. 그것이 곧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요. 그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 것이다.
 
II.
근래의 국제간 대부분의 분쟁이나 전쟁에서 갈등의 직접적 원인은 문명이나 종교가 아닌, 천연자원이나 영토나 경제 문제에 관련되어 있었다.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이해관계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지만 종교적 인종적 적대 관계가 형성되어가면서 경제 정치 군사적 적대관계는 정당화되고 악화되고 고정되어간다. 전세계적 갈등의 배후에 종교의 문제가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로부터 종교는 정치의 배후에서 근원적인 역할을 해왔다.

정치 경제적 분쟁이나 충돌의 해결을 위해서는, 종교와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서로 다른 문명들과 종교들 간에 윤리적 차원에서의 평화적 합의를 추구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종교 간의 근본적인 차이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무시하면서 어떤 합의를 추구한다면 또다른 더 심각한 갈등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우리는 기독교의 고유한 진리를 간직한 채, 바깥 세계에도 적용될 보편적 윤리의 항목들을 중심으로 기본적인 합의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는 말씀은 보편 윤리 차원의 기본적 합의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될 만하다.  
 
그런 대화나 합의는 평범한 기독교인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요 어쩌면 위험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실제적인 역할은 신학 전문가들에게 맡겨질 수밖에 없다. 신학자들이 기독교인이기를 포기한 듯한 말과 글을 통하여 많은 성도들을 당황하게 했던 경험들이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그런 대화와 논의가 정치적 전시효과에 머물렀던 경험도 있다. 그러니까 깊은 영성과 신학을 겸비한 에큐메니칼 사명감을 지닌 인재들이 참여해야 할 분야인 것이다. 

그런 일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평신도들에게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문화와 교파와 서로 다른 종교 사이에 만남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열린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영적 변화와 정복을 얻지 못한다 해도, 만남과 대화는 필요하다. 그게 어렵다는 것은 우리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III.
2011년 2월에 러시아 북오세치아 공화국를 찾아갔을 때, 베슬란이라는 도시의 어느 가정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식탁에 앉은 그 집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이슬람교도라 했다. 물론 그들은 내가 개신교 목사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과의 대화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노인들 중의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자신들은 오래 전부터 이슬람교도이지만, 이슬람이 전세계에 과격한 테러리스트들로 보여지는 것이 무척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곱 살난 손자 아이가 독일 선교사들이 세운 침례교회의 주일학교에 다니는 것을 자신은 그냥 놔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말로 “나도 언젠가 기독교의 세례를 받아야 하겠는데...” 라고 했다.

전도를 원하든지, 평화를 위한 윤리적 기본 합의를 위해서든지, 타교파와 그리고 타종교와의 대화와 윤리적 합의를 추구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신앙과 신학의 고유한 영역을 유지하면서 윤리적 영역에서 필요한 합의를 추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전문가의 영역이요. 전문가일지라도 어려운 영역이요. 이론적인 주장은 하지만 아직까지는 뚜렷한 열매가 없는 영역인 듯하다. 별다른 열매 없이 의심과 비판의 대상이 될 듯한 영역이기도 하다.
 
요즘 원자력은 생명과 삶의 에너지인 동시에 집단적 파멸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원자로 사건 이후로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당장에 원자력 자체를 폐기하기는 어려운 것이 한국적 현실이라 생각된다.

현대 세계를 이끌어가는 IT 문화는 인류의 미래이기도 하면서, 많은 어린 아이들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그런데 IT 문화를 폐기하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교파간 종파간의 만남과 대화는 한편으로는 우리의 신앙과 신학을 위태롭게 만들 가능성이기도 하지만, 진리인 나의 신앙을 분명하게 드러나게 만드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앞이 잘 안보여도 앞으로 가야 하고, 힘들어 보여도 관계와 대화는 필요하다는 말이다.
 
2013년 부산에서 열리는 WCC 총회는 한국 교회 성도들로서는 염려스럽게 보이는 회의일지 모른다. WCC의 참여적 신학의 과격한 측면들이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 수도 있다. 거기 참여한 사람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면 좀 낯설게 보일지도 모른다. 한국교회적인 신앙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들이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미래와 새로운 길을 바라보는 가능성과 기대 차원에서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옳다. 별다른 열매없이 말과 글의 잔치로 끝난다면, 그까지 걸어간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니라 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면 될 것이다.
 
                          <이 글은 ‘목회자 신문’과 ‘로앤처치’의 요청으로 쓴 글입니다.>
                                                       강희창 목사(Th. D. 서초교회)
 

강희창목사는 50대후반으로서 서울대 자연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대학원에서 유전공학을 전공하다가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석박사를 했다. 현재는 서초교회에서 시무하고 있고, 그의 설교는 내용있는 설교로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설교는 문학성, 역사성, 신학성이 골고루 스며있다. 그의 성품은 강직하고 교단정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도 않고 필자와만 가끔 만나 차 한잔을 할 정도이다. 그는 야인처럼 사는 사람이다. 오직 교회, 학교, 도서관이 그가 주로 찾는 곳이다. 설교다운 설교를 원하거나 강직한 목사를 원하는 교회는 강희창목사를 한번 초청하기 바란다. 강목사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교회사에 있어서 탁월한 시각을 갖고 있는 보기드문 인재이다. 강목사의 설교를 한번 들으면 속이 후련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부흥사의 열정을 그에게 요구해서는 안될 것이다.  010 3123 1684(강희창목사)   

ⓒ 통합기독공보 & www.lawnchurch.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전체댓글 1

  • 원성현2012-11-15 22:06:12

    새길은 항상 옳은가? 지나온 길은 항상 잃어버린 못쓸 길인가? 과거 없이는 역사와 문명이 지금까지 왔었겠는가?
    WCC가 왜 정당성이 없다고 여기는가? 앙가주망을 특별한 상황으로 여기는 이유는?

추천뉴스

  • 예장합동 목회자 수급 불균형 우려… 평신도 신학 교육 대안 주목
  • 종교개혁의 정신, 오늘의 한국교회는 개혁되고 있는가
  • GMS 2027 세계선교대회 슬로건, ‘교회여 다시 열방으로’
  • K팝 성공에서 한국교회 다음세대 사역의 길 찾는다
  • 예장합동 서울강남노회 제102회 정기회 개최…21당회서 23당회로 확대
  • 선교의 주체를 넓혀라…교회는 모두 선교사다
  • 조승호 GMS 신임 이사장 “모든 성도가 선교에 참여하는 시대 열겠다”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WCC 열린 마음으로 대하자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