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조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인에게는 표절의 피가 흐르고 있다
국립도서관에서 논문을 보다 한 대학원 학생이 필자의 책, "교회법이란 무엇인가"를 인용도 하지않고 여러 페이지 그대로 표절을 한 것을 읽어 보았다. 한국인치고 표절에서 자유스런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군다나 외국에서 공부를 하면 외국인들처럼 고급문장을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문장을 베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외국에서도 외국스타일이 아니라 한국스타일로 쓰는데 익숙해 있다. 어려서부터 한국인들은 창조적으로 글 쓰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대부분이 남의 것을 베끼는데 익숙해 있다. 이는 서울대도 마찬가지이다. 리포트 회사에 돈을 몇 푼 입금하면 웬만한 것은 다 얻을 수 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는 아!아! 대한민국이다. 하늘에는 조각 구름 떠있고 강물에는 유람선이 흐르고.......
한국식 교육, 표절은 당연
표절이 난무한 것은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잘못 되어있기 때문이다. 입시제도가 모두 암기식이거나 사지선다형이기 때문에 창조적으로 글 쓰는 훈련이 부족한 가운데 표절은 당연한 것이다. 특히 남의 나라문장을 영어로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상 박사학위논문을 쓰더라도 외국인들이 1/3은 수정해주어야 한다. 한국인들이 아무리 죽었다 깨어나도 고급문장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노르웨이 박노자교수 빼놓고는 한국말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외국인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필자도 표절 의심 받아
그래서 외국인들은 결국 좋은 문장을 표절할 수 밖에 없다. 필자도 미국에서 박사과정(D.Min)을 공부할 때도, 책을 요약해 오라고 해서 요약해서 냈더니 교수는 표절이 심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미국은 요약을 하더라도 그 책의 저자의 말로 요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요약을 하는 당사자의 말로 요약을 해야 한다. 저자의 책 내용을 그대로 3줄이상 써서 안되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내언어로의 표현을 해야 한다.
핀란드 교육
세계 최고의 교육을 자랑하는 핀란드는 어려서부터 남의 것을 복사하지 않고 글쓰는 훈련을 시키기 위하여 수기로 리포트를 작성해오라고 한다. 한국으로 보면 전근대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그러한 창조성이 세계 최고의 교육국가 핀란드를 만들어냈다. 핀란드는 사지선다형은 생각하기도 어려운 시험스타일이다.
생물시험도 한국같으면 모두 외어야 문제를 풀 수 있지만 핀란드 방식은 원리를 알아야만 쓸 수 있는 방식으로 주관식 문제를 낸다. 첫해는 핀란드고등학교에 딸이 입학하자마자, 세계사 시험을 치렀는데 F학점이 나왔다. 한국식으로 공부하다 보니 이 문제를 풀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문제인데, 카이저의 일기장을 주면서 카이저가 세계 1차대전을 일으킬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술하라는 것이다. 의도가 있으면 나눠준 일기장을 보면서 근거를 대서 쓰고, 없으면 없는대로 글을 쓰라는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카이저의 의도을 알기 보다는 학생들의 논리성과 창조성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배운 교육만 갖고서는 이러한 문제를 풀수가 없다.
대학교육도 마찬가지이다. 교수가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들이 팀을 만들어서 과제를 만드는 것이 많이 있다. 딸아이가 국제경영학과에 다니는데, 3월달에는 에스토니아에 있는 Skype 인터넷 전화회사를 방문한다는 것이다. 팀별로 100유로씩 내서 배삯, 숙식, 음식 등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자체 경영을 해야 한다. 그리고 회사경영스타일을 파악해서 교수가 내 준 과제를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교수는 먼저 자신들의 문제를 잘 경영하기를 원하고, 선진회사를 방문하도록 해서 선진회사의 경영을 배우는 것이다. 훌륭한 경영이라면 남의 나라에까지 가서 보고 배우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핀란드는 모든 교육이 창조적이고 토론적이고, 팀위주적이다. 표절에 익숙한 학생들은 살아남기 어렵다. 핀란드를 가보면 알겠지만 어디를 가든지 예술적이고 건축 디자인이 아름답다. 한국은 새로 지은 대학건물이라고해도 다 비슷하다. 창조적인 건물이 별로 없다. 교회건물도 마찬가지이다. 수십억, 수백억을 들여도 거의 유사하다. 이는 건축표절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표절문화에 익숙해 있다. 남이 잘한 것을 보면 그대로 모사한다. 미국에 가면 한인 교포들은 남이 잘되면 식당, 세탁소, 청과물 유사한 점포를 내서 서로 제살 뜯어먹기를 하고있다. 이처럼 한국인들은 논문에서, 설교, 점포까지 표절문화에 익숙하다.
한국은 표절문화
요사이 커피점이 잘되니 가는 곳마다 카페베네, 엔젤인 어스 등 거피점 투성이이다. 이렇게 커피점이 많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모두 바리스터이다. 그러다 보니 커피점도 제살 깍이를 하고있다. 일반 신도들의 점포문화도 대부분이 창조적인 것보다는 표절문화에 기인한다. 남이 잘되면 그대로 표절한다.
회사경영스타일이나 점포 경영스타일, 의상, 아파트 문화, 미용실, 병원, 식당 등 어디 하나 창조적인 점포운영이 없다. 모두 표절이다. 필자가 사는 동네는 광장동인데 한 골목에 미장원만 20개가 넘는다. 교회건축도 거의 비슷하다. 창조적인 건축이 거의 없다. 우리는 창조적인 경영, 학문, 문화를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다.
미국의 한인교회를 가보면 70년대의 문화가 그대로 지배하고 있다. 창조적인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이다. 한국의 설교문화, 예배문화, 건축문화, 신앙문화, 점포문화 등 표절이 아닌 것이 없다. 예배문화도 한 교회가 드럼장비를 구입하면 모든 교회 다 드럼장비를 둔다. 예수를 믿는다 해도 누구에게나 표절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겉에는 예수의 피가 흐르지만 내면에는 표절의 피가 흐르고있다.
표절교육에 익숙
우리는 한번도 창조적인 것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필자 역시 대학에 처음 들어가서 혼란이 온 것은 너무나도 다양한 학설이 있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한번도 다양한 학설이 있다는 것을 배운 적이 없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것만 외우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학다니는 것이 너무나도 혼란스럽고 힘들었다. 왜 같은 사람인데 학자들마다 이론이 다르냐는 것이다. 인문학을 배우면서 머리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었던 기억이 있다.
캐나다에 가서도 장신대에서 리포트내는 것처럼 냈다. 돌아온 것은 C 학점이었다. 많이 썼는데 성적이 안좋았다. 이유는 남들이 쓰지 않은 창조적인 글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남의 것을 요약하는데 익숙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신학대학원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저자의 것을 저자의 말로 요약했다가 표절이라는 말을 들었다. 저자의 글이 내 머리속에 들어가서 다시 내 언어로 거듭 태어나야 했다. 이 표절문화는 박사과정까지 내내 나의 발목을 잡았다.
한인들은 표절의 피가 흐르고있어
필자는 느낀 것이 많았다. 필자는 서울대학을 나오고, 장신대학원을 나왔지만 필자의 피에는 표절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표절하고 싶어서 표절한 것이 아니라 표절인줄도 모르고 표절했던 것이다. 보통 한국에서 책을 요약해서 제출하라고 하면 저자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책을 요약해서 내라고 한다면 책을 읽은 독자의 언어로 재해석해서 창조적인 관점갖고서 요약해서 제출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남의 문장을 5줄 정도는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다반사이지만 외국에서는 반드시 풋노트를 달아야 한다. 외국에서 표절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정현목사 역시 필자처럼 표절의 피가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한번도 창조적으로 글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오정현목사뿐만아니라 오정현목사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도 모두 표절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사고와 사상, 글쓰기, 논문작성, 점포운영, 회사경영 등 표절아닌 것이 어디있는가? 결국 표절 점포운영, 표절교회운영을 해서 제살 깍아먹기를 하고있다.
개신교계와 사회를 보면 조작이 판을 친다. 목사는 이단조작, 설교조작, 논문조작, 이력조작, 안수조작, 학력조작, 검사와 판사는 범죄조작을 한다. 모두 표절문화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거짓과 기만이 우리 사회의 문화이다. 비단 목회자들 뿐 아니다. 우리 모두 표절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목사, 장로, 집사, 교수, 검사, 판사, 정치가의 못을 입었을 따름이지, 내면에는 모두 표절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다행이 필자의 딸은 표절의 피가 흐르지 않고있다. 표절자체를 모르고 자라났다.
오정현목사 역시 겉으로는 대형교회의 목사이지만 내면에는 표절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목회하면서 받는 유혹은 학위이다. 대부분 한인목사들은 학위에 대한 유혹을 안고 살아간다. 어려울 때 무인가신학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사회가 점점 학력사회가 되다보니 무리하게 학위를 딸려고 하는데 익숙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외국어고등학교나 과학고등학교의 목표는 언어나 과학의 최고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소위 SKY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사회가 온통 SKY 대에 미쳐있다. 원주 연세대 캠퍼스나 신촌 연합신학대학원에라도 들어가서 연세대 나왔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연세대는 그러한 심리를 알고 연합신학대학원에서는 학위장사를 하고 있다.
그만큼 SKY 대를 나오지 않는 목회자들은 학위컴플렉스를 안고 살아간다. 학위컴플렉스는 성령충만해도 채워지지 않는 욕구이다. 특히 대형교회 목사들은 Ph.D콤플레스를 안고 살아간다. 동료중 한 목사가 천안 백석대학 Ph. D과정에 입학했다고 너무 기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오정현목사도 Ph. D를 얻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 것이다.
한인들은 미국목사들과 달리 사회의 분위가 그렇다 보니 박사학위에 대한 욕구가 지나치게 강하다. 대형교회목사는 Ph. D 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비 SKY대 출신들은 특히 학위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무임승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대필하고 표절을 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실력보다 학위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에서 2주만 공부해서라도 박사학위를 취득하려고 하는 것이다. 오정현목사가 안식년에 1년 정도 논문을 써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얻으려는 것은 무리였다. 학위에 집중하다보니 표절과 조작을 일삼게 되는 것이다. 표절은 내용보다 외형적인 학위의 욕구에서 나온 것이다. 과실적 표절은 고치면 되지만, 고의적 표절은 약이 없는 것이다. 5-6줄 표절이 아니라 30페이지 이상 표절한 것은 그냥 남의 책을 베낀 것이며 표절이 아니라 대필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한국에서는 몇문장 베껴도 창조적일지 모르지만 외국에서는 표절이다. 한국에서는 저자의 언어로 책을 요약하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지만 외국에서는 저자의 문장이 3문장 이상 들어가면 표절이 되는 것이다. 30페이지 이상 표절했다면 표절이 아니라 논문 조작이다.
표절, 조작문화는 사라져야
이번 사태로 인해서 더는 한국사회에서 논문표절이나 조작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논문표절과 이단조작에 익숙한 것이 한국교계이다. 논문표절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이단조작은 남을 죽이기 위한 것으로 파렴치한 범죄이다.
표절이 소형교회 목사이면 몰라도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대형교회목사가 한 행동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책임을 지어야 한다. 전병욱목사처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오정현목사가 반성을 하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개척을 한다고 하더라도 수천명이 따를 것이다. 지도자의 자성의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국개신교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표절의 돌 던져서는 안돼
그러나 우리는 지나칠정도로 오정현목사에게 표절의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 창조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많은 국민들의 몸에도 표절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사회법정에 아니라 노회법정과 총회법정을 통하여 해결하기를 바란다. 지나치질정도로 언론의 시각만 갖고 판단될 것이 아니라 교단법정이 권위를 갖고 속히 판단해서 지혜롭게 해결하기를 바란다.
감리교법정은 신도들의 요청으로 동대문교회 서기종목사에게 무흠하다고 면죄부를 주어 그 권위를 갖고 목회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교단법정의 권위이다. 교단법정이 사회법정 이상의 권위를 갖고 오목사의 사표를 받든지, 면죄부를 주든지 해야 할 것이다. 발빠르게 교단법정이 해결해서 표절의 불을 끄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인들은 목사를 비롯 교수들까지, 표절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번도 창조적인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해아래 새것이 없다. 우리는 헌 것을 통하여 새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중에 있다. 이번 오정현목사의 사태는 우리 사회와 교계 목회자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표절의 피가 흐르고 있는 만큼, 지나칠정도로 오정현목사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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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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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양심을 가지고는 표절을 이용하여,
그 귀하고 어려운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면은 목사의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지식의 정립을 바로세우고저 그 많은 시간과 물질과 땀과 눈물을 흘리며 노력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존결을 하여야 하고 존경을 받아야 할 진실된 박사님에게 '표절'은
대적행위이며 엄청난 상처를 주는 법죄행위이다.
표절시비의 도마에 오른 목사나 일반인들도 들여다보면 돈과 권력을 소유한자로
더 누리고 싶은 명예추구를 위한 인간적 욕심에 의한 비양심적 방법인 표절이라는
범죄행위로 눈속임을 하는 화인맞은 양심의 행위라 할 것이다.
파수꾼님의 세심한 논조에 비판을 하지말고 자신의 양심을 돌아보는 계기로
정직하고 선한양심으로 표절문화의 근절을 위해 해당자는 양심선언을 하고
주님앞에 용서를 구하고 새로운 창조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
표절은 범죄이다. 죄인이 회개하면 개과천선할 기회를 주는 것이 신앙적이다.
오정현 목사가 그런 망딸리떼를 보이면 기회를 줘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일탈적 행위가 사라지지 않는다.
향후 철저히 회개하며 모럴 해저드의 전철을 다시는 밟아서는 안된다.
편집인은 정과 부를 잘 구분하는 논조를 회복하라.
정은 정이고, 부는 부다. 참과 거짓을 뒤섞는 논조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모든 한국인의 피에 표절의 문화가 흐른다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편집인은 형식논리학의 오류를 철저히 범하고 있다.
부분부정으로 전칭부정을 정당화하는 판단오류를 범하고 있다.
일부 몇 사람의 논문표절로 모든 한국인이 논문표절을 한다는 엄청난 오류이다.
표절은 근절되어야 한다.
서구 천년의 대학역사에 비해 우리는 겨우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학문과 아카데미즘의 발전 단계에서 초보의 길에 들어선 우리는
이러한 표절문화를 잘 극복해야만 한다.
가장 저질의 범죄는 지적 사기이다. 이는 양심을 속이는 행위이다. 거짓이다.
껍데기만 존재하는 것이다.
허나 편집인의 말대로, 한국의 교육이 이제는 표절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길로 가야만 한다.
창조적인 글쓰기, 독창적인 글쓰기 이러한 교육이 제대로 한국땅에 자리잡아야만 할 것이다.
대학의 교수들이 논문표절을 저지르니 언감생심.
윗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맑은 법이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난다.
그나물에 그밥이다.
바랠것을 바라야지.
대학교수들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저널에서 서구, 중국, 일본 등의 교수들을 제치고
높은 질의 논문을 게재하여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 한
한국의 미래는 어둡다.
기독교 대학과 신학대학의 교수들이 가장 양심적이어야 하는데
결코 그렇지 못하다.
정평이 나 있는 저널에 평생 글한편 싣지도 못하고
철밥통을 유지한채
유유히 은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참 한심하다.
불모지에서, 석녀에게서 어찌 옥동자가 탄생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