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의 역사와 경험강조하다 보니 표현상 빌미 잡혀...신앙고백으로 재 평가해야
김기동목사는 예장통합77차 총회 때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귀신론이나 마귀론을 정죄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김삼환, 나겸일, 하용조, 윤석전 등 많은 사람들이 김기동목사의 영향을 받아서 축사사역을 하였다. 그러나 김기돔목사만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특히 1985년 합동교단으로부터 온 이단감별사 최삼경목사가 적극적으로 왜곡해서 김기동목사를 이단으로 정죄하는데 앞장섰다. 77차 총회록을 보자.
대부분 비본질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제 김기동목사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있다. 우리는 이제까지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었고, 일부 이단감별사들이외에 이단에 대한 관심도 약했고 정보도 약했음이 사실이다. 박윤식목사에 대한 건만 보아도 허위 사실에 의한 정치적 이단정죄임이 드러났다. 그 이외에 조용기, 윤석전, 박철수, 서달석, 예태해, 류광수, 전태식 등이 억울하게 이단으로 누명받아 일부는 해제되었지만 아직도 이단으로 낙인찍혀 있다. 이런 면에서 김기동목사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필요하다. 김기동목사는 원세호, 최삼경에 의해 이미 이단으로 낙인 찍혀 한국개신교단 대다수가 그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예장고신은 교단에서 발행한 유사종교연구에서 김기동씨의 사상을 비성경적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예장통합에서는 77회 총회에서 "김씨는 그의 신론 기독론 계시론 창조론 인간론 그리고 사단론 등 모든 곳에서 비성경적 요소를 광범위하게 드러내는 무서운 이단이라고 규정하면서 본교단산하의 교회 및 교역자는 김기동의 축사방법을 금할 것, 김기동의 집회참석을 금할 것이라고 규정했고, 예장합동은 76차 총회에서 김기동신학은 이단이라 평가했고,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단도 김기동이 주장한 계시론, 신론, 창조론, 마귀론은 모두 이단사상이다...이중아담론도 명백한 이단사상이다....그의 마귀론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황된 미혹이다"라고 했고, 성결교단 역시 김기동집단을 이단으로 규정한 바 본 교단 뿐만 아니라 온 한국교회가 성서 위에 굳게 서서 그릇된 가르침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고 했다.
이처럼 한국주류교단 대부분이 김기동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김기동을 이단으로 만든 장본인들은 원세호와 최삼경목사이다. 원세호는 교회와 신앙을 발행한 사람이고 최삼경은 교회와 신앙의 주간으로서 이들은 저널을 통하여 김기동을 이단으로 규정한 장본인들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김기동이 이단이었는지, 그들의 주장과 김기동측의 반박주장을 통해 알아보자.
먼저 김기동목사는 다소 기존의 장로교나 침례교가 주장하는 교리와 해석면에서 다른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의 마귀론은 경험에 입각한 것으로 축사에 대한 경험없이는 개혁신학의 이론만 갖고서 그의 마귀론을 정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개혁신학에서는 귀신론이나 영론이 체계화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신학은 사실의 영역이 아니라 가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김기동의 신앙고백과 달리 몇마디 문장이나 특정한 표현만 갖고서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은 많은 모순점을 갖고 있다. 가치는 무한대의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의 영역은 증거나 근거, 원칙없이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비트겐쉬타인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보이는 것만 말하라고 했다. 즉 비경험의 세계인 가치의 세계는 검증불가능하기 때문에 침묵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계에서는 보이지않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고 나름대로 가설을 만들어 설명을 시도하고있다.
신앙자체가 비경험의 세계이기 때문에 과감하게 가치의 문화를 사실의 문화로 바꾸려는 작업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단을 정죄할 때 가치의 사실화로 인해 무리수가 많이 따르고 결국 분명한 사실근거나 신앙고백, 진의보다는 이단감별사나 교단관계자들의 주관적 정치적 해석으로 인해 이단으로 매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법에서도 판사들이 완벽한 증거자료가 없을 때, 판사의 자유심증주의 원칙에 따라 자신들만이 주관적 판단이 기준이 되고있다. 실체적 진실과는 상관이 없다. 판사의 해석만이 실체적 진실이다. 그러므로 판사들에게도 오판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올만하다.
이렇게 사실을 전제로 하는 판사들도 오판이 심한데 가치를 위주로 하는 종교계의 판단은 오판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가치의 세계는 증거가 필요없기 때문에 주관적 해석만이 원칙이 되어 약자들이나 군소교단의 목사들은 이단으로 정죄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중세에서 그렇듯이 법리나 증거나 아니라 힘있는 권위에 의해서 판단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판, 마녀사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도 팩트와 증거에 의해서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니라 유대인과 로마인들의 가치에 입각한 주관적 해석에 의해 정죄된 것이다. 안식일에 일한다는 것이고, 바알세불이라는 귀신에 힘입어 병을 고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법에서 죄형법정주의가 탄생하게 된 것도 권위에 의해서 판단하지 말고 법리에 입각해서 판단하라는 것이었다. 즉 가치와 권위에 의해 정죄하지 말고, 법과 사실에 의해 판단하라는 원칙이다.
그러나 가치의 세계는 법과 증거가 필요없고 힘있는 권위자들의 주관적 해석만이 법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약자들은 이러한 권위앞에 한마디 소명할 기회도 한번 못찾고 정죄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한국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들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류광수목사는 17년만에 처음 소명기회를 얻어서 한기총에서 이단해지된 바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기동목사의 신학도 재평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에게도 늦었지만 소명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신학이 가치문화이다 보니 수학이나 법학처럼 검증이 가능하거나 분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 이단감별사 몇사람들만의 주장만 갖고서 이단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기동목사 재평가 필요
최삼경과 김기동목사측의 주장을 들어보자. 무엇이 이단인지, 이단이라면 분명한 것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 귀신론의 서로 다른 해석으로 이단으로 할 수 있는 지, 그렇다면 정통신학에서 귀신론에 대한 것이 확연하게 이론으로 자리잡힌 것이 있는 지, 장로교의 일부 사람들의 해석과 다르다고 해서 침례교단 사람을 장로교의 신학갖고서 이단으로 정죄할 수 있는지, 김기동목사건에 대해서는 다시 재평가 해야 한다.
김기동목사의 경험신학이 장로교나 개혁신학과 다른 면이 있기는 하나, 김기동목사의 신학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제까지 이단에 대한 정죄나 평가는 최삼경목사가 도맡아 왔다. 각교단이 김기동목사를 이단으로정죄했지만 대부분 원세호와 최삼경의 신학에 의해 평가되었다. 그러나 원세호나 최삼경도 이단으로 판단된 이상 이들이 평가한 김기동신학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필요하고 김기동목사측의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성이 있다.
김기동목사를 이단으로 만든 최삼경에 대한 김기동목사의 평가는 주관적이고, 자의적이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면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최삼경식비판을 보면 박윤식, 서달석에서 나타나듯이 허위사실에 근거한 것이 많이 있다. 김기동목사에 대한 비판에서도 허위사실에 근거한 것이 더러 있다.
최삼경은 "베뢰아 귀신론을 비판한다"에서 계시론, 신론, 창조론, 마귀론에 나타난 김기동의 이단사상을 평가하고있다.
먼저 계시론을 보자.
최삼경은 "베뢰아 귀신론을 비판한다" 40p 에서 이단이 성경을 보는 자세는 첫번째, 성경계시만 충분한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이 있고, 둘 째는 성경계시 외에 이와 대등한 자기 계시를 가진 자라고 말하면서 김기동을 성경계시이외에 자기 계시를 가진 자라는 언급을 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단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최삼경이 김기동을 이단으로 언급하는 것 중의 하나는 김기동이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를 성경의 사건에만 제한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성령의 역사는 성경의 사건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대로 살리라 하고 성경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성경기록의 좁은 그릇 안에서만 머물고 있기에 이보다 더 큰 많은 능력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 보다 더욱 많습니다. 성경에도 이미 밝혔듯이(요21;25) 성령의 역사를 다 기록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되었으나 성도들의 부활은 아직 남았습니다. 현대의학의 고민이고 큰 문제인 암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없으니 이에 대한 성령의 역사는 성경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김기동목사 설교)
이에 대한 최삼경의 주장은 "성경에 대하여 말할 때는 성경이 강조되나 성령의 역사에 대해 말할 때는 성령을 강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경의 가치를 경시하고있다. 성경의 좁은 그릇 안에 머물면 더 큰 능력들을(성경을 넘어서는)경험하지 못한다는 말이 그렇고, 성령의 역사는 성경의 제한을 받지 않는 말이 그렇고, 성경이라 아침 햇살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것 같다는 말이 그렇고, 현재 성경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 알지 못한다는 말이 그렇다. 이 같은 말은 사실 성경과 성령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며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사역까지 오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41p)고 응수한다.
성경의 사건과 성령의 사역 차이로 인한 이단정죄
이처럼 최삼경은 성령의 역사가 성경에 기록된 것 이상으로 역사한다는 것을 이단으로 매도하고 있다. 특별계시인 성경의 계시를 넘어서 또 다른 성령의 역사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성령의 역사를 과거의 문자에만 가두려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문자를 초월한다.
김기동은 최삼경의 주관적 가치언어에 의해서 성경을 초월한 성령의 사역의 주장이 이단으로 매도되고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성령의 사역은 얼마든지 성경을 초월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요20:30)
수많은 성령의 역사들이 과거 성경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우리의 삶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이다. 교리적 신앙인에 의해서 경험적 신앙인이 매도되는 것이다. 성령의 체험없이는 신앙인은 교리적이거나 교조주의적 신앙인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성령의 역사없이 문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면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 안식일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문자로 예수를 죽인 것이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문자는 죽이는 것이요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했던 것이다.
문자적이고 교리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고, 신비한 일을 행하는 것이 모두 이단으로 보이는 것이다. 최삼경식 이단정죄는 대부분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잣대로 들이대는 것이고, 성령사역을 하거나 병을 고치는 사람들, 신비스런 일을 행하는사람들은 이단정죄의 타켓이다. 최삼경은 그러한 신비스런 일을 하거나 성령에 의해 역사하는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체로 직통계시, 환상, 황홀경, 신비주의자라는 단어를 갖고 이단으로 정죄한다.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들은 대부분 성령의 역사를 많이 경험하고, 신비스런 기적이나 체험을 많이 행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장로교식 문자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를 당한다. 심지어 조용기목사까지 이단으로 정죄된다. 이재록, 윤석전, 김기동목사도 이러한 선상에 있다. 최근 최삼경은 심지어 김홍도목사까지 양태론자라고 정죄를 했다. 길자연, 홍재철, 조경대, 이정환 등 모두 이단옹호자들이다. 최삼경은 성령의 사역을 교리와 문자안에 가두어 버렸다.
김기동목사는 40만명의 귀신을 내쫏고, 59명의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람
김기동목사는 약 40만명의 귀신을 쫏아내었고, 59명의 앉은뱅이를 일으켰고, 실제로 이미 죽은 자를 살려낸 적도 있었고 예배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죽어가는 것도 포기한 적이 있었던 사람이다. 목사로서 목회를 마칠때까지 한 명의 귀신을 쫏지 못한 사람도 태반이다. 한 명의 앉은뱅이도 고치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 이다. 그리고 예배를 이유로 죽어가는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는 목사도 없을 것이다. 최삼경목사는 평생 한 명의 앉은뱅이도 고치지 못했을 것이고, 한 명의 귀신도 쫏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김기동목사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고, 앉은뱅이를 고치면 그는 이단으로 정죄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고 앉은뱅이를 일으켰다면 그를 이단으로 정죄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 되는 것이다. 김기동목사가 귀신을 쫏아낼 때, 예수의 이름으로 쫏아내고, 성령의 권능을 얻어서 앉은뱅이를 일으켰다면 다시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귀중한 사역들을 바리새인들처럼 단지 문자나 교리몇개만 갖고서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기동을 이단으로 정죄하려면 김기동의 교리이외에 신앙고백, 사역등까지도 면밀히 검토해서 판단을 해야하고, 개혁신학의 전통에서 벗어난 신학이 있다면 교정시키면 되지, 선이단정죄 후매도는 바리새인들이나 하는 행위들이다. 교리가 이단이라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까지는 교리와 문자의 김기동을 보았지만 이제는 문자이면의 사역의 김기동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김기동의 호는 이용도 목사를 따라서 시무언이다. 이용도는 그런 고로 말이 없다는 뜻에서 是無言이지만 김기동은 보았지만 말이 없다는 뜻에서 視無言이다. 그들은 상대편의 비방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이용도도 당시는 이단으로 정죄되었지만 그가 죽은 이후에서나 이단에서 해지되었다.
이용도. 김기동은 상대방들이 이단으로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들에 대해서 어떤 변명이나 변론도 하지않았다. 즉 살아서 말을 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김기동은 비난을 참기위해서 입에 자갈을 물고 다녔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을 단지 몇줄의 잘못 표현된 문장만 갖고서 마귀론이 어떠니 귀신론이 어떠니 하면서 그의 신앙고백도 들어보지 못하고, 그를 이단으로 만드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그의 경험에 입각한 귀신론이 개혁신학에 비쳐 문제가 있다면 그를 불러서 자초지종을 들어보고 소명할 기회와 교정할 기회를 주고, 그래도 고치지 않는다면 이단으로 정죄해야하는데 일방적으로 우선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 자체가 이단적인 행위이다. 결국 이단적인 행위를 한 원세호와 최삼경은 이단으로 정죄되고 말았다.
이들은 김기동목사가 이단이 아니라고 한다면 예장통합교단이외에 다른 교단이 이단으로 정죄했기 때문에 이단이라는 주장을 한다. 즉 그들의 이단정죄는 팩트나 원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과 교단의 권위에 의한 정죄의 가능성이 많다. 이처럼 원칙과 사실을 잃어버린 이단정죄는 마녀사냥재판으로 된다.
김기동의 말은 지금도 성령의 역사는 성경안에 있는 사건에만 한정되지 않고 무한대로 역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경저자들도 당시에 예수님의 기적이 너무 많아서 성경에 다 기록할 수 없다고 했다. 이적은 성경이외의 것에도 많이 있다. 이것을 이단으로 한다면 최삼경의 신앙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의 사역을 과거의 성서사건에 가두려는 최삼경의 주관적 신앙에 의해서 무한한 성령의 역사를 중시하는 김기동목사가 이단으로 매도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과거 성경의 사건에만 머물고있지 않다. 성령은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신앙의 근거와 원칙을 제시하는 책이지 성령 그 자체는 아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에 만들어진 비블로스(The Book)이지, 성령 그 자체가 아니다. 신앙생활을 위한 도구일 따름이다. 성경은 마하트마간디도 즐겨 읽었던 책이다. 그에게 있어서 성경은 종교서적이었다.
성서와 성경구분에 대한 이단정죄
또한 김기동목사가 성서와 성경을 구분한다고 이단으로 매도한다.
김씨는 성경과 성서를 구분한다. 성경은 가감할 수 없는 것인데 이는 계시이기 때문이요, 성서는 가감할 수 있는데 이는 증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기동은 "아주 좀 냉정하게 율법을 성경이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의 생애가 누가복음까지 삼복음, 공관복음이나 삼복음을 가리켜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이외는 성경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욥기가 있다고 합시다, 또는 열왕기가 역대기나 다니엘서나 또는 많은 이런 책들이 있는데 욥기를 말하면 하나님의 어떤 가정이야기인데 이런 가정의 이야기는 이 이야기를 통해 율법을 증거합니다. 율법을 시인해 주는, 율법을 증거하는, 율법을 보호하는 글을 가리켜 성서라고 합니다"라며 성경과 성서를 구분한다. 즉 복음서는 성경이고, 율법을 지지하고 시인하는 글은 성서라고 한다.
그러나 김기동목사가 성경과 성서를 구분한다고해서 이단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계시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과 성서라는 단어에 대한 관점의 문제이다. 즉 관점에 대한 것을 계시의 문제로 몰고가 이단으로 정죄한다.
김기동목사는 최삼경의 주장에 대해 "성경도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는 이들이 느낀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보고 과거에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경대로 살리라 하고 성경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성경기록의 좁은 그릇 안에서만 머물고 있기에 이보다 더 큰 많은 능력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보다 더 많습니다" 라며 성령의 사역을 강조한다.
김기동목사는 성경의 가치를 부정하는 모습이 없고, 오히려 성경을 통한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최삼경목사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는 교리적인 신앙의 한계에서 오는 독단적 주관적 주장이다. 그래서 신비로운 체험을 강조하거나 하나님의 응답받은 것을 강조하는 사람들에 대해 직통적 계시, 환상, 신비적 체험 등의 언어로 이단으로 정죄한다.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한 교리적 신앙에 입각한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를 하는 것이다.
신론을 통한 양태론적 이단정죄이다.
최삼경은 베뢰아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이며 예수님의 영성을 모두 부인하고, 베뢰아의 성령은 허수아비라고 주장한다.
김기동목사는 "성부는 하나님의 본질이요, 성자는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성령은 하나님의 본영이십니다. 그러니까 본질로서는 아버지요, 본체는 곧 형상으로서는 아들이라 하고 영으로는 성령이라는 것입니다"고 설교한 것을 갖고 양태론이라고 했다.
김기동은 "하나님은 곧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예수안에 있을 때 아버지가 되십니다(요14:8). 아버지가 성도안에서 있으면 성령이 되십니다. 예수안에 있을 때는 성령은 아버지가 되십니다. 삼위의 각각 개체의 인격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장소에 따라 불리워지는 이름이 다릅니다. 이는 곳 세모꼴을 어디서 보나 하나인 것과 같습니다."고 표현한다.
김기동의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고백
김기동 목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명백히 말한다(김기동 저 ‘성령은 이렇게 역사하신다’ p. 15 및 김기동 저 ‘예수를 알자(上)’ p. 51)
우리는 하나님이 유일하신 한 분이시고 성부, 성자, 성령으로 삼위가 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위(位)는 서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동등한 권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김기동 목사는 저서에서 삼위의 일체성과 성부, 성자, 성령의 인격의 개체성을 명확히 말하고 있다.그의 삼위일체에서 두 가지 사실이 전제된다. 첫째는 일체가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둘째는 세 인격의 개별성이다.’ 첫째 일체성을 증거하려 할 때 사람의 인격으로 설명하게 된다. 한 인격 안에 지, 정, 의, 셋이 있다. 이 셋은 불가분리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지를 말할 때 정과 의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정을 생각할 때 지와 의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의지를 생각할 때 지와 정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셋이 합하여 한 인격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성부, 성자, 성령도 셋이나 한분이시라고 증거한다.
이처럼 김기동의 설교테이프 한개만 갖고서 김기동을 양태론자라고 규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의 다른 설교책이나 다른 저서도 참고하면 그가 양태론자가 아니라 삼위일체론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최삼경이 삼위일체는 이해하기 어려운 귀신같은 교리라고 말한 바 있다.
최삼경은 김기동목사에 대해 이처럼 완벽한 양태론적 삼위일체는 없다고 말을 한다. 양태론적 삼위일체라는 것은 A.D 3세기경 사벨리우스에 의해 주장된 것으로 하나님은 성부의 양태속에서 초월해 계신 창조자로, 성자의 양태속에서 역사 안에 계신 구속자로, 성령의 양태속에서 우리 안에 계신 생명을 주시는 영으로 나타나지만 결국 한분이라는 것이다. 교회사는 양태론적 신학을 이단으로 명명했다. 김기동목사가 양태론을 주장했다면 이단이다. 그러나 김기동목사측은 자신들은 양태론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적어도 이단으로정죄하려면 그의 전체사상을 갖고 판단해야지 한 두개의 테이프만 갖고서 판단하면 오판을 하게된다.
김기동목사측은 베뢰아 아카데미는 보통 교회에서 믿고 있는 바와는 별로 다른 것이 없고 삼위개념을 세 인격으로서 동일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삼위일체를 자칫 잘못 설명하다가는 삼신론으로 빠지기 쉽기 때문이고, 진실은 양태론도 삼신론도 아닌 성부, 성자, 성령의 개별성과 동일성이 동시에 성립하는 데 이해하기 어려운 시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신조인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한 분이시나 삼위로 계신다"는 고백을 동일시하고 있다. 즉 양태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표현을 한 것이고 표현상의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김기동의 신학적 부재와 표현상의 하자
이처럼 김기동목사는 신학의 부재로 인해 경험신앙에 의존하다 보니 양태론적 표현으로 인해 매도되는 것이다. 즉 신앙고백은 양태론이 아닌 삼위일체인데 신학적 고백은 양태론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그들은 "삼위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다. 삼위는 그 신성과 능력과 서열과 영광에 있어서 완전히 동등하시다"는 신앙고백을 한다. 즉 김기동목사의 설교에는 양태론적인 모습으로 비쳐질지 몰라도 하나님을 잘 설명하기 위한 해석상의 문제이지, 양태론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신성부정으로 인한 이단정죄
이외에 다시 최삼경목사는 김기동목사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다고 공격한다. "예수님이 몸을 입고있는 동안에는 신이 아니라는 말은 결국 신성을 부정한다는 말인데 정통신학을 한 자라면 이것만으로도 이단이 되고도 남음을 알 것이다"고 했다. 김기동목사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면 그는 이단이 될 수도 있다.
"예수의 생애는 신의 생애가 아니고 사람의 생애입니다. 물위를 걸은 것은 사람이신 예수가 걸은 것입니다. 사람이 걷는 것이니 보편적인 것입니다. 무덤이 열리기 전까지 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어느 한 부분이 신이라고 하는 것은 적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의 보편성을 부인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여기서 최목사는 예수님이 몸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신이 아니라는 말이므로 김기동목사는 결국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기동목사측은 이것은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는 내용이지 신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이라고 생각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들에게는 나타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도 예수님의 이적을 동일하게 행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생애는 신의 생애가 아니고 사람의 생애이며, 물위로 걸은 것은 사람이신 예수가 걸은 것인데 이는 예수가 하나님이셨기 때문이 아니라 저는 사람이시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걸은 것을 강조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예수가 귀신 쫏고, 무화과를 저주하시면 말라지고, 물을 포도주로 만들고 물위를 걷는 것은 그가 하나님이시므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는 사람이신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행하시는 능력이었으며 우리도 할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와 같은 일을 할 수있다고 하는 것이다.
김기동의 진의
김기동목사의 주장은 얼핏보기에는 완전한 사람과 완전한 신인 예수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고, 신성과 인성을 분리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그의 진의는 육신의 예수가 기적을 베풀기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고, 인간 역시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신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이러한 내용은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도 잘 나와있다는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이제 예수가 행하시던 능력은 이제 필요없고 이것은 예수가 하나님이시므로 행하신 것인데 사람도 이를 행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일부 주장을 염두해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는 의미에서 "예수의 생애가 신의 생애가 아니라"고 한 것인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기 위하여 한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 김기동목사측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령이 임하면 사람인 우리들도 과거 성경의 사건을 뛰어넘어 기적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성령의 사역에 의한 경험신앙을 강조하다보니 무리한 해석을 하게 된 것이다. 궁극적으로 지금도 성령이 임하면 귀신을 내쫏고 병을 고치고 신비로운 역사가 임한다는 성령의 사역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이 없는 최삼경은 김기동목사의 설교는 양태론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김기동목사가 표현상에서 보듯이 양태론자라면 다른 모든 설교도 양태론적인 모습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러나 김기동목사는 양태론자가 아니다. 다른 설교에서는 한 하나님의 세 양태를 주장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 하나님의 세위격을 강조한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와 경험을 강조하다보니 무리한 신학적 해석을 한 것은 사실이다
인성론을 통한 이단정죄
최삼경은 김기동목사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인성마저도 역사적 기독교와 다르고 예수의 인성속에 이단사상이 들어있다고 주장한다.
"요한 2서 1:7에 의해 예수님은 인간이심을 주장해야 한다고 하지만 신성을 부정하는 것만으로도 이단이다. 그런데 그가 주장하는 예수님의 인성마저도 역사적 기독교와 다르다는 점이다."
김기동목사는 요한복음 1;1, 14에 근거하여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는데 이 말씀은 요한복음 6:63에 의해 곧 영이라는 것이며, 결국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로서 영은 항구적인 존재이니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의 영과 같은 수준으로서 인격이 아닌 항구적 존재라고 말한다.
김기동은 말씀이 곧 영이고,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의 영과 같은 수준으로서 항구적인 존재라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김기동목사의 신학은 전통적인 기독교가 주장하는 신학과 다른 면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최삼경목사는 김기동목사가 예수의 육체는 영이라 했으므로 인성을 제한한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기동목사는 다른 면이 있긴하나, 예수님의 육체가 사람과 동일한 인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인자란 인성을 말합니다. 인성은 사람의 속성인데, 이러한 사람의 속성은 연약함입니다. 예수의 인성을 인정치 아니하고 깨닫지 아니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어떻게 고민을 하고 슬퍼할 수 있는가', 아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것이겠지'하며 잘못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가 하나님에게서 나오셨을 때 인성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는 인성을 가지셨기 때문에 '아버지여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기를 원합니다'하고 떨어지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간절히 간구하신 모습을 가지신 것입니다"
김기동목사가 예수님의 몸은 영 곧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이므로 우리와 예수님은 똑같은 인간의 육신이지만 하나는 죄가 있는 육신이요 다른 하나는 죄가 없는 육신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김기동목사는 표현상의 이유로 장로교나 개혁주의 목사들에게는 오해받을 만하다. 그러나 김기동목사는 경험신학을 강조하고 신학을 충분히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판단해야 한다. 이는 박윤식목사에게서도 잘 나타난다. 그 당시는 성경에 대한 표현상에 있어서 인위적인 왜곡이 아니라 경험을 강조하고 신학에 대한 학문이 약하기 때문에 개혁신학입장에서 볼 때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기동의 한 두 문장이거나 한구절만 떼어놓고 보아서는 안된다.
그는 약 250권의 책을 지었기 때문에 책의 전체내용을 갖고 판단해야 한다. 테이프 한두개만 갖고서 판단하면 김기동이외에 다른 목사들도 이단이 되고 말 것이다. 김기동목사의 다른 설교와 다른 책에서 일관되게 양태론을 주장하거나 예수의 신성이나 인성에 있어서 양성을 부정하는 모습이 나오면 그는 교회사에 나타난 이단으로 분류 될 수 있다. 다른 책을 보면 김기동은 양태론이 아니라 삼위일체적인 설교를 한다. 그리고 본인들도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한다고 주장하고, 예수를 신인양성으로 분리하지도 않고, 예수의 인성이나 신성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즉 김기동목사는 개혁교단적 표현에 토대를 두지않고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다 보니 신앙고백과는 별개로 표현상 이단의 빌미를 주고 있다. 최삼경이 예장통합교단안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지 않은 것은 그의 신앙고백때문이었다. 표현방법은 마리아월경잉태론이고 삼신론이었지만 최삼경을 불러 조사해서 그의 신앙고백을 들었기 때문에 이단정죄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이처럼 김기동을 정죄하기 위해서라면 그의 어설픈 신학적 표현만을 갖고서 이단으로 정죄할 것이 아니라 그의 신앙고백을 듣고 이단으로 판단해야 했다. 장재형목사도 내안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는 모태에서부터 그를 믿었는데 왜 나를 재림주라고 주장하느냐는 것이었다. 나의 신앙고백이 확실한데 왜 이단정죄를 하느냐는 것이다.
이처럼 김기동과 장재형은 내면적인 신앙고백과 달리 외형적인 것들에 의해서 이단으로 희생된 자들이다. 장재형과 김기동을 이단으로 정죄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불러놓고 그들의 신앙고백을 들어야 했다. 예장통합교단은 최삼경에게만 신앙고백을 할 기회를 주었다. 그의 신학은 삼신론이었으나 신앙고백은 일신론이었고, 그의 신학은 마리아월경잉태론이었으나 신앙고백은 성령잉태였다. 예장통합교단은 최삼경에게만 신앙고백할 기회를 주어서 면죄부를 주지말고 다른 타교단 목사들에게도 신앙고백을 할 기회를 주어야 했다.
신앙고백이 확실하면 이단으로 정죄해서는 안돼
더군다나 김기동에게 한번의 소명의 기회나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않고 일방적으로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김기동목사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한다면 이단이 아닌 것이다.
김기동은 명지대 국문과를 졸업한 후, 대한 신학교에서 장로교신학을 했고, 침례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신학을 충분히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로교골수분자도 아니고, 침례교에서도 주변인이었다. 그는 성령의 역사라는 경험에 국한해서 목회를 하는 사람이었지 체계적인 이론을 세울만한 체계적인 신학자가 아니었다.
귀신론도 전통신학보다 40만명이상 귀신을 내쫓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신학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통신학에서 벗어낫다고하여 이단으로 낙인 찍히고 말았다. 그러나 경험에 입각한 귀신론을 주장했다고 해서 그를 이단으로 낙인 찍을 근거는 미약한 것이다. 귀신론에 대한 해답은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귀신론이 신앙고백과 상관없고 전통신학에서 귀신론으로 이단정죄를 한적은 없고 귀신론은 가치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장신대 이형기 교수도 귀신론갖고서 이단정죄를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라도 김기동목사의 설교테이프 한 두개만 분석해서 그를이단으로 정죄할 것이 아니라 정말 그가 전체 설교나 신앙고백에서 양태론을 주장하고 있는지, 예수의 신인양성을 부인하는 것인지, 삼위일체를 거부하는 것인지 김기동목사의 신앙고백을 들어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그의 개혁적 신앙고백이 표현방법에 있어서 다른 면이 있었더라면 이는 그에게 교정을 요청하고, 그래도 교정을 하지 않을 경우 그 때가서 그를 이단으로 정죄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이단이라는 것은 신학적 이단도 있지만, 그가 학자가 아닌 이상, 그의 신앙고백이 이단적 주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김기동목사를 재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전체사상을 들쳐보지 않은 채, 한 두개의 테이프를 갖고서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행동이 아닐까?(계속) 이제 김기동목사의 한 두개에 나타난 설교테이프의 잘못 표현된 부분만 갖고서 이단으로 정죄할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과 신앙고백, 다양한 다른 저서들까지 참조하고, 당사자에게 소명기회까지 주어서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단정죄는 대부분 누명을 쓰거나 진실과 달리 권위와 정치에 의해 정죄되는 것들이 비일비재하고 사실상 영적 살인이기 때문에 신중을 갖고 해야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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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비본질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제 김기동목사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있다. 우리는 이제까지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었고, 일부 이단감별사들이외에 이단에 대한 관심도 약했고 정보도 약했음이 사실이다. 박윤식목사에 대한 건만 보아도 허위 사실에 의한 정치적 이단정죄임이 드러났다. 그 이외에 조용기, 윤석전, 박철수, 서달석, 예태해, 류광수, 전태식 등이 억울하게 이단으로 누명받아 일부는 해제되었지만 아직도 이단으로 낙인찍혀 있다. 이런 면에서 김기동목사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필요하다. 김기동목사는 원세호, 최삼경에 의해 이미 이단으로 낙인 찍혀 한국개신교단 대다수가 그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예장고신은 교단에서 발행한 유사종교연구에서 김기동씨의 사상을 비성경적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예장통합에서는 77회 총회에서 "김씨는 그의 신론 기독론 계시론 창조론 인간론 그리고 사단론 등 모든 곳에서 비성경적 요소를 광범위하게 드러내는 무서운 이단이라고 규정하면서 본교단산하의 교회 및 교역자는 김기동의 축사방법을 금할 것, 김기동의 집회참석을 금할 것이라고 규정했고, 예장합동은 76차 총회에서 김기동신학은 이단이라 평가했고,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단도 김기동이 주장한 계시론, 신론, 창조론, 마귀론은 모두 이단사상이다...이중아담론도 명백한 이단사상이다....그의 마귀론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황된 미혹이다"라고 했고, 성결교단 역시 김기동집단을 이단으로 규정한 바 본 교단 뿐만 아니라 온 한국교회가 성서 위에 굳게 서서 그릇된 가르침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고 했다.
이처럼 한국주류교단 대부분이 김기동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김기동을 이단으로 만든 장본인들은 원세호와 최삼경목사이다. 원세호는 교회와 신앙을 발행한 사람이고 최삼경은 교회와 신앙의 주간으로서 이들은 저널을 통하여 김기동을 이단으로 규정한 장본인들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김기동이 이단이었는지, 그들의 주장과 김기동측의 반박주장을 통해 알아보자.
먼저 김기동목사는 다소 기존의 장로교나 침례교가 주장하는 교리와 해석면에서 다른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의 마귀론은 경험에 입각한 것으로 축사에 대한 경험없이는 개혁신학의 이론만 갖고서 그의 마귀론을 정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개혁신학에서는 귀신론이나 영론이 체계화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신학은 사실의 영역이 아니라 가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김기동의 신앙고백과 달리 몇마디 문장이나 특정한 표현만 갖고서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은 많은 모순점을 갖고 있다. 가치는 무한대의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의 영역은 증거나 근거, 원칙없이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비트겐쉬타인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보이는 것만 말하라고 했다. 즉 비경험의 세계인 가치의 세계는 검증불가능하기 때문에 침묵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계에서는 보이지않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고 나름대로 가설을 만들어 설명을 시도하고있다.
신앙자체가 비경험의 세계이기 때문에 과감하게 가치의 문화를 사실의 문화로 바꾸려는 작업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단을 정죄할 때 가치의 사실화로 인해 무리수가 많이 따르고 결국 분명한 사실근거나 신앙고백, 진의보다는 이단감별사나 교단관계자들의 주관적 정치적 해석으로 인해 이단으로 매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법에서도 판사들이 완벽한 증거자료가 없을 때, 판사의 자유심증주의 원칙에 따라 자신들만이 주관적 판단이 기준이 되고있다. 실체적 진실과는 상관이 없다. 판사의 해석만이 실체적 진실이다. 그러므로 판사들에게도 오판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올만하다.
이렇게 사실을 전제로 하는 판사들도 오판이 심한데 가치를 위주로 하는 종교계의 판단은 오판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가치의 세계는 증거가 필요없기 때문에 주관적 해석만이 원칙이 되어 약자들이나 군소교단의 목사들은 이단으로 정죄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중세에서 그렇듯이 법리나 증거나 아니라 힘있는 권위에 의해서 판단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판, 마녀사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도 팩트와 증거에 의해서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니라 유대인과 로마인들의 가치에 입각한 주관적 해석에 의해 정죄된 것이다. 안식일에 일한다는 것이고, 바알세불이라는 귀신에 힘입어 병을 고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법에서 죄형법정주의가 탄생하게 된 것도 권위에 의해서 판단하지 말고 법리에 입각해서 판단하라는 것이었다. 즉 가치와 권위에 의해 정죄하지 말고, 법과 사실에 의해 판단하라는 원칙이다.
그러나 가치의 세계는 법과 증거가 필요없고 힘있는 권위자들의 주관적 해석만이 법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약자들은 이러한 권위앞에 한마디 소명할 기회도 한번 못찾고 정죄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한국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들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류광수목사는 17년만에 처음 소명기회를 얻어서 한기총에서 이단해지된 바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기동목사의 신학도 재평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에게도 늦었지만 소명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신학이 가치문화이다 보니 수학이나 법학처럼 검증이 가능하거나 분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 이단감별사 몇사람들만의 주장만 갖고서 이단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기동목사 재평가 필요
최삼경과 김기동목사측의 주장을 들어보자. 무엇이 이단인지, 이단이라면 분명한 것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 귀신론의 서로 다른 해석으로 이단으로 할 수 있는 지, 그렇다면 정통신학에서 귀신론에 대한 것이 확연하게 이론으로 자리잡힌 것이 있는 지, 장로교의 일부 사람들의 해석과 다르다고 해서 침례교단 사람을 장로교의 신학갖고서 이단으로 정죄할 수 있는지, 김기동목사건에 대해서는 다시 재평가 해야 한다.
김기동목사의 경험신학이 장로교나 개혁신학과 다른 면이 있기는 하나, 김기동목사의 신학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제까지 이단에 대한 정죄나 평가는 최삼경목사가 도맡아 왔다. 각교단이 김기동목사를 이단으로정죄했지만 대부분 원세호와 최삼경의 신학에 의해 평가되었다. 그러나 원세호나 최삼경도 이단으로 판단된 이상 이들이 평가한 김기동신학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필요하고 김기동목사측의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성이 있다.
김기동목사를 이단으로 만든 최삼경에 대한 김기동목사의 평가는 주관적이고, 자의적이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면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최삼경식비판을 보면 박윤식, 서달석에서 나타나듯이 허위사실에 근거한 것이 많이 있다. 김기동목사에 대한 비판에서도 허위사실에 근거한 것이 더러 있다.
최삼경은 "베뢰아 귀신론을 비판한다"에서 계시론, 신론, 창조론, 마귀론에 나타난 김기동의 이단사상을 평가하고있다.
먼저 계시론을 보자.
최삼경은 "베뢰아 귀신론을 비판한다" 40p 에서 이단이 성경을 보는 자세는 첫번째, 성경계시만 충분한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이 있고, 둘 째는 성경계시 외에 이와 대등한 자기 계시를 가진 자라고 말하면서 김기동을 성경계시이외에 자기 계시를 가진 자라는 언급을 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단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최삼경이 김기동을 이단으로 언급하는 것 중의 하나는 김기동이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를 성경의 사건에만 제한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성령의 역사는 성경의 사건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대로 살리라 하고 성경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성경기록의 좁은 그릇 안에서만 머물고 있기에 이보다 더 큰 많은 능력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 보다 더욱 많습니다. 성경에도 이미 밝혔듯이(요21;25) 성령의 역사를 다 기록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되었으나 성도들의 부활은 아직 남았습니다. 현대의학의 고민이고 큰 문제인 암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없으니 이에 대한 성령의 역사는 성경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김기동목사 설교)
이에 대한 최삼경의 주장은 "성경에 대하여 말할 때는 성경이 강조되나 성령의 역사에 대해 말할 때는 성령을 강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경의 가치를 경시하고있다. 성경의 좁은 그릇 안에 머물면 더 큰 능력들을(성경을 넘어서는)경험하지 못한다는 말이 그렇고, 성령의 역사는 성경의 제한을 받지 않는 말이 그렇고, 성경이라 아침 햇살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것 같다는 말이 그렇고, 현재 성경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 알지 못한다는 말이 그렇다. 이 같은 말은 사실 성경과 성령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며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사역까지 오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41p)고 응수한다.
성경의 사건과 성령의 사역 차이로 인한 이단정죄
이처럼 최삼경은 성령의 역사가 성경에 기록된 것 이상으로 역사한다는 것을 이단으로 매도하고 있다. 특별계시인 성경의 계시를 넘어서 또 다른 성령의 역사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성령의 역사를 과거의 문자에만 가두려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문자를 초월한다.
김기동은 최삼경의 주관적 가치언어에 의해서 성경을 초월한 성령의 사역의 주장이 이단으로 매도되고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성령의 사역은 얼마든지 성경을 초월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요20:30)
수많은 성령의 역사들이 과거 성경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우리의 삶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이다. 교리적 신앙인에 의해서 경험적 신앙인이 매도되는 것이다. 성령의 체험없이는 신앙인은 교리적이거나 교조주의적 신앙인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성령의 역사없이 문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면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 안식일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문자로 예수를 죽인 것이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문자는 죽이는 것이요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했던 것이다.
문자적이고 교리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고, 신비한 일을 행하는 것이 모두 이단으로 보이는 것이다. 최삼경식 이단정죄는 대부분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잣대로 들이대는 것이고, 성령사역을 하거나 병을 고치는 사람들, 신비스런 일을 행하는사람들은 이단정죄의 타켓이다. 최삼경은 그러한 신비스런 일을 하거나 성령에 의해 역사하는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체로 직통계시, 환상, 황홀경, 신비주의자라는 단어를 갖고 이단으로 정죄한다.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들은 대부분 성령의 역사를 많이 경험하고, 신비스런 기적이나 체험을 많이 행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장로교식 문자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를 당한다. 심지어 조용기목사까지 이단으로 정죄된다. 이재록, 윤석전, 김기동목사도 이러한 선상에 있다. 최근 최삼경은 심지어 김홍도목사까지 양태론자라고 정죄를 했다. 길자연, 홍재철, 조경대, 이정환 등 모두 이단옹호자들이다. 최삼경은 성령의 사역을 교리와 문자안에 가두어 버렸다.
김기동목사는 40만명의 귀신을 내쫏고, 59명의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람
김기동목사는 약 40만명의 귀신을 쫏아내었고, 59명의 앉은뱅이를 일으켰고, 실제로 이미 죽은 자를 살려낸 적도 있었고 예배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죽어가는 것도 포기한 적이 있었던 사람이다. 목사로서 목회를 마칠때까지 한 명의 귀신을 쫏지 못한 사람도 태반이다. 한 명의 앉은뱅이도 고치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 이다. 그리고 예배를 이유로 죽어가는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는 목사도 없을 것이다. 최삼경목사는 평생 한 명의 앉은뱅이도 고치지 못했을 것이고, 한 명의 귀신도 쫏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김기동목사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고, 앉은뱅이를 고치면 그는 이단으로 정죄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고 앉은뱅이를 일으켰다면 그를 이단으로 정죄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 되는 것이다. 김기동목사가 귀신을 쫏아낼 때, 예수의 이름으로 쫏아내고, 성령의 권능을 얻어서 앉은뱅이를 일으켰다면 다시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귀중한 사역들을 바리새인들처럼 단지 문자나 교리몇개만 갖고서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기동을 이단으로 정죄하려면 김기동의 교리이외에 신앙고백, 사역등까지도 면밀히 검토해서 판단을 해야하고, 개혁신학의 전통에서 벗어난 신학이 있다면 교정시키면 되지, 선이단정죄 후매도는 바리새인들이나 하는 행위들이다. 교리가 이단이라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까지는 교리와 문자의 김기동을 보았지만 이제는 문자이면의 사역의 김기동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김기동의 호는 이용도 목사를 따라서 시무언이다. 이용도는 그런 고로 말이 없다는 뜻에서 是無言이지만 김기동은 보았지만 말이 없다는 뜻에서 視無言이다. 그들은 상대편의 비방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이용도도 당시는 이단으로 정죄되었지만 그가 죽은 이후에서나 이단에서 해지되었다.
이용도. 김기동은 상대방들이 이단으로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들에 대해서 어떤 변명이나 변론도 하지않았다. 즉 살아서 말을 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김기동은 비난을 참기위해서 입에 자갈을 물고 다녔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을 단지 몇줄의 잘못 표현된 문장만 갖고서 마귀론이 어떠니 귀신론이 어떠니 하면서 그의 신앙고백도 들어보지 못하고, 그를 이단으로 만드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그의 경험에 입각한 귀신론이 개혁신학에 비쳐 문제가 있다면 그를 불러서 자초지종을 들어보고 소명할 기회와 교정할 기회를 주고, 그래도 고치지 않는다면 이단으로 정죄해야하는데 일방적으로 우선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 자체가 이단적인 행위이다. 결국 이단적인 행위를 한 원세호와 최삼경은 이단으로 정죄되고 말았다.
이들은 김기동목사가 이단이 아니라고 한다면 예장통합교단이외에 다른 교단이 이단으로 정죄했기 때문에 이단이라는 주장을 한다. 즉 그들의 이단정죄는 팩트나 원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과 교단의 권위에 의한 정죄의 가능성이 많다. 이처럼 원칙과 사실을 잃어버린 이단정죄는 마녀사냥재판으로 된다.
김기동의 말은 지금도 성령의 역사는 성경안에 있는 사건에만 한정되지 않고 무한대로 역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경저자들도 당시에 예수님의 기적이 너무 많아서 성경에 다 기록할 수 없다고 했다. 이적은 성경이외의 것에도 많이 있다. 이것을 이단으로 한다면 최삼경의 신앙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의 사역을 과거의 성서사건에 가두려는 최삼경의 주관적 신앙에 의해서 무한한 성령의 역사를 중시하는 김기동목사가 이단으로 매도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과거 성경의 사건에만 머물고있지 않다. 성령은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신앙의 근거와 원칙을 제시하는 책이지 성령 그 자체는 아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에 만들어진 비블로스(The Book)이지, 성령 그 자체가 아니다. 신앙생활을 위한 도구일 따름이다. 성경은 마하트마간디도 즐겨 읽었던 책이다. 그에게 있어서 성경은 종교서적이었다.
성서와 성경구분에 대한 이단정죄
또한 김기동목사가 성서와 성경을 구분한다고 이단으로 매도한다.
김씨는 성경과 성서를 구분한다. 성경은 가감할 수 없는 것인데 이는 계시이기 때문이요, 성서는 가감할 수 있는데 이는 증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기동은 "아주 좀 냉정하게 율법을 성경이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의 생애가 누가복음까지 삼복음, 공관복음이나 삼복음을 가리켜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이외는 성경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욥기가 있다고 합시다, 또는 열왕기가 역대기나 다니엘서나 또는 많은 이런 책들이 있는데 욥기를 말하면 하나님의 어떤 가정이야기인데 이런 가정의 이야기는 이 이야기를 통해 율법을 증거합니다. 율법을 시인해 주는, 율법을 증거하는, 율법을 보호하는 글을 가리켜 성서라고 합니다"라며 성경과 성서를 구분한다. 즉 복음서는 성경이고, 율법을 지지하고 시인하는 글은 성서라고 한다.
그러나 김기동목사가 성경과 성서를 구분한다고해서 이단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계시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과 성서라는 단어에 대한 관점의 문제이다. 즉 관점에 대한 것을 계시의 문제로 몰고가 이단으로 정죄한다.
김기동목사는 최삼경의 주장에 대해 "성경도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는 이들이 느낀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보고 과거에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경대로 살리라 하고 성경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성경기록의 좁은 그릇 안에서만 머물고 있기에 이보다 더 큰 많은 능력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보다 더 많습니다" 라며 성령의 사역을 강조한다.
김기동목사는 성경의 가치를 부정하는 모습이 없고, 오히려 성경을 통한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최삼경목사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는 교리적인 신앙의 한계에서 오는 독단적 주관적 주장이다. 그래서 신비로운 체험을 강조하거나 하나님의 응답받은 것을 강조하는 사람들에 대해 직통적 계시, 환상, 신비적 체험 등의 언어로 이단으로 정죄한다.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한 교리적 신앙에 입각한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를 하는 것이다.
신론을 통한 양태론적 이단정죄이다.
최삼경은 베뢰아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이며 예수님의 영성을 모두 부인하고, 베뢰아의 성령은 허수아비라고 주장한다.
김기동목사는 "성부는 하나님의 본질이요, 성자는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성령은 하나님의 본영이십니다. 그러니까 본질로서는 아버지요, 본체는 곧 형상으로서는 아들이라 하고 영으로는 성령이라는 것입니다"고 설교한 것을 갖고 양태론이라고 했다.
김기동은 "하나님은 곧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예수안에 있을 때 아버지가 되십니다(요14:8). 아버지가 성도안에서 있으면 성령이 되십니다. 예수안에 있을 때는 성령은 아버지가 되십니다. 삼위의 각각 개체의 인격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장소에 따라 불리워지는 이름이 다릅니다. 이는 곳 세모꼴을 어디서 보나 하나인 것과 같습니다."고 표현한다.
김기동의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고백
김기동 목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명백히 말한다(김기동 저 ‘성령은 이렇게 역사하신다’ p. 15 및 김기동 저 ‘예수를 알자(上)’ p. 51)
우리는 하나님이 유일하신 한 분이시고 성부, 성자, 성령으로 삼위가 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위(位)는 서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동등한 권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김기동 목사는 저서에서 삼위의 일체성과 성부, 성자, 성령의 인격의 개체성을 명확히 말하고 있다.그의 삼위일체에서 두 가지 사실이 전제된다. 첫째는 일체가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둘째는 세 인격의 개별성이다.’ 첫째 일체성을 증거하려 할 때 사람의 인격으로 설명하게 된다. 한 인격 안에 지, 정, 의, 셋이 있다. 이 셋은 불가분리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지를 말할 때 정과 의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정을 생각할 때 지와 의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의지를 생각할 때 지와 정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셋이 합하여 한 인격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성부, 성자, 성령도 셋이나 한분이시라고 증거한다.
이처럼 김기동의 설교테이프 한개만 갖고서 김기동을 양태론자라고 규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의 다른 설교책이나 다른 저서도 참고하면 그가 양태론자가 아니라 삼위일체론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최삼경이 삼위일체는 이해하기 어려운 귀신같은 교리라고 말한 바 있다.
최삼경은 김기동목사에 대해 이처럼 완벽한 양태론적 삼위일체는 없다고 말을 한다. 양태론적 삼위일체라는 것은 A.D 3세기경 사벨리우스에 의해 주장된 것으로 하나님은 성부의 양태속에서 초월해 계신 창조자로, 성자의 양태속에서 역사 안에 계신 구속자로, 성령의 양태속에서 우리 안에 계신 생명을 주시는 영으로 나타나지만 결국 한분이라는 것이다. 교회사는 양태론적 신학을 이단으로 명명했다. 김기동목사가 양태론을 주장했다면 이단이다. 그러나 김기동목사측은 자신들은 양태론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적어도 이단으로정죄하려면 그의 전체사상을 갖고 판단해야지 한 두개의 테이프만 갖고서 판단하면 오판을 하게된다.
김기동목사측은 베뢰아 아카데미는 보통 교회에서 믿고 있는 바와는 별로 다른 것이 없고 삼위개념을 세 인격으로서 동일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삼위일체를 자칫 잘못 설명하다가는 삼신론으로 빠지기 쉽기 때문이고, 진실은 양태론도 삼신론도 아닌 성부, 성자, 성령의 개별성과 동일성이 동시에 성립하는 데 이해하기 어려운 시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신조인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한 분이시나 삼위로 계신다"는 고백을 동일시하고 있다. 즉 양태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표현을 한 것이고 표현상의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김기동의 신학적 부재와 표현상의 하자
이처럼 김기동목사는 신학의 부재로 인해 경험신앙에 의존하다 보니 양태론적 표현으로 인해 매도되는 것이다. 즉 신앙고백은 양태론이 아닌 삼위일체인데 신학적 고백은 양태론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그들은 "삼위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다. 삼위는 그 신성과 능력과 서열과 영광에 있어서 완전히 동등하시다"는 신앙고백을 한다. 즉 김기동목사의 설교에는 양태론적인 모습으로 비쳐질지 몰라도 하나님을 잘 설명하기 위한 해석상의 문제이지, 양태론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신성부정으로 인한 이단정죄
이외에 다시 최삼경목사는 김기동목사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다고 공격한다. "예수님이 몸을 입고있는 동안에는 신이 아니라는 말은 결국 신성을 부정한다는 말인데 정통신학을 한 자라면 이것만으로도 이단이 되고도 남음을 알 것이다"고 했다. 김기동목사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면 그는 이단이 될 수도 있다.
"예수의 생애는 신의 생애가 아니고 사람의 생애입니다. 물위를 걸은 것은 사람이신 예수가 걸은 것입니다. 사람이 걷는 것이니 보편적인 것입니다. 무덤이 열리기 전까지 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어느 한 부분이 신이라고 하는 것은 적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의 보편성을 부인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여기서 최목사는 예수님이 몸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신이 아니라는 말이므로 김기동목사는 결국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기동목사측은 이것은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는 내용이지 신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이라고 생각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들에게는 나타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도 예수님의 이적을 동일하게 행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생애는 신의 생애가 아니고 사람의 생애이며, 물위로 걸은 것은 사람이신 예수가 걸은 것인데 이는 예수가 하나님이셨기 때문이 아니라 저는 사람이시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걸은 것을 강조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예수가 귀신 쫏고, 무화과를 저주하시면 말라지고, 물을 포도주로 만들고 물위를 걷는 것은 그가 하나님이시므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는 사람이신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행하시는 능력이었으며 우리도 할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와 같은 일을 할 수있다고 하는 것이다.
김기동의 진의
김기동목사의 주장은 얼핏보기에는 완전한 사람과 완전한 신인 예수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고, 신성과 인성을 분리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그의 진의는 육신의 예수가 기적을 베풀기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고, 인간 역시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신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이러한 내용은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도 잘 나와있다는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이제 예수가 행하시던 능력은 이제 필요없고 이것은 예수가 하나님이시므로 행하신 것인데 사람도 이를 행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일부 주장을 염두해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는 의미에서 "예수의 생애가 신의 생애가 아니라"고 한 것인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기 위하여 한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 김기동목사측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령이 임하면 사람인 우리들도 과거 성경의 사건을 뛰어넘어 기적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성령의 사역에 의한 경험신앙을 강조하다보니 무리한 해석을 하게 된 것이다. 궁극적으로 지금도 성령이 임하면 귀신을 내쫏고 병을 고치고 신비로운 역사가 임한다는 성령의 사역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이 없는 최삼경은 김기동목사의 설교는 양태론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김기동목사가 표현상에서 보듯이 양태론자라면 다른 모든 설교도 양태론적인 모습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러나 김기동목사는 양태론자가 아니다. 다른 설교에서는 한 하나님의 세 양태를 주장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 하나님의 세위격을 강조한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와 경험을 강조하다보니 무리한 신학적 해석을 한 것은 사실이다
인성론을 통한 이단정죄
최삼경은 김기동목사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인성마저도 역사적 기독교와 다르고 예수의 인성속에 이단사상이 들어있다고 주장한다.
"요한 2서 1:7에 의해 예수님은 인간이심을 주장해야 한다고 하지만 신성을 부정하는 것만으로도 이단이다. 그런데 그가 주장하는 예수님의 인성마저도 역사적 기독교와 다르다는 점이다."
김기동목사는 요한복음 1;1, 14에 근거하여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는데 이 말씀은 요한복음 6:63에 의해 곧 영이라는 것이며, 결국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로서 영은 항구적인 존재이니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의 영과 같은 수준으로서 인격이 아닌 항구적 존재라고 말한다.
김기동은 말씀이 곧 영이고,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의 영과 같은 수준으로서 항구적인 존재라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김기동목사의 신학은 전통적인 기독교가 주장하는 신학과 다른 면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최삼경목사는 김기동목사가 예수의 육체는 영이라 했으므로 인성을 제한한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기동목사는 다른 면이 있긴하나, 예수님의 육체가 사람과 동일한 인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인자란 인성을 말합니다. 인성은 사람의 속성인데, 이러한 사람의 속성은 연약함입니다. 예수의 인성을 인정치 아니하고 깨닫지 아니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어떻게 고민을 하고 슬퍼할 수 있는가', 아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것이겠지'하며 잘못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가 하나님에게서 나오셨을 때 인성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는 인성을 가지셨기 때문에 '아버지여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기를 원합니다'하고 떨어지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간절히 간구하신 모습을 가지신 것입니다"
김기동목사가 예수님의 몸은 영 곧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이므로 우리와 예수님은 똑같은 인간의 육신이지만 하나는 죄가 있는 육신이요 다른 하나는 죄가 없는 육신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김기동목사는 표현상의 이유로 장로교나 개혁주의 목사들에게는 오해받을 만하다. 그러나 김기동목사는 경험신학을 강조하고 신학을 충분히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판단해야 한다. 이는 박윤식목사에게서도 잘 나타난다. 그 당시는 성경에 대한 표현상에 있어서 인위적인 왜곡이 아니라 경험을 강조하고 신학에 대한 학문이 약하기 때문에 개혁신학입장에서 볼 때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기동의 한 두 문장이거나 한구절만 떼어놓고 보아서는 안된다.
그는 약 250권의 책을 지었기 때문에 책의 전체내용을 갖고 판단해야 한다. 테이프 한두개만 갖고서 판단하면 김기동이외에 다른 목사들도 이단이 되고 말 것이다. 김기동목사의 다른 설교와 다른 책에서 일관되게 양태론을 주장하거나 예수의 신성이나 인성에 있어서 양성을 부정하는 모습이 나오면 그는 교회사에 나타난 이단으로 분류 될 수 있다. 다른 책을 보면 김기동은 양태론이 아니라 삼위일체적인 설교를 한다. 그리고 본인들도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한다고 주장하고, 예수를 신인양성으로 분리하지도 않고, 예수의 인성이나 신성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즉 김기동목사는 개혁교단적 표현에 토대를 두지않고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다 보니 신앙고백과는 별개로 표현상 이단의 빌미를 주고 있다. 최삼경이 예장통합교단안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지 않은 것은 그의 신앙고백때문이었다. 표현방법은 마리아월경잉태론이고 삼신론이었지만 최삼경을 불러 조사해서 그의 신앙고백을 들었기 때문에 이단정죄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이처럼 김기동을 정죄하기 위해서라면 그의 어설픈 신학적 표현만을 갖고서 이단으로 정죄할 것이 아니라 그의 신앙고백을 듣고 이단으로 판단해야 했다. 장재형목사도 내안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는 모태에서부터 그를 믿었는데 왜 나를 재림주라고 주장하느냐는 것이었다. 나의 신앙고백이 확실한데 왜 이단정죄를 하느냐는 것이다.
이처럼 김기동과 장재형은 내면적인 신앙고백과 달리 외형적인 것들에 의해서 이단으로 희생된 자들이다. 장재형과 김기동을 이단으로 정죄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불러놓고 그들의 신앙고백을 들어야 했다. 예장통합교단은 최삼경에게만 신앙고백을 할 기회를 주었다. 그의 신학은 삼신론이었으나 신앙고백은 일신론이었고, 그의 신학은 마리아월경잉태론이었으나 신앙고백은 성령잉태였다. 예장통합교단은 최삼경에게만 신앙고백할 기회를 주어서 면죄부를 주지말고 다른 타교단 목사들에게도 신앙고백을 할 기회를 주어야 했다.
신앙고백이 확실하면 이단으로 정죄해서는 안돼
더군다나 김기동에게 한번의 소명의 기회나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않고 일방적으로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김기동목사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한다면 이단이 아닌 것이다.
김기동은 명지대 국문과를 졸업한 후, 대한 신학교에서 장로교신학을 했고, 침례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신학을 충분히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로교골수분자도 아니고, 침례교에서도 주변인이었다. 그는 성령의 역사라는 경험에 국한해서 목회를 하는 사람이었지 체계적인 이론을 세울만한 체계적인 신학자가 아니었다.
귀신론도 전통신학보다 40만명이상 귀신을 내쫓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신학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통신학에서 벗어낫다고하여 이단으로 낙인 찍히고 말았다. 그러나 경험에 입각한 귀신론을 주장했다고 해서 그를 이단으로 낙인 찍을 근거는 미약한 것이다. 귀신론에 대한 해답은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귀신론이 신앙고백과 상관없고 전통신학에서 귀신론으로 이단정죄를 한적은 없고 귀신론은 가치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장신대 이형기 교수도 귀신론갖고서 이단정죄를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라도 김기동목사의 설교테이프 한 두개만 분석해서 그를이단으로 정죄할 것이 아니라 정말 그가 전체 설교나 신앙고백에서 양태론을 주장하고 있는지, 예수의 신인양성을 부인하는 것인지, 삼위일체를 거부하는 것인지 김기동목사의 신앙고백을 들어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그의 개혁적 신앙고백이 표현방법에 있어서 다른 면이 있었더라면 이는 그에게 교정을 요청하고, 그래도 교정을 하지 않을 경우 그 때가서 그를 이단으로 정죄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이단이라는 것은 신학적 이단도 있지만, 그가 학자가 아닌 이상, 그의 신앙고백이 이단적 주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김기동목사를 재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전체사상을 들쳐보지 않은 채, 한 두개의 테이프를 갖고서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행동이 아닐까?(계속) 이제 김기동목사의 한 두개에 나타난 설교테이프의 잘못 표현된 부분만 갖고서 이단으로 정죄할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과 신앙고백, 다양한 다른 저서들까지 참조하고, 당사자에게 소명기회까지 주어서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단정죄는 대부분 누명을 쓰거나 진실과 달리 권위와 정치에 의해 정죄되는 것들이 비일비재하고 사실상 영적 살인이기 때문에 신중을 갖고 해야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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