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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과 민주적 승계

  • 로앤처치
  • 입력 2013.05.06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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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기명비밀투표를 통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쳤다면 세습이 아니라 민주적 승계
세습이란 재산, 신분, 직업 등을 한집안에서 자손 대대로 물려받는 것으로 정권 세습, 경영권세습등이 있다. 최근 기독교계에서는 종교세습의 바람이 불고 있고,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사실상 종교세습은 중세에서 사제들이 결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 했다. 불교에서도 승들이 결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 하다. 서구 개신교에서는 거의 세습이 없다. 이는 서구교단은 대부분 교단이 재산소유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교단의 허락없이는 세습이 불가능하다.
 
한국의 개신교는 단지 세습의 문제만은 아니다. 돈, 여자, 명예, 가짜학위, 패거리정치, 표절, 세습, 마녀사냥재판, 이단조작 등 개신교정신과 상관없는 것들이 난무하다. 적어도 서구는 이렇게 썩지는 않았다. 한국은 노회나 총회가 개교회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개교회가 노회나 교단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교단은 상회금만 챙기면서 패거리 정치를 하고 있는데 익숙해 있다.
 
민주적인 절차를 거쳤다면 세습이 아니다. 
 
서구인들은 근대화문명과 시민혁명을 겪어 민주주의가 일찍 정착함으로서 왕조시대의 산물인 종교적 세습은 더군다나 생각할 수 조차 없다. 특히 루터나 칼빈은 양심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을 받은 독일의 개혁교단이나 네덜란드, 프랑스의 개혁교단, 북부유럽의 루터교단에서는 세습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물론 미국장로교도 마찬가지이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왕위의 세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도 왕권국가에서는 세습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지만 현대의 종교적 세습은 왕권국가에서의 세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왕권국가의 세습은 논의의 여지가 없을 만큼, 신이 내린 혈연적 세습이지만, 근대이후의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 세습은 세습이라고 말할 수 없다. 민주적인 승계라고 표현해야 한다. 미국부시대통령이 바로 승계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인들은 다시 부시의 아들을 선택했다. 물론 아들 부시는 아버지의 기득권을 그대로 껴안았다. 그래도 미국인들은 세습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당당하게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무기명비밀투표로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아들이라 할지라도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당선이 되면 세습이라고 말을 해서는 안된다. 금란교회, 광림교회, 임마누엘교회 신도들은 아들을 모두 선택했다. 그렇다면 아들을 선택한 교인들의 권리는 무엇인가? 아들의 권리는 무엇인가?
 
한국교회, 세습에 대해서 재평가해야
 
이제 한국교회가 세습에 대해서 다시 평가할 때가 온 것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세습은 세습이라고 부정하게 표현해서는 안된다. 일본의 천황이나 영국의 왕정을 세습이라고 부정하게 표현하지 않듯이 말이다. 교회도 마찬가지 이다. 민주적인 선거절차를 거친 아들 후임자 양도에 대해서는 세습이라는 말을 표현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선거권. 피선거권이라는 단어는 민주주의의 산물이다. 민주주의 선거제도는 '직접선거''평등선거'보통선거''비밀선거'등의 원칙을 따른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선거권을 갖는다는 '보통선거권'의 역사가 실현된 것은 서양에서도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후에도 세금을 내는 사람에게만 선거권을 주었고, 여성에게는 선거권은 없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얻은 것은 미국 1920년, 영국 1928년, 프랑스 1946년 등이다. 또한 미국에서 흑인의 참정권이 완전히 보장된것은 1966년이다. 우리나라는 1948년 헌법을 제정할 때부터 보통선거와 평등선거를 실시했다.
 
맹종파라 할지라도 그들의 선거권은 존중되어야

우리나라교회에서 교인에게 주어지는 선거권은 여전히 민주화가 덜 된 상태에서의 어눌한 선거권이지만, 즉 맹종자들에게 주어지는 선거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거권은 고귀한 것이다. 그들이 90% 이상 후임자로 아들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선거권은 침해를 받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들의 의식이 문제이지 그들의 선거행위가 문제될 수는 없다. 할머니나 초등학교도도 안나온 사람들에게 민주시민의 선거의식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아프리카 추장을 선출하는데 미국의 민주주의 방식을 요구할 수 없듯이 말이다. 초대교회에서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선출하는 선거방식에서 오늘 우리의 목사나 장로를 선출하는 방식을 요구할 수 없듯이 말이다. 후임자를 선출하는 방식이 아프리카 토인의 수준일지라도, 그 방식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감리교 삼도목사와 다른 세습을 한 장로교 목사들에 대해서 그들이 아무리 아들을 후임자로 원할지라도 교인들이 원하지 않으면 아들을 후임자로 임명할 수 없는 것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교인들이 세습을 시킨 것이지 목사들이 세습을 시킨 것은 아니다. 아들을 선택하는 교인들의 권리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추장을 선택하는 아프리카 토인들의 권리가 존중되듯이 말이다.
 
추장의 아들을 후임자로 선택하든가 목사의 아들을 후임자로 선택하는 것은 토인들과 그 교회 교인들의 의식수준이다. 그러나 민주적인 방식을 거치거나 흉내라도 낸다면 이는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 세습은 내용상으로는 세습이지만 형식상으로는 민주적인 승계이다. 김대중 대통령 아들 김홍일을 국회원의원으로 선출하는 것이나 남경필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하는 것은 세습이 아니라 지역구민의 배타적 권리에 의한 것으로 민주적인 승계이다.  
 
김홍일. 남경필의원도 세습인가?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은 부친인 남평우 전 의원이 작고하면서 치러진 1998년 수원 팔달 보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뒤 내리 5선을 했다. 그러면 남경필 의원도 세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아무도 김홍일의원이거나 남경필의원에 대해서 세습이라고 말을 하지 않는다. 민주적인 절차를 거쳤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버지가 아들을 국회의원으로 만들려고해도 지역구민의 도움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세습에 대해서 지나칠정도로 배타적 이다. 이제는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 세습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말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아들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지역구민의 의식과, 교인들의 의식은 참정권의 하나로서 민주사회에서는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개 중에 아들이 후임자로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 그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된다. 일부 세습방지법을 제출하거나 하는것은 어리석은 행위이다. 겉으로는 개혁적인 것 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면에는 교인들의 선거권과 후임자의 피선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서구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한국의 민주화의식은 여전히 낮은 상태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나름대로 민주화의 절차를 한단계씩 밟아가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는 아직도 멀었다 
 
민주화란 4. 19의거, 6, 29 등의 사건이 지났다고 해서 바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는 성차별, 인권차별, 지역차별, 학벌차별, 소득차별 등의 전근대적인 요소가 묻어있다. 서구는 이러한 차별을 서서히 없애 버렸다. 프랑스 혁명이후 약 200 여년 이상이 흘러서 겨우 민주화가 찾아온 것이다. 한국은 독재정권에 대해서 싸운지 기껏해야 약 50여년 정도 되었다. 우리는 계속 민주화를 향하여 가고 있는 상태이다.
 
교회의 역사도 이제 겨우 100여년 이다. 서구는 약 500여년의 개신교 역사를 갖고 있다. 아직 한국교인들의 의식은 유아기 상태이다. 대부분의 신도들은 장로교의 스타일이나 신학, 정치를 잘 모른다. 감리교도도 마찬가지이다. 한국교회부흥의 토대는 기복신앙과 부흥사 중심이었다. 이러한 나라에서 서구의 세련된 고도의 장로교정치를 요구할 수는 없다. 장로교는 민주화가 고도로 발전된 나라에서만 가능한 간접주의 선거방식을 채택하는 교파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한국적 장로교가 있다.
 
우리식의 장로교 인정해야
 
서구의 장로교스타일을 한국에 요구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전근대주의 정신이 묻어있는 입헌군주적 장로교회이다. 입헌군주제도는 왕권주의에서 의회민주주의로 가는 도상에 있는 제도이다. 한국적 장로교는 완전 대의정치라 볼 수 없고 입헌군주적 민주주의라 볼 수있다. 여전히 왕의 권한이 미치는 것이고, 겨우 의회를 통해서 견제를 받을 뿐이다. 
 
교회 역시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가진 담임목사의 권력이 겨우 당회원들을 통해서 제한을 받는 것이다. 신도들이 아들을 후임자로 선택하는 것 역시 입헌군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의정치나 직접민주주의가 살아있다면 왕의 권한은 사라지게될 것이다. 한국의 교회는 이제 겨우 왕의 권한을 제한하고 있는 상태이다. 우리에게는 교인들의 의식수준이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에서 아들을 세습시킨 목회자들은 김홍도, 김선도, 김국도, 곽선희(변칙세습), 길자연, 홍재철, 류철랑, 이용규, 이성헌 목사 등이다. 그러나 세습이라는 오명을 썼지만, 아이러니칼한 사실은 이들의 교회는 분규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세습때문에 떠난 신도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대체로 아들들이 목회를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들교회가 안정된 이유 

그렇다면 이들의 교회가 왜 안정되어 있는가? 이는 세습때문이 아니라 신도들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아들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목사가 아무리 아들을 세습하려고 해도 신도들이 원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신도들의 수준이라고해도 어쩔 수 없다. 종교개혁과 근대혁명을 거치지 않은 한국교인들의 수준이다. 아버지가 좋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모습을 아들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신도들의 고유권한 이다.
 
문제는 감리교회도 그렇지만 연회나 장로교의 노회가 대형교회의 하는 일에 대해서 강력하게 제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노회와 연회의 재정이 고갈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장로교회는 교단이 재산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개교회에서 아들을 후임목사로 올린다고 해서 제재할 길이 없다. 
 
세습과 민주적인 승계 구분해야
 
그러면 아들의 후임이 세습인가? 민주적인 승계인가 따져봐야 한다. 독재정권시대에 아무리 민주화를 외쳐도 막걸리 한잔 받아 먹거나 고무신 한켤레만 받으면 모두 독재정권에 투표했다. 국민들 의식이 깨이지 않았기 때문에 민주적인 무기명비밀투표는 단지 형식적일 뿐, 민주화의 의사표현일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다. 아들을 위한 공동의회를 한다고 하더라도 형식적일 뿐, 교인들의 의식이 깨이지 않는 이상, 아들을 위한 투표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교인들의 수준이다.  
 
부천동광교회는 아들을 위한 위임목사투표시 2/3가 안되자, 다시 투표하여 제직회 과반수로 임시목사로 청빙했다. 아버지가 한 것이 아니라 당회원들이 한 것이다. 이럴 경우 이것을 세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교단의 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제직회과반수이상이면 임시목사로 청빙할 수 있다. 부천동광교회 교인들이 교단헌법에 따라 아들을 청빙했으면 세습이라 볼 수 없고 민주적인 승계라고 보아야 한다.
 
조금 어설프지만 역사의식이 없는 대부분의 여성 신도들이 교인총회를 통하여 아들을 선택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최대한의 민주적인 절차를 통한 것이다. 그것이 그 교인들의 수준이다. 직영신학대학원을 졸업하지 않고, 안수절차가 하자가 있는 목사를 선택하는 것은 신일교인들의 수준이다. 이들은 어리석지만 나름대로 최대한의 민주적인 절차를 통한 것이다. 당회와 노회가 실수한 것이다.
 
무식하면 무식한대로, 무능하면 무능한대로 교인들의 최대한의 민주적인 의식을 존중해야 한다. 근대시민혁명을 거치지 않은 교인들의 최대한의 민주적인 의사표시인 무기명비밀투표를 존중해야 한다. 봉천교회는 교인들이 37살 목사를 후임목사로 선정했다. 이는 봉천교인들의 의식이다. 그들은 무기명비밀투표를 통해서 선정했기 때문에 그들의 민주적인 절차를 중시해야한다. 
 
아들을 선택하는 교인들의 선거권 존중해야
 
아들을 선택하는 교인들의 의식을 존중해야 한다. 무능하면 무능한대로, 반개혁적이면 반개혁적인대로 그들의 선거권을 존중해야 하고, 아들은 아들대로 그의 피선거권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 이다. 아프리카의 민주주의와 한국의 민주주의, 서구의 민주주의를 비교할 수 없다.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대로 서구는 서구대로, 아시아는 아시아대로 최대한의 민주적인 절차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의 추장선출을 우리의 민주적인 방식대로 요구할 수는 없다.   
                   
각교회에서 나름대로 최대한의 민주적인 절차를 통한다면 신도들의 선거권과 아들의 피선거권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들승계가 자동적 혈연적 승계가 아니라 무기명비밀투표를 통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쳤다면 세습이 아니라 민주적 승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세습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재평가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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