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론의 정신을 바로 알아야 종교개혁이 가능
중세를 무너뜨린 이론적 기반은 유명론이었다. 즉 루터의 종교개혁의 사상적 기반은 유명론이었다. 플라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서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 중세를 지배한 철학적 관념론은 실재론이었다. 플라톤은 이데아(보편자)라는 실재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가 보편자가 아니라 개별자속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중세는 이러한 이데아를 신으로 대체시켰다. 그래서 신은 실재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중세의 신은 민중들이 아니라 사제들속에게만 실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실재의 신은 유명론으로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만다. 사제들은 신은 실재한다고 믿었지만 사제들이 의존하는 신은 유명론자들이 볼 때, 단지 이름뿐이었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유명론자들은 교황청이 자의적으로 교리를 해석하여 끝없이 몰락해 가는 신을 계속 지켜볼 수가 없었다. 교황청은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 따라 신을 해명했고 이것은 위계적 보편개념의 세계였다. 신앙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포착되는 신은 교권계급의 특전과 존재의의를 보장하면서 끝없이 몰락해 갔던 것이다.
유명론자들이 볼 때 사제들의 신은 타락한 신이었다. 에라스무스가 보기에는 우신이었다. 그래서 어리석은 신의 예찬(우신예찬)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중세의 신은 어리석었고 타락한 신이었다. 인간이 만든 가공물의 신이있다. 그들은 이러한 신이 실재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명론자들은 그러한 신은 이름뿐, 실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신이 실재한다고 믿는 실재론자가 있는가 하면 신의 실재는 존재하지 않고 이름만 존재한다고 믿는 유명론자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중세의 보편자 논쟁이다
조중걸은 그의 책 '플라톤에서 비트겐쉬타인까지'에서 로스켈리누스는 보편개념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나타내주는 바가 없는 하나의 낱말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윌리엄 오캄은 보편자(신)란 사유 속에서 구체적 사물 대신에 나타나는 개념, 용어, 기호를 주장한다고 말하고 있다. 유명론자들은 보편자(신)들은 학문과 사유의 도구일 뿐으로 개개사물이 지닌 생생함과 확실성을 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은 이름, 개념뿐이었다.
조중걸은 중세에서 인간은 이중의 구속상태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하나는 봉건적 구속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 구속이었다. 인간을 구속하고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는 데 있어서는 같은 맥락에 있었다. 봉건적 성직자들은 엄밀한 위계질서를 이루고 있었고, 봉건적 관계들을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 이와 같은 세계상 아래서는 개별자로서의 인간,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자율성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인간은 자기 상위에 있는 보편적 권력에 예속된 존재로서만 기능한다. 이에 대해 유명론은 개별자를 강조함으로써 그들의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활동을 강조한다. 유명론에 의해 중세인들은 처음으로 개별자로서 자신을 자각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교권정치에 대하여 신도들 개개인의 개체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분규교회, 보편자대신 개별자를 인식
교회분규를 당하는 교회들은 대체로 교권주의의 예속에서 벗어나 신도들 스스로가 교회의 주인임을 깨닫게 된다. 신과 교회를 연결시킨 지배계급인 교권은 유명론의 개별자이론에 의해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만다. 카톨릭은 보편이라는 뜻이다. 종교개혁이 가능한 것은 보편자보다는 개별자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교권계급은 실재하지 않는 신을 마치 자신들이 소유하고 부리는 것처럼 오해했고 그것을 보편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보편은 이데아였고 신으로 표명되었다. 교권주의자들은 그러한 신이 실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러한 신은 없었다. 양심이 왜곡되고, 재판질서가 개판질서로 되고, 헌법위가 범법위가 되고, 규칙부가 변칙부가 되고, 노회가 노조가 되고 총회가 정치회로 되는 그러한 곳에 보편자 신은 실재하지 않았고 단지 개념이나 이름만 있었다. 신은 교인들이라는 개체에 존재하고 있었다.
교권주의자들은 신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마치 신이 자신들과 함께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신이 움직이는 것처럼 신을 그들의 노예로 전락시켰다. 유명론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신이라는 실재는 없었고 단지 명목에 불과했다. 예수님이라는 실재는 없고 예수님이라는 이름만 남은 것이다. 교권주의자들은 마치 없는 신인데 이름과 개념만 갖고 실재하는 것처럼 이용한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정죄하고, 판단하고, 인권유린하고, 신도개개인의 권리를 박탈시켰다. 그러나 예수님는 거기에 없었다.
교인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곳에 신은 실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교인 개개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그곳에 신은 없었다. 정치적으로 박탈하고, 물리력으로 유린하고 이단교리로 조작하는 그곳에 신은 실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권주의자들은 신은 실재한다고 판단했고 철학적으로 실재론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교권주의자들과 이단조작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없는 것을 실재하도록 만들었다. 판사의 판결이 있으면 실재하는 것이고, 교단의 판단이 있으면 실재하는 것이고 이단감별사들의 판단이 있으면 실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신보다 판사의 판결과 교단의 판단, 이단 감별사들의 판단을 의존해서 없는 것을 실재하도록 조작했다. 오판, 허위와 거짓, 조작에 기초해서 실재를 창조하려는 몸부림이 있었다. 판사는 단지 객관적 실재에 대해서 주관적으로 판단할 뿐이었다. 오판과 주관적 확신이나 권위가 강할 때 사건의 객체나 본질은 실재하지 않았다. 실재했다고 믿은 것이다. 피해자들은 그러한 판단에 속수무책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이 없는 신을 실재한 것처럼 믿을 수밖에 없었고 없는 이단을 실재하는 것처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교권주의자들에게 예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자들은 교권주의자들과 조작주의자들에 의해 속고 사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법의 원칙인 '의심스럽거든 피고의 편에 서라'고 한 것은 끊임없이 실체를 추구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교단의 재판국원들이나 헌법위원들도 그들은 엉터리 재판과 해석을 통해서 없는 실체를 만들어내는데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재판과 해석, 판단을 통해서 권위로 없는 실재를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여 가공된 이론을 구성하여 실재로 만드는 것이다. 보고하고 채택하면 이단으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중세의 타락한 사제들이 사용했던 방식이다. 없는 개념을 만들어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 실재의 주인은 타락한 사제들이고 이것으로 인해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을 보장받는다.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재는 단지 명목이나 개념, 조작에 불과했기 때문에 경험과 감각, 개별자, 증거를 중시하는 유명론의 입장에서 볼 때는 모두 허위이고 거짓이고, 조작에 기초한 실재론으로서 단지 이름에 불과한 것(유명)이었다. 유명론은 경험론의 효시였다. 유명론자들은 경험과 감각, 개별자만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관념에만 존재하는 실재는 감각적 경험과 증거에 의해서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많은 이단도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단이라는 이름에 불과했다. 그래서 개념과 관념속에서만 존재하는 보편자인 중세의 신은 유명론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유명론자들이 보았을 때, 헌금을 내면 죄를 면죄해 주는 면죄부의 신은 단지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의 신이었다. 하나님의 뜻보다 노회와 총회의 뜻을 잘 따르면 교회의 일이 잘 풀리고, 십일조의 용도를 사적인으로 혼동하고, 목사에게 무조건 맹종하면 복을 받는 다는 것도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의 신이었다.
이단조작자들은 개념에만 존재하는 이단들을 실재로 존재한다고 억지로 밀어부쳤다. 이단조작자들이나 교권주의자들은 신이 실재한다고 믿어서 신의 이름으로 판단하고 정죄했지만 이단은 거기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단이라는 개념만 존재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단이라는 실재가 있다고 믿는 이단조작자들과 이단은 개념에 불과하다고 믿는 이단으로 억울하게 누명쓴 당사자들의 갈등이 있었다. 여기서 이단조작자들은 실재론자들이고 이단피해자들은 유명론자들이다.
실재를 만들어내려는 교권주의자들이나 이단조작자들의 관념과 개념속에만 신이나 이단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한 오판과 조작, 허위속에 신과 이단은 실재하지 않는다. 신은 진실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교권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신은 개념에 불과했고, 이단감별사들이 만들어 낸 이단이라는 실재도 단지 개념에 불과했다.
루터는 유명론자의 사상적 기반을 이어 받았다
유명론자들은 보편자대신 개별자를 주장했다. 개별자는 구체적인 감각대상 이고 개별자에게만 실재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이론에 힘입어 개별자를 중시한 것이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이었다. 루터는 개별자를 중시하는 면에 있어서 강력하게 유명론의 영향을 받았다. 유명론이 중세교회를 파괴시킨 것은 감각과 경험, 개별자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보편자대신 개별자들만이 존재한다면 신과 개별자들을 매개해주는 교회의 조직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오캄은 존재는 쓸모없이 존재해서는 안된다며 보편개념으로서의 중세교회를 부정했다. 개별자로서의 각각의 신자들이 보편개념으로서의 교회보다 신에 더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개념에 대한 유명론적 입장은 교권계급에 대한 반대를 함축하는 것이었다. 유명론은 개별자에게 임하는 실재를 중시했기 때문에 교권계급은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오늘날에 보편자를 중시하는 교단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개별자들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대부분의 이단은 명목상의 이단
장재형이나 박윤식, 류광수, 김기동, 윤석전 등은 실재론적 이단인지 명목상의 이단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단이라는 실체적 진실없이 단지 이름만 이단이라면, 개념상 이단이다. 실재는 없었다. 유명론은 경험과 감각, 증거없이는 모두 거짓이라고 말을 한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라 허위라는 것이고, 단지 개념과 관념속에만 남아있는 것으로 엉터리 실재론이라는 것이다.
유명론자들이 중세를 무너뜨린 것은 당신들이 믿는 그신은 단지 개념과 관념에 불과한 보편자로서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의 개념이나 이름은 있는데 신은 실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개별자에게만 실재가 있다고 믿었다. 교권주의자들은 실재하지 않는 신을 실재하는 것처럼, 마치 자기들과 함께 하는 것처럼 신을 이용했다. 종교개혁의 시발점은 보편자대신 개별자를 인식하면서 부터였다. 실재론 대신 경험론을, 개념대신 감각을, 보편자대신 개별자를 인식한 것이다. 개별자를 강조하다보니 특권계층인 사제계급들은 설 여지가 없었다. 더이상 신의 이름을 팔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도 유명론의 정신을 바로 알아야 종교개혁이 가능하다. 없는 신을 실재한다고 판단하고 신의 이름으로 재판을 행하는 자들, 개념속에만 있는 신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판단하고 신의 이름으로 교권을 휘두르는 자들, 사제라는 직분으로 없는 신이 함께 한다고 판단하여 신의 이름으로 신도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자들, 실재하지 않는 신의 이름으로 이단으로 조작하는 자들에 대해서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이들을 척결해야 한다.
모두 없는 신을 실재하는 것처럼 가공하여 신의 이름으로 온갖 조작과 허위, 권위, 정죄, 해석, 재판을 일구어냈다. 신은 이들이 하는 부정과 불법, 조작, 탈법의 현장에 실재하지 않았고 그 이너머 억울한 사람, 피해를 당하는 사람에게 실재했다. 신은 허구의 실재나 이름만을 부르는 교권주의자들에게 함께하지 않고 누명을 쓰고, 이유없이 피해를 당하고,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고통을 당하는 요셉, 바울에게 함께한 것처럼 말이다.
신은 철두철미 교권자의자들이 아니라 신도들 개별자에게 실재했다. 오늘 우리에게는 교권주의자들이 이용하는 중세의 신에 대해 '당신들 신은 실재하지 않고 단지 이름 뿐'이라고 외칠 진정한 유명론자가 필요하다. 이단조작자들에게도 이단은 실재하지 않고 당신들이 만들어 낸 허위와 조작의 개념상 이단의 개념만 존재하고 있다고 말이다.
불행하게도 중세의 신은 민중들이 아니라 사제들속에게만 실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실재의 신은 유명론으로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만다. 사제들은 신은 실재한다고 믿었지만 사제들이 의존하는 신은 유명론자들이 볼 때, 단지 이름뿐이었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유명론자들은 교황청이 자의적으로 교리를 해석하여 끝없이 몰락해 가는 신을 계속 지켜볼 수가 없었다. 교황청은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 따라 신을 해명했고 이것은 위계적 보편개념의 세계였다. 신앙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포착되는 신은 교권계급의 특전과 존재의의를 보장하면서 끝없이 몰락해 갔던 것이다.
유명론자들이 볼 때 사제들의 신은 타락한 신이었다. 에라스무스가 보기에는 우신이었다. 그래서 어리석은 신의 예찬(우신예찬)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중세의 신은 어리석었고 타락한 신이었다. 인간이 만든 가공물의 신이있다. 그들은 이러한 신이 실재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명론자들은 그러한 신은 이름뿐, 실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신이 실재한다고 믿는 실재론자가 있는가 하면 신의 실재는 존재하지 않고 이름만 존재한다고 믿는 유명론자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중세의 보편자 논쟁이다
조중걸은 그의 책 '플라톤에서 비트겐쉬타인까지'에서 로스켈리누스는 보편개념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나타내주는 바가 없는 하나의 낱말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윌리엄 오캄은 보편자(신)란 사유 속에서 구체적 사물 대신에 나타나는 개념, 용어, 기호를 주장한다고 말하고 있다. 유명론자들은 보편자(신)들은 학문과 사유의 도구일 뿐으로 개개사물이 지닌 생생함과 확실성을 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은 이름, 개념뿐이었다.
조중걸은 중세에서 인간은 이중의 구속상태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하나는 봉건적 구속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 구속이었다. 인간을 구속하고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는 데 있어서는 같은 맥락에 있었다. 봉건적 성직자들은 엄밀한 위계질서를 이루고 있었고, 봉건적 관계들을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 이와 같은 세계상 아래서는 개별자로서의 인간,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자율성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인간은 자기 상위에 있는 보편적 권력에 예속된 존재로서만 기능한다. 이에 대해 유명론은 개별자를 강조함으로써 그들의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활동을 강조한다. 유명론에 의해 중세인들은 처음으로 개별자로서 자신을 자각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교권정치에 대하여 신도들 개개인의 개체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분규교회, 보편자대신 개별자를 인식
교회분규를 당하는 교회들은 대체로 교권주의의 예속에서 벗어나 신도들 스스로가 교회의 주인임을 깨닫게 된다. 신과 교회를 연결시킨 지배계급인 교권은 유명론의 개별자이론에 의해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만다. 카톨릭은 보편이라는 뜻이다. 종교개혁이 가능한 것은 보편자보다는 개별자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교권계급은 실재하지 않는 신을 마치 자신들이 소유하고 부리는 것처럼 오해했고 그것을 보편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보편은 이데아였고 신으로 표명되었다. 교권주의자들은 그러한 신이 실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러한 신은 없었다. 양심이 왜곡되고, 재판질서가 개판질서로 되고, 헌법위가 범법위가 되고, 규칙부가 변칙부가 되고, 노회가 노조가 되고 총회가 정치회로 되는 그러한 곳에 보편자 신은 실재하지 않았고 단지 개념이나 이름만 있었다. 신은 교인들이라는 개체에 존재하고 있었다.
교권주의자들은 신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마치 신이 자신들과 함께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신이 움직이는 것처럼 신을 그들의 노예로 전락시켰다. 유명론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신이라는 실재는 없었고 단지 명목에 불과했다. 예수님이라는 실재는 없고 예수님이라는 이름만 남은 것이다. 교권주의자들은 마치 없는 신인데 이름과 개념만 갖고 실재하는 것처럼 이용한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정죄하고, 판단하고, 인권유린하고, 신도개개인의 권리를 박탈시켰다. 그러나 예수님는 거기에 없었다.
교인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곳에 신은 실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교인 개개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그곳에 신은 없었다. 정치적으로 박탈하고, 물리력으로 유린하고 이단교리로 조작하는 그곳에 신은 실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권주의자들은 신은 실재한다고 판단했고 철학적으로 실재론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교권주의자들과 이단조작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없는 것을 실재하도록 만들었다. 판사의 판결이 있으면 실재하는 것이고, 교단의 판단이 있으면 실재하는 것이고 이단감별사들의 판단이 있으면 실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신보다 판사의 판결과 교단의 판단, 이단 감별사들의 판단을 의존해서 없는 것을 실재하도록 조작했다. 오판, 허위와 거짓, 조작에 기초해서 실재를 창조하려는 몸부림이 있었다. 판사는 단지 객관적 실재에 대해서 주관적으로 판단할 뿐이었다. 오판과 주관적 확신이나 권위가 강할 때 사건의 객체나 본질은 실재하지 않았다. 실재했다고 믿은 것이다. 피해자들은 그러한 판단에 속수무책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이 없는 신을 실재한 것처럼 믿을 수밖에 없었고 없는 이단을 실재하는 것처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교권주의자들에게 예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자들은 교권주의자들과 조작주의자들에 의해 속고 사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법의 원칙인 '의심스럽거든 피고의 편에 서라'고 한 것은 끊임없이 실체를 추구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교단의 재판국원들이나 헌법위원들도 그들은 엉터리 재판과 해석을 통해서 없는 실체를 만들어내는데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재판과 해석, 판단을 통해서 권위로 없는 실재를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여 가공된 이론을 구성하여 실재로 만드는 것이다. 보고하고 채택하면 이단으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중세의 타락한 사제들이 사용했던 방식이다. 없는 개념을 만들어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 실재의 주인은 타락한 사제들이고 이것으로 인해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을 보장받는다.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재는 단지 명목이나 개념, 조작에 불과했기 때문에 경험과 감각, 개별자, 증거를 중시하는 유명론의 입장에서 볼 때는 모두 허위이고 거짓이고, 조작에 기초한 실재론으로서 단지 이름에 불과한 것(유명)이었다. 유명론은 경험론의 효시였다. 유명론자들은 경험과 감각, 개별자만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관념에만 존재하는 실재는 감각적 경험과 증거에 의해서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많은 이단도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단이라는 이름에 불과했다. 그래서 개념과 관념속에서만 존재하는 보편자인 중세의 신은 유명론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유명론자들이 보았을 때, 헌금을 내면 죄를 면죄해 주는 면죄부의 신은 단지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의 신이었다. 하나님의 뜻보다 노회와 총회의 뜻을 잘 따르면 교회의 일이 잘 풀리고, 십일조의 용도를 사적인으로 혼동하고, 목사에게 무조건 맹종하면 복을 받는 다는 것도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의 신이었다.
이단조작자들은 개념에만 존재하는 이단들을 실재로 존재한다고 억지로 밀어부쳤다. 이단조작자들이나 교권주의자들은 신이 실재한다고 믿어서 신의 이름으로 판단하고 정죄했지만 이단은 거기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단이라는 개념만 존재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단이라는 실재가 있다고 믿는 이단조작자들과 이단은 개념에 불과하다고 믿는 이단으로 억울하게 누명쓴 당사자들의 갈등이 있었다. 여기서 이단조작자들은 실재론자들이고 이단피해자들은 유명론자들이다.
실재를 만들어내려는 교권주의자들이나 이단조작자들의 관념과 개념속에만 신이나 이단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한 오판과 조작, 허위속에 신과 이단은 실재하지 않는다. 신은 진실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교권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신은 개념에 불과했고, 이단감별사들이 만들어 낸 이단이라는 실재도 단지 개념에 불과했다.
루터는 유명론자의 사상적 기반을 이어 받았다
유명론자들은 보편자대신 개별자를 주장했다. 개별자는 구체적인 감각대상 이고 개별자에게만 실재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이론에 힘입어 개별자를 중시한 것이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이었다. 루터는 개별자를 중시하는 면에 있어서 강력하게 유명론의 영향을 받았다. 유명론이 중세교회를 파괴시킨 것은 감각과 경험, 개별자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보편자대신 개별자들만이 존재한다면 신과 개별자들을 매개해주는 교회의 조직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오캄은 존재는 쓸모없이 존재해서는 안된다며 보편개념으로서의 중세교회를 부정했다. 개별자로서의 각각의 신자들이 보편개념으로서의 교회보다 신에 더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개념에 대한 유명론적 입장은 교권계급에 대한 반대를 함축하는 것이었다. 유명론은 개별자에게 임하는 실재를 중시했기 때문에 교권계급은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오늘날에 보편자를 중시하는 교단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개별자들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대부분의 이단은 명목상의 이단
장재형이나 박윤식, 류광수, 김기동, 윤석전 등은 실재론적 이단인지 명목상의 이단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단이라는 실체적 진실없이 단지 이름만 이단이라면, 개념상 이단이다. 실재는 없었다. 유명론은 경험과 감각, 증거없이는 모두 거짓이라고 말을 한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라 허위라는 것이고, 단지 개념과 관념속에만 남아있는 것으로 엉터리 실재론이라는 것이다.
유명론자들이 중세를 무너뜨린 것은 당신들이 믿는 그신은 단지 개념과 관념에 불과한 보편자로서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의 개념이나 이름은 있는데 신은 실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개별자에게만 실재가 있다고 믿었다. 교권주의자들은 실재하지 않는 신을 실재하는 것처럼, 마치 자기들과 함께 하는 것처럼 신을 이용했다. 종교개혁의 시발점은 보편자대신 개별자를 인식하면서 부터였다. 실재론 대신 경험론을, 개념대신 감각을, 보편자대신 개별자를 인식한 것이다. 개별자를 강조하다보니 특권계층인 사제계급들은 설 여지가 없었다. 더이상 신의 이름을 팔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도 유명론의 정신을 바로 알아야 종교개혁이 가능하다. 없는 신을 실재한다고 판단하고 신의 이름으로 재판을 행하는 자들, 개념속에만 있는 신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판단하고 신의 이름으로 교권을 휘두르는 자들, 사제라는 직분으로 없는 신이 함께 한다고 판단하여 신의 이름으로 신도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자들, 실재하지 않는 신의 이름으로 이단으로 조작하는 자들에 대해서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이들을 척결해야 한다.
모두 없는 신을 실재하는 것처럼 가공하여 신의 이름으로 온갖 조작과 허위, 권위, 정죄, 해석, 재판을 일구어냈다. 신은 이들이 하는 부정과 불법, 조작, 탈법의 현장에 실재하지 않았고 그 이너머 억울한 사람, 피해를 당하는 사람에게 실재했다. 신은 허구의 실재나 이름만을 부르는 교권주의자들에게 함께하지 않고 누명을 쓰고, 이유없이 피해를 당하고,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고통을 당하는 요셉, 바울에게 함께한 것처럼 말이다.
신은 철두철미 교권자의자들이 아니라 신도들 개별자에게 실재했다. 오늘 우리에게는 교권주의자들이 이용하는 중세의 신에 대해 '당신들 신은 실재하지 않고 단지 이름 뿐'이라고 외칠 진정한 유명론자가 필요하다. 이단조작자들에게도 이단은 실재하지 않고 당신들이 만들어 낸 허위와 조작의 개념상 이단의 개념만 존재하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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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기독문화선교회가 오는 12월 7일부터 12일까지 경기도 파주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 대성전에서 ‘신바람힐링성회’를 개최한다. 이번 성회는 한국교회의 영적 회복과 성도들의 신앙 회복을 돕기 위한 자리로, 말씀 선포를 비롯해 찬양과 간증, 건강 강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
조승호 GMS 신임 이사장 “모든 성도가 선교에 참여하는 시대 열겠다”
GMS 제15대 이사장 조승호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세계선교회(GMS) 제15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조승호 목사가 모든 교회와 성도가 함께 참여하는 선교 공동체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선교를 일부 사역자만의 책임으로 한정하지 않고, 청년과 전문인, 은퇴 이후의 성도들... -
예장합동 서울강남노회 제102회 정기회 개최…21당회서 23당회로 확대
예장합동(총회장 정영교 목사) 서울강남노회(노회장 이길찬 목사)가 10월 19일 서울 동작구 대남교회(담임 김창원 목사)에서 제102회 정기노회를 개최했다. 이날 정기노회에는 목사 72명과 장로 12명이 참석했으며, 노회는 당회 수가 기존 21당회에서 23당회로 확대되는 등 교세 변화를 보인 가운데 각종 청원... -
전국호남협의회, 조승호 목사 GMS 이사장 취임 축하
예장합동(총회장 정영교목사) 제27회기 전국호남협의회(대표회장 조승호 목사)는 10월 15일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GMS 선교본부에서 임원회를 열고, GMS 이사장에 취임한 조승호 목사를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임원들은 조 목사의 취임을 축하하며, 차기회장 고광석 목사가 꽃다발과 임원들이 모은 ... -
GMS 2027 세계선교대회 슬로건, ‘교회여 다시 열방으로’
총회세계선교회(이사장 조승호 목사, 이하 GMS)가 2027 세계선교대회의 슬로건을 ‘교회여 다시 열방으로’로 정하고, 교회와 평신도가 함께 선교에 참여하는 대회를 만들기 위한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대회장인 조승호 GMS 이사장은 교회와 평신도 모두가 선교의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