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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신 결의를 추구하는 교단

  • 법과 교회
  • 입력 2013.09.13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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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의를 추구하다 보면 결국 조작으로 빠져
예장통합교단의 총대들과 각부서들은 그야말로 결의에 만연되어 있다. 법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제도적 권위로 결의하여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가장 심한 것이 이단을 조작하는 이대위이다. 이대위는 교단의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결의만을 갖고 법적효력을 가져왔다. 그들은 법없이 결의만을 갖고서 이단정죄를 해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단을 조작하여 이단을 양산하였고 이단옹호라는 신종언어를 만들어 자신들에 반대하면 정치적으로 이단으로 결의하였던 것이다. 범죄집단이 된 것이다.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결의하여 힘없고 약한 목사나 군소교단목사들에 대해서 소명기회도 주지않고 결의로 이단정죄를 해온 것이다.   
 
헌법위원회나 노회와 총회재판국도 이미 법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의로 법조항을 호도하거나 간과하여 결의가 법조항이상의 권위를 갖게 끔하고 있다. 최근 정영택목사건과 관련 규칙부의 불법적인 결의, 강북제일교회 수습전권위와 관련한 헌법위의 탈법적인 결의, 이단연구를 정죄로 판단하는 이대위의 범법적인 결의 등은 법을 초월하여 결의를 존중하는 것이다.
 
총대들의 세습방지법 역시 노회의 청빙권한이 법으로 제정되었는데  총회의 결의가 헌법에 제정된 노회의 권한을 초월한 것이다. 더군다나 장로교는 수직적 치리회를 가진 교파로서 상위치리회가 얼마든지 하위치리회를 종속시킬 수가 있다. 이것이 장로교이다. 세습방지법을 결의로 채택하는 것은 장로교의 치리회 정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는 총대들과 각부서위원들이 법리가 짧거나 양심이 짧아서 결의와 법을 혼동하여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연금재단이사회도 법적절차를 무시하고 이사회의 결의로서 감사를 해임시키고 있다. 이처럼 각부서가 다수의 결의로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결의를 통하여 상대방에게 DAMAGE를 가함으로써 다수를 토대로 한 범죄집단으로 변하고 있다. 
 
이처럼 예장통합부서들은 제도적 권위를 갖고서 법조항을 초월하고 있다. 법보다는 결의를 중심하다 보면 중세마녀사냥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1215년 마그나카르타 대헌장은 법없이 구금이나 압수, 체포하지 말라며 죄형법정주의를 주장했다.
 
농민운동의 선봉자 토마스 뮌쩌도 자신들을 박해하는 루터파에 대해서 법없이 자신들을 처벌하지 말라고 항변하였던 것이다. 중세나 종교개혁초기, 근대이후까지 법대신 결의만 갖고서 많은 사람들을 처단하였다. 미국의 주홍글씨의 배경이 된 새일럼의 마녀사냥재판도 법대신 결의 갖고서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부시도 결의만을 갖고서 관타나모 죄수 수용소를 세워 인권차별을 하였다가 법적 저항을 받기도 했다.     
 
예장통합은 10여년 역사가 보여주듯, 법을 준수해야 하는데 법을 왜곡하여 결의를 중시하는 경향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이는 가방끈이 짧거나 법리가 짧거나 양심이 짧거나 셋 중의 하나이다.  아마 양심과 법리와 가방끈이 짧아서일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양심 대신 야욕을 갖고, 법리 대신 정치적 의도를 갖고, 가방끈 대신 지연의 끈을 잡으려 했기 때문이다. 총대들 나이가 대부분 60대인데다가 당시 6.25전후세대로서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총대들은 거수기로 전락하여 지조도 양심도 정신도 없게 된다. 총대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이며 이미 은퇴할 나이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총대들이 원로원으로 전락하여 결의와 법을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떼거리로 모여 다수결로 결의하면 법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총대들이 무능하기 때문에 교단이 무능하게 되는 것이다. 총회오면 몇사람만이 발언을 하고 대부분은 거수기로 전락한다. 법조항 없이 다수의 결의정치로 진실이 왜곡되고 있다.
 
헌법위나 이대위, 재판국, 규칙부 등은 지금까지 법에 토대를 두지 않은 결의를 중시하여 범죄를 저질러 왔다. 법 대신 제도적 권위로 다수의 결의로 밀어부쳤던 것이다. 가장 심한 부서가 이대위와 헌법위, 재판국이었다. 그들은 법대신 권위와 결의로 법을 결의 밑으로 두어 조작함으로 법을 무색케 하였다. 특히 법을 결의로 판단하여 사람에 따라 달리 판단하는 고무줄법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교단이 바로 서려면 결의대신 법을 중시하는 교단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법대신 결의를 중심하다 보면 조작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교단은 일종의 부분사회이다. 부분사회이론은 일본에서 온 개념으로 자율성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율성이 법대신 중세의 권위를 추구하다보면 사회로부터 저변부로 밀려나는 것이다. 조작이 판을 치는 나쁜 부분사회로 되는 것이다. 몰상식과 비상식으로 가기 때문이다.
 
현재 교계는 사회에서 볼 때 나쁜 부분사회이다. 일부 언론들은 이러한 나쁜 부분사회에서 기생하고 있다. 성스런 부분사회라고 무능한 민중들을 호도하고 있다. 달리는 설국열차의 부분사회안에 모든 악이 도사리고 있듯이 달리는 설국열차 교계에 모든 악이 도사리고있는 것이다. 그 열차는 법대신 기득권자들의 결의로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제 예장통합교단이 나쁜 부분사회가 되지않기 위해서는 결의대신 법으로 가야한다. 결의를 갖고 장난치는 사람들이나 부서에 대하여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 법대신 결의에 의존하여 달리는 기차가 멈출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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