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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잔재, 수학여행을 폐지하라

  • 법과 교회
  • 입력 2014.04.20 15: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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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학여행은 제국주의화의 산물
이번에 안산 단원고등학교학생들은 수학여행을 가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이제 정부는 수학여행에 대해서 제고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서구에서는 단체로 수학여행을 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 여행을 전혀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측에서는 원하는 사람들에 한해서 여행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서구사회는 일본이나 한국처럼 단체성보다는 개인성이 강하기 때문에 집단여행은 잘하지 않는다. 서구는 대부분 개인이 하거나 가족들끼리 하는데 익숙해 있다.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대부분 학교의 수학여행은 일제의 잔재인지도 모른 채, 거의 경주불국사로 가든가. 속리산으로 여행을 가곤 했다. 일방적으로 학교가 시키는대로 했던 것이다. 여행을 가면 대부분 무엇을 배우고 문화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그냥 유적지 둘러보고 밤이 되면 어떤 의식이나 배움도 없이 자유롭게 놀았던 기억이 난다. 일부 학생들은 술을 먹기도 하고, 춤도 추고 밤새도록 잠도 안자고 수다를 떨곤 했다.        

현재 여전히 한국에서 졸업생들이 학교를 떠나기 전에 가는 단체수학여행은 일제의 잔재이다. 이제 한국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할 필요가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임성모교수는 "1930년대 일본의 만주 수학여행"에 대해서 글을 쓴 바 있다.  

임교수는 일제가 수학여행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도쿄사범학교가 1886년 장도원정을 계기로 인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일제는 1866년부터 수학여행을 시작하였다. 그들의 수학여행은 단순히 우리나라처럼 여행이나 노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황국신민화, 내선일체 등 제국주의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주로 중국과 조선을 제국주의화 할 목적으로  교사들을 앞세워 수학여행을 가게 하였던 것이다. 


▲     © 법과 교회


이와 같은 수학여행이 해외로 확대되는 계기는 청일전쟁시기로서 1896년 효고 현립 도요오카 중학교의 조선 수학여행과 나가사키 상업학교의 상하이 수학여행이 해외 수학여행의 효시를 이룬다. 이외에도 구마모토 상업학교는 1898년(상하이)에, 후쿠오카 상업학교는 1902년 한국에 해외 수학여행을 시작했다. 이처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본격적으로 수학여행이 시작되었다. 임교수에 의하면 해외여행이 전국화 되는 것은 러일전쟁부터였다고 주장한다. 

임교수에 의하면 그의 글에서 일제의 수학여행은 1906년 문부성과 육군성이 공동 주최한 중고 이상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만주수학여행을 계기로 대륙수학여행이 전국화 디었다고주장한다. 그의 글에 의하면 당시는 만한(만주와 한국)수학여행이 성시를 이루었고 육군성이 주도적으로 장려하였다고 했다. 문부성은 수학여행을 할 경우 무상 승선등 각종 편의를 제공하자 수학여행의 열기가 고조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문부성 공식발표에 따르면 신청학교 152개교, 신총자 총수 7,616명이고 실제 참여한 숫자는 3,694명이었다.  

학생들은 학부별로 영어부는 사회일반, 지리역사부는 지리와 역사, 국어한문부는 문학, 수물화학부는 전쟁, 박물학부는 자연환경에 관한 사항들에 중점을 두고 관찰한 뒤 이를 보고서 형식으로 남기고 있다. 당시 요미우리신문은 사설을 통하여 "우리는 각급 학교 학생들이 지금부터 만한이나 대만으로 수학여행을 시도하는 행동에 나서기를 바란다. 아울러 관청측은 이들에게 가능한 한 편의를 제공하기를, 이를테면 사설철도나 항업자들이 무상 혹은 대폭할인의 특전을 제공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며 수학여행에 동참하기를 촉구하였다. 

임교수에 의하면 당시의 수학여행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고 하였다. 첫번째로 여정이 러일전쟁 전적지 견학을 위주로 하여 도쿄고등사범학교의 경우는 여행의 목적을 요동에서의 러일전역의 유적을 시찰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두번째로 수학여행은 군부의 주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일본 참전군인들의 러일전쟁 당시의 비화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세번째는 군대식으로 조직되고 운영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도쿄고등사범학교의 경우 전체 학생을 두 개의 단으로 나누고 각 단을 6개조로 편성해, 군대의 행군을 각 조장이 지휘하게끔 했고, 연대나 '무장집합'등 군사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이와 같이 수학여행은 근대초기 일본의 교육현장의 제복착용, 두발통제, 정리정돈, 시간엄수 등 군대식 집단행동을 고스란히 적용한 국민교육의 장이었다.

이러한 수학여행은 러일전쟁이후에는 대만, 조선, 만주, 중국 본토 등 식민지, 점령지를 대상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초기 수학여행이 주로 사범학교였던 것은 국민교육을 담당할 교사들의 견문, 협동활동, 체육의 장이었다. 교사들에게 식민지 교육을 일깨워주는 장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수학여행은 철도망의 확대, 박람회의 개최 등이 작용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벤트로서의 볼거리도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수학여행은 국가확립, 산업혁명 과정, 제국주의화, 제국경영의 체험의 장으로서 발전해 나갔다. 자본주의화되면서 선박, 철도, 호텔 등과 단체관광알선 여행사, 여행안내소 등과 같은 여행인프라의 구축이 발빠르게 진행되었다. 정치형 수학여행의 전성기가 도래하였다.

특히 1920년대 관동대지진 이후 급격한 모더니즘화 과정에서 정보력의 집적과 그 외연의 확대가 나타났다. 당시 일본여행문화협회가 설립되어 다비(려)라는 잡지를 발간하는데 발간목적은 조선, 몽고, 중국, 러시아의 인정과 풍습의 소개를 통하여 일반인 본래의 성정을 보육하고 수성하는 것이라 규정하였다. 이와같이 일본의 수학여행은 철두철미하게 정치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었다. 즉 제국주의적 수학여행이었다. 여자 사범학교수학여행도 철두철미 제국주의적 수학여행이었다.  

1930년대 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는 수학여행의 목적은 "이제 시국은 우리 국민에게 신동아 건설의 커다란 책임을 닽겨, 여자라 하더라도 동아대륙에 관한 올바른 인식과 깊이 있는 체험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본교 생도처럼 장래여자 중등교원으로서 국내는 물론 조선, 만주 및 지나까지 나가 중임을 맡아야 할 자들에게는 한층 더 긴요하다고 봅니다."고 했다.

임교수는 그의 글에서 일본 사범학교는 이들의 일정의 중심은 견학장소를 신사, 전적지, 역사유적지, 박물관, 시설물로 나누어 실필 때 일정의 중심이 전적지 및 시설물 견학에 두어졌고, 이들은 만주나 중국을 보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일본을 보고자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임교수는 일본의 수학여행은 러일전쟁과 한국합병이후 경제적 측면보다 정치적 측면이 강하였고, 사범학교들의 경우 충성스런 신민을 육성하게 될 교사 엘리트들에 대한 정치훈련의 측면이 강했고, 도쿄고등사범이나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의 경우는 국토순례의 차원이 아니라 제국순례의 체험을 갖게 한 것이라고 주장해 일본의 수학여행은 제국주의 수학여행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러일전쟁 이후 1930년대까지 일본의 해외수학여행은 이와 같은 정치형 수학여행이 주류를 점하게 된다. 1930년 중국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는 문화형 수학여행이 등장하게 된다. 여학생들까지 수학여행에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러일전쟁을 분수령으로 해서 수학여행은 '실업형'에서 '정치형'으로 그 주류가 바뀌었고, 만주사변이후의 총력전 시기가 되면서 '정치형'수학여행과 함께  '문화형' 수학여행이 차츰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수학여행의 유형별 추이가 제국네트워크형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산업혁명이후에는 일본의 산업이 호황을 맞으면서 해외로 수학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이처럼 일본학생들의 수학여행은 제국을 리드하는 민족으로서 일본인의 긍지를 확인하고 일만일체와 내선일체라는 허구적 제국의식을 획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추진되었고, 향후 교사가 될 사람들에게 외지에서 일본인의 세력확대와 일본인의 활약을 확인시키는 일을 훈련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수학여행은 제국 번영과 제국의식의 심화에 기여해던 것이다. 결국 일제수학여행의 목적과 의도는 동아시아의 제국주의의의 일환으로서 학생들을 제국주의화에 끌어들인 것이었다. 정신대 역시 제국주의화를 위한 군인들의 쾌락의 수단이었고, 수학여행은 일제의 제국주의화를 위한 교사들을 위한 식민지교육정책의 일환이었다. 아직도 역사왜곡을 하는 일본의 문제점은 이러한 교사들의 의식이 제국주의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일제의 의도나 제국주의적인 것도 간과한 채 향락성, 문화성, 여행성 수학여행만 추진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번에 너무나도 엄청난 재난을 당했던 것이다. 이제 한국은 세월호참사를 통하여 수학여행이라는 일제의 제국주의적 잔재를  폐지해야 한다. 단체로 움직이는 문화는 일제 시대의 잔재인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안전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은 한국에서 당분간 자제를 할 수있도록 해야한다.

단체 활동은 얼마 전 부산외대 참사처럼 대재난을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 수백명씩 움직이는 단체여행이나 체육활동, 신입생환영회 등 단체 활동은 자제를 해야 할 것이다. 특히 향락성, 관광성 이외에 어떤 의미도 없는 수학여행은 일제의 잔재인 만큼,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고, 친교성 문화여행을 한다면 가능하면 반별로 원하는 학생에 한해서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타율성 수학여행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는 안전 불감증때문에 기차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버스를 타든, 배를 타든 위험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청소년들에 대해서 단체로 활동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더이상 학생들이 대량으로 희생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틈에 정부는 또 다른 참사를 막기 위하여 학교의 소방시설, 기숙사 시설, 화재시설, 사실학원의 소방 및 화재시설, 고시방, 노래방 등 의 화재시설 및 소방시설에 대한 안전 점검을 하여 더 이상의 대형참사를 막아야 할 것이다.그러는 차원에서 일제의 잔재인 수학여행을 청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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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 유민세2014-04-20 17:47:01

    여행업자들이 학교의 교장이나 교감에게 로비를 해서 뇌물을 주기 때문에 연명되는 것이다. 그외도 버스기사 관광자의 숙박업자나 관광버스회사등 먹이사슬로 학생들과 학부형들만 희생이 되는 것이다. 차라리 도보여행이나 봉사로 대체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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