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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선택

  • 홍 영 일(전 염광고등학교장)
  • 입력 2014.07.0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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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은 변화하고 있다

중국 역사상 또 한 번의 질적 변화를 도모해야 하는 세 번째 혁명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 양중메이(楊中美)는 중국이 1949년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의 사회주의 공산국가 수립이 첫 번째 혁명이고, 1978년부터 시작한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의 개혁개방 정책 추진이 두 번째 혁명이라고 하면서 중국의 질적 변화를 가져올 제 3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내다보고 본다. 

시진평(習近平/1953.6.1생)이 해결하여야 할 과제는 중국 국내 문제로 우선 발전 정책 이면에 독버섯처럼 자리 잡고 있는 빈부 격차, 지역 격차, 부정부패를 타파하는 일이다. 국제적으로 일본과의 갈등, 미국과의 힘겨루기가 치열하다. 미국이 중미 관계를 ‘친구의 적’의 합성어인 프레너미(frenemy)로 표현하고 있다. 

시진평은 천시(天時), 지리(地利) 그리고 인화(人和)를 얻고, 스스로 노력하여 인생의 중요한 기회를 잡았다. 

이 책에서 시진평의 어린 시절과 14세 때부터 경험한 7년 동안 시골로 쫓겨난 하방(下方)생활, 근 25년에 걸친 지방 관료 생활, 결혼과 가족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시진평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 1913-2000)은 마오쩌둥(毛澤東)과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8대 공신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1966년 마오쩌둥이 중국인들에게 재난을 안겨준 문화혁명을 일으키는 바람에 1967년 1월 시안(西安)의 홍위병에 의해 불법적으로 잡혀 산시로 끌려갔다. 혹독한 학대로 고생했지만, 마오쩌둥의 배려로 베이징으로 이송되어 8년간 감시를 받으며 겨우 죽음만은 면했다.

이때 14살의 시진평은 순식간에 반동학생으로 몰려 잔혹하게 학대를 당했다. 아버지 시중쉰이 과거 활동하던 지역 성시성 옌안(섬서성/陕西省, 延安)으로 가게 되었다. “대중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만이 앞날이 밝다.”란 이모부의 충고를 듣고 열심히 일에 몰두하였다. 저녁에는 남녀노소를 모아 놓고 동서고금의 수많은 책을 소개하여 그 지역에서 신망을 받게 되었다. 1973년 겨울철에 차가운 물 속에서 제방을 쌓아 하천을 정리하였다.

1975년에는 메탄가스 발생장치를 고안하여 밥도 짓고 불도 켰다. 탁월한 능력과 실용적인 면을 보여 주어, 농, 공 청년으로 추천을 받아 중국 최고 칭화대학(清華大學/베이징시) 화공과 학생이 될 수 있었다.

칭화대학은 훗날 시진평이 관료로 도약할 수 있는 훌륭한 발판이 되었다. 주룽지, 황쥐, 우방궈,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등 쟁쟁한 인물이 칭화대학교 출신이다. 

마침내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여 인민에게 지옥과 같은 같았던 문화혁명에서 풀려났다. 시진평은 대학을 졸업한 후 1979년 아버지 친구인 전 주영 대사 커화의 딸, 재색을 겸비한 커링링과 결혼하였으나 불화로 3년 만에 이혼하였다. 그 뒤 커링링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말았다. 1986년 9살 연하의 여군 가수인 펑리위안과 전격적인 재혼을 하게 된다.

펑리위안은 현재 육군 소장으로 군부의 인맥이 두터웠다. 두 사람 사이에 시밍쩌라는 딸이 하나 있다. 2008년 쓰촨성 지진이 났을 때 16세의 딸이 자원봉사를 한 사실이 전국에 보도되어 시진평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하였다. 시진평은 청렴한 사람이다. 현실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스타일이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니 ‘화합’이니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구호가 등장하였다.

 2002년 저장성 성의 서기로 승진하였다. 경제 발전에 힘을 쏟아 전국 500대 민영 기업 가운데 203개가 있는 지역으로 탈바꿈시켰다. 2007년 한 해만 해도 신제품 개발을 위해 316억 자금을 투입하였다. 중국과학원도 개혁개방 이후 저장 성이 거둔 눈부신 성과를 높이 평가하였다.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한 후에 2008년 6월 17일부터 19일까지 북한 방문은 정치적 의미가 상당히 컸다. 요컨대 쌍방 새로운 후계자로 상호 인정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시진평은 북한에 가서 ‘피로 맺은 우의’의 관계라고 했다. 2009년 12월 14일부터 16일까지 일본을 정식 방문하였다. 일왕을 만나기 위해서는 1개월 전 허락 받아야만 하는 규정도 중국이 우겨서 깼기 때문인지 일본 언론은 호의적이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중국의 후계자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2005년 저장성 당서기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방문한 적이 있었고, 새마을 운동에 관한 책을 보내 주기도 하였다.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 불안정은 독재의 산물이다.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이 시진평이 총책임 하에 거행되었다. 근·현대사에서 온갖 굴욕을 당하던 중국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대사건이었다. 중국의 국제적 지위가 수직상승하고 있다는 징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철저한 보안 속에 이루어졌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외국 정계의 요인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겉으로는 일반 중국인과 함께 올림픽 개막 쇼를 즐긴 것처럼 보였지만, 알고 보면 철저히 통제 아래 기분을 낸 것이다. 당에서 배부한 표를 받은 사람들과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군인들에 둘러싸여 마치 인형처럼 개막식에 참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자세 자체가 독재 정권 국가의 자신감 결여에서 비롯된 위기의식과 국민을 적대시하는 스타일을 반영한 것이다. 

 2009년 신장 위구르 족의 대규모 독립요구 시위, 티베트 독립 세력, 파륜궁 집단, 지하노조, 농민 항쟁 단체, 대우 불만을 품은 퇴역 군인, 인권보호단체, 반체제 인사 등이 정권 안정을 뒤흔들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위협의 강도도 날로 커지고 있다.

논어의 내용 절반만으로도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시진평은 논어에 나오는 “정치를 하되 덕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나머지 모든 별이 그것을 중심으로 고개 숙이고 도는 것과 같다.”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백성의 지지도 받아야 한다. 리더가 바르게 하면 따르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다. 바르고 싶으면 자성, 자책, 극기의 덕목을 실행하고 도덕 수양을 통해 자신의 소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관자의 예(禮), 의(義), 염(廉), 치(恥)는 나라를 다스리는 4대 요소이다.

지도 간부가 자신의 소질을 높이고 업무를 훌륭하게 완성하기 위해서는 독서와 공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세계의 과학기술은 매일 새롭게 발전하고 있다. 과학 발전의 대세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공산당 정권이 얼마나 오랫동안 중국을 안정적으로 통치할 것인가는 시진평 시대에 얼마나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정치 체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역사적 갈림길에 선 시진평은 과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가 될 것인가?

만델라는 소탈한 마음을 가진 겸손하고 온화한 인물이지만, 지독하리만큼 강인한 인내력과 침착성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족 화해와 인종 화합을 이뤄 새로운 민주 정권 시대를 창출할 수 있었다. 

길이 아무리 가깝다 해도 가지 않으면 도착할 수 없다. 일이 아무리 작다 해도 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정치는 행동으로 옮겨야 빛이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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