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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정치인들, 예수와 바울에게서 배워라

  • 법과 교회
  • 입력 2014.12.2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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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심은 주변으로, 주변은 중심으로

새정치민주연합 정동영 상임고문의 ’탈당 후 신당 합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고 있다. 정고문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이하 국민모임)의 참여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벌써 여기까지 나온 것은 새정치국민연합 문재인-박지원의 양강구도에 물을 껴얹는 것이다. 앞으로 정동영정치고문의 정치이야기가 새로이 시작될 참이다. 이미 새정치국민연합도 문재인, 박지원, 손학규, 김한길, 안철수 등 새로운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정동영의 행보도 주목해 볼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이전의 가치갖고서는 도루 정동영으로서 의미없다. 새로운 가치로 승부해야 한다. 안철수의 실패는 새로운 인물이었지만 새로운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돈과 서울대교수라는 외적 스팩만 갖고서는 주변인들의 마음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가치만 갖고 승부하려다 보니 안철수는 희망의 없는 사람으로 전락한 것이다. 안철수에게는 새로운 철학이나 가치가 없었다. 정동영 역시 이전의 정치적 가치만을 갖고서는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헌정치민주연합으로 변신
 
새정치민주연합은 김한길, 안철수의 공천파동으로 인해 결국 헌정치민주연합으로 되어 버렸다. 계보와 계파의 이익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이다. 즉 새정치국민연합이 일반사회라면 김한길 부분사회, 안철수 부분사회의 패거리 정치로 인해서 새정치국민연합이라는 민주당이 닫힌 사회가 된 것이다. 부분사회의 미숙으로 인해 전체 사회가 망하는 것이다. 이는 구원파라는 부분사회의 무질서로 인해서 전체사회가 휘청거리는 것과 똑같다.
 
부분사회는 일반사회와 자연스럽게 잘 연결될 때 건강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지연과 학연 패거리라는 부분사회의 결속의 공고화로 인해 전체사회가 병든 상태이다. 홍명보의 엔트으리는 이를 잘 반영해 준다. 의리로 인해 엔트리 국가대표를 꾸린 것이다. 정당도 정치적 의리, 학연적 의리, 지연적 의리로 똘똘 뭉쳐서 의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정치는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통진당몰락, 이석기가 아니라 자체의 분열씨앗을 이미 배태
 
통합진보당의 몰락은 이석기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자체 분열의 씨앗을 안고 있었다. 특정인들이 계속 중심의 역할에서 주변으로 가지 않고 중심에 고정되어 있어서 당의 의식이나 철학이 고루한 상태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이름만 진보당이었던 것이다. 이름은 진보당이었는데 하는 일은 통합 수구당이었던 것이다. 특히 북한선호가치는 수구적이었고 비상식적이었고 주변인들이나 노동자들과 멀리 떨어진 통진당 중심세력의 중심가치였다. 즉 북한선호가치는 주변인들과 동떨어진 당핵심중심인들만의 가치였다. 결국 주변인들과 동떨어진 가치를 선호하여 왔기 때문에 실패한 정당이 되어버린 것이다.
 
문재인의 태동은 노무현대통령의 가치를 극복하지 못한 민주당의 한계에서 온 것이다. 안철수의 실패 역시 자신의 부분사회인 계보만을 중시한 나머지 김한길과의 정치적 타협으로 인해 당이라는 전체사회를 보지 못한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학자이기 때문에 나무만 보고 숲이라는 전체를 보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중심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의 의식을 몰랐던 것이다.

이처럼 통진당의 몰락과 새정치국민연합의 몰락은 주변사람들의 생각을 읽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위대성은 자신이 중심이면서 늘 주변으로 향해 갔던 것이다. 정치중심 종로구에서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버리고 떨어지는 줄 알면서도 지역적 주변인 부산에 가서 계속 출마한 것이다. 4번 떨어질때까지 주변에서 도전장을 냈던 것이다.

노무현은 인권변호사를 하면서도 늘 주변사람들의 편에 섰다. 억울한 학생들의 인권을 변호하는 변호사의 자리에 있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주변인에 중심하는 복지정책을 과감하게 구사했다. 노무현대통령의 시행착오도 있지만 약자나 주변인을 향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가슴 한가운데는 이명박보다 노무현대통령이 박혀 있는 것이다. 그가 죽은 이후 참배객이 500만이 넘고, 문재인의 표가 1000만이 넘은 것은 노대통령이 중심에 있으면서 주변으로 가는 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앞으로 신당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이합집산이나 오합지졸, 합종연횡식으로 지연, 학연에 따라 뭉치지 말고 철학과 영원히 꺼지지 않을 신념에 토대해야 한다. 통진당의 몰락과 새정치연합의 몰락은 사람의 몰락이 아니라 가치의 몰락이다. 정치적 정당이 지향해야할 가치가 빈약하고 새로운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당의 이름만을 바꾼다고 해서 정당의 색채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해아래 새 것이 없다고 참신한 인물은 없는 것이고, 예수처럼 어느정도 죄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도 배워야 하다. 한국에 사는 동시대 사람들은 거의 유사한 생각을 갖고 있고 새로운 인물도 없고, 새로운 가치도 없다. 단지 같은 하늘아래 다른 조직과 단체, 다른 리더만 있을 뿐이다. 어차피 지연이나 학연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이제는 사람이나 단체가 아니라 가치가 바뀌어야 한다.
 
"중심은 주변으로 주변은 중심으로"

신당의 가치는 "중심은 주변으로 주변은 중심으로" 가야 한다. 중심세력들은 주변에 민초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파악해서 주변정책을 확실히 하고, 중심에 앉아있는 이유는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있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자신들은 중심에 있으면서 주변인들을 이용하여 중심의 위치를 굳히는 것이 아니라 즉, 고정된 중심이 아니라 이동되는 중심이 되어 주변인들을 중심에 이동시키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자신들의 중심 포지션에서 벗어나 주변인들의 위치로 이동하여 그들과 삶을 나누고 그들과 함께 뒹굴어 주변인들의 전정한 애환과 고통을 느껴, 그들을 건전한 중심가치를 가진 중심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즉 외형적 중심인들은 주변인들에게 가야하고, 주변인들은 의식이나만 중심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학연, 지연, 경제, 명예 등 외형적 중심인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같은 민족으로서 차별없이 중심적 가치를 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우리의 양극화는 경제와 학벌, 지역문제뿐만아니라 가치의 양극화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내면적 가치도 열등감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주변인의 가치를 모두 중심인의 가치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열등감에 시달리는 주변인의 가치를 중심인의 가치로 바꾸어 한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정당중심인들의 일회성 쇼맨싶의 밥퍼주기, 연탄나르기, 노동하기 등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 그것은 마치 주변사람들과 함께 하는 듯한 모두 가식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그들과 진심으로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과 삶을 같이 나누는 것은 그들의 애환보다는 그들의 사고를 중심에 갖다 놓기 위해서야 한다. 주변인들이지만 중심인들처럼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정당 중심인들, 학별적, 지역적, 경제적, 인종적 주변인들에게 가야       
        
정당의 중심인들이 1) 학벌적 주변인들에게 다가가 교육을 하여 '희망의 인문학'이 희망을 주는 것처럼 통일이나 민주화, 경제, 노동, 농업, 교육등에 있어서 서울대출신이상의 지적 자부심과 철학적 자부심을 느끼게 하여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2) 경제적 주변인들에게 다가가 직업의 소명설과 희망, 창조적 생산활동, 이윤극대 만족, 도농연결, 경제균등화 등을 하게 하여 강남의 중심인들 부럽지 않게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주고, 의식이라도 경제적 중심인이 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3) 지역적 주변인들에게 다가가 지역균형의 고른 발전과 지자체의 불균등해소 등으로 인해 지역적 자부심을 가지는 지역중심인이 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4) 또한 인종적 주변인들에게 다가가 인종차별과 소수민족 차별을 철폐하는 법규와 정책을 만들어 그들이 중심인종처럼 차별받지 않고 대등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신당 성공하려면 고정된 중심가치가 아니라 이동 중심가치로 변해야

그래서 현신당이 성공하려면 신당의 중심인들은 정당의 중심에 고정하지 말고 이동하는 중심인이 되어 주변들에게로 가서 함께 삶을 공유하여 지역적 주변인들이 서울의 중심인 강남을 부럽지 않아 강남스타일만 중심이 아니라 시골스타일도 중심으로 생각하게끔 해야 하고, 학벌적 주변인들에게 가서 심오한 민족관, 세계관, 농업관, 시, 문학, 경제 등을 가르쳐 브루조아적인 SKY 출신자들보다 더욱 지적세계관에 자부심을 갖도록 해주고, 경제적 주변인들에게 찾아가 직업을 만들어주고, 소명의식을 일깨워 천민자본주의에서 벗어나 노동의 귀한 가치를 깨달아 진정한 경제적 중심인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고, 인종적 주변인들에게 찾아가 중심인종인 한민족에 못지 않게 차별이 없는 희망의 나라라는 자부심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중심인들은 고정된 중심이 아니라 약자에게 이동하는 이동 중심을 중심적 가치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고정된 중심의 틀을 벗고 이동하는 중심이 진정한 중심이라는 가치를 가질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예는 예수와 바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는 언제나 중심이었다. 예수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한 10:31)고 하였을 정도로 항시 성부 하나님과 하나라는 중심적 사고를 지녔다. 바울도 자신이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이고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며 가말리엘 분하생이라며 문벌에 있어서 누구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바리새인이나 가말리엘 문하생처럼 외적 중심적 위치에 머문 것이 아니라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를 으로 하여 헬라와 로마까지 가는 이동적 중심을 중심적 가치로 삼았다. 그에게는 문벌이나 학벌이 아니라 예수가 중심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심적 가치는 하나님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디를 가나 하나님이 함께하는 곳이 중심이었다.
 
예수의 중심가치는  예루살렘이나 기득권측에 고정시킨 것이 아니라 세리와 창기, 약자들에게가는 이동하는 중심이었다. 결국 그의 이동적 중심의 삶은 가장 주변언저리인 십자가까지 갔던 것이다. 예수의 중심적 삶의 위치는 예루살렘이나 궁전이 아니라 세리, 창기, 어부, 십자가였다. 지금까지도 지구상의 기독교인들의 가슴 한가운데는 예수그리스도가 있는 것이다. 역사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A.D와 B.C로 나누고 있다.
 
그리스도의 위대성은 하나님과의 중심적인 사고에 있고, 그 사고는 주변인들과의 삶을 공유했고, 결국 주변인들과 중심인들까지 포함하여 가장 주변인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시켜서 그들 따르는 주변인들이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 중심가치를 갖고 살아가게끔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동하는 중심인 예수의 삶의 위치는 '주변인들과 함께', '십가가와 함께' 였던 것이다. 이처럼 진정한 중심인은 주변부로 이동하는 중심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예수 중심의 사람이 되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는 다메섹에서 예수를 체험한 후, 외형적 중심지역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고, 바로 신앙적 연단을 위해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간을 머물렀다.
 
바울은 예수의 중심적인 사람들이 된 이후에도 갈라디아서 2장 6절에 나오듯이 자신은 유명한 이들과 원래 상관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인맥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갈라디아서 2:6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늘 계시의 말씀을 따라 살았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도 항상 기뻐하라고 편지를 썼다. 감옥안에 하나님이 역사함으로 그가 머문 곳을 중심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바울은 환경이나 지역, 지연 혈연을 가리지 않고 그리스도가 머문 곳이 중심이었다.
 
정치인들 뿐만아니라 목회자들도 강남이나 대형교회, 학연, 지연에 의해서 움직이다 보면 사람이 중심이 되고 외적중심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사람들은 환경이나 처지를 가리지 않고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곳이 진정한 중심지이고, 그리스도가 함꼐 하는 사람이 진정한 중심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신당세력들도 마찬가지이다. 한민족의 핏줄이 흐르는 곳이 한반도의 중심지이고, 민족의 정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중심인이다. 이제 정치인들은 주변 도서에 있는 사람들조차 한반도의 중심지와 한민족이라는 중심인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정된 중심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말고 주변인들에게까지 이동하는 중심을 진정한 중심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동하는 중심인은 고정된 주변인을 의식이라도 중앙으로 이동시키는 책임감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어느 지역에 머물든지 한반도 통일과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중심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국은 일부 사람들만 중심인의 의식을 갖고 살아가고, 대부분 90%는 경제적 주변, 학벌적 주변, 지역적 주변자인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신당의 슬로건은 중심은 주변으로, 주변은 중심으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외형적 중심인들은 예수나 바울처럼 진정한 중심인의 의식을 갖고, 주변지와 주변인에게 접근해서 주변인들이 자신들이 한반도의 중심지에 있고 한민족의 중심인이라는 내면적 중심 가치를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중심인들은 자신을 희생시켜 현실적인 빵문제와 중심적 가치를 동시에 주어야 할 것이다. 
 
주변인에게 중심가치를 갖게 하기 위해서는 중심인이 희생해야
 
예수는 주변인들에게 친히 다가가서 오병이로서 빵과 질병을 손수 고쳐주는 등하여 현실적으로 가려운 데를 긁어주었고, 동시에 하늘나라의 가치를 주어 하늘나라 백성으로서 즉 하늘중심적인 의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 예수그리스도의 중심적인 가치는 하늘중심적인 가치이다. 이처럼 주변인이 하늘 중심적인 가치를 갖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중심인이 자신을 희생시켜야 한다. 중심인이 주변인을 섬기려는 섬김의 도가 있을 때 주변인은 중심인을 따르고, 중심인의 말에 신뢰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신당도 마찬가지이다. 민중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중심인의 가치를 갖고 살아가게끔 하기 위해서는 정치중심인들이 희생할 필요가 있고, 제정구 의원처럼 희생의 도를 보여주어야만 민중들은 움직일 것이다. 
 
그래서 주변인들이 세계 어디를 가다라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중심에 두고, 한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중심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현재는 일부만 중심인으로서 가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이 중심인의 가치를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주변인들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더이상 어설픈 외형적 중심인이 아니라, 주변인을들 일시적으로 이용하여 자신의 중심적 입지를 공고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나 바울처럼 진정한 중심인이 되어 한국영토는 어디나 중심이며,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진정 한반도의 중심인으로서의 살아갈 수 있는 내면적 가치를 갖게끔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의 문제점은 중심인들이 주변인들의 삶을 도외시하는데 있다. 표를 얻을 때만 주변인의 친구인 척하다가 표면 얻으면 주변인들을 무시하거나 상대도 하지 않고 중심인의 입지만 공고화한다. 다시 중심인은 중심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주변인들은 주변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진정한 중심인은 주변인들에게 가서 주변인들과 함께 하고, 주변인들에게 빵과 가치를 동시에 주어, 주변인들이 중심인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삶이 중심인적 가치를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중심적인 정치인이 아닐까?
 
진정한 중심 정치인이란?
 
진정한 중심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주변인에게 찾아가서 주변인의 삶을 공유하고 주변인의 빵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 그들이 중심적인 가치를 갖고 살아가게끔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중심인들은 주변인들을 이용하거나 활용하려고 하지 말고 진실로 그들과 삶을 공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더이상 주변인들을 이용하는 정치쇼는 그만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신당을 창설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예수와 바울에게서 진정한 중심인이 무엇인지를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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