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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순 목사 vs 이성희 목사, 개혁 or 안정?

  • 법과 교회
  • 입력 2015.04.22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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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기득권의 대물림을 극복하느냐 vs 기득권의 대물림을 유지하느냐
100회차 예장통합 부총회장 후보 문원순목사는 광장TV의 후보 출마이유에 대한 동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IKbNJNxwdcs)인터뷰가 나간 이후 약진하고 있다. 처음에 류영모가 목사가 부총회장 후보 출마를 포기하기 전의 삼파전 여론조사에서는 문원순목사가 3위를 달렸고 이성희 목사와는 3 배차로 뒤졌지만 류영모목사가 후보를 사퇴한 이후 인터뷰 동영상이 나간 이후, 총대들에게 상당히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현재 47: 53 으로 거의 박빙이다.

문목사, 돈쓰는 선거문화, 하나님의 진노 임할 것

더군다나 문목사는 돈안쓰는 선거문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돈 쓰는 선거문화를 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살 것이라고 주장해, 사실상 이성희 목사를 압박했다.  

이성희 목사측은 지난번 선거에 선거비용으로 약 20억을 사용했다는 소문이 있어 불법타락선거였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당시 서울노회는 연동교회에 모여 선거자금을 위한 헌금의 시간까지 가졌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성희 목사는 학력위조건에 걸려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장신대 대학원을 나오지 않았는데 대학원표기를 한 것이다.

▲  총대수첩   ⓒ 황규학
 
이번에 문원순목사는 인터뷰에서 어떤 후보는 20억을 쓰고도 떨어졌는데 자신은 10년동안 노숙자를 위하여 20억을 사용했다고 하여 서울노회까지 동원된 불법타락선거를 한 이성희 목사를 압박하였다. 


▲     ⓒ 법과 교회


특히 이번 선거는 기득권대 반기득권의 싸움이다. 선거자금이 넉넉한 이성희 목사측과 수십년까지 부었던 자신의 보험금까지 깨면서까지 후보공천비용을 마련해서 출마하려는 문목사의 경쟁은 그야말로 중심과 주변의 싸움이다. 문목사는 당시의 이회창후보에 대해서 싸우는 노무현후보 처럼 물질도 주변, 지역도 주변, 학벌도 주변, 후광도 주변 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지금까지의 선거는 대부분 대형교회 목사들간의 게임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대형교회대 소형교회, 중심대 주변, 부르조아대 프롤레타리아의 싸움이다. 더군다나 이성희 목사는 연세대학교를 나오고 미국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의 박사이고, 장신대에서 오랫동안 교회행정학을 가르쳤고, 이상근박사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후광을 많이 얻고 서울시 가장 한복판에서 목회하는 사람이다. 반면 문원순목사는 명지대를 나오고, 장신대학원을 거쳐 서울장신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공부해 본 적도 없고, 장신대에서 헌법학을 가르쳤고, 아버지보다는 장인의 영향을 받았고 서울시 주변부에서 노숙자 목회를 하는 사람이다.   


▲      ⓒ법과 교회
이성희 목사는 훌륭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영세교회 김충렬목사는 이성희 목사의 아버지인 이상근목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글을 썼다.

"이상근 목사님은 한국교회를 대표할 만한 목사 중의 목사이다. 그분은 한국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신 신학자요, 목회자요, 교육자이시다. 특별히 주경 신학자로서 저술하신 <이상근 주해서>는 한국교회의 기념비적인 주해서이다. 국내에 구약과 신약주해를 쓰신 분들이 더러 계시지만 신구약과 더불어 외경까지 모두 주해서를 낸 분은 없고, 세계적으로도 이목사님이 유일하다. 또 내가 보기로는 이 목사님의 주해서가 목회자들이 읽고 적용하기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학문적이면서 은혜로운 주해서이기 때문이다."

고 이상근박사는 예장통합교단의 성서신학을 기초한 훌륭한 사람이다. 합동에 박윤선박사가 있었다면 통합에는 이상근박사가 있었다. 모든 한국의 목사들은 이상근박사의 주석이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이성희 목사는 목회자가 되었다. 이성희 목사는  “아버지가 목회하시는 걸 보면서 자란 것이 일종의 프리미엄인 것 같다”고 고백한다.

“선친께서는 평생 새벽 3시면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 읽는 분이었다”면서 자신도 목사는 의례 그렇게 하는 거라고 믿고 자랐으며 이상근 목사의 생활습관을 닮아갔다고 했다. “몸으로 체득한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목사는 “아버지가 목회하시는 걸 보면서 자란 것이 일종의 프리미엄인 것 같다”고 고백한다. 이성희 목사가 기억하는 이상근목사의 또 다른 모습은 식기도 시간이면 항상 자식들, 손자들까지 이름 하나 하나를 부르면 기도하던 것. 그래서 “아버지가 신앙적인 복을 뿌려 놓고 가셨다”(2000. 3.25. 기독공보) 


그러나 문원순목사는 이성희 목사가 거목 아버지 목사의 영향받은 것과는 달리 1980년 군인장교대위시절 한얼산기도원에 갔다가 한다리 없는 이천석 목사로부터 은혜를 받는다. 이천석목사는 "한 다리 없는 나도 술을 끊는데 두다리 가진 너희들은 술도 못 끝내냐"는 말에 은혜를 받고 그 다음 날로 결단하여 술을 끊고, 다음 해에 신학교를 들어가서 목사가 되어 지금까지 한 방울의 술도 먹지 않았고 부흥사의 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이성희 목사가 두다리를 가진 성서 주석가의 영향을 받은 반면 문원순 목사는 한다리를 가진 부흥사 이천석목사의 영향을 받는다.   

▲   설교하는 이천석 목사  


▲   한얼산기도원 신축예배  ⓒ 황규학


더군다나 전국을 다니면서 수십개의 교회를 개척한 그의 장인 김수만 장로도 불행하게도 한 다리였다. 문목사는 한다리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은혜를 받아 평생 복음전도의 정신을 이어받아 어려운 사람을 위하는데 헌신하기로 작정했다. 

장신대 임희국교수는 문목사 장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책을 만들었다. 


▲     ⓒ법과 교회
김수만은 나이 40세에 뜻밖의 사고를 당하여 오른 쪽 무릎 위(대퇴부)를 잘라내었다. 절망 가운데서 기도에 전념하던 김수만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다시 일어서게 되었고, 몇 년 뒤에 장애인으로서 복음전도자로 나섰다. 가족들의 생계를 하나님께 맡기고 복음전도자로 나선 김수만은 40대 후반부터 약 25년 동안 경상북도 안동지역의 남후면, 임하면, 길안면을 '목발 짚고 절뚝절뚝 절면서' 두루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세웠다. 문전박대와 핍박을 감내하면서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끝내 교회설립으로 열매를 맺었다. 김수만은 목수 일에도 능통하였으므로 손수 교회를 지었다. 교인들과 함께 그가 직접 지은 교회만 헤아려도 개곡 고곡 길안 금곡 금소 송사 신덕 임하 교회였다. 특히, 임하교회의 종탑은 그의 땀과 눈물이 배인 유품으로 남아있다. 2004. 9. 4. 기독공보는 김수만 장로에 대해 "안동지역 '절름발이 전도자 김수만장로'"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썼다.  

이처럼 문원순목사는 자신은 두 다리이지만 주로 한 다리만 있는 목사, 장로한테 영향을 받아 평생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다는 정신이 자연스럽게 그의 가슴 한가운데서 싹텄던 것이다. 그의 가슴에는 지금도 자신을 깨닫게 한 이천석목사와 장인 김수만 장로의 정신이 녹아있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은 그들의 인생을 달리 만들었다. 고학생이자 노숙자의 아버지 문원순목사는 상계동에서 노숙자들을 목회하는 것과 달리 이성희 목사는 한국최고의 주석학자 이상근박사의 영향을 힘입어 아카데믹한 목사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 샌브란시스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장신대에서 교회행정학 교수로 활동하고, 기독교의 메카 종로 5가에서 목회를 한다. 

연동교회는 1960년 통합측이 태생한 역사적 교회이기도 하다. 이성희목사는 장신대 총장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을정도로 엘리트코스를 밟아왔다. 문원순목사는 장신대에서 고작 헌법학 2년 정도만 강의 했을 따름이다. 모든 삶과 외형적 여건이 이성희 목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성희 목사는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미국에 가서 공부하면서 학위를 따지만 문목사는 육사에 합격했지만 연좌제로 중도에 탈락하고, 고학생으로서 낮에는 일하고 방에는 명지대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다.

이처럼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번 선거는 이회창대 노무현 처럼 기득권세력 대 반기득권세력, 중심노회대 주변노회간의 싸움이다. 서울노회는 한국에서 가장 중심된 노회이고, 서울북노회는 동두천, 포천까지 포용하는 주변노회 이다.

특히 두 사람의 전공도 다르다. 이성희 목사는 교회행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문원순목사는 교단헌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는 헌법위원장을 두 번씩 역임하면서 교단헌법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이성희 목사는 총회서  활동한 바 있다.

기득권 vs 반기득권의 싸움

이처럼 이번 후보들은 살아온 과정들이 너무나도 현격하게 차이가 나고, 활동도 다르다. 문목사는 가난과 고난의 대물림을 여전히 갖고 있고 이성희 목사는 기득권의 대물림을 여전히 유지하고있다. 

문목사는 이번 선거로 승리하여 가난과 비기득권의 대물림을 극복하여 주변의 목회자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절호의 기회이고, 이성희 목사는 기득권의 대물림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첫번째 선거의 고배를 져버리고 이 번에는 단 포도주를 마셔야 할  기회 이다. 결국 이번 선거는 기득권대 반기득권의 싸움 이다. 비기득권의 대물림을 극복하느냐, 기득권의 대물림을 유지하느냐의 싸움이다. 중심이 주변으로 갈지, 주변이 중심으로 갈지는 총대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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