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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법정 왜 필요한가?

  • 황규학(법학 박사)
  • 입력 2015.06.25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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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소극주의 방지, 부실한 교단재판 극복
기독교법정의 필요성

성서의 역사는 부실한 재판의 역사이다. 요셉은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히고, 다니엘 역시 밀고자들로 인해 사자감옥에 갇히고, 바울도 억울하게 이단으로 정죄받아 감옥에 갇히고, 예수역시 부당한 재판을 당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그 이후에도 중세의 마녀사냥재판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현실이 옛날의 현실이 아니다. 현재 한국사회도 전관예우, 무전유죄, 유전무죄, 교단의 정치적 재판, 마녀사냥재판으로 인해 억울한 재판이 수 없이 많이 있다.

또한 실체적 진실이 규명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즉  증거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선고를 하여 억울한 재판을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 따라서 한국현실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오판과 정치적 재판을 바로 잡고 또 부실재판을 예방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도피성이 될 기독교법정이 절실히 필요할 때 이다. 특히 교계재판의 오판과 부실은 상식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교회재판소의 기원
  
교회재판소의 기원은 교권이 강력한 중세의 카톨릭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는 교회의 권한이 왕권 이상 강했기 때문에 교회재판소는 사실상 세속재판소와 다름이 없이 구속력을 갖고 있었다. 당시 교회재판소가 다루는 것은 주로 교회의 규율이나 행정, 성직자나 교회 관련 기관들이 주장하는 재산, 십일조와 성직록, 맹세와 서약 그리고 이단에 관한 시비 등 모든 분쟁들에 대한 것들이다. 이단들이 너무 강력히 침투하여 반드시 진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특별 교회재판소, 즉 종교재판소(Inquisition)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하급 재판소들은 주교들이 맡았지만 대부분 주교를 대리하는 대부제들이 특별 검사들과 서기들의 도움을 받아 재판을 맡았으며, 갈수로 교회법과 로마법에 익숙한 사람들이 대부제를 대신하여 재판을 하게 되었다. 즉 처음에는 법을 잘 모르는 주교들이 재판을 담당했으나 점진적으로 세속법과 교회법 모두를 잘 아는 사람들이 재판을 하게 되었다. 하급심에서 불이익을 당하였을 경우, 항소는 대주교에게로, 상소는 교황사절들을 통해서 로마로 올라갔다. 이러한 교회재판소는 점진적으로 교회법과 세속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맡게 되었다.

중세에 교회재판소가 폭넓은 권한을 행사하는 데 대해 큰 논쟁이 벌어졌는데,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보호 아래에 있음을 주장하면서 교회재판소를 피난처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한 사람들 가운데는 십자군 병사, 학생, 과부, 고아들이 있었으며,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법의 특정 분야에서 이 권리를 주장했다.

교회재판소, 억울한 사람들의 피난처

이처럼 교회재판소는 억울한 사람들의 도피성과 피난처 역할을 하였고, 세속적인 왕의 법원이 충분히 처리하기 어려운 지역들에서 재판권을 맡았다. 그러나 왕의 세속법원이 증가한 14세기에는 두 권력 사이의 논쟁도 크게 고조되었다. 교회재판소의 권위가 커지자, 세속 권력자들은 교회재판소의 권한을 줄이는 방법을 고안해냈는데, 이 가운데 하나는 재심 청구를 통해 세속재판소에 항소하는 것이었다. 그 뒤에는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교회의 재판권을 영적인 문제들에 국한시켰다. 시민의 혼인계약을 성사와 구분했고, 다른 계약들과 유언도 세속재판소에서 다루었다.

16세기경 유럽 대륙에서는 교회재판소들이 대부분 세속재판소 기능을 하지 않게 되었으나, 그 흔적은 남았다. 예를 들어 독일 일부지역들에서는 1900년 '독일시민법'(German Civil Code)이 효력을 발생하기 전까지는 혼인과 이혼 문제가 교회재판소 관할 아래 있었다. 오늘날 영국 교회재판소들은 교회 건물들에 관한 민사소송이나 성직자가 교회와 관련된 죄목으로 기소된 형사소송에 대해서 재판권을 행사한다.

기독교법정, 법의 사각지대 사건 다루어야

앞으로 교회재판소(기독교법정)는 세속법정이 미치지 못하는, 즉 사법부가 기피하거나 기각하는 교회분쟁사건들에 대해서 일익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사법부는 권징이나 예배, 교리와 관련한 면은 기피대상이다. 한국의 각 교단마다 법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 재판이 이루어지다 보니 절차하자, 법리오용, 채증법칙의 위배, 양형의 예측불가능성, 정치적, 정서적 재판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 억울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기독교법정은 절실이 필요할 때이다. 불신자들의 억울한 한도 씻어 주어 기독교의 권위도 높여야 할 것이다.     

세속법정은 종교문제에 대해서는 재판하기도 어렵고 소극적이라 기각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면 교단의 불법, 오판 재판이 양산되는 것이다. 기독교법정은 이러한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 담당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다가 일반 사람들이 세속법정까지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도래하였기 때문에 이럴 때일수록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어 억울한 사람들, 오심을 당한 사람들의 한을 씻어줄 필요성이 있다. 영국의 형펑법 법정은 보통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완하기위해 만들어 졌다.  

영국의 형평법 법정

영국에서는 이미 존재했던 보통법이 있었지만 재판의 한계가 있자, 형평법 법정을 발전시켰다. 영국의 형평법 법정은 15세기 보통법(common law) 법원에서 얻을 수 없는 구제수단을 제공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고등법원의 대법관부(또는 형평법부)를 구성하고 있다. 동 법원은 영국 연방의 몇몇 지역과 미국의 일부 주에서 여전히 독립된 재판관할권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보통법은,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엄격한 부분이 많았고 점점 더 경직되었으며 융통성을 상실하였다. 민사사건에서 이용가능한 구제수단은 주로 손해배상의 지급과 토지나 가재의 소유권 회복에 한정되었다. 이처럼 보통법 법원은 새롭고 보다 복잡한 상황에 대처하여 구제수단의 유형을 확대하고 다양화하기를 거부했으며, 법률의 문언에 집착함으로써 당사자간의 이해를 공정하고 공평하게 취급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이외에도 15세기에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면서 강력한 지방영주들은 배심원들을 매수하거나 위협하고 법원의 명령에 도전할 수 있게 되어 보통법 법원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떨어져 나갔다.

그러한 이유로 패소하거나 또는 적절한 영장을 발부받지 못한 소송 당사자들은 결국 국왕과 왕실회의에 대해 보통법의 엄격한 법 규칙이 요구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도덕과 양심이 요구하는 행위를 상대방에게 강제할 것을 청원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청원을 받으면 국왕은 보통 이를 대법관에게 보내 처리하게 했는데, 15세기경 대법관은 형평법에 기초한 일련의 구제수단과 그러한 구제수단을 운용하는 방책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대법관은 형평법상의 재판관할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초기에는 보통법 법관들과는 달리 선판례의 구속을 받지 않았다. 대법관은 자신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 광범한 권한을 지녔으며, 그러한 권한을 행사하는 데는 절차상 최소한의 형식만이 요구되었다. 형평법 법원은 보통법 법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송비용이 저렴하고 소송목적 달성에 효과적이었으며 판결도 공정했다.

15, 16세기에 걸쳐 형평법 법원은 보통법 법원을 앞질러 극적으로 발전했다. 17세기에는 보통법 법원의 법관들과 의회로부터의 반대가 거세졌다. 그들은 형평법 법원이 보통법 법원의 영역을 침범하는 데 분노했으며, 대법관은 손해배상 등과 같이 보통법에 적절한 구제수단이 존재하는 사안에 대하여는 심리하지 말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현실과 기독교법정의 필요성

현재 한국의 현실은 교회소송분쟁이 너무 많아 법원이 화해중재원까지 인정할 정도인데 화해중재원의 기능은 너무나도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1년에 화해 조정되는 건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화해가 거의 되지 않는 경우는 이미 법원에 갈 때부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법을 전공하지 않은 목회자들의 불법적인 판단과 오판, 법원의 재판 기피로 인해 불법의 사각지대를 양산하게 되었다. 기초적인 법의 형성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 고태만 잡고 두드려 세속법정의 판사들을 흉내내고 있다. 아이에게 칼을 주는 것과 같다. 의사에게 칼을 주면 사람을 살리지만 선무당이나 아이에게 칼을 주면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양심적인 법전문대교수들, 변호사들, 교회법전문가들, 교리전문가들 등이 나서서 기독교법정을 형성하여 억울한 사람들의 도피성이나 피난처가 되어 오판이나 잘못된 판결로인해 법으로부터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어 기독교의 권위를 높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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