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를 아우르는 온신학이 대안 , 예장통합교단에서 근본주의 설 자리 없어
김명용 장신대 총장은 2015. 2. 26. 미주장신대에서 예장통합교단의 신학으로서 온신학을 강조했다. 온신학은 다른 말로 하면 통전적 신학의 한국말이다. 역사와 사회, 교회, 영성 등을 모두 함께 아우르는 신학이다. 그러는 의미에서 김명용 총장은 근본주의 신학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판한다.
근본주의는 반역사적 성차별적 시대착오적 신학
한국교회는 근본주의라는 수준 낮은 신학이 휩쓸고 있습니다. 근본주의 신학은 성경이해의 기본도 안되어 있는, 성경 안에 있는 역사적 요소와 같은 것들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또한 그들의 신학은 성차별 신학입니다. 총신 계통은 여성안수를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 안수만 허락하지 않는 게 아니고 세계관 자체가 성서시대의 과학에 묶여 있는,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현대인들과 시대적인 차이가 벌써 2-3천년 간극이 벌어져 있는 시대착오적 신학입니다.
예장통합은 불행하게도 이단정죄는 이러한 시대착오적 반역사적 신학의 토대위에서 교단사상 가장 많은 45명이나 이단정죄를 해왔다. 김명용총장에 의하면 예장통합이대위는 수준낮은 반쪽자리이면서 반역사적이고 성차별적인 근본주의 신학토대위에서 이단정죄를 해온 것이다.
김명용총장은 온신학이야 말로 세상을 구원할 신학이라고 보고 있다.
"저는 ‘온신학’(Holistic Theology)이 세계를 구원할 신학이라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온신학’은 교회를 참으로 살리는 신학이자, 세계를 살리는 신학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미국과 유럽 등의 전 세계를 다니면서 많은 석학들을 만나고 대화했지만 ‘온신학’보다 위대한 신학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명용교수는 중국선교에 대해서도 근본주의 신학이 가운데 있기 때문에 걱정된다고 하였다. 근본주의 신학을 사이비신학에까지 비교하고 있다.
중국교회를 보면 참 빨리 발전하고 있습니다. 발전하는 중국교회를 보면서 걱정도 되는 것이, 그 가운데에는 근본주의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중국민족의 정신을 바르게 개조하고,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21세기 세계평화를 위해서 엄청나게 중요한데, 수준 낮은 근본주의나 사이비가 영향을 미쳐 세계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중미,남미도 보편주의 신학보다 근본주의 신학이 미치면서 신학의 공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프리카, 중미, 남미 등을 보면 편협하고, 극단적인 신학이 미치면서 신학의 공백이 굉장히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제가 온신학을 빨리 발전시켜서 전 세계로 확장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형룡신학은 개혁이 덜 된 반개혁신학
김명용교수는 온신학은 반쪽 짜리 반달같은 신학이 아니라 보름달 같은 온전한 신학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면서 박형룡의 근본주의 신학은 반쪽 짜리 신학이라기 보다는 개화가 덜 된 신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개혁신학이 아니라 반개혁신학이 되는 것이다.
사실 한국교회 역사에서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근본주의신학입니다. 우리는 박형룡 박사를 위시한 근본주의 신학자를 ‘보수’라고 하는데 저는 그게 맞는 단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들은 보수가 아니라 개화가 덜 된 사람들입니다.
박형룡의 근본주의는 오직 전도의 신학, 영혼중심의 신학입니다. 이는 역사에 대한 비판주의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역사는 자꾸 나빠져 장차 이 세상이 망하다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엉터리 해석을 통해 나온 신학일 뿐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기본도 모르는 신학입니다.
박형룡의 신학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오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것입니다. 박형룡은 역사가 발전해서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는 자유주의에 반대해, 역사가 완전히 망해 마귀가 지배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장차 망할 세상에서 영혼을 구원해 천당에 보내는 것, 오직 전도뿐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런 신학은 반쪽짜리 신학일 뿐입니다. 개인만 구원하는 게 아닌, 온 세상을 구원하는 우주적 차원의 신학이 필요합니다. 이런 박형룡의 근본주의 신학은 역사 책임적인 교회를 만드는데 실패한 신학일 뿐입니다.
역사가 결여된 신학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반쪽 짜리 신학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유신독재 반대에 근본주의 계열은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유신이나 군사독재 시절에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일한 민주인사들 가운데 박형룡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박형룡의 근본주의에서는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역사 속에서 마귀 통치를 몰아내고 의의 통치를 위해 일하는 이들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민주화를 위해 일한 민주인사의 3분의 1이 기독교 지도자들이었는데, 그분들은 거의 다 다른 전통에서 그들의 정신을 형성했습니다.
민주화운동을 이끈 문익환, 문동환, 박형규, 김진홍, 서경석, 고영근, 인명진, 이현주 등은 기장, 통합, 기감출신이다. 근본주의 신학은 역사가 없는 신학이다.
조용기 신학은 삶의 신학
그러면서 조용기의 삼중축복은 근본주의 신학과 다른 신학이라고 말을 하면서 일종의 삶의 신학이었다고 말을 한다. 오히려 박형룡의 근본주의신학이 희망을 주지 못한 삶의 부분을 해결해 주어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삶의 신학이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예장통합교단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어 죽음의 신학이 되었던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의 손에 잡히면 모든 것이 죽음의 불랙홀에 빠지게 된다.
조용기 신학의 특징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의 죽음을 영혼의 죄를 속량하는 기능에서만 이해한 게 아니라, 구체적 삶과 연결해서 해석했다는 점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구체적 삶과 연결시켜 질병, 가난을 지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질병과 가난에서 해방된다는 조용기 신학은 일종의 ‘삶의 신학’이었습니다.
오순절주의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배경에는 ‘영혼 신학’과 다른 ‘삶의 신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박형룡의 영혼 신학은 희망을 주지 못했고 오직 천당에 가야 희망이 있었는데, 조용기의 삶의 신학은 예수 믿으면 질병, 가난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구체적 삶의 구원자로 나타난 것입니다.
사실 복음은 실제 생활에서 우리를 구원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과 질병 등의 구원자이십니다. 저는 교인들이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엄청난 말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처참한 고통에서 건져내신, 종국에는 죽음에서도 구원해내신 어마어마한 구원자라는 것을 제대로 전하면 교회가 혁명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목사들이 이러한 복음을 제대로 설교하지 않고 있습니다. 설교를 제대로 하면 그 순간 감격과 엄청난 구원의 소식이 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김명용교수는 조용기 신학은 방법론적인 면에 있어서 미신주의가 가미되었다고 주장했다.
그 구원의 기쁨의 소식이 조용기목사를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그게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삼중축복의 신학은 온전한 복음에 도달하진 못했습니다. 개인의 축복이란 영역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역사적 차원으로 확대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방법론적인 면에 있어서 미신적인 요소가 가미되었습니다. 기적적인 것도 있지만, 조금씩 설득을 통해 나아가면 좋은데, 하나님의 사역을 특수한 쪽만 바라본 온전하지 못한 신학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중신학은 부활이 없는 신학
그는 민중신학에 대해서는 부활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민중신학은 해방신학과 마찬가지로 범세계적으로 사회나 정치 속에 내재된 사탄적인 것들에 대해 인식하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발전한 민중신학이 교회신학으로 뿌리내리지 못한 심각한 결함이 있는데, 바로 속죄론이 없다는 점입니다. 안병무 박사에 의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속죄의 죽으심이 아닌 하나의 민중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의 의식이 갈릴리에서 다시 살아난, ‘육체의 부활’이 아닌 ‘정신의 부활’로 봤다는 점입니다.
종교다원주의나 민중신학은 부활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것들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활은 우리의 희망이자, 부활의 역사가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구체적 삶 속에서 실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중신학은 부활은 육체가 아닌 의식의 부활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 장신대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민중신학의 영향을 받은 한 학생이 채플 시간에 ‘작은 예수 전태일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고 기도해서 교수들을 경악케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학생들에게 기도문을 검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온신학만이 기본의 반쪽짜리 근본주의 신학, 기복이 가미된 조용기신학, 부활이 없는 민중신학의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김총장은 온신학의 특징으로서 삼위일체 신학, 하나님의 주권과 은총의 신학, 개인만이 아니라 우주도 구원하는 신학, 하나님나랄 위한 신학, 기도와 사랑의 신학이라고 주장한다. 즉 영혼과 기적, 국가, 역사, 사회를 통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신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온신학이 무언엇가 김명용교수의 강의를 통해서 알아보자. 이 책은 스페인어, 일어, 중국어, 영어로 번역되어 세계로 나간 책이다.
온신학이 미래 대안 신학
그럼 ‘온신학’의 특징은 무엇이냐? 그 특징을 7가지로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첫째로, ‘온신학’은 삼위일체 신학입니다.
종교다원주의, 민중신학, 철학적 신학 가운데도 삼위일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삼위일체론을 초대교회가 발전시킨 사변이라고 말하는 신학생이 많은데, 그들은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합니다. 삼위일체가 정초되는 자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자리였습니다. 이게 떠나버리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종교학과 철학으로 변모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의 부활이 기독교가 정초하고, 신학이 정초하는 자리입니다. 이후 기독교는 325년 니케아신조(The Creed of Nicaea)가 발표되면서 일신론과 결별합니다. 기독교는 일신론이 아니라 삼위일체 신학입니다. 니케아신조의 핵심은 야훼 하나님 외에 똑같은 본질과 신성을 가진 분이 계신다는 것을 반포한 것입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신조가 반포되면서 우리의 예배와 경배를 받으시는 성령이 계신다는 것을 반포했습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는 정통 중의 정통, 다시 말해 이를 거부하면 이단이 되는 신조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을 거부하는 것은 장로회신조를 거부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도신조는 750년경에 선포된 서방신조입니다. 하지만 니케아 신조는 동서교회가 함께 고백한 최초의 정통신조입니다. 그 신조를 통해 고백하는 게 바로 삼위일체입니다.
삼위일체는 예수의 부활에서 정초되었습니다. 종교다원주의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생명의 주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들은 모두 무덤 속에 썩었으며, 무덤을 깨드릴 힘이 없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신학자들이 가짜 신을 꺼내어 옷을 입히는 사람이 많은데, 그 가짜 신은 자비하지도 않습니다.
불교는 깨닫는 종교입니다. 우주의 법을 깨닫게 하는 종교이고, 그것을 넘어서게 하는 종교입니다. 석가모니는 참 현인이십니다. 한국에서는 근본주의자가 절만 보면 공격성이 발동해, 부처님 이마에 십자가를 그려 넣고 하는데, 그건 폭력이고 행패입니다. 그분이 얼마나 좋고, 배울게 많습니까? 그런데, 현인이시고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하지만 석가가 생명의 주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석가는 죽은 자를 살릴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죽음을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감격이 신학의 기초가 되어야 되는데, 삼위일체도 없는 신학이 어디에 쓸모가 있겠습니까?
두 번째로 ‘온신학’은 하나님의 주권과 은총의 신학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예기하면서 율법적인 주권을 이야기하는 분이 많습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은 은혜와 자비의 주권입니다.
세 번째로, 온전한 복음은 영혼뿐 아니라 육체도, 개인만 아니라 사회와 역사, 우주도 구원하는 신학입니다.
저는 중국에 갈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지성인과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 꼭 아편전쟁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독교 국가라는 영국이 탐욕에 사로 잡혀서, 아편 팔아먹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을 죽였습니다. 신해혁명이 일어나면서 중국의 지성인이 교회를 파괴하고, 도륙한 이유가 아편전쟁의 비극적 역사 때문입니다.
이 식민지배욕 뒤에 마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사랑과 생명과 평화가 지배하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 임한 것처럼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이 분명한 신학이 온신학입니다.
넷째로, ‘온신학’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신학입니다.
또한 온신학은 대화적 신학입니다. 단순히 다른 신학과 종교들과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냉전을 끝내는 데에는 니코라이교회(Nikolaikirche)의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이 기적 배후에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남아공에서 인종차별의 벽을 허물고 정의와 인권이 숨 쉬는 나라를 만든 데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세계의 도처에 나타나는 생명과 평화의 역사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너무 기독론적인 신학을 전개해왔습니다. 제가 전공한 칼 바르트(Karl Barth)도 기독론에 정초했습니다. 기독론적인 신학은 일차적으로 중요한 신학입니다. 신학이 건전하기 위해선 기독론에 정초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성령론적인 차원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한쪽은 기독론으로 정초하고, 한쪽은 성령론으로 열려있어야 합니다.
이곳에서 신학을 하는 사람은 LA라는 자리의 성령론을 기초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성령론은 다른 경험을 기초해서 발전합니다. 세계의 도처에서 활동하는 성령의 역사를 폭넓게 이해하고, 바르게 성령의 활동에 대해 대화를 해야 합니다. 성령론적 인식의 깊이 속에서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근본주의에 물든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보면, 자기는 세상이야기를 안하고 그냥 성경이야기만 한다고 자랑합니다. 그들은 세계와 역사에서 활동하는 성령의 활동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칼 바르트가 말한 것처럼 ‘한 손엔 성경, 한 손에 신문’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성경과 세계가 끊임없이 대화를 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로 ‘온신학’은 기도와 사랑의 신학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인 힘이 기도와 사랑에 있습니다. 기도는 인생을 역전시킵니다.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목사들이 기도하면 진짜 운명이 바뀐다는 것을 모르고 목회하니 목회가 제대로 될 리가 있습니까? 기도가 삶과 역사를 바꿉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내 삶의 기적과 이적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가짜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권징의 회복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마귀를 이기는 결정적 도구가 사랑입니다. 세계 정치를 보면 이기적 정치이지, 사랑의 정치가 아닙니다. 그러니 테러가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이기심이 세계 질서에 들어가면 마귀의 역사가 그 자리에 일어납니다.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사랑입니다. 나머지는 거기에 종속되는 것일 뿐입니다. 사랑이 역사를 바꿉니다. 이게 진정한, 온전한 신학입니다(뉴스M의 양재영기자 강의 요약토대).
최태영교수의 평가
영남신대 최태영교수는 "한국교회의 모든 신학적 흐름을 수렴하면서 동시에 한국적인 독창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여러 가지 신학적 흐름을 형성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적 신학을 형성하기 위해 달려왔다고 할 수 있다”며 “지금까지 여러 형태의 한국적 신학이 시도됐지만, 바람직한 한국적 신학은 한국교회의 모든 신학적 흐름을 수렴하면서 동시에 한국적인 독창성을 잘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토대를 둘 때 온신학은 이종성교수가 주장했던 통전적 신학의 연속이고 보다 구체화한 신학이다. 통전적 신학은 추상적인데 김명용 총장은 추상적 신학을 현실화하였다. 지금까지 예장통합이대위는 수준낮은 반쪽짜리 근본주의 신학의 토대하에 이단을 45명이나 정죄했다. 이제는 예수처럼 죄인을 수용하기 보다는 바리새주의의 원리신학에 입각하여 사람을 정죄하는 근본주의의 악령을 퇴출해야 한다. 한기총, 합동교단, 군소교단도 근본주의 신학에 토대를 두다 보니 약간 주장의 차이가 나기만 해도, 계속 분열이다. 근본주의 악령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이대위도 용서와 화합보다는 계속 정죄이다. 원리와 분리, 근본주의의 영이 그들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이제 한기총이나 예장통합의 이대위는 바뀌어야 한다. 문구나 한두문장의 차이로 이단정죄할 것이 아니라 큰 신학의 틀안에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통신조 중의 하나인 아타나시우스의 신조안에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근본주의의 악령 퇴치해야
이대위는 이제는 수준낮은 반쪽짜리 반개혁신학의 토대에서 벗어나서 온전하게 다양성을 갖는 온신학의 토대위에서 이단여부를 평가할 필요성이 있다. 이성희 목사는 공청회에서 이단에 대한 명확성, 실제성을 갖고 아타나시우스의 신조에 벗어나면 이단으로 해야하고, 문원순 목사 역시 약간의 신학적 차이가 나는 것으로 이단정죄해서는 안되고, 회개와 사과를 통해서 수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근본주의 신학에 토대를 둔 교단은 계속 쪼개지고 분리하고 다시 합병하고, 다시 분열하는 분열의 악순환을 계속 해왔다. 한국장로교의 역사가 이를 말해준다. 근본주의 신학에서 벗어난 예장통합교단은 한번도 분리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단정죄는 근본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아왔다.
근본주의 신학과 악령을 퇴치하고 온신학을 수용하는 길이 교단과 한국교회가 사는 길이다. 온신학이 무엇인가?라는 책은 벌써 세계의 여러나라 언어로 번역되었다. 예장통합교단 역시 이 온신학을 교단총회에서 교단의 신학으로 채택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근본주의는 반역사적 성차별적 시대착오적 신학
한국교회는 근본주의라는 수준 낮은 신학이 휩쓸고 있습니다. 근본주의 신학은 성경이해의 기본도 안되어 있는, 성경 안에 있는 역사적 요소와 같은 것들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또한 그들의 신학은 성차별 신학입니다. 총신 계통은 여성안수를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 안수만 허락하지 않는 게 아니고 세계관 자체가 성서시대의 과학에 묶여 있는,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현대인들과 시대적인 차이가 벌써 2-3천년 간극이 벌어져 있는 시대착오적 신학입니다.
예장통합은 불행하게도 이단정죄는 이러한 시대착오적 반역사적 신학의 토대위에서 교단사상 가장 많은 45명이나 이단정죄를 해왔다. 김명용총장에 의하면 예장통합이대위는 수준낮은 반쪽자리이면서 반역사적이고 성차별적인 근본주의 신학토대위에서 이단정죄를 해온 것이다.
김명용총장은 온신학이야 말로 세상을 구원할 신학이라고 보고 있다.
"저는 ‘온신학’(Holistic Theology)이 세계를 구원할 신학이라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온신학’은 교회를 참으로 살리는 신학이자, 세계를 살리는 신학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미국과 유럽 등의 전 세계를 다니면서 많은 석학들을 만나고 대화했지만 ‘온신학’보다 위대한 신학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명용교수는 중국선교에 대해서도 근본주의 신학이 가운데 있기 때문에 걱정된다고 하였다. 근본주의 신학을 사이비신학에까지 비교하고 있다.
중국교회를 보면 참 빨리 발전하고 있습니다. 발전하는 중국교회를 보면서 걱정도 되는 것이, 그 가운데에는 근본주의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중국민족의 정신을 바르게 개조하고,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21세기 세계평화를 위해서 엄청나게 중요한데, 수준 낮은 근본주의나 사이비가 영향을 미쳐 세계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중미,남미도 보편주의 신학보다 근본주의 신학이 미치면서 신학의 공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프리카, 중미, 남미 등을 보면 편협하고, 극단적인 신학이 미치면서 신학의 공백이 굉장히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제가 온신학을 빨리 발전시켜서 전 세계로 확장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박형룡신학은 개혁이 덜 된 반개혁신학
김명용교수는 온신학은 반쪽 짜리 반달같은 신학이 아니라 보름달 같은 온전한 신학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면서 박형룡의 근본주의 신학은 반쪽 짜리 신학이라기 보다는 개화가 덜 된 신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개혁신학이 아니라 반개혁신학이 되는 것이다.
사실 한국교회 역사에서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근본주의신학입니다. 우리는 박형룡 박사를 위시한 근본주의 신학자를 ‘보수’라고 하는데 저는 그게 맞는 단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들은 보수가 아니라 개화가 덜 된 사람들입니다.
박형룡의 근본주의는 오직 전도의 신학, 영혼중심의 신학입니다. 이는 역사에 대한 비판주의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역사는 자꾸 나빠져 장차 이 세상이 망하다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엉터리 해석을 통해 나온 신학일 뿐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기본도 모르는 신학입니다.
박형룡의 신학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오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것입니다. 박형룡은 역사가 발전해서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는 자유주의에 반대해, 역사가 완전히 망해 마귀가 지배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장차 망할 세상에서 영혼을 구원해 천당에 보내는 것, 오직 전도뿐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런 신학은 반쪽짜리 신학일 뿐입니다. 개인만 구원하는 게 아닌, 온 세상을 구원하는 우주적 차원의 신학이 필요합니다. 이런 박형룡의 근본주의 신학은 역사 책임적인 교회를 만드는데 실패한 신학일 뿐입니다.
역사가 결여된 신학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반쪽 짜리 신학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유신독재 반대에 근본주의 계열은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유신이나 군사독재 시절에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일한 민주인사들 가운데 박형룡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박형룡의 근본주의에서는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역사 속에서 마귀 통치를 몰아내고 의의 통치를 위해 일하는 이들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민주화를 위해 일한 민주인사의 3분의 1이 기독교 지도자들이었는데, 그분들은 거의 다 다른 전통에서 그들의 정신을 형성했습니다.
민주화운동을 이끈 문익환, 문동환, 박형규, 김진홍, 서경석, 고영근, 인명진, 이현주 등은 기장, 통합, 기감출신이다. 근본주의 신학은 역사가 없는 신학이다.
조용기 신학은 삶의 신학
그러면서 조용기의 삼중축복은 근본주의 신학과 다른 신학이라고 말을 하면서 일종의 삶의 신학이었다고 말을 한다. 오히려 박형룡의 근본주의신학이 희망을 주지 못한 삶의 부분을 해결해 주어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삶의 신학이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예장통합교단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어 죽음의 신학이 되었던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의 손에 잡히면 모든 것이 죽음의 불랙홀에 빠지게 된다.
조용기 신학의 특징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의 죽음을 영혼의 죄를 속량하는 기능에서만 이해한 게 아니라, 구체적 삶과 연결해서 해석했다는 점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구체적 삶과 연결시켜 질병, 가난을 지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질병과 가난에서 해방된다는 조용기 신학은 일종의 ‘삶의 신학’이었습니다.
오순절주의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배경에는 ‘영혼 신학’과 다른 ‘삶의 신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박형룡의 영혼 신학은 희망을 주지 못했고 오직 천당에 가야 희망이 있었는데, 조용기의 삶의 신학은 예수 믿으면 질병, 가난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구체적 삶의 구원자로 나타난 것입니다.
사실 복음은 실제 생활에서 우리를 구원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과 질병 등의 구원자이십니다. 저는 교인들이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엄청난 말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처참한 고통에서 건져내신, 종국에는 죽음에서도 구원해내신 어마어마한 구원자라는 것을 제대로 전하면 교회가 혁명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목사들이 이러한 복음을 제대로 설교하지 않고 있습니다. 설교를 제대로 하면 그 순간 감격과 엄청난 구원의 소식이 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김명용교수는 조용기 신학은 방법론적인 면에 있어서 미신주의가 가미되었다고 주장했다.
그 구원의 기쁨의 소식이 조용기목사를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그게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삼중축복의 신학은 온전한 복음에 도달하진 못했습니다. 개인의 축복이란 영역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역사적 차원으로 확대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방법론적인 면에 있어서 미신적인 요소가 가미되었습니다. 기적적인 것도 있지만, 조금씩 설득을 통해 나아가면 좋은데, 하나님의 사역을 특수한 쪽만 바라본 온전하지 못한 신학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중신학은 부활이 없는 신학
그는 민중신학에 대해서는 부활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민중신학은 해방신학과 마찬가지로 범세계적으로 사회나 정치 속에 내재된 사탄적인 것들에 대해 인식하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발전한 민중신학이 교회신학으로 뿌리내리지 못한 심각한 결함이 있는데, 바로 속죄론이 없다는 점입니다. 안병무 박사에 의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속죄의 죽으심이 아닌 하나의 민중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의 의식이 갈릴리에서 다시 살아난, ‘육체의 부활’이 아닌 ‘정신의 부활’로 봤다는 점입니다.
![]() |
종교다원주의나 민중신학은 부활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것들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활은 우리의 희망이자, 부활의 역사가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구체적 삶 속에서 실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중신학은 부활은 육체가 아닌 의식의 부활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 장신대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민중신학의 영향을 받은 한 학생이 채플 시간에 ‘작은 예수 전태일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고 기도해서 교수들을 경악케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학생들에게 기도문을 검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온신학만이 기본의 반쪽짜리 근본주의 신학, 기복이 가미된 조용기신학, 부활이 없는 민중신학의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김총장은 온신학의 특징으로서 삼위일체 신학, 하나님의 주권과 은총의 신학, 개인만이 아니라 우주도 구원하는 신학, 하나님나랄 위한 신학, 기도와 사랑의 신학이라고 주장한다. 즉 영혼과 기적, 국가, 역사, 사회를 통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신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온신학이 무언엇가 김명용교수의 강의를 통해서 알아보자. 이 책은 스페인어, 일어, 중국어, 영어로 번역되어 세계로 나간 책이다.
온신학이 미래 대안 신학
그럼 ‘온신학’의 특징은 무엇이냐? 그 특징을 7가지로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첫째로, ‘온신학’은 삼위일체 신학입니다.
종교다원주의, 민중신학, 철학적 신학 가운데도 삼위일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삼위일체론을 초대교회가 발전시킨 사변이라고 말하는 신학생이 많은데, 그들은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합니다. 삼위일체가 정초되는 자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자리였습니다. 이게 떠나버리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종교학과 철학으로 변모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의 부활이 기독교가 정초하고, 신학이 정초하는 자리입니다. 이후 기독교는 325년 니케아신조(The Creed of Nicaea)가 발표되면서 일신론과 결별합니다. 기독교는 일신론이 아니라 삼위일체 신학입니다. 니케아신조의 핵심은 야훼 하나님 외에 똑같은 본질과 신성을 가진 분이 계신다는 것을 반포한 것입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신조가 반포되면서 우리의 예배와 경배를 받으시는 성령이 계신다는 것을 반포했습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는 정통 중의 정통, 다시 말해 이를 거부하면 이단이 되는 신조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을 거부하는 것은 장로회신조를 거부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도신조는 750년경에 선포된 서방신조입니다. 하지만 니케아 신조는 동서교회가 함께 고백한 최초의 정통신조입니다. 그 신조를 통해 고백하는 게 바로 삼위일체입니다.
삼위일체는 예수의 부활에서 정초되었습니다. 종교다원주의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생명의 주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들은 모두 무덤 속에 썩었으며, 무덤을 깨드릴 힘이 없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신학자들이 가짜 신을 꺼내어 옷을 입히는 사람이 많은데, 그 가짜 신은 자비하지도 않습니다.
불교는 깨닫는 종교입니다. 우주의 법을 깨닫게 하는 종교이고, 그것을 넘어서게 하는 종교입니다. 석가모니는 참 현인이십니다. 한국에서는 근본주의자가 절만 보면 공격성이 발동해, 부처님 이마에 십자가를 그려 넣고 하는데, 그건 폭력이고 행패입니다. 그분이 얼마나 좋고, 배울게 많습니까? 그런데, 현인이시고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하지만 석가가 생명의 주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석가는 죽은 자를 살릴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죽음을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감격이 신학의 기초가 되어야 되는데, 삼위일체도 없는 신학이 어디에 쓸모가 있겠습니까?
두 번째로 ‘온신학’은 하나님의 주권과 은총의 신학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예기하면서 율법적인 주권을 이야기하는 분이 많습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은 은혜와 자비의 주권입니다.
![]() | ||
저는 중국에 갈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지성인과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 꼭 아편전쟁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독교 국가라는 영국이 탐욕에 사로 잡혀서, 아편 팔아먹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을 죽였습니다. 신해혁명이 일어나면서 중국의 지성인이 교회를 파괴하고, 도륙한 이유가 아편전쟁의 비극적 역사 때문입니다.
이 식민지배욕 뒤에 마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사랑과 생명과 평화가 지배하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 임한 것처럼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이 분명한 신학이 온신학입니다.
넷째로, ‘온신학’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신학입니다.
또한 온신학은 대화적 신학입니다. 단순히 다른 신학과 종교들과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냉전을 끝내는 데에는 니코라이교회(Nikolaikirche)의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이 기적 배후에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남아공에서 인종차별의 벽을 허물고 정의와 인권이 숨 쉬는 나라를 만든 데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세계의 도처에 나타나는 생명과 평화의 역사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너무 기독론적인 신학을 전개해왔습니다. 제가 전공한 칼 바르트(Karl Barth)도 기독론에 정초했습니다. 기독론적인 신학은 일차적으로 중요한 신학입니다. 신학이 건전하기 위해선 기독론에 정초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성령론적인 차원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한쪽은 기독론으로 정초하고, 한쪽은 성령론으로 열려있어야 합니다.
이곳에서 신학을 하는 사람은 LA라는 자리의 성령론을 기초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성령론은 다른 경험을 기초해서 발전합니다. 세계의 도처에서 활동하는 성령의 역사를 폭넓게 이해하고, 바르게 성령의 활동에 대해 대화를 해야 합니다. 성령론적 인식의 깊이 속에서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근본주의에 물든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보면, 자기는 세상이야기를 안하고 그냥 성경이야기만 한다고 자랑합니다. 그들은 세계와 역사에서 활동하는 성령의 활동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칼 바르트가 말한 것처럼 ‘한 손엔 성경, 한 손에 신문’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성경과 세계가 끊임없이 대화를 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로 ‘온신학’은 기도와 사랑의 신학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인 힘이 기도와 사랑에 있습니다. 기도는 인생을 역전시킵니다.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목사들이 기도하면 진짜 운명이 바뀐다는 것을 모르고 목회하니 목회가 제대로 될 리가 있습니까? 기도가 삶과 역사를 바꿉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내 삶의 기적과 이적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가짜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권징의 회복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마귀를 이기는 결정적 도구가 사랑입니다. 세계 정치를 보면 이기적 정치이지, 사랑의 정치가 아닙니다. 그러니 테러가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이기심이 세계 질서에 들어가면 마귀의 역사가 그 자리에 일어납니다.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사랑입니다. 나머지는 거기에 종속되는 것일 뿐입니다. 사랑이 역사를 바꿉니다. 이게 진정한, 온전한 신학입니다(뉴스M의 양재영기자 강의 요약토대).
최태영교수의 평가
영남신대 최태영교수는 "한국교회의 모든 신학적 흐름을 수렴하면서 동시에 한국적인 독창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여러 가지 신학적 흐름을 형성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적 신학을 형성하기 위해 달려왔다고 할 수 있다”며 “지금까지 여러 형태의 한국적 신학이 시도됐지만, 바람직한 한국적 신학은 한국교회의 모든 신학적 흐름을 수렴하면서 동시에 한국적인 독창성을 잘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
“곧 하나님의 계시와 세계교회의 신학, 그리고 한국적 맥락이 어우러져 상호 만남과 대화 가운데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실이 한국신학이라 할 것”이라며 “한국교회가 온 세계의 교회와 사회에 신학적인 기여를 하겠다면, 반드시 한국적 신학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
이러한 토대를 둘 때 온신학은 이종성교수가 주장했던 통전적 신학의 연속이고 보다 구체화한 신학이다. 통전적 신학은 추상적인데 김명용 총장은 추상적 신학을 현실화하였다. 지금까지 예장통합이대위는 수준낮은 반쪽짜리 근본주의 신학의 토대하에 이단을 45명이나 정죄했다. 이제는 예수처럼 죄인을 수용하기 보다는 바리새주의의 원리신학에 입각하여 사람을 정죄하는 근본주의의 악령을 퇴출해야 한다. 한기총, 합동교단, 군소교단도 근본주의 신학에 토대를 두다 보니 약간 주장의 차이가 나기만 해도, 계속 분열이다. 근본주의 악령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이대위도 용서와 화합보다는 계속 정죄이다. 원리와 분리, 근본주의의 영이 그들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이제 한기총이나 예장통합의 이대위는 바뀌어야 한다. 문구나 한두문장의 차이로 이단정죄할 것이 아니라 큰 신학의 틀안에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통신조 중의 하나인 아타나시우스의 신조안에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근본주의의 악령 퇴치해야
이대위는 이제는 수준낮은 반쪽짜리 반개혁신학의 토대에서 벗어나서 온전하게 다양성을 갖는 온신학의 토대위에서 이단여부를 평가할 필요성이 있다. 이성희 목사는 공청회에서 이단에 대한 명확성, 실제성을 갖고 아타나시우스의 신조에 벗어나면 이단으로 해야하고, 문원순 목사 역시 약간의 신학적 차이가 나는 것으로 이단정죄해서는 안되고, 회개와 사과를 통해서 수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근본주의 신학에 토대를 둔 교단은 계속 쪼개지고 분리하고 다시 합병하고, 다시 분열하는 분열의 악순환을 계속 해왔다. 한국장로교의 역사가 이를 말해준다. 근본주의 신학에서 벗어난 예장통합교단은 한번도 분리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단정죄는 근본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아왔다.
근본주의 신학과 악령을 퇴치하고 온신학을 수용하는 길이 교단과 한국교회가 사는 길이다. 온신학이 무엇인가?라는 책은 벌써 세계의 여러나라 언어로 번역되었다. 예장통합교단 역시 이 온신학을 교단총회에서 교단의 신학으로 채택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
ⓒ 통합기독공보 & www.lawnchurch.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용인 기쁨의교회 성도들, 합신 제111회 총회 결의에 반대 성명
© 통합기독공보 용인 기쁨의교회(담임 정의호 목사) 성도들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제111회 총회의 기쁨의교회 관련 이단 규정 결의에 반대하는 성명서 ‘한국교회에 고하는 글’을 발표했다. 교회 측에 따르면 지난 9월 20일 주일 오후 본당에서 총회 결의 내용과 경위를 설명하는 자리가 열... -
[단신]기독문화선교회, 오산리기도원서 ‘신바람힐링성회’ 개최
사단법인 기독문화선교회가 오는 12월 7일부터 12일까지 경기도 파주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 대성전에서 ‘신바람힐링성회’를 개최한다. 이번 성회는 한국교회의 영적 회복과 성도들의 신앙 회복을 돕기 위한 자리로, 말씀 선포를 비롯해 찬양과 간증, 건강 강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
조승호 GMS 신임 이사장 “모든 성도가 선교에 참여하는 시대 열겠다”
GMS 제15대 이사장 조승호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세계선교회(GMS) 제15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조승호 목사가 모든 교회와 성도가 함께 참여하는 선교 공동체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선교를 일부 사역자만의 책임으로 한정하지 않고, 청년과 전문인, 은퇴 이후의 성도들... -
예장합동 서울강남노회 제102회 정기회 개최…21당회서 23당회로 확대
예장합동(총회장 정영교 목사) 서울강남노회(노회장 이길찬 목사)가 10월 19일 서울 동작구 대남교회(담임 김창원 목사)에서 제102회 정기노회를 개최했다. 이날 정기노회에는 목사 72명과 장로 12명이 참석했으며, 노회는 당회 수가 기존 21당회에서 23당회로 확대되는 등 교세 변화를 보인 가운데 각종 청원... -
전국호남협의회, 조승호 목사 GMS 이사장 취임 축하
예장합동(총회장 정영교목사) 제27회기 전국호남협의회(대표회장 조승호 목사)는 10월 15일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GMS 선교본부에서 임원회를 열고, GMS 이사장에 취임한 조승호 목사를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임원들은 조 목사의 취임을 축하하며, 차기회장 고광석 목사가 꽃다발과 임원들이 모은 ... -
GMS 2027 세계선교대회 슬로건, ‘교회여 다시 열방으로’
총회세계선교회(이사장 조승호 목사, 이하 GMS)가 2027 세계선교대회의 슬로건을 ‘교회여 다시 열방으로’로 정하고, 교회와 평신도가 함께 선교에 참여하는 대회를 만들기 위한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대회장인 조승호 GMS 이사장은 교회와 평신도 모두가 선교의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