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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희 목사, "통합을 진정한 중심교단으로 만들어야"

  • 법과 교회
  • 입력 2015.09.2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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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영남목사와 함께 역사적, 사회적, 신학적, 성경적 중심교단으로 만들 필요있어
이성희 목사는 예장통합 부총회장에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예장통합 총회장 채영남 목사는 온화하고 개혁적이고 개방적이고 실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채영남 목사는 교단 개혁의 토대를 놓고 이성희 목사는 그 토대를 더 견고하게 할 필요성이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중심 교단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중심 교단이라 함은 양적중심 교단이 아니라 질적, 영적중심 교단이란 의미이다. 

연동교회는 누가 뭐래도 한국 기독교의 중심교회이다. 여기서 중심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회적, 신학적, 교단적, 지역적 중심을 말한다.  
 
역사적 중심이라 함은 연동교회는 1894년에 설립된 교회로서 100년 이상된 한국교회의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길함(Graham Lee) 선교사와 서상륜 조사가 초가 한 채를 매수하여 예배 처소를 삼은 것을 시작으로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새문안교회와 더불어 연동교회는 한국역사의 중심에 있는 교회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중심이라 함은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들이 배출되는 교회라는 것이다. 연동교회는 처음에 사회적 약자들이 모여 세워진 교회였다. 연동교회 근처는 원래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의 삶의 터전이었다고 한다. 연동교회가 사회적 중심으로 변화하였다.

"이길함 선교사와 서상륜 조사가 초가 한 채를 매수하여 예배 처소를 삼은 것을 시작으로 역사가 시작된 연동교회의 주변 환경은 나막신을 만드는 나막신 바치와 가죽신을 만드는 갖바치, 배추장수, 배오개시장의 상인, 종묘의 순라군, 백정, 무당 등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이 삶의 터전이었다. 또한 연동교회가 위치하고 있던 연못골 주변은 교회가 설립될 무렵부터 미국북장로교회 선교부가 대지를 매입해서 기틀을 잡은 곳으로 오늘에 와서는 한국 기독교의 중심이 됐다. 선교사 밀의두목사가 현재 연동교회를 중심으로 종로 5가 일대를 '선교언덕'이라고 명명할 정도이다."(기독공보 인용)

신학적 중심이라 함은 연동교회는 기장과 분열할 때는 보수개혁 신학을 선택했고, 합동과 분열할 때는 에큐메니칼 신학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통합의 신학은 연동신학이다. 연동교회가 선택한 신학주류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동교회는 김형태 목사가 있었을 당시 민주화를 위하여 독재정권에 항거했던 교회이기도 할 정도로 신학의 실천의식이 있는 교회이다.

교단적 중심이라 함은 1953년 기장과 예장이 분열할 때 연동교회는 예장을 선택했고, 1959년 합동과 통합이 분열할 때 연동교회는 통합의 요람지가 되었던 교회이다. 합동은 승동교회에 모이고 통합은 연동교회에 모여서 각 교단의 창립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지역적 중심이라 함은 연동교회는 4대 문안 서울시 한복판에 위치해 있고, 총회건물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연동교회는 예장통합교단의 역사적, 사회적, 신학적, 교단적, 지역적 중심 역할을 해온 교회이다. 이러한 역할로 인해서 연동교회에 대해 앞으로 한국 기독교와 예장통합 교단의 중심적 역할에 거는 기대가 있다. 그렇다면 이성희 목사는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이성희 목사의 아버지 이상근 박사는 주석학자로서 한국교회의 성경적 중심 역할을 한 사람이다. 합동에 박윤선 목사가 있다면 통합에는 이상근 목사가 있다. 박윤선 목사의 주석은 신구약을 주해했고 서술과 설명이 많았다. 반면, 이상근 목사의 주석은 보다 학문적이고 깔끔하고 짧게 요약되어 한국 목사들이 읽기에 좋았다. 이상근 박사는 세계에서 신구약성경, 외경신구약까지 주석한 유일한 학자였다.

이처럼 이상근 박사는 한국교계와 통합교계에 성경학적으로 크게 영향을 끼친 중심적인 학자였다. 이성희 목사는 가장 중심적인 교단과 교단의 목회자들에게 성경학적 중심 역할을 했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그야말로 중심 중의 중심이다. 이성희 목사는 학벌도 연세대, 장신대를 거쳐서 샌브란시스코신학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장신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겸임교수로서 활동하였다. 지난번에는 장신대 총장의 물망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의 신분이나 위치는 모두 교단에서 중심적인 삶이었다.

진정한 중심

이러한 중심적인 배경을 안고 있는 이성희 목사가 다시 교단의 가장 중심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학벌적, 재정적, 지역적, 목회적인 면에 있어서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는 이러한 외형적인 것을 갖고 중심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의 중심사상은 하나님 중심 사상이다. 예수에 중심이 있다. 예수는 하나님과 중심되었던 가장 중심적인 인물이다. 세계 역사는 그의 태어난 기점으로 해서 예수 이전의 역사 B.C(Before Christ)와 예수 이후의 역사 A.D(Anno Domini )로 나눈다. 결국 하나님에게 중심을 맞추는 사람이 진정한 중심이 되는 것이다.

예수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갔다. 사도 바울 역시 다메섹 체험 이후 바리새인, 히브리인, 가말리엘 문하생이라는 외형적 중심적 사고관을 버리고 내면적 중심을 추구했다. 갈라디아서에서 자신은 죽고 자신 안에 그리스도만 살아있다고 할 정도로 예수 중심적인 삶을 살았다. 바울이야 말로 진정한 중심인이었다. 자신의 주변적 삶을 바라보지 않고 감옥 안에서도 예수중심적 삶을 유지하여 성경을 기록했다. 결국 바울은 신약 성경을 가장 많이 기록한 중심 인물이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 중심적, 예수 중심적인 사람이 역사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이상근 박사의 성경중심적인 삶

이상근 목사의 삶 역시 성경 중심적인 삶이었다. 그리스도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성경 중심적인 삶이 가능했고, 그러기 때문에 한국에서 성경학적인 중심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이상근 박사는 예장통합의 성경학적인 기초를 세웠던 인물이었고, 목회도 성공하여 교단의 영적인 중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성희 목사는 교회나 혈통이나 모두 중심이기 때문에 예장통합은 물론이고 한국 교계에서도 중심역할을 해야한다. 어떤 총회장들은 개인 명예를 추구하는데 머물렀다. 총회를 섬긴다고 하면서 인맥, 학연, 물질, 기득권을 섬기고, 종국에는 예수나 교단의 명예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섬기는 쪽으로 가곤 하였다. 이러한 총회장들은 결재하는 것을 좋아하고 명목 없는 해외 여행을 수시로 다니고, 연합 단체의 수장의 책임보다는 자리를 더 귀히 여기고, 대형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을 자신의 진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성희 목사는 달라야 한다. 연동교회의 교단적, 사회적, 신학적, 역사적 중심적인 삶이나 아버지의 성경중심적인 삶을 보았을 때, 진정한 중심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연동교회와 아버지는 예수가 중심인 삶을 택하여 왔다. 유명한 술꾼 천상병 시인도 말련에는 연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귀천'이라는 유명한 시를 썼다. 우리의 삶과 교회는 나그네처럼 살다가 고향인 천국으로 돌아가는 정거장이다.

먼저 이성희 목사는 교단을 역사적 중심의 위치에 놓아야 한다.

각 교단이 모두 100회 총회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 정체성을 갖고자 하기 때문이다. 엊그제 신설된 장로교단도 총회는 100회라고 한다. 연동교회는 역사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초기 창립자들의 의도와 1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온 신앙의 역사에 따라 이제 예장통합 교단의 새로운 역사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 점점 교단이 약화되고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서 사회적 빛을 상실해 가고 있다. 예장통합이 모든 연합단체에서도 뒤로 밀려나고 있다. 연금재단도 카지노에 투자하는 등 교단의 세속성이 상상을 초월한다. 어떤 목사들은 교단 결의보다 가이사 법정의 결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한편에서는 절차하자 있는 마구잡이 이단놀이도 하고 있다. 

이는 교단의 역사적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시류에 흔들리는 부유물 같은 행태이다. 역사적 정체성이 있는 교단은 자존심과 자부심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지금 교단의 문제는 역사적 의식의 부재에 있다. 역사적 의식이 부재하다 보니 사회성, 신학성의 부재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 이성희 목사는 교단을 사회적 중심위치에 놓아야 한다. 

연동교회는 민주화 의식을 갖고 독재 정권에 항거한 사회의식이 있는 교회이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그러한 의식을 망각하고 예장통합의 정체성을 대변해야 할 교회가 근본주의적 신학의식을 갖고 역사와는 멀리 떨어진 극우적인 경향으로 흘러가기도 하였다. 기독공보는 이성희 목사가 사회의식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성희 목사는 원로목사인 김형태 목사가 목회에 적용했던 '사회정의'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이 뜻을 이어 받아 현재 목회에 적용해 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목사가 시무했던 7, 80년대는 사회선교가 군사정권과 대항하는 운동성을 갖는 것이었다면 현재는 우리의 이웃을 섬기고 봉사하는 일이 '사회선교'라고 설명한다."

이성희 목사는 연동교회의 정체성을 갖고 사회선교를 하고 있다. 이는 연동교회 정체성의 연속으로서 이러한 삶들이 교단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복지에만 그치지 말고 연동교회 정도라면 사회와 국가에 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회의식을 갖고 동성애법, 사학법, 노동법, 종교세법, 창조질서의 회복과 연관된 환경법까지 입법화될 수 있도록 교단 산하 국회의원들과 정례 미팅을 하여 교단이 사회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예장통합 산하 각 노회나 교회가 재래시장 활성화나 노숙자 돌봄을 통하여 교단이 사회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부총회장으로서 전국노회장 정례 모임을 소집하여 통합측 각노회가 연대하여 사회중심 역할을 할 수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교단이 사회중심 역할을 하다보면 교단은 더욱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교단이 부흥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세번째, 이성희 목사는 교단을 신학적 중심위치에 놓아야 한다.


이미 연동교회는 1953년 기장신학과 분리하였고, 1960년 합동신학과 분리하였다. 기장신학을 멀리함은 당시 고등비평에 대해서 개혁적인 신학입장을 취했고, 합동신학과 분립한 것은 수용과 포용이 없는 근본주의 신학과의 이별이었다. 그러나 예장통합에는 최근 기장의 민중신학이 들어와 복음주의와 개혁주의 신학을 침해하고 있고, 합동의 근본주의 신학이 들어와 포용과 수용, 화해와 일치를 침해하고 있다. 두 신학이 합쳐서 이단을 마구잡이로 규정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민중신학과 근본주의신학이 이대위를 통하여 예장통합교단 신학의 정체성을 허물고 있다.

이성희 목사는 교단의 신학에서 벗어난 이대위의 활동을 중지시키거나 이대위를 탈바꿈시키거나 없애야 한다. 전세계에서 오늘날 이대위가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장로교단으로서 수치스런 일이다. 타교단의 이단문제는 타교단이 알아서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단정죄라는 것이 교단의 신앙질서와 교리질서를 보호하는 것인데 최근 통합교단이 타교단 사람들을 무분별하게 이단정죄하여 중세의 종교재판와 같은 격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무분별한 이단판별로 인해서 교인들의 신앙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고있다. 교인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정치성을 띤 이단놀이를 하는 것이다.  

네번째, 이성희 목사는 교단을 영적 중심 위치에 놓아야 한다. 

교단이 영적이라기보다는 세속적이 되기 때문에 교회분쟁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강북제일교회,광성교회 등은 말 할 것이 없고, 매년 총회 재판건수만 해도 50건이 넘는다. 각 노회까지 하면 수백건이 넘는다. 이는 교단이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소망을 두지 않고 땅만 보고서 서로 싸우는 것이다. 교회분쟁의 이면에는 자리와 명예를 추구하고, 신앙적 이상보다는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고, 교인들 돌볼기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우선하는 것이다.

일부 예장통합교단의 목사들과 신학생들은 진정한 중심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외형적인 가치를 선호하고 있다. 신학생들이나 부목사들도 대형교회로 서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미국 장로교단처럼 청빙문제를 교단이 관리할 필요가 있다. 모든 교회의 교역자 청빙을 교단이 관리해서 균형있게 수급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현재 대형교회는 세습바람이 불고 있다. 목사라는 영적 아버지가 아들에게 세습하는 세속적 아버지로 변하고 있는 것이 교계의 현실이다. 교인들에게는 영적 축복을 주지만 자식들에게는 물질적 축복을 주기를 원하고 있다. 예수중심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연동교회나 이상근 박사는 이러한 삶을 추구하지 않았다.

다섯번째, 교단을 성경학적인 중심위치에 놓아야 한다.

이성희 목사의 아버지 이상근 목사는 교단의 성경학적인 중심축을 만들었다. 아들 역시 성경학자는 아닐지라도 부총회장으로서 교단이 성경에서 멀리 떠나지 않고, 성경의 중심으로 돌아오게 할 필요성이 있다.          

직영신학대학교 성경신학자들의 논문을 보면 예수중심적인 사상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더러 있다. 어설픈 아카데믹한 논문은 교단성장에 도움이 되지를 않고 학생들의 훌륭한 목회자 양성에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학문을 빌미로 신학에 예수 중심적인 사상이 없는 것이다.

이제 교단이 무조건 해외박사들을 선호할 것이 아니라 논문이 교단 신학중심적이고 예수중심적이고 복음중심적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상근 박사의 정신을 본받아 이성희 목사는 교단을 성경중심적인 교단으로 만들어 실천할 필요가 있다. 성경학 주제로 논문을 공모하고, 포럼을 자주 열어서 교단이 성경적 교단이 될수 있도록 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이성희 목사가 진정한 중심인이 되기 위해서는 총회장 채영남 목사와 더불어 연동교회의 역사적, 사회적, 신학적, 지역적, 교단적 중심 위치와 이상근 박사의 성경학적인 중심을 잘 고려하여 교단을 진정한 중심 교단으로서 자리매김 할 필요가 있다. 이성희 목사는 현재 모든 것이 중심 위치에 있다. 부총회장, 학벌, 교회 위치, 혈통 등. 그러나 진정한 중심은 연동교회와 이상근 박사가 추구했던 예수 중심,성경 중심에 있다.

예수의 정신과 성경의 정신이 중심이 되다보면 이성희 목사는 교단을 역사와 사회, 신학에 있어서 중심 역할을 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중심인은 본디오 빌라도처럼 외형적 위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처럼 죄인, 세리, 창녀, 거지, 장님, 어부 등에게로 가는 사람이다. 또한 예루살렘에 머물지 않고 갈릴리로 가는 사람이다. 바울처럼 중심도시인 예루살렘에서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안디옥, 아덴, 로마 등 위험한 주변도시로 가는 사람이다.

명예나 학벌, 신분, 장소가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동교회는 농어촌교회로 가야하고 약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성희 목사 역시 비복음화 선교지와 농어촌의 주변으로 가는 목사가 되어야 한다. 총회정책 역시 서울이나 경기 중심이기 보다는 시골의 주변노회나 주변교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주변으로 가는 중심인이야 말로  예수가 요구하는 진정한 중심인이기 때문이다.     

 "You will miss me"

시간이 500년 지났다. 하나님이 중심된 예수는 세계의 중심이 되었고 예수가 중심된 바울은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다. 이제 이성희 목사는 성경의 정신, 연동교회의 정신과 이상근 목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교단의 중심이 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성희 목사가 세상을 떠난 후 묘비에 "You will miss me"로 기록하면 좋을성 싶다. 이성희 목사는 아버지보다 더 멋있는 삶을 살았다고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인물로서 남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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