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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이 살아야 한국교회가 산다

  • 법과 교회
  • 입력 2015.09.2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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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장통합, 개신교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교회법전 편찬 필요
100 여 년의 역사를 가진 개신교가 휘청거리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개신교의 도덕적 기준, 법적 토대, 자본주의에 대한 영성의 약화, 빈번한 교회 주도권 쟁탈, 허술한 재산관리, 영적권위의 추락, 혈연과 지연, 학연의 공고화에 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부자승계라는 혈연, 영호남의 지연, 신학교로 말미암은 학연 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혈연, 지연, 학연은 하나님과의 관계인 신연(神緣)보다 더 신뢰하는 관계이다. 혈연, 지연, 학연의 삼위일체가 개신교의 기득권을 형성하기 때문에 창조성, 구속성, 관계성의 진정한 삼위일체 정신은 사라지고 없다. 혈연의 신, 지연의 신, 학연의 신의 삼신론만 남게 된다. 이러한 삼신론의 악령이 개신교를 주도하고 있다. 겉으로는 신앙과 확신을 강조하는 것 같은데 이면은 대부분이 기득권과 기복으로 가득차 있다.

개신교가 6.25 이후 사람들이 가난하다 보니 물질에 대한 관심을 집중하여  많은 복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사회는 개신교의 비우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는데 개신교는 뒤돌아갈 수 없는, 즉 과거의 수준으로 돌아가 비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최근 개신교의 분쟁은 국가나 사회에 대한 대립이나 투쟁이 아니라, 동교파나 동교회의 기득권을 차지하고자 하는 투쟁이다. 광성교회는 기득권 다툼으로 11년 동안 싸우고 있다.

이와 달리, 천주교는 정의사제구현단을 만들어 대사회적 이슈를 끌고가면서 국가와 사회에 대한 개혁적 투쟁을 하고, 국가가 바른 길로 가지 않을 때, 사제들이 시청 앞 광장까지 진출하여 투쟁을 한다. 박종철 사건도 사제들이 앞장섰기 때문에 가능했던 사건이다. 즉 사제들이 민주화에 많은 공헌을 하자, 젊은이들이 천주교를 찾는 것이다.

이에 반해 개신교는 일제시대처럼 역사와 사회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개인 복에 관심을 두면서 압도적으로 발전하기 시작을 하였는데, 결국 사회의 주체가 되는데 실패했다. 개신교가 우익과 기득권, 기복으로 접어들면서 변두리로 점점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비난당하는 것은 혈연적 목회승계, 후임자와 전임자의 주도권 다툼, 비도덕성, 국가와 사회에 대한 공익의 축소화 대신 교파적 이익의 극대화, 기복주의적 영성, 사익적 영성, 몰역사성, 비개혁성, 지연.혈연. 학연의 극대화로 인해 개신교는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이다. 
           
천주교가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부 결속력을 위한 법적 토대가 견고하였던 것이다. 1,500년 동안 이어져 온 교회법의 토대가 오늘날의 천주교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천주교는 바티칸 국가이다. 종교개혁 이후 휘청거렸지만 제2바티칸 공회(1962-65년)이후 천주교는 탈바꿈을 하여 새로운 면모를 과시하게 되었다. 미국장로교단도 1983년 이후 교회법전에 해당하는 교회법을 만들고 교단의 결속을 가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개신교는 일제시대와 6. 25 이후 외적 성장에 치우친 나머지 새로운 탈바꿈이 없었다. 개신교는 다양한 교파이고 법적 토대가 미약하고, 연합정신이 실종되고, 교회정치만 가속화되다 보니 결속력이 약하게 되고, 교리와 이단 논쟁으로 힘이 분산되고, 국가와 사회의 문제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되니 주변으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개혁의 이슈가 나올 때는 그대로 바라만 보고 있었고, 지나친 극우화로 치닫고, 세속화에 물들어 버렸다. 

천주교가 한국에서 빨리 성장할 수 없었던 것은 개신교 만큼 근대화에 기여하지 못했고, 국가와 사회의 이익을 추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천주교가 성장하는 것은 개신교보다 국가와 사회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항시 사회와 국가의 개혁적 이슈가 나올 때마다 천주교 사제들이 앞장서서 개혁적 이슈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미 합동이나 고신 등 보수적인 개신교단들은 사회와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교리적 관심과 교파적 이익때문에 비역사성, 비사회성으로 가고있다. 근본주의 교리가 가져다 주는 가장 큰 폐해는 몰역사성 이다. 

한국 개신교에서 역사적, 사회적 주체가 될 수 있는 교파는 기장, 예장통합, 기감이다. 그러나 세 교단 역시 독재시대가 끝나면서 교단적 이익에 부합하거나 몰역사성, 비역사성으로 흐르고 있다. 기감은 지난 5년 동안 이상 소송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진보교단이나 단체들은 개혁을 하더라도 복음적 개혁이 아니라 북한을 컨셉으로 하거나 세속적 개혁을 하다보니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이다. 

개신교가 사는 길은 연합단체는 영성, 사회성, 역사성, 법적 토대를 구축해야 하고, 대형교단은 적극적으로 사회와 국가의 공익을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고, 기독교 국회의원들이나 지자체 단체장들, 재래시장상인협회장, 농어촌 단체장, 복지단체장, 장애인 복지단체장 등 정치인과 지자체단체장, 서민, 빈민들과 대화를 하여 그들이 원하는 사역을 해야 한다. 개신교는 현재 역사성과 사회성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또한 개신교는 소통의 부재에 있다. 인간과 소통을 하려하지 않고 하나님과만 소통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과의 소통이 자신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예수님은 항시 가난하고 병든 자들과 소통을 하고 다녔다.   

더군다나 개신교는 특히 각 개교회별로 산발적으로 일을 하여 힘을 과시할 수 없는 것이다. 교단이 결속하려면 교단으로 일원화하여 사회와 국가의 공익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더이상 WCC나 교리논쟁, 이단논쟁은 의미가 없다. 현재 예통합교단이나 합동교단은 300만 명씩 되면서 사회의 중심부에서 밀려나 있다. 한기총이나 한교연 역시 정치연합단체가 되면서 사회 주변부에 머물고 있다. 지나친 정치화, 극우화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념적으로는 보수이면서 내부적으로는 정치성 때문에 늘 기득권 다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예장통합교단이나 개신교가 사회주변부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와 역사성의 개혁정신이 교단헌법에 들어가야 한다. 에큐메니칼, 동성애, 좌익, 공산주의, 탈북자, 독재, 통일, 성차별, 복지정책, 빈자를 위한 정책과 같은 대사회적 이슈들이 교단헌법에 명기되어야 한다. 법적 토대가 약하면 그 단체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예링(Rudolf von Jhering)은 그의 저서 "로마법의 정신"에서 로마는 세 번 세계를 지배하였다고 했다. 한번은 정치로, 다른 한번은 기독교로, 또 다른 한 번은 법으로 세계를 지배하였다고 했다. 로마 민법은 초시간적인 법문화의 가치로 지금까지 남게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로마법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는 없다. 로마법은 기독교의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로마법이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의 민법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까지 영향을 끼쳐 1895년에 발표된 홍범 14조 중 제 13조에서 처음부터 민법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이처럼 로마법에 스며있는 기독교의 정신은 위대하여 로마가 세계를 정복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고, 한국의 법까지 영향을 미쳤다. 알게 모르게 개신교의 영향이 로마법을 통하여 한국에 들어왔던 것이다. 현재 한국의 민법은 로마법의 영향을 받은 독일의 민법이다. 그러나 한국의 개신교의 그 정신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개신교의 사회적, 국가적 권위를 끌어 올릴 수 있는 장로교단은 진보성과 사회개혁성, 법적 토대를 추구하는 교단이라야 한다. 그러나 기장은 자체 영성개혁에 실패하여 이미 30만명밖에 안되는 군소교단으로 전락했고, 합동은 교리주의, 근본주의의 신학때문에 사회의 개혁을 주도할만한 주체세력이 되지 못하고 있다. 늘 당파싸움에 시달려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다. 수 십년동안 학내분쟁, 교파분쟁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근본주의, 교조주의 신학의 악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예장통합 교단은 근본주의 교리보다 포용성, 수용성, 개혁성의 교리를 추구하고, 새문안, 영락, 남대문, 연동, 안동 교회 등이 개혁성을 추구하는 전통을 가진 교회이기 때문에 사회와 국가의 개혁을 위한 주체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대형교단으로서 개혁성과 진보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사회와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단의 법적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동양에서는 왕이 영토를 확장하거나 국력의 신장을 이룩한 때에는 자기의 치적을 역사속에 남겨두기 위하여 비를 세우거나 역사서를 쓰게 하였다. 진흥왕 순수비나 광개토왕비 같은 경우이다. 그러나 로마를 위시하여 서양에서는 황제가 국세를 신장한 경우에는 법전을 편찬하여 이를 후세에 전하였다. 천주교도 교세가 성장할 때는 교회법전을 편찬하였지만 한국의 개신교는 교세가 성장할 때 교회법보다는 교회건물과 기도원을 세웠다. 교회건축은 개신교를 빚더미로 만들어 버렸고, 기도원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애물단지로 전락하였다.

오늘날 동양은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의 법제도를 인수하였다. 동양은 역사적으로 실정법보다는 윤리 도덕, 예같은 자연법이 주를 이루어 체제가 유지되어 왔다. 개신교 역시 양심, 신앙, 믿음과 같은 자연법적인 요소들이 주를 이루어 지금까지 왔다. 그러나 사회가 세속화되면서 양심, 신앙, 믿음, 윤리가 허물어지자, 개신교가 허물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개신교가 더 허물어지지 않기위해서는 성경과 개혁신학의 정신이 깃든 교회법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어설픈 세속법을 흉내내는 것 보다 성경, 신학, 종교개혁의 정신, 영성이 깃든 개신교법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개신교의 권위를 높이고 결속할 수 있다. 총회를 통한 결의는 많은데 준수되지 않고 매 총회때마나 결의의 홍수에 빠지게 된다.

이제 예장통합교단은 한국의 개신교를 이끌어 갈 책임이 있다. 수렁에 빠진 개신교를 끌어내야 할 역사적, 사회적 책임이 있다. 그것은 교파적 이익보다는 사회, 국가적 이익에 우선해야 하고, 교단보다는 국가와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조항을 신설하고, 윤리, 도덕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종교도시국가로서의 법조항을 입법하여 견고한 교단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교단산하 법인도 세속법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교단법이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300만 종교도시국가로서의 교회법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번 100회차 총회임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역사성, 사회성, 법성을 갖고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처럼 가장 강력한 교단을 만들어 통합교단이 개신교를 주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제 교단밖까지 관심을 가져 개신교의 권위를 세울 필요성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100년 대계를 이끌고 갈 개신교 법전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될 때이다. 통합이 살아야 한국교회가 사는 것이다.  통합교단은 역대 가장 강력한 교단으로 만들어 개신교의 권위를 다시 높일 수 있는 역사적 책임을 느껴야 한다. 앞으로의 또 다른 100년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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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 김정한2015-09-27 09:14:45

    이 일을 위하여 기구가 만들어지고 한 3년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기도하며 연구하도록 하는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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