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치스의 역사와 냉전시대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
최근에 가장 이슈로 떠오른 것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채택 문제이다. 독일은 냉전시대의 역사를 어떻게 기술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오늘날 역사교과서의 논쟁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김유경이라는 학자는 2013년 역사학보(205호)에 "독일 연방공화국 중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의 전후 현대사"를 게재하였다. 논문의 내용을 정리하면 김유경은 독일역사교과서의 최대의 쟁점은 냉전체제보다 나치스의 문제였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나치스의 문제와 함께 냉전시대도 과감하게 다루었다고 주장한다.
독일역사교육에 있어서 최대의 쟁점은 나치스의 역사였고 냉전체제는 심각한 논란이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동서독의 냉전시대는 지속적인 불안요소로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냉전구도가 심각했던 1950년대부터는 서독의 역사교과서에 동독은 분단국가로서 하나의 실체로서 인정받았다. 서독의 역사교과서는 동독을 정식국호로 인정했고 서독못지않게 동독에 대해서 비중있게 다루었다. 1960년대 후반, 1970년대에 들어서 서독의 역사교과서는 동독에 대한 국가와 사회체제에 대해서 취급분량을 확대해 나갔다. 역사교과서는 분단 국가의 내부사정에 대해 균형있고,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독일은 교과서에 저자들의 서술과 인용하는 사료가 분명하게 구분되어있다. 인용된 사료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해석해서 자립적인 역사적 판단을 내리도록 구분되어 있다. 사료는 상이한 또는 대립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정치적 진영, 사회계층의 직접적인 증언과 상이한 역사해석의 진술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독일은 분단의 상항보다는 나치스의 문제가 더욱 비중이 많았다.
자신의 나라의 수치스런 역사이지만 나치스의 유대인의 학살까지도 소상하게 다루었다. 냉전체제에 대해서도 공산주의 팽창을 모티브로 하여 유럽에서 개시된 냉전상황에서 독일의 분단을 언급하였다. 독일은 심지어는 중국의 공산화, 한국의 분단상황까지 언급하였다.
교과서에는 당시의 사회상을 알려주는 사료로서 동독의 역사교과서 인용문, 동독농민과 서독기자의 인터뷰가 제시되어 있다. 1953년 6. 17. 동베를린의 노동자 봉기, 1961년에 시행된 장벽의 공시에 대한 사진도 삽입할 정도였다. 심지어 1952년 11월 2일 독일공산당(KPD)당수의 결의까지 언급하면서 학생들에게 주는 과제는 "이 결의는 1947년 이래 공산당의 정책과 어떻게 연관되는가? 어떤 요구가 기본법이 제공하는 자유와 충돌하고 있는가?" 였다.
"오직 모든 독일 애국자들의 비타협적이며 혁명적인 투쟁만이 아데나워 체제를 전복할 수 있고, 이와 함께 서부 독일에서 미제국주의의 지배를 결정적으로 뒤엎을 수 있다" [독일민족의 재통일 강령, 통일사회당중앙위원회편(1953. 5. 7)]
9학년용 사회 교과서(동베를린, 1961, 139-141)에는 다음과 같은 지문을 주면서 "생산의무, 청년개혁자, 자유독일청소년단...이 선전문귀에 어떤 현실이 숨어있는지 문장마다 확인해 보시오"라는 문제가 있었다.
인민민주주의: "선거일은 축제일, 다수의 남녀는 빈손으로 투표장에 오지않는다. 이들은 인민투표를 계기로 특별한 생산의무를 맡았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우리 노동자-농민 국가를 강화하고, 이로써 그들의 신뢰와 연대감을 입증한다......선거보조원들은 지체한 시민들에게 그들의 투표의무를 상기시킨다. 거리에는 유권자들에게 투표를 격려하는 청년 개척자들과 자유독일청소년단의 확성기가 울려퍼진다...의원들은 인민대표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유권자들에 의해 소환된다"
그리고 재무장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서 "정부와 야당의 대립적인 의견을 파악해 보시오"라고 학생들의 답을 구하였다. 문제는 다음과 같다.
연방수상 아데나워와 뉴욕타임즈"의 인터뷰(1950. 8. 18):"지금까지 독일국민은 공산주의의 위헙에 대한 태도를 미합중국의 무장력에 대한 신뢰로 견지하여 왔습니다. 한국에서 발생한 사태는 그러나 현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소련이 어느날 갑자기 힘을 행사하리라는 무력감이 엄습하고있습니다.....우리는 강력한 독일의 방어력이 필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사민당 당수 올렌하우저의 연방의회연설(1953. 3. 19):"연방공화국이 서방의 방어체제게 편입되는 것은....오로지 독일의 분단을 심화시킬 뿐입니다. 한편 유럽공동체 내에서 연방공화국이 무장함으로써 소련이 협상에 더 기꺼이 응하리라는 가정은 기껏해야 위험하고 불확실한 희망에 불과합니다."
집필자는 서술과 구분하여 50년대 동.서독의 사회의 모습을 잘 알려주는 당대의 사료를 제시하고, 이에 의거한 탐구를 하도록 질문을 한 것이다.
이처럼 독일은 냉정시대의 역사를 회피하지 않고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현실을 직시하도록 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독일사회가 겪은 시행착오, 내부의 현실적인 문제를 상세하게 다루어 나갔다.
중등1단계의 내용중 4단계는 러시아 혁명부터 사민당-자민당 연정기의 연방공화국 시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1부: 1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경제적 질서를 둘러싼 갈등
2부: 민족주의의 독재와 그 귀결
I. 이데올로기 사회
II. 독재체제의 확대
III.전쟁으로 가는 길
IV. 범죄와 저항
V. 반히틀러 연합
VI. 냉전
3부: 오늘날 세계정치의 문제
I. 하나의 세계
II. 식민주의의 종말
VIII. 초강대국의 적대적 공존
IX.독일 민주공화국-전제위적인가 아니면 권위주의적인가?
1. 6월17일부터 베를린 장벽까지
2. 지배체제의 변동
X. 복고와 개혁사이의 독일연방공화국
1. 아데나워 시대
2. "대연정"으로부터 "사회당-자유당"정부로
3. "동방조약"과 "내부개혁"-사민-자민당 연정
이처럼 1970년대 후반부터 독일연방공화국의 현대서 교육은 성숙기에 접어 들어 나치스와 냉정시대를 언급하였다. 전후의 사정, 분단독일사회의 개별적 발전과 차이점-평화공전에 대해서도 상세하고 적절한 비중으로 동서독의 역사를 다루었다. 독재 하틀러에 대해서도 취급했다.
"민족사회주의는 종종 '히틀러주의'로 묘사되었다. 즉 한 사람의 사고와 행동에 의해 발기되었고, 결정된 정치운동이며 지배형태라는 의미에서 였다. 독재는 히틀러와 함께 등장했고 사라졌다. 즉 이 독재체제는 역사적 문맥에서 이탈되어 있던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비판적 전기는 히틀러를 '하나의 독일적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히틀러가 애초에는 미미한 극우정당의 지도자로서 시작해서 '대독일제국'의 총통으로 등장한 현상은 그를 유리하게 도왔던 상황에 대한 숙고를 요구한다"
독일의 교과서는 독일의 분단이 나치스의 성쇠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승국의 정책에서 빚어진 혼선, 이해관계 대립, 동-서지역에서 상이한 결과를 초래한 탈나치스의 정책의 전개와 함께 전승국의 점령정책 틈바구니에 낀 독일인들의 정치활동을 상세히 서술한다. 그리고 동서독의 분단은 서방진영과 소련의 상이한 점령정책에서 이미 마련되어 있고ㅡ 미국의 마셜플랜과 소련의 베를린 봉쇄를 거쳐 구체화되었음을 밝히고있다.
마지막 중단원 X "복고와 개혁사이의 연방공화국"편에서는 다양한 면을 다루고 있다.
"사민당의 고데스베르크 강령: 아데나워 시대의 종언은 50년대 말에 예기되었다. 1959년 "고데스베르크"강령의 채택으로 사민당은 마르크스주의의 도그마적 요소를 폐기했다. 예컨대 모든 생산수단의 국유화 같은 입장을 포기한 것이다......이로써 사민당은 광범한 사회층에서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사민당은 대립적인 입장을 포기하고 대연정에 첨여할 용의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에어 하르트로 대표되는 '사회적 시장경제'는 실로 전후 연방공화국에 거대한 경제적 성과를 가져왔다. 산업화의 정도와 경제의 생산성은 증대했고, 주민들의 일반적인 생활수준도 현저히 향상되었다. 나라와 개인의 상태가 현저히 개선되었지만, 이는 우선 '불평등한 재산분재'와 이것이 장래 민주주의 발전에 과할 부담을 은폐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경제부흥을 가능하게 하였지만 ....이 노선이 주장한 사회적 정의의 실현은 다수의 견해에 의하면 불완전하게 성취되었다."
이러한 역사의 서술은 연방공화국 사회구성원이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사회경제질서에 대한 합의를 엿보게 한다. 교과서는 학생들의 저항운동도 전개한다.
"다수의 학생들은 정치, 경제, 행정의 책임있는 인사들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겉보기에 갈등없이 가능하고 복지사회에 내재되어있는 현대 민주주의와 산업사회의 본질적인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대연정에서 학생들은 정당간부들의 지배가 강회되고 국민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는 위험을 보았다....70%의 학생들은 대학의 시급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문제에 책임있는 인사들은 지금까지 이런 개혁을 수행할 능역이 없음을 입증했다. 혁명적인 목표도 사회주의적 허상도, 더욱이 계급투쟁의 실천도 학생들을 곤경에서 구출하지 못할 것이다. 단지 대학과 사회의 점진적인 개혁만이 추구하는 목표일 수 있다.
"대학에 대한 사회주의 정책은.....부르조아적 대학공부를 개혁할 필요성에서 출발할 수 없다. 이 정책은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저항운동을 대학내부로 옮겨오는 것이다. 이 운동은 대학을 이용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투쟁을 안정시키고 조직하기 위해 학문을 이용하는 것이다("사회주의 독일학생연맹의 강령, 1969)
이 두지문을 제시하고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과제는 1) "사회변혁-60년대 말 연방공화국에 있었던 학생 및 청소년 저항의 동기를 설명하시오"와 2) "연방공화국에서 사회변혁이 촉진된다면 오늘날 설파되는 주장의 논거를 설명하시오" 였다.
이처럼 김유경교수는 독일의 역사교과서의 현대사 서술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관점을 주고 내용에 있어서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었고 서술에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일관적으로 견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독일교과서는 학생들에게 역사인식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확산시켜 주었다고 끝을 맺고 있다.
우리나라도 보다 폭넓은 인식을 갖고 북한체제에 대해서 소상하게 다룰 필요성이 있다. 북한의 주체사상, 마르크스주의와의 유사성과 차이점, 북한의 토지개혁,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 계급혁명,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와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의 비교, 북한과 북유럽의 사회주의 체제의 비교 등에 대해서 다루어 학생들이 스스로 역사인식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
대신 국사교과서를 의도적으로 첨삭을 하거나 왜곡을 하지말고, 객관적으로 남북한의 실상을 다루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주체사상과 프롤레타리아, 막스의 유물론, 계급투쟁, 농민개혁과 혁명, 생산수단 등에 대한 개념과 브루조아, 자본론, 사회주의, 민주주의, 독재투쟁 대한 개념을 서술하여 학생들이 두려움없이 객관적으로 공산사회를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서 학생들이 다양한 관점의 역사인식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은 공산사회, 사회주의 혁명, 주체사상, 유물론에 대해서도 알 권리가 있다. 그래야만 민주주의, 자본주의, 유럽식 사회주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좌우를 초월하여 역사인식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공산주의나 독재주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차이점과 공통점 등 학생들이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서 학생들이 미래 대한민국의 역사를 창조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고도의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가는 것은 역사이래로 없다. 하다못해 중국이나 북한도 공산사회에서 점점 자본주의 사회로 가고 있다.
한국사회가 공산주의의 틀과 유물론적 개념을 읽고 배운다고 해서 공산주의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영환에 의하면 김일성을 만난 자리에서 김일성 자신도 주체사상을 잘 모른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고 한다. 주체사상의 수용보다는 알 필요가 있다. 주체사상이 무엇이길래 북한이 지금까지 우상화정책을 하고 있고, 어떻게 삼대 세습이 가능한지 알아서 미래의 통일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북한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통일을 대비할 수 있는가? 종북이 아니라 미래통일을 대비하여 북한의 사상과 체제, 제도, 역사를 알아 초북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초북으로 가기 위해서 주체사상의 허와 실을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막스의 유물사상과 자본론이 북한에서는 어떻게 왜곡되고 변천되어 갔는지, 독일처럼 학생들에게 역사인식의 지평을 열어주어야 한다.
한국의 검인정교과서가 북한을 지향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체제나 서술은 학생들에게 알권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도 냉전시대의 좌우역사관에서 벗어나 독일처럼 좌우이념을 뛰어넘는 역사적 지평을 소유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역사가 대한민국을 통하여 어떻게 실현되어 나가는지 좌우를 초월하여 신앙적인 눈을 갖고 실펴볼 필요가 있다.
2. 지배체제의 변동
X. 복고와 개혁사이의 독일연방공화국
1. 아데나워 시대
2. "대연정"으로부터 "사회당-자유당"정부로
3. "동방조약"과 "내부개혁"-사민-자민당 연정
이처럼 1970년대 후반부터 독일연방공화국의 현대서 교육은 성숙기에 접어 들어 나치스와 냉정시대를 언급하였다. 전후의 사정, 분단독일사회의 개별적 발전과 차이점-평화공전에 대해서도 상세하고 적절한 비중으로 동서독의 역사를 다루었다. 독재 하틀러에 대해서도 취급했다.
"민족사회주의는 종종 '히틀러주의'로 묘사되었다. 즉 한 사람의 사고와 행동에 의해 발기되었고, 결정된 정치운동이며 지배형태라는 의미에서 였다. 독재는 히틀러와 함께 등장했고 사라졌다. 즉 이 독재체제는 역사적 문맥에서 이탈되어 있던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비판적 전기는 히틀러를 '하나의 독일적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히틀러가 애초에는 미미한 극우정당의 지도자로서 시작해서 '대독일제국'의 총통으로 등장한 현상은 그를 유리하게 도왔던 상황에 대한 숙고를 요구한다"
독일의 교과서는 독일의 분단이 나치스의 성쇠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승국의 정책에서 빚어진 혼선, 이해관계 대립, 동-서지역에서 상이한 결과를 초래한 탈나치스의 정책의 전개와 함께 전승국의 점령정책 틈바구니에 낀 독일인들의 정치활동을 상세히 서술한다. 그리고 동서독의 분단은 서방진영과 소련의 상이한 점령정책에서 이미 마련되어 있고ㅡ 미국의 마셜플랜과 소련의 베를린 봉쇄를 거쳐 구체화되었음을 밝히고있다.
마지막 중단원 X "복고와 개혁사이의 연방공화국"편에서는 다양한 면을 다루고 있다.
"사민당의 고데스베르크 강령: 아데나워 시대의 종언은 50년대 말에 예기되었다. 1959년 "고데스베르크"강령의 채택으로 사민당은 마르크스주의의 도그마적 요소를 폐기했다. 예컨대 모든 생산수단의 국유화 같은 입장을 포기한 것이다......이로써 사민당은 광범한 사회층에서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사민당은 대립적인 입장을 포기하고 대연정에 첨여할 용의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에어 하르트로 대표되는 '사회적 시장경제'는 실로 전후 연방공화국에 거대한 경제적 성과를 가져왔다. 산업화의 정도와 경제의 생산성은 증대했고, 주민들의 일반적인 생활수준도 현저히 향상되었다. 나라와 개인의 상태가 현저히 개선되었지만, 이는 우선 '불평등한 재산분재'와 이것이 장래 민주주의 발전에 과할 부담을 은폐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경제부흥을 가능하게 하였지만 ....이 노선이 주장한 사회적 정의의 실현은 다수의 견해에 의하면 불완전하게 성취되었다."
이러한 역사의 서술은 연방공화국 사회구성원이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사회경제질서에 대한 합의를 엿보게 한다. 교과서는 학생들의 저항운동도 전개한다.
"다수의 학생들은 정치, 경제, 행정의 책임있는 인사들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겉보기에 갈등없이 가능하고 복지사회에 내재되어있는 현대 민주주의와 산업사회의 본질적인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대연정에서 학생들은 정당간부들의 지배가 강회되고 국민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는 위험을 보았다....70%의 학생들은 대학의 시급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문제에 책임있는 인사들은 지금까지 이런 개혁을 수행할 능역이 없음을 입증했다. 혁명적인 목표도 사회주의적 허상도, 더욱이 계급투쟁의 실천도 학생들을 곤경에서 구출하지 못할 것이다. 단지 대학과 사회의 점진적인 개혁만이 추구하는 목표일 수 있다.
"대학에 대한 사회주의 정책은.....부르조아적 대학공부를 개혁할 필요성에서 출발할 수 없다. 이 정책은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저항운동을 대학내부로 옮겨오는 것이다. 이 운동은 대학을 이용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투쟁을 안정시키고 조직하기 위해 학문을 이용하는 것이다("사회주의 독일학생연맹의 강령, 1969)
이 두지문을 제시하고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과제는 1) "사회변혁-60년대 말 연방공화국에 있었던 학생 및 청소년 저항의 동기를 설명하시오"와 2) "연방공화국에서 사회변혁이 촉진된다면 오늘날 설파되는 주장의 논거를 설명하시오" 였다.
이처럼 김유경교수는 독일의 역사교과서의 현대사 서술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관점을 주고 내용에 있어서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었고 서술에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일관적으로 견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독일교과서는 학생들에게 역사인식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확산시켜 주었다고 끝을 맺고 있다.
우리나라도 보다 폭넓은 인식을 갖고 북한체제에 대해서 소상하게 다룰 필요성이 있다. 북한의 주체사상, 마르크스주의와의 유사성과 차이점, 북한의 토지개혁,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 계급혁명,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와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의 비교, 북한과 북유럽의 사회주의 체제의 비교 등에 대해서 다루어 학생들이 스스로 역사인식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
대신 국사교과서를 의도적으로 첨삭을 하거나 왜곡을 하지말고, 객관적으로 남북한의 실상을 다루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주체사상과 프롤레타리아, 막스의 유물론, 계급투쟁, 농민개혁과 혁명, 생산수단 등에 대한 개념과 브루조아, 자본론, 사회주의, 민주주의, 독재투쟁 대한 개념을 서술하여 학생들이 두려움없이 객관적으로 공산사회를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서 학생들이 다양한 관점의 역사인식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은 공산사회, 사회주의 혁명, 주체사상, 유물론에 대해서도 알 권리가 있다. 그래야만 민주주의, 자본주의, 유럽식 사회주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좌우를 초월하여 역사인식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공산주의나 독재주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차이점과 공통점 등 학생들이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서 학생들이 미래 대한민국의 역사를 창조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고도의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가는 것은 역사이래로 없다. 하다못해 중국이나 북한도 공산사회에서 점점 자본주의 사회로 가고 있다.
한국사회가 공산주의의 틀과 유물론적 개념을 읽고 배운다고 해서 공산주의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영환에 의하면 김일성을 만난 자리에서 김일성 자신도 주체사상을 잘 모른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고 한다. 주체사상의 수용보다는 알 필요가 있다. 주체사상이 무엇이길래 북한이 지금까지 우상화정책을 하고 있고, 어떻게 삼대 세습이 가능한지 알아서 미래의 통일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북한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통일을 대비할 수 있는가? 종북이 아니라 미래통일을 대비하여 북한의 사상과 체제, 제도, 역사를 알아 초북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초북으로 가기 위해서 주체사상의 허와 실을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막스의 유물사상과 자본론이 북한에서는 어떻게 왜곡되고 변천되어 갔는지, 독일처럼 학생들에게 역사인식의 지평을 열어주어야 한다.
한국의 검인정교과서가 북한을 지향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체제나 서술은 학생들에게 알권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도 냉전시대의 좌우역사관에서 벗어나 독일처럼 좌우이념을 뛰어넘는 역사적 지평을 소유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역사가 대한민국을 통하여 어떻게 실현되어 나가는지 좌우를 초월하여 신앙적인 눈을 갖고 실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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