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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주체사상 삭제없이 통일 없다

  • 법과 교회
  • 입력 2015.12.17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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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남북한 법제통일 구성해야
필자는 종교법학회에서 법제 통일에 대해 독일, 예멘의 헌법을 보면서 남북의 헌법을 비교연구 하였다. 통일이 되기 전에 먼저 북한의 헌법에서 김일성주체사상에 대한 내용이 삭제 되지 않으면 통일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     ⓒ 법과 교회

통일이 되기 위해서 기독교인들은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북한과 교류하면서 양국이 법제 통일을 위한 시민단체를 구성하거나 국회의원들이 중심하여 북한 노동당 의원들과 연대하여 법제 통일위원회를 구성하여 우선 북한헌법 전문에 있는 김일성 주체사상을 삭제하고 자유민주주의체제의 토대하에서 통일헌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법제통일 없으면 남북한 통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중심으로 이에 대한 현실책으로 남북한 법제통일 단체를 구성해야할 것이다. 

I. 독일통일

  A. 서독헌법  

“신과 인간에 대한 책임을 의식하고 민족적, 국가적 통일을 유지하며, 통일된 유럽의 동등한 권리를 갖는 구성원으로서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을 다짐하며 바덴, 바이에른, 브레멘, 함부르크, 헷센, 니더작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라인란트-팔츠, 슐레스비히-홀슈타인뷔레뎀베르크-바덴, 뷔르템베르크-호엔쫄레론 각주의 독일국민은 과도기에 있어서 국가생활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기 위하여 헌법제정권력에 위하여 이 독일 연방공화국 기본법을 제정한다. 위의 각 주의 독일 국민들은 또한 참여가 거부된 독일인을 대신하여 행동하였다. 전체 독일인은 자유로운 자기결정에 따라 독일의 통일과 자유를 달성할 사명을 가진다.”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대한민국헌법)

 B. 동독헌법의 이념적 정체성 

“독일 노동자의 혁명전통을 계승하고 파시즘으로부터의 해방에 의거하여 독일 민주공화국 인민은 우리 시대의 역사적 발전과정과 일치하는 사회 경제적, 국가민족적 고유의 권리를 구현하고 발전된 사회주의를 형성한다”

동독헌법 1조는 “독일민주공화국은 노동자, 농민의 사회주의 국가이다. 독일민주공화국은 노동자계급 및 막스-레닌주의 정당의 영도하에 있는 도시와 농촌노동자의 정치조직이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서독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막스-레닌주의를 삭제해야 했다.

동독헌법 2조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 원칙을 제시한다. 2조 ①항은 “독일민주공화국의 모든 정치적 권력은 노동자가 행사한다. 인민은 사회주의 및 국가가 진력하고 있는 모든 활동의 중심이 된다. 사회주의적 생산의 빠른 속도, 능률향상, 과학적, 기술적 진보 및 노동생산성 증대를 기반으로 한 인민의 물질적. 문화적 생활수준의 지속적인 향상은 발전된 사회주의 사회의 주요한 과제이다”라고 규정하여 노동자를 중시하는 막스-레닌주의 바탕위에서 규정된 헌법임을 알 수 있다. 
  
 C. 통일독일 헌법

“독일 국민은 신과 인류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통합 유럽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하면서 헌법제정권력에 근거하여 이 기본법을 제정한다. 바덴-뷔르템 베르크, 바이에른, 베를른, 브란덴부르크, 브레멘, 함부르크, 헷센, 메클렌부르크-포오포먼, 니더작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라인란트-팔츠, 자알란트, 작센, 작센-안할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튀링겐의 각 주의 독일국민은 자결권을 행사하여 독일의 통일과 자유를 성취하였다. 이로써 이 기본법은 전체 독일국민에게 적용된다.”

통일헌법은 전문에 자유주의, 민주주의라는 정체를 언급하지 않아도 기본권은 서독의 기본권을 그대로 적용하였다. 인간의 존엄(제 1조), 자유권(제 2조), 법앞의 평등(제 3조), 종교및 양심의 자유( 제 4조), 의사표현의 자유(제 5조), 집회의 자유(제 8조), 결사의 자유( 제9조), 서신우편및 전신의 비밀(제10조), 이전의 자유(제11조), 제12조(직업선택의 자유) 등 이다. 

 II. 예멘통일

   A. 북예멘의 이념적 정체성

북예멘은 1918년 오스만 터어키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야흐 이맘이 1948년 2월까지 통치하였고, 이후 이맘 왕정에 대한 정치적 쿠데타가 지속되는 가운에 1962년 압둘라 살랄이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수립하면서 공화제를 채택하였다. 그 이후 완정파의 반란으로 공화파와 내전이 계속되었으나 내전이 종식되고 1970년 예멘아랍공화국 헌법을 제정하고 예멘아랍공화국을 수립하게 되었다.

“우리 예멘국민은 아랍마호멧 민족이다. 우리 국가와 민족의 생존은 진정한 아랍 국적의 수호에 달렸고, 아랍혈통을 주장하는 어떤 아랍국가도 그 혈통에 있어서 우리 예멘 국민에 대한 우선권을 주장할 수 없으며 또한 우리들에게 설교를 할 수 없다. ..............우리는 통합을 방해하거나 무산시키려는 모은 외세를 물리치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서 예멘통합을 이룩해야 한다.......이것은 모든 문제를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해결하려는 국가의 결의를 분명히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헌법에서 우리들은 인권과 자유를 믿고 평등, 정의,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국가와의 결속을 주장한다. 이 헌법을 통해 우리는 우리 국가에 민주적 생할과 개인과 집단의 자유의 증대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B. 남예멘의 이념적 정체성

남예멘지역은 1799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점령하자, 이에 대한 봉쇄함으로 영국이 1839년 예멘에 진출하여 아덴항을 점령했으나 1967년 식민지 독립에 힘입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독립과정에서 민족해방전선의 주도권 다툼에서 민족해방전선이 승리하자 남예멘 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다. 1970년 11월 30일 남예민주공화국이 설립되었다.

전문을 보면 “.............국가민주혁명의 업적이 사회주의 건설에 공헌할 수 있도록 자유, 사회발전, 민주주의, 평화 및 외국과의 우호관계 학대를 희망하여, 독립 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업적을 토대로 1969년 6월 22일의 개혁조치를 기점으로 하여 민족해방전선이 취한 조치를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예멘인민민주공화국 인민들은 이러한 국가민주헌법을 만들었다.”


 “노동자들은 공화국의 모든 정치적 권한을 행사한다. 노동자계급, 농민, 지식인, 브르조아 간의 굳건한 연계는 공화국 민주혁명의 강한 정치적 토대이다. 노동자 계급은 사회지도자 계급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7조)

 C. 남북예멘의 통일 헌법

 “이 헌법에서 우리는 인권과 자유를 믿고, 평등, 정의,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국가와의 결속을 주장한다. 이 헌법을 통해 우리는 우리 국가에 민주적 생활과 개인과 집단의 자유의 증대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III. 남북 통일

 A. 북한 헌법의 이념적 정체성
 
북한은 막스-레닌주의 대신 김일성 주체사상을 헌법전문에 포함시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이시며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그 기치밑에 항일혁명투쟁을 조직령도하시여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마련하시고 조국광복의 력사적 위업을 이룩하시었으며 정치, 경제, 문화, 군사분야에서 자주독립국가건설의 튼튼한 토대를 닦은데 기초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였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인민은 조선로동당의 령도밑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높이 모시며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업적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여나갈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체적인 국가건설사상과 국가건설업적을 법화한 김일성헌법이다.”

 B. 대한민국 헌법의 이념적 정체성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4조)

 IV. 기독교인들의 역할-주체사상 삭제

기독교인들은 니콜라이 교회처럼 통일기도를 하면서 민간교류폭을 넓히면서 남북한법제통일위원회를 구성해서 북한헌법전문에 김일성주체사상을 삭제하도록 협의하고, 점진적으로 자유민주통일로 나아갈 수있도록 해야하고, 국회의원들 역시 국가차원에서 남북한 법제통일 의원연맹을 구성해서 자유민주체제로의 통일헌법을 만드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독일과 예멘은 이미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통일헌법을 먼저 만든 다음에 통일을 했다. 통일을 하려면 김일성주체사상을 배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북한헌법전문에서 김일성주체사상을 삭제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기독교법정에 대해서 발표한 바 있다.
/news/view.php?no=5081>=




               독일과 예멘에 있어서 헌법적인 통일에 대한 연구


                                                                                                               황규학

기존의 통일연구는 이데올로기라든가 정치체제 등 국한되었지만 최근의 연구는 법제 통일의 연구에 많이 집중되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은 정치적인 관점에서 통일국가의 권력구조에 편중되어 있었고, 법적인 관점에서의 통일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지나친 우익화로 인해 흡수통일에 대한 시각이 지배적이었고, 일부 진보주의 시각에서는 연방제 통일, 합의 통일 등 다양한 시각으로 통일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기독교는 통일 기도와 통일 예배에 공을 많이 들이고, 민간인 차원에서의 후원이나 교류협력으로 인해 꾸준한 통일논의와 통일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기독교계에서도 법제의 통일에 대한 관심은 저조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 논고는 동서독과 남북예멘이 법제 통일을 어떻게 시도했는지 살펴보고 남북한의 법제통일을 추구해 보고자 한다. 독일의 경우 이른 바 「통일조약」에서 합의한 법적 통합의 내용이 법제 전분야에 걸쳐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남북의 통일과정에서도 민사ㆍ형사ㆍ행 정 동의 분야에서의 통합이 중요하게 대두하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가 요청된다.

남북의 법제통일을 하기위해서 앞서간 유럽의 통일과 아시아의 통일을 염두해 둘 필요성이 있다. 동서독의 통일은 흡수통일이고, 남북예멘의 통일은 합의 통일이었다. 따라서 동서독의 법적 통일과 남북예멘의 법적 통일을 살펴보면서 한반도의 법적 통일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이미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종교법학회는 최근 국정하교과서의 좌우대립으로 인해 기독교내에서도 시각차가 분명한 만큼, 좌우를 아우르는 통일을 주제로 삼았다. 명성교회를 비롯 최근기독교인들의 통일기도회가 활발해지면서 기독교인들에게 통일에 대한 법적 통일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R 있다. 우선 동서독의 통일을 살펴보자. 동서독의 통일은 법적 통일로 시작했고 법적 통일로 완수했다.      

I. 동서독의 법제 통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망한 이후, 1945년 6월 5일 베를린 선언을 통하여 연합국은 독일의 최고통치권을 인수하였다. 동독은 소련의 점령체제를 형성하고, 서독은 미국과 영국의 점령체제를 형성하게 되었다. 서부지역의 독일에서 미국과 영국은 반나치, 반독재를 기초로 자유민주적 사회질서를 형성되었다. 1948년 11개 주의 대표 65명과 서베를린 대표 5명이 모여서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의 기본법을 기초하고 공포하였다. 이 기본법은 서독의 국가체제를 민주적, 사회적 연방국가로 명시함으로써 공화주의원리, 자유민주주의, 사회적 법치주의및 연방국가의 원리, 통일의 를 구현하였다. 전문에서부터 독일은 통일을 염두해 두고 헌법을 만들었다.   

  A. 서독의 이념적 정체성


서독헌법의 전문을 보면 서독의 통일을 위한 염원을 알 수 있다. 

“신과 인간에 대한 책임을 의식하고 민족적, 국가적 통일을 유지하며, 통일된 유럽의 동등한 권리를 갖는 구성원으로서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을 다짐하며 바덴, 바이에른, 브레멘, 함부르크, 헷센, 니더작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라인란트-팔츠, 슐레스비히-홀슈타인뷔레뎀베르크-바덴, 뷔르템베르크-호엔쫄레론 각주의 독일국민은 과도기에 있어서 국가생활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기 위하여 헌법제정권력에 위하여 이 독일 연방공화국 기본법을 제정한다. 위의 각 주의 독일 국민들은 또한 참여가 거부된 독일인을 대신하여 행동하였다. 전체 독일인은 자유로운 자기결정에 따라 독일의 통일과 자유를 달성할 사명을 가진다.”   

서독헌법은 민주적인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기본권에 있어서 자유민주주의적인 질서를 체계로 하는 국가임을 알 수 있다. 공화적, 민주적, 사회적 법치국가원칙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일단 공산국가로의 통일이 아니라 자유민주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통일을 염두해 두고 있는 것이다. 인권과 평등과 선거권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서독헌법은 기본권에 있어서 인간의 존엄(제1조), 자유권(제2조), 법앞의 평등(제3조), 종교및 양심의 자유(제44조), 의사표현의 자유(제5조), 집회의 자유(제8조), 제9조(결사의 자유) 등이다. 헌법의 기본원리(제20조), 정당(제21조), 제23조 (기본법의 적용범위), 국민으로서의 권리(제33조), 선거(제38조), 연방정부의 구성(제62조)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20조, 28조는 연방국가 원리와 공화적, 민주적, 사회적 법치국가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제20조는 “① 독일연방공화국은 민주적, 사회적 연방국가이다. ②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다. 28조는 “① 각 주의 헌법질서는 이 기본법에서 의미하는 공화적, 민주적 및 사회적 법치국가적 원리에 합치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다가 동독지역에 대해서는 편입후에 기본법이 효력을 발생한다고까지 하여 미리 헌법에 동독과의 통일을 염두해 두고 있다. 23조에 “독일의 그 밖에 지역에 대해서는 편입 후에 기본법이 효력을 발생한다”고 하여 동독이 통일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막스-레닌주의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동독이 독일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막스-레닌주의를 버려야 했다. 독일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B. 동독의 이념적 정체성

동독헌법은 1990년 통일헌법으로 개정되기까지 1945년 6월 9일부터 소련의 분할통치를 이유로 막스-레닌주의를 채택하고 있었다. 1949년 동독의 인민주의 헌법은 막스-레닌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동독은 1989년 12월 1일 헌법개정을 통해 1974년 헌법 제 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국가이념을 삭제하였다. 동독헌법 1조는 “독일민주공화국은 노동자, 농민의사회주의 국가이다. 독일민주공화국은 노동자계급 및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의 영도하에 있는 도시와 농촌 노동자의 정치조직이다”이다. 전문에는 “독일 노동자의 혁명전통을 계승하고 파시즘으로부터의 해방에 의거하여 독일 민주공화국 인민은 우리 시대의 역사적 발전과정과 일치하는 사회 경제적, 국가민족적 고유의 권리를 구현하고 발전된 사회주의를 형성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동독헌법 1조는 “독일민주공화국은 노동자, 농민의 사회주의 국가이다. 독일민주공화국은 노동자계급 및 막스-레닌주의 정당의 영도하에 있는 도시와 농촌노동자의 정치조직이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서독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막스-레닌주의를 삭제해야 했다.

동독헌법 2조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 원칙을 제시한다. 2조 ①항은 “독일민주공화국의 모든 정치적 권력은 노동자가 행사한다. 인민은 사회주의 및 국가가 진력하고 있는 모든 활동의 중심이 된다. 사회주의적 생산의 빠른 속도, 능률향상, 과학적, 기술적 진보 및 노동생산성 증대를 기반으로 한 인민의 물질적. 문화적 생활수준의 지속적인 향상은 발전된 사회주의 사회의 주요한 과제이다”라고 규정하여 노동자를 중시하는 막스-레닌주의 바탕위에서 규정된 헌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독일 통일이 서독으로 흡수 편입하는 과정에서 동독에서는 동독시민운동단체와 일부 서독의 법률가들을 중심으로 ‘독일제국의 민주적으로 구성된 연방을 위한 시민연합단체’를 만들어 법제 통일을 위한 노력을 다졌다. 그들은 1) 구서독의 기본법은 통일이 되면 기본법을 대체하는 새로운 헌법의 제정을 유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2) 통일독일을 위한 새로운 통일헌법을 제정하는 것은 기본법이 민주적 정당성을 회복하는 것이고, 3) 통일이후 구동독의 사회 경제적 재건및 서독과 동등한 생할환경 건설을 보장하기 위해 헌법에 사회. 경제적 기본권을 규정해야 하며, 4) 동서독과의 일치를 위해 동독주민은 새로운 국가체제인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적응하고 새로운 통일구가가 형성에 참여하는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시민연합은 1) 국가질서의 기본원리로서 공화국원리, 민주주의 원리 및 사회주의 국가원리에 입각하여 환경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것을 명시하고, 분단시대의 동서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2) 국민의기본권을 인식하고, 3) 국민표결및 국민투표제를 도입하여 민주주의의 원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4) 평화에 대한 독일인의 의지를 반영하였다. 

실제로 동독은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으나 통일헌법은 이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였다. 통일헌법 기본권에 해당하는 1조(인간의 존엄)부터 19조(기본권의 제한)까지는 이들의 많은 의견들이 수용되었다.     

C. 동서독의 법제 통일

통일독일헌법은 시민연합이 주장한대로 사회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원칙을 폐기한다. 다행히도 동독은 1989년에 독일통일을 앞두고 마르크스 레닌주의 국가이념을 포기하였다. 이로써 동독의 국가체제는 노동자와 영도되던 사회주의 국가제체를 포기하고 정치적 다원주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처럼 동독은 서독의 편입을 스스로 원했기 때문에 솔선수범해서 서독에 맞추려고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국가나 자유주의 국가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않지만 모든 헌법적 내용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지향한다. 통일헌법의 전문은 1990년 8월 31일 동서독간의 통일조약에 의거하여 기본법 36차 개정이 이루어졌다. 37차 개정부터 41차 개정까지는 유럽의 통합을 위한 통일독일의 위치와 역할을 확인하고, 연방제도에 대한 현대적 변화를 반영하였다. 

“독일 국민은 신과 인류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통합 유럽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하면서 헌법제정권력에 근거하여 이 기본법을 제정한다. 바덴-뷔르템 베르크, 바이에른, 베를른, 브란덴부르크, 브레멘, 함부르크, 헷센, 메클렌부르크-포오포먼, 니더작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라인란트-팔츠, 자알란트, 작센, 작센-안할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튀링겐의 각 주의 독일국민은 자결권을 행사하여 독일의 통일과 자유를 성취하였다. 이로써 이 기본법은 전체 독일국민에게 적용된다.”

통일헌법은 전문에 자유주의, 민주주의라는 정체를 언급하지 않아도 기본권은 서독의 기본권을 그대로 적용하였다. 인간의 존엄(제 1조), 자유권(제 2조), 법앞의 평등(제 3조), 종교및 양심의 자유( 제 4조), 의사표현의 자유(제 5조), 집회의 자유(제 8조), 결사의 자유( 제9조), 서신우편및 전신의 비밀(제10조), 이전의 자유(제11조), 제12조(직업선택의 자유) 등이다.

통일헌법은 동독 헌법에서 주장한 사회주의 원칙을 배제한다. 동독헌법 2조(사회주의 원칙)에 의하면 “①독일민주공화국의 모든 정치적 권력은 노동자가 행사한다. 인민은 사회주의 및 국가가 진력하고 있는 모든 활동의 중심이 된다. 사회주의적 생산의 빠른 발전속도, 능률향상, 과학적. 기술적 진보 및 노동생산성 증대를 기반으로 한 인민의 물질적. 문화적 생활수준의 지속적인 향상은 발전된 사회주의사회의 주요한 과제이다”라고 규정한다. “② 노동계급이 노동조합, 농민계급, 지식층및 인민의 기타 계급과의 확고한 결속, 생산사둔의 사회주의적 소유 그리고 발달된 과학적 지식에 의한 사회발전의 계획과 지도는 사회주의 사회질서의 불가침의 기초를 이룬다.” “③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는 영원히 제거된다. 인민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은 인민의 소유물이다. “각자는 각기 능력에 따라서, 각자에게는 자기 업적에 따라서”라는 사회주의 원칙이 실현된다.“

제6조는 막스-레닌주의를 토대로 하는 소비에트사회주의를 채택한다. 제6조 ②항은 “독일민주공화국은 소비에트사회주의 연방공화국과 영구적이며 최소할 수 없는 동맹관계를 유지한다. 소련과의 밀접하고 형제적인 동맹은 사회주의와 평화에의 길로 독일민주공화국 인민이 계속 전진함을 보장해 준다”이다. 동독은 경제적 기초에서도 사회주의 경제를 지향한다. 제9조(사회주의계획경제) “① 독일민주공화국의 국민경제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공유에 기초를 둔다.” 제10조(사회주의 재산) ①항은 “사회주의 재산은 전체사회의 인민주의재산으로서, 노동자 공동경영의 조합공유재산으로서 그리고 인민의 사회적 조직체의 재산으로서 존재한다”이다. 제12조(인민재산)에 의하면 "사유제는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제14조에 의하면 ”영리목적의 사기업은 허용되지 아니한다“이다.     

동독의 헌법은 1974년 10월 7일 헌법개혁을 통해 ‘발전된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하면서 서독과의 관계를 이른 바 2민족 2국가체제로 전환하였지만 서독의 독일인을 사회주의화된 동독의 독일인과 구별하고, 통일에 관한 규정을 삭제함으로서 독독과 서독은 국제법적인 관계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동독의 헌법질서는 1989년 가을 시민혁명을 통하여 서독과의 통일과정을 겪으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동독헌법의 전문은 “독일 노동자 계급의 혁명전통을 계승하고 파시즘으로부터의 해방에 의거하여 독일민주공화국 인민은 우리 시대의 역사적 발전과정과 일치하는 사회, 경제적 국가민족적 고유의 권리를 구현하고 발전된 사회주의를 형성한다. 자신의 운명을 자유로이 결정하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길, 평화와 민주주의와 제국민간의 우호의 길로 굳건히 나아가려는 의지에 충만하여 독일민주공화국 인민은 이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하였다.”이다. 그러나 통일헌법의 전문은 “독일 국민은 신과 인류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통합 유럽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하면서 헌법제정권력에 근거하여 이 기본법을 제정한다” 이다.

동독은 경제체제까지 통일하기 위하여 1990년 1월 12일 헌법개정을 통해 소유제도의 원리를 변경하여 사유재산을 인정하였다. 제12조(인민재산)와 제14(사적 사업의 한계)를 삭제 한다. 

이처럼 양독에서 통일로 가는 길은 동독이 1) 이데올로기의 변경, 2) 경제체제의 변화를 통하여 자유민주주의의 법제의 기틀을 마련한 상태에서 통일로 나아갔다. 통일은 먼저 양국이 노력해서 국가헌법에 통일을 염두한 조항을 만들고, 막스-레닌주의를 포기하고, 공산주의 체제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편입되고, 동독내부에서 먼저 헌법개정안에 대한 목소리가 나와야 하고 헌법전문에 이념적 정체성이 자유민주체제로 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서독의 경제적 흡수통일의 성격도 있었지만 이념적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법제통일이 되었을 때 통일이 가능한 것이다.  

II. 남북 예멘의 법제 통일

남북 예멘은 아랍국가로서 이념차이로 인해 유일하게 남북으로 분리되었던 나라이지만 1990년 5월 20일 예멘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였다. 예멘은 6세기초 이디오피아에 정복된 이래 1538년부터는 오스만터키의 지배를 받았고, 1839년 영국이 아덴항을 점령하였고 영국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예멘지역은 좌익 게릴라 세력이 1967년 영국과 독립전쟁을 체결하고 남예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터어키의 지배하에 있었던 북예멘의 이맘왕조는 1962년 군사쿠데타에 의해 무너지고 예멘아랍공화국이 수립되어 공화체제가 들어섰다. 

지배했던 남예멘은 막스-레닌주의를 표방하여 친소좌경노선을 추구한 반면, 터어키의 지배하에 있었던 북예멘은 정통회교국의 입장을 명시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와 관계를 가지면서 친소, 친중국의 막스레닌정책을 추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유민주체제를 추구하였다. 1972년부터 1979년까지 양국은 끊임없는 국경분쟁을 하였고, 리비아등 아랍연맹은 휴전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아랍연맹의 주선으로 북예멘의 살레 대통령과 남예멘의 이마일은 1979년 쿠웨이트에서 휴전협정을 하였다. 그 이후 양측의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통일의 논의를 계속했고, 아랍 외부 국가들도 통일을 요구해, 남북예멘은 1990년 통일되었다. 그러나 합의 통일을 달성한 예멘은 권력배분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악화되어 1994년 내전을 통하여 북예멘이 무력으로 통일을 완성하였다. 이 장에서는 무력통일 이전 합의통일이 될 때까지의 법제 통일을 살펴보기로 한다.

A. 북예멘의 이념적 정체성

북예멘은 1918년 오스만 터어키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야흐 이맘이 1948년 2월까지 통치하였고, 이후 이맘 왕정에 대한 정치적 쿠데타가 지속되는 가운에 1962년 압둘라 살랄이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수립하면서 공화제를 채택하였다. 그 이훙 완정파의 반란으로 공화파와 내전이 계속되었으나 내전이 종식되고 1970년 예멘아랍공화국 헌법을 제정하고 예멘아랍공화국을 수립하게 되었다.

“우리 예멘국민은 아랍마호멧 민족이다. 우리 국가와 민족의 생존은 진정한 아랍 국적의 수호에 달렸고, 아랍혈통을 주장하는 어떤 아랍국가도 그 혈통에 있어서 우리 예멘 국민에 대한 우선권을 주장할 수 없으며 또한 우리들에게 설교를 할 수 없다. ..............우리는 통합을 방해하거나 무산시키려는 모은 외세를 물리치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서 예멘통합을 이룩해야 한다.......이것은 모든 문제를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해결하려는 국가의 결의를 분명히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헌법에서 우리들은 인권과 자유를 믿고 평등, 정의,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국가와의 결속을 주장한다. 이 헌법을 통해 우리는 우리 국가에 민주적 생할과 개인과 집단의 자유의 증대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북예멘도 전문에 예멘통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공화국 체제를 수용한다. 

북예멘 헌법 제1조(주권독립국, 입헌공화국)는 “예멘은 의회 입헌공화국이고, 예멘국민은 아랍민족에 속한다”고 되어 공화국을 표명하고 있다. 제 6조(사회의 기초)는 “정의와 자유에 입각한 호혜의 원칙이 사회의 기초가 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제8(자유보장, 기회균등)는 “국가는 샤리아와 법률을 통해 공적. 사적 자유를 보장한다”고 되어 있다. 제11조(사적 경제활동의 자유)는 “사적 경제활동은 그것이 사회이익에 반하지 않는 한 자유이다”라고 규정되어있다. 이처럼 북예멘의 이념적 정체성은 아랍국가이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토대로 하고 있다.      

  B. 남예멘의 이념적 정체성

남예멘지역은 1799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점령하자, 이에 대한 봉쇄함으로 영국이 1839년 예멘에 진출하여 아덴항을 점령했으나 1967년 식민지 독립에 힘입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독립과정에서 민족해방전선의 주도권 다툼에서 민족해방전선이 승리하자 남예멘 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다. 1970년 11월 30일 남예민주공화국이 설립되었다.

전문을 보면 “.............국가민주혁명의 업적이 사회주의 건설에 공헌할 수 있도록 자유, 사회발전, 민주주의, 평화 및 외국과의 우호관계 학대를 희망하여, 독립 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업적을 토대로 1969년 6월 22일의 개혁조치를 기점으로 하여 민족해방전선이 취한 조치를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예멘인민민주공화국 인민들은 이러한 국가민주헌법을 만들었다.”라고 하여 막스-레닌주의 사상에 입각한다는 표현은 없어도 내용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수립이다. 제 7조(노동계급의 지위와 역할)에 의하면 “노동자들은 공화국의 모든 정치적 권한을 행사한다. 노동자계급, 농민, 지식인, 브르조아 간의 굳건한 연계는 공화국 민주혁명의 강한 정치적 토대이다. 노동자 계급은 사회지도자 계급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고 규정하여 사회주의 국가임을 천명하고 있다. 제 8조(과학적 사회주의)도 “국가의 목적은 인민의 착취를 타파하기 위한 사회주의를 기초로 한 민주혁명완성을 위한 사회관리에 있다”고 규정하여 사회주의 국가를 목적으로 한다. 경제체제 역시 사회주의 토대를 표명한다. 제14(인민경제원칙)에 의하면 “국가는 인민경제를 생산적인 관계로 발전시키며 그 결실을 인민들 사이에 공정하게 분배한다”고 규정하여 사회주의 경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제 18조(사적소유)에 의하면 “사적소유권은 헌법에 의해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과 사회적 의무에 의해 보장된다”고 하여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다.

남예멘은 1972년 9월 26일 남북예멘간의 최초의 무력충돌이 있은 후, 10월 28일 아랍연맹의 중재에 의하여 카이로 협정에서 남북예멘은 단일국가를 수립하는데 협의하고 통일을 위한 기본원칙을 정했다. 1977년 양국은 영공을 봉쇄하는 분쟁이 발생했지만 사나와 아덴 양도시에서 6개월마다 회담을 개최할 것을 합의하였다. 1979년에도 국경충돌로 인해 4천여명이 사상자가 발생하였지만 쿠웨이트 정상회담을 하여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통일을 위해 한단계식 나아갔다. 1980년 5월 6일 남북예멘은 아덴합의서에 결제분야활성화를 위한 모든 분야에 협력강화를 추진하였다. 1981년 공동헌법위원회는 최종 제13차 회담에서 통일헌법초안을 만들고 이를 승인하였다. 1989년 남예멘은 소련식 정치체제의 종식을 선언하고 일당통치의 독재를 완화하고 개혁정책을 추진하였다. 모두 통일을 위한 발걸음이었다. 

남예멘은 헌법 전문에도 “예멘인민과 국토의 통합을 믿고 의지하며, 예멘 인민들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및 회교지도자와 술탄왕조의 반동적 봉건주의에 대항하여 용감히 투쟁했다.....통합아랍건설을 위한 예비적 조치로 통합민주예멘 수립을 위한 모든 단합투쟁을 지지하며”라고 하여 통일을 염두해 두고 있었다. 헌법 제1조에 의하면 “예멘인민민주공화국은 예멘통일민주국을 지향하는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다”고 하여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C. 남북예멘의 법제 통일

 남북예멘은 흡수나 무력에 의한 통일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통일이었다. 예멘은 1972년 카이로 회담이후 통일의 발전과정을 1) 화해, 공존단계, 2) 통일촉진단계, 3) 통일성숙단계, 4) 통일완성단계로 전개하였다. 양국가는 기본적인 통일원칙을 확인하고 통일국가 이념을 공화주의, 민족주의, 민주주의로 하였고, 정치체제를 대통령제. 의회와 행정부 및 사법부로 구성하기로 하여 3권 분립에 기초한 자유민주체제에 가까운 정부형태를 취하였다. 남북예멘도 동서독처럼 1) 이데올로기의 변경, 2) 경제체제의 변화를 통하여 자유민주주의의 법제의 기틀을 마련한 상태에서 통일로 나아갔다.

남북예멘은 1972년 ‘카이로’협정에서 통일헌법의 제정을 통해 평화적인 합의에 의한 통일원칙을 합의하고, 1981년 12월 30일 통일헌법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상황으로 미루어졌다가 1989년 11월 30일 아덴에서 양측이 통일헌법에 서명함으로 통일헌법은 성립되었다. 통일헌법은 막스-레닌주의를 버리고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통일예멘헌법 5조(국제법존중주의)는 “예멘공화국은 국제연합헌장, 국제인권선언, 아랍합연맹 헌장 및 일반적으로 인정된 국제법상 원칙들을 준수할 것을 천명한다”로 규정한다.  

남북예멘의 합의 통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독일이나 남북한처럼 자유민주체제나 공산주의체제라는 이데올로기의 대립보다 정통회교적 통일과 적화통일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대립하였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를 선택한 남예멘은 이슬람이 원래의 사상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한 쪽의 일방적 통일이 아니라 대화를 통한 협의를 통해 달성되었다. 통일헌법을 기초한 남북예멘은 통일국가이념을 공화주의, 민족주의, 민주주의로 하였고, 정치체제를 단일 대통령제, 의회와 행정부 및 사법부로 구성하기로 하여 3권분립에 기초한 자유민주체제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였다. 정치적 기초에서는 제4조(국민주권주의)에 “예멘국민은 정당성과 권력의 원천이며, 국민선거와 총선거를 통해 주권을 직접 행사하거나 입법, 행정, 및 사법기관과 선거로 구성된 지방의회를 통해 주권을 간접적으로 행사한다”이다.  

남북예멘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한 것은 막스-레닌주의를 포기하였기 때문이다. 남북예멘의 통일에서 중시되는 것은 통일헌법을 통해서 규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북예멘의 헌법전문을 보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토대로 한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이 헌법에서 우리는 인권과 자유를 믿고, 평등, 정의,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국가와의 결속을 주장한다. 이 헌법을 통해 우리는 우리 국가에 민주적 생활과 개인과 집단의 자유의 증대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를 보더라도 북예멘은 자유민주체제를 추구한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동서독과 함께 남북예멘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양국가가 처음부터 통일을 전제로 헌법에 통일조항을 포함시켰고, 막스-레닌주의 조항을 폐지하거나 사상을 포기한 것이다. 두 나라 모두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고, 끊임없는 대화를 통하여 통일헌법을 기초한 것이다.   

III. 남북한의 법제 통일 

  
북한은 막스-레닌주의대신 김일성 주체사상을 헌법전문에 포함시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이시며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그 기치밑에 항일혁명투쟁을 조직령도하시여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마련하시고 조국광복의 력사적 위업을 이룩하시었으며 정치, 경제, 문화, 군사분야에서 자주독립국가건설의 튼튼한 토대를 닦은데 기초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였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인민은 조선로동당의 령도밑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높이 모시며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업적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여나갈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체적인 국가건설사상과 국가건설업적을 법화한 김일성헌법이다.”

북한헌법 3조에 의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인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고 하여 막스 레닌주의가 아니라 주체사상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북한은 1972년까지 막스-레닌사상을 채택하였지만 1972년 이후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채택하게 된다. 북한 공산당들은 막스-레닌주의가 세계의 시원적인 유물론적인 문제를 해결하였다면 주체사상은 사람의 지위와 역할의 문제를 철학적인 문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막스 레닌주의가 북한의 골격을 이룬 이론이었다면 주체사상은 이미 결정된 정책방향에 북한주민들을 동원하는데 사용된 이데올로기이다. 주체사상은 북한의 일인우상화작업을 하기 위하여 막스-레닌주의 사상에 주체사상을 가미시킨 것이다. 막스-레닌주의 없이 사회주의를 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북한의 헌법과 정책은 모두 막스-레닌주의에 토대를 두어 성립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북한도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헌법전문에 주체사상을 없애야 한다. 

따라서 동서독의 통일법의 형성을 볼 때, 북한이 우상화를 위해 채택된 주체사상을 헌법전문에서 포기하지 않으면 통일은 요원한 것이다. 대한민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되어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막스-레닌주의를 대체한 주체사상은 한 인간을 지나칠 정도로 숭배하는 우상이론으로서 폐기되지 않으면 남북한의 통일은 요원한 것이다. 주체사상이 처음에는 반사대주의 또는 자주주의의 구호아래 김일성의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기능하였고, 70년대는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라는 구호 하에 사회주의적 타성에 젖은 주민들의 소극적 작업태도를 교정하기 위하여 주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주체사상은 북한의 인민들을 선동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김일성수령체제를 정당화 되었다. 그러므로 동독이 통일 직전 헌법에 막스-레닌주의를 포기한 것처럼 북한이 주체사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통일은 요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통일이 되려면 동서독처럼 법제 통일이 되어야 하고, 법제 통일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 향하지 않고 자유민주체제의 통일로 향해야 하기 때문에 북한이 자유민주체제의 정체성으로 헌법이 교정되지 않는 한, 당분간 흡수통일이나 합의 통일은 요원하다.

IV. 결론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독일이나 예멘정부는 헌법 전문에 통일을 포함시켰고,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동독이나 남예멘은 모두 스스로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헌법에 막스-레닌주의를 삭제하거나 사회주의 체제를 정정하고 자유민주주의의 통일로 가기위해 통일헌법을 마련하고 있다. 남한도 북한과 통일을 하기위해서는 먼저 양국의 공동통일헌법위원회를 만들어 양국의 헌법수정에 앞장서야 하고, 북한의 헌법에 있는 주체사상을 폐기하게끔 해야 한다. 주체사상의 폐지없이는 통일은 없다.

먼저 남북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법제통일이 되지 않고서는 당분간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양측 법제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독일이 ‘독일제국의 민주적으로 구성된 연방을 위한 시민연합단체’를 조직한 것처럼 남북한도 시민연합단체를 조직하여 통일헌법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북한이 스스로 주체사상을 포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북한과 민간외교를 펼치면서 남북한 통일헌법을 위한 시민연합단체를 구성하여 법제통일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특히 기독교 국회의원들도 앞장서서 남북한 법제통일위원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통일을 논하기 전에 통일에 대한 규범적 접근 논의가 활성화 될 필요가 있다. 
  

참고 문헌
    

김국신, “독일, 예멘, 베트남 사례”, 『통일연구원 학술회의 총서』,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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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 “통일대비 독일과 예멘의 통일헌법체제에 관한 법적 고찰“, 『법학논총』 33(숭실 대법학연구소, 2015)

박정진, “남북기본합의서와 동서독기본조약 비교”, 『국제정치논총』53 (한국국제정 치학회).

양영식,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 『통일한국』91

장명봉, 분단국가의 통일과 헌법,(서울:국민대 출판부 2001)

황병덕, “동서독 정치통합연구”, 『통일연구원 총서』, 1996

헌법

동독헌법

서독헌법

동서독통일헌법

남예멘헌법

북예멘헌법

남북통일예멘헌법

조선인민주의 공화국헌법

대한민국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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