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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레아

  • 홍영일
  • 입력 2016.05.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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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로 뻗어 나가려는 우리 민족의 정기가 오래전부터 조상들의 핏줄 속에 살아 있었다
저자 최병국(1937년생)은 경남고, 고려대, 오하이오 주립대학,  대학원(중퇴)을 거쳐 10권의 영시집 출간하였다. 한국문예춘추문인협회 해외 이사이며 2007년 문예춘추 수필 우수상, 2015년 춘원 이광수 문학상, 2016년 문학 세계화 추진위원회 선정 베스트 셀러 소설로 선정되었다.
 
캐나다 교민으로부터 들었던 ‘꼬레아’ 성을 가진 캐나다인에 흥미를 느끼면서 엮은 소설이다.  캐나다 몬트리올 지역 한인회의 구정 설 잔치에서 자기의 라스트 네임이 ‘코레아’라는 캐나다 인이 한국인의 후예가 아닐까 해서 참석하였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저자는 관심을 가지고 꼬레아 또는 꼬레라는 원조의 추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15세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거의 100년 전이라, 인심이 후했던 우리 조상들은 인삼 재배하며 그 가치를 높이고 있었다. 그러나 나라는 당쟁으로 혼란스럽고, 백성들은 기근과 전염병으로 시달리던 시대였다.

조선의 젊은이들이 이탈리아 상선(산타 클라우디아 호)이 완도 앞바다까지 태풍에 밀려 좌초하면서 파손된 배를 수리해 주었다. 한편, 그들의 질병을 우수한 인술로 치료해 주었다. 또 귀향길에  조선의 젊은이 아홉 명이 동승하여 항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에 무사히 귀국할 수가 있었다.
 
마을 전체가 해상 영웅 장보고의 후예답게 비록 외국선원들이지만 조난당한 그들을 돕기로 하였다.

본래 앞날을 내다보는 눈이 남달랐던 남한수는 건어물 거간꾼으로 장사의 기본 원칙은 물건을 잘 골라야 하고(選物), 때를 잘 타서(適時), 물량을 많이 확보한 다음(多量買入), 값은 싸게 많이 팔아야(低價多量賣却)에 있다고 한다.

김충호는 과거에 낙방하고 과거시험이 당파의 실세들의 손에 의해 부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동생 충건이와 함께 무한한 바다에 대한 꿈을 가지고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서자로 태어나서 부모를 잃고 겨우 조선소에서 일하던 최시열과 함께 남한수를 만나게 되어 무역업을 같이 하기로 한다. 화물선을 빌려 소흑산도와 흑산도의 젓갈류와 건어물, 강진의 명물 청자를 중국 남경에 팔고 비단을 사 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완도 장좌리까지 밀려온 한쪽으로 기운채 조난당한 클라우디아 호를 돕게 된다.

기진맥진한20여 명의 선원들에게 음식과 물을 날라다 주었다.  혹시 괴질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여 남한수는 외삼촌 장현수 의원의 도움을 청했다. 장현수 역시 조정의 당파싸움에 대한  허무함을 일찍이 깨닫고 한의학을 배우기로 하였다.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여 명성을 얻게 되었다. 전염성 괴질이면 온 동네가 피해를 입게 된다고 생각하고  목숨 걸고 환자들을 진맥 하게 된다.
다행히 상한 음식먹고 식중독에 걸려 체력이 약해져서 해골처럼 누워 있었던 것이다.

장 의원은 괴질 치료에 효험을 본 적이 있었던 독한 약제를 사용하여 그들을 치료하였다.  써서 못 마시는 그들에게 먼저 먹는 시범을 보면서 설득하여 약을 먹여 살렸다. 선체를 힘센 황소 세 마리와 동네 사람들이 모두 동원하여  배 밑에 통나무를 갈아 끼우면서 밧줄로 끌어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옮겨 놓았다. 장보고의 후예와 바이킹의 후예들이 합력하여 본격적인 수리를 시작하였다.

산타 클라우디아 호의 선장 마태오 폴로 7대 선조는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이다. 마테오는 제노아 사람들이 마르코 폴로의 견문록을 통째로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격분하면서 언젠가 중국을 다녀와서 가문의 명예를 지키려 하였다.  그래서 그는 10년 넘게 지중해 연안 항해의 경험을 쌓았고, 원양 탐험선에 끼어 항해술도 익혔다.  마침내 대서양 원양 선단의 일원으로 키잡이(Pilot)가 되었다.  

마테오는 앞으로의 동방무역은 지금까지 통로였던 실크로드를 거쳐 들어오는 상품만을 취급해서는  큰 전망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베네치아에서 니꼴라스  사장이 진행하는 새 원양선 건조에 뛰어들었다.  동방 원양항해는 유럽 여러 나라의 간절한 바램이었다.

마테오 폴로 선장은 중국을 포함한 동방의 여러 나라를 왕래하는 해상항로를 탐색하는 임무를 띠고 출항하였지만, 중국에 상륙하려던 처음 계획이 험한 태풍을 만나 완도 앞바다까지 밀려오게 된 것이다. 배는 한쪽으로 기울고 돛대와 키가 떨어져 나갔으며 살아있는 선원들도 병들고 허기져 있었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응급사항에 대처하는 능력과 헌신적인 근면성을 발휘하였다. 말끔히 수리한 배가 상하이 내항에 정박하고 있었다. 괴한들이 줄사다리를 타고 습격하였을 때도 우리 성원들이 미리 발견하여 막아냈다. 상하이항의 순찰선이 감시하는 지역 안에서 불법으로 벌어진 일이 분명한데도, 오히려 클라우디호 선원들이 잘못한 것으로 꾸며 선장을 구속하였던 것이다. 충호 형제가 상하이 장터에서 황제 특별안찰사(암행어사)를 천신만고 끝에 겨우 찾아내어 억울한 사실을 호소하여 캡틴을 구출할 수가 있었다. 

그 일로 중국에 호감을 얻게 되었고, 인도양과 아라비아 해역의 계절풍의 변화를 그려넣은귀중한 해도도 얻게 되었다. 남한수는 조선 청년들 몫으로 싣고 온 고려청자와 고려 인삼을 좋은 값을 받고 팔기도 하고, 중국산 비단과  도자기, 인도나 남지나 해의 섬나라에서 생산하는 향신료를 구입하기도 하였다.

한편, 몰루까이에서는 해적선으로 오인을 받기도 했지만, 목숨을 건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고 거래를 순조롭게 하기도 했다. 항해 도중의 여름 태풍을 만나 배에 실었던 화물을 유실당하기도 하였다. 인도의 칼캇트항에 기착해서는 악덕한 아랍상인들의 농간으로 술에 탄 약을 먹고 골아떨어졌다.  그틈을 이용하여 배를 습격한 괴한들과 맞서 싸웠다. 우리 선원 한동오등 세 명을 합해 모두 다섯명이 희생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 싸움에서 선장도 옆구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충건은 장 의원이 싸준 마른 쑥을 돌 저구에 갈아 쌀가루를 섞어 선장의 환부에 붙여 주며 간호하기도 하였다.

한민족은 중국 사람이나 미국 시람 다음으로 지구촌 곳곳으로 이주해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산타 클라우디아 호는 3년 만에 베네치아에 입항을 하였다. 선장은 한국 청년들의 거처와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나중에는 그 지역의 여성들과 짝을 지어서 자리를 잡고 살도록 도와주었다.  그들의 이름도 세례명 끝에 ‘꼬레’라는 이름을 붙여 불렀다. 남한수는 ‘남 아구구스티노 꼬레’로, 김충호는 ‘김 사이몬 꼬레’ 최시열은 ‘최 야곱 꼬레’ 조동찬은 ‘조 휘지노 꼬례’ 장욱진은 ‘장 비오 꼬레’ 등으로 불렀다.

산 마르꼬스 대성당에서는꼬레아  7인의 신랑과 이태리 신부들의 합동결혼식이 열렸다. 이역 땅에서 꼬레아의 자손들을 이어나갈 조상들을 환영하는 천사들의 날개처럼 비둘기들은 창공을 날아올랐다.  2년 후 남한수는 델깐토 상사의 동양무역부를 총괄하는 부사장으로 승진하였고, 장현수 한의원의 조카인  장욱진은 이스탄불 지점장을 맡았다.  키잡이를 하던 피터는산타 클라우디아 선장이 되고 김충호가 키잡이를 맡았고 조동진은 베테랑 선원으로 활약하였다. 최시열은 제2원양선의 키잡이가 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한민족은 중국이나 미국 다음으로 지구촌 구석까지 줄잡아 700만에 해외에 이주해 산다고 한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우리 한민족은 작은 나라지만 온세계로 뻗어나가 사는 나라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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