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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학], 신학자와 도구적 지식인

  • 법과 교회
  • 입력 2016.08.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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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편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지배계급에서 벗어나려는 담대함과 용기가 있어야

오늘날 신학교수로서 사회적이 이슈나 보편적인 진리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교수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사회참여를 한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인 참여보다는 성명서에 자신의 이름을 한 자 올리는 정도이다. 대부분 신학대학교 교수들은 교단이나 교파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자율적이거나 독립적으로 어떤 사회 운동이나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자신들의 입장을 드러내기는 어렵다. 하다못해 동성애 반대 집회나 이슬람 반대 운동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거나 참여하는 교수들은 거의 없고 오히려 일반대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다. 
 
예장통합교단의 교수들은 더욱 자신들의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지난번 국정교과서 채택여부에 대해서도 장신대 교회사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성명서 정도 발표했지만, 한 교수가 이에 대한 국정교과서 지지여부 입장을 발표하고 반대입장을 띤 교수들의 입장을 비판하니 반대입장을 띤 교수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다. 책임지지 않는 성명서 한 장 발표했다가 망신만 당한 정도였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개인의 입장을 드러낸 교수가 하나도 없었다. 교수들은 교단이 요구하는 부분에 대해서 자신들이 전공한 파트만 갖고서 봉사하는 정도이다. 그러다 보면 도구적인 지식인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지식인은 근원적이고도 보편적인 목적을 수호하는 자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지식인과 지식기능인을 나누고 있다. 지식인은 근원적이고도 보편적인 목적을 수호하는 자로서 인간의 해방, 인간의 보편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지식기능인(전문인)은 보편화보다는 특수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지식기능인은 핵무기를 만드는데 자신의 특수화된 지식을 사용하지만 지식인은 핵무기가 인류사회에 끼치는 영향, 인류사회의 평화의 파괴 등에 대해서 문제점을 짚어내는 사람이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특수를 지향하는 사람은 지식전문인, 인류보편을 지향하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지식인의 진정한 기능이란 자신의 권한밖에까지 관여하는데 주어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식전문인(기능인)과 지식인을 구별하고 있다. 지식전문가는 지배계급이 통치수단으로 제시하는 기존 이데올로기안에서 그들의 특수주의를 비호한다. 교단의 지식전문인들은 교단의 총대들이 제시하는 교단신학안에서 그들의 전공이나 특수주의를 비호하는 것이다. 도구적 지식인은 단지 자신의 전공을 펼치는데 만족한다. 그러나 보편지식인은 자신의 특수화된 전공을 사회와 인간전체로 보편화시키려는 사람을 말한다.
 
통합교단 직영신학대 교수들, 지식의 보편화를 추구해야
 
이를테면 통합교단의 직영신학대 교수들이 지식 전문인이 아니라 진정한 지식인들이라면 자신들의 전공을 교단밖, 사회까지 보편화된 진리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 때 그들이 지니는 보편성은 지배계급과 자신의 계급의 특수주의를 파괴시키려는 성향을 지닌다. 얼마 전에 장신대 김*교수는 좌우이념에 상관없이 자신의 특수성인 전공에서 벗어나 국정교과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면서 지식의 보편화를 추구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는 시시비비에 상관이 없다. 단지 특수성을 넘어 보편성까지 가려는 시도만 해도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는 것이다.
 
지식인이 빠지게 되는 모순과 갈등은 특수주의와 보편주의와의 갈등에서 온다. 자신의 전공만을 존중하는 특수주의에 머물면 지식도구인으로서 남게 되지만 보편으로 향하는 사람들이라면 진정 지식인으로서 남게 되는 것이다. 보편화 된 진리를 추구하는 지식인으로서 남으려면 도구적 지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학이 교단과 교파안에서만 머무는 한, 자신들의 특수화된 전공만을 중시하는 도구적 지식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르트르는 "쓸수 있고 말할 수 있는 한 지식인은 지배게급의 헤게모니는 거부하고 그것으로부터 소외된 민중을 지키는 민중의 옹호자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예장통합교단의 이단대책전문위원들은 이대위라는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거부하지 못하고 지배계급의 입장만 대변하였다. 이는 도구적 지식인의 전형적인 예이다.
 
교수들은 교단과 학교의 이사들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도구적 지식인
 
이러한 사람들을 도구적 지식인이라고 한다. 나아가 교단직영신학대 교수들도 교단과 학교의 이사들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도구적 지식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배계급에 종속되어 자신들의 특수화된 지식만을 갖고 기능으로 사용하는 지식기능자인 이다. 신학의 가치는 교파의 특수성을 띠기도 하지만 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보편학문으로 지식의 보편성을 띠어야 하는 것이다.
 
각 교단지는 도구적 언론

기독공보 역시 마찬가지 이다. 기사나 칼럼이 교단의 특수성을 벗어나 일반 신앙과 신학이라는 보편성을 띠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단의 특수성과 당파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도구적 언론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교단지가 교단의 도구적 정보지로 전락하다 보니 사회성, 역사성, 보편성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다른 교단의 교단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교단에 진정한 언론과 지식인이 없는 것이다. 교수들이 자신의 전문성과 특수성만을 지향하는 한, 도구적 지식인으로 남게 되고, 교단지가 교단의 특수성만 고려하는 한, 도구적 홍보지로서만 머물게 된다.  교수와 신문이 세상과 사회, 인류의 보편적 진리를 전달하려고 할 때 이는 진정한 지식인이자 진정한 언론지가 되는 것이다.
 
오늘 개신교의 문제는 학교의 지식인들이 지배계급의 도구로만 전락하여 지식기능인으로 전락하는데 있다. 진정 지식인이라면 신학을 특수화시키지 않고 보편화시켜야 사회에까지 영향을 주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는 특수화 된 진리가 아니라 인류보편의 진리인데 교수들이 지배계급의 도구적 지식인으로 전락하다 보니 그 보편진리가 특수화된 진리로 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진리가 도구화되어 이 도구적 진리를 토대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이야말로 가장 불우한 인간이다. 아예 처음부터 지식도 마음대로 탐구할 수도 없으며 따라서 어떤 권력도 지닐 수 없다. 그들은 어떤 것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앎이 진실한 법칙으로부터 추론되는 것은 아니다. 보편성이 지배계급의 특수주의에 의해, 진실이 신화에 의해 폭력적으로 혹은 교묘하게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고 말을 하여 특수화된 지식이  보편화 된 지식으로 교묘하게 포장되었다고 지적한다. 
 
기독교의 실패는 보편주의의 전환의 실패이다
 
그러나 보니 기독교가 보편진리로 승격되지 못하고 특수진리로 되어 점점 변방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실패는 보편주의의 전환의 실패이다. 특수성에만 머문 것이다. 신학이 보편화된 진리로 승화되지 못하고 학교와 교단의 울타리에 머물다 보니 특수화된 진리로 전환된 것이다. 이에 대한 댓가는 개신교의 추락이다. 도구화 된 지식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사르트르는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특수와 보편의 모순속에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은 사회의 산물인만큼 사회에 전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회는 그 근본적인 모순의 형태로서 그의 내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자신의 고유한 모순이 특수한 표현임을 깨닫고 자신도 타인을 위해 이러한 모순과 싸우는 모든 인간에 대한 연대감을 느끼는 것이다."고 하여 도구화된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특수성에서 벗어나 인류와 사회를 위한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학은 특수의 학문이 아니라 보편의 학문
 
오늘날 개신교의 문제는 도구화된 지식인들의 특수성이 학교와 교단의 담을 넘어서 보편화된 지식으로 가지 못하는데 있다. 신학은 특수화된 학문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 빈곤, 정의, 환경을 다루는 보편화 된 학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에 구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보편지식인데 교단안의 특수지식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교단의 교수들은 지배계급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그들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교단의 도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전문교수들에게 심각하게 나타났다. 그들이 교단의 도구적 지식인들으로 남는 한, 신학의 미래는 없다. 보편화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교단만 인정하는 진리로서 특수화시키거나 당파화시키기 때문이다.
 
보편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지배계급에서 벗어나려는 담대함과 용기가 있어야 
 
이제 교단의 지식전문인들은 도구적 지식이라는 특수성에서 벗어나 인류와 세계를 위한 보편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예장통합교단의 신학은 특수성인데 마치 교계의 보편성 진리인것처럼 생각한다면 이는 착각이다. 도구화된 지식은 보편화된 진리로 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했던 것은 그가 당파성과 특수성에서 벗어나 보편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보편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지배계급에서 벗어나려는 담대함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결국 민중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특수화된 도구적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지식이 보편적 지식이라고 교묘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니 진정지식인을 찾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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