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과 주변의 변주곡
황규학
I. 중심과 주변의 정의
II. 외국에서의 중심과 주변
1) 지역
2) 언어
3) 문화
4) 인종
III. 한국에서의 중심과 주변
1) 지역
2) 언어
3) 인종
4) 학벌
5) 정치
6) 법
7) 종교
VI. 성서에서의 중심과 주변
1) 공간
2) 시간
3) 언어
4) 인종
5) 문화
6) 직분
V. 결론
중심과 주변의 변주곡
황규학
중심과 주변의 정의
‘중심’이란 공간적으로 보았을 때 한 가운데를 말하고,‘주변’은 중앙에서 멀리 벗어나 있거나 떨어져있는 영역을 말한다. 중심과 주변을 특징짓는 것은 공간의 위치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차별을 의미한다. 중심은 지역, 정치, 경제, 사회, 인종, 언어,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주변과 비교할 때 우세하고 주변은 중심과 비교하였을 때 열악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중심은 계속 중심으로 남고, 주변은 계속 주변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경제면에 있어서는 부익부 빈익부로 가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학자 월러스테인(Immanuel Wallerstein)도 중심과 주변의 구도를 경제의 종속론을 통해서 해석했다. 전체로서의 세계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중심에서는 더욱 시장화, 상품화가 진행하고 주변에서는 특화된 저(低)자금으로 저(低)부가가치의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양자간의 ‘부등가(不等價) 교환’에 의해 중심은 더욱 번영하고 주변은 더욱 주변화한다는 것이다. 중익중변익변이다.
그러나 사회가 안정되려면 중심은 주변으로 이동하고, 주변은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 주변이 없는 중심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역으로 말하면 주변이 있기 때문에 중심이라는 용어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변 없이는 중심이 있을 수가 없고, 중심이 없이는 주변이 있을 수가 없다. 주변과 중심은 각기 따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상호연관성 속에 서로가 상생하는 영역이다. 물에 돌을 던지면 중심의 동심원이 주변을 행하여 나아가듯, 중심이 주변을 향할 때 이상적인 관계가 되어 사회는 최소한의 차별을 줄일 수 있다. 중심과 주변의 차별이 심해지면 사회와 세계는 불안해 지고, 극단적으로 주변인의 중심에 대한 반란으로서 혁명과 폭동이 발생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중심과 주변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안정된 사회와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최근에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주변은 더 이상 주변으로 남지 않고 중심이 되어가고, 중심이 주변화 되어가는 양상이 나타난다.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도 주변국으로 전락했던 중국경제와 신흥아시아강국들이 점점 세계중심으로 가고 있고, 중심이었던 서구의 경제가 흔들리면서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스포츠에 있어서도 여전히 서구가 중심역할을 하지만 아시아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서구에 많이 진출하고 있다. 특히 흑인들의 강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리우올림픽 축구 예선경기에서 한국이 세계 최강 독일과 무승부를 이끌어 냈고 멕시코까지 이겼다. 지난번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세계축구의 최강 브라질이 홈그라운드에서 독일과 네덜란드에 완패함으로서 점점 주변으로 전락하고 있다. 오히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주변축구가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태권도나 유도도 더 이상 한국이나 일본만이 금메달을 따는 시대가 지났다. 유럽이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스포츠를 비롯 다양한 분야에서 중심이 주변이 되고, 주변이 중심이 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균등화, 공평화, 조화로움이 있을 때 세계는 안정된다. 핀란드의 교육이 세계 중심교육이 된 것도 교육의 균등화, 평등화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 교육은 중심과 주변학생들의 조화로움을 추구한다. 정복자도 땅을 주변인 식민지에 양보할 때 세계평화가 찾아온다.
역사적으로 중심이 되고자 하는 국가는 주변국의 땅을 정복하여 잃어버린 중심본능을 회복하고자 했다. 알렉산더, 십자군, 징기스칸, 나폴레옹, 히틀러, 스탈린 등은 세계정복을 통하여 행복을 추구하고자 했다. 세계사나 성서의 역사를 보면 땅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복자가 웃는 동안 주변인들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모두 주변인들의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중국의 남중해 점령, 아프리카의 내전과 시리아 내전,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은 영해나 땅을 정복함으로 중심이 되고자 하는 중심본능의 몸부림이다. 그러나 세계는 특정국가의 영토의 팽창을 막고 있다. 한 국가가 영토를 점령하려고 하면 다른 주변의 국가는 이에 대해서 전쟁을 선포하거나 나름대로 대응하여 세계평화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이 필리핀의 남중해를 점령하려다가 국제사법재판부에서 패소한 것도 이를 반영한다. 세계는 중국의 팽창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심과 주변의 갈등은 영토 전쟁이외에 계급투쟁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고, 근세에서는 각 나라들이 시민혁명을 통하여 중심인권을 소유하려 했고, 착취와 수탈을 당한 농민들은 농민혁명을 일으켜 재정적 중심에 진입하려고 했고, 종교적 부패와 억압이 있는 곳에는 종교개혁이 발생하여 사제가 아니라 교인들이 신앙적 중심이 되고자 했다. 모두 중심에의 갈망이자 몸부림이었다.
이러한 갈등양상은 인종차별에서도 나타난다. 누구든지 미국을 가게 되면 한국인은 주변인종임을 알게 될 것이다. 큰소리치는 한인들은 공항부터 철두철미하게 조사를 당하여 아무소리 하지 못하고 불이익과 차별을 당하는 주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사이는 지문검색까지 해야 하는 인권차별까지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미국은 백인경찰관의 살인사건으로 급기야 부시 전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흑백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설까지 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중심과 주변의 근원적인 이유
필자는 이러한 갈등의 궁극적인 이유에 대해 종교적인 입장에서 해결하려고 하였다. 중심과 주변의 근원적인 구도는 종교적인 입장에서 인간이 에덴동산을 떠난 이후 발생하게 되었다. 에덴동산을 떠난 이후 인간이 중심본능을 가지면서 역사, 경제, 지역, 인종, 문명, 문화 등에 있어서 다양한 이분법적인 구도가 발생하게 되었다. 신의 동산을 떠난 주변인으로 전락한 인간은 신과의 중심을 통해서 중심에 들어가는 것보다 외형적이고도 물질적인 중심을 통하여 복락원을 실현하고자 했다.
에덴동산을 상실한 인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중심을 추구하였다. 이는 중심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리우 올림픽에서 드러나듯 선수들이 1등을 하고, 금메달을 따고, 최고 중심이 되어야만 행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변에는 패배자들이 더 많이 있다. 한 쪽이 최고나 중심이 되고자 하면 제로섬처럼 다른 쪽은 패배자나 주변인이 있어야 한다. 주변인들이 있기 때문에 경쟁에서 승리한 중심인들이 행복해하는 것이다. 패배자나 주변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대부분 열등하게 살아간다. 경쟁으로 말미암은 중심과 주변의 심각한 차별이 있다. 대학을 들어가서 좋아하는 학생들이 있는가하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여 떨어져서 슬퍼하는 학생들이 더 많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기쁨이나 웃음은 패배한 자들의 고통과 눈물의 토대위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부자들이 돈을 많이 번다면 뒤에는 수많은 주변인들의 눈물어린 저임금의 노동량이 있을 것이다. +
인간이 신을 중심하여 살았을 때는 모든 삶의 문제가 평안하고 행복했지만 신을 떠나면서 차별과 전쟁, 경쟁, 탐욕이 발생하게 되었다. 힘이 없는 민족이나 국가, 백성들은 노예나 식민지로서 하층부의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중심인들은 계속 중심을 유지하려고 했고, 주변인들은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 자신들도 중심인들처럼 살기를 원했다. 그러다 보니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가게 되었다. IS 역시 미국중심주의 세계에서 자신들이 중심이 되고자 하는 중심본능에 빠졌기 때문에 무리하게 살상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인간들의 중심본능은 하늘까지 올라가는 탑을 만들어 하늘에 올라가면 중심을 회복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남을 죽여서라도 넓은 땅을 차지하면 에덴동산이 회복되는 줄 알았고, 황금으로 커다란 성당을 만들거나 대형교회를 세우면 신이 내려오는 거룩한 중심의 위치가 되는 줄 생각했고, 신이 주신 거룩한 계명을 줄줄 외우고 성복을 입으면 신과 교제하여 영적 중심이 되는 줄 믿었고, 기독교왕국을 세우면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영적 중심국가가 되는 줄 믿었고 수 만명의 신도들이 따르면 자신이 하늘의 중심 선지자라고 착각을 했다. 그러나 갈수록 인간이 차지하고자 했던 중심본능은 낙원을 상실한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중심환상에 불과했다.
이처럼 신을 떠나 주변인으로 전락한 인간들은 높은 탑, 넓은 땅, 장엄한 성전, 거룩한 계명, 신령한 사제를 통하여 중심에 들어가기를 원했지만 성서는 탑이나 땅, 성전, 계명, 사제를 통하여 진정한 중심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신은 인간과 달리 인간이 생각하는 외적인 중심에 있지를 않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중심이 따로 있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본다(삼상16:7)였다.
이 책에서는 외국에서의 주변, 한국에서의 주변에 대한 문제를 열거하면서 성서의 중심 주변의 신앙적인 구도를 통하여 현실의 중심과 주변의 구도를 좁히기 위한 새로운 대안점을 모색하고자 한다. 첫 번째 신이 중심되는 에덴동산의 정신을 회복하야 하고, 두 번째는 중심과 주변의 순환구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중심은 주변으로 가고, 주변은 중심으로 이동하고 그 중심은 다시 주변으로 이동하는 순환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책에서 사실의 문제를 종교적인 가치의 문제로 대하다 보면 현실을 회피하거나 이상주의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지만 서부유럽과 북부유럽의 정책을 대안으로 삼았다. 서구도 성서의 가치의 현실화를 통하여 중심과 주변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했다. 신의 소명에 입각한 청교도들의 근검절약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탄생, 부자들의 고율의 세금으로 경제적 약자의 복지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은 좋은 예이다. 스웨덴은 세금이 수입의 60%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한 연고로 북부유럽은 경제적 약자들도 강자들 못지않게 교육, 의료, 연금에 있어서 복지혜택을 받고 있다. 이들 국가는 부의 중심과 주변을 좁히기 위한 최대의 전략을 펴고 있다.
성경은 죄악을 범한 인간에게 전쟁, 인종차별, 언어의 저주, 경제의 부익부 빈익빈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기술했지만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도 제시하고 있다. 약자를 돌보는 성서의 정신으로 갈 때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중심은 끊임없이 연약한 주변을 지향해야 하고, 주변이 건강해지면 다시 다른 열악한 주변을 지향하는 논리적 순환이 계속되어야 중심과 주변의 편차가 좁혀질 수 있다. 중심세력들이 주변으로 향하는 정신과 의식이 있을 때만이 중심과 주변의 순환구도는 계속되어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II. 외국에서의 중심과 주변
1) 지역
북미생활이나 유럽생활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인들은 서구를 가면 주변인이고 백인들은 중심인으로서 살고 있다. 우리나라를 떠난 한인들은 세계 어디를 가나 지역적 주변인이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갈지라도 지역적 주변인에 불과하다.
필자가 1998년 IMF가 발생할 무렵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 캐나다는 주변인들에게 살기 좋고 친절한 나라였고 중심국가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살면 살수록 이방인인 나는 늘 주변인에 불과했다. 한국 땅에 사는 외국인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최근 한국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눈에 뛴다. 미국인이나 캐나다인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어학을 가르치는 영어교사이고, 아시아 사람들은 노동을 한다. 중국, 탈북자, 베트남, 태국, 파키스탄, 스리랑카, 인도, 네팔, 필리핀 사람들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한국은 철두철미 지역적 중심 국가이고 자신들은 주변인에 불과하다는 주변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 땅에 있는 외국인들은 모두 지역적 주변인에 머문다.
한인들은 길거리에서 미국인이나 유럽인이 지나가더라도 더 이상 주눅 들지 않는다.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말을 건넬 수 없어도 단지 답답함은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중심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지역적 주변에 머무르게 된다. 나그네의 주변적 삶이다. 최근 전쟁 난민들은 독일이나 영국, 유럽 어디를 가든지 안정된 삶을 희망하고 있지만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지역적 주변인들이기 때문에 행복한 곳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난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고국의 영토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심정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그만 땅덩어리 독도도 목숨을 다 바쳐서 수호하려고 하고 있는 것은 영토를 잃어버린 쓰라린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한인들의 중심영토는 한반도와 부속 도서이다. 미국인이든, 북한인이든, 중국인이든, 난민이든 그들은 그들만의 조국이 있다. 아무리 나라가 못 살고 후미지더라도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태어나고 국적을 얻은 중심영토가 있다. 사람들은 영토적 본능이 있어서 본향에 가기를 원하고 있다. 나이 들면 노인들은 미국생활이 흥미가 없어지고 친지들과 친구가 있는 본향을 그리워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원래의 중심지역을 추구하는 중심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한국인이라도 탈북자들이나 조선족들이 이 땅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이 태어난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얼굴은 같을지 모르나 이 땅에서는 영원히 지역적 주변인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민족에게 있어서 영토와 국가란 더없이 중요하다. 한 나라의 국민들은 지역적 정체성이 있을 때 내 땅이라는 의식을 갖고 살아간다. 한국도 국가의 정체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은 그만큼 나라를 잃은 설움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일본의 독도 분쟁으로 한국인들이 영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영토의 중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세계는 영토전쟁 이다. 영토를 차지해야만 중심국가가 될 수 있는 믿음을 갖고 있다. 로마의 역사, 유럽의 역사, 성서의 역사는 영토를 차지해야만 중심국가나 중심민족이 될 수 있는 신념을 갖고 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세계대전은 모두 드넓은 영토를 차지해야만 세계중심국으로 으뜸설 수 있다는 신념에 기초한 전쟁이었다.
그래서 전쟁의 역사는 모두 영토 점유의 역사이다. 과거의 유럽 식민지, 소련의 공산주의, 독일의 나찌즘, 일본의 군국주의 등은 타국가의 영토를 확보함으로 인해 영토적 중심을 실현시키려고 했다. 19세기말부터 일본은 아시아의 주변이기를 거부하고, 중국을 누르고 스스로 아시아의 중심이 되고자 했다. 그 와중에 한반도는 열강들의 아귀다툼 판이 되어버렸고, 우리는 결국 일본의 식민 지배를 당해 주변국가가 되고 말았다. 한국은 더 이상 지역적 주변에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경제적 우위를 통하여 세계의 중심국가로 향하려고 있다.
미국이 주둔하게끔 하고 매년 천문학적인 값의 무기를 사들이는 것도 더는 영토적 주변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중심과 주변의 구도가 이분화 되면 영구히 차별이나 갈등, 식민지, 분단은 고착화되는 것이다. 제국주의 이후 세계의 평화는 중심이 주변으로 이동하고 주변이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이루어졌다. 열강들이 점령했던 나라들이 독립을 하고, 열강들이 물러나면서 세계평화는 회복되었다. 가진 자들이 주변을 행하고, 없는 자들이 중심으로 향할 때 조화로운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다.
신을 떠나 주변에 머물게 된 인간들은 영토를 확장하고 차지해야만 세계중심에 머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인간들에게 영토는 일종의 우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인간이 차지한 영토 안에 신은 없었고 중심이 되려는 그들의 욕망만 있었다. 신이 요구하는 에덴동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를 땅으로 정복한 민족이나 국가들은 얼마가지 않아 전쟁에 패함으로 대부분 영토를 상실하였다.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러시아, 독일, 일본이 그러했다.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독립을 하면서 자신의 영토를 회복하면서 세계평화는 찾아오게 된다. 영토적 중심국가가 주변을 향하고 영토적 주변국가가 중심으로 향할 때, 세계의 평화와 조화가 찾아오게 된다.
신은 모든 민족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준 땅을 한 국가나 민족이 욕심을 내어서 모두 차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많이 가진 자는 적은 자에게 주고, 적은 자는 많이 가진 자처럼 공평하게 분배하기를 원했다. 모든 국가에게 경계를 주어서 모두 조화롭게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신은 기름지고 아름답게 보이는 영토를 추구하지 말고 광야일지라도 자신의 능력이 임하는 신의 영토를 추구하기를 원했고, 나아가 하늘과 새 땅이라는 새로운 에덴동산을 확보하기를 원했다. 신의 중심이 인간의 주변으로 찾아오고 인간의 주변이 신의 중심으로 향할 때 이상 사회가 되는 것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의 영토 안에서 사는 것을 경험했다.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은 신이 직접 준 것이었다. 그 영토안에서 밤에는 불기둥이, 낮에는 구름기둥이 이정표였다.
2) 언어
에덴동산을 떠난 인간들에게 임한 저주의 하나는 언어 저주였다. 신은 높은 탑을 통하여 하늘의 중심에 다다르려고 했던 인간들의 오만함을 꺾고 더 이상 모든 것이 합력하여 악을 이루지 못하도록 언어의 저주를 허락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11:7-9)
모든 인간은 자신이 살던 고국을 떠나면 언어적 장벽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나라를 떠나면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고통을 당하는 것이 언어이다. 가까운 일본을 가나, 중국을 가더라도 얼굴은 유사하나 말이 안통하기 때문에 소통을 하기 어렵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언어로 인해서 한국 사람들과 잘 소통이 되지를 않으니 외국인들은 특정지역에서 자신들끼리 모여서 살기도 하고, 식당을 따로 오픈하기도 한다. 누구든지 외국생활을 하면 자신이 언어의 주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캐나다는 그야말로 동화와 같은 아름다운 나라였다. 캐나다는 가을단풍과 도시의 분위기, 호수, 주택, 대학교 건물, 공원 등은 이국적이면서도 낭만적이고 멋스러움이 있었다. 온타리오 주에 있는 토론토에서 남쪽으로 1시간 떨어진 해밀톤은 오래된 도시로서 현대 건축미와 과거의 건축미가 함께 있었다. 고딕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눈에 띄었다. 토론토에 비할 때 해밀톤은 오래된 도시이기 때문에 과거의 냄새가 물씬 났다. 그러나 아름다운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언어의 한계를 충분히 느끼는 언어 주변인이었다.
캐나다에서 유학 생활 1년, 2년 지나면서 필자는 캐나다생활에 조금씩 뿌리를 내려나갔다. 중심을 향하여 갔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이방인이자 주변인인 나는 여전히 언어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외국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언어였다. 한국에서 어학을 가르치는 캐나다인이나 미국인들을 만날 때면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어냐’고 물으면 그들은 한사코 언어라고 대답을 한다. 한국에서 몇 년 동안 거주한 외국인들도 한국 언어에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나도 맥매스터 대학에 다니면서 언어 주변임을 철저하게 알게 되었다.
맥매스터대학에서 신학 석사과정의 공부를 하는데 교수의 말을 알아듣기도 어려웠고, 알아듣는다 하더라도 노트로 받아쓰기가 어려웠다. 학교에서 교수가 리포트를 쓰라고 숙제를 내주면 영작을 하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한국에서 충분히 언어숙달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학을 했기 때문에 이만 저만 어려움이 아니었다. 가장 힘든 것은 시험을 볼 때 이다. 당시 리처드 롱네커라는 신약학 교수는 시험문제를 내주면서 본문을 주면서 영어로 성서비평을 하라고 했다. 성서비평에 대해서는 한글로 쓰라고 해도 어려운데 영어로 자료비평, 문헌비평, 역사비평, 양식비평을 해야하고, 헬라어를 그대로 써야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와 같이 나는 외국에서 철두철미하게 언어 주변임을 느끼게 되었다. 영어공부를 충분히 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될 정도였고, 영어공부를 해 온 학생들도 언어적 한계를 느끼기는 마찬가지 였다. 아무리 캐나다가 아름답고 외국인에 대해 배려를 잘한다고 할지라도 언어적 문제가 극복되지 않으면 늘 언어 주변인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언어적 한계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사역할 때와 공부할 때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플로리다에 위치한 낙스신학교(Knox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학위프로그램에서 공부하는데 한인은 필자 뿐이었다. 대부분 미국인이었고 히스패닉 출신의 목사가 한명 있을 정도였다. 박사과정이라 학생들끼리 토론을 해야 하는데 일단 알아듣는 것부터 쉽지 않았고, 유창하게 토론을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강의 내용을 수용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Ph.D 이상 요구하는 리포트를 써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낙스(Knox theological seminary)는 보수적인 학교이기 때문에 주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백인이었고, 높은 학문의 질을 요구하였다. 미국에서의 목회학박사과정(D.Min)은 Ph.D 이상의 난이도를 요구하였다. 더군다나 미국 남부지방의 사람들은 캐나다인들처럼 발음이 명료하지 않아 알아듣는 것조차도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필자가 PCUSA 트로피칼 노회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인터뷰를 하는데 나이든 장로와 목사들의 발음이 희미하기 때문에 답변할 때 발음이 좋은 사람에게 다시 질의를 해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었다. 어느날 백인교회와 함께 사역을 하면서 백인목사가 설교를 시켰는데 설교로 백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시키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한국영어에 익숙한 내가 말하는 발언이나 문장내용이 백인들이 요구하는 영어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황인종을 yellow people 라고 설교한 적도 있었다. 이는 백인영어가 아니었다.
교통위반으로 법원에 갔을 때도 판사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었다. 이외에도 대사관에서 영어로 인터뷰 할 때, 출입국실에서 물어볼 때, 아파트를 얻으려 할 때, 학교에서 공부할 때, 은행에 가서 통장을 개설하려고 할 때, 논문을 쓰고자 할 때, 영어로 설교해야 할 때, 컴퓨터를 고치고자 할 때는 철두철미하게 본인이 언어 주변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언어 주변인이었던 나의 귀는 둔감했고 나의 혀는 빨리 움직이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영어를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지만,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필수였다. 특히 전화로 고장 난 컴퓨터를 켜놓고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조언을 들으려고 할 때는 여간 신경쓰는 일이 아니었다. 얼굴을 보고 영어로 소통하면 눈치라도 있어서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 줄을 대충 파악하는데 전화로만 하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워 계속 반복해서 물어보아야 했다. 언어적 한계는 생명을 위협받을 때도 있었다. 어느 날 플로리다에 온지 얼마 안 되어 차를 몰고 가는데 경찰이 차를 따라왔다. 속도위반이었다. 플로리다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속도위반에 대해서는 엄격했다. 캐나다에서는 한 번도 속도위반에 걸려본 적이 없었는데 플로리다에서 와서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경찰이 따라와서 차를 옆으로 세웠다.
나는 경찰에게 “캐나다에서 처음 내려와서 제한 속도를 잘 알지 못하였다”고 변명을 하려고 마음먹고, 차문을 열고 내리려고 하는데 경찰은 “get in the back", "get in the back"을 외치는 것이었다. 나는 ‘차 뒤로 가는 소리이구나’ 로 알아듣고, 문을 열고 나와서 차량 뒤로 갔다. 그런데 두 명의 경찰이 총을 꺼내서 나를 겨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경찰이 총기를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속도위반한 드라이버에 대해서 총까지 겨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get in the back"이라고 말하면 차안에서 내리지 말고 ‘원래의 위치로 다시 돌아가라는 것’이었는데 ‘차 뒤로 가라는 것’으로 이해했으니 경찰도 당황하여 총을 꺼냈던 것이다. 보통 차량 검문할 때, 운전사가 차량에서 내리면서 경찰을 향해 총을 쏘는 것으로 착각할 수가 있기 때문에 경찰이 검문할 때 차에서 내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나는 미국에서 언어적 주변인으로서 생명의 위협까지 당한 적이 있었다. 북미에서 언어의 문제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중심사회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이 타국에 가면 타국의 언어의 법을 따라야 그 나라에서 차별당하지 않고 적응이 가능한 것이다. 캐나다는 모든 이민자들에게 영어를 공짜로 가르친다. 이는 언어 주변인들이 언어 중심인들로 되어서 중심권에서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중심 언어인들이 주변 언어인들에게 나아갈 때 주변 언어인들은 중심 언어인으로 쉽게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주변인들이 외국에서 중심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영어를 극복해야 한다. 중심국가는 비영어권에 있는 주변인들이 언어를 잘 습득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주변인들은 언어를 속히 습득해서 중심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중에 언어주변인들을 다시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3) 문화
내가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우선해야 할 일은 아파트를 구하는 것이었다. 아파트문화도 한국과 달랐다. 한국의 아파트문화는 전세문화였지만 캐나다와 미국에서의 아파트문화는 임대(삭월세) 문화였다. 요사이 한국도 점점 임대 문화로 바뀌어가지만 여전히 전세문화가 압도적이다. 전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거금이 필요하지만 캐나다나 미국에서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첫째 달과 마지막 달 두 달 치의 임대료를 지불해야 한다. 매달 500불씩 임대료를 내는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1,000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1년이나 2년 일정기간동안 임대료를 밀리지 않고 잘 내면 이사하여 다른 아파트를 구할 때도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임대문화는 한국의 전세문화와 달리 매달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는 약점이 있다. 아파트를 얻기는 쉽지만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한국의 전세문화가 더 낫다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었다. 한번 거액의 전세금을 지불하면 매달 임대료로 지불하는 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유학생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처럼 돈이 없는 사람들은 매달 일정액으로 돈을 지불하는 임대문화가 편하였다. 그런데다가 한국처럼 관리비를 따로 내거나 물세, 전기세를 따로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편했다. 모든 것이 매달 임대료에 다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외국의 임대문화는 매달 돈이 지불되어야 하기 때문에 돈이 매달 들어오지 않는다면 문화적으로 낯선 유학생들에게 더없이 불안한 문화이기도 했다. 이처럼 유학생들은 아파트의 문화하나만 보더라도 문화적 주변인이었다. 비단 아파트문화만 아니라 은행문화도 한국과 달랐다. 북미는 아파트의 임대료나 교회헌금을 낼 때, 그리고 월급을 지급받을 때, 대부분 개인수표를 사용한다. 매년 은행에서 고객들에게 두 세 묶음의 개인수표를 보내온다. 은행에 잔고가 있는 만큼 자신이 수표를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은행잔고가 없이 수표를 마음대로 남발하면 부도처리가 된다. 미국에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나는 은행에 잔고가 충분히 있는 줄 알고, 개인체크 100불 정도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은행통장을 체크해 보니 20불씩 5번이나 마이너스로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100불이 벌금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잔고가 없는 상태에서 개인체크를 남발하였다고 하여 잔고가 채워질 때까지 계속 20불씩 벌금을 내야 했다.
은행측은 신용불량에 대해 계속 벌금을 매기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잔고가 없어도 벌금을 매기지 않는데 미국에서는 철두철미 벌금을 매기고 있다. 그 다음부터는 개인체크를 사용하는데 신중하였다. 이것이 북미의 은행문화였다. 북미의 은행문화는 편리한 점도 있지만 문화적으로 달라서 불편한 면도 많이 있었다.
이외에도 캐나다의 문화는 복지혜택은 좋은데 이러한 복지를 유지하기 위한 재원은 고율의 세금이기 때문에 원하는 물건을 마음대로 구매할 수 없었다. 캐나다는 모든 물품에 15%이상의 세금을 매긴다. 그러기 때문에 1,000만에 해당하는 차를 구입하려면 세금 150만원은 내야 한다. 월마트(Wall Mart)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15%의 세금을 부여한다. 미국은 음식물 구입비에 대해서는 단지 6%정도의 세금만 내도록 했다. 수입은 적고 세금만 높다 보니 기본 의식주를 충족하는 것 이외에 비싼 물건은 감히 살수도 없다. 그래서 캐나다 사람들은 근검절약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 이는 핀란드, 독일도 마찬가지 이다. 복지국가일수록 사람들이 근검절약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높은 고율의 세금 때문이다. 그러나 근검절약과 고율의 세금은 약자들에게 쓰여지기 때문에 가진 자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한인들은 이러한 세금문화에 적응을 하지 못해 거의 탈세를 하고 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탈세를 하지 않는다면 주변인으로서 중심국가에서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캐나다에 가면 캐나다의 법을 따라야 하는데 주변인들이 중심인들의 법을 그대로 따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캐나다는 약자들에 대한 정책이 잘 되어 있고, 교육이나 병원에 대해 무료로 하고 있는 만큼 복지정책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한인들은 혜택을 받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세금을 내는 데는 익숙하지가 않았다. 한인들은 복지국가에 가서 이민을 가서 살더라도 세금문화에 낯설기 때문에 세금문화에 대해서는 주변인이었다.
북미는 한국문화와 사뭇 다르기 때문에 세금에 대해서는 철두철미 했다. 그러기때문에 문화적 중심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인인 필자는 캐나다의 문화에 한 걸음씩 다가갔다. 주변인으로서 중심문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타국에 살고 있는 한 원래의 자기문화를 버리고 중심문화에 속히 동화하는 길밖에 없었다. 중심 문화를 아는 길이 주변을 극복하고 중심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정신문화가 주변인에게 다가올 때 주변인들은 중심 문화의 속성을 익히 알고 속히 중심 문화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주변인들은 중심문화에 동화되지 않으면 주변 문화인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4) 인종
한국에 살았을 때는 인종차별에 대한 어떤 느낌도 받지 않았는데 외국에 가보니 가장 기분 나쁘게 다가오는 것은 인종차별이었다. 언어라도 잘하면 인종차별은 덜 느낀다. 언어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백인들은 더욱 인종차별을 하기 일쑤이다. 미국 입국심사 할 때부터 백인들은 거만한 자세로 나온다. 우선 내리 깔보고 접근하고 꼬치꼬치 “어디가느냐”, “왜 가느냐” “이유가 뭐냐”고 따져 묻고 조금이라고 수상하면 다른 사무실로 오라고 해서 수색을 하거나 따로 철두철미하게 조사를 한다. 외국에 있다보면 사적으로 인종차별을 받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구조적으로 제도적으로 인종차별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를테면 흑인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이민 숫자를 제한하고 있고 특정지역에서 주로 살도록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에 가면 흑인들은 대부분이 자신들끼리 몰려 산다. 마이애미에도 흑인슬럼가가 따로 있다. 그들은 돈이 없기 때문에 빈민촌에 살게 된다. 최근에 발생하는 흑백문제도 인종차별에 기인하는 것이다. L.A 폭동사고는 전적으로 미국 백인들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한 산물이다. 로드니킹이라는 흑인이 미국경찰에 얻어맞자, 흑인들은 한인들에게 화풀이를 했고, 미국경찰은 진압을 하지않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이었다. 외국에서 우리가 인종적 주변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차별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사실상 캐나다에 산 사람들은 알겠지만 캐나다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적은 거의 없다. 민족성이 친절한데다가 캐나다가 다문화국가이기 때문에 다른 문화나 다른 민족들에 대해 수용적이고 포용적 이다. 백인들 대부분은 친절한 편이고 기관에서 일하지 않는 이상, 백인들의 이해관계에 상관이 없는 사람들은 거의 차별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백인사회에 들어가서 그들과 경쟁하면서 비지니스를 하거나 미국 회사, 대학에서 일을 하는 한인들은 인종차별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한 교수는 미국교회에 다니면서 성가대를 하였는데 예배가 끝날 무렵 신도들이 악수를 하는데 자신만 빼놓고 악수를 하여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작고한 이상현교수도 프린스턴신학대학에 교수로 있으면서 이번에는 자신이 성만찬을 주도할 차례인데 자신을 빼놓고 다른 사람에게 하도록 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백인들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미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은 미국 이상 수많은 인종차별을 당한다. 심지어 구타를 당하기도 하고, 불에 타죽기도 하고, 월급을 떼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사람들도 대부분 개인적으로 인종 차별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해관계가 있을 때 타민족에 대해서 인종차별을 하는 것이다. 인종차별을 극복하는 최소한의 방법은 백인들보다 월등한 일을 하거나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인종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심인종들이 주변인종에게로 나아가서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러면 주변인종들도 중심 인종 못지않게 당당하게 중심지에서 살아갈 수 있는 풍토가 형성될 것이다.
III. 한국에서의 중심과 주변
외국에만 중심-주변의 구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도 중심-주변의 구도가 있다. 필자가 7년 만에 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오니, 다양한 외국사람들이 많았다. 백인을 보더라도 언어나 문화로 인해 주눅들 필요도 없었고 아시아인들이나 아프리카인들을 보면 보다 우쭐한 생각이 들었다. 이는 한국에서 내가 어느덧 중심인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도착해보니, 필자는 영토, 인종, 언어, 문화, 제도, 행정적인 면에 있어서 중심인이었다. 인종적 차별을 당할 이유도 없고, 언어로 인해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고, 문화적으로도 낯설지 않았고, 제도나 행정적으로도 주변인들처럼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다. 외국에서는 영주권자나 시민권 자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에서 등록금도 빌려주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한국시민권을 가졌다고 등록금도 저리로 빌려주었다. 한국에서 시민권 자가 누리는 혜택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의료보험시스템도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의료보험을 들면 한의원, 치과까지 보험처리 되고 최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된다. 그러나 필자는 타민족에 비해 지역, 인종, 문화, 언어 등은 중심인 면도 있지만 같은 민족에 대해 재정, 지연 등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여전히 주변인이었다.
1) 지역
한반도라는 땅덩어리는 인구 숫자에 비할 때, 아주 적은 나라이지만 여기에서도 지역적 중심과 지역적 주변이 있다. 아무리 넓은 땅을 가진, 중국, 러시아, 미국, 남미, 아프리카에서 온 외국인들이라 할지라도 한국에 오면 지역적 주변인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우리나라사람들에게 한반도는 지역적 중심의 위치에 서 있다. 모든 위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듯이 모든 지역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남한은 같은 한반도인 북한에 대해서도 지역적 중심역할을 한다. 북한 역시 남한에 대해서 중심지역으로서 성격을 가질 것이다. 개성공단 같은 경우, 북한이 지역적 중심을 갖고 주도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남한은 북한의 요구에 따라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다. 금강산 관광도 마찬가지 이다.
천안함 사태도 우리의 배가 북한영해로 들어가게 되자, 북한이 지역적 중심의식을 갖고 공격을 한 것이다. 북한은 이외에도 핵개발을 통해 자신의 지역이 중심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남한지역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하여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것도 K-Pop이라는 한류와 테크놀로지의 세계화로 인한 것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주변국이었지만 한류와 자동차, 전자제품의 발달로 인해 점점 세계에 대해 지역적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핀란드 같은 나라도 인구 500만 명밖에 안되는 나라이지만 한 때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도 노키아라는 이동통신의 발달과 교육정책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전 세계에 대해 핀란드는 한 때 지역적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 남한은 K-Pop이라는 한류와 테크놀로지, 핀란드는 이동통신과 교육, 일본은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통해서 지역적 중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스라엘은 성지, 이태리는 로마의 문화, 미국과 영국은 영어교육, 스위스는 U.N을 통하여 전 세계에 대해 지역적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의 모든 나라는 특성화를 통하여 자신들의 나라가 지역적 중심역할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한 때 로마가 지역적 중심이었듯이 말이다. 이러한 지역 중심의 개념은 한반도내 한국인들에게도 발생한다.
이 땅에서 호남인, 연변, 북한출신은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자로서 살아간다. 지역적 주변인이기 때문이다.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로서 정신적으로는 민주화와 개혁의 중심지이지만 지역적으로는 주변에 머물러 있다. 영남은 서울대학교에 맞먹는 포항대학이 있고, 많은 공장이 세워져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서 호남보다는 훨씬 지역적 중심에 있다. 호남은 인구 숫자도 적고 공장이나 회사도 없고 서울대학교에 맞먹는 대학 하나 없기 때문에 모든 면에 있어서 지역적 주변에 머물고 있다.
현재로서는 호남을 지역적 중심으로 볼만한 것은 호남평야이외에 별로 없다. 새만금간척사업도 이미 공사가 중단되어 물만 썩은 채로 호수처럼 그대로 있는 실패작 이다. 필자는 전두환 정권 당시 군생활을 수도경비사령부 30단과 청와대(55 경비대대)에서 한 적이 있는데 호남사람들은 당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가물에 콩나듯 있었지만 거의 없었다. 지역적 소외이다. 교계나 사회 각기각층에서 호남출신들은 대체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그래서 호남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똘똘 뭉친다. 미국에 가면 충청향우회나 영남향우회는 없어도 호남향우회는 있다. 그나마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있었기에 차별도가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호남은 경상도에 비해 모든 면들이 뒤떨어져 있다. 김대중 정권 이후에서나 서해안 고속도로 등을 비롯하여 호남지역이 조금씩 개발이 되어 나가기 시작했을 정도이다.
이는 호남이외에 서울을 제외한 다른 주변지역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주변지역들은 지자체가 발달하면서 지역적 특성과 관광상품을 홍보하여 지역적 중심으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수의 엑스포 유치, 평창의 올림픽유치, 대구의 국제육상대회 유치, 부산의 국제 영화제, 광주의 비엔날레, 인천의 자유무역도시 건설 등은 주변지역들이 지역적 중심으로 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문제는 주변지역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지역적 편차가 상당하다. 서울은 다른 지역에 비할 때 중심이지만 서울도 강남구와 중량구의 재정적 편차는 심하다. 세수만 해도 수십 배의 차이가 난다. 중량구는 서울이지만 지역적 주변이고 강남은 지역적 중심이다. 비단 중량구 뿐만이 아니라 강남이외의 영등포, 강서, 강북은 서울에서도 주변지역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로마나 한양이라는 중심지역으로 향하기를 원했다. 주변지역과 중심지역은 지역적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지역적 편차가 그나마 적다. 어디를 가나 골고루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노무현 참여정권은 지역적 차이를 줄이기 위하여 종합부동산세를 국세로 하여 거두어 들였다. 이 정책은 실패한 정책이지만 세수가 약한 지역에 골고루 나눠줘 지역적 균형을 꾀하려 했던 선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중심을 주변으로 주변을 중심으로 향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적 중심의 몸부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다른 지역으로 수도 천도를 하지 않고, 서울권의 1, 2류 대학들이 지방으로 옮기지 않는 한, 서울이외에 모든 지역이 주변으로 존재한다. 미국은 하버드와 예일대학만이 최고의 대학은 아니다. 시카고, 버클리, 듀크, 퍼듀, 조지아텍, 미시간 대학 등도 뉴저지라는 지역적 중심이 아닌 타지역에 있지만 상당히 높은 순위에 있다. 우리나라도 포항공대나 카이스트처럼 각 지역에 이러한 국립대학을 세운다면 지역적 편차는 많이 해소될 것이다. 수도가 천도되지 않는 한, 서울대 연고대가 지방으로 이전을 하지 않는 한, 대형회사들이 지방에 균형적으로 배치되지 않는 한, 지역적 중심-주변의 편차는 줄지 않을 것이다. 지역적인 주변을 극복하는 길은 중심지역인들 못지않게 중심의식의 정체성이라도 갖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중심인들은 주변인들이 지역적 주변인이지만 중심의식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주변인에게 다가가서 중심의식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주변인들은 자신들이 중심인으로 되면 다시 주변인으로 다가가는 순환구조가 있어야 한다. 외국이나 한국에 사는 주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보다는 정신적 정체성이다. 이를테면 호남은 지역적 주변이지만 호남인들은 우리나라 민주화 의식의 중심지, 항일의식의 중심지, 농민혁명의 중심지로서 중심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갈 필요가 있다. 영남인들은 한국인들의 삶이 묻어 있는 국제시장의 정체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2) 인종
한국도 사회가 다양화되고 글로벌화 되면서 백인, 흑인, 아시아인들이 한국을 많이 찾는다. 요사이는 웬만한 대학교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와서 공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중국, 핀란드, 프랑스, 영국, 아프리카 학생들까지 한국에 와서 공부를 한다. 한류와 테크놀로지로 인한 경제의 열풍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백인, 흑인, 황인종 가릴 것 없이, 이 땅에서는 인종적 주변인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황인종인 한국인들이 인종적 중심에 서 있다. 한국에서 인종적 우위를 갖고 있는 한인들은 어디를 가나 자신의 기본권이 침해를 당하면 거리로 나서서 피켓시위를 하거나 시청 앞 광장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표출하기도 한다. 과거 몇 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동성애 퍼레이드까지 대낮 시청 앞 광장에서 이루어진다.
한국에서 백인 영어강사들이나 이주 노동자들이나 소수민족들은 권리침해를 당해도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한인들처럼 조직적으로 거리로 나서기 어렵다. 이주노동자들은 주변인이라는 이유로 매를 맞고, 인권차별을 당하고, 월급을 떼이고, 법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소연 할 데도 없다.
최근 들어서 정부도 이들의 권리를 위하여 법적 조치를 강구하거나 행정적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인종적 한계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나 지자체는, 다문화가정 이해하기, 외국노동자 인권차별하지 않기 등의 홍보나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종차별의 편차를 줄이고 있다. 인종차별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 중심인종은 주변인종으로, 주변인종은 중심인종으로 향할 때 이러한 문제들은 극복이 될 수 있다. 인종적 중심본능에서 벗어날 때 아름다운 사회로 될 수 있다.
어느 나라나 인종차별을 극복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성서의 정신대로 중심인종들이 나그네인 주변인종을 배려하거나 아프리카인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지듯 주변인종들이 주류인종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하여 헌신하거나 봉사할 때 어느 정도 차별을 좁히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심인종들에게는 주변인종을 배려하는 사랑이, 주변인종들에게는 십자가가 필요하다. 한국인들은 주변인들을 위하여 어학원을 만들어서 한글교육을 시켜서 그들이 언어적 중심인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들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하면 다시 자신들과 같은 주변인들을 교육하여 중심과 주변의 순환구도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3) 학벌
한국 국민들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학벌을 중요시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학벌 면에서 주변인이다. 이 땅에서 서울대가 사라지지 않는 한 비서울대인들은 학벌적 주변인에 머물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한인들은 학벌적 콤플렉스가 평생 있는 것이다. 어디를 가나 학벌차별이 있고, 학벌로 인해 사람을 평가하고, 기술여하에 상관없이 학벌을 갖고 사람을 고용한다. 그러기 때문에 목회자를 비롯, 많은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려고 한다. 학벌에 중독된 나라이다. 그러나 학위는 있는데 학문적 내용이 없다. 그러나 보니 표절과 연구실적의 부재에 시달린다.
그러므로 이 땅의 치마부대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능력 여하에 상관없이 모두 서울대에 보내려는 욕구와 야심을 갖고 있다. 식당일을 해서라도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땅에 서울대가 사라지지 않는 한 비서울대인들은 학벌 콤플렉스가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하버드나 동경대, 북경대, 케임브리지 출신보다도 서울대 출신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미국에 가면 미국사람들도 아이비리그나 명문주립대학출신자들에 대해서 존경은 하지만 한국처럼 학벌에 대해서 민감하지는 않다. 비서울대, 비서울권대학은 늘 주변대학에 머물게 된다. 정치인, 법조인들은 대부분 서울대 출신이다.
특히 법조인들은 서울대 반열에 서 있지 않으면 지방법원에서 일하기 일쑤이다. 단지 사법고시 합격한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학벌로 인해 중심과 주변이 나뉘는 것은 망국적인 병이다. 그래서 서울대를 없애야 하겠다는 말이 나온 것도 국민들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 나온 발상일 것이다. 당시 노무현 정권이 서울대를 없애려 하고 끝까지 본고사를 거부하고 평준화를 고집하는 것도 가능하면 학벌적 편차를 막기 위한 몸부림이다. 학벌적 양극화를 막고자 함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학벌적 중심-주변의 구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 지방마다 서울대, 연고대 이상의 대학을 세우는 것이다.
지방의 스마트 한 학생들이 서울대 연.고대를 가지 않고 각 지방의 국립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수혜를 베풀고, 유학 장학금을 주고, 각 지방의 회사들은 우선적으로 각지역출신대학생을 고용하면 지역학생들은 다른 대학에 갈 이유가 없게 해야 한다. 미국 플로리다주는 플로리다 지역 회사들이 플로리다 대학출신들을 우선적으로 고용하게끔 장려한다. 그러다 보니 굳이 학생들이 다른 지역으로 대학을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국도 지자체가 지역의 회사들을 격려하여 우선적으로 각 지역 출신대학생을 고용하게끔 세금의 혜택을 주면 우수한 학생들을 타지역으로 빼앗길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은 학벌 편차를 줄이기 위해서 국가는 서울대 수준정도의 대학을 전국 지역에 세우든가 각 지역의 국립대학을 서울대, 연. 고대 이상의 수준으로 격상하거나 하여 지역 우수한 학생들이 다른 대학으로 가지 않도록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외국처럼 고졸자와 대졸자의 월급편차를 크게 줄이면 된다. 핀란드나 스웨덴처럼 대학가는 숫자를 줄여야 한다.
국가는 망국적인 학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중심의 학생들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주변의 학생들도 중심인처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학벌이 약한 자들에게는 평생교육원이나 사이버대학을 통하여 학점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나아가 정부는 각 지역에 서울대 이상의 대학을 만들고, 서울대 연고대도 학점을 교류하고, 반드시 최고의 학벌이 아니더라도 주변인들이 중심인 이상 중심 직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바울은 가말리엘 문화생이라고 자부심을 갖고 다녔지만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후 학벌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고 모든 초등학문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다. 바울처럼 학벌의 차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극복될 수 있다. 특히 학교는 주변학생들을 중심학생들로 만드는 작업을 해서 핀란드교육처럼 진정한 평준화가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심에 있는 학생들은 주변학생들을 끌고, 주변학생들이 중심이 되면 다른 주변학생들을 끌어 모두 윈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 재정
우리사회는 점점 양극화 되어가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이다. 이는 우리사회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가 침투한 곳이라면 어디나 겪는 병이다. 북유럽의 사회복지국가처럼 개인의 정직과 양심이 발전하지 않는 이상, 양극화의 문제는 영원한 숙제이다. 아무리 정부의 정책이 숨통을 조이고 법률로서 규정한다한들, 약자와 사회를 위해 헌신한다는 부자들의 정신과 양심이 준비 되지 않는 이상, 양극화의 해소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정책과 법제정은 한계가 있다. 즉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정치인과 자본가들의 심령이 변하지 않는 이상 양극화는 끊임없이 생겨난다.
그나마 양극화를 억제하기 위해서 정부는 지역균형을 꾀하고, 대출억제와 금리인상을 통해서 부동산투기를 막고, 임대주택을 계속 늘려나가는 정책을 폈다. 중심인들은 더 이상 집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고 주변인들은 집을 소유하게끔 하려는 정책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건설 경기를 죽였다고 하소연은 많으나 사회는 많이 투명화되었고 불로소득으로 돈을 버는 욕망이 사라지게 했다. 최근 통과된 김영란법은 더욱 사회의 투명성을 부채질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정부는 망국의 암병인 부패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여 중심은 주변으로 주변은 중심으로 가기를 꾀하고 있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물질적으로 평준화될 것이다. 참여정부시절 종부세와 양도소득세 등을 부과함으로 두 채 있는 집은 한 채를 처분하게 하고, 무주택 소유자는 집을 소유하게끔 하였다. 이는 자본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을 주변으로,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가게끔 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중심의지를 배반하고 일방적으로 정부주도하에 억지로 하는 정책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마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들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을 실시해야 하는데 국민들의 의사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중심되는 정책을 하다보면 정부는 주변으로 밀려나 정권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노무현정부의 실패는 평준화, 균형화 의도는 좋았지만 방법론에 있어서 자신들이 중심이 되고 국민들을 주변으로 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났던 것이다. 최근 박근혜정부도 청와대 중심적인 정책을 추구하다 보니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이 성공하려면 정부는 주변으로 되고 국민을 중심으로 높이는 정책을 행해야 한다. 인도네시아의 조코위 도도 대통령이 사회개혁과 재정개혁, 정치개혁에 성공을 거둔 것도 항시 현장에 내려가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을 행했기 때문이다. 역대 독재정권은 정부를 중심으로 하고 국민을 주변으로 했기 때문에 몰락한 것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이다. 정권을 내주는 것도 민이 중심이 되는 정책을 실행해야 하는데 당과 보스가 중심되는 정책을 실행하기 때문에 정권연장에 실패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주변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이면 민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중심이 되는 당으로 되면 국민들부터 외면을 당하게 된다. ‘국민의 당’이 아니라 ‘의원의 당’으로 되면 국민으로부터 주변당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든지 물질적 중심인과 주변인은 있기 마련이다. 물질적 중심인과 주변인에 대한 격차를 줄여야만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 북유럽처럼 부의 중심인들에게는 많은 세금을 요구하고, 대신 연금을 많이 받게끔 하고, 부의 주변인들에게는 많은 혜택을 주어서 중심인들 못지않게 교육, 병원, 복지혜택을 받게 해서 그들이 중심권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만큼 범죄도 줄어들 것이고 행복한 삶의 세계로 이어질 것이다. 핀란드 같은 경우, 지하철에 지갑을 놓고 내리거나 물건을 잃어버려도 누가 가지고 가지 않는다. 이는 어느 정도 중심과 주변이 조화를 이루니 의식주의 문제와 복지의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남의 물건에 관심이 없어진 것이다. 주변인들을 물질적 중심으로 만들수록 그 사회는 안정되고 평화로운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인이 많을수록 범죄는 날로 늘어간다. 그러므로 선진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중심은 주변으로, 주변은 중심으로 가야 한다.
5) 정치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심에 있었던 대통령들이 민들의 마음 한가운데 남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들은 국민들보다 당이나 가족을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시정부 주석이외에 한 번도 최고 정치적 수장이 되어보지 못한 김구선생이 지금까지도 민들의 가슴한복판에 영원히 위대한 정치인으로서 남아있는 것은 왜일까? 김구선생은 정부관료들이나 자신의 가족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 보다 나라와 국가, 민들을 항시 중심에 두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 정치적 주류는 친일파와 독재정권의 잔당들이거나 이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승만 독재정권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야합정권까지 친일파와 군부들이 많이 있다. 그 이외는 정치적 주변부에 속했다. 김대중정부 이후 민주화정권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민주세력들이 중심부로 이동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민이 중심이 되지 않고 민주화투쟁을 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다보니 부패한 정당이 되어버려 결국 노무현 정권은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민주당의 정치인들은 원래는 정치적 주변부였다.
그러나 그들은 김대중정권을 통해 권력 중심이 되면서 민들을 위한 중심 정신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권노갑의원의 부패사건은 대표적인 사건이다. 그들은 민의 중심이 아니라 권력 중심에서 계속 머물고자 했기 때문에 부패로 얼룩진 것이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말이다.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말기는 측근과 가족의 부패로 얼룩졌다. 중심은 주변으로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이건만 중심에 남기만을 원해서 주변으로 밀려나 결국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주변인들은 개인들은 각각 주변이지만 합치면 중심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강력한 잠재성이 있다. 개인은 주변인이지만 단체로 되면 중심인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가 이번에 선거에 실패한 것도 민이 중심이 아니라 당과 대통령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심으로서의 민은 박근혜정권을 주변부로 몬 것이다. 당과 대통령이 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데 참패의 책임이 있다.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조코위 도도 대통령처럼 주변부에 있는 민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정권중심에 있는 아부자들의 소리만 들으니 정부가 주변으로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약점은 현실적 권력중심을 너무 추구하다 보면 주변으로 내몰리는 법이다. 당이나 정부가 중심을 계속 유지하고자 한다면 끝까지 주변에 있는 민을 중심으로 올려놓는 정책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지방에서 국회의원이 당선되면 그들은 자신을 선택해 준 민을 잊어버리고 주로 서울에서 활동한다. 지역구민들보다 당이나 당대표를 중시하다보면 다음번 선거에 보통 낙선하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선거철에만 민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 두 번은 국회의원에 당선될는지 모르지만 다음번에는 낙선하게 된다. 전남 순천 같은 경우, 그동안의 관습을 깨고 여당국회의원이 당선되는 사례를 남겼다. 이는 여당 이정현 국회의원이 당보다는 민을 중심해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계속 자신의 의원직을 유지하거나 여당이 여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이나 정부보다는 민을 중심으로 만들고 자신들을 주변으로 내보내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지방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자신의 지역보다 여의도나 당사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다 보면 자신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준 민들에 대한 관심을 게을리 하게 되고, 자신들만이 중심되는데 노력을 하게 된다. 민주주의 대의정치의 실종이다. 지방의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진정 중심이 되고자 한다면 자신들의 주변 지역에 머문 민들의 위치를 중심으로 갈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방이 서울 못지 않게 경제와 문화적으로 발전하여 도농의 균형발전을 이루고, 지역민에게는 주변지역에 있지만 중심사람들 못지않게 교육이나 문화, 의식 등에 있어서 차이가 나지 않도록 하고, 그들이 한반도 중심의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진정한 정치적 중심으로 되어 민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정동영의원은 한 때 전국 최다득점을 받아 대통령후보까지 나왔던 사람인데 관악 을에서 보궐선거에 참패하고 금년에는 900표차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가까스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만들어준 전주사람들을 중심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서울에서 자신만이 중심으로 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지역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것이다. 늦게 마나 전주에 내려가 머물면서 민들을 중심으로 만들려는 모습을 보이니 민들이 다시 정동영을 중심으로 밀어준 것이다.
역사의 교훈은 민보다 자신들을 중심으로 두려고 했던 정치인들은 결국 주변으로 밀려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은 좋은 예이다. 민을 주변으로 내몰고 자신을 중심으로 하거나 당을 중심으로만 하면 결국 주변인과 주변당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 역시 민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중심이 되어 일을 하다 보니 제대로도 하지 못하고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 중심되다 보니 형이 쇠고랑을 차게 되는 것이다.
민주당 역시 정권을 잡으면서 민주화를 빌미로 민을 주변으로 몰고 자신들이 중심역할을 하다보니 정권을 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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