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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종교개혁자, 교권중심의 사법제도 비판

  • 김정우
  • 입력 2016.11.02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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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법은 단순한 영적 규율의 범위를 넘어 현실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법으로 작용

 

 

Ⅰ. 서언

독일의 교회사학자 아돌프 하르낙(Adolf von Harnack, 1851-1930)은 종교개혁의 혁명적인 본질을 신적인 교회법이 절하되었다는 사실로 평가했고, 독일의 기독교 역사철학자인 에른스트 트뢸치(Ernst Troeltsch, 1865-1923)는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교회법의 영역에서 중요한 혁신들이 도입되었다고 평가했다.

한국 개신교의 주류는 장로교이고 장로교 교회법은 신학적으로 개혁주의 유산에 기초한 칼빈주의 교회법의 영향을 받았다. 올바른 개신교 교회법 제정을 위해 참고할 비교법적 자료는 1차적으로는 외국의 장로교 교회법이겠지만 보다 근원적으로 개신교 교회법의 원리의 기초를 알기 위해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법에서 개신교 교회법의 초기 형태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루터주의 종교개혁가들이 어떠한 투쟁과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시기를 지나면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루터주의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비판이 되었던 로마 가톨릭 교회법과 교권 구조의 폐해의 잔재를 한국 개신교계나 교회법이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점검으로서의 가치와 향후 한국 개신교 교회법전의 제정에도 중요한 통찰을 주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Ⅱ. 로마 가톨릭 교회법의 위상과 폐해


1. 정치적⋅법적 실체로서의 교회법의 존재 및 위상

중세 세계에서 정신적 구심점의 역할을 했던 교회법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였다. 서유럽에서 교회의 권위가 강화되고 교회의 조직이 체계화되어가면서 교회법은 단순한 영적 규율의 범위를 넘어 현실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법으로 작용하였다. 혼인과 상속 등 현세적인 문제조차 영적인 것으로 연관 지어 규정하고 있던 교회법은 중세의 사람들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종교개혁 이전의 로마 가톨릭 교회는 독일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엄청난 법적․정치적 실체였다. 교회는 독일에서 광범위한 영적인 재판 관할권을 주장했다. 교회는 성직자, 순례자, 학생, 이단자, 유대인, 이슬람교도들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교리, 예배의식, 교회재산, 교육, 자선, 상속, 구두 약속, 선서, 도덕적 범죄와 혼인 등에 걸친 문제들에도 관할권을 행사하였다. 또한 교회는 보다 세속적 권력에 속하거나 혹은 세속 권력과 동시 재판관할권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서도 재판관할권을 요구하였다. 교회 법원은 교회법상의 실체법적, 절차법적 규정에 의하여 사건을 판결하였고 사건들은 교회 법원의 심급에 따라서 상소되었으며 궁극적으로는 교황의 법원에까지 갔다.

1200년과 1500년 사이의 서양 세계에서 교회는 단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예배를 위해 모이는 자발적인 모임이 아니었고, 교회법도 신앙인들을 지도하기 위한 영적 훈련의 법전이 아니었다.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교 국가들을 통치하는 서양의 하나밖에 없는 보편적 주권자였다. 교회법은 서양의 유일한 보편적 법으로서 유럽 전체를 통해 재판관할권을 행사했다. 이 기간에 가톨릭 교회는 교회법을 가지고 최고의 권위를 행사했다. 이 당시 교회는 법을 선포하고 집행하는 힘, 문자 그대로 “법을 말하는”(jus dicere) 엄청난 권한을 행사하였다. 이러한 권한 행사는 교회를 그리스도교 제국의 입법자인 동시에 재판관으로 만들었다. 교회는 그리스도교 제국 전체에 걸쳐 통용될 수 있는 일련의 교황의 교령, 교서, 공의회의 법령과 칙령들을 공포하였다.

2. 교회법의 폐해

교회법은 성례(sacrament)를 통해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는 인간 생활의 모든 국면들을 상세하게 법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교회법상의 성례는 교회를 모든 도덕적 행위에 대한 사법권을 지닌 권위 있는 기관으로 만들었고 성직자 계급의 특권적 신분과 세속 권력 대하여 우위권을 내세우는 교회의 주장을 정당화시키는 데 다른 어떤 것보다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이 법은 처음에는 정의와 인간애의 원리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마치 바리새인들이 유대인들의 삶을 세세하게 규제하려고 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개별적 행위들을 상세하게 규제하려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교회법 제정자들은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도덕 원리들을 도외시한 채, 많은 법규들을 끊임없이 제정하는 오류를 범했다. 사고의 발전을 크게 저해했으며, 사람들에게 너무나 무거운 멍에를 씌웠다. 교회법은 다가올 저 세상을 돈과 결부시키고 교회법학자들은 죽음의 문제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공포심을 조장하였다. 중세의 교회법은 교황 제도가 지니는 장단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이 점에서 교황제도에 대한 비판은 곧 그 제도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었던 교회법에 대한 비판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교황은 교회의 법 제정자였다. 절대적 권력을 통해서 그는 기존의 교회법을 발전시키거나 특권과 사면을 허락함으로써 임의적으로 파기해 버렸다.

가능한 한 많은 청구권들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교황은 조직적으로 교회법적 장애들을 증가시켰다. 교회법은 성직자들이 무슨 죄를 범하든 교회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함으로써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 교회법은 교황의 권리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막강한 근거가 되었다. 교회법의 독재성이 마침내 유럽의 지식인들이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신앙 문제에서 인간 입법자의 감내할 수 없는 오만을 드러냈고, 개인의 자유를 크게 침해했으며 교황은 자신의 공식적인 무오류성에 힘입어 어느 때고 자신의 판결로 교회법을 대체할 수 있었다. 이하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 폐해의 유형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성직자의 세속적 사법권으로부터의 면제

성직자들은 그들의 직업이 지닌 성스러운 성격으로 인해 모든 세속적 사법권으로부터 면제되었다. 그들 계급의 가장 중요한 특권 가운데 하나는 교회법에 따라 교회 법원에서만 재판받을 권리였다.

성직자가 세속 법원의 사법권으로부터 면제될 권리를 지니는가 하는 문제가 세속 권력에 의해 제기되었을 때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유일한 거룩󰡑(Unam Sanctam)이라는 교령을 공포하였다. 중세 교황의 교령 중 세속적 권위에 대한 영적인 권위의 우위를 가장 강력하게 표명한 이 교령은 영적인 문제와 세속적 문제 모두에 대한 교황의 우위권을 뒷받침하는 기존의 논의들을 재확인하였다. 이 교령은 로마 교황에게 복종하는 것이 모든 인간 피조물의 구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단호하게 선언하였다. 이는 법적 처벌에 있어서 불평등을 초래하였고 이러한 교황권의 남용으로 인해 중세 말기의 교황권은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다.

(2) 교회법상의 유보제도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는 교황들 가운데 처음으로 ‘교황의 성직 임명 유보’(reservation) 혹은 교황의 직권적 성직 임명을 대규모로 시행했다. 특히 교황 클레멘트 4세는 성직 유보가 교황청을 방문하는 동안 공석이 된 모든 성직과 성직록을 교황이 임명하고 수여할 권한을 지니도록 법제화했다.

1295년에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 이 법을 다시 확대하여서, 교황청 방문에 나선 성직자가 이틀 이내에 죽으면 어느 지점에서 죽든지 상관없이 그의 모든 성직록이 교황에게 귀속되도록 했다. 14세기 동안에 교황권은 교회법상의 유보(Reservation)라는 제도를 통해서 교권의 임명을 완전히 장악하려고 노력했고, 종교개혁 1세기 이전부터 교황은 각종 구실을 제시하며 어느 특정한 성직 수혜자에게 공석 자리를 내어 주는 것이 교회의 권한임을 선포했다. 교황 요한 22세는 교황의 비호 아래, 어떠한 특권이 유보되어있는가를 밝히는 일련의 규율을 제정하였는데 교황청의 법률제정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요한 헌장(Constitutiones Johanninae)은 교회의 모든 특권을 교황에게만 묶어두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유보제도는 교황 요한 22세의 후계자들에 의해서 점차적으로 확대되었다. 계속적으로 증대되는 교황청의 성직 유보권은 교회법과 유럽 국가의 세속법 사이에서 끊임없는 마찰을 빚곤 하였다.

이 과정의 가장 중요한 측면들 가운데 하나는, 교황이 자리가 빈 성직에 후임자를 직접 지명하는 것을 통해 성직을 임명하는 권한을 점점 더 많이 차지해 간 것이었다. 교황은 그의 완전한 권세에 입각하여 모든 성직을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선언함으로써 교황 인노센트 3세가 시작했던 관행, 즉 교황이 직접 임명하는 성직을 유보하는 관행은 13세기 동안 점점 더 늘어났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아비뇽 교황들은 유보된 성직의 범위를 크게 넓혀, 결국 그러한 성직에는 대부분의 선출직(대주교, 주교, 그리고 수도원장의 직책들)과 아주 많은 수의 하위직(임명직으로 통상 성·속의 후원자가 마음대로 임면하는 참사회원이나 교구 사제)이 포함되기에 이르렀다. 성직 임명권은 교황이 교황청 관리들에게 보수를 지급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교황의 수입을 증대시켜 주었다. 성직들이 교황의 임명분으로 유보되는 기간 동안, 그리고 성직 수임자가 교회법상의 자격을 구비하지 못한 채 성직을 보유하고 있는 동안 그 성직들에서 발생한 수입은 교황청 재정으로 귀속되었다.

아비뇽 시대에 교황들은 유보된 성직으로부터 그 자리가 비어 있는 기간, 즉 전임자가 죽은 때부터 그의 후임자가 지명될 때까지의 기간에 나오는 수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이 아비뇽 교황들에 의해 줄곧 크게 확대되고 더 체계적으로 부과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개 유보된 성직에 부과되었으므로, 유보의 관행이 확산됨에 따라 함께 확대되었고, 사실상 유보의 관행을 확산시킨 주된 이유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 이들은 교황의 수입에서 큰 몫을 차지했고, 따라서 교황청의 재정 관리들에게 중대한 관심사가 되었다. 교황에 의한 성직 임명제의 결과 가운데 하나는, 충격을 받을 정도로 많은 지역에서 교구민들이 목자가 없이 방치되어 있거나 또는 성직 대리인에게 내맡겨져 있게 된 것이었다.

(3) 교회법상의 특별면제 제도

한편 교회법을 위반하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특별면제(dispensation)가 부여되었다. 즉 금지된 촌수 내의 혼인을 허가해 주고, 2개 이상의 성직을 보유할 수 있도록 교회법의 제한을 없애주며, 무역이나 혹은 여타의 부당한 이익확보에 대해 허가를 해주고, 고리 대금업자를 사면하고, 사생아를 적자로 인정하며, 그 밖에 비슷하게 교황의 완전한 권세에 입각해 특별히 허락해 주는 사안들에 대한 대가로 온갖 사례금을 받아들였다. 교황은 항상 자신이 만드는 법보다 더 우위에 있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교황은 법 위에 있는 법 혹은 절대법이었으므로 교회법상의 특별면제 제도는 목적에 부합할 경우에는 언제든지 교황 자신이 교회법보다 우위권을 가질 수 있었다. 평신도와 사제에게 하사되는 모든 종류의 특허와 특별면제에 대해서도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다. 적법한 혼인 밖에서 태어난 사제, 자신의 성직록에서 떠나 있기를 바라는 사제, 법정 연령 이전에 임명받고자 하는 사제가 모두 특별면제를 받아야 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돈을 내야 했다. 비교적 큰 액수는 교황청 재정과 추기경의 재정으로 곧장 들어갔다.

작은 수수료들은 공증인들과 문지기들과 추기경 개인들과 그 밖의 관리들에게 건네졌다. 이런 중개인들이 손을 벌린 채 긴 줄로 서 있었다. 오늘날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한 마디로 정교한 뇌물 체계였다. 특별면제라는 교회법상의 제도는 비록 형평이라는 취지를 가지고 제정된 제도였지만 이는 재량권의 남용의 여지가 있는 제도였다. 특히 이러한 특별면제제도는 금전으로 권리를 사는 것이었기 때문에 법질서의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을 심하게 훼손하는 법제도였다고 볼 수 있다.

(4) 부패한 교권중심의 사법제도

교황청 최고 법원(Roman rota)은 일상적인 사법 업무를 수행하였다. 교황청 조직 가운데 어느 분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발달한 분야는 각종 법률 소송을 다루던 분야였다. 교황청에는 각종 청원과 불평을 들어주고, 판결을 기록하고, 판결을 집행하는데 필요한 문서를 작성하고, 발송된 서신들의 사본을 보관하는 복잡한 조직이 있었다. 로마 교황청은 전 서방교회에서 가장 높은 항소법원이었다. 이것은를 의미했으며, 필연적인 법률적 경비지출을 뜻했다.

교황청은 주교나 대주교 법원에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각종 재판까지도 기필코 이곳까지 끌어 오곤 하였다. 이러한 재판과정은 교권적이고 재정적인 목적에서 수행되었다. 재판 업무가 대부분 로마에서 진행됨에 따라 막대한 돈이 로마로 흘러 들어가게 되었고, 교황은 가난한 소송 당사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막대한 이자가 부과되었다. 교황청은 서유럽의 최고 재판소가 되면서 과거에는 꿈도 꿔보지 못했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무수히 많은 항소 건이 교황청에 도달했다. 항소자들은 돈과 시간만 있으면 아무리 하찮은 사건이라도 로마에 가서 재판을 받을 수 있었다. 제후들과 왕들, 참사회들과 주교들, 수도원들과 대수도원장들로부터 항소가 쏟아졌다. 교황청은 항소 건을 가지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사람들에게서 마르지 않는 수입원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해서 유럽 전역으로부터 거대한 양의 소송 업무가 교황청 대법원으로 몰려들어오자, 교황청은 일단의 사무직원들을 필요로 했으며, 이들에 대한 월급은 유럽 전역에서 거두어들인 유보된 성직록에서 일부를 충당하고, 나머지 부분은 소송 당사자들이 내는 소송비용이나 뇌물로 충당하였다. 교황청의 법원은 악명 높은 느림보, 강탈자, 금전만능의 세상이었다. 모든 서류는 믿기 어려울 만큼 많은 손을 거쳐야 했으며, 각 단계마다 이에 상응하는 수수료를 지불했으며, 소송비용도 교황청 대법원이 정하는 액수에 따르더라도 이미 과도한데, 공식적인 조견표 이외의 비정규적인 수수료가 수없이 가산되어서 산처럼 높았다. 로마교회는 특권, 특별면제, 성직록 구매 등의 업무가 수행되는 곳이었으며, 소송 당사자들이 여러 부서에 간청하고 다녀야 하는 비정한 곳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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