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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초기( 5세기 - 10세기)에서 기독교가 법에 끼친 영향

  • 김정우
  • 입력 2016.11.19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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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의 기독교가 법의 발전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당시 기독교가 직면했던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시기의 법적 상황 역시 그 역사적 문화권의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의 형성기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어 받은 뒤 중간에 조성된 야만주의의 혼돈을 걷고 점진적으로 올라선 로마-게르만 문화로 이행한 시기이고 정치적 관점에서 보자면 5세기에 발생한 민족들의 대규모 이동과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기점으로 시작한다. 중세가 시작될 무렵 유럽은 아시아에서 전쟁 상황을 방불하게 대규모로 밀려온 이교 야만족들로 채워졌다.


기독교가 처음 세상에 전파될 때에는 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민족들과 접촉했으나 이제는 야만족들 사이에서 새로운 문화의 터를 닦아야 하는 처지에 서게 되었고, 따라서 기독교는 이러한 민족들을 훈련시키는 강력한 교육 기관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중세 가톨릭 교회가 율법주의적이고 위계적이고 의식주의적인 성격을 띠었던 원인이 거기에 있었다. 이 시기의 기독교는 주위의 야만성과 이교성의 암흑을 뚫고 들어가 점차 어둠을 몰아낸 빛이었다. 이 시기에 기독교가 법에 끼친 영향은 문명화되지 못한주요 부족들을 개종시켜 그 결과로 부족들의 지도자들이 부족 관습을 성문화하고 기독교적 개혁을 단행한 것과 당시 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있던 폭력에 맞서 평화를 이루어 내기 위해 분투한 점들을 들 수 있다. 이하에서 두 가지 경우들을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1. 주요 부족들의 개종 및 부족 관습의 기독교적 성문화 
 

기원후 5세기부터 10세기까지, 게르만과 슬라브, 유럽의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주로 원시적인 부족 관습들과 혈연 복수의 규칙들로 구성되어 있는 법체제를 주도하였다. 앵글로 색슨 잉글랜드로부터, 키에프 러시아까지 주요한 부족의 통치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 성문화된 부족 법전을 공포하고 특별히 가족법, 노예,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의 보호뿐만 아니라 교회재산과 성직자의 권리와 연계하여 다양한 개혁들을 도입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게르만 민족들 가운데, 신성로마제국의 설립자 샤를마뉴는 자신의 광활한 제국에 퍼져있는 문명화되지 못한 부족들의 조야한 관습들을 조직하고 문명화하고 기독교화하는 거대한 임무를 떠맡아 그것을 탁월한 지혜로 수행해냈다. 그의 법률들은 카피툴라리아(Capitularia) 즉 장별로 구분된 법전에 집대성 되어있는데, 이 안에는 교회와 기독교 신앙의 영향이 로마 법전에 비해 더 직접적이고 포괄적이며, 모세 법전에 근접하는 신정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카롤링거왕조 법전에는 유익한 도덕 교훈이 법전에 실리는데, 때로는 성서의 언어가 사용된다. 대중에게 위증과 반목과 결투를 삼가도록 경고하며,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민중에게 사도신경과 기도를 배우라고 권하며 그들이 하늘에 계신 한 분 아버지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평화롭게 지내라고 권한다. 


잉글랜드는 앵글로 색슨족의 습관과 관습을 토대로 법체계를 수립했다. 잉글랜드의 관습법인 Common Law는 앵글로 색슨족의 뿌리에서 자라나 기독교의 정의와 형평의 원칙에 영향을 받은 노르만족 법률가들에 의해 틀을 갖추었다. 영국의 법이 기독교적 성격을 띠게 된 이유는 특히 영국 법들을 법전화 할 수 있는 길을 닦은 알프레드 대왕 같은 앵글로색슨 족 왕들 덕분이다. 기원 후 890년에 영국의 알프레드 대왕은 십계명의 인용으로 시작하고 모세의 법에서 발췌하여, 토착의 앵글로 색슨법을 다시 고쳐 쓰고, 개정한다.

 

그의 법전은 맨 앞에 십계명이 나오고, 그 다음에 성경에서 인용한 그 밖의 율법들이 나온다. 이 법전은 구약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일을 기억하며 나그네를 보호하고, 모세 율법이 유대인 종을 칠년되는 해에 속량시켰듯이 그리스도인 노예를 칠년 되는 해에 해방시키고, 주일에는 노동자가 안식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벌금제도를 마련하여 피로 보복하려는 욕구를 억제하고, 타인이 자신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을 타인에게 하지 말라는 소극적 형태의 황금률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제정된 법률들은 기존의 관습들을 전제로 삼고 고착시킨 한에는 공중도덕의  목록이었고, 일반 대중의 정서를 앞서간 경우에는 입법자들의 정신에 담긴 도덕적 이   상을 표현했으며, 이 이상은 법이 지니는 계도적 능력으로 실현될 성격의 것이었다.


 2. 폭력에 맞서 평화를 추구하는 노력 : 신의 평화와 신의 휴전


이 당시에는 매일 매일 닥치는 위협이 각 개인의 운명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 위협은 재산뿐만 아니라, 바로 신체 자체에도 침범해 들어오고 있었고, 전쟁, 살인, 권력의 남용이 판을 치고 있었다. 폭력은 그 시대의 사회 구조와 심성에 아주 뿌리 깊이 깃들여 있는 것이었고, 법의 영역 안에도 깃들여 있었다.


이 시기에 개인이 상해를 받으면 가해자에게 즉각 보복하는 것이 모든 야만족 사회의 일반적 관행이었고, 피해자의 가족이나 부족은 복수심이 채워질 때까지 투쟁에 개입했다. 따라서 반목(feud)과 사적 결투, 즉 가문들과 씨족들 간의 치열한 투쟁이 발생했다.


그 당시 교회는 혈연복수를 통제하는 규칙들을 확립함으로 폭력을 제한하려고 노력하였다. 기독교의 영향은 범죄의 책임을 그 당사자에게 국한시키고, 사적복수를 질서 잡힌 법 집행으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발휘되었다. 제16차 톨레도 공의회(693)는 결투와 사적 반목을 금지했고 푸아티에 공의회(1000)는 향후 모든 논쟁은 폭력이 아닌 법으로 조정되어야 한다고 결의했다. 반목 중인 개인들이나 부족들에게는 약정서를 체결하여 화해하도록 권고했고, 약정을 어기고 평화를 깨뜨린 당사자는 파문(excommunication)에 처하도록 했으며, 1031년의 리모주 공의회는 유혈반목행위에 대해서 성무중지령(interdict)이라는 훨씬 더 가혹한 처벌을 내렸다.


이런 산발적인 노력들이 중세의 가장 인도적인 제도의 하나인 신의 휴전(Truce of God) 혹은 신의 평화(Peace of God)가 제정될 수 있도록 길을 닦았다. 이 제도는 참혹한 기근이 끝난 때인 1033년에 프랑스 아키텐에서 발생했는데 기근으로 인해 살인자가 속출하고, 그로 인해 민중이 말할 수 없이 고통과 비참한 현실을 겪던 상황이었다.


주교들과 대수도원장들은 모든 반목은 수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중단해야 하며 이것을 어길 때는 파문에 처한다고 결의했다.


이러한 평화 운동은 프랑스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고, 클레르몽 공의회(1095)는 하나님의 휴전을 교회의 일반법으로 제정했다. 휴전 시기는 강림절(Advent, 성탄절 전의 약 4주간) 첫날부터 주현절(Epiphany, 1월 6일)까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사순절의 첫날)부터 부활절 주간 끝 날까지, 승천일로부터 오순절 주간 끝날까지 확대되었다.

 

김정우박사는 홍익대학 법대를 나오고 숭실대학교에서 루터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최근에 백석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현재 숭실대 법대에서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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