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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학], 개신교, 과거와 끊임없이 대화해야

  • 황규학
  • 입력 2017.03.09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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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를 무시한 기독교는 미래 없어

오늘날 현대의 문제는 기술과 과학발전, 문명의 발전은 있었지만 갈수록 정신이 황폐화지는데 있다. 과거와의 대화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도 과거와 대화가 없기 때문에 교회건물은 높이 오르고 신도수는 많아졌는데 점점 주변부로 가고 있다. 현재의 기독교가 과거의 원시기독교 정신을 떠났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정신은 과거의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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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전에 만들어진 과거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개혁은 reform 이다. 성서의 폼(form)을 다시(re) 잡아보자는 것이 종교개혁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교회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과거의 순수함과 혼탁하지 않은 원시기독교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격변의 시기가 있고 현재가 고통스럽고 미래가 암울할 때마다 사람들은 종종 과거에서 지혜를 구한다. 서구 19, 20세기의 미술사들은 과거와 원시문명에서 현대문명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찾았다.  서양 문명의 제국주의와 탐욕은  식민시대, 제1차 세계대전, 나치즘, 제2차 세계대전, 냉전 등을 거치면서 가장 불행한 시대를 만들었다. 축복은 자본가와 서구 열강의 차지였고 저주는 노동자와 식민지의 몫이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는 탐욕스런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탐욕실현의 장이었다.

 

중국이 좀더 가졌다고 해서 최근 사드와 관련 갑질을 마구 하고 있다. 탐욕을 토대로 한 중국의 정신문명의  한계이다. 이러한 문명은 오래가지 못한다. 현대문명은 인류를 보다 잘살고 풍부하게 만들었지만 그 이면에 핵무기와 경제전쟁이라는 저주를 잉태하고 말았다. 이제는 과거의 총 칼이 아니라 핵미사일시대로 접어들었다. 바다와 하늘에서 핵소나기가 오게 되면 지구는 초토화 될 것이다. 이처럼 현대문명은 점점 파멸의 시대로 치닫고 있다. 개신교 역시 역시 민족과 역사의 정신을 뒤로하고 교리와 이념을 중시하다 보니 추악한 개신교가 되고 말았다.   

 

프랑스의 후기인상파 화가였던 고갱은 문명세계에 혐오를 느껴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떠났고, 원주민의 인간성과 열대의 밝고 강렬한 색채에 자극받았다. 폴 고갱의 ‘오비리(타히티 말로 야만인, 1894년)’는 이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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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이외에도 클림트, 블라맹크, 마티스, 드랭, 피카소, 앙리 루소, 브랑쿠시, 모딜리아니, 자코메티, 바버라 헵워스 등 많은 야수파 예술가들이 원시주의의 복음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려했다. 1900년경 시작했던 야수파가 당면한 적으로 삼은 것은 시각의 진실을 추구한 나머지 창조의 주체성과 내면적인 감동을 잃어버린 인상주의(印象主義)였으며, 따라서 이 인상주의에 중요한 수정을 시도한 선배 고흐의 격정과 고갱의 원시적 생명력의 표현은 그들을 한결같이 분발하게 하는 모범이 되었다. 이들은 미술기법을 미개발문명국에서 찾으려 했다.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태평양, 아시아 등 식민지 미개인들이 만든 예술에서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했다. 이들은 ‘고귀한 야만(noble savage)’의 순진무구함에 열광했다. 문명이전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고자 했던 것이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은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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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와 고갱의 ‘원시적인 색채와 양식’은 아프리카 가면에서 계시를 받은 것이었다. 그들은 아프리카나 남태평양의 지역이나 사람을 추구한 것이 아니란 때묻지 않은 문명을 추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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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문명이 역사의식과 민족의식도 사라져버리고 떼거리, 양적인 문화, 실천없는 회개기도, 횡령, 세습, 기득권의 싸움으로 치달아 초대기독교문명을 이미 상실하지 오래이다. 일제시대의 기독교인들은 비기독교인들에 비해 대부분 단명했다. 이는 항일운동으로 인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일제의 총칼에 죽거나 투옥되면서 고문으로인해 건강이 약화되면서 단명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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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누가 더 많이 기도해서 축복을 받았느냐, 누가 복을 많이 받아서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갔느냐, 누가 목회에 성공하거나 잘 이어받아서 대형교회를 이루었느냐에 가치기준을 두기 때문에 기독교는 이미 죽은 정신을 갖고 있는 종교가 된 것이다.

 

특히 최근의 시청앞 광장에서의 일부 기독교도들의 반역사적인 행동은 기독교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들은 통일교 깃발이 날리는 사람들과 함께 집회를 하기도 했다. 그들은 대통령의 범죄사실을 정서의 가치로 뒤덮어 버리기도 했다. 비역사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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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독교가 예수를 믿는 동료기독교인들에 대해서는 조금 다르다고 해서 이단, 자유주의로 정죄하고, 국민의 돈을 특정인에게 밀어준 대통령은 죄없다고 하거나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라며 태극기 휘날리며 집회를 하는 것은 왕의 부패에 대해서 강력하게 항의했든 세레요한과 예수의 정신과는 너무나도 먼 것이다. 세례요한은 그의 강렬한 외침으로 결국 최후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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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역사와 미래를 위한 현실의 선지자적 능력을 포기한 기독교는 기독교의 원래의 정신을 망각한 것이다. 자본주의를 잉태한 개신교는 자본주의의 망령에 휩싸이면서 자본주의의 부패 유물로 전락하고 있다. 프랑스의 예술가들이 자본주의의 물질문명 대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하여 원시미술을 찾았듯이, 미래를 책임지어야 할 타락한 현재의 기독교는 제도화되기 이전의 순수함과 열정이 서려 있었던 원시기독교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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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문명이 혼돈되고,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더욱 더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과거에서 지혜를 찾아야 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가 대화할 때, 현재는 미래와 대화할 수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기독교는 교리개혁을 한 종교개혁시대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 훨씬 이전 종교의 정신개혁을 단행했던 예수와 초대교회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제도화 된 로마시대에 기독교인들은 정신을 추구하면서 숨막히는 땅속에서도 부활을 꿈꾸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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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교리적 개신교와 제도적 개신교는 타락했기 때문에 교리와 제도 이너머 역사적 개신교와 정신적 개신교로 돌아가야 한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기독교는 과거의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2,000년전의 예수의 정신으로 돌아갈 때, 과거와 현재는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가 과거와 현재가 대화할 때,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재의 기독교는 과거와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시청앞 수만명의 기독교인들이 기도집회를 해도 미래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과거가 없기 때문에 중국의 사드로 인해서 소통이 안되는 것이다. 미국만 소통하려고 하지 말고 중국과도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기독교가 하늘과 소통이 안되기 때문에 힘있다고 판단하는 미국과만 소통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래의 책임자는 하나님이 아니고 미국인 것이다. 우리 민족의 문제는 미국이 아니라 우리가 풀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미국가만 소통하지 말고 하늘과 소통해야 하고, 중국과 북한, 나아가 과거의 역사와 소통해야 한다. 그럴 때 민족의 미래가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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