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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학], "역사적 개신교 vs. 교리적, 영성적 개신교"

  • 황규학
  • 입력 2017.03.18 03: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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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성교회 사건은 역사없는 영성적 개신교의 산물

한국에서 개신교가 그 명성을 떨칠 때는 일제 앞에 강력하게 항거할 때였다. 불교가 역사를 등지고 산속에서 도만 닦을 때 개신교는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현실 앞에 정면으로 맞섰다. 항일시대의 개신교는 역사와 함께 하는 역사적 개신교였다. 역사적 개신교도들은 교리적 영성적 신앙만 갖고 신앙생활 한 것이 아니라 일제에 항거하는 역사성을 갖고 신앙생할을 했던 것이다.  

 

역사적 신앙인으로서 대표적인 사람이 이승만, 안창호, 이상설, 이상재, 조만식, 김구, 문익환, 윤동주, 김재준 등 이며 이들은 신앙의 힘으로 역사적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다. 33인 중에도 16인이 기독교인들이었다. 특히 3.1운동은 개신교들이 앞장선 운동이었다.

 

기독교인들 대부분 단명

 

기독교 인명사전을 보면 당시의 개신교도들은 대부분 단명했다. 일제 항거로 인해 고문과 핍박을 많이 받아 병으로 단명한 사례가 많이 있다. 장수한 기독교인들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일제시대의 개신교도들은 비역사성을 띠고 차안의 현실을 피안으로 회피하는 영성적 개신교도가 아니라 차안의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민족과 국가의 불운과 함께하는 역사적 개신교도 였다.  

 

일제시대의 신사참배반대도 신앙고백이외에 항일정신이 함께 곁들인 것이었다. 주기철 목사는 영성적 개신교도만이 아니라 역사적 개신교도로서 민족과 함께한 목사였다. 그러기때문에 그의 장열한 순교는 지금까지도 개신교도들의 가슴에 중심으로 박혀있다.

 

▲     ©

 

일사각오 vs. 일생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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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무릎을 꿇는다면 풍전등화의 한국의 개신교는 소망이 없었을 것이다. 시대의 아픔과 역사적 현실을 등지지 않았던 역사적 개신교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개신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동학교도였던 김구가 개신교도로 개종한 것도 이러한 이유때문이다. 제국주의에 강력하게 항거하는 개신교가 미래의 희망적 종교였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개신교는 미래가 없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이다.

 

친일인명사전에 기독교인들 51명 기록

 

그러나 불행하게도 역사적 개신교도들 이외에 역사성을 등진 영성적 개신교도들은 친일에 가담하였다.  세간의 관심 속에 진행되어오던 ‘친일인명사전’에 신사참배에 참여한 비역사적 개신교도들이 51명이 수록되었다.   

 

▲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1938년 제27회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주도했던 홍택기 목사와 감리교의 양주삼목사 를 비롯해 성결교의 이명직목사등이 모두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장로교는 27회 총회에서 신사는 종교가 아니라는 명분으로 신사참배 결의문을 채택하고 곧바로 평양신사를 방문하여 신사참배를 감행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27차 신사참배 가결 회의록은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평양, 평서, 안주 삼노회가 신사참배 결의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我等은 神社는 宗敎가 아니고 基督敎의 敎理에 違反하지 않는 本意를 이해하고 神社參拜가 애국적 國家儀式임을 자각하며 또 이에 神社參拜를 率先 勵行하고 속히 國民精神總動員에 참가하여 非常時局하에서 총후 皇國臣民으로서 적성을 다하기로 함."

 

소하13년 9월 10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홍택기

부회장과(임원대표) 각 노회장으로 (회원대표) 본 총회를 대표하여 즉시 신사참배를 실행하기로 가결하다 동 12시에 이인식씨 기도하고 회장이 정회하다 

▲ 27차 총회회의록      ©법과 교회

 

 

감리교의 초대총리인 양주삼목사 또한 “기독교인은 종교인이기에 앞서 국민”이라며 신사참배를 주도했으며, 광복후에는 “출옥성도나 교회를 지키기위해 신사참배를 한 성도나 고생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논리로 교권을 유지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성결교의 초대총회장이며 성결교의 신학적 토대를 마련한 이명직 목사 또한 조선 합병을 정당화하고 신사참배를 주도 했다는 이유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제되었다. 평양신학교가 폐교되자 황민화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된 조선신학교의 설립에 앞장섰던 송창근 목사와 채필근 목사 또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 되었다.

 

이렇게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기독교계 목회자는 51명으로 한국교회의 교회사를 장식한 대표적인 기독교인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한국의 박정희 유신독재정권과 전두환독재정권에 항거한 역사적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다. 박형규, 김진홍, 인명진, 고영근, 문익환, 문동환, 강원룡, 강신명, 박조준 등은 좋은 예이다. 이러한 역사적 개신교도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의 민주화를 앞당길 수가 있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고 민주화도 진행하면서 개신교는 역사적 개신교보다 영성적 개신교, 교리적 개신교로 탈바꿈 하게 된다.

 

교리적 기독교와 영성적 기독교

 

교리적 개신교에 젖은 역사성 없는 기독교인들은 자신들과  근본적 교리가 다르다고 해서 이단으로 정죄하여 교리적 종교인으로 전락한 바리새인들처럼 교리적 교인으로 된다. 교리적 개신교도들은 회개와 용서, 사랑의 성서적 정신도 배반하고, 이념적으로는 보수 우파로 된다. 한국의 보수기독교도들은 박근혜, 이명박을 선택하고, 미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은 부시와 트럼프를 선택한다. 

 

특히 예장합동과 예장통합교단은 역사성과 사회성을 거부하면서 신앙고백적, 교리적 기독교로 되어 이단정죄에 앞장서게 된다. 교리적 기독교가 되다보니 교리적 약자를 소명기회나 교정기회도 주지않고 이단으로 양산한다. 그리고 사회적 현실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무시했다. 소극적 야합이었다.

 

그런 나머지 교리적, 영성적 기독교는 역사적 현실과 사회적 현실을 회피하게 되어 주변부로 밀려나게 된다. 이처럼 장로교단은 역사적 현실을 외면한 교리적 기독교나 역사성을 배제한 영성적 기독교도들도 전락한다.

 

영성적 기독교인들 역시 역사와 민족의 사회적 현실을 외면한 채 영성을 통해서만 기독교의 본질에 도달하려고 하는 자들이다. 길선주목사의 새벽기도 영성과 김익두목사와 이성봉목사의 부흥회적 영성에 맥을 같이 하는 기독교도들이다. 

 

이후에 조용기, 이천석, 신현균, 오관석, 강달희, 피종진 목사 등은 한국교회가 영성교회가 되게 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대형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홍도, 김선도, 김국도, 길자연, 옥한음, 하용조, 김삼환 목사 등은 영성적 목사로 볼 수 있다. 이들은 한국의 경제가 어려웠던 70-80년대를 지나면서 민중들의 사회적 현실과 함께 함으로 인해 영성목회로 인해 성공한 사람이다.

 

대형화된 교회가 역사성과 사회성을 외면하면서 오직 영성과 신앙고백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고 온 것은 사실이다. 기장교단에서도 영성을 추구한 한신교회는 대형교회가 되었다. 그만큼 배고픔과 가난에 찌든 사람들은 가난과 고통을 영성을 통하여 극복하기를 원했고, 대형교회 목사들은 이들의 이러한 욕구를 충족하여 주었다. 

 

그러나 영성을 추구한 교회들은 이념적으로 대부분 보수 우익으로 치달으면서 반공, 멸공, 독재정권에의 무관심 내지는 지지와 야합, 친미를 주장하면서 민족의 역사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노인들만 가득차게 되고 젊은이들은 역사성을 배제한 기독교로부터 점점 이탈하는 것이다. 사회적 정의와 민족적 역사와 함께 하는 천주교로 대거 이주하거나 신천지와 같은 다른 이단 종파로 이동하게 된다. 이는 역사성 없는 개신교가 교리적 기독교와 영성적 기독교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 한기총, 한교연 등이 성조기를 든 친미세력과 이단으로 규정된 통일교도들과 탄핵반대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탄핵이 없을 때는 이단. 탄핵반대집회에서는 이단도 동지였다.  이는 역사성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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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 한교연은 실증적 사실을 토대로 하는 역사성 보다는 하늘의 가치만을 토대로 하는 교리적, 신앙고백적 영성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탄핵반대에 앞장설 수 밖에 없었다. 수구적 종교로 전락하다 보니 주변적 종교로 몰리는 것이다.   

 

영성적 기독교는 대부분 아들을 선택

 

교리적 기독교를 선택한 개신교는 자신들과 조금만 달라도 예수믿는 사람들을 이단정죄하는데 앞장 섰고, 영성적 기독교를 선택한 개신교는 이념적으로는 극우, 영적으로는 축복, 은사, 은혜에 집중했고, 사역적으로는 부동산, 머리숫자, 재정 등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신도들 앞에서는 하늘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이면으로는 아들의 목회승계를 추구하는 물질적 가치를 선택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신도들로 하여금 하늘을 보게끔 하고 하늘을 보는 사이에 땅에서는 아들을 후임자로 밀어넣는 것이었다. 역사성 없는 교리적, 영성적 기독교의 한계이다. 기장측은 영성이 약하고 역사성만을 추구하다 보니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였다.  

 

한국교회가 균형있게 발전하려면 교리적, 영성적 개신교는 역사성을 추구해야 하고, 역사적 개신교는 영성을 추구해야 한다. 최근 명성교회의 부자승계의 형태는 역사성없는 교리적, 영성적 교회를 추구한 연장선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명성교회는 영성에다 역사성을 가미할 필요가 있고, 기장교단은 역사에 영성을 가미할 필요가 있다. 역사 없는 영성은 맹목적이고, 영성없는 역사는 공허하기 때문이다.   

    

 

 

 

 황규학은 [법과 종교] 편집인이며 [기독공보]대표 이다. 서울대에서 종교학과 철학, 장신대에서 신학, 캐나다맥매스터 신학교에서는 성서학(MTS 수학), 플로리다신학대학원에서 미국교단헌법, 강원대 법대에서는 미국대법원 판례(교회재산분쟁)를 연구한 바 있다. 저서에는 "장로교는 없다". "교회법이란 무엇인가", "당회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한국교회 상식이 운다" 등 교회와 관련한 1천 편 이상의 칼럼과 5 천편 이상의 기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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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 배우고**2017-03-19 07:43:08

    하늘에 소망이 있다고 말씀을 전하면서 땅에서 못된 짓 하는 자들 ! 어찌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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