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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루터와 칼빈도 종교개혁의 대상이다

  • 황규학
  • 입력 2017.05.19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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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인의 영을 갖고 행한 행동 비판받아야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각언론사나 노회, 총회임원들은 종교개혁지 방문에 서로 앞을 다툴 정도로 유럽으로 떠나고 있다. 종교개혁지방문은 한국기독공보도 상품화시켰다.

 

▲     © 기독공보

 

종교개혁 500주년의 학술세미나는 대부분 루터의 종교개혁, 칼빈의 종교개혁 등 우리나라의 현실과 상관없는 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교리, 반카톨릭에 촞점이 주어져 있다. 그러나 카톨릭은 종교개혁 이후 반종교개혁, 바티칸 제 2공의회를 통하여 대대적인 변신을 하여 개혁된 카톨릭으로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카톨릭은 개신교보다 좋은 이미지를 갖고서 신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태이다. 대통령도 카톨릭출신자가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카톨릭은 성장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많이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개신교의 목사들은 종교개혁지만 방문할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자들과 한국교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 다시 개혁시킬 필요가 있다. 루터와 칼빈, 한국교회도 개혁의 대상자이다. 

 

루터의 살인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하자,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에 가장 영향을 받은 집단 중의 하나는 농민들이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모든 사람은 누구에게나 예속 될 수 없고 차별받을 수 없다며 하나님 앞에서는 교황이나 사제, 왕, 귀족, 농부 등 모든 그리스도인은 차별적인 모든 조건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사제와 평신도라는 계급적 차별을 철폐하였고, 성직과 세상에서 직업의 구분도 부정했다.

 

이러한 루터의 설교를 들으면서 농민들의 의식은 변화하기 시작했고 농민봉기의 길을 찾게 되었다. 루터로 인해 농민들은 새로운 사회개혁 의지로 가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갈수록 농민운동이 순수성을 상실하고 폭력화가 심해지자 농민봉기에 대해 시종일관 강도 높게 반대했다. 루터는 농민들을 향해서 그러한 무력과 유혈의 혁명은 그릇된 방법이라고 경고했다. 동학혁명과 유사한 혁명이었다. 농민들은 지배계급의 착취에 대한 한이 있었다. 동학농민봉기가 종교를 이용하듯, 독일 농민들도 기독교를 이용하였던 것이다. 종교는 혁명을 위한 수단으로서 전락했다.

 

루터는 농민혁명이 더욱 거세어 지자.  “약탈과 살인을 일삼는 농민군에 반대하며”라는 글을 통해서 “먼저 귀족들과 주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했던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농민들의 요구 가운데 일부 내용을 들어줄 것을 권면했다. 또한 농민들에게 타협안을 제시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타협안을 농민들이 거부할 경우에만 무력을 사용하여 그들의 거친 혁명을 진압하도록 호소했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무력을 사용하라고 무력을 인정하고 말았다.

 

그러자 지배계급의 농민들의 진압은 폭력과 또다른 살인으로 이어졌다. 1525년 5월 농민들은 통치자들에 의해 프랑켄하우젠(Frankenhausen)에서 완전히 진압되었다. 지배계급의 진압과정에서 수천 명의 농민들이 참수를 당해 죽었고  약 10만에서 15만 여명의 농민들이 생명을 잃었다. 농민혁명의 지도자인 전봉준과 같은 토마스 뮌처도 잔인하게 처형당했다. 수 천 개의 수도원과 성채가 파괴되었고, 수 백 개의 마을들이 잿더미가 되었다. 전 지역이 황무지로 변했다.

 

농민봉기는 진압되었지만 결국 엄청난 피를 흘렸다. 청일과 조선이 중심된 동학혁명의 진압도 결국 수십만의 농민들의 목숨을 잃게 했다. 전봉준이하 농민들은 처참하게 죽어갔다.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으 농민들에게는 피를 가져왔다. 그러나 루터의 어두운 면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단지 만인제사장과 카톨릭에 대항했던 교리적인 면과 루터의 정신만 부각될 뿐, 루터로 인해 수 십만명의 농민이 학살당한 것은 부각되지 않고 있다. 

 

칼빈의 살인

 

종교개혁자들은 단순히 교리개혁자들만 아니라 개혁을 위해서 불가피하게 피를 흘려야 했지만 그들의 역사의식의 부재로 인해 농민들과 교리적 약자들이 처참하게 죽어갔다. 그 이후 재세례파교도들도 예수를 믿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칼빈교도들에 의해 교리적 종교적 살인을 당했던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개혁교도들이 갖고 있는 어두운 면들이다. 

 

칼빈은 개혁신학을 체계화한 불멸의 신학자이지만 종교개혁 과정에서 많은 살인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나타난다. 당시에도 칼빈은 자신의 교리에 반하는 사람은 살인으로서 대하였다. 세르베토는 비기독교인이 아니었는데 비기독교인들보다 더 잔인하게 칼빈의 손에 의해서 죽였던 것이다.

 

카스텔리오는 세르베토가 칼빈의 신학사상에 문제를 제기하다 부당한 칼빈의 손에 의해 죽었다는 것을 증언하였다.

 

"‘그리스도인인 세르베토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독하지는 않았지만 칼빈의 이론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죄명'에 씌워져 그토록 괴로운 죽음(산채로 화형)을 당했다. 세르베토는 불길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그는 칼빈의 삼위일체설과 칼케톤 회의에서 결정된 기독론, 유아세례에 대한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대한 견해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미켈 세르베토<Miguel Serveto 1511-1553> 는 스페인의 학자로서 혈액순환을 발견한 의학자요 신학자요 철학의 천재였고, 한때 칼빈을 구출하여 그에게 승리를 얻도록 도와준 동지중의 한 사람이었다.

 

칼빈이 세르베토를 불로 태워 죽인 사건은 신교의 개념을 무너뜨린 충격적이고도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개신교도 종교상의 이유로 얼마든지 종교재판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관계가 공식적으로 남게 된 것이다. 칼빈의 세르베토에 대한 화형은 당시 유럽사회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으며, 이로 인하여 칼빈만이 아니라 신교에 대한 일반의 평가조차 냉혹하게 선회하는 계기가 되었다.

 

칼빈이 세르베토를 불태워 죽인 것은 종교개혁의 이름으로 행한 것이었다. 반종교개헉적인 행동이었다. 이로 인해 개신교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가진 사람, 자유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종교재판을 도입한다는 것과 사람에 대한 살상은 용납될 수 있는 교파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는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벗어난 행동이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세르베토가 화형에 처해지고 있다. 근본주의 장로교 신학과 조금 다르다고 해서 예수믿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루터와 칼빈의 살인의 영이 교리주의자들에게 그대로 전수되고 있는 것이다.   

 

세르베토 살인이후 살인의 행각은 신구교 지도자들에게 행해졌다. 그 이후 신구교의 종교전쟁은 국가의 전쟁으로 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종교전쟁의 극치를 보여준 것으로 카톨릭과 신교의 성직자들에 의한 상대방의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을 자행하였다. 양자의 지배자(신구교)들은 상대방의 전제군주를 제거하는 것이 신에 대한 봉사라고 간주하고 암살을 자행하였다. 그 예로 홀랜드의 오랑에 公 위레름이 5차에 걸친 암살시도를 피하기는 했으나 결국 1584년 발사라르-제랄드(Balthasar-Gerard)흉탄에 쓰러졌고 영국의 엘리자베드 여왕은 15차 이상의 살해시도를 피했고, 프랑스의 앙리 4세는 19명의 암살시도를 피했으나 그 역시 1610년에 리바이야끄<Ravaillac>의 단검에 의해 피살되었다.)은 신교에 대한 기대감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였다.


이후 신교에 대한 기대감은 급격하게 퇴색해 가기 시작하였다. 이와같은 일련의 불관용적 사건들은 서구교회 침몰의 시발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떻든 카톨릭과 동일한 교리, 동일한 마녀재판과 종교재판을 통한 인간 사냥을 자행한 칼빈에 의해 개신교의 명예는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카톨릭의 참혹한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비판하는 곳에 칼빈과 개신교의 이름으로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에 대한 비판이 함께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칼빈에게 세르베토의 영혼을 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로지 칼빈 해석의 절대권위를 강화하기 위해서만 샹펠의 장작더미에 불을 붙인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카스텔리오는 "세르베투스는 하나님을 모독하지도 않았고, 그는 오직 칼빈의 어떤 주장을 부인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것이다.그런데 불길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 세르베투스는 절대로 무신론자가 아니었다"고 했다.

 

한국교회의 살인

 

오늘날도 교리마녀사냥꾼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칼빈의 교리에 반하면 교단의 이름으로 이단사냥을 자행하고 있다. 이는 존칼빈의 살인의 영이 그들의 이성과 가슴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미국의 청교도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청교도정신에 벗어난 사람들은 마녀사냥으로 이름없이 죽어갔다. 세일럼의 마녀사냥재판은 좋은 본보기이다.

 

루터와 존 칼빈의 살인의 영이 개혁교도들과 청교도들, 근본주의 교도들에게 승계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과 다르면 불관용으로서 신앙고백이 같아도 교리가 다르면 살인하는 쪽으로 가고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종교개혁자들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었던 가인의 살인의 영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아벨의 자손인줄 알았는데 가인의 피도 함께 있었던 것이다.

 

1938년 27차 총회는 신사참배를 용인하는 결정을 내렸다. 개혁교회의 피를 이어받은 한국교회가 자신들이 불리할 때는 우상종교인 신사에도 참배하는 결정을 하고, 자신들과 교리가 반대되면 이단으로 찍었던 것이다. 신사참배와 이단정죄는 한국교회의 어두운 면들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김재준이었다. 그는자유주의 신학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장신대에서는 김재준의 신학을 용인하고 있고 학교에서 버젓이 가르쳐지고 있다. 박창환전학장은 박형룡이 아니라 김재준이야 말고 경건과 학문을 한 사람이라고 극찬을 하고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CBS는 루터의 황금주화를 상품으로 내어 놓았고, 한국 기독공보는 크루즈 여행을 상품으로 내어 놓았다. 이것이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것일까?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우리와 생각이 다르면 기독교인을 이단으로 모는 이단감별사들의 반기독교적인 이단정죄행위에 대해서 비판해야 하고, 가인의 영을 갖고 있는 루터와 칼빈의 어두운 부분들을 비판해야 한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개신교는 제2의 면죄부인 루터의 황금주화를 사거나 칼빈의 개혁교리만 극찬할 것이 아니라 그들 이면에 흐르고 있는 어두운 원죄근성인 가인의 영이 비판받아야 하며, 그 가인의 영을 이어받은 이단감별사나 한국주류교단의 지도자들이 신앙고백이 동일한 사람들에 대해 교리적 하자로 인해 영적 살인을 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루터와 칼빈의 교리만 극찬할 것이 아니라 가인의 영을 갖고 살인을 자행한  그들의 어두운 면들도 비판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도 똑같이 루터와 칼빈처럼 신앙고백이 아니라 다른 신학적 견해와 교리를 갖고 있다고 해서 영적, 정신적, 종교적 살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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