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걸프전의 영웅 콜린 파월

  • 글자크기설정

  • 도전하는 하나님의 사람

나의 피부는 자부심과 힘과 영감의 원천이다. 누구든지 열심히 일하고 믿음을 가진다면 성공할 수 있는 미국을 믿는다.

                                             

걸프전의 영웅, 콜린 파월(1937.4.5생)은 신속한 전략으로 믿을 수 없는 짧은 시간에 승리를 거두었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였다. 쿠웨이트가 너무 많은 양의 석유를 생산하여 가격을 폭락시켜 자기 나라의 석유 수입금이 감소했다는 조건으로 쿠웨이트를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거대한 석유 생산 지역까지 점령 당할까봐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합병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사막의 방패) .그리고  그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 주기 위해 미국은4주 내에 10만 명의 미군을 사우디아라비아로 파송하였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이라크와의 무역을 단절하였다. 이라크의 석유를 걸프만으로 운송하는 수송 관로를 단절시켰다. 후세인은 만약에 미국이 자신의 군대를 공격한다면 끔찍한 패배를 맛볼 것이라고 허풍을 떨었다. 콜린 파월 합참 의장은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에게 “우리를 위협하려고 하지 말라. 소용없다!”라고 경고했다.

 

1월 15일 미국과 동맹국 비행기들이 3,000회 출격을 하였다. 스틸스 미사일 36발 중에서 33발이 목표물에 명중시켰다. 이라크군 지휘 체제와 통신 센터가 무너졌다. 일단 공중전으로 적을 약화한 다음에 콜린 파월 장관과 슈워츠코프 장군은 사우디아라비아 국경 지대에 있는 이라크의 방어 기지들을 휩쓸어버림으로써 이라크를 놀라게 하였다. 24시간 동안에 23,000명 이상의 이라크군들이 항복하였다.

 

2월 27일 쿠웨이트 수도에 그들의 국기를 게양했다. 이라크는 무조건 항복을 하고 전쟁은 끝이 났다. 콜린 파월은 전례 없는 미국의 영웅이 되었다. (북한의 허세가 어떻게 끝이 날 것인지를 암시하는 전투라고 생각한다.)

 

콜린(Colin Powell)은 뉴욕 할렘에서 태어났다. 흑인으로 미국 최초의 국무 장관이 되었다.  콜린 파월은 초등학교  4학년때 열등 반에 들어갔으며, 고등학교 때에는 C학점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대학교에서 ROTC에 들어가 그의 인생이 변하게 되었다. 콜린이 아버지 루터는 가난한 가정의 9명의 둘째로 태어났으며, 어머니 알리는 9명의 형제 중 장녀였다. 그의 부모는 자메이카에 태어났으나 뉴욕에서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루터 가족에게 있어서 교육은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누나 마릴린은 우수한 학생었지만, 콜린은 평범한 학생이었고, 음악에도 소질이 없었다. 1954년 등록금이 10달러인 뉴욕시립대학에 진학했다. (그 당시 사립대 뉴욕대학교가 1년에 750달러였다.) 1954년 가을에 ROTC에 입대했다. 남부 출신 교관들이 Negro가 ‘최고의 생도’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해서 2등으로 졸업했다. 1958년 6월 9일에 콜린은 군대 장교로 임명되었다. 동급생들 앞에서 대표로 선서를 했다. “나 콜린 파월은 국내외 모든 적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고 장교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하며,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콜린은 1962년 8월에 대위로 승진하고 알마 존슨(Alma Johnson)과 결혼을 하였다. 알마는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성장했으며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장이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피스크대학교를 다녔다.

 

콜린은 그가 주둔했던 베닝 기지와 가까운 조지아주 콜럼버스에 있는 레스토랑인 벅스 바비큐에 들어갔다가 니그로는 앞문으로 들어올 수 없으니 뒷문으로 돌아서 돌아온다면 음식을 주겠다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다.

 

결혼 후에도 남부지역 브래크 기지로 훈련을 받으러 갔을 때도 흑인이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실을 찾기도 힘들었다. 흑인들은 백인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공설 운동장에서 놀 수도 없었다. 백인들이 먹는 물도 마실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살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아내는 버밍햄의 부모 집으로 보내게 되었고, 게다가 콜린은 베트남으로 떠나야 했다.

 

베트남에서는 매일 새벽마다 저격병들이 매복해 있다가 습격을 했다. 어느 날 밤, 콜린은 박격포 공격을 받고 죽을 뻔하였다. 다행히 포탄이 나뭇가지를 쳤기 때문에 파편으로 대 여섯명이 부상을 당했다. 다음날 헬리콥터가 캠프에 보급품과 우편물을 투하하였는데, 아내 알마가 마이클이라는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콜린은 수술을 받기 위해 즉시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그 부상으로 인해 퍼플 하트(Purple Heart: 명예 상이 훈장)도 받았다. 

 

콜린은 1964년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흑백 평등을 위한 공민법에 서명한 후, 지난번, 거절 당했던 그 레스토랑에 들어가 햄버거를 주문해 먹고 주인에게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나왔다고 합니다.

 

베트남 근무를 끝냈을 때 그는 두 번째 Purple Heart와 legion of  Merit 훈장을 받았다. 헬리콥터 사고 후 용감한 행동으로 군인 훈장(Soldier’s Medal)도 받았다.

 

1968년 콜린 소령이 두 번 째 월남에 파명되었을 때 사단장 게이트장군과 그의 참모장 트레드웰 대령과 부관 토멜슨 대위와 함께 전방 부대를 헬리콥터를 타고 시찰 나갔다가 헬리콥터가 좁은 공간에 착륙하다가 그만 나무에 걸러 추락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콜린은 좌석 벨트를 풀고 뛰어내리자마자 다시 헬리콥터 기어 올라갔다. 엔진에서 나온 연기로 가득했다. 콜린은 케티스 장군을 발견했는데 어깨가 부러진 것 같았다. 그는 좌석 벨트를 풀고 사단장을 나무 아래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몇 명의 병사들을 불러 사단 참모장 트레이드웰 대령을 구출하였다. 그리고 새번째로 장군의 부관인 대위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끌러냈을 때 대위는 신음소리를 냈다. 콜린은 헬리콥터가 폭발하기 전에 그를 불타는 동체 밖으로 끌어냈다. 모든 생존자를 다른 헬리콥터로 후송학고 나서 X-ray를 찍어 본 결과 자신의 발목이 부러졌다는 것을 알았다. 베트남이 습기가 많아 치료에 방해를 받기 때문에 일본으로 후송이 되어야 하는데도 깁스를 하고 지내는 바람에 완전히 발목이 낫기가지 7년이나 고생하였다고 한다.

 

콜린 파웰은 전례없는 미국의 영웅이 되었다. 콜린 파원 소령은 미국으로 돌아온 직후, 워싱턴에 있는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 콜린은 첫 학기에 “all A”를 받았다.

 

그에게 가정생활도 중요시했지만, 교회생활도 역시 중요기했다. 버지니아주 우드 브리지에 있는 성 마거릿감독교회에서 주일학교 5학년 반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 있는 8군 제2보병사단 제32연대 제1대대의 지휘관이 되었다. 제1대대는 풍기문란, 마약 복용, 인종 간의 긴장 등으로 악명이 높았다. 콜린의 대대가 1974년 한국 복무를 마칠 때쯤, 깡패 집단 같던 병사들이 용감한 군인으로 바뀌었다. 그는 지미 카터 대통령 때, 국방부 장관의 보좌관이었다.

 

1986년 파월 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5군단장이 되었고, 10만 명의 부하를 거느린 중장(별 셋)이 되었다. 그후 1987년 국가 안보 담당 대통령 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 1989년 대장으로 승진, 그해 10월 흑인으로 처음 합동참모본부 의장(52세, 최연소)이 되었다. 1989년 파나마 전쟁, 1991년 걸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2001년 조지 부시 대통령 때 흑인 최초 흑인  국무장관으로 임명이 되었다. 2005년 사임하고 2008년 버락 오바마 후보를 지지하기도 하였다.

 

그의 아들 마이클이 운전사의 실수로 지프가 굴러 심한 상처을 입었다. 9개월 동안 14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마이클도 ROTC를 거쳐 육군 중위가 되어 독일에 파견 근무할 때 일어난 일이었다. 재활훈련을 받고, 결혼도 하여 법대 대학원에서 공부도 하였다.

 

미국의 약속( America’s Promise)

 

1997년 4월에 빌 클린턴 대통령, 조지 H. W. 부시, 제럴드 포드, 넨시 레이건 여사 등이 필라델피아에서 만나 젊은이들에게 주는 미국의 미래를 위한 대통령 정상 선언문을 만들었다. 콜린은 이것을 실천하는 모임의 의장이 되어 4년간 활동하였다.

 

첫째, 모든 젊은이는 그들의 인생에 있어 부모, 멘토, 스승, 코치로서 돌봄을 받아야 한다.

둘째, 모든 젊은이는 조직적인 활동 가운데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가져야 한다.

셋째, 모든 젊은이는 건전한 출발과 건전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모든 젊은이들은 시장성이 높은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효과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

다섯째, 모든 젊은이들은 그들 자신의 봉사를 통해 지역 사회에 환원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도전하는 자만이 성취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처해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 가정이나 교회나 학교 등 뭔가 긍정적인 일을 할 수 있다. 낙제하지 마시오. 끝까지 머물면서 졸업장을 따시오. 마약을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강한 가족을 만드시오. 가장 나쁜 가난은 경제적인 가난이 아니라 가치관의 가난이다. 흑인의 이상이 극단에 치우칠 때, 고립을 자초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나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어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YOUNG IL HONG
13360 Hillsborough Dr. #111
LA M IRADA, CA 90638
(714)213-5556

ⓒ 통합기독공보 & www.lawnchurch.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전체댓글 0

추천뉴스

  • 예장합동 목회자 수급 불균형 우려… 평신도 신학 교육 대안 주목
  • 종교개혁의 정신, 오늘의 한국교회는 개혁되고 있는가
  • GMS 2027 세계선교대회 슬로건, ‘교회여 다시 열방으로’
  • K팝 성공에서 한국교회 다음세대 사역의 길 찾는다
  • 예장합동 서울강남노회 제102회 정기회 개최…21당회서 23당회로 확대
  • 선교의 주체를 넓혀라…교회는 모두 선교사다
  • 조승호 GMS 신임 이사장 “모든 성도가 선교에 참여하는 시대 열겠다”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걸프전의 영웅 콜린 파월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