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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재판

  • 황규학 기자
  • 입력 2018.04.06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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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념의 악마 vs.교리의 악마

 

▲     © 통합기독공보

 

 

 

 

 

일반사회나 기독교인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제주 도민들은 빨갱이와 좌익이라는 이념의 이름으로, 기독교인들은 이단이라는 교리의 이름으로 희생당했다.  

 

제주, 4.3 사건의 문제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당시 재판을 보면 군법재판을 하였기 때문에 인민재판과 다를 바 없었다.  당사자 주의나 구두변론주의 등 적법한 절차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간의 역사는 불법재판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간들은 법이라는 합법적 장치를 자신들의 욕구를 위해 이용하였다. 

 

재판은 왕들과 권력자들의 정적 죽이기 도구에 불과했다. 적법한 절차도 없이 권위있는 선고만 있었다. 빌라도 재판은 그래도 절차는 지켰다. 그러나 빌라도는 죄가없음을 알면서도 직권으로 증거도 없이 단심죄로 유죄판결을 하였다. 절차와 증거도 없이 무고하게 선고하는 재판은 악마의 재판이다.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 제16조에서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지 아니하고 권력의 분립이 규정되지 아니한 사회는 헌법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고 했다. 근대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권리이다. 교단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교인들의 권리이다. 그래서 장로교단은 교회의 자유를 수록한 것이다. 교회의 자유가 존중되어야만 교인의 권리가 보장받는다. 명성교회 사건은 교회의 자유와 교인의 권리가 침해되는 사건이다.  

 

전근대적 사회는 인권보장을 위한 기본사항을 명문으로 정하지 않고 그저 통치를 위한 기본사항들만 문서로 정했고, 그것도 왕의 자의적 통치를 보장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권력의 남용은 개인의 인권침해를 의미하는 것이고 인권침해는 신분제에 기초한 신체의 자유에 대한 가혹한 속박에서 비롯된다. 

 

왕의 직권남용에 대한 제재가 1869년의 권리장전( Bill of rights)이다. 권리장전은 국왕이 의회의 도움을 받지 않고 법률의 효력을 정지하거나 상비군을 설치하거나 조세를 부과할 수 없게 하는 한편, 언론의 자유및 신체의 자유, 그리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형사절차의 보장에 대하여 상세한 규정을 두었다, 프랑스 시민혁명의 결과 발표된 1789년의 인권선언 제1조는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나며 생존한다. 사회적 차별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이를 구체화시킨 것이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신체 속박의 자유이다. 제주 4. 3재판은 이러한 근대민주주의의 인권재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때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1) 4.3 사건발발에 직접 책임이 있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간부, 2) 군경의 진압에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대항한 무장대의 수괴급, 3) 진압 군명 및 제헌선거 관여자를 살해한 자, 4) 경찰관서 방회 등 폭동행위 적극 가담자가단자는 희생자의 범위에서 제한하였다. 그러나 제주지방검찰청이 보존하고 있는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가 발견되면서 희생자들의 기준에 대한 우여곡절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였다. 남로당의 무력항쟁도 있었지만 무고한 양민들이 남로당으로 몰려 총칼과 법으로 죽어갔다.   

 

제주 4.3 사건의 재판

 

제주 4.3사건에세 주목해 볼만한 것은 적법한 절차에 다른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묻지마 선고'가 이루어진 사건이다.  즉 법으로 학살된 재판이다. 이러한 재판은 1988년 군사정권까지 지속된다. 박종철사건도 억지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을 했던 사건이다.  우리 헌법은 형사피의자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형사절차상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제주 4.3 사건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판이란 당사자주의와 구두변론주의가 보장되어 법관의 면전에서 모든 증거자료가 조사 진술되고 이에 대해 공격방어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하는데 4.3재판은 이러한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

 

때에 따라서 최근 교단의 교리재판이나 권징재판을 보면 피고나 피의자에게 공격방어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고 최종변론기회도 없이 일방적으로 선고를 하는 예가 비일비재하다.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교리재판이나 서울교회 사건 같은 경우 재판국장이 최종 변론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선고해버렸다.  

 

제주 4.3 사건에 대한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가 별견되고 관련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공개되면서 재판사건에 대한 실체를 알게되었다. 제주 4.3 사건에 대해 1948년 고등군법회의는 1948년 12월 3일 부터 1948년 12월 27일까지 총 12차레에 걸쳐 열렸고, 민간인 870명에 대해 일제현법 제77조 내란죄 위반의 유죄판결의 선고를 하였고, 1949년 고등군법회의는 1948년 6월 28일 부터 1948년 7월 7일까지 총 10차례나 개최되었는데 적용된 죄목은 국방경비법 제 32조(적에 대한 구원, 통신연락망 또는 그 방조) 제33조(간첩)위반으로 민간인 1660명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내린바 있다. 일본은 물러갔지만 일제가 만든 법에 의해서 도민들이 희생되었다. 일제의 잔재는 여전히 제주도민들을 통치하고 있었다.

 

1948년과 1949년에 걸친 고등군법회의에서 총 2,530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사형 384명, 무기 305명, 징역 20년 97명, 징역 15년 572명, 징역 7년 705명, 징역 5년 235명, 징역 3년 29명, 징역 1년 203명이다. 그러나 죄명의 기록은 있으나 판결문과 재판조사가 없다. 제주도민들은 일제의 한물간 법갖고서 죄인으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일제의 잔재와 군법재판의 폐혜성은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 법적 내용과 절차없이 선고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최종 교계의 재판을 보면 권력을 가진 자들이 기초적인 재판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선고에만 관심을 갖고 주문을 내린다. 교단재판도 '묻지마 면직. 출교'이다.  

 

악마의 재판: 4.3. 재판과 교리재판

 

특히 교리재판은 이단감별사들이 주동이 되어  당사자를 부르지도 않고 자신들끼리 선정해서 일방적으로 이단으로 선포하여 정신적, 영적 살인을 감행했다. 이러한 재판으로 인해 무고한 양민들이나 신앙인들이 법적으로 죽어가거나 장기수가 되었던 것이다. 육체적 고통이외에 정신적 고통을 당한 것이다. 좌우이념 대립의 싸움이 무고한 양민들의 희생으로 이어졌고, 특히 기독교의 이름을 표방한 서북청년들의 만행이 십자군으로 둔갑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닥치는 대로 살상을 했다.

 

http://m.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1532

 

 

 

당시 군경들은 양민들에 대해 '묻지마 살상'을 했고 법관들은 '묻지마 선고'를 했다. 증거도 증인도, 변호인도 없이 그들은 사형을 당하거나 감옥행으로 갔던 것이다. 재판은 약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주목적인데 강자들이 약자들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전락 하였다. 국가는  빨갱이와 좌익의 이름으로, 교단은 교리의 이름으로, 악마의 재판을 통해서 죄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법과 교리의 이름으로 죽어갔다.  제주 4.3. 재판은 '이념의 악마'로 인해서, 기독교재판은 '교리의 악마'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재판절차도 없이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학살당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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