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측 입장 달라
서울서노회입장
100주년 기념교회 입장
사실 확인서
우리들은 1985년 당시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이하 기념사업회) 이사 내지 사무국장으로 봉사하고 있었던 사람들로, 한국기독교선교기념관(이하 선교기념관) 건립 당시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작금의 서울유니온교회(이하 유니온교회)가 위 기념사업회를 상대로 불미스러운 고소사건을 계속 제기함에 따라 당시 사정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여, 차제에 남아 있는 기록과 당시 기억을 바탕으로 사실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하 양화진묘원)은 1890년 헤론 선교사의 죽음을 계기로 외국인을 위한 묘지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당시 미, 영, 러, 독, 불 5개국 공사를 중심으로 조직한 경성구미인묘지회(이하 구미인회)가 관리하다가, 태평양 전쟁이 발발되면서 외국의 선교사나 공관이 추방됨에 따라 구미인회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해방 후, 미국 민간고문단 자격으로 입국한 고 언더우드 2세가 위 외교관 중심의 구미인회와는 무관하나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여 1946년 새로운 구미인회를 조직한 후, 외국인을 매장만하고 묘지를 돌보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양화진묘원은 사실상 방치된 상태였습니다.
1979년에 이르러 양화진묘원은 지하철 공사 및 도로 건설 등에 따라 존폐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당시 고 원일한 박사(언더우드 3세)는 그제야 구미인회의 정관을 만드는 등 구미인회를 재정비하고 그의 선대를 이어 구미인회의 대표가 되어 등기부상 소유권자로서 양화진묘원을 보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1962년에 제정되고 1967년에 개정된 외국인토지법에 의하여 외국인의 토지소유가 사실상 허가되지 않아 구미인회가 양화진묘원의 토지대장상 명의자이긴 하지만, 법적으로 소유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소유자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등기부상에 소유자로 등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별첨1-소유불가통보 내무부장관 직인)
구미인회는 양화진묘원의 영구보존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당시 기념사업회의 초대 이사장인 고 한경직 목사님에게 청원했습니다.
한국기독교는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이 되는 해인 1984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80년대 초부터 범 교파적인 기념사업회를 결성하여, 당시 한국개신교의 원로 지도자이셨던 고 한경직 목사님을 총재로 모시고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 기념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 구한말 근대 조선에 끼친 외국선교사들의 영향과 행적에 대한 보은의 취지에서 기념사업회는 양화진묘원의 가치를 백방으로 알리고 탄원했습니다. 그리하여 양화진묘역은 존폐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별첨2-<<양화진열전>> 초판 서문/기념사업회 사료분과 위원장 겸 이사 전택부 저)
기념사업회는 한국 기독교선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사업계획에 선교기념탑 건립(인천), 순교자기념관 건립(용인), 선교기념관 건립(서울, 양화진), 병원설립(실로암안과병원), 100주년 선교대회(여의도) 등 많은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외국인선교사들의 무덤이 있는 양화진 외국인묘지는 유서 깊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황폐한 쓰레기 더미에 지나지 않아,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고 한경직 목사님을 위시한 교계 지도자들은 양화진을 한국기독교의 성지로 만들어 이 땅에 묻히신 외국인 선교사들을 후대에 기념해야 한다는 뜻을 세우고 그곳에 "선교기념관"을 짓기로 결의하였던 것입니다.(별첨3-1982년 3월 20일에 세운 기념사업회 실행위원회 시행세칙 제2항, 별첨4-1982년 10월에 발행한 기념사업회 부로셔, 별첨5-1984년 1월 27일 제4차 정기총회 84년도 사업계획안)
그러나 당시 그 토지는 합법적으로 등재된 소유자가 없었으므로 건축에 어려움이 있는 터에, 서울지하철공사 토지수용에 따른 보상 문제 때문에 백방으로 토지소유를 합법화 하려던 당시 구미인회(대표 고 원일한 박사)가 외국단체로서의 토지 소유권 보전등기가 무산되자 이를 구제하기 위하여 기념사업회에 증여형식으로(별첨6-1985년 3월 2일 이사회 서면 결의서, 별첨6-1/ 1985년 3월 4일 증여증서 참조) 의제자백의 재판을 통하여 소유권을 이전하므로 서 (별첨7-서울민사지방법원 판결문, 소유권 이전 등기, 1985년 5월 8일) 그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양화진묘원의 유지 존속과 선교사들의 뜻을 기리기 위한 선교기념관 건립은 고 한경직 목사님의 간청을 따라 재계 인사 5인(정주영, 김우중, 박용학, 장치혁, 최태섭)등이 찬조한 7억 5천만(85년 당시 금액)원을 기반으로 착공하게 됩니다.
한국 기독교는 선교사들 중 가장 먼저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인천항에 첫 발을 디딘 1885년을 선교 원년으로 하는 ‘85년 원년설’과 황해도 소래에 자생으로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 1883년을 기념하는 ‘83년 원년설’의 중간 해인 1884년을 한국 기독교 선교 원년으로 말합니다. 그 해로부터 100주년이 되는 해, 곧 1984년을 기념하기 위해 1980년에 발족한 기념사업회는 20개 교단(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등)과 26개 기독단체(YMCA, YWCA, CBS 등)가 연합한 전무후무한 기독인들의 협의체입니다. 이 기념사업회의 초대 총재가 한경직 목사님(1992년 템플턴상수상자)이십니다. 기념사업회가 구상하고 추진한 34개의 사업은 방대하여 동원된 집행부 인원만도 수백 명에 이릅니다.
그 방대한 사업 중 하나인 양화진묘원의 정화사업 및 선교기념관 건립은 개신교 전 교파는 물론 진보, 보수 계파를 막론하고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이 함께 결단한 사업이었습니다. 비록 이 사업은 구미인회가 자구책으로 요청한 양화진묘원의 유지와 보존에서 출발하였지만, 기념사업회의 선교기념관 건립계획은 그들이 생각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기념사업회에서는 양화진묘원을 대한민국 기독교의 성지로 인식했기에 그에 상응하는 규모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기념사업회가 소유권 취득을 위해 증여의 형식을 빈 것은 오로지 적법한 방법으로 구미인회에 대한 절차상의 예의를 갖추기 위한 것이었을 뿐, 기념사업회가 무슨 재산상의 이득을 보기 위하여 이면으로 대가를 보상하면서까지 그 막중한 부담을 떠맡을 이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설령 양화진묘원의 토지가 국가에 귀속되고 묘원이 이장되거나 철거된다 하더라도 기념사업회는 그 토지를 소유할 이유가 전혀 없는 협의체이지만, 오로지 양화진묘원의 역사적 가치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한 소명감으로 이 사업을 감행한 것입니다. 이 땅의 기독교인들은 예수 사랑을 실천한 구한말 선교사들이 전해준 복음에 빚진 자들이라는 인식이 기본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당시 양화진묘원은 명목상 증여일 뿐, 실제로는 증여라기보다는 큰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선교기념관을 건립한 것이 구미인회의 재산상 증여에 보상키 위함이라는 추측은 옳지 않습니다. 게다가 양화진묘원을 등기하기 위해 명의만 차용한 구미인회에 기념사업회가 증여를 대가로 약속한 시설물이라는 일부 외국인들의 해석은 우리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온 해석입니다. 선교기념관은 양화진묘원에 묻힌 선교사님들의 뜻과 행적을 기리기 위한 건축물일 따름입니다.(별첨8-양화진시비/정연희 작)
양화진묘원은 묘지로 사용되는 한 아무 재산 가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소유권 보전등기가 되어있지 않은 묘지를 관리, 유지하는 것이 구미인회에는 큰 부담이었고 사실상 관리가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구미인회는 서울지하철공사로 인한 토지수용에서 경험했듯이 양화진 외국인묘지를 이전하려는 각계의 움직임에 대응하여 이 곳 묘지를 영구히 지켜 줄 것을 희망하여 기념사업회에 이 묘지를 재판의 절차를 거쳐 넘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념사업회는 소유권 보전등기가 되어있지 않은 묘지의 소유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판결을 통한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인식하여 재판을 통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침으로써 묘지를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 따라 당시 구미인회는 한국교회가 양화진의 짐을 떠맡고, 선교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선교기념관 까지 건축한다는 것에 대하여 기념사업회에 크게 감사하였습니다.
선교기념관의 설계개요는 1. 선교기념 자료전시, 2. 기념사업회 사무실, 3. 중소회의실, 4. 대강당, 5. 식당, 친교실 등이었는데, 대강당은 선교사추모예배 공간 등을 겸하도록 하였습니다. 동시에 당시 예배처소가 없어 여러 시설을 빌려 쓰던 주한외국인들의 예배처소로 활용하게 하는 방안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별첨9-1986년 7월에 작성된 '관리규정' 초안 참조)
선교기념관 건립계획이 실천되어 준공식(86년 10월 10일)을 계획 할 즈음인 86년 8월경 고 원일한 박사님이 고 한경직 당시 기념사업회 이사장님을 찾아와 주한 외국인 교회인 유니온교회가 선교기념관 전체를 교회용도로 쓰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집무실과 협의회 사무실을 선교기념관 1층에 두어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끝내고 이사 갈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원일한 박사님이 간청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당시 부 이사장이셨던 고 강원용 목사님을 위시한 많은 이사님들은 선교기념관을 원래의 건립 계획대로 활용하는 것이 마땅하며 "제3자인 서울유니온교회가 단독으로 사용하면 훗날에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구체적인 예를 들며 반대하였으나, 고 한경직 목사님의 무조건적 사랑의 설득으로 기념사업회는 선교기념관으로 자체 사무실을 이전하는 것을 유보하고, 잠정적으로 유니온교회가 선교기념관 전체를 예배처소로 사용하도록 허락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당시 고 원일한 박사님 등 일부 외국인들이 유니온교회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배려하는 차원이었지, 유니온교회에게 영구적으로 선교기념관을 사용하게 한다든가 묘지의 관리를 영구적으로 유니온교회에 맡긴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역사의 가치를 외면하고 한국교회의 뜻과 무관한 사용을 허가함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이에 대한 기념사업회와 구미인회의 입장에 큰 간극이 확인됩니다. 선교기념관 사용을 유니온교회에 허락하자 원일한 박사는 시설물 사용에 따른 그들의 자치적 요구사항을 정리한 문건을 보내 왔습니다.(별첨10-1986년 6월 유니온교회가 제안한 합의문) 그런데 그 요청의 수위는, 양화진묘역 존폐의 위기를 염려하여 기념사업회에 탄원하던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자신들이 지킬 수 없었던 한국 개신교의 성지를 역사적 소명의 대상으로 받아들인 기념사업회의 순수한 뜻과 노력이, 그들이 마땅히 누릴 권리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빚진 자를 자처한 기념사업회의 섬김의 태도가 본의 아니게 그런 상황을 야기한 것은 아닐까도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념사업회는 이 서면요구에 아무런 책임 있는 답변도 하지 않았습니다. 양화진묘역에 대한, 또 선교기념관에 대한 두 단체의 생각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여기서 확인됩니다. 기념사업회는 그들의 선조들에게 받은 은혜를 후손에게 갚아야 할 도리라 생각한 반면, 구미인회는 그것을 그들이 마땅히 누릴 권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기념사업회가 양화진을 성역화한 이후 유니온교회가 선교기념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그들 선조에게 감사하는 대한민국 교회의 뜻을 담아 이제부터는 성역을 성역답게 관리하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기념사업회의 대의와는 달리 양화진묘원에는, 시신의 임의 불법 매장, 매장지의 불법예매(피터 언더우드의 예약묘지 포함한 37건 등), 살아있는 한국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석 등 남발되는 기념물 설치, 원 사료의 이동(묘비의 이동), 양화진을 영리사업에 이용하는 단체들이 단체관람객들을 대거 몰고 묘역을 훼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메가폰까지 사용하여 신성한 묘역을 장터로 만들어 놓는 등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구미인회와 유니온교회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자행되었습니다.
사실 유니온교회가 양화진을 관리해야한다는 주장은 지금의 유니온교회는 예전의 유니온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관리권을 운운할 자격이 없습니다. 처음 유니온교회는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 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대표하는 교회였고, 그 이후에도 상당 기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주일에 외국인과 내국인을 포함하여 불과 몇 십 명만이 출석하는, 그것도 외국인의 경우 특정국가에만 편향 된 지금의 유니온교회는, 한국에 거주하는 수십만 외국인의 대표성을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현재 서울에만도 수십개의 외국인교회가 있습니다. 20년 전 기념사업회가 유니온교회로 하여금 선교기념관을 사용토록 허가할 때에만 해도 양화진에 묻힌 선교사님들의 후손들이 교회를 운영하는 등, 양화진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유니온교회의 인적 구성원은, 양화진에 묻힌 분들과 국적은 같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단지 이름만 유니온교회를 이어받았다고 해서 양화진을 계속 유니온교회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역사성을 무시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양화진의 법적 소유자인 한국교회와 한국인이 한국 최고의 성지인 양화진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역사적이고도 시대적인 요청입니다. 우리 한국인이 빚진 대상은 이 땅을 사랑하시다가 양화진에 묻히신 선교사님들이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한국에 나와 있는 현재의 외국인들이 아닌 것입니다.
이후, 기념사업회의 세 가지 큰 사업, 즉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과 용인순교자기념관 그리고 인천의 선교기념탑만을 남기고 사업의 대부분을 개인과 단체에 이양하였고(인천선교기념탑은 후에 인천시에 기부체납), 2000년 한경직 목사님께서 소천 하시자 당시 부이사장이신 강원용 목사님(경동교회 원로목사)께서 이사장으로 기념사업회의 사업과 정신을 승계하시게 되었습니다.
기념사업회는 유니온교회에 양화진묘원과 선교기념관 관리를 위임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재정적 지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별첨11-기념사업회 재정 보고서) 유니온교회의 규모나 재정 상태로는 양화진묘원과 선교기념관을 유지, 관리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습니다.
기념사업회는 유니온교회의 관리 부실을 인내심을 갖고 관망해 오다가, 사용자들의 무분별한 처사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대의를 책임 있게 실천할 관리 주체를 세우기로 협의, 결정하여(별첨12-기념사업회 2003년 임시이사회의록) 2005년 7월 100주년기념교회(이하 기념교회)를 설립(별첨 13-창립예배 순서지)하고 양화진묘원의 모든 권리와 책임을 이 기념교회에 위임하여(별첨14-기념사업회 서신 05-015, 별첨14-1/기념사업회 서신05-017)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초대 담임목사로 청빙된 이재철 목사님이 2005년 7월 10일 창립예배를 드릴 때, 취임사에서 ‘양화진의 묘지기’가 되겠다고 밝힌 이유는 대한민국 최고의 성지인 양화진을 한국인이 관리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것이었고, 양화진의 법적 소유자인 기념사업회가 양화진을 책임질 한국인교회를 세우기로 한 동기 또한 이것인 것입니다.
양화진묘원은 한국 교회사의 시발점이 되는 명실상부한 ‘성지’입니다. 또 구한말 이 땅의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서양인들의 묘역이기도 합니다. 우리 근대역사의 보고(寶庫)인 이 묘원은 허망하게 사라질 존폐 위기에 자주 직면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가 그랬고, 한국전쟁 때는 한강변 최대 격전지였으며, 지하철공사로 인한 도로 변경 건설 계획에 포함되는가 하면, 무분별한 매장지 사용에 따라 민원을 유발한 것도 그 예입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선한 의지’가 이 묘원을 지키게 하여 오늘날까지 보존된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역사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현재의 법적 소유주인 기념사업회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선한 의지의 실천자로 초지일관할 것입니다. 따라서 양화진묘원을 재산상의 가치로만 판단하거나, 소중한 역사적 유산을 마치 사익을 위한 대상물로 해석하거나, 목적을 알 수 없는 분쟁의 시발점으로 여기는 항간의 분분한 주장에 대해 일일이 응대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오로지 하나님의 선한 의지의 간섭이 있을 것을 믿을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선교기념관은 양화진묘원을 영구히 보존하고, 양화진에 묻힌 외국선교사님들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한국교회와 이곳에 드나드는 모든 선교국 자손들의 추모 예배 및 그에 따른 활용 공간으로 건립된 것임을 밝혀 드립니다.
끝으로 1986년 당시 선교기념관 헌당식 때 발표된 “헌건사”를 인용합니다.
“우리 재단법인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선교기념관 건축과 외국인묘지공원 조성의 거룩하고도 거대한 일을 작정하고 건축위원으로 맡겨 주셨으므로 부르심에 감격하여 한국교회와 유지들이 기도와 정성을 다하여 협조하여 주셨으므로 모든 공사를 은혜 가운데 마치었습니다.
우리가 주를 위하여 건축한 이 선교기념관은 영원토록 주님의 것입니다. 본 건축위원회는 이 새로 지은 선교기념관 열쇠를 재단법인 책임자이신 이사장님께 드리오니 하나님을 예배하며 많은 심령을 구원하고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크게 이바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빕니다. 1986년 10월 10“ (별첨15-헌건사 당시 사본-현재도 그 열쇠는 기념사업회 사무실에 보관중임)
이제 1980년 초부터 위 기념사업회의 모든 사업에 참여하여 이 모든 것을 목격하고 진행한 우리들이 80, 90세를 넘어 100세를 바라보면서, 당시 20대 청년이었거나 더 어렸고 또 이곳에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였던 소수 외국인들이 왜곡된 시각과 무리한 해석으로 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의 사업을 마치 사사로운 이권이 있었던 사업으로 평가하며 자신들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함을 보고 일일이 응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다가 진실이 호도됨을 도저히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서 이 사실 확인서를 역사 앞에 남기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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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 기념교회 입장
양화진 문제 등에 대한
우리의 입장
최근 초대선교사 4대손 두 사람과 일부 인사들에 의해 야기된 양화진묘원과 100주년기념교회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본 협의회를 사랑하고 후원해 주신 여러분께 먼저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 동안 본 협의회는 사실과 진실이 언젠가는 밝혀지리라 믿고 참고 기다려 왔으나, 국법에 의해 진위가 가려졌음에도 오해와 편견의 골이 남아있음으로, 2009. 4. 23. 제25차 정기이사회에서 협의한 후, 송구한 마음으로 우리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히오니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아 래 -
- 100주년기념교회는 교회연합기관인 재단법인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이하 협의회)가 선교 200년을 내다보고 창립한 연합교회 공동체이다. 특정교파, 교단에 예속되지 않고 독립교회 형태를 지닌다.
- 협의회는 초대 이사장 고 한경직 목사, 2대 이사장 고 강원룡 목사의 신앙과 탁월한 리더십에 의해 뜻 깊은 연합사업들을 추진해 왔으며 정진경 목사가 3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도 아무런 분쟁이나 갈등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협의회는 2000년대에 이르자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교회와 기관들이 증가함에 따라 양화진선교사묘원과 용인순교자기념관의 재산소유권은 보존하되 운영관리봉사를 수행할 유력한 교회 네 곳을 선정하여 교섭하였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그 이유는 특정교파나 특정교단에 소속된 개교회가 맡아 운영하기에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2003년 임시이사회는 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양화진선교사묘원과 용인순교자기념관의 보존 및 관리를 전담할 100주년기념교회를 설립하기로 결의하고 2년 간의 준비 끝에 2005년 7월 10일 교계 지도자들을 모시고 창립예배를 드렸으며 한국교회 최고 원로 방지일 목사가 축도했다.
- 협의회는 담임목사 청빙을 비롯한 기념교회 설립준비위원으로 강원룡, 정진경, 강병훈 목사와 최창근, 김경래 장로를 선임하였다.
- 5인 위원회는 양화진 울타리 곁에서 20여 년 간을 살면서 양화진의 실상을 잘 아는 장로교 소속 이재철 목사를 적임자로 보고 방문 교섭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재차 방문하여 협의회의 사정과 양화진의 실태를 설명하고 한국교회의 성지인 양화진의 묘원지기가 되어 줄 것을 간청했을 때 배석한 사모와 더불어 어렵사리 수락했다.
그날은 눈물의 기도로 헤어지고 5인 위원회는 즉시 창립준비에 나섰다.
- 100주년기념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다. 출석 교인 수는 창립 3년 10개월 현재 교회학교 어린이 500여명을 포함하여 4,500여명에 이른다. 초신자와 20대 청년, 그리고 30~40대 젊은 층의 비율이 80%에 이르고 마포구 아닌 지역에서 출석하는 신도수가 90%이상이다. 이렇게 성장한 100주년기념교회의 헌신과 봉사로 양화진묘원은 아름다운 한국기독교 성지로 가꾸어지고 있으며 모든 불법과 훼손이 묘원에서 근절되었다. 그 동안 100주년기념교회가 양화진묘원 정비를 위해 소요한 경비는 홍보관 건립비를 제외하고도 14억여원에 이른다.
100주년기념교회가 묘지를 훼손하고 주차장화한다는 비방은 기념교회 수 천명의 성도들을 무식하고 부도덕한 사람들로 매도하는 짓이며 헌신적인 주차요원들과 수백 명의 봉사자들을 모독하는 언행이다.
100주년기념교회 교인들은 주일예배시간에 묘역의 차도에 주차할 뿐이다. 우리나라 국립현충원을 비롯하여 전세계 어느 나라의 묘지든 묘역차도에 주차를 금하는 곳은 없다.
100주년기념교회는 특정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교회로써 기독교회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독자적인 정관을 제정하고 그 정관에 따라 교회를 운영하는 것을 협의회는 지지한다.
- 100주년기념교회는 연합사업에 무관심하고 미온적인 한국교회를 빛도 없이 섬기는 청지기로 평가 받아 냉수 한 그릇, 꽃 한 송이라도 건네며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 대상이다.
양화진묘역과 순교자기념관을 위한 월정 협찬교회는 전국 수만 교회 중 불과 33개였고 최근에는 거의 절반으로 감소되었다.
- 협의회는 한국교회의 공동유산인 양화진묘역과 순교자기념관의 건전하고 합리적인 운영관리를 저해하고 비방하는 3대 세력을 주목하고 있다.
- 첫째, 조상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사랑의 봉사를 망각하고 한국의 실정법을 거슬러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매장이 불가능한 묘원 임에도 38명의 내 외국인에게 적지 않은 금품을 받고 예매한 불법 행위를 감추고 있다. - 둘째, 한국교회의 성지를 사조직을 통해 관광 상품화하여 사익을 챙겨온 자들이다.
100주년기념교회가 홍보관과 양화진홀을 개설하고 교육과 훈련 받은 안내요원들을 배치하여 무료로 봉사하는 일을 백안시하는 무리들이다. - 셋째, 하나님의 교회가 성령의 역사로 부흥발전 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기뻐하며 감사하지 않고 불신자나 이교도들도 행하지 않는 음해와 시비를 일삼는 자들이다.
이 중에는 관공서를 상대로 양화진묘원이 혐오시설이라 부추기며 시 외곽이전을 집요하게 획책하는 개발이익 취득 전문업자도 있다.
- 첫째, 조상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사랑의 봉사를 망각하고 한국의 실정법을 거슬러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 양화진선교사묘원과 용인순교자기념관의 재산권은 (재)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소유하고 있으며 100주년기념교회나 어떤 특정인이 사유화 하지 않았다.
협의회와 100주년기념교회를 상대로 수 차례 제기된 민형사상의 고소와 고발은 모두 무혐의와 증거 없음으로 기각되었고 재정신청까지 고등법원에서 기각 판결되었다. 서울유니언교회가 양화진 에서 쫓겨났다는 등의 주장들은 허위임이 국법에 의해 밝혀졌다. (첨부: 2009. 04. 13. 판결문 참조)
만약 앞으로도 불순한 동기와 의도로 협의회와 100주년기념교회를 계속 거짓 모함하면서 한국교회를 농락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다면 이제부터는 반드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2009년 4월 23일
재단법인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이 사 장 정 진 경
부이사장 강 병 훈
부이사장 최 창 근
상임이사 김 경 래
사실 확인서
우리들은 1985년 당시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이하 기념사업회) 이사 내지 사무국장으로 봉사하고 있었던 사람들로, 한국기독교선교기념관(이하 선교기념관) 건립 당시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작금의 서울유니온교회(이하 유니온교회)가 위 기념사업회를 상대로 불미스러운 고소사건을 계속 제기함에 따라 당시 사정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여, 차제에 남아 있는 기록과 당시 기억을 바탕으로 사실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하 양화진묘원)은 1890년 헤론 선교사의 죽음을 계기로 외국인을 위한 묘지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당시 미, 영, 러, 독, 불 5개국 공사를 중심으로 조직한 경성구미인묘지회(이하 구미인회)가 관리하다가, 태평양 전쟁이 발발되면서 외국의 선교사나 공관이 추방됨에 따라 구미인회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해방 후, 미국 민간고문단 자격으로 입국한 고 언더우드 2세가 위 외교관 중심의 구미인회와는 무관하나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여 1946년 새로운 구미인회를 조직한 후, 외국인을 매장만하고 묘지를 돌보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양화진묘원은 사실상 방치된 상태였습니다.
1979년에 이르러 양화진묘원은 지하철 공사 및 도로 건설 등에 따라 존폐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당시 고 원일한 박사(언더우드 3세)는 그제야 구미인회의 정관을 만드는 등 구미인회를 재정비하고 그의 선대를 이어 구미인회의 대표가 되어 등기부상 소유권자로서 양화진묘원을 보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1962년에 제정되고 1967년에 개정된 외국인토지법에 의하여 외국인의 토지소유가 사실상 허가되지 않아 구미인회가 양화진묘원의 토지대장상 명의자이긴 하지만, 법적으로 소유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소유자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등기부상에 소유자로 등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별첨1-소유불가통보 내무부장관 직인)
구미인회는 양화진묘원의 영구보존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당시 기념사업회의 초대 이사장인 고 한경직 목사님에게 청원했습니다.
한국기독교는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이 되는 해인 1984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80년대 초부터 범 교파적인 기념사업회를 결성하여, 당시 한국개신교의 원로 지도자이셨던 고 한경직 목사님을 총재로 모시고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 기념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 구한말 근대 조선에 끼친 외국선교사들의 영향과 행적에 대한 보은의 취지에서 기념사업회는 양화진묘원의 가치를 백방으로 알리고 탄원했습니다. 그리하여 양화진묘역은 존폐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별첨2-<<양화진열전>> 초판 서문/기념사업회 사료분과 위원장 겸 이사 전택부 저)
기념사업회는 한국 기독교선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사업계획에 선교기념탑 건립(인천), 순교자기념관 건립(용인), 선교기념관 건립(서울, 양화진), 병원설립(실로암안과병원), 100주년 선교대회(여의도) 등 많은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외국인선교사들의 무덤이 있는 양화진 외국인묘지는 유서 깊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황폐한 쓰레기 더미에 지나지 않아,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고 한경직 목사님을 위시한 교계 지도자들은 양화진을 한국기독교의 성지로 만들어 이 땅에 묻히신 외국인 선교사들을 후대에 기념해야 한다는 뜻을 세우고 그곳에 "선교기념관"을 짓기로 결의하였던 것입니다.(별첨3-1982년 3월 20일에 세운 기념사업회 실행위원회 시행세칙 제2항, 별첨4-1982년 10월에 발행한 기념사업회 부로셔, 별첨5-1984년 1월 27일 제4차 정기총회 84년도 사업계획안)
그러나 당시 그 토지는 합법적으로 등재된 소유자가 없었으므로 건축에 어려움이 있는 터에, 서울지하철공사 토지수용에 따른 보상 문제 때문에 백방으로 토지소유를 합법화 하려던 당시 구미인회(대표 고 원일한 박사)가 외국단체로서의 토지 소유권 보전등기가 무산되자 이를 구제하기 위하여 기념사업회에 증여형식으로(별첨6-1985년 3월 2일 이사회 서면 결의서, 별첨6-1/ 1985년 3월 4일 증여증서 참조) 의제자백의 재판을 통하여 소유권을 이전하므로 서 (별첨7-서울민사지방법원 판결문, 소유권 이전 등기, 1985년 5월 8일) 그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양화진묘원의 유지 존속과 선교사들의 뜻을 기리기 위한 선교기념관 건립은 고 한경직 목사님의 간청을 따라 재계 인사 5인(정주영, 김우중, 박용학, 장치혁, 최태섭)등이 찬조한 7억 5천만(85년 당시 금액)원을 기반으로 착공하게 됩니다.
한국 기독교는 선교사들 중 가장 먼저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인천항에 첫 발을 디딘 1885년을 선교 원년으로 하는 ‘85년 원년설’과 황해도 소래에 자생으로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 1883년을 기념하는 ‘83년 원년설’의 중간 해인 1884년을 한국 기독교 선교 원년으로 말합니다. 그 해로부터 100주년이 되는 해, 곧 1984년을 기념하기 위해 1980년에 발족한 기념사업회는 20개 교단(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등)과 26개 기독단체(YMCA, YWCA, CBS 등)가 연합한 전무후무한 기독인들의 협의체입니다. 이 기념사업회의 초대 총재가 한경직 목사님(1992년 템플턴상수상자)이십니다. 기념사업회가 구상하고 추진한 34개의 사업은 방대하여 동원된 집행부 인원만도 수백 명에 이릅니다.
그 방대한 사업 중 하나인 양화진묘원의 정화사업 및 선교기념관 건립은 개신교 전 교파는 물론 진보, 보수 계파를 막론하고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이 함께 결단한 사업이었습니다. 비록 이 사업은 구미인회가 자구책으로 요청한 양화진묘원의 유지와 보존에서 출발하였지만, 기념사업회의 선교기념관 건립계획은 그들이 생각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기념사업회에서는 양화진묘원을 대한민국 기독교의 성지로 인식했기에 그에 상응하는 규모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기념사업회가 소유권 취득을 위해 증여의 형식을 빈 것은 오로지 적법한 방법으로 구미인회에 대한 절차상의 예의를 갖추기 위한 것이었을 뿐, 기념사업회가 무슨 재산상의 이득을 보기 위하여 이면으로 대가를 보상하면서까지 그 막중한 부담을 떠맡을 이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설령 양화진묘원의 토지가 국가에 귀속되고 묘원이 이장되거나 철거된다 하더라도 기념사업회는 그 토지를 소유할 이유가 전혀 없는 협의체이지만, 오로지 양화진묘원의 역사적 가치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한 소명감으로 이 사업을 감행한 것입니다. 이 땅의 기독교인들은 예수 사랑을 실천한 구한말 선교사들이 전해준 복음에 빚진 자들이라는 인식이 기본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당시 양화진묘원은 명목상 증여일 뿐, 실제로는 증여라기보다는 큰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선교기념관을 건립한 것이 구미인회의 재산상 증여에 보상키 위함이라는 추측은 옳지 않습니다. 게다가 양화진묘원을 등기하기 위해 명의만 차용한 구미인회에 기념사업회가 증여를 대가로 약속한 시설물이라는 일부 외국인들의 해석은 우리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온 해석입니다. 선교기념관은 양화진묘원에 묻힌 선교사님들의 뜻과 행적을 기리기 위한 건축물일 따름입니다.(별첨8-양화진시비/정연희 작)
양화진묘원은 묘지로 사용되는 한 아무 재산 가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소유권 보전등기가 되어있지 않은 묘지를 관리, 유지하는 것이 구미인회에는 큰 부담이었고 사실상 관리가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구미인회는 서울지하철공사로 인한 토지수용에서 경험했듯이 양화진 외국인묘지를 이전하려는 각계의 움직임에 대응하여 이 곳 묘지를 영구히 지켜 줄 것을 희망하여 기념사업회에 이 묘지를 재판의 절차를 거쳐 넘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념사업회는 소유권 보전등기가 되어있지 않은 묘지의 소유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판결을 통한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인식하여 재판을 통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침으로써 묘지를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 따라 당시 구미인회는 한국교회가 양화진의 짐을 떠맡고, 선교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선교기념관 까지 건축한다는 것에 대하여 기념사업회에 크게 감사하였습니다.
선교기념관의 설계개요는 1. 선교기념 자료전시, 2. 기념사업회 사무실, 3. 중소회의실, 4. 대강당, 5. 식당, 친교실 등이었는데, 대강당은 선교사추모예배 공간 등을 겸하도록 하였습니다. 동시에 당시 예배처소가 없어 여러 시설을 빌려 쓰던 주한외국인들의 예배처소로 활용하게 하는 방안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별첨9-1986년 7월에 작성된 '관리규정' 초안 참조)
선교기념관 건립계획이 실천되어 준공식(86년 10월 10일)을 계획 할 즈음인 86년 8월경 고 원일한 박사님이 고 한경직 당시 기념사업회 이사장님을 찾아와 주한 외국인 교회인 유니온교회가 선교기념관 전체를 교회용도로 쓰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집무실과 협의회 사무실을 선교기념관 1층에 두어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끝내고 이사 갈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원일한 박사님이 간청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당시 부 이사장이셨던 고 강원용 목사님을 위시한 많은 이사님들은 선교기념관을 원래의 건립 계획대로 활용하는 것이 마땅하며 "제3자인 서울유니온교회가 단독으로 사용하면 훗날에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구체적인 예를 들며 반대하였으나, 고 한경직 목사님의 무조건적 사랑의 설득으로 기념사업회는 선교기념관으로 자체 사무실을 이전하는 것을 유보하고, 잠정적으로 유니온교회가 선교기념관 전체를 예배처소로 사용하도록 허락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당시 고 원일한 박사님 등 일부 외국인들이 유니온교회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배려하는 차원이었지, 유니온교회에게 영구적으로 선교기념관을 사용하게 한다든가 묘지의 관리를 영구적으로 유니온교회에 맡긴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역사의 가치를 외면하고 한국교회의 뜻과 무관한 사용을 허가함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이에 대한 기념사업회와 구미인회의 입장에 큰 간극이 확인됩니다. 선교기념관 사용을 유니온교회에 허락하자 원일한 박사는 시설물 사용에 따른 그들의 자치적 요구사항을 정리한 문건을 보내 왔습니다.(별첨10-1986년 6월 유니온교회가 제안한 합의문) 그런데 그 요청의 수위는, 양화진묘역 존폐의 위기를 염려하여 기념사업회에 탄원하던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자신들이 지킬 수 없었던 한국 개신교의 성지를 역사적 소명의 대상으로 받아들인 기념사업회의 순수한 뜻과 노력이, 그들이 마땅히 누릴 권리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빚진 자를 자처한 기념사업회의 섬김의 태도가 본의 아니게 그런 상황을 야기한 것은 아닐까도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념사업회는 이 서면요구에 아무런 책임 있는 답변도 하지 않았습니다. 양화진묘역에 대한, 또 선교기념관에 대한 두 단체의 생각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여기서 확인됩니다. 기념사업회는 그들의 선조들에게 받은 은혜를 후손에게 갚아야 할 도리라 생각한 반면, 구미인회는 그것을 그들이 마땅히 누릴 권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기념사업회가 양화진을 성역화한 이후 유니온교회가 선교기념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그들 선조에게 감사하는 대한민국 교회의 뜻을 담아 이제부터는 성역을 성역답게 관리하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기념사업회의 대의와는 달리 양화진묘원에는, 시신의 임의 불법 매장, 매장지의 불법예매(피터 언더우드의 예약묘지 포함한 37건 등), 살아있는 한국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석 등 남발되는 기념물 설치, 원 사료의 이동(묘비의 이동), 양화진을 영리사업에 이용하는 단체들이 단체관람객들을 대거 몰고 묘역을 훼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메가폰까지 사용하여 신성한 묘역을 장터로 만들어 놓는 등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구미인회와 유니온교회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자행되었습니다.
사실 유니온교회가 양화진을 관리해야한다는 주장은 지금의 유니온교회는 예전의 유니온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관리권을 운운할 자격이 없습니다. 처음 유니온교회는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 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대표하는 교회였고, 그 이후에도 상당 기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주일에 외국인과 내국인을 포함하여 불과 몇 십 명만이 출석하는, 그것도 외국인의 경우 특정국가에만 편향 된 지금의 유니온교회는, 한국에 거주하는 수십만 외국인의 대표성을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현재 서울에만도 수십개의 외국인교회가 있습니다. 20년 전 기념사업회가 유니온교회로 하여금 선교기념관을 사용토록 허가할 때에만 해도 양화진에 묻힌 선교사님들의 후손들이 교회를 운영하는 등, 양화진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유니온교회의 인적 구성원은, 양화진에 묻힌 분들과 국적은 같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단지 이름만 유니온교회를 이어받았다고 해서 양화진을 계속 유니온교회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역사성을 무시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양화진의 법적 소유자인 한국교회와 한국인이 한국 최고의 성지인 양화진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역사적이고도 시대적인 요청입니다. 우리 한국인이 빚진 대상은 이 땅을 사랑하시다가 양화진에 묻히신 선교사님들이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한국에 나와 있는 현재의 외국인들이 아닌 것입니다.
이후, 기념사업회의 세 가지 큰 사업, 즉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과 용인순교자기념관 그리고 인천의 선교기념탑만을 남기고 사업의 대부분을 개인과 단체에 이양하였고(인천선교기념탑은 후에 인천시에 기부체납), 2000년 한경직 목사님께서 소천 하시자 당시 부이사장이신 강원용 목사님(경동교회 원로목사)께서 이사장으로 기념사업회의 사업과 정신을 승계하시게 되었습니다.
기념사업회는 유니온교회에 양화진묘원과 선교기념관 관리를 위임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재정적 지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별첨11-기념사업회 재정 보고서) 유니온교회의 규모나 재정 상태로는 양화진묘원과 선교기념관을 유지, 관리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습니다.
기념사업회는 유니온교회의 관리 부실을 인내심을 갖고 관망해 오다가, 사용자들의 무분별한 처사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대의를 책임 있게 실천할 관리 주체를 세우기로 협의, 결정하여(별첨12-기념사업회 2003년 임시이사회의록) 2005년 7월 100주년기념교회(이하 기념교회)를 설립(별첨 13-창립예배 순서지)하고 양화진묘원의 모든 권리와 책임을 이 기념교회에 위임하여(별첨14-기념사업회 서신 05-015, 별첨14-1/기념사업회 서신05-017)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초대 담임목사로 청빙된 이재철 목사님이 2005년 7월 10일 창립예배를 드릴 때, 취임사에서 ‘양화진의 묘지기’가 되겠다고 밝힌 이유는 대한민국 최고의 성지인 양화진을 한국인이 관리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것이었고, 양화진의 법적 소유자인 기념사업회가 양화진을 책임질 한국인교회를 세우기로 한 동기 또한 이것인 것입니다.
양화진묘원은 한국 교회사의 시발점이 되는 명실상부한 ‘성지’입니다. 또 구한말 이 땅의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서양인들의 묘역이기도 합니다. 우리 근대역사의 보고(寶庫)인 이 묘원은 허망하게 사라질 존폐 위기에 자주 직면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가 그랬고, 한국전쟁 때는 한강변 최대 격전지였으며, 지하철공사로 인한 도로 변경 건설 계획에 포함되는가 하면, 무분별한 매장지 사용에 따라 민원을 유발한 것도 그 예입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선한 의지’가 이 묘원을 지키게 하여 오늘날까지 보존된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역사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현재의 법적 소유주인 기념사업회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선한 의지의 실천자로 초지일관할 것입니다. 따라서 양화진묘원을 재산상의 가치로만 판단하거나, 소중한 역사적 유산을 마치 사익을 위한 대상물로 해석하거나, 목적을 알 수 없는 분쟁의 시발점으로 여기는 항간의 분분한 주장에 대해 일일이 응대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오로지 하나님의 선한 의지의 간섭이 있을 것을 믿을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선교기념관은 양화진묘원을 영구히 보존하고, 양화진에 묻힌 외국선교사님들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한국교회와 이곳에 드나드는 모든 선교국 자손들의 추모 예배 및 그에 따른 활용 공간으로 건립된 것임을 밝혀 드립니다.
끝으로 1986년 당시 선교기념관 헌당식 때 발표된 “헌건사”를 인용합니다.
“우리 재단법인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선교기념관 건축과 외국인묘지공원 조성의 거룩하고도 거대한 일을 작정하고 건축위원으로 맡겨 주셨으므로 부르심에 감격하여 한국교회와 유지들이 기도와 정성을 다하여 협조하여 주셨으므로 모든 공사를 은혜 가운데 마치었습니다.
우리가 주를 위하여 건축한 이 선교기념관은 영원토록 주님의 것입니다. 본 건축위원회는 이 새로 지은 선교기념관 열쇠를 재단법인 책임자이신 이사장님께 드리오니 하나님을 예배하며 많은 심령을 구원하고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크게 이바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빕니다. 1986년 10월 10“ (별첨15-헌건사 당시 사본-현재도 그 열쇠는 기념사업회 사무실에 보관중임)
이제 1980년 초부터 위 기념사업회의 모든 사업에 참여하여 이 모든 것을 목격하고 진행한 우리들이 80, 90세를 넘어 100세를 바라보면서, 당시 20대 청년이었거나 더 어렸고 또 이곳에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였던 소수 외국인들이 왜곡된 시각과 무리한 해석으로 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의 사업을 마치 사사로운 이권이 있었던 사업으로 평가하며 자신들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함을 보고 일일이 응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다가 진실이 호도됨을 도저히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서 이 사실 확인서를 역사 앞에 남기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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