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에서 유배생활 다시 시작
“내 님믈 그리자와 우니다니
산 접동새(와) 난 이슷하요이다
아니시며 거츠르신 달 아으
잔월효성이 아라시리이다
넉시라도 님은 한대 녀져라 아으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과도 허물도 천만 업소이다
말힛 마리신뎌
살읏븐뎌 아으
니미 나랄 하마 니자시니잇가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제가 연평도에 있으면서 가끔씩 마음 속으로 되뇌이던 고려가요입니다. 우연히도 이 가요를 지은 분의 고향이 바로 제 고향인 부산 동래입니다. 저는 그렇게 연평도를 떠나 오는 날까지 연평도가 나의 유배지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연평도를 떠나는 날 배 터까지 나와서 눈물을 흘리시던 그러면서 이래서 목사님에게 정을 안 줄려고 하셨다는 나이 드신 권사님과 집사님 그리고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안아 주면서 가슴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리고 배가 떠나는 순간까지 갑판 위에서 손을 흔들면서 헤어짐을 섭섭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배지를 떠난다는 마음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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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서의 유배생활은 시작되었다
수원에서 하루를 자고 연평도에서 매달 첫날은 금식을 하는 날로 정했었기에 기도원에 가서 하루를 금식하고 다음 날 서울로 내려 왔습니다. 기도원에서 내려 오면서 그리고 서울 거리를 거닐면서 그리고 밤에 수원으로 오는 기차의 차창으로 밖을 바라 보면서 제가 지금까지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나의 유배 생활이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유배 생활의 시작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렴 그렇지 유배가 그리 짧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유배 생활을 위한 훈련을 유배로 착각했으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직도 얼마나 덜 떨어진 저이겠습니까? 위의 고려 가요를 지은 과정(瓜亭) 정서(鄭敍) 선생의 유배 생활이 거의 20년이었고,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 생활이 18년이었다면, 18개월 가지고 유배 운운하는 것도 참으로 남부끄럽고 우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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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연평도에서의 18개월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이 세상에서의 저의 유배를 위한 아주 소중하고도 귀한 훈련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벽기도를 하지 않던 저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의 유배 생활을 이기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기도 훈련을 위해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새벽 기도를 준비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정오와 저녁 9시에도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도록 훈련을 시키셨으며, TV를 보지 않는 대신에 말씀 읽기를 통하여 진정한 위로와 힘과 기쁨과 희망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가 틀렸었다" 번역을 통해 "나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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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 끈적한 각종의 육체와 안목의 욕망과 탐욕과 폭력, 꿈을 빙자한 인간적 야망과 모든 판단의 자기 중심성, 그리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그리고 그 모든 인간의 위선과 죄악을 손쉽게 감출 수 있는 익명성과 개인주의라는 아주 편리하고도 유용한(?) 무기로 무장된 현대 사회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칫하면 우리는 이 세상이 주는 그 찬란한 유혹에 언제나 넘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그리고 말씀을 선포하기 전에 무엇보다도 사탄이 주는 그러한 끈적끈적한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시면서 유배자처럼 이 세상을 사셨고, 유배자로서 이 세상을 마치셨으며 그 유배 생활을 끝내고 부활하심으로서 영원한 본향으로 귀환하셨으며, 그 길을 사도들과 초대 그리스도인들과 수도자들과 믿음의 선배들이 예수님을 따라 이 세상를 유배자로 사셨고 순교자로, 유배자로 혹은 전적인 헌신자로 이 땅의 생을 마감하고 영원한 본향으로 귀환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 뿐만 아니라 아미시와 부르더호프 공동체와 같은 믿음의 형제들은 오늘도 바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바울 사도가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로마서 12장 2절)‘하면서 유배자로서 주님의 명령에 따라 이 세상을 사랑하되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삶을 살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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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날의 저의 실패와 하나님의 엄중하고도 자비하신 채찍은 제가 이 세상에서 이러한 유배의 삶을 살지 않았음에 즉 어떠한 의미에서든 이 세상의 삶을 전부로 생각하고 그것에 집착하여 세상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에 그 원인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평도에서의 18개월은 유배 생활의 끝이 아니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이 세상에서의 유배 생활을 위한 귀한 연단과 훈련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연평도는 저에게 있어서 너무나 소중하고도 귀중한 호렙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배자의 운명, 군주에 달려있어
유배자에게 있어서 유배지와 유배 기간은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유배를 명령한 분에 의해서 유배지가 정해지고, 옮겨지기도 하고, 또한 유배에서 풀리기도 합니다. 또한 유배자에 있어서는 유배지가 그리고 유배 기간이 다른 사람의 유배지에 비해서 이렇다 저렇다고 말 할 자유는 그에게 있지 아니합니다. 그 모든 것은 유배를 결정한 군주의 손에 달려 있음이 바로 유배자의 운명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우리가 우리 삶의 주님으로 고백한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바로 이런 유배자로서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13장 14절의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살되 이 땅을 영구한 도성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또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주님께서 부르실 때 언제라도 ‘네’라고 응답할 수 있으며, 언제 어디로 가라고 하시든 순종하며 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그것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즉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삶이 아닐까요? 내가 내 삶의 주인이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성서에 나오는 믿음의 선조들은, 수도자들은, 그리고 우리가 따르고 싶고 존경하는 믿음의 선배들은 그 길을 갔기에 우리의 사표가 되고 위안이 됩니다.
아미시,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
아미시 사람들이 제도 교육을 8학년(우리식으로 하면 중학교 2학년)까지만 시키는 것도, 돈을 사랑함을 일만 악의 뿌리로 생각하면서 부해지는 것을 아주 위험한 일로 생각하는 것도, 자동차와 전기를 멀리하려고 하는 것도, 그리고 교회를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의 모임으로 생각하는 것도, 총을 절대로 거부하고, 무조건인 용서를 실천하는 것도 그들의 의로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이 땅을 유배자로서 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연평도를 떠나면서야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메가 처치냐 작은 교회냐에 대한 논쟁도, 목회자 중심적 교회나 평신도 중심의 회중 교회냐에 논의도 저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게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의 대부분이 목회자든 평신도이든 이 땅을 유배자로서 살기 보다는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철저히 이 땅의 논리와 가치를 축복으로 받아 들이는 이 땅의 백성으로 살고, 죽어서는 덤으로 천국까지 가겠다는 꿩 먹고 알 먹고 신앙과 다를 바 없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대형교회, 소형교회 중요하지 않다...사랑의 교회 짓는 것 중요하지 않아
문제는 대형 교회나 소형 교회냐가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짜리 교회를 짓는 것이 죄냐 아니냐가 아닌 것 같습니다. 대형 교회든 소형 교회이든 진정으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삶이 유배자로서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런 정신과 믿음에 따라 산다면 그것이 무엇 중요하겠습니까? 그러한 의미에서 사랑의 교회가 2500억원 들여서 새로운 교회를 짓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만일 그들이 이 땅을 진정한 유배자로서의 삶을 산다면 말입니다.
예수님은 헤롯이 지은 화려한 성전을 가르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을 하시기도 했으며, 성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한 헌금 강요(면죄부 판매)가 종교 개혁의 출발점이기도 했지만, 그 베드로 성당을 통하여 주님은 영광을 받으시기도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제는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에서 예배드리는 자들의 삶의 자세 아닐까요? 이 땅의 유배자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는 그러한 삶 말입니다.
추신: 연평도에 있을 때 저를 일부러 찾아 온 목회자는 딱 2명이 있었고, 우리 교단 목회자는 황규학 목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연평도는 큰 맘이 없으면 오기가 힘든 곳이기에 그리고 너무나 외로움을 타던 때이었기에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황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부탁을 듣고 에클레시안에 글을 쓰기로 약속을 했었습니다.
물론 에클레시안의 모든 편집 방향이 저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에클레시안이 바른 길을 가는데 그리고 주님의 쓰임을 받는 매체가 되는데 저의 글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연평도까지 찾아 오신 황목사님의 정성을 보아서도 협조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김재일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글을 2 주에 한 번씩 연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먹을거리와 라이프 스타일과 건강에 관한 글을 김재일의 영성과 건강이라는 제목으로 매 주 연재하고자 합니다. 독자 재현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과 사랑과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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