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성교회, 감리교 세상법정으로 간 것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
광성교회 이성곤목사측 지지신도들은 "예장 통합이 버리지 말아 달라"며 유인물을 뿌렸다. 그들은 김창인목사측 교인들이 수천명의 양들을 버렸다며, 예장통합 교단이 수용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별도의 교회를 설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요지라며 자신들의 예배현장을 방문할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총대들에게 교회가 하나되도록 힘써 달라고 했고, "자신들은 하나될 수만 있다면 어떠한 형태라도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창인 목사가 이성곤목사를 내친 것을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한 것으로 이해했고 기꺼이 용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한 총대는 이러한 시각을 갖고 있는 한, 이성곤목사의 복귀는 더 힘들 것이고, 총회재판부가 이목사의 면직을 철회하지 않는 한, 교인들의 복귀는 몰라도 이성곤목사의 복귀는 불투명해 하나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현재로서 파기환송되어 이목사측이 고등법원 재판에서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예장통합에서 이성곤목사의 복귀는 교단을 탈퇴하지 않는 한,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성곤목사를 담임목사로 하기 위해서는 일단 양측이 교인총회를 해서 교단을 탈퇴해야 하는데, 주도권을 예장통합 잔류측이 갖고 있는 상황에서 재적인원의 2/3이상 교단탈퇴는 사실상 어렵고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또다른 교인들의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소송이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양측 모두에게 부담이다. 그렇다고 용역을 또 동원하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현재로서 이성곤목사측이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이성곤목사의 면직출교의 권징상태를 풀지 못한다면 오아시스없는 사막이요, 앙꼬없는 찐빵일 것이다. 더군다나 이성곤목사측의 아킬레스건은 이탈이 무효로 결정된 상태에서 예장통합에 복귀하여 한번도 예장통합 교인으로서의 역할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여전히 이탈신도들끼리만 신앙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교인지위를 얻었지만 교단헌법상 교단에 복귀하지 않아 사실상 이탈자들이기 때문에 법원도 이러한 면을 어떻게 해석할는지 미지수이다. 예장통합 헌법이 요구하는 신도들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고, 6개월이상 떠나면 교단헌법에 실종교인 처리된 상태이기 때문에 실종교인으로서의 지위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법원이 자칫 잘못하다가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가치의 문제는 명확한 한계가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판단하는 것이 기준이다. 이번 대법원 판례가 2006. 4. 20.의 판례와 모순된 판례를 낸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전주서문교회와 광성교회에 대한 판결은 불일치하고 모순된 판결을 내렸다. 감리교단의 판결만 보더라도 불일치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 어떤 때는 잔류측을 유리하게 판결하고, 어떤 때는 이탈측을 유리하게 판결한다.
잔류측을 유리하게 판단할 때는 '교단탈퇴는 곧 교회탈퇴'라고 판결을 내리고, 이탈측의 주장을 받아들일 때는 '교단탈퇴는 교회탈퇴가 아니라'고 조삼모사 판결을 내린다. 서문교회의 판결을 보면, 은퇴한 목사가 당회결의 없이 개최된 교인총회에서 사회를 보고 장로불신임결의를 한 것에 고등법원은 교단헌법에 맞지 않는 소집절차하자가 있다고 판단한 반면, 대법원은 사회정의 관념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 한, 소집절차의 하자가 있어도 괜잖다고 했다. 이헌령 비헌령 판단이고, 아침에는 세개, 밤에는 네개가 되는 조삼모사식 판결이다. 대법원이라는 사법부의 권위로 교회는 난도질 당하는 것이다. 악은 법적인 권위로 가려지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성경의 정신을 갖고 해결하면 되는데 어리석다 보니 사법부의 결정을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비상식적인 것은 입법부도 마찬가지이다.
조두순, 김길태와 관련한 전자팔찌의 30년 소급적용에 대해서도 이미 국회에서 입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형사법개정의 도마위에 올랐다. 남비근성에 의한 국회의원들의 감정적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개정이 될 전망이다. 사법부의 권위와 입법부의 권위의 횡포로 어설프게 만들어진 판례와 법들이 모순과 비합리성을 띠고 다시 개정되는 것이다.
이는 법리가 아니라 권위기관의 권위로 법이 만들어지고, 사람을 목적으로 보지않고 수단으로 보고, 법을 수단으로 보지않고 목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양심보다는 정치적 의도에 입각해서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 입법부와 법조계의 현실이다. 증거가 빈약하면 피고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경찰이나 검찰편에서 공권력을 우선한 판결을 하고, 사실이 없으면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데 가치와 경험을 통한 추정적 판단을 하고있는 것이 오늘날 법조계의 현실이다. 그리고 돈이 없는 자는 늘 불리하게 판결이 나온다. 그러면서 법적 정당성을 가진 세치 혀들은 때에 따라 스펀변호사와 연결되어 있다. 이는 검사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권위기관이 사람을 목적으로 보지않고 수단으로 보는 한, 사람들은 늘 인권침해의 대상에 오르고, 법정과 검찰, 국회의원들만 의로운 판단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나라가 후진국인 것이다. 사람을 수단으로, 법을 목적으로 대하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감리교, 광성교회의 사태는 이성곤, 김창인 목사 누구를 나무랄 것도 없이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판사들의 혀에 달려있다. 그들은 판사들의 세치 혀를 하나님의 혀로 착각하게 되고, 세치 혀의 결정을 갖고 상대편을 도마위에 올려 난도질하고, 교회밖으로 쫏아내고, 김정일보다 더 나쁜 사단, 악마로 취급해 버리는 것이다. 자신들의 교주를 반대하는 사람은 악마, 사단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에 대해서는 고문하고 린치도 가하고, 용역을 끌어들여 과감하게 폭행을 일삼고, 펜스를 높이 치고, 남의 헌금을 절도하고, 상대방의 기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판사들의 세치 혀의 결정을 하나님의 결정보다 더 크게 판단하여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을 각오하고 형제에게 라가라고 과감하게 말하고, 상대방에 대해서 출입금지를 과감하게 요청하여 판사들의 세치혀의 결정을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결정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판사들은 건조한 법만 공부하고 암송해왔기 때문에 가치를 토대로 한 인문과학 및 분석과 증거를 기본으로 하는 자연과학적 사고 및 사랑과 양보가 토대가 된 신앙적인 사고를 잘하지 못하는 경향이 종종 있고, 때에 따라서는 증거나 법리의 끊이 짧으면 권위를 갖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고, 일반 사람들도 생각하기 어려운 반상식적인 판결을 낼 때도 있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비양심적인 판사들의 세치 혀가 있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상식이 떨어지는 나이 어린 판사들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법복을 입었다고 해서 증거보다는 추정, 사실보다는 가치, 법리보다는 권위, 양심보다는 비상식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법은 하나의 도구인데 이를 목적으로 보는 어리석은 판사들이 간혹 있기 때문이다. 감리교와 광성교회는 판사들의 세치 혀의 결정에 목마른 한, 판사들의 세치 혀에 놀아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판사들의 세치 혀의 결정만 내려지만 상대방을 과감하게 몰아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는 상관이 없다. 그 결정은 재산상의 효력이나 실제적인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거나 손에 잡히지 않는 말씀은 말씀으로 볼 수 없고, 인격체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판사가 하나님이 되고, 수단의 법이 목적으로 변하고, 보이지 않는 재물보다 보이는 재물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참재물이 되고, 평수가 매겨지지 않는 어설픈 하나님 나라보다 평수가 분명하게 매겨지는 교회의 대지가 하나님 나라이며, 가난한 신도에게 갖다가 주느니, 세치 혀의 결정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진리가 아니라 돈에 따라서 움직이는 카멜리온 변호사의 세치 혀를 사는 것이 더 낫고 보람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감리교, 광성교인들은 판사의 판결을 하나님의 판결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판사의 세치 혀에만 목을 달고 있다.그리스도의 정신, 성경의 정신은 온데 간 데 없다. 그들은 해태의 혀를 필요로 한다면 카멜리온의 혀에게 과감하게 투자한다. 성경의 말씀보다 애송이 판사들의 판결을 더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이웃 사랑의 정신이 배제되고, 교주목사와 세치 혀의 판사를 하나님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포기해도 목사와 판사는 포기하지 못하고, 성경의 정신은 포기해도 판사의 세치 혀의 결정은 포기하지 못한다. 법 앞에 신앙은 온데 간 데 없고 판사의 혀에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져버린다.
상대방을 죽인다면 하나님의 능력없는 말씀보다 당장 효력을 발하는 판사의 합법적인 세치 혀가 필요하다. 세치 혀의 결정을 느끼기 위해 소송부터 하고 마는 것이 그들이다. 내가 죽어서 상대방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죽여서 내가 사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한국식 기독교이다. 하나님보다는 목사를, 목사보다는 판사를, 성경보다는 법을, 교인의 지위보다는 당회의 권위를 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판사와 법을 하나님이상 경외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성도가 판단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감리교도나 광성교회는 스스로는 타협이 되지를 않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신앙적 능력도 상실하고 말았다. 계속 소송이고, 용역을 고용하고 자신들의 주장만 남에게 강요하고 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이 없다. "개야 짖어라 기차는 떠난다" 이다. 그러한 사람들의 행위는 상대의 기물을 파괴하고 폭행하고, 절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인 형제는 포기하되 돌위에 돌하나도 남지 않을 수백억짜리 건물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양측이 교주목사를 버리지 않는 한, 판사의 세치 혀의 결정을 지나치게 기대하는 한, 교회는 하나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양측이 차라리 법이든 물리력으로든 피터지게 싸워서 이기는 사람이 교회당을 차지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의 정당성은 판사의 세치 혀이다.
판사의 세치 혀의 법적 판단이 그들이 수십년 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성경의 신앙적 판단보다 앞선다고 생각하고 있다. 신도들의 사랑과 타협, 용서 배려에 대한 하나님의 혀의 판단보다 비신앙적인 판사들의 세치 혀의 판단을 더 우선으로 생각하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또한 교회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하나님을 끌어들여 다른 형제를 핍박하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하고 있다. 따라서 광성교회, 감리교의 문제는 처음부터 세상법정으로 가져간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이삭처럼 세상법정으로 가지 않고 그냥 달라는 자에게 주었더라면 지금쯤 하나님이 샘물 한개를 더 주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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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총대들에게 교회가 하나되도록 힘써 달라고 했고, "자신들은 하나될 수만 있다면 어떠한 형태라도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창인 목사가 이성곤목사를 내친 것을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한 것으로 이해했고 기꺼이 용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한 총대는 이러한 시각을 갖고 있는 한, 이성곤목사의 복귀는 더 힘들 것이고, 총회재판부가 이목사의 면직을 철회하지 않는 한, 교인들의 복귀는 몰라도 이성곤목사의 복귀는 불투명해 하나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현재로서 파기환송되어 이목사측이 고등법원 재판에서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예장통합에서 이성곤목사의 복귀는 교단을 탈퇴하지 않는 한,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성곤목사를 담임목사로 하기 위해서는 일단 양측이 교인총회를 해서 교단을 탈퇴해야 하는데, 주도권을 예장통합 잔류측이 갖고 있는 상황에서 재적인원의 2/3이상 교단탈퇴는 사실상 어렵고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또다른 교인들의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소송이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양측 모두에게 부담이다. 그렇다고 용역을 또 동원하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현재로서 이성곤목사측이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이성곤목사의 면직출교의 권징상태를 풀지 못한다면 오아시스없는 사막이요, 앙꼬없는 찐빵일 것이다. 더군다나 이성곤목사측의 아킬레스건은 이탈이 무효로 결정된 상태에서 예장통합에 복귀하여 한번도 예장통합 교인으로서의 역할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여전히 이탈신도들끼리만 신앙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교인지위를 얻었지만 교단헌법상 교단에 복귀하지 않아 사실상 이탈자들이기 때문에 법원도 이러한 면을 어떻게 해석할는지 미지수이다. 예장통합 헌법이 요구하는 신도들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고, 6개월이상 떠나면 교단헌법에 실종교인 처리된 상태이기 때문에 실종교인으로서의 지위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법원이 자칫 잘못하다가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가치의 문제는 명확한 한계가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판단하는 것이 기준이다. 이번 대법원 판례가 2006. 4. 20.의 판례와 모순된 판례를 낸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전주서문교회와 광성교회에 대한 판결은 불일치하고 모순된 판결을 내렸다. 감리교단의 판결만 보더라도 불일치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 어떤 때는 잔류측을 유리하게 판결하고, 어떤 때는 이탈측을 유리하게 판결한다.
잔류측을 유리하게 판단할 때는 '교단탈퇴는 곧 교회탈퇴'라고 판결을 내리고, 이탈측의 주장을 받아들일 때는 '교단탈퇴는 교회탈퇴가 아니라'고 조삼모사 판결을 내린다. 서문교회의 판결을 보면, 은퇴한 목사가 당회결의 없이 개최된 교인총회에서 사회를 보고 장로불신임결의를 한 것에 고등법원은 교단헌법에 맞지 않는 소집절차하자가 있다고 판단한 반면, 대법원은 사회정의 관념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 한, 소집절차의 하자가 있어도 괜잖다고 했다. 이헌령 비헌령 판단이고, 아침에는 세개, 밤에는 네개가 되는 조삼모사식 판결이다. 대법원이라는 사법부의 권위로 교회는 난도질 당하는 것이다. 악은 법적인 권위로 가려지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성경의 정신을 갖고 해결하면 되는데 어리석다 보니 사법부의 결정을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비상식적인 것은 입법부도 마찬가지이다.
조두순, 김길태와 관련한 전자팔찌의 30년 소급적용에 대해서도 이미 국회에서 입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형사법개정의 도마위에 올랐다. 남비근성에 의한 국회의원들의 감정적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개정이 될 전망이다. 사법부의 권위와 입법부의 권위의 횡포로 어설프게 만들어진 판례와 법들이 모순과 비합리성을 띠고 다시 개정되는 것이다.
이는 법리가 아니라 권위기관의 권위로 법이 만들어지고, 사람을 목적으로 보지않고 수단으로 보고, 법을 수단으로 보지않고 목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양심보다는 정치적 의도에 입각해서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 입법부와 법조계의 현실이다. 증거가 빈약하면 피고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경찰이나 검찰편에서 공권력을 우선한 판결을 하고, 사실이 없으면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데 가치와 경험을 통한 추정적 판단을 하고있는 것이 오늘날 법조계의 현실이다. 그리고 돈이 없는 자는 늘 불리하게 판결이 나온다. 그러면서 법적 정당성을 가진 세치 혀들은 때에 따라 스펀변호사와 연결되어 있다. 이는 검사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권위기관이 사람을 목적으로 보지않고 수단으로 보는 한, 사람들은 늘 인권침해의 대상에 오르고, 법정과 검찰, 국회의원들만 의로운 판단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나라가 후진국인 것이다. 사람을 수단으로, 법을 목적으로 대하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감리교, 광성교회의 사태는 이성곤, 김창인 목사 누구를 나무랄 것도 없이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판사들의 혀에 달려있다. 그들은 판사들의 세치 혀를 하나님의 혀로 착각하게 되고, 세치 혀의 결정을 갖고 상대편을 도마위에 올려 난도질하고, 교회밖으로 쫏아내고, 김정일보다 더 나쁜 사단, 악마로 취급해 버리는 것이다. 자신들의 교주를 반대하는 사람은 악마, 사단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에 대해서는 고문하고 린치도 가하고, 용역을 끌어들여 과감하게 폭행을 일삼고, 펜스를 높이 치고, 남의 헌금을 절도하고, 상대방의 기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판사들의 세치 혀의 결정을 하나님의 결정보다 더 크게 판단하여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을 각오하고 형제에게 라가라고 과감하게 말하고, 상대방에 대해서 출입금지를 과감하게 요청하여 판사들의 세치혀의 결정을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결정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판사들은 건조한 법만 공부하고 암송해왔기 때문에 가치를 토대로 한 인문과학 및 분석과 증거를 기본으로 하는 자연과학적 사고 및 사랑과 양보가 토대가 된 신앙적인 사고를 잘하지 못하는 경향이 종종 있고, 때에 따라서는 증거나 법리의 끊이 짧으면 권위를 갖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고, 일반 사람들도 생각하기 어려운 반상식적인 판결을 낼 때도 있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비양심적인 판사들의 세치 혀가 있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상식이 떨어지는 나이 어린 판사들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법복을 입었다고 해서 증거보다는 추정, 사실보다는 가치, 법리보다는 권위, 양심보다는 비상식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법은 하나의 도구인데 이를 목적으로 보는 어리석은 판사들이 간혹 있기 때문이다. 감리교와 광성교회는 판사들의 세치 혀의 결정에 목마른 한, 판사들의 세치 혀에 놀아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판사들의 세치 혀의 결정만 내려지만 상대방을 과감하게 몰아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는 상관이 없다. 그 결정은 재산상의 효력이나 실제적인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거나 손에 잡히지 않는 말씀은 말씀으로 볼 수 없고, 인격체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판사가 하나님이 되고, 수단의 법이 목적으로 변하고, 보이지 않는 재물보다 보이는 재물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참재물이 되고, 평수가 매겨지지 않는 어설픈 하나님 나라보다 평수가 분명하게 매겨지는 교회의 대지가 하나님 나라이며, 가난한 신도에게 갖다가 주느니, 세치 혀의 결정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진리가 아니라 돈에 따라서 움직이는 카멜리온 변호사의 세치 혀를 사는 것이 더 낫고 보람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감리교, 광성교인들은 판사의 판결을 하나님의 판결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판사의 세치 혀에만 목을 달고 있다.그리스도의 정신, 성경의 정신은 온데 간 데 없다. 그들은 해태의 혀를 필요로 한다면 카멜리온의 혀에게 과감하게 투자한다. 성경의 말씀보다 애송이 판사들의 판결을 더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이웃 사랑의 정신이 배제되고, 교주목사와 세치 혀의 판사를 하나님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포기해도 목사와 판사는 포기하지 못하고, 성경의 정신은 포기해도 판사의 세치 혀의 결정은 포기하지 못한다. 법 앞에 신앙은 온데 간 데 없고 판사의 혀에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져버린다.
상대방을 죽인다면 하나님의 능력없는 말씀보다 당장 효력을 발하는 판사의 합법적인 세치 혀가 필요하다. 세치 혀의 결정을 느끼기 위해 소송부터 하고 마는 것이 그들이다. 내가 죽어서 상대방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죽여서 내가 사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한국식 기독교이다. 하나님보다는 목사를, 목사보다는 판사를, 성경보다는 법을, 교인의 지위보다는 당회의 권위를 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판사와 법을 하나님이상 경외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성도가 판단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감리교도나 광성교회는 스스로는 타협이 되지를 않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신앙적 능력도 상실하고 말았다. 계속 소송이고, 용역을 고용하고 자신들의 주장만 남에게 강요하고 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이 없다. "개야 짖어라 기차는 떠난다" 이다. 그러한 사람들의 행위는 상대의 기물을 파괴하고 폭행하고, 절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인 형제는 포기하되 돌위에 돌하나도 남지 않을 수백억짜리 건물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양측이 교주목사를 버리지 않는 한, 판사의 세치 혀의 결정을 지나치게 기대하는 한, 교회는 하나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양측이 차라리 법이든 물리력으로든 피터지게 싸워서 이기는 사람이 교회당을 차지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의 정당성은 판사의 세치 혀이다.
판사의 세치 혀의 법적 판단이 그들이 수십년 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성경의 신앙적 판단보다 앞선다고 생각하고 있다. 신도들의 사랑과 타협, 용서 배려에 대한 하나님의 혀의 판단보다 비신앙적인 판사들의 세치 혀의 판단을 더 우선으로 생각하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또한 교회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하나님을 끌어들여 다른 형제를 핍박하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하고 있다. 따라서 광성교회, 감리교의 문제는 처음부터 세상법정으로 가져간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이삭처럼 세상법정으로 가지 않고 그냥 달라는 자에게 주었더라면 지금쯤 하나님이 샘물 한개를 더 주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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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합동측 게시판에 광성교인들이 난리 치던때가 있었는데,
이제와서는 완전히 부정하는 군요
애초부터 통합이였다는 듯이
독립교단도, 합동도 되지 못하니 다시 통합으로 들어오게 해달라 ?!?!?!
합동에 들어갔다고 감사예배 드렸던 적도 있었는데 말이죠 ...
역시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늘 주장하는 군요... -
결사해지하여 이목사님결사해지하고 독립시키는것이다!
계속분란만계속돼면 추수꾼의 아지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