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험을 통한 마리아의 월경잉태설 주장해서는 안돼
최목사는 2009. 11. 17.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필라 한인교회에서 예수님은 마리아의 피를 통해서 태어났다고 했다. 최목사는 마리아의 피와 상관없이 태어났다고 하면 예수님이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목사의 주요 주장은 성령의 잉태를 통해서 예수님이 태어났지만 육신적으로는 마리아의 피를 통해서 태어났다고 하는 주장이다. 그래서 자신은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성령의 역사는 있었지만 예수님도 인간인 만큼, 인간 마리아의 자연스런 현상 을 통해서 태어났다는 주장이다. 만일 보통 인간이 태어나듯 여성 마리아의 월경을 통한 탄생이 아니라면 굳이 여성을 통해서 태어날 필요는 없고 구약의 천사들이 내려와서 제사장과 밥을 먹듯이, 예수님도 하늘에서 바로 내려오면 된다고 하였다.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난 이상, 예수도 다른 사람들처럼 여성의 자연스런 현상을 통한 탄생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박윤식목사가 예수는 월경없이 태어났다고 하므로, 월경을 통해서 태어났다고 하는 주장일 뿐 동정녀 탄생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최목사는 "예수님이 월경없이 태어났다고 하면 예수님의 인성이 부정된다"고 까지 했고, "예수님은 마리아의 월경을 통해 피를 먹고 성장하고 또 태어나신 것"이라고 까지 하여 태아가 어미의 피를 마신 것으로 까지 나아갔다.
최목사의 논리적인 문제점
여기서 최목사의 논리적인 문제점은 예수님이 월경없이 태어났다고 해도 그의 인성은 부정된다는 논리는 하자가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월경을 통해서 태어났다고 하는 증거를 대야한다. 최목사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데이비드 흄은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로서 칸트의 독단의 잠을 깨운 사람이기도 하다. 데이비드흄은 그동안 있어왔던 경험론철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그동안은 인과율에 입각하여 경험론이 대두되었다는 것이다. A라는 원인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B라는 결과가 있다는 것이다.
생성인과율과 계기인과율
인과론에는 생성인과론(generative theory of casuality)과 계기인과율(succession of casuality)이 있다. 생성인과율은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인과율로 원인은 결과를 발생케 하는 능력으로 간주되며 그 결과와 연결되어 있다. 계기인과율은 원인은 보통 어떤 상태나 사건의 앞에 오는 것으로 그 뒤에 그런 결과가 오리라고 기대하는 심리학적 경향을 획득하는 까닭에 그것에 대한 원인이라고 불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생성인과율에서 보면 원인과 결과는 서로 독립적이 아니며 결과는 원인 없이 일어날 수 없다. 계기인과율에서는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려는 것은 한 종류의 사건과 다른 종류의 사건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성인과율에는 여러가지 약점이 있다.
이처럼 우리가 아는 인과율은 일반적으로 원인과 결과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A가 있으면 B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즉 아침에 해가 떴기 때문에 저녁에 해가 지는 것이다. 데이비드 흄은 이러한 자연현상은 경험을 통해 인과법칙이 마련된 것으로 사실상 고정화 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흄은 이러한 일반적인 생성인과율에 대해서 그 인과율은 생성인과율이 아니라 사실은 계기 인과율이라고 비판한다. 즉 아침에 해가 뜨면 저녁에 해가 지는 현상을 경험하다보니 심리학적으로 기대하게 되는 것이지, 반드시 경험하지않은 내일도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인과율은 귀납적 법칙으로서 과거부터 오늘까지 경험한 것을 내일까지 연결하려고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인과율은 경험론에 입각해서 형성된 이론이다.
쉽게 말하면 번개와 천둥이 치면 비가오는 것을 경험해왔기 때문에 경험상으로 볼 때, 번개와 천둥은 비를 내리게 하는 기대를 한다는 것이다. 흄은 이러한 기대는 그런식으로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지, 경험을 하지 않은 이상 내일은 청둥번개가 쳐도 비가 안올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내일은 경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렇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심리학적인 성향만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떴다고 해서 내일 해가 안 뜰수도 있다
오늘까지 경험했다고 해서, 내일도 반드시 해가 뜨리라는 보장은 없고, 번개와 천둥이 친다고 해서 경험을 하지않은 이상, 비가온다고 확실히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흄의 논리에서 임마누엘 칸트는 독단의 잠을 깨었던 것이다. 경험론의 명백한 한계를흄이 지적했던 것이다.
이제까지 자리잡은 영국의 경험론이 흄의 논리에 침몰하게 되었다. 임마누엘 칸트는 반드시 매사가 경험적인 것만은 아니라며 경험이전에 주어지는 시간과 공간같은 선험성을 들고 나왔다. 경험하지 않아도 경험 이전에 미리 주어진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의 모든 인식은 경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경험은 한계에 부닥치고 말았다. 오늘의 경험이 내일의 결과가 반드시 똑같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칸트는 기존의 경험론대신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선험(경험이전의 것)론을 주장한 것이다.
선험의 예
예를 들면, 모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 이것이 과연 경험에 의한 인식일까요? 우리가 삼각형을 수십개 수백개 그려보고 모든 각의 합을 구해봐서 '아,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구나' 라고 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필연적인 인식, 보편적인 인식은 경험에서 나올 수가 없고 선험적으로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경험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공간이라는 형식과 사고의 범주를 통해서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신의 모습으로 온 것 자체는 경험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세례요한과, 천사들이 온 것과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또한 여인에서 경수가 회복되어 이삭, 세례요한, 사무엘이 태어난 것과도 전혀 다른 것이다.
이는 이제까지 우리가 알았던 경험에 의한 생성인과율에 따라 해결될 수 있는 법칙이 아닌 것이다. 이럴 경우, 데이비드흄의 허무주의적 경험론이 맞는 것이다. 즉 생성인과율을 갖고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다.
칸트, 경험의 세계에서 벗어나, 선험의 세계를 창조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여 칸트는 당시 진리라고 확신했던 경험론의 독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험을 하지 않은 선험적인 시공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사물을 보고, 범주라는 형식을 통해서 인간은 사유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모두 다 경험으로 알 수 없는 이미 경험이전에 주어진 선험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전에는 경험을 통해서 사물, 대상을 인식하였는데 이제는 축이 내가 되어 내게 주어져 있는 경험이전의 선험적인 인식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것이다. 전에는 경험을 통해서 사물이 보여졌는데 이제는 경험없이 선험적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다. 철학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경험을 통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전의 신앙의 영역으로 우리가 하나님이 만세전부터 택하신 바 되어 선험적인 상태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전도나 간증, 경험을 통하여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는 신앙적인 형식과 내용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최삼경목사의 마리아 월경잉태설의 한계도 여기에 있다. 최목사는 엘리사벳, 사라 등의 경험을 통하여 마리아를 해석하고 있다. 이미 경수가 끊어진 자들에게 하나님이 경수를 회복시켜주어서 늦은 나이에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듯이, 하나님이 마리아의 경수를 통해서 예수를 탄생시켰다는 논리이다. 최목사는 구약의 경험을 통해서 보니, 예수도 인간인 만큼, 이삭과 세례요한과 같은 전철을 밟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학적인 인과율이 계기 인과율이다. 이삭과 세례요한이 여성의 경수를 통해서 태어났듯이 예수도 마리아의 경수를 통해서 태어났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이 경험의 독단론이다. 어제의 경험이 오늘의 경험, 내일의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심리학적인 인과율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마리아의 월경을 해석하는 것은 신앙의 초월적인 영역을 배제시키는 것이다.
최목사, 계기인과율에서 벗어나야
이제 최목사는 경험을 통한 심리학적인 인과율에서 깨어나야 한다. 예수는 이삭이나 세례요한과 달리 여성의 경수를 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동정녀를 통한 성령의 잉태이다. 성서역사에서 나이든 여성에게 경수를 회복시켜 아이를 잉태케 해준 사실은 있지만 동정녀를 통한 잉태는 없었다. 그러므로 나이든 여성의 끊어진 경수의 회복의 경험을 갖고 처녀의 잉태경험을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끊어진 나이든 여성에게 경수를 회복시켜서 아이를 잉태하게 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이지만 성령의 잉태는 아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신의 아들의 탄생은 경수를 회복시킨 잉태가 아니라 위에서부터 수직적으로 임한 성령의 잉태이다. 성령의 잉태는 그 어떤 인간의 도움이나 조건을 불허한다.
성령의 역사는 인간의 경험과 방법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예수도 인성이 있지만 인간과 반드시 같은 인성이 아니었다. 그는 탄생도 죽음도 인간의 인성과 질적으로 다른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목사가 이단으로 명명한 박윤식목사의 말이 오히려 성경적
존 칼빈의 말대로 성경이 가는데 까지 가야하고, 머무는 데에서는 멈추어야 한다. 박윤식목사의 말대로 예수님은 월경없이도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탄생경험을 신의 탄생의 경험으로 연결시킬 수 없는 것이다. 신은 처녀에서 잉태했고 얼마든지 신(성부)의 힘으로 월경없이 태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월경없이 태어난다고 해서 그의 인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월경을 통해서 태어났다면 최목사가 명확하게 증거를 대야한다. 어설픈 경험지식이거나 인간의 탄생을 통해서 신의 탄생을 해석하려는 유추해석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처럼 최목사는 잘못된 인간탄생의 경험론갖고서 신의 탄생까지 해석하려고 하고있다. 즉 자신의 인과율이 계속 경험을 통한 심리학적인 성향을 띠는 계기인과율에 불과한데, 마치 이삭과 요한처럼 예수도 반드시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식의 생성인과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신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에 미치는 인과율에서 벗어나 있는 세계이다. 인간의 시간이 계속 연속이 되어 흘러가는 연대기식의 수평적인 크로노스라면 신의 시간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직접 임하는 수직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최목사는 합동 총신대학원에서 근본주의 신학을 한 사람이다. 근본주의는 축자영감설이나 문자를 강조하는 신학으로서 오히려 마리아의 성령잉태설을 주장해야 한다. 마리아의 월경에 대한 말은 성경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목사의 오류는 사람의 잉태라는 경험을 갖고 신의 잉태까지 사람의 유사한 절차의 잉태의 현상으로 해석하여 계기인과율적인 주장을 하는데 있다. 시간상으로는 카이로스보다 크로노스적인 시간을 주장하는 것이다.
성서의 역사를 통해서 사람탄생의 경험을 해보니 심리학적으로 신의 아들도 같은 현상과 과정을 통해 유사한 결과물을 도출하게 되리라는 경험과 관습을 토대로 하는 심리학적인 계기인과율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그래서 최목사는 임마누엘 칸트처럼 기존의 경험의 벽을 허무는 독단의 잠을 깨어 경험없이 가능한 선험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칸트는 경험하기 이전의 시공의 형식과 사고의 범주를 통해서 사물을 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선험적인 지식을 갖고서도 물자체의 세계는 알 수 없다고 하여 순수이성의 한계를 직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칸트가 대업을 이루었던 것이다. 순수이성비판이다.
그러나 칸트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물자체의 세계(신의 영역)를 도덕적 실천을 통해서 다다르려고 하였던 것이다. 우리 역시 우리의 이성으로도 알 수 없는 물자체의 영역, 즉 신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서 도덕법칙과 양심의 영역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신(물자체)의 영역은 경험주의 갖고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이성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물자체의 영역은 도덕성과 양심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도덕법은 경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주어져 있다. 그래서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하도록 행동하라" 정언명령이다. 이것이 실천이성비판이다.
우리는 도덕이나 양심을 통해서 신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서 도달가능한 것이다. 마리아의 신비한 성령잉태론은 월경갖고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신앙을 통해서 새로운 경험이전의 선험적인 지식을 통해 신앙의 형식을 통해 신의 눈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최목사는 신의 눈이 아니라 사람의 눈갖고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의 영역갖고 해석하기 때문에 해석상의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마리의 동정녀탄생은 성서역사상 없던 것으로 이전의 경험갖고서 판단할 수 없는 신비한 영역이다.
예수의 인성은 인간의 인성과 질적으로 다르다
최목사가 억지로 평범한 인간탄생의 유사한 선상에서 해석하는 것은 경험주의의 독단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고, 인간의 자연스런 탄생을 통해서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려는 잘못된 교리관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의 인성은 죽은 지 3일만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 인간의 인성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성이다. 인간의 경험을 통한 예수의 인성도 인간과 비슷하다는 경험을 따라 해석하는 경험주의의 독단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예수의 인성과 인간의 인성은 공유하는 면도 있지만 질적인 면에 있어서 다르기 때문에 인간인성의 경험을 갖고서 신의 인성을 해석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오류나 이단에 빠질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성은 예수와 달리 죽으면 부활하여 제자들과 만나 얘기할 수 있는 신령한 몸이 아니라 흙으로 가는 인성이다.
따라서 최목사는 인간의 자연스런 분만을 통해 신의 아들의 탄생까지 해석하려는 경험주의의 독단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성인과율이 아니라 계기인과율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탄생시킬 때 으례히 필요한 여성의 경수를 당연시 한 경험주의의 이론이 신의 아들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성을 통한 경험주의의 독단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이제는 허무주의의 경험론에서 벗어나 경험없이도 가능한 선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리아의 잉태는 우리의 경험으로 해석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경험의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
즉 성령의 역사는 있었지만 예수님도 인간인 만큼, 인간 마리아의 자연스런 현상 을 통해서 태어났다는 주장이다. 만일 보통 인간이 태어나듯 여성 마리아의 월경을 통한 탄생이 아니라면 굳이 여성을 통해서 태어날 필요는 없고 구약의 천사들이 내려와서 제사장과 밥을 먹듯이, 예수님도 하늘에서 바로 내려오면 된다고 하였다.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난 이상, 예수도 다른 사람들처럼 여성의 자연스런 현상을 통한 탄생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박윤식목사가 예수는 월경없이 태어났다고 하므로, 월경을 통해서 태어났다고 하는 주장일 뿐 동정녀 탄생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최목사는 "예수님이 월경없이 태어났다고 하면 예수님의 인성이 부정된다"고 까지 했고, "예수님은 마리아의 월경을 통해 피를 먹고 성장하고 또 태어나신 것"이라고 까지 하여 태아가 어미의 피를 마신 것으로 까지 나아갔다.
최목사의 논리적인 문제점
여기서 최목사의 논리적인 문제점은 예수님이 월경없이 태어났다고 해도 그의 인성은 부정된다는 논리는 하자가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월경을 통해서 태어났다고 하는 증거를 대야한다. 최목사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데이비드 흄은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로서 칸트의 독단의 잠을 깨운 사람이기도 하다. 데이비드흄은 그동안 있어왔던 경험론철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그동안은 인과율에 입각하여 경험론이 대두되었다는 것이다. A라는 원인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B라는 결과가 있다는 것이다.
생성인과율과 계기인과율
인과론에는 생성인과론(generative theory of casuality)과 계기인과율(succession of casuality)이 있다. 생성인과율은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인과율로 원인은 결과를 발생케 하는 능력으로 간주되며 그 결과와 연결되어 있다. 계기인과율은 원인은 보통 어떤 상태나 사건의 앞에 오는 것으로 그 뒤에 그런 결과가 오리라고 기대하는 심리학적 경향을 획득하는 까닭에 그것에 대한 원인이라고 불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생성인과율에서 보면 원인과 결과는 서로 독립적이 아니며 결과는 원인 없이 일어날 수 없다. 계기인과율에서는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려는 것은 한 종류의 사건과 다른 종류의 사건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성인과율에는 여러가지 약점이 있다.
이처럼 우리가 아는 인과율은 일반적으로 원인과 결과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A가 있으면 B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즉 아침에 해가 떴기 때문에 저녁에 해가 지는 것이다. 데이비드 흄은 이러한 자연현상은 경험을 통해 인과법칙이 마련된 것으로 사실상 고정화 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흄은 이러한 일반적인 생성인과율에 대해서 그 인과율은 생성인과율이 아니라 사실은 계기 인과율이라고 비판한다. 즉 아침에 해가 뜨면 저녁에 해가 지는 현상을 경험하다보니 심리학적으로 기대하게 되는 것이지, 반드시 경험하지않은 내일도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인과율은 귀납적 법칙으로서 과거부터 오늘까지 경험한 것을 내일까지 연결하려고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인과율은 경험론에 입각해서 형성된 이론이다.
쉽게 말하면 번개와 천둥이 치면 비가오는 것을 경험해왔기 때문에 경험상으로 볼 때, 번개와 천둥은 비를 내리게 하는 기대를 한다는 것이다. 흄은 이러한 기대는 그런식으로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지, 경험을 하지 않은 이상 내일은 청둥번개가 쳐도 비가 안올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내일은 경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렇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심리학적인 성향만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떴다고 해서 내일 해가 안 뜰수도 있다
오늘까지 경험했다고 해서, 내일도 반드시 해가 뜨리라는 보장은 없고, 번개와 천둥이 친다고 해서 경험을 하지않은 이상, 비가온다고 확실히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흄의 논리에서 임마누엘 칸트는 독단의 잠을 깨었던 것이다. 경험론의 명백한 한계를흄이 지적했던 것이다.
이제까지 자리잡은 영국의 경험론이 흄의 논리에 침몰하게 되었다. 임마누엘 칸트는 반드시 매사가 경험적인 것만은 아니라며 경험이전에 주어지는 시간과 공간같은 선험성을 들고 나왔다. 경험하지 않아도 경험 이전에 미리 주어진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의 모든 인식은 경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경험은 한계에 부닥치고 말았다. 오늘의 경험이 내일의 결과가 반드시 똑같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칸트는 기존의 경험론대신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선험(경험이전의 것)론을 주장한 것이다.
선험의 예
예를 들면, 모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 이것이 과연 경험에 의한 인식일까요? 우리가 삼각형을 수십개 수백개 그려보고 모든 각의 합을 구해봐서 '아,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구나' 라고 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필연적인 인식, 보편적인 인식은 경험에서 나올 수가 없고 선험적으로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경험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공간이라는 형식과 사고의 범주를 통해서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신의 모습으로 온 것 자체는 경험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세례요한과, 천사들이 온 것과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또한 여인에서 경수가 회복되어 이삭, 세례요한, 사무엘이 태어난 것과도 전혀 다른 것이다.
이는 이제까지 우리가 알았던 경험에 의한 생성인과율에 따라 해결될 수 있는 법칙이 아닌 것이다. 이럴 경우, 데이비드흄의 허무주의적 경험론이 맞는 것이다. 즉 생성인과율을 갖고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다.
칸트, 경험의 세계에서 벗어나, 선험의 세계를 창조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여 칸트는 당시 진리라고 확신했던 경험론의 독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험을 하지 않은 선험적인 시공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사물을 보고, 범주라는 형식을 통해서 인간은 사유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모두 다 경험으로 알 수 없는 이미 경험이전에 주어진 선험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전에는 경험을 통해서 사물, 대상을 인식하였는데 이제는 축이 내가 되어 내게 주어져 있는 경험이전의 선험적인 인식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것이다. 전에는 경험을 통해서 사물이 보여졌는데 이제는 경험없이 선험적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다. 철학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경험을 통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전의 신앙의 영역으로 우리가 하나님이 만세전부터 택하신 바 되어 선험적인 상태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전도나 간증, 경험을 통하여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는 신앙적인 형식과 내용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최삼경목사의 마리아 월경잉태설의 한계도 여기에 있다. 최목사는 엘리사벳, 사라 등의 경험을 통하여 마리아를 해석하고 있다. 이미 경수가 끊어진 자들에게 하나님이 경수를 회복시켜주어서 늦은 나이에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듯이, 하나님이 마리아의 경수를 통해서 예수를 탄생시켰다는 논리이다. 최목사는 구약의 경험을 통해서 보니, 예수도 인간인 만큼, 이삭과 세례요한과 같은 전철을 밟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학적인 인과율이 계기 인과율이다. 이삭과 세례요한이 여성의 경수를 통해서 태어났듯이 예수도 마리아의 경수를 통해서 태어났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이 경험의 독단론이다. 어제의 경험이 오늘의 경험, 내일의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심리학적인 인과율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마리아의 월경을 해석하는 것은 신앙의 초월적인 영역을 배제시키는 것이다.
최목사, 계기인과율에서 벗어나야
이제 최목사는 경험을 통한 심리학적인 인과율에서 깨어나야 한다. 예수는 이삭이나 세례요한과 달리 여성의 경수를 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동정녀를 통한 성령의 잉태이다. 성서역사에서 나이든 여성에게 경수를 회복시켜 아이를 잉태케 해준 사실은 있지만 동정녀를 통한 잉태는 없었다. 그러므로 나이든 여성의 끊어진 경수의 회복의 경험을 갖고 처녀의 잉태경험을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끊어진 나이든 여성에게 경수를 회복시켜서 아이를 잉태하게 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이지만 성령의 잉태는 아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신의 아들의 탄생은 경수를 회복시킨 잉태가 아니라 위에서부터 수직적으로 임한 성령의 잉태이다. 성령의 잉태는 그 어떤 인간의 도움이나 조건을 불허한다.
성령의 역사는 인간의 경험과 방법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예수도 인성이 있지만 인간과 반드시 같은 인성이 아니었다. 그는 탄생도 죽음도 인간의 인성과 질적으로 다른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목사가 이단으로 명명한 박윤식목사의 말이 오히려 성경적
존 칼빈의 말대로 성경이 가는데 까지 가야하고, 머무는 데에서는 멈추어야 한다. 박윤식목사의 말대로 예수님은 월경없이도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탄생경험을 신의 탄생의 경험으로 연결시킬 수 없는 것이다. 신은 처녀에서 잉태했고 얼마든지 신(성부)의 힘으로 월경없이 태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월경없이 태어난다고 해서 그의 인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월경을 통해서 태어났다면 최목사가 명확하게 증거를 대야한다. 어설픈 경험지식이거나 인간의 탄생을 통해서 신의 탄생을 해석하려는 유추해석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처럼 최목사는 잘못된 인간탄생의 경험론갖고서 신의 탄생까지 해석하려고 하고있다. 즉 자신의 인과율이 계속 경험을 통한 심리학적인 성향을 띠는 계기인과율에 불과한데, 마치 이삭과 요한처럼 예수도 반드시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식의 생성인과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신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에 미치는 인과율에서 벗어나 있는 세계이다. 인간의 시간이 계속 연속이 되어 흘러가는 연대기식의 수평적인 크로노스라면 신의 시간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직접 임하는 수직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최목사는 합동 총신대학원에서 근본주의 신학을 한 사람이다. 근본주의는 축자영감설이나 문자를 강조하는 신학으로서 오히려 마리아의 성령잉태설을 주장해야 한다. 마리아의 월경에 대한 말은 성경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목사의 오류는 사람의 잉태라는 경험을 갖고 신의 잉태까지 사람의 유사한 절차의 잉태의 현상으로 해석하여 계기인과율적인 주장을 하는데 있다. 시간상으로는 카이로스보다 크로노스적인 시간을 주장하는 것이다.
성서의 역사를 통해서 사람탄생의 경험을 해보니 심리학적으로 신의 아들도 같은 현상과 과정을 통해 유사한 결과물을 도출하게 되리라는 경험과 관습을 토대로 하는 심리학적인 계기인과율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그래서 최목사는 임마누엘 칸트처럼 기존의 경험의 벽을 허무는 독단의 잠을 깨어 경험없이 가능한 선험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칸트는 경험하기 이전의 시공의 형식과 사고의 범주를 통해서 사물을 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선험적인 지식을 갖고서도 물자체의 세계는 알 수 없다고 하여 순수이성의 한계를 직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칸트가 대업을 이루었던 것이다. 순수이성비판이다.
그러나 칸트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물자체의 세계(신의 영역)를 도덕적 실천을 통해서 다다르려고 하였던 것이다. 우리 역시 우리의 이성으로도 알 수 없는 물자체의 영역, 즉 신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서 도덕법칙과 양심의 영역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신(물자체)의 영역은 경험주의 갖고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이성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물자체의 영역은 도덕성과 양심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도덕법은 경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주어져 있다. 그래서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하도록 행동하라" 정언명령이다. 이것이 실천이성비판이다.
우리는 도덕이나 양심을 통해서 신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서 도달가능한 것이다. 마리아의 신비한 성령잉태론은 월경갖고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신앙을 통해서 새로운 경험이전의 선험적인 지식을 통해 신앙의 형식을 통해 신의 눈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최목사는 신의 눈이 아니라 사람의 눈갖고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의 영역갖고 해석하기 때문에 해석상의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마리의 동정녀탄생은 성서역사상 없던 것으로 이전의 경험갖고서 판단할 수 없는 신비한 영역이다.
예수의 인성은 인간의 인성과 질적으로 다르다
최목사가 억지로 평범한 인간탄생의 유사한 선상에서 해석하는 것은 경험주의의 독단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고, 인간의 자연스런 탄생을 통해서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려는 잘못된 교리관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의 인성은 죽은 지 3일만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 인간의 인성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성이다. 인간의 경험을 통한 예수의 인성도 인간과 비슷하다는 경험을 따라 해석하는 경험주의의 독단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예수의 인성과 인간의 인성은 공유하는 면도 있지만 질적인 면에 있어서 다르기 때문에 인간인성의 경험을 갖고서 신의 인성을 해석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오류나 이단에 빠질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성은 예수와 달리 죽으면 부활하여 제자들과 만나 얘기할 수 있는 신령한 몸이 아니라 흙으로 가는 인성이다.
따라서 최목사는 인간의 자연스런 분만을 통해 신의 아들의 탄생까지 해석하려는 경험주의의 독단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성인과율이 아니라 계기인과율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탄생시킬 때 으례히 필요한 여성의 경수를 당연시 한 경험주의의 이론이 신의 아들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성을 통한 경험주의의 독단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이제는 허무주의의 경험론에서 벗어나 경험없이도 가능한 선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리아의 잉태는 우리의 경험으로 해석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경험의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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